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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2466-1759

2020 KCI Impact Factor : 0.36
목적과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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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학회는 2006.01.01에 등재지로 선정된 후 15년 간 등재학술지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2년, 3년 단위로 시행되는 재평가를 받으며 학술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본 학회의 대상이 되는 학문 분야는 소외 연구 영역이다. 국문시가를 비롯하여 한시까지 포함한 폭넓은 장르의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문학연구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가문화로의 외연 확장을 추구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지역과 시가문화 현상, 그에 따른 문화콘텐츠로까지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 한국 시가문화의 유산을 체계적으로 조사, 정리, 연구함으로써 한국전통문화의 실상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밝히며, 나아가 한국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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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전남대학교)
인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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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 IF(2년) : 0.36
  • KCI IF(5년) : 0.25
  • 중심성지수(3년) : 0.703
  • 즉시성지수 : 0.1429

최근발행 : 2021, Vol., No.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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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麗末 鮮初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과 그 의미

    조지형 | 2021, (48) | pp.5~31 | 피인용수 : 0
    초록 PDF
    본고는 여말 선초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여말 선초는 시조의 형성기로서 역사 전환기의 주체였던 신흥사대부들이 그 담당층이었다. 이 같은 국면에서 귀화인들 역시 시조를 창작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및 지향을 시조를 통해 드러내었다. 우리말에 서툴 수밖에 없던 귀화인들이 우리 고유의 노래 형식인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심양 출신으로 공민왕을 호종하며 귀화한 변안열은 역성혁명의 기로에서 <불굴가>를 지어 무장으로서의 굳건한 충절을 드러내었다. 위구르 출신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로 귀화한 설장수는 대명외교를 전담하는 사신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부침 속에서 <신언가>를 지어 언행 처신에 조심할 것을 경계하였다. 여진 출신으로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왕족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지란은 조선 건국 후 왕자의 난이 지속되는 국면에서 왕위의 향방과 조선의 운명에 대한 염려 섞인 걱정을 <축록가>를 통해 드러내었다. 이처럼 여말 선초에 귀화인을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의 인물들이 한시와 더불어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점은 여말 선초 사대부들의 문학장 안에서 시조가 중요한 문학적 행위의 일환으로 인식되었으며 작가로서 일종의 긍지를 가질 만한 성격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시조 창작의 개방성은 이미 형성기부터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 <고공가> 연작과 조선중기 노비농장의 우의적 형상

    김용철 | 2021, (48) | pp.33~76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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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1600년 전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이하 <고공가> 연작)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 속의 노비농장에 표현되어 있는 우의적 형상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방향은 1600년 전후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라는 가사 작품에서 노비농장과 당쟁을 형상화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미이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 바로 직후에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 조선후기라는 새로운 문학사의 시대를 열어젖힌 의의의 한 부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연구에서는 <고공가> 연작 속에 등장하는 주인과 고공들이 서로 작품에서 형상화한 내용을 주고받는 자리를 1600년 전후 당시 양반들이 노비를 부려 농사를 짓던 노비농장으로 보고 작품에 나타나는 고공을 노비로 보고 이를 여러가지 증거로 증명하려 노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1600년 당시 전쟁을 겪으면서 흐트러지고 여러모로 위기에 봉착한 노비농장을 제자리로 복구하는 것이 왕인 선조나 정승 이원익 같은 사람들의 최우선 과제였으며 이것을 나타낸 것이 바로 <고공가> 연작의 작품 내용임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노비 내지 노비농장을 형상화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고공가> 연작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내지 문명사적 의의가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작품 속 노비농장이 가리키는 작품 밖 현실세계인 당쟁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고공가> 연작이 단순하게 당쟁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당쟁을 없애려 노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을 살펴보고 이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 최경창(崔慶昌)의 시세계와 특성

    선지영 | 2021, (48) | pp.77~110 | 피인용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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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 생활했던 시기는 사대사화로 인한 붕당정치와 훈구파를 중심으로 화려한 시적 기교와 난삽한 수식으로 관료적 문학관이 배태되었고 신진 사림파를 중심으로는 기교를 반대하고 청징한 처사적(處士的) 문학의 정신세계를 추구하였으나, 이들은 도학적 자유로운 성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시기다. 본 논문에서는 최경창의 작품세계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생관 및 가치관을 알아보고자 하며, 이를 통해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풍격(風格)을 구하고자 한다. 풍격이란 작가의 인품이나 사상 등이 작품 속에 복합적으로 구체화 된 양상이기 때문에 최경창의 문학적 위상도 규명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세계는 주제에 따라 연모에 정한, 선경의 동경,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분류해 살펴보았다. 먼저 최경창의 작품 속에는 연정(戀情)을 대상으로 한 시가 상당히 있는데 이와같은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는 아마 풍부하고 섬세한 여성의 감정에 자신의 낭만적 감정을 표출하는데 부합되어 자연스럽게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계(仙界)를 동경하게 된 것은 당시 문단의 하나인 유선시(遊仙詩)를 모작(模作)하게 된 소단(騷壇)의 흐름과 관계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며, 현실의 좌절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월적 선계를 동경하고 찬미하였다고 본다. 최경창(崔慶昌)시의 풍격(風格)은 청신(淸新)한 풍격에 있다. 청(淸)은 대체로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산뜻하며 순수한 자연의 산천경개, 나아가 일상세계를 초월한 선경(仙境)이나 선취(仙趣)를 느낄 수 있는 맑고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한 것과 관련된 시의 풍격(風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에 쓰인 시어(詩語)는 일반적으로 2자의 용어법, 이미지 어휘의 사용, 악부시(樂府詩)계열 작품의 일상어 활용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