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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229-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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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Vol., No.36

  • 1.

    前漢 後期에 있어서 재이해석과 讖緯

    정일동 | 2012, (36) | pp.1~26 | number of Cited : 3
    Abstract PDF
    The theory of Ch’en-wei(讖緯) based on the idea that extraorinary phenomena(災異) have some connection with the unity of heaven and human beings. During the second half of Han-Dynasity there were many artist of divination who insist their political opinion by theory of the unity of heaven and human beings. Therefore, the prophecy what forecast the intention of heaven occupied much space. Artist of divination make use of several methods to decipher good and bad luck. And there are much divinatory sign on the same extraorinary phenomena, and can not give all person satisfaction. So it is essential that describe the seeds and results of extraorinary phenomena rationally. Accodingly the artist of divination secured authority by make the methods for example astronomical observation, and make use several sacreed books. On the other hand, it had been continud unstable social conditions caused monopoly of political authority by maternal relative and noticeable distinction between rich and poor at the close of Han-dynasity. And the fatalism of dynasity’s life time diffused widely. Then the artist of divination who make mention of dangerous of Han-dynasty has rised. Through such a process some figue advocated reconfirm the Mandate of Heaven(天命), and the books of Che’n-wei came into existense.
  • 2.

    Cultivating Literary Space ― Gardens in the fu of the Southern Dynasties ―

    Jeongsoo Shin | 2012, (36) | pp.27~53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본 논문은 남조시대 부 문학에서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한 문인 정원의 다양한 문학적 형상화를 고찰한다. 동한 이후로 부 문학은 서정화/개인화의 길을 걷는데 이러한 경향이 남조시대로 들어오면서 어떻게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되는가에 주안을 둔다. 구체적으로 당시 대표적인 작가들이었던 도연명, 사령운, 심약, 유신이 정원을 자아의 연장선으로 삼아서 자족적 은둔의 기쁨에서 역사에 대한 울분까지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전원시의 선구자로 불리는 도연명은 여산 아래 낙향하여 살면서 자신의 소박한 정원을 자족적 은둔의 공간으로 찬미하였다. 산수시의 선구자답게 사령운은 수도 남경에서 멀리 떨어진 회계현에 거주하면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불교적 시각에서 관조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정원을 세계의 중심으로 상정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던 사령운은 결국 유송 왕조의 눈 밖에 나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온건하고 검소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심약은 왕조가 두 번이나 바뀌었어도 관직에서 낙마한 적이 없었다. 심약의 이러한 능숙한 처세술과 자연미의 추구는 남경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산을 접하고 있는 자신의 주거 환경에서 간명하게 확인된다. 선진양한 시대에서 위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적 중심지는 줄곧 북방이었고 부 작가들은 서안과 낙양에 위치한 황실 정원의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경관묘사에 매달렸다. 유목민족의 공격으로 남방으로 쫓겨난 동진 시대부터 문인들은 남방의 독특한 자연미에 매료되면서 새로운 서정 공간을 추구하는데 이는 종래의 북방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새로운 경향이었다. 남조 문학은 이후 북조 및 당대 정원문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중국문학의 주류로 자리매김한다. 예를 들어서 후경의 난에 연루되어서 장안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남조 시인 유신의 작품 <소원부>를 읽어보면, 정원의 구조, 수목배치 등 세세한 묘사와 함께 문인으로서 역사비판의식이 담겨져 있다. 이는 6세기 말엽에 이미 남조 문인들의 문학이 북조 문단에 소개되었고 이후 당대 정원문학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남조 부 문학의 서정성이 후대 문학에 끼친 영향력은 차후에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3.

    당대 문인의 신라 인식 ― 당시 속에 나타난 신라 관련 시를 중심으로

    SUNG SEO | 2012, (36) | pp.55~78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PDF
    本文以現存新羅人與唐人寫的交往詩一百五十多首爲對像, 探討了唐代文人對新羅與新羅人的認識。 爲此, 首先按照唐人的視角, 把現存作品分爲兩大類, 導出了唐人的兩種不同的視角: 唐人把新羅人對待外國人的視角來寫詩,可以規定爲“外國人的視角”; 唐人與唐人之間寫詩提及新羅與新羅人,可以稱之爲“自國人之間的視角”。 這樣通過唐人的視角來再讀交往詩, 得到了唐人對新羅的主要觀點。唐人送新羅人回國的時候寫送別詩, 一般私人的身分來激賞不遠萬里來往的辛苦, 讚美勤奮努力的志氣, 祝願回國的路程的平安。 唐人送新羅使去新羅的時候寫送別詩, 使臣一般是高官, 詩人一般是使臣的後輩, 經常站在公人的立場, 表現出對新羅國家的觀念。 冊封弔問使的遠程是國家的公務, 因此唐人對羅唐關係附與了國家等級秩序, 看待新羅爲王化的對像。 這種國家等級認識,在“外國人的視角”裏表現得不太明顯,但是在“自國人之間的視角”裏時時出現。 從中我們可以發現唐人對新羅的雙重認識。
  • 4.

    泛道德思维与近代政治文明发展的冲突 — 对欧阳修政治言论的重新考察

    Choi, Myoung Shik | 2012, (36) | pp.79~97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범도덕적 사유 지배하의 정치관은 정치적 입장과 개인의 도덕적 자질을 일체화 하곤 한다. 이는 일종의 범주적 오류이자 정치가 근대화 되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류이다. 송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사유의 오류에 빠져 전제적이고, 주관적이며, 편파적이고, 비이성적인 정치문화를 형성하였다. 본 논문은 구양수를 예로 들어, 그가 일생 동안 몇 차례에 걸쳐 겪었던 정치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與高司諫書>, <論呂夷簡 札子>, <朋黨論> 등의 문장을 통해, 그 가운데 비사실적 편파성과 사상적 오류를 분석하고자 한다. 당시의 특수한 정치 문화적 환경과 구양수의 북송 정치계와 문단에서의 이중적인 중요한 위치로 인하여 논리적 오류와 비사실적 언어로 가득한 이러한 문장들은 비판과 규탄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문으로 전송되었다. 더욱이 구양수는 이로 인해 정치적 명성을 얻었고, 북송 중후기 정치의 좋지 않은 풍조를 야기시켰으며, 송대 정치 문화 발전의 방향의 변화를 초래했다.
  • 5.

    談唐宋“古文”之稱的緣起問題

    AN CHANSOON | 2012, (36) | pp.99~110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당송고문운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당송 고문운동의 태동원인, 내용, 계승발전, 영향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의 고문운동은 한유, 유종원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古文’이란 두 글자도 한대이후 경학에서 ‘今文’과 구별되는 문자명칭으로만 쓰이다가 한유⋅유종원 이후부터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문체명칭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청대의 증국번(曾國藩)이 ‘고문’이란 두 글자로 육조이래 ‘文筆’가운데 單行散體의 ‘筆’을 지칭한 것이 한유로부터 연유하였다고 한 후부터 중국 근현대의 학자 전기박(錢基博), 나연첨(羅聯添), 웅례회(熊禮匯) 등은 하나같이 증국번의 견해를 언급하며 그의 말에 힘을 실어왔다. 예를 들면 나연첨(羅聯添)같은 경우 증국번의 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한유 이전 및 동시대인의 문집을 다 뒤졌지만, 한유 이전 고문가들 중 ‘古文’이란 명칭의 용례를 발견하지 못했고 다만, ‘고문’이란 두 글자로 쓰기 전에 고문운동의 선구라 불리는 문중자(文中子)나 유면(柳冕)의 문장 가운데에 ‘古之文’ 혹은 ‘古人之文’이라 쓴 경우는 있어서 이를 한유의 ‘古文’이란 명칭의 전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한유의 생년(768년)보다도 58년 이른 시기(710년)에 초당 사학자 유지기에 의해 쓰여진 ≪사통(史通)≫에 ‘古文’이란 명칭이 몇 차례 보이고, 그 사전적 함의를 살펴보았을 때 가리키는 바가 한유 이후 고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유지기와 고문가들의 ‘고문’에 대한 취사(取捨) 태도에 차이가 있고, 유지기가 당시나 후대 영향력이 있는 사학가이었으므로 한유 등이 ≪사통(史通)≫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설령 읽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유지기가 사용한 명칭이 한유 등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古文’이 한 대 경학에서 문자의 명칭에서 문체의 명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유지기의 ‘古文’이 실제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와 영향력은 비록 한유의 ‘고문’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시기적으로 한유보다 앞서는 것은 분명하므로 이렇게 ‘고문’이란 명칭의 연원설의 한 문제로 제기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6.

    北宋 ‘園記’에 나타나는 文人들의 공간 인식 ― 李格非의 ≪洛陽名園記≫를 중심으로 ―

    Lee, Jae Hoon | Kim, Mira | 2012, (36) | pp.111~136 | number of Cited : 3
    Abstract PDF
    历史上, 宋代隨著經濟和文化的發達, 與建築物有關的“記文”創作應運而生。 現在從美學的觀點與哲學的觀點來, 對與建築物有關的“記文”繼續進行研究。 不過對宋代作品而言, 只提到幾個作家的幾篇文章而已, 大都是以明清代的作品爲主進行研究的。 對宋代“園記”而言, 大部分只不過在造景學或建築學上與園林造成連貫研究而已, 可以說其研究還有欠妥之處。 李格非的≪洛陽名園記≫一直有代表北宋時期“園記”的評價。 可是文學上, 只重視<記≪洛陽名園記≫後序>, 和其作家李格非是宋代有名的女詞人“李清照”的父親這一點而已, 文章裏其他作品都被看做局外的, 所以文學方面的研究不太多。正式的園記創作是隨著北宋時期文人園林的登場後應運而生的。 本人著眼於此點, 首先對其創作有關的文人的空間認識方法 ― “登高”進行考察。 而後以≪洛陽名園記≫爲中心, 考察了當時文人對園林的認識如何。 在此篇文章當中, 可以發現北宋時期文人的空間認識就有三種:一、 在城市裏消極地追求“自然合一”的空間。 二、 爲“與民同樂”的空間。 三、 爲觀察興亡盛衰而警戒的空間。可是其實≪洛陽名園記≫本身篇幅較短, 而且題材限於“洛陽”的園林空間, 於是有所難以確定文人的空間認識。 所以希望以後進行擴大範圍, 还从历時觀點來有體系地研究考察北宋文人的“園記”。
  • 7.

    明末淸初 遺民의 기억, 서사, 그리고 ≪女範捷錄≫

    KimJiSeon | 2012, (36) | pp.137~160 | number of Cited : 3
    Abstract PDF
    ≪女誡≫、 ≪女論語≫、 ≪內訓≫、 ≪女範捷錄≫的總稱, ≪女四書≫在明末淸初被學者王相匯編合刊。 儘管有些學者認爲≪女四書≫幷沒有超越中國古代其他女訓著作, 仍然是以封建倫理道德爲中心, 但由于是由女性親自撰著, 在一定程度上反映了古代婦女的思想意識和看待社會的獨特視覺。≪女範捷錄≫是明末淸初儒者王相之母劉氏所作。 全書分十一篇, 卽<統論篇>、<后德篇>、<母儀篇>、<孝行篇>、<貞烈篇>、<忠義篇>、<慈愛篇>、<秉禮篇>、<智慧篇>、<勤儉篇>、<才德篇>。 該書以儒學的綱常之理作爲“正內之儀”, 除一般地闡述女敎原理外, 特別大量地引述了歷代貞女、 孝女、 賢妻、 良母的封建典範, 也列擧了一些烈女和孝女、 才女人物。 封建禮教的一些頑固、 保守的觀念, 集大成於≪女範捷錄≫, 幷且竭力宣揚貞節觀, 封建禮教發展到了一個新的“高度”。 此外, 還有不少人“著書立說”, 研究如何端肅婦道, 壓迫與束縛女子。 而≪女範捷錄≫影射了亡國之際對于“節”與“忠”的思考, 我們可以通過≪女範捷錄≫了解明末淸初女性的强迫心理和時代思惟。
  • 8.

    중국 당대문학 속의 에로티즘 ― ‘身體寫作’을 중심으로 ―

    Ko Jum Bok | 2012, (36) | pp.161~183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從20世紀80年代開始, 身體逐漸成爲熱門話題。 隨後的90年代更是一個身體覺醒的時代, 現實生活中, 人們開始關照身體的種種感性需要和當下體驗。 與此相關, 文學的感性和特點逐漸得到作家們的重視。 身體寫作就是用身體來寫作, 寫身體, 寫女性自己的身體, 通過寫身體來訴說女性的幻想和慾望,是女性對自己被抑壓到無意識領域中的各種經驗的直率表達。 可是在消費社會裏面, 身體受到消費社會之各種各樣的制約。 比方說, 政治話權, 經濟條件, 社會道德等等。 身體在消費社會中的主導身分是通過消費來確定的, 當然, 這只是幻覺而已。 人們以爲只有做一個消費者, 我們才能擺脫被別人消費的命運, 而眞實的情況卻是我們通過消費他人也消費了自己。身體爲了實現自己作爲被消費物的角色,它自己首先必須是一個消費者。在消費社會裏, 一切有形的無形的物都在被消費之中,一切都因爲被消費而垃圾化。這樣的現像比較容易找到棉棉,衛慧等等的90年代後出現的女性作家的作品裏面。在她們看來身體只能由快感來書寫, 身體本文只能作爲快感的遺迹而存在。 她們的小說對肉慾的沈迷,不斷地自我消費的深度闡釋的可能。 在純粹的快感原則的驅動下她們感受生命的飛翔, 靈感的噴涌, 這就是她們認識世界和進入世界的唯一方式。本文着眼於這種身體寫作的書寫戰略來分析了在消費社會裏的文學和個人之存在方式和危險。
  • 9.

    허탁운 ≪만고강하≫ 간체 중국판의 삭제와 변경

    Lee inho | 2012, (36) | pp.185~216 | number of Cited : 0
    Abstract PDF
    許倬雲, 1930年生, 江蘇無錫人。 1948年隨家人到台灣。 1953年畢業於台灣大學歷史學系, 1962年獲美國芝加哥大學博士學位。 曾任台北“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研究員, 台灣大學歷史系主任。 1970年任美國匹玆堡大學史學系及社會系合聘教授, 其間多次受聘為香港中文大學、 美國夏威夷大學、 杜克大學、 香港科技大學等校講座教授。 四十多年間許氏已有≪中國古代社會史論≫、 ≪西周史≫、 ≪漢代農業≫、 ≪求古編≫等三十餘部中英文專著問世, 竝發表學術論文一百多篇, 可謂著作等身, 享譽海內外。 晩年窮三年之功撰成≪萬古江河≫, 不談帝王將相, 只談百姓故事; 不講朝代更迭、 國家興亡以及典章制度、 嘉言懿行, 只講疆域伸縮、 族群互動、 經濟形態、 內外交通, 同時於日常文化、 人群心態及社會思想多所注意, 尤其注意一般小民百姓的生活起居及心靈關懷。 ≪萬古江河≫以江河流域的擴大比喻文化的進展, 從中國文化發軔的地理空間開始談起, 論及史前時期中國文化的多元發展與分合, 然後細述中國文化在不斷的衝突與融合中, 一步步擴大進入世界體系的歷程。 於是在許氏筆下, 中國依次呈現爲中原的中國、 中國的中國、 東亞的中國、 亞洲的中國及世界的中國。 如此展延, 正如長江黃河, 發源于靑海高山, 流歸于大海, 遂與天下衆流無所區別。 書題“萬古江河”, 命意蓋在此。 ≪萬古江河≫首先在臺灣2006年由≪漢聲出版公司≫發行, 好評如潮, 立卽成為暢銷書, 隨後大陸簡體版由≪上海文藝出版社≫印行, 海峽兩岸中國人幾乎同時能夠讀到名家對中國文化發展提出的創新詮釋。 遺憾的是大陸簡體版幷非原貌, 已對繁體版原本加以刪改。 據筆者比勘, 發現大陸簡體版刪節39處, 改動16處, 改正誤字2處, 其他2處, 少則一兩個字乃至兩三句, 多則一兩個段落, 甚至於一兩頁, 有時文意殘缺, 令人不忍卒讀。 何故致此? 中華人民共和國憲法第三十五條明文規定“言論出版自由”, 但實際上中華人民共和國目前還沒有一部≪新聞法≫和≪出版法≫, 槪由國務院直屬“新聞出版總署”嚴密把關, 遂使中國大小出版社奉命, 按照“出版管理條例”事先對臺灣書刊進行審閱, 凡是可能惹是生非的內容一律加以刪節或改動。 ≪萬古江河≫什麽內容遭刪節或改動? 歸納言之, 第一、 可能聯想或鼓吹臺灣獨立的內容; 第二、 可能惹起民族間仇恨的內容; 第三、 不利於毛澤東及中國共産黨的內容; 第四、 蔣介石及中國國民黨的貢獻。 大陸簡體版面對第一和第三的內容尤其反應過敏, 不顧文意連貫, 漠視著者本意, 大加刪節, 亦可以想見中國政府的苦衷何在。 近來名家大作不乏海峽兩岸先後印行, 韓國的硏究人員比較愛購大陸簡體版, 此無他, 一因購買方便, 二因價格也低廉。 惟內容涉及上記四端者, 大陸簡體版未必原封不動, 所謂“閹割板本”儼然存在, 吾人選購時不得不留意焉。 與此同時, 從上所述亦可知學術在中國仍然受到政治的影響, 因此, 當吾人參考中國書刊之際, 應該事先充分考慮到政治幹擾學術的問題。
  • 10.

    雲南省 彝族 自治縣의 比較分析을 통한 少數民族의 實態 硏究

    Kim Dug-Sam | 2012, (36) | pp.217~239 | number of Cited : 5
    Abstract PDF
    本研究意在通過中國雲南省彝族自治縣比較分析, 研究少數民族情況。 按照統計數字上的結果, 可以推出物質文化和非物質文化, 彝族文化和漢族文化, 傳統和現代的變化。 爲此, 以政治方面, 經濟方面, 社會方面比較分析雲南省15個彝族自治縣。 在政治方面的比較分析上可以看出少數民族政策。 在經濟方面上了解彝族自治縣的情況, 掌握經濟條件和民族占有率, 漢族的移動等。 在社會方面上推測彝族自治縣的變化和教育, 醫療, TV覆蓋率, 旅遊和交通等之關系。 通過本研究可以了解中國雲南省彝族自治縣的情況和變化。 此外, 按照本研究的結果上可以推測少數民族文化的變化。
  • 11.

    타이완의 다언어현상과 언어정책

    Jeong Jiesu | Choi, Kyubal | 2012, (36) | pp.241~269 | number of Cited : 3
    Abstract PDF
    臺灣是一個由多數族群構成的多元文化社會。 目前在臺灣使用的語言除國語(華語)外還有閩南語、 客家語等漢語方言以及十多種南島語言, 大部分臺灣人使用雙語。 本文先考查臺灣多元文化的歷史背景和多語言社會的形成過程, 以期了解臺灣多元文化的特殊性, 并探討歷代政府語言政策的主要內容和變化方向, 最後分析了現任政府語言政策的特性。 國民黨政府來臺後實行了一連串的“中國化”政策, 推行獨尊國語政策, 壓制方言和原住民語言。 但隨著“本土化運動“的推展, 語言政策也隨之變化, 逐漸重視本土語言。 特別是在民進黨執政後, 這種變化具體反映在教育課程上, 中小學教育課程中還包括本土語言教育。
  • 12.

    정치적 시장의 관점에서 본 중국의 선거제도

    이 동 영 | 2012, (36) | pp.271~298 | number of Cited : 1
    Abstract PDF
    本論文以探索現階段中國的政治環境下選舉所產生的作用和其能夠爲中國民主化所做出貢獻的可能性爲主要研究目的。爲了達成以上這一目的, 本論文首先對村民委員會幹部選舉和基層人民代表大會代表選舉的發展及變化過程進行了展開式的探討。 在此之後, 對以上兩類選舉作爲政治的市場能否發揮其本身的職能進行了研究。 基於此, 針對各個選舉制度的實施過程中的候選人決出過程、候選人和選民之間的相互作用過程、候選人間的競爭過程以及投票過程進行了探討。通過對以上內容的探討研究我們認爲中國國內的選舉具有以下幾點特徵:首先,在中國, 選舉可以被視爲是一條制度性的捷徑,其對於由於政治、經濟、社會等環境性因素的變化而導致的衝突和糾紛的解決是有作用的。 選舉也可以作爲一種主要的手段不僅在政治安定方面, 而且還可以在實現國家的和諧性方面加以利用, 並發揮作用; 其次, 在中國, 選舉, 特別是直接選舉的適用範圍正漸進地由基層向更高一層的機關逐漸擴大; 再次, 現在選舉已被看作是參與政治的一項重要的手段, 與過去相比已經實現了相當程度的廣泛的基層參與; 最後, 通過與過去的選舉結果我們可以看出, 黨-國家的統治能力也相對地有所弱化。據此,本文得出的結論是在中國的選舉雖然其本身具有制度性的制約和限制,但可以預測其對中國的民主化將會產生積極的影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