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 English

pISSN : 1229-8387 / eISSN : 2713-749X

2020 KCI Impact Factor : 0.7
Home > Explore Content > All Issues > Article List

2004, Vol.07, No.

  • 1.

    Chong, Yag-Young' View of Ethics

    Young-Il kim | 2004, 07() | pp.9~68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PDF
    임서학에 의하면 인간과 다른 존재를 구별해 주는 것은 ‘영혼’이다.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 사유 판단능력을 다산의 말로 하면 ‘영명’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다산이 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신령한 점에서만 영명(도의)의 성을 말하는 것은 그가 수용할 수 있는 점만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하는 영명한 성은 영혼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지향성(기호)일 뿐이다.다산의 철학체계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인간 이해에서 거의 Ricci와 의견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우주 만물 가운데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하는 영장(靈長)으로서의 지위를 지니고 있으며, 각 단계의 사물들의 본성은 하느님(상제)으로부터 각각 고유하게 부여받고, 인간만이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특성을 고유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주자의 ‘본연의 성’에 대해서 다산은 ‘도의의 성’으로 바꾸어 말하고, 인간이 도의의 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데 천지만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 깊은 속까지도 감찰할 수 있는 하느님(상제)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게서 하느님(상제)은 인간의 도덕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심판하는 윤리적 요청이다. 근세철학자 Kant의 실천이성비판에서 ‘요청되는 神’을 기억나게 한다.Ricci에게서도 정신(신성인심)과 육신(형성수심)의 상호관계는 다산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에게서 인간의 본질은 바로 정신에 있고, 그것의 추구는 육신에 얽매어 있는 정신이 그러한 육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초월성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산의 정신(영지도심대체)과 육신(형구인심소체)으로서 그 자신의 언어와 개념을 쓰고 있다.기독교에서의 ‘사랑’은 자기에게서 먼 사람(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부터 베푸는 사랑이지만, 유학에서의 ‘인’(仁)은 가까운 사람(부모, 형제, 친지)부터 베푸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산은 효제자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유학적인 仁에서 성덕(成德)을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친소(親疎)에서 그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그는 철학적으로 서학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그는 신앙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천주교의 신앙인이라고 해서 유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는 확실한 유학자이다. 그는 본원유학에로 돌아가기를 원한 실천도덕의 제창자였고 동시에 근대지향의 실학자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용어와 개념을 확장하면서 주자학자들보다 더 실제적인 학문을 추구한 이상, 그가 비록 주자의 용어와 개념을 구사할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독자적인 한국철학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 2.

    A Pursuit of Reading Cultures and Cultural Ethics

    정성하 | 2004, 07() | pp.69~96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오늘날 가상공간의 문화를 제외하고 현대문화를 거론할 수 없다.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은 서로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록 가상공간이 현실 세계와는 엄밀히 구분된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가상공간의 문화는 그 자체의 독자적인 자리매김을 넘어 현실세계와의 ‘연계성(connection)’을 모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사이버 문화와 현실문화의 관계를 모색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문화적 공간의 창출이 가능해진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문화 현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문화윤리도 동시에 필요하다. 따라서 문화읽기가 정당했을 때 비로소 문화윤리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먼저 현실의 문화를 ‘생활세계’의 방법론으로, 또 사이버 문화에 대해서는 ‘기호론’의 방법론으로 문화읽기를 시도해 보았다. 그 결과 현실세계의 문화는 총체적인 삶의 양식이며 중층적 담론세계의 일상으로 이해되고, 사이버 문화는 하나의 기호의 세계가 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문화는 공통적으로 자기 담론세계의 문지방을 넘어 총체적인 세계이해를 지향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두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고 두 문화를 상호관계 맺으려는 근원적인 이유이다. 문화는 자기 경계를 지닌 제한된 세계임에는 분명하지만, 문화는 타자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상호작용하고 더 넓은 지평으로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의 문화와 사이버 문화의 서로 간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인식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윤리가 제시된다. 그것은 ‘문화적 사고’로 제시되었는데, 한마디로 그것은 문화에 대한 주체적인 윤리적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주체적인 문화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문화와 문화 간 만남을 통해 창출되는 문화도 새로운 담론공간, 향유의 공간으로 수용할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3.

    A Study onUniversity Culture from the perspective of Christian Ethics

    Yong-Hun Jo | 2004, 07() | pp.97~122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이 논문은 대학교육 및 기독교대학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대학문화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대학문화란 대학구성원의 대학 캠퍼스 안팎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대학의 전통, 교과과정 이외의 활동, 가치관 등도 포함된다.오늘의 대학문화는 과거 대학들과는 달리 학문적, 문화적, 도덕적 수월성은 물론 대학의 공동체성을 상실하였다. 여기에는 현실 사회주의 몰락, 소비주의 및 개인주의 가치관의 확산과 같은 대학 외적 원인만이 아니라 멀티버시티의 등장과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변화와 같은 대학 내적 원인들도 작용하고 있다.건강한 기독교적 대학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 대학 구성원들이 세속적인 대학문화의 변혁자라는 자기 이해가 필요하다. 세속적인 대학문화에 대한 적대자나 방관자가 아니라 ‘문화위임’을 받은 소명자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해야 한다.둘째, 지성적인 대학문화 창조에 관심해야 한다. 대학은 처음부터 진리를 탐구하고 학습하는 교수와 학생의 학문공동체였다. 학문공동체로서 대학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기풍을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학의 축제나 기타 활동들에서도 학술활동이 강화되어 대학의 학문적 수월성이 추구되어야 한다.셋째,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1970년대부터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형성된 저항문화는 서구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 속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감스럽게도, 기독교 학생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건강한 관계를 정립하지 못한채 대학문화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기독학생들이 대학문화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와 관계맺음이 요청된다.마지막으로, 공동체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공동체는 교육에 필수적인 조건일 뿐만아니라 대학문화 형성에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대학공동체 건설을 위해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에 대한 대학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요청된다.
  • 4.

    Christian Ethics on Ethical Management

    Moon, Si Young | 2004, 07() | pp.123~140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PDF
    윤리경영은 전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이 글은 윤리경영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있는 시기에 기독교윤리학적 관점에서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거시적 통찰의 틀에서 제안함으로써, 윤리경영의 올바른 방향이 설정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윤리경영이 표방하는 목표와 비전은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윤리경영을 통해 윤리를 지배하고 경영하려는 또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윤리경영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경영이론에 그쳐서는 안되며 학제간 연구를 통해 보다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특히 윤리경영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독교윤리가 말하는 책임의 개념을 연결점으로 상정하고, 경제적 또는 법적 책임의 영역에 머물 것이 아니라 통전적 의미의 도덕적 책임의 단계에로 고양되어 기업활동의 공동체적 요소 및 이웃사랑의 실천이라는 목적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책임의 구현이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 5.

    A Critical Study on Habermas' Theory of Religion

    Jongkyunn Park | 2004, 07() | pp.141~170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하버마스는 칸트 철학에 크게 신세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종교철학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칸트에 따르면, 사변적 이성이 신 존재를 확립시킬 수 없지만 신의 실재, 선한 의지에 대한 도덕적 신앙은 도덕 행위의 합리성과 동기적 기반을 담보하는데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나 칸트적 도덕신학은 하버마스의 탈 형이상학적 사유가 맞서려는 형이상학적 논증에 가깝다. 본 연구는 2장에서 하버마스의 종교론을 검토하고 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 의식이 종교적 사유의 총체성을 자연, 사회, 인간의 대상 영역으로 분화시킴에 따라, 종교는 자신의 특수한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으며, 시민들은 진리성, 도덕적 정당성, 그리고 진실성의 근대적 가치 영역의 명확한 타당성 주장에 앞서는 총체적 권위에 대해서는 일단 거부하려고 하기 때문에, 종교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3장에서는 하버마스의 종교론을 칸트적 관점과 대비시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칸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버마스처럼 합리성의 수호자인 철학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종교적 주장을 불가능한 것으로 간단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칸트는 철학은 외양적으로 이성의 한계에 순응하기를 거절하는 경험과 담론에 비판적으로 절제 있게 대응할 것을 말한다. 인간 이성의 특이한 운명, 즉 자신의 능력을 초월해서는 답할 수 없는 물음에 답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운명에 대해 칸트는 하버마스보다 적절하게 명시하고 있음을 말한다. 4장에서는 종교가 근대성과 함께 그것의 형이상학적구원론적 보증과 사회통합적 기능을 상실했다는 하버마스의 종교론에 동의한다 치더라도, 종교는 자신의 기준에 의해 현대인의 윤리적실존적 확신의 본질적인 저장고로서 자신의 위상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으며, 도덕적정치적 반성을 동기화하고 틀 짓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논의한다. 결국 종교적 담론은 윤리적 담론과 더불어, 다원주의적 민주사회에 정당한 기능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을 규명한다.
  • 6.

    The Theological Approach for the Diversity and Unity of Social Change

    Shin, Wonha | 2004, 07() | pp.171~206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PDF
    진보적 복음주의 그룹과 급진적 좌파 복음주의 그룹의 운동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오랜 신학적 전통에서 말미암았고 이들이 제시하는 사회변혁모델은 튼튼한 신학적 뿌리와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운동은 결코 어떤 한시적인 운동이나 모델이 아니라 앞으로도 그 신학 전통이 계속되는 한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계속될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튼튼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으면서도 대조적인 사회윤리 전략을 갖고 있는 두 그룹을 분석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고 특히 복음주의 윤리학의 건설적인 발전과 일치를 도모해 나가는 데에도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중심주의의 “예수의 정치”나 창조중심주의의 “창조의 질서”와 “자연 법”과 같은 법이나 규범으로 기독교인의 삶을 다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시면서 오늘도 신자 개인과 신자공동체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만물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깊이 조명하면, 두 신학적 사회 윤리학이 지니는 한계와 문제점을 어느 정도 보완하거나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7.

    The environmental Ethics of Deep_Green Theory and Christian Tradition

    Janghyung Lee | 2004, 07() | pp.207~222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환경에 관한 논의는 이제 ‘생태계’ 전반에 대한 우려와 생태학(ecology)이란 유기적, 광범위한 학문으로서 자리매김 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윤리학’적인 사고 자체의 '녹색화'(greening)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경문제에 관한 논의 및 해결책들은 감상적이며 단순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나치게 성장 지향적, 인간중심적인 세계관 및 태도를 지양하고, 생태계의 안정적 결속 및 내실 있는 녹색화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금도 새로운 윤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재무장, 헌신의 부활을 통해서 환경관리 윤리를 회복할 수 있다는 보수적 입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관점을 새로운 윤리이론에 근거하여 재편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으로 사료된다는 실반과 베네트의 주장은 상당한 도전을 주고 있다.기독교의 목자론적 전통은 지금까지 다분히 인간 중심적인 논변으로만 해석되어 있는데, 성서의 통전적 이해에 근거할 때 지배론적인 차원의 해석만이 아닌 자연에 대한 보전과 책임이 인간에게 부여되는 현대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윤리설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