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2021 KCI Impact Factor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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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598-317X / eISSN : 2713-8992

http://journal.kci.go.kr/imhc
목적과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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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1. 군사편찬연구소 본연의 임무인 군사사 연구 편찬    2. 전통시대~근현대 국내외 전쟁사 및 군사사 연구    3. 군사사의 연구영역 확장, 연구수준 향상   범위    1. 국내외 군사정책⋅제도⋅전사에 관한 역사학적 내용    2. 기타 군사지 성격에 적합한 한국의 국방 및 안보와 유관한 정치⋅외교⋅군사분야에 관한 내용    3. 1, 2호와 관련된 연구논문, 서평, 연구동향, 자료소개, 연구논문 번역 등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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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헌용 (군사편찬연구소)
인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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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 IF(2년) : 1.0
  • KCI IF(5년) : 0.61
  • 중심성지수(3년) : 1.251
  • 즉시성지수 : 0.3636

최근발행 : 2022, Vol., No.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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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및 유품의 사료적 가치 검토

    고종성 | 2022, (123) | pp.1~57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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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통해 수습한 전사자 유해와 유품을 6·25전쟁사 연구에 필요한 하나의 사료(史料)로써 활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6·25전쟁 중 적과 싸우다 사망한 전사자(戰死者)는 기존의 6·25전쟁사 연구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전사자 유해발굴과 맞물리면서 처음으로 그 성격을 조명받기 시작했다. 한국군은 전사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경험과 기록 체계가 부족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이하였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을 통해 공개된 정보는 6·25전쟁 전사자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이다. 경상북도 지역은 한국군이 소백산맥 일대의 지연전을 거쳐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에서 방어전을 수행하며 반격의 발판을 만들어낸 곳이다. 이러한 경북의 주요 전투지역에서 한국군 전사자 유해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본 결과 문경, 풍기, 안동, 의성, 영천, 칠곡(다부동), 영덕, 포항 등 기존 전투사에 기록된 격전지에서 상당수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포항과 영천 지역의 경우 기존에 알려졌던 전사자 규모보다 더 많은 수의 한국군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어 기존의 6·25전쟁 전투사를 재확인하는 새로운 근거로 삼을 수 있었다. 6·25전쟁 전사자의 유품은 말 그대로 전사자가 소지하고 있던 유류품을 뜻한다. 그 종류에 따라 화기류, 탄약류, 피복류, 군화류, 장구류, 개인유품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러한 유품들은 종류별로 특징을 분석하여 전사자의 국적, 즉 피아(彼我)식별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핵심적인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위와 같이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통해 파악한 전사자 유해와 유품에 대한 정보는 다양한 분석을 통해 사료적 활용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그동안 단순히 추모의 대상으로만 해석되어왔던 6·25전쟁 전사자에 대해 실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解放政局期 韓國光復軍豫備隊 硏究

    엄태용 | 2022, (123) | pp.59~132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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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임시정부 및 한국광복군을 지지하는 세력으로서 해방정국기에 국내에 창설, 운영되었던 ‘韓國光復軍豫備隊’의 성격에 관하여 밝히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광복군예비대는 1972년 서울시청 12호 창고내 금고에서 관련 유물이 대대적으로 발견됨에 따라 그 실체가 공개된 바 있으며 당시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당시 이 유물들의 상당수가 군 기관으로 이관되어 육군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중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군복 상하의 1벌과 군모, 완장 각 1점만이 광복군예비대 유물로 공개되어 왔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해방 전후의 관련 사료와 1972년 서울시청 금고 개방 당시 보도된 여러 언론기사 및 서울시 공보실에서 촬영된 사진자료와 함께 그동안 미공개 또는 그 성격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던 육군박물관 소장 광복군예비대 유물을 일괄적으로 정리 및 분석하였다. 이와 같은 작업을 바탕으로 광복군예비대의 창설과 활동내역, 조직구성 및 운영실태를 종합적으로 분석, 파악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한국광복군과의 연관성을 고찰하였다. 아울러 1972년 언론기사 및 사진에 제시된 발견 자료와 육군박물관에 현전하는 유물 목록의 비교를 통해 향후 광복군예비대 유물의 추가적인 발굴 및 조사를 위한 기초 자료로 삼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관련 사료 및 육군박물관 소장 유물의 분석을 통해 그동안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던 광복군예비대의 성격에 대하여 밝힌 것에 그 의의가 있다.
  • 1860∼70년대 조선의 砲架 제작과 메이지 일본 大砲 유입

    이재정 | 2022, (123) | pp.133~172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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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에서는 1860∼70년대 조선에서 새로 만든 砲架의 종류와 기술적 특징을 분석하고, 조선에서 포가를 제작하는 데 메이지 일본으로부터의 대포 유입이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병인양요 이후 조선은 서구의 무기에 경각심을 느끼고 양무서적을 연구해 신무기를 제작했다. 특히 포가 제작은 극적인 변화를 보였는데, 이를 보여주는 결과물이 운현궁 小砲 포가다. 그런데 운현궁 소포 포가를 양무서적을 참고해 만든 다른 포가와 비교하면, 운현궁 소포 포가에는 양무서적만으로 습득하기 어려운 서구 군사기술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에서 양무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구 무기를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실물을 접한 정황을 드러낸다. 이러한 정황은 메이지 일본의 외무성에서 작성한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무성의 문서에 따르면 1873년 조선에서는 메이지 일본에서 만든 서구식 대포인 4근 산포를 수입했다. 또한 초량 왜관에서는 4근 산포를 비치해 시연하고 이를 조선인들에게 공개했다. 이처럼 조선이 공식 교역과 왜관 시연을 통해 접한 4근 산포의 포가가 운현궁 소포 포가 제작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운현궁 소포 포가 제작의 배경으로는 신미양요 직후 대포 개선의 필요성을 실감한 조선의 절박함,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 무기 시장에서 구식 재고가 된 4근 산포를 일부 처분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운현궁 소포 포가는 병인양요 직후부터 1870년대까지 이어지는 조선의 신무기 제작 노력의 일면, 그리고 조선이 일본제 대포 유입을 통해 국제적 무기 유통망에 포섭되는 정황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