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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2636-1205

2020 KCI Impact Factor : 0.51
목적과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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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원연구학회’는 이광수와 그의 문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결성된 학술단체이다. <춘원연구학보>는 ‘춘원연구학회’의 기관지이다.   이광수는 한국사회가 현대를 향해 나아간 긴 이행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힘껏 열어젖힌 작가로, 그의 문학은 '현대와 탈현대'라는 이중적인 주제를 깊이 함축하고 있으며, 그의 활동이 넓고 길었던 만큼 그 존재에 수반되는 여러 문학적 관계망을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이광수와 그의 문학은 한국현대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면서 동시에 지지와 비판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논쟁과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이에 본 학회는 문학 연구와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서 몰이해적 공평무사의 정신에 바탕하여 이광수와 그의 문학에 대한 정심한 연구를 지향한다.   이에, 본 학회는 이광수와 그의 문학을 심층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나아가 그의 문학을 둘러싼 여러 작가들, 작품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공시대적 관계양상들, 예컨대 한국현대사 이해의 문제들, '식민지적 현실'이라 명명되는 현상들에 대한 논의들 등을 포함하는 한국 현대사과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문제들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한다.   <춘원연구학보>는 이와 같은 본 학회의 취지를 반영하여, 초창기부터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광수와 그의 문학을 주제로 삼은 연구 논문과 자료, 기타 유의미한 글들을 수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왔다. 무엇보다 이광수와 그의 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모든 연구논문들을 수록 대상으로 삼고 있다.   나아가, 본 학술지는 한국현대문학사의 모든 본격적인 논의들을 수용하여, 한국문학 연구의 질적 제고와 양적 확산을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현대문학사는 이광수가 최초의 지점이 아닌 것은 물론이요, 그에게서 본격화 된 문제들이 그의 시대에 종결을 보았던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동시대 한국현대문학에 이르는 도정은 넓게 보아 이광수라는 '현상'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춘원연구학보>는 이광수와 그의 문학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제일의적인 과제로 삼으면서 나아가 한국현대문학사의 제반 논의를 폭넓게 수용하는 학술지로서 학계의 지평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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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학교)
인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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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 IF(2년) : 0.51
  • KCI IF(5년) : 0.45
  • 중심성지수(3년) : 0.928
  • 즉시성지수 : 0.0714

최근발행 : 2020, Vol., No.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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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수의 「무명」과 톨스토이의 「부활」과의 관련성

    박진숙 | 2020, (19) | pp.9~37 | 피인용수 : 0
    초록
    이 논문은 이광수의 「무명」을 톨스토이의 『부활』과의 관련성 속에서 읽어본 것이다. 한국문학사에서 『부활』은 네흘류도프와 카츄샤의 연애를 중심으로 소비되어 왔지만, 이 글에서는 당대의 읽기에서도 주목했던 ‘감옥’이라는 공간에 주목하여 「무명」과 『부활』의 관련성을 밝혀보았다. 「무명」과 『부활』의 관련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명」의 병감에서 ‘나’가 관찰한 미결수와『부활』에서 네흘류도프가 마슬로바를 만나러 간 감방에서 본 죄수의 범죄 유형의 유사성, 즉 방화범과 사문서 위조 혐의를 지닌 인물이 두 작품에 공통된 것으로 나타난다. 둘째, 「무명」에서 그려진 인간성에 대한 통찰이 『부활』에서 네흘류도프가 느끼는 인간에 대한 통찰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셋째, 「무명」에서의 ‘나’와 『부활』에서의 네흘류도프가 감옥에서 부여받는 역할의 공통점이다. 이는 사소한 듯 보이나, 「무명」의 관찰자 ‘나’를 주목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관찰자 ‘나’는 이 소설의 결함이 아니라 이광수가 더 이상 계몽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계몽 불가능성의 드러냄이야말로 「무명」의 내적 의미이다.
  • 이광수 『마의태자』 연구-복수와 체념의 두 역사와 민족의식을 중심으로

    서세림 | 2020, (19) | pp.39~65 | 피인용수 : 0
    초록
    본고에서는 춘원 이광수의 장편 역사소설 『마의태자』에 나타난 복수와 체념의 서사 및 그와 관련한 민족의식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마의태자』는 신라 말기 궁예, 마의태자, 견훤, 경순왕 등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바탕으로 민족과 영웅에 대한 작가의 관념을 보여준다. 이는 「가실」에서부터 이후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로 이어지는 신라 역사에 대한 작가적 관심이 장편소설의 형태로 형상화된 것이다. 『마의태자』는 김동인에 의해 소설의 구성과 주제의식이 혹평을 받은 이후, 작품의 의미에 비해 제대로 연구, 논의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또한 루카치의 역사소설론에 의거해 미달의 형식으로 인식되었던 것도 이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 관계의 정합성만이 작품의 성취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구성의 단순성이 작품의 연구 필요성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삶을 중심으로 사실과 허구를 혼합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성격과 고민을 통해 주제의식을 나타낸다. 작가는 단순한 구성 속에서 영웅적 인물들의 개인사와 운명적 관련성을 통해 정치적 의식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는 1920년대부터 이광수가 역사소설의 양식과 소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한 협력과 저항의 이분법적 인식을 넘어 작가의 이상주의와 현실적 고뇌 사이의 진폭을 파악해볼 수 있다. 작중 궁예는 비범한 인물로 태어나 영웅적 면모로 나라를 세우는 데에 이르지만 결국 원한과 복수에 집착한 선택의 과정을 통해 타락의 길로 접어든다. 반면 마의태자 김충은 영웅이 되지는 못하지만 타락한 사회에서 홀로 분개하며 체념하는 의인의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두 인물의 대조적 모습은 망국의 역사 속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바, 작가의 민족의식은 신라를 둘러싼 두 인물의 흥망성쇠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고뇌의 방향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 이광수 시 연구(1)-『삼인시가집』(1929)과 『춘원시가집』(1940)을 중심으로

    임수만 | 2020, (19) | pp.67~101 | 피인용수 : 0
    초록
    본고는 춘원 이광수의 문학적 출발기에서부터 1930년대 말, 그가 친일로 전향할 무렵까지의 시와 시조를 통시적으로 고찰하였다. 그의 문학적 절정이 바로 그 문제적인 고민과 갈등의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판단 하에, 친일 행보가 막 나타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춰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시적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먼저, 춘원의 초기시에서는 계몽에의 열정과 영웅적인 의지적 면모가 특징적이지만, 회의와 좌절의 모습 또한 나타나기 시작한다. 『삼인시가집』(1929)을 중심으로 살펴본 1920년대말까지의 춘원의 초기시세계는, 실망과 낙담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소명을 잊지 않으려는 처절한 고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93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서는 결국 절망에 이르게 된 시인의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데 본고에서는 그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았고, 이후 그가 불교에 귀의하는 것에 대해서는 종교를 통해 자기 자신과 민족의 영혼의 정화와 구원을 추구한 것으로 설명해 보았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의 작품들에는 불교에의 귀의뿐만 아니라 그의 친일 행적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시조 「축원」이나 수필 「육장기」에서 볼 수 있듯이, 1930년대 후반 춘원 문학에서 보이는 친일의 양상은 상당히 낯설고 급작스러운 모습이어서 독자와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이를 고찰해보기 위해 본고에서는 이 시기 그의 작품(「관음상」)에 등장하는 ‘관음상’의 이미지에 주목해 보았다. 춘원은 이 이미지에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겹쳐 넣기도 했고, 민족애나 심지어는 ‘대동아공영’이라는 구호적 이념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이는 종교적 황홀경을 매개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황홀경 그것은, 춘원이 자신의 삶과 문학을 통해 추구했던 경험의 구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파시즘 국가 체제의 권력자들 또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로 그 신화적 구조를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본고의 논의가 이른 지점은 여기까지이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춘원의 친일시에 대한 검토는 물론이고 파시즘과 종교의 관련성 등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