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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598-317X / eISSN : 2713-8992

2020 KCI Impact Factor : 0.66
목적과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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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1. 군사편찬연구소 본연의 임무인 군사사 연구 편찬    2. 전통시대~근현대 국내외 전쟁사 및 군사사 연구    3. 군사사의 연구영역 확장, 연구수준 향상   범위    1. 국내외 군사정책⋅제도⋅전사에 관한 역사학적 내용    2. 기타 군사지 성격에 적합한 한국의 국방 및 안보와 유관한 정치⋅외교⋅군사분야에 관한 내용    3. 1, 2호와 관련된 연구논문, 서평, 연구동향, 자료소개, 연구논문 번역 등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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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헌용 (군사편찬연구소)
인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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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 IF(2년) : 0.66
  • KCI IF(5년) : 0.6
  • 중심성지수(3년) : 0.971
  • 즉시성지수 : 0.2917

최근발행 : 2021, Vol., No.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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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 시기 ‘세균전’ 설 제기 과정과 내막

    전예목 | 2021, (120) | pp.1~41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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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의 목적은 북한, 중국, 소련이 미국에 대한 ‘세균전’ 설을 제기하였을 당시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의 내막을 한국, 중국, 영국, 소련, 미국에서 생산된 문서, 서신, 회고록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은 1951년부터 1952년까지 ‘세균전’ 설을 제기하는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다. 1951년 5월 8일 ‘세균전’ 혐의가 북한의 외무상인 박헌영의 성명을 통해 최초로 제기되었지만 이후 당분간의 후속 혐의 제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1952년 ‘세균전’ 혐의에 대한 대규모 선전이 있었고 북한, 중국, 소련의 협조 하에 진행되었다. 이들 국가의 지원을 받는 세 개의 조사단도 만들어졌다. 두 번째 부분은 공산 국가들이 제시하였던 ‘증거’가 조작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아본다. 이 조작은 중국인민지원군의 위생 부장이었던 우즈리의 회고록과 소비에트의 문서로 입증되었고 이 문서들은‘세균전’ 설의 기원이 중국이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증거의 조작은 ‘세균전’ 설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소련은 각국의 이익을 위해 ‘세균전’ 혐의를 이용하였다. 중국은 ‘세균전’ 설을 통해 소련으로부터 군사적, 의료적 지원을 받고자 하였다. 소련은 한국전쟁을 통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력을 감소시킴으로써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줄이고 동시에 미군의 군사 정보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전쟁을 지연시킬 수 있는 ‘세균전’ 설을 이용하였다.
  • 1954년 밴 플리트 사절단의 동아시아 냉전 구상과 한미관계의 구성

    이동원 | 2021, (120) | pp.43~78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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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휴전 이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동아시아 전략과 군사원조 규모를 재검토한다는 명목 하에 1954년 4월 밴 플리트 전(前) 미 제8군 사령관을 단장으로 하는 군사원조특별사절단을 동아시아에 파견했다. 밴 플리트 사절단은 한국, 대만, 일본, 필리핀을 직접 방문하고 군사원조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 문제를 아우르는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작성하여 9월 30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본고는 이때 제출된 밴 플리트 사절단 보고서의 분석을 통해 한국전쟁 휴전과 한미군사동맹 체결, 인도차이나반도 문제의 부상으로 점차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었던 동아시아에 대한 1954년 당시 미국의 냉전 구상을 이해하고, 이것이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밴 플리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미 육사 동기로 전역 이후에도 아이젠하워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특별사절단 단장을 맡았다. 밴 플리트는 한국전쟁기 미 제8군 사령관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승만 대통령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따라서 밴 플리트를 군사원조특별사절단장에 임명한 것은 미국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밴 플리트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도 맥아더와 유사하게 ‘아시아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냈고, 이 때문에 밴 플리트의 보고서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절충하는 내용을 담게 되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과의 관계 형성 과정과 그 상호적 성격을 이해하는 역사적 사례 연구가 될 것이다. 동시에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밴 플리트 장군이 전역 이후 동아시아의 군사원조 문제와 군사력 증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주월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 운용이 지닌 이상과 현실- 둑꼬 전투(1966)를 중심으로 -

    심호섭 | 2021, (120) | pp.79~130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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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의 실제 베트남 전쟁 수행에 비추어볼 때 중대전술기지의 운용은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려는 내부적 목표에 따른 평정작전의 수행이라는 한국군의 전략적 지침과 전쟁의 현실을 반영한 전술로 볼 수 있겠다. 비록 이러한 전술이 항상 원래의 이상대로 운용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군이 전략적 작전적 수준의 평정 작전에 초점을 두면서, 중대 기지는 한국군이 이 전쟁에서 적극적인 주체로 남아있는 한 한국군의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전술로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주월한국군은 중대전술기지를 운용함으로써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혼재된 베트남 전쟁에서의 성공을 추구했다. 그러나 방어라는 전술적 측면의 효용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두코 전투에서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기지 방어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평정작전에 집중할수록 자연스럽게 기지에의 방어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평정작전과 방어작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에 결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평정작전을 통한 최대한의 성과를 달성하기보다는, 기지 방어에 실패하지 않음으로써 정치 및 군사적으로 훨씬 민감하고 중요한 최소한의 희생을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인 측면에서 더욱 고려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평정과 방어라는 목표 모두의 달성이 중대전술기지 운용의 이상이었다면 실제 운용에서 방어가 중시된 것은 그 현실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이루어지고 전선이 소강상태가 되는 전쟁 후반부로 갈수록 심해져, 중대전술기지는 평정보다는 방어를 위한 요새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