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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229-3652

2020 KCI Impact Factor : 0.58
목적과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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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사학연구소가 발간하는 <중앙사론>은 역사학 분야의 학술 증진을 목표로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고고학, 미술사, 과학사 등을 망라한 역사학 및 인접 학문 분야의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중앙사론>은 1972년 12월 한국중앙사학회를 발행기관으로 하여 1집이 발간되었으며 26집부터는 중앙사학연구소가 발행권을 인계해 현재 53집(2021년 6월 30일 발간)까지 발간하였다. 발행권을 인계한 중앙사학연구소는 군소학술지의 한계를 벗어나 국내 역사학 분야를 선도하는 학술지로 발전한다는 목표로 수 년간 <중앙사론>의 쇄신을 거듭하였고,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2011년 한국연구재단에서 실시한 학술지 평가에서 그 학술적 성과와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지로 선정되었다. 현재 <중앙사론>은 연 2회(6월 30일, 12월 31일) 정규적으로 발간하고 있는데, 오프라인 인쇄본은 본연구소 자매기관인 한국중앙사학회 회원과 제휴기관 및 국내 주요 도서관으로 배포되고 있으며, 중앙사학연구소 자체 홈페이지 및 교보문고 스콜라(https://scholar.dkyobobook.co.kr/)에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앙사학연구소는 향후 7년 내 <중앙사론>을 국제학술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도 쇄신을 거듭하고 있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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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훈 (서울대학교)
인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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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 IF(2년) : 0.58
  • KCI IF(5년) : 0.4
  • 중심성지수(3년) : 0.953
  • 즉시성지수 : 0.0

최근발행 : 2020, Vol., No.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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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百濟 威德王의 왕권 강화와 益山

    오택현 | 2020, (52) | pp.5~42 | 피인용수 : 0
    초록
    威德王은 그동안 왕권이 미약했던 왕으로 인식되었다. 근래에 들어 대외관계를 통해 威德王의 업적을 파악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사료 부족으로 인해 연구가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威德王代의 사료가 주로 대외관계 기사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외관계의 양상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威德王은 다변화된 외교 속에서 聖王계를 집결시키기 위해 사원을 창건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威德王은 中國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견고히 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따라서 威德王을 미약하거나 소극적인 왕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威德王의 왕권강화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또 다른 점은 益山이다. 益山은 일반적으로 武王과 연결하여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볼 때 益山은 百濟가 漢城에 수도를 두고 있을 때부터 왕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왕궁리 유적 초축에서 발견된 녹유편은 中國의 녹유편과 비교하여 威德王 시기로 편년되고 있다. 즉 益山이 武王 이전부터 百濟 왕실과 연결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威德王은 왕권 안정을 위해 漢城期 부터 왕실과 연결되어 있었던 益山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비록 威德王이 益山을 경영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왕실과 관련된 시설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威德王의 益山개발을 기반으로 武王代 에 대규모 사원과 왕궁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威德王은 다변화된 대외관계를 활용하고 사원창건 및 益山 개발 등의 정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식민지기 조선간이생명보험 ‘가미시바이(紙芝居)’ 연구

    권희주 | 성윤아 | 2020, (52) | pp.43~72 | 피인용수 : 0
  • 국제 노동 시장의 경험과 민족주의자의 딜레마 - 주요섭의 장편소설을 중심으로 -

    정주아 | 2020, (52) | pp.73~109 | 피인용수 : 0
    초록
    이 글은 해방 전후에 발표된 주요섭의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 운동에 뛰어든 청년 민족주의자가 체험한 국제 자본 시장 의 현실과 그에 따른 정치적 신념의 딜레마를 분석하고 있다. 주요섭은 3.1 운동 직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합류한다. 이후 그는 1920∼40년 사이에 상해를 비롯하여 북경,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 약 16년간 해외에 체류한 바 있고 해당 경험을 토대로 장편소설을 써냈다. 도산 안창호 로 대변되는 평양 지역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그에게, 미국 및 중국에서의 체류 기간이란 사회의 저층을 이루는 노동 문제를 포괄하지 못하는 민족주의 운동론의 한계를 깨닫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는 민족 공동체를 보전하는 동시에 그 내부에 상존하는 계급의 문제를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 글에서는 주요섭이 당대 잡지에 기고한 글과 주요한의 기록 등을 통해 신간회가 민족과 계급을 포괄할 대안으로 고려되었던 사정을 살폈다. 주요섭의 장편소설은 민족운동에 대한 의지와는 달리 대공황이나 전쟁 등으로 점차 열악해지는 현실 속에서 실존적 위기를 느끼는 주인공들의 서사이다. 이에 그의 장편소설은 대의를 좇는 민족주의자의 방황을 통해 민족운동의 현장에서 먼 장소일수록, 즉 상해보다는 미주에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조국’이라는 별빛이 더 명징하게 빛나는 현상을 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