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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229-6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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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Vol., No.29

  • 1.

    의태부사(擬態副詞) ‘するすると’와 ‘술술이’ -「첩해신어(捷解新語)」자료를 통하여-

    고이즈미가즈오 | 2010, (29) | pp.7~21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본고에서는 근대 한국어의 부사 ‘술술이’와 17세기의 일본어에서 나타난 ‘するすると’와의 관련성을 시고(試攷)해 봤다. 일견(一見) ‘술술이’는 ‘차례차례’(次例次例)와 같은 순서를 다루는 모양을 의미하는 ‘순순히’의 고형태(古形態)를 연상시키지만 한자어인 ‘순순히’(順順/諄諄)는 고유어로 보이는 ‘술술이’와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즉 한국어 부사 ‘술술이’의 기원(起源)은 17세기 일본어에 나타난 ‘するすると’의 한국어 대역에서 나온 일본어 차용어로 보는 것이 결론이다. 본고 2.의 선행연구와 문제제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17세기에 쓰인 일본어 교과서(敎科書) 「첩해신어(捷解新語)」에서 ‘안내’(案內), ‘유단’(油斷)과 같은 한자어의 어휘들이 한국어에 유입이 되었던 사실이나, 한국어의 주격조사 ‘가’가 일본어 주격조사 ‘が’의 영향을 받고 일본어 번역에서 온 일본어의 차용어이었다고 하는 논고들이 이것을 뒷받침 할 것이라 생각한다.
  • 2.

    『的』 に関する日韓比較

    木口政樹 | 2010, (29) | pp.23~43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的の語、つまり日本語の「_的」と韓国語の「_적」のつく語について、ケースを10個に分けて考察してきた。ケース(01)では、両方とも「的」のつくケースであり、これに属する語がもっとも多いのは周知の事実である。このことが影響して、日本語の的の語と韓国語の的の語とは同一表現であるという誤解が生じやすい。本稿の最大の目的は、この誤解を解くところにあった。そういう意味ではケース(04)と(06)の部分がもっとも強調したい部分である。ケース(04)では前接語が(主に)漢字語である。徹底的という場合は韓国語では철저히となり、日本語では的あり、韓国語は的なし、と言えるすっきりした例である。しかしながらその他の語については、日本的、日本人的、意味的、性格的など、日本語としては違和感のない語の例を見てみたが、韓国語の場合は状況によってのちがいや世代による許容度のちがいがあるようである。しかしながら一般的には(04)の例であげた例語は、(現時点で)韓国人ネイティブの直感では「的」がつくと違和感があると見てようさそうである。ケース(06)は、韓国語は的あり、日本語は的なし、のケースである。필사적으로 공부한다(必死に勉強する)のような例である。このケースに属する例が相当多い。本稿であげた例はごく一部にすぎない。今後このケースの語を追加してゆく必要がある。それによって韓国語・日本語の学習者双方に多いに役立つはずである。ケース(09)の検討では、外来語系の語に「的」 のつく語は、日本語では多いが、韓国語ではそれほど多くはないと言えそうである。ネットではかなり見られるが、実際の韓国人ネイティブに確認してみると、ネットで見られる形でも「的」 がつくと違和感があるとするケースが多い。実際の語感の面では外来語に「的」 のつく形は、韓国語ではいまのところそれほど一般的ではないようである。ケース(10)の検討でも、外来語と同じように、人名や商標名、地名などに「的」 のつく場合は、日本語ではかなり許容度があるが、韓国語の場合は許容度はそれほど高くはない。三星的のように日本でも有名な企業などの場合には、韓国語でも삼성적という表現が数多く見られ、ネイティブの直感によっても、以前よりはだんだん違和感が少なくなってきているようである。時代の変化が的の許容度を変えていくもののようである。李仁淳(2001)によれば、「韓国人は日本語起源の的という接辞を日本人以上に幅広く用いていることがわかった」 と述べている。的というのは日本語起源であるというわけだ。この日本語起源の的を、ケース(06)などを見てもわかるように、韓国語では日本語以上によく使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的の使いすぎという批判もときおり見られるが、にもかかわらず的はよく使われており全盛期である。韓国語では普通に使用される「成功的」 「必須的」 「故意的」 などは、日本語では使わない。読売、朝日、毎日3紙で検索してもヒットしないことからもそれはうなずける。しかし20年、30年先にはこれらの語は日本語で普通に使われているかもしれない。そのためにも、今現在の時点(2010年8月の時点)で、「成功的」 「必須的」 「故意的」 などの語は日本語では使われていない、と言っておくことは重要だと考える。もしこれらの語がいつか使われるようになったなら、それは韓国語からの影響であると言ってよいであろう。今現在でも、3紙ではヒットしないもののネット検索ではヒットするものがある。それらヒットしたものをみてみると、たいていは韓国関係、韓国語関係の記事が多く目につく。こうしたことから日本語での(漢字語における)「_的」 の広がりは、韓国語からの影響であると結論づけてもよいものと思われる。また逆に「よろず承り的」 などのような、的の前接語が和語的な語や句になっている場合(ケース05)は、韓国語の表現ではほとんど見られない。日本語ではこのような表現がだんだん使用されてきているるようである。こうした表現がいずれ韓国語でも使われるようになるかどうかはわからないが、注目してゆくべき部分であろう。そうした表現が韓国語にも見られるようになるとするならば、それは日本語からの影響と見てよいだろう。本稿は、的の語に関して、日本語と韓国語でどのようなパタンのちがいがあるかを網羅的に取り上げ整理したものである。このような総体的な研究はこれまでみられないことから本稿の意義もあると考えるが、あくまでもこの分野における一つの指標を示したものにすぎない。今後さらに多くの媒体を資料として積み上げてゆくことになろう。特にケース(04)と(06)については、そのストックをどんどん増やしていく必要がある。李漢燮敎授(高麗大)の「韓日、日韓のコーパス資料」や天声人語の韓国語訳サイト、そして朝鮮日報や中央日報の日本語訳サイトなどは、おおいに参考になるものと思われる。的の前接語自体の文法性や的結合語の統語的役割などの考察は、本稿では扱わなかった。今後の課題である。またケース(04)の漢字語における韓国語の的の許容度、ケース(10)の固有名詞系における韓国語の的の許容度については、世代によるちがいなども含め今後の課題として残しておきたい。
  • 3.

    한일고교생 호칭의 대조고찰

    Hong, Min-Pyo | 2010, (29) | pp.45~63 | number of Cited : 2
    Abstract
    지금까지 한일 양국의 고교생 81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정과 학교에서의 호칭실태 조사결과를 대조사회언어학적인 입장에서 고찰했는데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한일 양국 마찬가지로 합계출생률의 감소로 부모와 자녀간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졌고 그 결과 ‘아버지’ ‘어머니’나 「おとうさん」 「おかあさん」 의 사용은 많이 줄고 한국에서는 어린이 말인 ‘아빠’ ‘엄마’가 대학생이나 고교생에게까지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존경의 접두사 「お」를 생략한 「とうさ」 「かあさん」 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도쿄의 여학생들은 역시 어린이 말인 「マ」 「パパ」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한국의 경우, 부모를 선생님에게 언급할 때 남학생은 ‘아버지’ ‘어머니’를 많이 사용하고 여학생들은 ‘아빠’ ‘엄마’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おとうさん」이나 「おかあさん」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히로시마의 남학생은 존경의 접두어 「お」를 생략한 「とうさん」 「かあさん」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한국에서는 선배를 형이나 누나와 같은 친족명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서 일본에서는 친족명칭으로 부르는 경우는 전혀 없고 이름에 「先輩」나 「さん」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4)한국에서는 후배를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고 일본에서는 이름 또는 별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 4.

    모리 오가이의 「오키츠 야고에몬의 유서」일고찰

    Kang,Wonju | 2010, (29) | pp.65~78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오키츠 야고에몬의 유서」에는 전술한 대로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초판은 동료살해라고 하는 사건을 핵으로 하여 할복하기까지 야고에몬 개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제 2판은 야고에몬의 할복을 중심으로 하는 오키츠일족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양쪽 모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요코다살해에 대해서 같은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사건의 작품상 위치는 서로 다르다. 전자에서 그것은 주군의 용서, 과분한 명예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책과 배상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무거운 짐이자 빚이었다. 그는 그 빚을 갚고자 일생 노력하였고 결국 자신의 목숨으로 갚았다. 그 죽음은 순사라기보다는 자책과 사죄, 배상으로서의 죽음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후자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온 삶의 한 사건, 혹은 출세의 계기이기도 했다. 제2판에서 야고에몬은 사건의 전말을 고하고 할복을 청하지만 그것은 무사도의 규율(喧嘩両成敗)에 따른 것일 뿐으로 용서받은 후 그가 자책하거나 죽음을 바라거나 했다는 기술은 찾아볼 수 없다. 그에 있어서 순사는 무사로서 그의 충의관에 맞는 인생의 한 수순이었다. 그것은 자신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주가(主家)와 자신의 가문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제2판의 유서는, 죽음의 이유를 밝히고자 하는 초판에 비해 자신의 업적을 후손에게 알리고자 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또 한 가지, 죽음의 장면에서 양자의 차이는 현격하다. 제2판에서의 화려하고 거창한 행사로 치러지는 순사에 비해 초판의 죽음은 눈 쌓인 겨울밤, 창가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눈빛에 의지하여 홀로 할복하는 비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정경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오가이는 지인 노기의 순사사건을 계기로 「오키츠야고에몬의 유서」를 창작하면서 순사나, 고무사의 충의 등을 무사도의 정수로서 받아들여 긍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역사그대로」를 존중하여 개작한 제2판에 비해 오가이 자신의 상상력과 창작세계가 더욱 잘 드러난 초판에서 야고에몬의 고뇌와 쓸쓸한 죽음의 정경을 통하여 그는,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일생을 걸고 관철해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자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5.

    오에 겐자부로의 「인간의 양(人間の羊)」론-폭력과 성의 비판의식-

    성혜숙 | 2010, (29) | pp.79~94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지금까지 「인간의 양」에 나타난 갈등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작품을 분석해왔다. 「인간의 양」에서는 세 가지의 갈등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데, 첫 번째 갈등구조는 미국인 병사와 일본인 버스 승객간에 나타난 갈등으로 이에 대한 선행연구에서는 점령자와 피점령자 사이의 굴욕적 관계를 성의 이미지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성이미지는 피상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고, 굴욕적 관계는 인간을 동물로 표현하는 의동물화에 의해서 강조되어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기법은 「사육」에서도 사용된 기법으로, 각 인물들의 존엄성이 상실시키거나 추가시켜 지배와 피지배의 층위를 확고히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성은 잠재적이기는 하지만 미국병사와 그들의 동행자인 일본인 여성들의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두 번째 갈등구조이다. 일본인 여성들은 피점령자임에도 불구하고 점령자와 동일하거나 때로는 우위적 위치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성이 여성들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기능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성이 정치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60년대의 「성적인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성의 중요한 특징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은 불합리한 방식으로 타자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으며, 힘과 성이라는 불합리한 방식을 통해서만 사회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고발이라는 사안에 대한 협의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세 번째 갈등구조이다. 이 갈등은 피점령자 내부에서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러한 협의는 양보할 수 없는 각자의 의견차이 때문에 합의되지 못하고, 구타 혹은 위협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통해 타자의 의사를 무효화시키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양」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개개인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폭력이나 협박 혹은 성과 같은 비합리적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정치권력을 형성시키는 힘의 논리와 같은 방식으로 성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50년대 말 종전선언과 더불어서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 등에서 성이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소재로 나타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오에는 이러한 성에 사회인식을 추가하여 새롭게 재해석하여 60년대 이후에 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집중해서 발표하는데, 「인간의 양』에서 그 맹아를 확인할 수 있다.
  • 6.

    One consideration on The Coldness of Akutagawa Ryunoske -Focused on <the law of heat transmission action>-

    Minhee Lee | 2010, (29) | pp.95~113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As above-mentioned, The Coldness which is dealing with <The Communication> between the writer and the reader is exposed to 1920's movement that is seeking to literatural value in one of the sympathy formation factor with <the reader> at the Japanese literature stage that is, the extension line in the transition period of literature concept. But, The Coldness which is extended to the men and women, and the writer and the reader from the objects through <the law of heat transmission action> showed the strange figure of the Yasukichi who is sympathetic with the object instead of being unable to communicate with the men. This is stemmed from the higher consciousness about 'the bonfire', 'gloves', 'the writer' etc regardless of the men and objects. There are vertical up-and-down relationship in the writer and reader concerns. Then, The Coldness in the place of the Japanese literature guarantees the same age in the name of the transition period in the literature concept. The Coldness however, connoted the limits in the aspect of vertical up-and-down relationship understanding about both. But, these limits are rather overcame by practicing the writing or so communication act. In other words, the text analysis in another Yasukichi work, The Greetings is transmitted to <the reader> in the aspect of narration method, and the limits are being tided over in One love novel which deals with text problem consciousness through sympathizing with <the reader>. In the aspect of these viewpoints, The Coldness in the total of 10 Yasukichi works plays the role of the bridge between at the notebook of the Yasukichi, The boy as the place of showing the literature view and The Greetings, one love novel as the place of practice.
  • 7.

    일본어문학에 나타난 도한 일본인여성

    이승신 | 2010, (29) | pp.115~135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이상과 같이 재한 일본어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도한 일본인 여성의 표상을 살펴보고, 일본어 미디어에 발표된 일본어문학의 분석을 통해 도한 일본인 여성의 문제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당시 일본어 미디어는 거류민 사회의 형성에 의해 재한 거류민의 네트워크로서 한반도 전역에서 간행되었다. 재한 일본어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도한 일본인 여성은 내지 여성과는 구별되는 ‘식민지의 여자’로 표상되었으며, ‘식민지 여자’대 일본 내지 여자, ‘경성의 여자’대 ‘동경의 여자’등으로 이분법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제시되면서 특히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되어,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적인 이미지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기사분석을 통해 파악해보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도한 일본인 여성의 표상은 여성들의 도한 자체를 반대하는 언설로 드러나는 등 일본의 이민정책과 이율배반적인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또한 재한 일본어 미디어에 발표된 일본어문학 가운데는 도한 일본인 여성 특히 유녀와 같은 매매춘과 관련된 여성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데, 주로 도한 일본인 남성의 사랑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예기와 같은 직업의 여성과 도한 일본인 남성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든, 사회적 편견과 난관을 극복하고 맺어져야 하는 관계로 그려지고 있다. 이주민이라는 동일한 입장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차별화된 시선을 받게 되었고, 또한 한반도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성과 결혼하게 된 이른바 ‘조선 뇨보’(한처)를 그려낸 소설도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잡지 「조선」의 소설 「몰락」의 여주인공 오마사는, 일단 가정 내에 편입되었다고는 하나 불행한 상황에 처하여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인물로서, 그녀의 불안한 입장은 순결하고 정숙한 가정 내 여성과, 정조를 잃어버린 불결한 여성이라는 근대 공창제도가 철저하게 양분한 경계에서 흔들리는 존재라는 측면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제국의 침략, 식민지 지배의 확대심화와 함께, 근대 일본인 여성은 ‘가라유키상’과 같이 매춘을 위해 대만, 조선, 만주로 이동하였고, 그들은 이주를 강요받았다. 「몰락」은 단순히 예기 출신의 도한 일본인여성을 제재로 취한 소설이 아니라, 이주지에서 도한 일본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예기와 일본인처라는 일본인 여성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평가해볼 수 있다.
  • 8.

    불교설화에서의 僧과 龍蛇 -「곤자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권13제33화와 「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와의 비교-

    Rae-An Lee | 2010, (29) | pp.137~151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곤자쿠모노가타리슈』권13제33화와『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를 비교한 결과(1) 용이 승의 경문 독송을 청문하다. (2) 승과 용이 친밀한 관계가 되다. (2) 용이 비를 내리게 한다. 라는 기본구조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용이 비를 내리게 했다는 데 중점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고 고승(高僧)들의 영험담에 중점이 놓여 있다는 데도 공통점이 있다. 상이점에 대해서 알아보면첫째, 승과 용이 만나게 된 계기가 다르다. 『곤자쿠모노가타리슈』권13제33화의 경우는 용이 승의 『법화경』강설을 청문하러 오는 것이 승과 만나는 계기가 되지만, 『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의 경우는 승이 중국에서 귀국하는 도중 용궁에 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용과 만나게 된다. 둘째, 용이 비를 내리게 한 이유가 『곤자쿠모노가타리슈』권13제33화의 경우는 용이 승의 『법화경』청문으로 삼악도(三惡道)의 고통에서 벗어나 善根을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답이다. 『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에서는 나라가 가뭄이 계속되자 승의 명령에 따라 용이 비를 내리게 한다. 즉 『곤자쿠모노가타리슈』권13제33화의 용은 불교에서 말하는 동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으나, 『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의 용은 승을 보좌하는 護佛龍으로서 해석하고 있다. 셋째, 『곤자쿠모노가타리슈今』권13제33화에서는 비를 天帝의 허락 없이 비를 내리게 한 것 때문에 천제에게 살해당한다. 『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에서도 용이 비를 내리게 한 이유 때문에 천제에게 살해당할 것을 승이 도와준다. 일본에서는 처음에 용사가 신으로서 숭앙되다가, 불교가 들어와 불교와 습합하는 과정에서 용사는 삼악도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 동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교에 의해 구제를 받아야하는 존재, 『곤자쿠모노가타리슈』권13제33화에서처럼 죽어서 『법화경』공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존재라는 사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의 경우처럼 용사가 불교에 의해 구제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불교를 수호하는 호불룡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용사가 살해당하거나 다른 나라에 빼기면 불교입장에서도 국가입장에서도 큰일이라는 사상이 있다. 이러한 사상은 『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에서 서해 용왕의 아들인 이목이 승이 살고 있는 절의 연못에 살면서 승을 보좌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실히 나타나 있다. 넷째, 『곤자쿠모노가타리슈』권13제33화에서 승은 용이 다녔던 곳과 용이 살해당한 연못에 절을 세우고 명복을 빈다. 즉 승과 용의 관계는 개인적인 관계로 끝난다. 『삼국유사』권4義解제5「宝壤梨木」 條에서는 용의 말한 곳에 절을 세우자 삼국이 통일된다. 이것은 불교흥망이 국가흥망으로 이어진다는 사상인데, 승과 용의 관계는 단순한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라 불교와 국가를 위한 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9.

    무간기판 「세이스이쇼(醒睡笑)」간행연대 고찰 -사본과의 자구비교를 통하여-

    이은주 | 2010, (29) | pp.153~176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이상으로, 간에이판이라고도 불리는 무간기판 『세이스이쇼』의 간행연대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먼저, 선행연구의 제설과 그 배경에 대해 살펴보니, ‘간에이 5년’, ‘간에이기’, ‘간에이기 또는 쇼호기’, ‘간에이 말 또는 쇼호기’, ‘만지 2년부터 간분 10년 사이’ 등, 매우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이와 같이 긴 기간에 걸쳐 추정되고 있는 정판본 무간기판의 간행연대를 알아보기 위하여, 정판인쇄가 재개된 시기에 대해 조사하였다. 그 결과 그 시기는 ‘간에이 중기 이후’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세이스이쇼』의 작자 안라쿠안 사쿠덴은 간에이 19년(1642)에 입적하였다. 판본간행이 작자의 생전인가 몰후인가 하는 것은, 무간기판의 간행연대를 밝히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된다. 따라서 본고는 사본과의 자구비교를 통하여 오자와 연자를 가려내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판본간행에 작자의 개입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결과, 사쿠덴이 판본 간행에 개입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근거로, 작자의 관여가 있었더라면 생길 수 없는 오자와 연자를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우타(歌)에 후리가나를 잘못 달거나 쓸데없는 글자를 넣어서 운율을 깨뜨린 예가 발견되었고, 앞뒤 문맥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겼다고 보이는 오자들도 다수 있어, 인용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를 예시하였다. 그 외에도 비슷하게 생긴 글자에서 잘못된 표기를 한 예가 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한자의 경우에는 특히, 한 글자의 오용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크게 일변하고 마는 사례들이 있었다. 표기의 오용은 특히 교카나 와카, 그리고 요쿄쿠나 불교 관련 단어에도 많았으며, 이는 승려이자 교카시이며 다인이기도 한 사쿠덴의 지적이 있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사례라 생각되었다. 이를 통해 본고는 판본의 성립에 작자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었다고 파악하게 되었고, 결국, 무간기판의 간행연대는 작자가 입적한 해(1642년)를 기점으로, 그 이후에서 게이안 원년(1648년) 사이일 것이라 추정하게 되었다.
  • 10.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번역(翻訳) -번역가로서의 무라카미 하루키-

    정인영 | 2010, (29) | pp.177~193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하루키는 앞에서도 밝혔듯 해외문학, 그것도 주로 미국문학의 영향 아래서 성장한 작가이다. 그는 일본의 동시대 작가보다 피츠제럴드, 카버, 카포티, 샐린저 등의 미국 작가들이 발산하는 공기 속에서 그들의 작품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해 왔으며, 이러한 독서 경험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그가 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 대한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가 된 후에도 그는 번역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그들과의 소통을 계속 이어왔다. 물론 그의 번역에 대한 관심은 처음에는 본격적인 것이 아닌 「단순히 가로쓰기를 세로쓰기로 바꿔보는 데 흥미가 있었던」 것이고,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라서 이걸 일본어로 옮기면 어떤 느낌이 될까」라고 생각하는 정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하루키만큼 많은 번역을 해내는 현역 소설가는 거의 없다. 그는 「소설을 쓰는 것과 번역하는 것은 뇌 안이 완전히 반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라서 한 쪽만 계속 사용하면 다른 한 쪽도 사용하고 싶어지며,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 안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소설과 번역을 같은 비중으로 여기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자아(自我)를 움직여 이야기를 만드는」 위험한 작업인 반면에 번역이라는 것은 외부의 텍스트와의 거리를 유지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므로 「안심할 수 있는 고마운」 작업이다. 하루키에게 있어서 번역의 의미는 이러한 자신 안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거의 번역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키 본인 또한 번역을 하고 있을 때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든다고 할 정도로, 창작에 대한 열의 못지않게 번역이라는 작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프로 번역가이다. 이는 단순히 소설가의 번역 겸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일본 출판계의 1990년대의 현상 중 하나로 번역문학, 특히 미국문학의 파급과 영향력의 증대가 현저해진 것을 들 수 있는데,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 하루키였던 것이다. 시바타 모토유키는 일본의 외국문학 번역의 흐름을 바꾼 번역가 중 한 사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거론하며, 이는 하루키가 번역대상 작품을 선택할 때 자신이 읽고 용기가 나는 작품을 독자와 같은 감각으로 번역한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실제로 하루키가 그동안 번역 소개해 온 작품들은 그가 개인적으로 독자로서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 아니면 다른 번역가가 대체 불가능하다고 믿는 작가들의 작품, 자신이 번역하지 않으면 일본의 독자들이 읽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작품들이다. 원저자로서의 그는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편견이 있는 애정」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자신도 그러한 애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번역하여 일본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자신만의 피츠체럴드, 자신만의 샐린저를 번역한다. 그는 「번역이라는 것이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며, 「품도 많이 들고, 시간도 걸리는데다, 져야 하는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토로하지만, 「시간만 있으면 책상에 앉아 충동적으로 번역에 착수」 할 정도로 번역에 애착을 갖고 있으며,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질리지도 않고 번역을 계속」 하며, 「책상 왼쪽에 좋아하는 영어 텍스트가 있고, 그것을 오른쪽에 있는 종이에 일본어 문장으로 바꿔 나갈 때 느끼는 기쁨은, 다른 행위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에게 있어서 번역은 소설 창작과 함께 균형을 이루는 작업이며 이는 소설 창작과 번역의 비중을 거의 동일한 정도로 두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하루키에게 ‘번역’이라는 행위는 이제 필요불가결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11.

    A Study of Buddhism in Kawabata's Jōjoka

    KI RYOUN HAN | Sang-Hyok Lee | Eunsook Sim and 1other persons | 2010, (29) | pp.195~213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The main character of the Jōjoka, ‘I,’ like oriental incense appears to be better than the western one because incense has a very symbolic meaning. By burning it, the Buddha can be made an offering to. People often burn incense before holding all ancestral rites in Korea, because its scent has been considered to “open a way to the holy spirit by doing away with the wickedness and purifying soul and body,” which is called ‘Bunhwang’(burning incense) in Korean and is being practiced now. ‘I’ comes to realize that incense in Buddhism functions as a spiritual means to the truth and is more interested in the world after death of Buddhism, whereas the western one seems to be limited to realistic uses and meanings and is more interested in Christian heaven and think highly of the one. Although ‘I,’ the main character, is a woman, it cannot be said to have nothing to do with the writer, Kawabata Yasunari, if we keep the characteristics of the first-speaker literature in mind. That is, the fact that the writer thinks highly of the oriental rather than the western and what is related with Buddhism rather than Christianism comes to be known indirectly through the main speaker. The Jōjoka implies buddhistic thoughts such as mercy, rebirth and “all things come from mind” and legends concerning Sakyamuni and a Buddhist priest of magnolia as main materials. It is said that the story of a Buddhist priest of magnolia is known only to those who have a wide knowledge of Buddhism, which means Kawabata Yasunari’s thoughtful understanding of it. It is expected that we will be able to understand more deeply the peculiarity of Kawabata’s literature including the Jōjoka, the meaning of which is said to be open only to the Japanese, by integrating his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Buddhism in order.
  • 12.

    『去来抄』 에 나타나 있는 芭蕉와 去来의 俳諧観에 관한 고찰

    Heo Kon | 2010, (29) | pp.215~234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芭蕉의 俳諧를 계승하면서 발전시킨 蕉門의 제자들의 수가 약 이천 명을 헤아린다고 전해지기도하는 가운데서 그 중에서 업적이 두드러지는 蕉門의 제자 중 蕉門十哲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門人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去来는 스승의 俳諧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스승의 俳諧를 후세에 널리 알리기 노력한 芭蕉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俳諧에 관한 능력을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다른 제자들과 비교해 볼 때, 결코 뛰어난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芭蕉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접했던 제자였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芭蕉는 去来의 俳諧에 대한 평을 결코 긍정적으로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적인 평가가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去来의 俳諧에 문제점이 발견 되거나 혹은 去来가 실수한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꾸짖거나 비판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그의 부족함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고민하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스승으로서의 芭蕉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즉『去来抄』에서 芭蕉는 제자인 去来를 대함에 있어서 질책과 꾸지람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칭찬에는 대단히 인색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芭蕉의 행동은 제자인 去来가 다른 누구보다도 진솔한 마음으로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かわいい子には旅をさせよ」라는 속담처럼 芭蕉는 그의 愛弟子인 去来를 대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칭찬을 자재하면서 제자의 장래를 위해서 질책과 나무람으로 접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去来의 신실한 성격과 자신을 대하는 스승의 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따른 제자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병행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고, 이러한 스승과의 교류는 去来의 俳諧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芭蕉는 자신이 진심으로 아끼던 제자였던 만큼 긍정적인 평가를 자제하고 철저하게 냉혹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의식적으로 견지한 것은, 앞으로 성장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제자의 교만을 견제하는 한편, 제자의 俳諧의 질적인 향상을 창출하기 위한 스승의 苦肉之策에서 나온 배려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13.

    마쓰바라 이와고로의 ‘하층사회’를 향한 시선-『최암흑의 도쿄』를 중심으로-

    Kim kyoung mi | 2010, (29) | pp.235~249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마쓰바라는 『최암흑의 도쿄』 속에서 하층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당시의 하층문제를 사회에 제기한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작품에 그려진 하층사회상에 대한 표현의 한계성이 문제시되어 이 작품의 사회 비판성이 무시되는 측면도 있다. 마쓰바라는 하층사회를 통해 문명사회와 대립을 이루는 하층사회상과 문명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일반사회와 동떨어진 하층사회상을 제시하였다. 전자는 하층사회를 문명사회와 대치시킴으로써 당시의 시대적 흐름인 문명적 가치에 대한 비판으로 드러났다. 또한 후자는 마쓰바라가 비판하려 했던 문명가치를 매개로 하여 하층사회를 일반사회와 다른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하층사회를 일반사회와 분리하는 서술로 나타났다. 『최암흑의 도쿄』가 지닌 사회 비판적 성격과 하층사회 표상의 모순적 성격은 이 두 가지 측면이 작품 속에서 동시에 전개된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쓰바라는 『최암흑의 도쿄』에서 하층사회와 문명사회를 대립적으로 설정하여, 문명사회의 허위성을 밝히는 대상으로 하층사회를 보고 있다. 또한 동시에 일반사회와가 상상할 수 없는 하층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고자 하였으나, 작품에 그려진 하층사회상은 문명적 시선으로 투여된 하층사회상은 차별적 대상으로서 일반사회와 분리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쓰바라는 이와 같은 하층사회 묘사를 통해 하층사회의 반전된 모습으로서의 문명사회 대한 비판에서 한층 나아가 하층사회의 새로운 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것은 사회의 저변을 담당하는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하층사회의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하층사회에 대한 긍정적 의미부여는 사회의 활력 있는 주체로서 하층사회를 바라보고자 하는 마쓰바라의 시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 14.

    宮崎駿의 『모노노케히메』에 그려진 유토피아와 여성

    Kim HwaYoung | 2010, (29) | pp.251~268 | number of Cited : 6
    Abstract
    이상으로 미야자키의 『모노노케히메』에 그려진 유토피아로서의 자연과 다타라의 성격을 분석하였으며, 주인공 산과 에보시는 작품 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비교분석하였다. 작품에서 자연은 일반적인 자비로운 존재가 아닌 생명을 주며 한편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모든 만물에게 ‘다타리’라는 업을 주는 이중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시시가미의 목을 ‘인간’이 스스로가 돌려주고, 자연은 인간에게 다시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과의 공존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이전보다도 늘어나 비대해지고 더욱더 이윤을 갈구하기 때문에 ‘자연’을 파괴한다. 다타라라는 공간은 그러한 예로서 위치하고 있으며 『모노노케히메』에서는 실제로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타라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공간과 아주 흡사하며, 세상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그곳에선 동등하게 노동을 하며,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 살고 있는 가장 최적의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 내에서의 여주인공인 산과 에보시는 자신들의 믿는 ‘유토피아’를 위해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철저한 신념을 갖고 저지하려는 상대와 열정적으로 맞서 싸우는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작품 내에서 숲이 죽음과 재생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이, 소녀인 산은 여성이며 자연을 뜻하며, 작품의 끝부분에서 산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을 ‘잉태’를 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 ‘재생’을 비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숲을 지키려고 싸우는 산의 모습은 중성화된 성격으로 로 그려지고 있다. 중년여성인 에보시는 유토피아 다타라에서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보살피고 책임지는 모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남성들을 지휘하고 적극적으로 여성들도 전쟁에 나가 싸울 것을 도모하는 ‘전사’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두 여성의 ‘성’ 역할은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동시에 동반하여 더욱 강인한 이미지로 작품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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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음악정책 -국민가의 제정과 전개양상을 중심으로-

    LEE, Jisun | 2010, (29) | pp.269~290 | number of Cited : 6
    Abstract PDF
    본고에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기에 일본과 조선에서 행해진 음악의 통제 및 보급 정책에 대해서 국민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일본 정부 주도의 관제운동인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이 시작되었고, 이에 따라 음악분야에서는 불건전한 가요를 정화하여 시국정신을 고취시키고자 음반검열이라는 ‘통제정책’이 시행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국민을 교화, 동원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가요인 국민가의 ‘보급정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국민가의 제정을 위한 여론 지지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국민가의 현상모집이었다. 현상모집은 내각정보부, 육군성, 마정국, 대정익찬회 등의 정부기관, 신문사, 출판사, 방송국 등의 미디어, 애국부인회, 소국민문화협회 등의 국민운동기관이 담당주체가 되었다. 전시기의 악곡모집은 ‘국책선전’과 ‘국민계몽’으로 그 목적이 획일화되었다는 것이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선정된 국민가는 각종 음악회 연주나 행사 및 회합 등에서 국민의례로 사용되었으며, 음반 발매와 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또한 『주보』 및 각종 신문, 잡지에 선정곡의 악보를 게재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국민가를 확산시켜갔다. 조선에서의 음악정책은 식민지라는 특성상 일본보다 좀더 복합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내지의 정책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도 있었고, 조선의 사정에 맞게 변형되거나 조선에서만 실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음반검열은 일본보다 오히려 1년 이상 먼저 시행되었다. 가요정화를 목적으로 실시된 음반검열에서 일본은 ‘풍속괴란’을 이유로 음반 발매가 금지된 경우가 많았지만 조선은 ‘치안방해’를 이유로 금지된 경우가 월등히 많아, 가요정화의 목적에도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이 투영되어 있음이 나타난다. 조선이 일본과 가장 구별되는 부분은 모든 음악정책에서 그 구심점에는 조선총독부가 있었다는 점이다. 음반검열은 조선총독부 도서과에서 담당했고, 음악 기본방침의 실천 주체였던 조선문예회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직된 친일단체였으며, 모든 문화활동의 주축이 되었던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조선총독부의 총독을 총재로 하여 조선총독부의 보조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한 관제단체였다. 조선에서의 현상모집은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총독부, 매일신문사가 주축이 되었는데, 주제는 신동아 건설, 태평양전쟁, 징병제 기념, 미영격멸 등이며, 특히 징병제 찬양, 제국군인, 반도청년 등을 강조함으로써 황민사상의 고취를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일본의 현상모집에 의한 국민가의 선정에 비해 조선에서는 현상모집이 그리 활발하게 시행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국민가를 그대로 조선에서 불리게 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선정된 국민가는 조선에서도 국민가요, 애국가, 애국가요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각종 음악회 및 행사 등에서 필수 가창곡이나 국민의례의 일환으로 사용되었다. 국민가의 보급 취지는 일본과 조선이 동일한 것이었지만, 조선에서는 이와 더불어 내선일체라는 목적이 가미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전시체재 하에서의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전쟁완수를 위한 군수품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소리를 매개로 한 큰 파급력으로 국민의 정신교화와 거국일치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국민가로, 국민가의 장려정책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전시색이 더욱 짙어짐에 따라서 ‘국민개창운동’이라는 보다 강제적인 방침을 가지고 국민을 동원하는 형태로 발전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한다.
  • 16.

    구로다 세이키(黒田清輝)와 자포니슴 -≪여름(들놀이)≫를 중심으로-

    chae yukyung | 2010, (29) | pp.291~307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구로다는 그의 주변상황이나 귀국 후 그의 활약상에서도 입증하듯이 회화를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닌 명치국가에서의 회화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명치의 일본에서 그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구로다는 프랑스 유학의 총결산으로 대화면으로 구상되었지만 미완성으로 끝난, ≪여름(들놀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름(들놀이)≫에서는 부채, 양산 등 일본소재를 단순히 삽입하던 자포네즐리적 초기작품에서 벗어나, 구도, 소재면에서 자포니슴에 근거한 작품으로 강가에서 더위를 식히는 소재만이 아니라 구도도 휘슬러에서 차용하고 있다. 공원이나 해변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작품은 샤반느의 ≪성스러운 숲≫을 차용하여 제작한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오후≫와도 매우 흡사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구로다가 파리에 있던 1886년 제2회 앙데팡당전의 출품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으로 이 작품은 단순히 강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 아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인, 병사 등 사회의 모든 계층을 표시한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풀밭에 누워있는 사람, 앉아있는 사람, 낚시를 하는 사람, 양산을 들고 산보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구로다가 샤반느나 코란처럼 고대여인이나 누드의 여인의 아닌, 강변에서 더위를 식히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서양부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인상파화가들이 우키요에 속에서 발견하려는 시민사회의 모습이다. 구로다가 추구하려던 것은 명치의 일본이 지향하려던 문명사회의 시민들로 이는 1913년, 구로다가 감수를 맡았던 ≪중앙정차장벽화≫에서 볼 수 있다. 그 작품에는 농업, 공업, 수산업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대화면으로 그린 것으로 휴식으로서 ≪여름(들놀이)≫, 노동으로 ≪중앙정차장벽화≫를 제작한 것이다. 이 두 작품 모두 대화면에 벽화풍으로 제작된 것으로 공공건물에 제작될 작품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질적으로 ≪중앙정차장벽화≫은 도쿄의 중앙정차장을 위한 의뢰작으로 구로다는 노동과 휴식을 즐기는 근대시민사회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사이온지가 추구하려던 자유민주주적 이상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