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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225-08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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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Vol., No.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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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study on the allegoric prose by the name of discourse inTang Dynasty :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llegoryand discourse’s reformation

    Cheoljin Nam | Woo, Jae Ho | Choi, Hwan | 2005, (46) | pp.5~30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安史의 亂 이후, 政局이 혼란에 빠지자 文人들은 文藝를 통해 政治的, 社會的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과거의 구습과 형식적 속박에 얽매인 文章으로는 자신들의 사상과 견해를 적극 피력할 수 없었기에 古文運動을 일으켜 散文의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文體의 改革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문운동의 지향점으로 인해 당시 정치나 사회 등 現實問題를 다루는 論說類 문장이 특히 많이 출현했는데, 현실문제를 비판지적하고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피력하는데는 諷諭法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으므로 論說 文體에 諷諭法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 과정에서 기존 論說 文體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그런데 唐代는 古文運動과 文體改革의 영향으로 많은 散文 文體가 체계화되고 整備되게 된다. 그에 따라 論說類 문장도 論, 說, 辯, 解, 釋, 原 評 등으로 세분화 되었는데 이는 이들을 모두 論說類로 통칭할 수는 있으나 하위 諸문체들은 이제 제각기 자신들의 독특한 특징을 구비함으로써 상호 구분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唐代 以前의 論說體 諷諭文 즉 論說 文體를 빌어 창작한 諷諭文은 거의가 論體와 說體에 집중되어 있는데 古文運動 이후, 論說 文體들이 정비되고 나면 論說體 諷諭文은 說體 諷諭文 위주가 된다. 왜냐하면 문체개혁 이전의 論說類 문체는 論과 說 둘 뿐이었고 그 당시에는 論體 諷諭文과 說體 諷諭文이 공존했었다. 그런데 文體의 改革 및 整備로 論의 성질이, 作家가 正面에서 엄밀한 論理와 抽象的인 槪念으로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펼치는 것으로 확립되자 이제 論은 더 이상 迂廻的이고 比喩的인 諷諭法을 채용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에 文人들은 遊說之辭에 起源을 두고 있는 說로써 諷諭文을 창작한다. 왜냐하면 遊說之辭와 諷諭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합하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古文運動 이후 文人들은 說體를 빌어 諷諭文을 창작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그런데 說에는 解說과 說明을 위주로 하는 正格의 說明文도 있다. 說明文 이외의 說體 文章을 보통 雜說이라고 하는데 唐 이후 古代의 雜說에는 諷諭文이 특히 많다. 정리하면, 諷諭文에 대한 文體的 認識이 없던 唐人들은 성격상 諷諭文과 상통하는 점이 있는 論說 文體를 빌어 많은 諷諭文을 창작했다. 그렇지만 諷諭文은 諷諭文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이 있으므로 論說 文體로 풍유문을 창작하게 되면 論說 文體의 내용과 형식이 변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雜說이라는 신종 문체가 대두되었고 또한 변형된 論體 文章도 많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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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synthetic discussion about Chinese Song age novel study in Twentieth century

    陳友氷 | 2005, (46) | pp.67~93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본 논문은 중국 대륙에서의 20세기,특히 개혁 개방의 新時期에 들어선 이후 宋代 소설의 연구 현황을 회고해 보고 아울러 송대 소설의 문헌 자료정리,송대 소설의 총체적인 특징,송대 소설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그 규율,송대 소설의 분류 연구 및 시기구분 연구,송대 소설사 저술 등에 대해 총결하고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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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study on the conclusion item of‘bi-zi-ju’

    사은영 | 2005, (46) | pp.115~136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比’자문에서 가장 기본개념인 비교항과 결론항에서 본고는 결론항에 중점을 두고 ‘比’자문의 결론항에 대해서 통사론적 표현과 의미제한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하였다. ‘比’자문 결론항은 특정한 의미를 가져야하므로 단지 그 자체가 정도 혹은 양의 변화를 나타내는 특정한 성분이 있어야만 그 위치에 올수 있다. 따라서 상대성 성질 형용사는 ‘比’자문 결론항에 가장 우선이 된다. 이 외에도 다른 술어성 성분 중에서도 정도의 차이 혹은 양의 변화를 나타낼 경우 ‘比’자문의 결론항으로 성립가능하다. 한국어에서는 비교문에서 결론항에 제한없이 자유롭게 쓰일 수 있으므로 한국인이 중국어 학습할 때 ‘比’자문 사용에 있어서 오류를 쉽게 범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분석 연구는 중국어 교학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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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ecific characteristics of HuangfushiSunqiao’sGuwen and Guwen’s decline in late Tang

    AN CHANSOON | 2005, (46) | pp.177~190 | number of Cited : 2
    Abstract PDF
    황보식(皇甫湜)과 손초(樵)는 중만당(中唐) 시기 한유(愈) 고문(古文)의 계승자를 자타가 공인하는 가운데, 주로 한유 고문의 ‘괴기(怪奇)’방면의 특징을 계승하여 더욱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당(唐) 말기 고문이 변체문에 문단의 주도적인 지위를 양보하고 쇠락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과 만당 고문운동의 쇠락과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정리해볼 수 있겠다.먼저 두 사람의 고문(古文)의 성취와 고문이론 방면으로 보면: 첫째, 두 사람의 고문이론은 이미 유가의 ‘道’를 떠나서 지나치게 ‘文’에 편향되어 고문운동의 본래 취지를 벗어낫다. 둘째, ‘괴기(怪奇)’에 대한 주장은 바로 그들의 ‘文’에 대한 중시를 의미하며, 이 ‘괴(怪)’와 ‘기(奇)’ 각기 ‘의(意)’와 ‘사()’를 가리켜 하는 말로 가리키는 바가 다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론은 주로 모두 ‘사()’방면의 ‘기(奇)’에 치중하고 있어서 그들의 ‘문(文)’에 대한 편향성을 더욱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괴기(怪奇)’론은 사실상 ‘기(奇)’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기(奇)’의 구체적인 표현은 사실 바로 ‘화()’와 ‘난()’으로 집약되며, 손초(樵)가 언급한 ‘공(工)’은 결국 ‘괴(怪)’와 다름없으며, 별다른 새로운 의미가 없다.다음으로 두 사람의 문단에서의 지위가 미친 영향으로 보면: 첫째, 두 사람은 당시 한유 고문(古文)의 계승자로 자처하며, 문단에서 역시 한유(愈) 고문의 전승자로서의 지위를 누렸지만, 두 사람의 문재(文才)는 한유에 훨씬 미치지 못했으며 황보식 이래로 내무택(來无), 손초 등 대를 거듭할수록 문장이나 이론 방면에서의 성취는 더욱 앞대에 못미쳐 그들이 쓰거나 주창한 ‘괴기(怪奇)’적인 특색은 당시 사람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둘째, 그들의 ‘문(文)에 치우친 문론은 이미 당초 고문운동의 주지를 벗어낫고, 일변도로 ‘기(奇)’ 즉, ‘화()’와 ‘난()’만 추구하여 결국 당초고문운동이 극력 배제하려던 것을 숭상하는 형국이 되었다. 황보식과 손초 두 사람은 한유 고문의 전승자로서 자타 공인한 터에 이와 같은 결함들을 갖게 되어 결국 당시 고문의 문단 종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온정균(庭筠), 이상은(李商) 등이 대표하는 변체문에 그 지위를 내어주고 마는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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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orphological comparativeStudy on the Korean Fu-Base on the pieces of the ≪Dongmoonseon≫

    박세욱 | 2005, (46) | pp.323~352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PDF
    It is most likely that fu (literary style) in Korea began when the Wenxuan was widely read. The necessity of the fu style seems feeble as it was far from common vernacular. As in China, the development of fu in Korean ancient literature was closely related to the official examination system. Historical records of Goryo show that the official examination commenced in 958A.D. (the ninth year of King Guang). Following Ssang Gi’s proposal, the official examination was established with three sections: 詩(Poetry), 賦(Fu) and 頌(Song). The person who excelled in all three areas was declared 進士(laureate). This system attracted the attention of Goryo literati and their interest in fu.Fu in Dongmoonsun can be classified into three types: Fu for the official examination(試賦)[A], Regular fu(律賦) in the Tang and Song dynasties[B] and Grand fu(大賦) of the Han dynasty, based on the style of Regular fu[C]. However, most works compiled in Dongmoon sun belong to Regular fu, others have more rigorous rhymes compared to Regular fu. Through this study, we can confirm that Korean literati, as the Chinese, composed fu in order to pass the official examination and succeed in life. Unlike the development of the literary style ci(辭) in China, Korean literati created a separate literary style of ci and added a new aspect in the Korean ci and fu literature. Therefore, the confusion perceived in the Chinese ci and fu literature, does not exist in Korean literature. If Fu for the official examination can be included in the category of the Regular fu of the Tang, we may come to a conclusion that most fu found in Dongmoonsun are written in the Regular fu style, thus the tremendous influence of the Tang and Song literary style on Korean literature is ev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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