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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975-6852

2020 KCI Impact Factor : 0.0
목적과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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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物硏究』는 동아시아지역 문물 연구자를 육성하고 연구를 보조하며 그 학문적 성과를 일반일에게 공개하여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계몽하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 동아문화재단 산하 동아시아문물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정기학술지로, 1997년 1월에 창간되어 총 38호(2021년 1월 기준)를 발간하였다. 본 학술지는 문헌과 물질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의 산물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를 지향한다. 역사학을 포괄적 범주로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융합 인문학이라 할 수 있는 한국 및 동아시아 지역의 고고학, 미술사, 인류학, 박물관학 등의 제 분야 연구를 포괄한다. ‘문물’이란 문화의 산물. 곧 정치, 경제, 종교, 예술, 법률 따위의 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통틀어 이르는 용어로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문화재와 확연히 구분됨을 명시한다. 일반적인 고고학이나 미술사, 역사학 연구의 학문적 단절 및 한계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고고학, 미술사, 인류학, 역사 분야의 전문적인 논고들을 통해 유사 분야 학술지와의 차별성이 확보된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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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운 (동의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인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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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 IF(2년) : 0.0
  • KCI IF(5년) : 0.0
  • 중심성지수(3년) : 0.607
  • 즉시성지수 : 0.0

최근발행 : 2020, Vol.38, No.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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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지의 도왜와 그 후손들

    박재용 | 2020, 38(38) | pp.1~19 | 피인용수 : 0
    초록
    昆支는 5세기 후반 왜국으로 장기간 파견되었다. 이는 곤지의 백제 내 세력을 억제하고 자신의 자식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기 위한 개로왕의 조치였다. 곤지는 河內飛鳥 지역에 정착한 후 그곳의 백제계 이주민들을 보호·결속시키면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였다. 곤지는 왜국에 체재하면서 후손을 형성하게 되고, 백제 내 세력과도 관계를 맺으면서 국내외적으로 지지기반을 형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웅진초기 대내외적 혼란한 속에서도 아들인 동성왕이 즉위할 수 있었다. 왜국 내에서는 飛鳥戶造氏라는 후예씨족이 곤지의 명맥을 잇게 된다. 비조호조씨는 河內國 安宿郡에 기반을 두고 大和왕권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이후 奈良‧平安시대에 이르러서는 율령관인들을 다수 배출하는데,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백제 곤지의 후손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곤지의 후손들은 고대 일본에 백제색이 농후한 문화를 형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가야 왕성의 공간구조와 경관

    최경규 | 2020, 38(38) | pp.21~57 | 피인용수 : 0
    초록
    가야제국에서 왕 또는 지배자가 거주한 성이 조사된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다라국을 대상으로 주변 유적 등 고고학적 양상을 정리하여 가야왕성으로서의 구조적 특징과 경관에 대해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가야 왕성의 공간구조와 경관에 대해 검토해 본 결과, 신라와 백제와 같이 도시구획을 기본으로 하는 도로와 사찰은 조성되지 않았지만, 고대 도성체제의 구성요소인 왕궁, 취락, 왕묘, 제의시설, 생산시설 등은 두루 갖추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왕궁과 왕묘역이 1km 이내 상당히 지근거리에 인접하며 상호 가시권에 포함되는 경관은 가야 왕성만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로 이해된다. 가야는 왕궁을 보호하는 위곽시설인 토성을 축조하면서 왕성의 공간구조를 확립해 나가는데, 특히 중요시설을 중심지로 배치하고 특수생산시설 등을 외곽으로 이동시키는 양상은 도성체제의 인식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금관가야의 경우 토성 성립 이후 400년 고구려 남정과 신라의 서진 등으로 인해 도성체제로의 발전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며 후기가야의 대국이었던 대가야와 아라가야 또한 5세기 후반 토성성립에서 멸망기까지 도성 개발에 진력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가야는 미완의 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을 바꿔 생각하면 한반도 고대국가의 도성체제로의 이행기의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가야 왕성으로 볼 수 있다.
  • 고분 축조기법과 매장의례를 통해 본 소가야권 고분군 축조집단의 성격 - 대형 봉토분과 분구묘를 중심으로 -

    정인태 | 2020, 38(38) | pp.59~92 | 피인용수 : 0
    초록
    소가야권의 3대 고분군인 산청 중촌리고분군, 합천 삼가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은 각각의 특징을 가지며 독특한 고분문화를 전개해 간다. 산청 중촌리고분군은 목곽묘 단계에서 대가야계 위세품인 단봉문환두대도가 출토되고, 봉토분 축조단계에서는 제방상성토기법, 호석, 다량의 석재 성토재 등 가야권에서 가장 먼저 봉토분이 축조되는 대가야 고분 축조기법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삼가고분군 묘제와 봉토 축조, 대가야 석실 축조기법의 관련 아래 오랜 기간 고분군을 조영해왔으며, 남강 수계를 통한 대가야와 소가야의 가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합천 삼가고분군은 소가야권 고분군 중 가장 오랜기간 가장 많은 봉토분이 축조된 고분군이다. 다곽식의 구조로 봉토를 되파서 일정한 패턴으로 배치하거나 수평․수직으로 증축하여 봉토를 확대해 나가는 독특한 축조방식을 이용하였다. 고분 배치의 매장규범은 송학동고분군과 내산리고분군에 영향을 주었고, 봉토 증축 방식은 합천 창리고분군과 대가야 최고 지배집단 묘역인 지산동고분군의 하위 고분 축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봉토 축조기법에서는 대구획석축, 목가구구조 등 아라가야 고분 축조기법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고성 송학동고분군은 가장 외래요소가 강한 곳으로 분구묘(통영 남평리 10호분), 배장묘 배치(삼가고분군), 잠형주구․1B호분 석실(왜), 표형분(신라), 마구․토기(대가야․왜․신라)의 영향이 확인된다. 축조기법의 특징으로는 점토블럭을 성토재와 구획재로 널리 사용하였으며 묘역정지 시 전면에 걸쳐 점질토를 깔거나 선대 무덤을 파괴하지 않고 봉토를 축조하는 매장풍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