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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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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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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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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1_87</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1.003</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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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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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oup>
			<article-title>우울과 죽음의 센티멘털리즘<xref ref-type="fn" rid="fn01">*</xref></article-title>
			<subtitle>-곽지균의 멜로드라마 영화와 뉴 센티멘털리즘, 
그리고 &#x003C;두 여자의 집&#x003E;<xref ref-type="fn" rid="fn02">**</xref></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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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title>Sentimentalism of Melancholia and Death</trans-title>
				<trans-subtitle>- Kwak Ji-kyun’s Melodrama Films, New Sentimentalism, and <italic>The Home of Two Women</italic></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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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name-style="eastern"><surname>이</surname><given-names>윤종</given-names></name>
				<name name-style="eastern" xml:lang="en"><surname>Lee</surname><given-names>Yun-Jong</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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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ref ref-type="aff" rid="aff01">***</xref>
			<aff id="aff01"><label>***</label>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aff><role>HK교수</role>
			<aff xml:lang="en">Wonkwang University</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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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otes>
		<fn id="fn01"><label>*</label><p>이 논문은 2017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사업임(NRF-2017S1A6A3A02079082).</p></fn>
		<fn id="fn02"><label>**</label><p>본고는 본 연구자의 2012년 박사학위논문인 <italic>Cinema of Retreat: Examining South Korean Erotic Films of the 1980s</italic> 중에서 3장의 2절을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여 완성된 것임을 밝혀둔다. 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에 대한 학위논문을 쓰는 동안 1980년대 중후반에 데뷔한 곽지균의 영화를 ‘에로영화’로 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막대한 고민이 있었다. 곽지균이 1980년대 중후반에 연출한 영화들이 당시 한국 대중영화의 제작 트렌드에 따라 에로티시즘을 표출한 다른 에로영화들과 같은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이긴 했지만, 기존의 에로틱 멜로드라마 영화, 즉 다른 에로영화들의 ‘신파성’과는 정서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학위를 받고 나서도 곽지균의 작품들을 에로영화라는 틀에 묶을 수 있을지에 대한 오랜 고민이 있었다. 현재는 그의 영화를 에로영화에 포함시키기보다는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로 따로 묶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본고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이러한 결론에 대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자의 학위논문에 대한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Yun-Jong Lee, <italic>Cinema of Retreat: Examining South Korean Erotic Films of the 1980s</italic>, Ph.D. diss. Irvine: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2012.</p></fn>
</author-notes>
		<pub-date pub-type="ppub">
			<day>28</day>
			<month>2</month>
			<year>2019</year>
		</pub-date>
		<volume>25</volume>
		<issue>1</issue>
		<fpage>87</fpage>
		<lpage>122</lpage>
		<history>
			<date date-type="received">
				<day>10</day>
				<month>1</month>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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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date-type="rev-r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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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date-type="accepted">
				<day>14</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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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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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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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itle>국문초록</title>
<p>본고는 <xref ref-type="bibr" rid="B002">곽지균 감독의 &#x003C;두 여자의 집&#x003E;(1987)</xref>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우울과 죽음의 정서가 1980년대 후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제작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곽지균은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한국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의 기수라 할 만한 대표적 멜로드라마 작가이다.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는 이전까지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를 완전히 지배했던 신파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한국영화의 과잉된 감정으로부터 벗어난 세련된 멜로드라마를 지향한다. 이러한 감정적 정교함은 죽음을 통한 이별로 인해 생기는 영화 속 인물들의 상실감이나 우울과 직결된다. <xref ref-type="bibr" rid="B002">곽지균의 &#x003C;두 여자의 집&#x003E;</xref>은 이러한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의 죽음 충동과 상실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의 내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본고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두 여자의 집&#x003E;</xref>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곽지균의 영화세계와 뉴 센티멘털리즘의 영화사적 위상을 재고해 볼 것이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This paper examines how the melancholia and death drive foregrounded in Kwak Ji-kyun’s films have changed the affect and production trend of South Korean melodrama films of the late 1980s and thereafter. It particularly analyzes Kwak’s <italic>The Home of Two Women</italic> (1987) as his exemplary melodrama film. Kwak is not only an <italic>auteur</italic> filmmaker of the 1980s and 1990s but was also a herald of South Korean New Sentimentalist films back then. The New Sentimentalist filmmakers have aspired to sophisticate the South Korean melodrama film not only by de-sentimentalizing it from the <italic>shimpa</italic> quality but also separating it from excessive emotion of <italic>shimpa</italic> that had long dominated the national cinema. This affective sophistication is directly linked to the sense of loss and melancholia/depression of the characters in the film caused by the death of one’s beloved. This New Sentimentalist affect is best represented in Kwak’s <italic>The Home of Two Women</italic> through its depiction of the internal conflicts of artists struggling to artistically sublimate the death drive and sense of loss. By textually analyzing <italic>The Home of Two Women</italic>, this paper not only reevaluates Kwak’s film style but also reposition the topology of the New Sentimentalists in Korean film history.</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멜로드라마</kwd>
			<kwd>곽지균</kwd>
			<kwd>두 여자의 집</kwd>
			<kwd>뉴 센티멘털리즘</kwd>
			<kwd>신파</kwd>
			<kwd>죽음</kwd>
			<kwd>우울</kwd>
			<kwd>죽음충동</kwd>
			<kwd>자살</kwd>
			<kwd>상실</kwd>
			<kwd>젠더</kwd>
			<kwd>1980년대</kwd>
			<kwd>한국영화사</kwd>
			<kwd>정동</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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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eywords</title>
			<kwd>melodrama</kwd>
			<kwd>Kwak Ji-kyun</kwd>
			<kwd>The Home of Two Women</kwd>
			<kwd>New Sentimentalism</kwd>
			<kwd>shimpa</kwd>
			<kwd>death</kwd>
			<kwd>melancholia</kwd>
			<kwd>death drive</kwd>
			<kwd>suicide</kwd>
			<kwd>loss</kwd>
			<kwd>gender</kwd>
			<kwd>the 1980s</kwd>
			<kwd>Koean film history</kwd>
			<kwd>affect</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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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sec-type="intro">
<title>1. 서론</title>
<p>곽지균 감독은 2010년 5월 25일 만 55세를 일기로 생을 자살로 마감했다. 그는 <xref ref-type="bibr" rid="B001">1986년의 연출 데뷔작인 &#x003C;겨울 나그네&#x003E;</xref>를 위시하여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그 후로도 오랫동안&#x003E;(1989)</xref>,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젊은 날의 초상&#x003E;(1990)</xref>, <xref ref-type="bibr" rid="B009">&#x003C;청춘&#x003E;(2000)</xref>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손에 꼽히는 멜로영화”<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를 연출하던 충무로의 베테랑 감독이었다. 곽지균의 부고를 전하던 당시의 언론들은 일제히 그가 평소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가 연탄가스를 피워 자살했다고 보도했는데, 그의 노트북 컴퓨터에는 “일이 없어 힘들고 괴롭다”는 글이 남아있었다고 한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한 때 인정받던 감독이었으나 영화 제작현장과 관객취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설 자리를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장년의 미혼 남성 예술가의 자살은 충무로의 비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울증뿐 아니라 곽지균의 전작에 걸쳐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환기하면, 그의 자살은 아주 뜻밖의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그의 초기 영화인 두 번째 연출작,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두 여자의 집&#x003E;(1987)</xref>은 곽지균 본인의 자살을 예고하듯 남성 예술가의 자살과 예술적 광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고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두 여자의 집&#x003E;</xref>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우울과 고통, 죽음의 정서가 1980년대 후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제작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p>
<p>한국영화는 그 기원 연도로 추정되는 1919년부터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현재까지<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여성용 신파 멜로드라마와 남성용 액션영화로 크게 양분화되어 제작되어온 경향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미권의 영화학계에서도 눈물을 앞세우는 멜로드라마 영화를 여성 관객을 위한 장르, 즉 ‘여성영화’로 보는 관점이 1980년대에 주류를 형성한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17-18세기 유럽 각국에서 연극 장르로 형성되기 시작한 멜로드라마는 음악 연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배우의 액션과 관객의 감정을 ‘과잉(excess)’된 상태로 끌어올리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따라서 장르명도 ‘음악’을 뜻하는 그리스어 멜로스(melos)와 드라마(drama)의 혼합어인 멜로드라마로 명명되었으며, 음악으로 인한 감정의 ‘과잉’과 더불어 그 결과물인 ‘눈물’이 그 핵심요소가 되었다. 감정의 고조로 인해 촉발되는 신체적 작용인 눈물이나 감각적 센세이션은 연극뿐 아니라 18-19세기 이후에는 소설과 산문문학에, 20세기 이후에는 영화와 텔레비전, 게임 등의 다양한 미디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따라서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멜로드라마의 장르과 국적을 초월한 유연한 확장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영화의 한 ‘장르’라기보다 ‘양식(mode/modality)’으로 보는 수정주의적 시각이 자리를 잡았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이러한 시각은 남성관객을 대상으로 한 액션영화도 그 정서적 차원에서 볼 때 멜로드라마적이며, 멜로드라마는 근대와 함께 등장해 발전해온, 근대성을 발현하는 예술 양식이라는 데에까지 논의가 전개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 따라서 미국의 한국학자인 낸시 에이블먼은 개발독재 시대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 특히 계층 이동의 변화를 ‘멜로드라마적’이라고 일컫기도 했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 에이블먼이 1980-90년대 한국의 멜로드라마적인 외적 변화를 자신의 인류학적 접근방식(인터뷰)으로 풀어낸다면, 곽지균의 1980-90년대 영화들은 개발독재를 통과해온 한국인들이 느끼는 트라우마와 방황, 외로움 등을 내면적 멜로드라마로 시각화하고 있다.</p>
<p>앞서 언급했듯, 우울과 죽음은 곽지균 영화의 기저를 관통하는 테마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영화학자 김수남은 곽지균 영화의 “감성적이며 여성적 취향이 농후한 멜로드라마적 성격”으로 인해 그를 “비현실적이며 감상적인 영화작가로 취급하는 센티멘털리즘”이 그의 영화세계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며, 사실 그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진지하게 활용하는 작가로서 연구될 필요가 있음을 설파한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김수남은 또한 곽지균이 ‘죽음의 극적 효과’를 활용해 오랫동안 한국영화를 지배하던 신파성으로부터 벗어나 장르로서의 멜로드라마를 쇄신한 것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그러나 작가로서의 곽지균이나 그의 멜로드라마 영화 텍스트에 대한 연구는 이상하게도 김수남의 단행본에서 짤막하게 언급되는 부분과 그의 논문 한 편이 전부라 할 정도로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에 따라 본고는 김수남이 언급하는 죽음과 우울에 기반한 곽지균표 멜로드라마와 그의 ‘센티멘털리즘’을 영화 평론가 허창이 언급했던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한국영화의 ‘뉴 센티멘털리즘’ 경향에 대한 단서로 삼아 기초 연구를 시도해보려 한다.</p>
<p>본론에서 상술하겠지만, 제국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멜로드라마적 신파성으로부터의 절연은 곽지균을 한국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의 기수로 호명되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뉴 센티멘털리즘’이라는 용어가 학계에 정착된 용어도 아니고 연구가 전혀 진행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본 연구는 그 단초를 제공하는 선에서 그치는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야 할 것 같다. 본고는 지면적 제한과 본 연구자의 연구역량의 한계로 인해 1980년대 후반에 발아한 한국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앞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 기초 연구를 정초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곽지균의 삶과 그의 멜로드라마 영화의 성격, 그리고 그의 ‘뉴 센티멘털리즘’이 최초로 발아되었다고 평가되는 작품 중의 한 편인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을 소개할 것이다. 이에 따라 다음 장에서는 우선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특징을 간략히 개괄한 후, 그 다음 장에서 뉴 센티멘털리즘과 곽지균의 멜로드라마 영화에 대한 논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곽지균의 대표적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라 할 만한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을 중심으로 뉴 센티멘털리즘의 멜로드라마적 정동, 즉 우울의 정서와 죽음에의 층동을 분석할 것이다.</p>
</sec>
<sec id="sec002">
<title>2. 19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신파성</title>
<p>본 연구에서는 한국에서 영화 용어로서의 멜로드라마가 ‘눈물’이나 ‘감정’, ‘신파’보다 ‘로맨스’와 더 큰 친연성을 형성하기 시작한 단초로서, 곽지균의 멜로드라마 영화들과 1980년대 후반 곽지균을 위시한 ‘뉴 센티멘털리즘’ 감독들의 등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들 속에서 신파적 비극성은 대가족 구조의 가족제도 하에서의 젠더적 폐단, 즉 혼외정사나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괴리로 인한 연애문제의 갈등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가족 멜로드라마’라고도 정의될 수 있을 법한 가족 제도 안에서의 멜로드라마적 갈등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급속화된 핵가족화와 함께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한국의 멜로드라마 영화들은 보다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 특히 곽지균 영화의 경우처럼 ‘죽음으로 인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라는 모티프가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관객의 우울과 슬픔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멜로드라마적 감수성, 즉 뉴 센티멘털리즘으로 변이되기 시작한다.</p>
<p>한국 멜로드라마 영화가 서론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던 영미권의 영화연구처럼 장르 연구나 젠더 연구의 범주에서 보다 확장되어 ‘양식(mode/modality)’으로서 유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멜로드라마에 대한 비평적·학문적 접근이 활발해지면서부터”이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 박유희는 “한국에서 ‘멜로드라마’라는 용어의 전유과정”을 영화사적으로 밝히기 위해 “저널리즘에서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인식의 추이를 통해 대중서사장르로서의 ‘멜로드라마’의 형성과정”을 추적한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 그에 따르면, “‘멜로드라마’가 ‘신파’와 비견되고, ‘신파’가 멜로드라마의 ‘한국적 형식’ 혹은 하위 갈래로 인식되며 같은 문맥 안에서 논의되는 것은 1950년대 들어서”부터이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신파극’은 192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수입된 새로운 극, 그 중에서도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극으로 통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급격하게 ‘낡고 저급한 양식’으로 폄하되어갔기 때문에 ‘멜로드라마’와는 용어의 사용 영역이 달랐”으나, 이 두 극 양식은 서서히 “‘눈물’로 통용되는 ‘감정적 몰입’을 우선으로 하는 ‘대중비극’이라는 측면”에서 공통 기반을 형성해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위계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즉,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영화가 쏟아져 들어오며 서구문화에 대한 충격과 동경으로 인해 ‘멜로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우월적인 대중비극으로 인식되며 ‘신파성’은 멜로드라마 내에서도 극복되고 타파되어야 할 구습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백문임도 비슷한 맥락에서 신파극과 멜로드라마의 관계를 “‘신파’는 이미 극복되었다고 여겨지는 전근대적 문제 틀(고부 갈등, 처첩 갈등 등)을 재생산하는 장르로 인식된 반면 멜로드라마는 서구적 가치관의 도입으로 변화하는 동시대의 윤리적 상황을 다루는 세련된 트렌드물로 인식”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p>
<p>그러나 ‘눈물’과 ‘감정’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신파극과 멜로드라마의 위계관계나 연결고리는 19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맞물려 있다가 1990년대부터 서서히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박유희가 언급하듯 한국의 신파적 멜로드라마 영화들이 ‘연애’와 ‘전통적인 가정문제’를 엮은 서사구조를 골자로 하다가 서서히 대가족이 해체되면서 장르의 분화가 일어나게 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대가족이 사라지면서 ‘연애’에 더 큰 방점이 찍히게 된다.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멜로드라마’는 ‘멜로-’라는 형태로 다양한 서사 매체에 적용되기도 하고, ‘-멜로’라는 형태로 자유롭게 혼성장르를 만들어내면서, ‘사랑 이야기’가 있는 서사는 모두 ‘멜로’에 귀속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가장 포용력이 큰 한국의 대중서사장르로 보다 더 확장”된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실제로 본 연구자도 영화 수업 중에 대다수 한국의 학부생들이 ‘멜로드라마’를 ‘사랑 이야기’, 즉 ‘로맨스’와 동의어로 파악하고 있음을 자주 확인하고 목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고에서는 이처럼 멜로드라마가 로맨스와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한국적 맥락이 곽지균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감수성과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p>
<p>곽지균이 데뷔하는 1986년 이전까지의 한국영화는 멜로드라마가 에로티시즘과 결합되어 ‘연애 관계에서 실패하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여성 성 노동자의 비참하고 굴곡진 삶’이나 ‘혼외관계의 남녀가 맞게 되는 파국’ 등을 신파적으로 그리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충무로는 텔레비전과 할리우드 영화에게 빼앗긴 한국영화 관객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대중영화를 대대적으로 광범위하게 성애화해 한국적 특수성과 맞물린 에로화(eroticize)된 영화들을 양산했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 이러한 에로영화들은 1970년대에는 여성 성 노동자들의 기구한 운명을 그리는 ‘호스티스 영화’로 시작되어 1980년대에는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의 여성들이 겪는 성적 여정을 그리는 본격적인 에로물로 진화했다. 에로영화는 멜로드라마와도 같은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 드라마, 스릴러, 코미디, 사극, 공포물 등의 장르들과 조우하여 다양한 하위장위의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영화 전반의 에로화 속에서도 20세기 초반에 구축된 한국적 멜로드라마의 정서, 즉 여성의 비극을 이용해 ‘고무신’ 관객, 즉 여성 관객의 눈물을 뽑는 신파적 경향은 198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던 것이다.</p>
<p>‘신파(新派)’라는 용어는 본래는 20세기 초반 ‘구파(舊派)’에 대항해 나타난 일본의 새롭고도 참신한 연극 사조를 뜻하는 단어였으나, 곧 본토는 물론이고 제국 일본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 유입된, 여성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감정적 매너리즘이 넘치는 애정물들, 즉 문학과 연극, 영화의 성향을 뜻하는 표현으로 확장되었다. 20세기 초반 한국 신파물의 최고봉은 당대 일본의 소설과 희곡 원작을 조중환이 번안한 소설 ｢장한몽｣(『매일신보』, 1913~1915)으로, 그것은 &#x003C;이수일과 심순애&#x003E;라는 제목으로 20세기 초중반의 식민지 조선과 해방 후 한국에서 수차례 연극화 및 영화화될 정도의 고전 텍스트가 되어 사랑받았다. 박진영은 ｢장한몽｣이 소설이나 연극, 영화 뿐 아니라 대중가요로까지 변용되어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역사를 추적한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소설의 영화화는 1920년 ‘연쇄극’으로 시작되어 1969년까지 무려 여섯 차례 이루어졌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장한몽｣, 혹은 &#x003C;이수일과 심순애&#x003E;와 더불어 한국 신파극의 쌍두마차를 이루는 작품으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1936, 임선규 희곡), 혹은 &#x003C;홍도야 우지 마라&#x003E;(1965, 전택이)를 빠뜨릴 수 없다.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여인, 홍도의 기구한 운명을 다루는 이 신파극은 연극으로도 대성공을 거뒀지만 멜로드라마 영화로서도 큰 위치를 차지한다. 조은선은 1949년 『경향신문』의 ｢질의응답｣ 코너에 실린 “관객들의 눈물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x003C;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x003E;나 &#x003C;홍도야 우지 마라&#x003E;와 같은 극들은 다 메로드라마입니다. 메로드라마는 영화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라는 분석을 위시한 저널리즘 분석을 통해 ‘신파’와 ‘멜로드라마’가 이분법적 대립항이 아니라 신파가 “합법적인 근대의 모습으로 승인받지 못한 근대성 담론의 타자이며 억압된 기저”임을 밝힌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즉,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들은 식민지 시기에도 그랬지만 해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파성과 위계질서를 이루는 듯하면서도 동질성을 지닌 채 만들어진 것이다.</p>
<p>해방 후 만들어진 수많은 한국영화들은 돈과 물질에 홀려 사랑하는 남자, 이수일을 저버리려고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 여자, 심순애의 이야기, 즉 ｢장한몽｣이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홍도의 서사를 영화적 멜로드라마의 표준적 내러티브로 삼아 가족관계와 돈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여자들의 비극을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신영균과 문희 주연의 영화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일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 1968년 국도 극장에서 개봉한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은 한국영화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를 통틀어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의 연출자인 정소영 감독은 이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x003C;(속) 미워도 다시 한 번&#x003E;(1969),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 3편&#x003E;(1970),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 대완결편&#x003E;(1971)을 통해 반복적으로 메가폰을 쥐며 흥행감독으로 떠올랐고, 급기야 배우 이승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2000년대에도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 2002&#x003E;(2001)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내용이 유부남이 유부남인 줄 모르고 연애를 하다 그 연애의 결과로 아들을 낳아 혼자 키우던 미혼모가 아이를 번듯한 가정 배경 속에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어 남자의 가정으로 보내는 것임을 감안하면 2002년에 나온 시리즈물은 시대정신을 대단히 잘못 읽은 예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라면 연애하던 남자가 유부남임을 안 순간 ‘혼인빙자간음죄’로 그를 고소하거나, 남자의 이혼을 닦달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까지도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 시리즈의 성공은 대단한 것이었기에, 1980년대에는 변장호 감독이 시리즈를 리메이크해서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 ‘80&#x003E;(1980)과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 제 2부&#x003E;(1981)를 연출했고 두 편 다 흥행에서 양호한 성적을 거뒀다.</p>
<p>1980년대의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 시리즈는 물론이고 1980년대의 대중적 한국영화 장르였던 에로틱 멜로드라마 영화들, 즉 에로영화들은 에로틱한 장면을 보러 극장을 찾는 남성 관객들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신파성을 향유하며 눈물을 흘리고 싶어하는 여성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에로영화가 단순한 성인영화나 남성용 준 포르노 영화가 아니라 성인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들임에도 1980년대의 대중영화로서 지속적으로 한국의 대다수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근거도 멜로드라마적 신파성을 내장한 근대성에 대한 탐구라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보론은 본 연구자의 다른 연구들과 학위 논문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다음 장에서는 곽지균의 등장과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p>
</sec>
<sec id="sec003">
<title>3. 곽지균과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title>
<p>1980년대 초반까지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의 리메이크판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흥행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한국관객이 멜로드라마 영화를 통해 얻고 싶어하는 정동은 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1987년까지 정점을 찍었던 에로 멜로드라마 영화들 속에서는 대가족 제도의 보수성 하에서 물질적 평안과 정신적 행복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이 더 좋은 계급적 환경을 찾아 떠난 교제남으로부터 버림받아 복수를 자행하는 서사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곽지균 감독을 비롯해 김현명, 이미례 등의 신예 감독들이 새로이 메인 연출을 맡게 되면서 서사는 물론이고 극을 관통하는 정서에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영화는 이후에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명명된 정지영이나 박광수, 장선우 감독의 영화들과 정서적으로 결이 다르다.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신파적 정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 보다 정치적 리얼리즘을 추구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 특히 한국전쟁이나 5.18 광주항쟁 등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p>
<p>신파 멜로드라마와 결별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뉴 웨이브 감독들과 달리 곽지균 등의 뉴 센티멘털리스트들은 “애틋한 사랑을 현대인의 고독과 접합시켜 슬프고도 처연한 결말로 이끄는 새로운 터치의 센티멘털리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한다.<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 영화평론가 허창의 표현을 빌어 명명된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는 “옛날의 통속적인 센티멘털리즘 영화와 달리 간결한 테마를 템포 빠르게 전개시키면서 상징적인 수법을 쓰는 게 특징”으로 “억지 눈물을 강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이별을 강조시키지 않고 심리적인 면을 파고들면서 감정의 효과를 얻어내려 애쓴다”는 면에서 과거의 신파적 센티멘털리즘으로부터의 의도적 결별을 추구한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 이러한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들은 1987년에 대거 등장하게 되는데, 그 전해에 &#x003C;겨울 나그네&#x003E;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곽지균의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을 비롯하여 &#x003C;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x003E;(이장호), &#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배창호), &#x003C;키위새의 겨울&#x003E;(김현명), &#x003C;물망초&#x003E;(이미례)등이 그것이다. &#x003C;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x003E;는 이후에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고 영화의 정서도 멜로드라마로 분류하기엔 다소 건조하므로 예외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p>
<p>코리안 뉴웨이브와 달리 뉴 센티멘털리즘은 학계나 언론계의 전문용어로 자리잡지는 못했으나, 허창이 곽지균, 이명현, 이미례 등의 영화를 예로 들어 뉴 센티멘털리즘을 언급한 것이나 그것이 기사화되었다는 것은 198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에서 감지되었던 멜로드라마 제작 양식과 정서의 변화가 가시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계뿐 아니라 문학계에서도 나타났고 그것이 미디어 간에 상호텍스트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가장 큰 문학적 사건은 아마도 1986년 발간된 도종환 시인이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시집 『접시꽃 당신』의 대성공일 것이다. 시집은 실제로 불치병으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애절한 감성을 담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88년 박철수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시집 뿐 아니라 영화 &#x003C;접시꽃 당신&#x003E;은 1980년대 후반의 대히트작이 되었고, 이처럼 불치병으로 죽어가면서도 남편에 대한 애닳는 사랑으로 이별의 슬픔을 홀로 삭이는 아내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p>
<p>영화 &#x003C;접시꽃 당신&#x003E;(1988)의 대성공을 전후하여 죽음으로 인해 이별하는 연인이나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위에서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로도 분류되었던 &#x003C;겨울 나그네&#x003E;와 &#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을 비롯하여 한국영화의 정서적 방향을 급격하게 변화시킨다. 이미례의 &#x003C;물망초&#x003E;에서는 젊은 연인이 남자(최재성 분)의 갑작스러운 불치병으로 인하여 이별하고, 배창호의 &#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에서는 인생을 다바쳐 사랑한 아내(황신혜 분)가 임신 중독으로 인해 출산 중 사망하면서 홀아비가 된 남자 주인공(안성기 분)이 홀로 딸을 키우며 아내를 그리워한다. &#x003C;물망초&#x003E;에서도 오열 속에 죽은 연인의 아기를 홀로 낳은 여자 주인공(이미경 분)이 미혼모로서 초연하게 살아가고자 결심하며 영화가 종결된다. &#x003C;키위새의 겨울&#x003E;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모티프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이 오해로 인해 결별한 후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모습으로 다시 마주쳐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은 한 남자의 죽음을 몇 년에 걸쳐 애도하는 두 자매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이별과 만남의 의미를 되새긴다. 과거의 신파 멜로드라마가 물질 앞에 흔들리는 여성의 혼외연애와 이로 인한 수난과 비극 등을 그리고 있었다면, 뉴 센티멘털리즘 계열의 새로운 멜로드라마 영화들은 연애 관계에 있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목도한 젊은이들이 새롭게 살아가고자 결심하며 희망을 전달한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우울과 죽음의 정서를 주요 정동으로 삼으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데에서 기존의 신파 멜로드라마와는 큰 차별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뉴 센티멘털리즘 멜로드라마의 제작은 곽지균 감독을 중심으로 하여 명맥이 끊이지 않고 2000년대 초반까지 그 흐름이 연결된다.</p>
<p>그러나 허창이 곽지균과 함께 언급했던 배창호, 이미례, 김현명 감독은 죽음와 우울의 정서라 할 수 있는 뉴 센티멘털리즘을 지속적으로 고수하지는 않는다. 1980년대 초반부터 독자적 영상미와 영화 세계를 구축한 배창호 감독은 1980년대 후반부터 독특한 감수성이나 정동보다는 형식적으로 조금 더 실험적인 영화들(&#x003C;황진이&#x003E; (1986), &#x003C;꿈&#x003E;(1990), &#x003C;러브스토리&#x003E;(1996), &#x003C;정&#x003E;(1999))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이미례 감독은 한국에서 매우 드문 여성 감독으로 &#x003C;수렁에서 건진 내 딸&#x003E;(1984)이나 &#x003C;영심이&#x003E;(1990)처럼 흥행 기록이 저조하지 않은 영화들을 연출하기도 했으나 지속적으로 메가폰을 잡지는 못 했다. 김현명 감독도 기획이나 제작에는 꾸준히 참여했으나 연출작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곽지균 감독만이 유일하게 198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 속에서 “죽음과 절망, 상처받은 자의 아픔, 허무주의 등”을 그려내었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그런 이유로 김수남은 곽지균이 비록 다작을 하지는 않았으나, “멜로드라마의 일관된 장르로 사랑과 만남, 죽음과 절망, 그리고 희망에 대한 물음으로 한국영화작가로서의 나름대로 신념과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 본 연구자도 이에 강하게 동의하는 바이다.</p>
<p>그리고 곽지균이 일관되게 뉴 센티멘털리즘의 정서를 고수했기 때문인지, 그의 영화와 비슷한 정동의 멜로드라마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뉴 센티멘털리즘 계열의 멜로드라마 제작 열풍은 &#x003C;편지&#x003E;(1997, 이정국)와 &#x003C;약속&#x003E;(1998, 김유진)의 흥행 대성공과 &#x003C;8월의 크리스마스&#x003E;(1998, 허진호)의 비평적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테마가 1990년대 초반 충무로에서 잠시 주춤했던 것은 &#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1990, 이명세)와 &#x003C;결혼 이야기&#x003E;(1992, 김의석&#x003E; 등으로 대표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의 대성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코미디 제작 열풍 속에서 주춤하던, 죽음으로 인한 비극적 이별의 영화적 모티프는 1990년대 후반을 거쳐 2000년대에 보다 본격적으로 이어져 &#x003C;파이란&#x003E;(2001, 송해성), &#x003C;선물&#x003E;(2001, 오기환), &#x003C;국화꽃 향기&#x003E;(2003, 이정욱), &#x003C;…ing&#x003E;(2003, 이언희)에 이어 &#x003C;클래식&#x003E;(2003, 곽재용), &#x003C;내 머릿속의 지우개&#x003E;(2004, 이재한), &#x003C;너는 내 운명&#x003E;(2005, 박진표)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곽지균의 유작이 되고 만 &#x003C;사랑하니까 괜찮아&#x003E;(2006, 곽지균)를 포함해 &#x003C;각설탕&#x003E;(2006, 이환경), &#x003C;행복&#x003E;(2007, 허진호) 등의 흥행 대실패로 다시 주춤하기 시작한다.</p>
<p>죽음으로 인한 연인의 이별극을 다루는 이러한 뉴 센티멘털리즘 멜로드라마 영화들은 앞장에서 언급했던 전근대적 가족제도가 억압하는 혼외연애로 인한 여성의 비극이나 돈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내면세계를 신파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죽음 앞에서 이별해야만 하는 연인의 슬픔이 보다 크게 그려진다. 박유희가 언급하듯, “&#x003C;접속&#x003E;, &#x003C;편지&#x003E;, &#x003C;약속&#x003E; 등의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두 남녀가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들처럼, 이 세상에 두 사람만 존재하는 듯이 외따로 설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랑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이제 개인의 내면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전근대적 가족제도보다 더 큰 명제인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이별과 상실감을 경험하는 개인은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애도와 우울의 정동을 극복하거나 초월하기 위한 크나큰 내적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개인의 내면 세계가 회상/플래시백이나 줌 렌즈를 통해 영상화된다. 이처럼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죽음의 경험을 통해 시각화되는 애도, 우울 등의 센티멘털리즘은 이전의 신파적 정서와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 이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삶과 죽음의 절대적 이분법 앞에서 연인과 이별하며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용한 눈물과 고통의 중심에 곽지균이 있다.</p>
<p>서론에서 잠깐 언급했듯, <xref ref-type="bibr" rid="B001">곽지균은 1986년 &#x003C;겨울 나그네&#x003E;</xref>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1977년에 조문진 감독의 &#x003C;고가(古家)&#x003E;에서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x003C;우상의 눈물&#x003E;(1981, 임권택), &#x003C;만다라&#x003E;(1981, 임권택), &#x003C;탄야&#x003E;(1982, 노세한)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곽지균은 30 여 년간 충무로에서 영화인으로 몸 담았던 셈이다. 그 적지 않은 세월동안 연출한 곽지균의 영화 속에는 언제나 멜랑콜리와 무한한 슬픔의 정서가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KMDB에 소개된 곽지균의 영화계 입문배경만 봐도 “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취미가 없는 편”이었는데 “영화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큰 용기를 내어 영화계 입문을 결심한 것도 고등학교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후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 어린 시절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다가갔었던 곽지균의 실제 경험은 영화 속에서 죽어가는 인물로, 혹은 친구나 연인, 배우자의 죽음을 경험한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한창 나이 때의 젊은이들로,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직접적, 간적접 경험의 트라우마로 인해 극심한 방황과 갈등을 하는 모습으로 재현된다.</p>
<p>곽지균의 데뷔작인 &#x003C;겨울 나그네&#x003E;에서 남자 주인공은 친부모를 잃고 의지했던 친척들과 친구들로부터 배신당해 사랑하던 여자마저 절친한 친구에게 빼앗기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세 번째 영화인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상처&#x003E;(1989)</xref>에서는 홀로 딸을 키우던 미혼모가 역시 자살을 선택한다.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 시리즈의 뉴 센티멘털리즘 버전이라고도 할 만한 영화이다. 네 번째 영화인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그 후로도 오랫동안&#x003E;(1989)</xref>에서는 함께 산장에 놀러갔던 여자친구가 윤간을 당하는데 이를 막지 못했던 충격으로 괴로워하던 남자 주인공이 다른 남자를 통해 안식을 찾는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며 또다시 자살을 선택한다. 다섯 번째 영화인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젊은 날의 초상&#x003E;(1990)</xref>에서는 대학 교정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투신자살한 친구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하던 남성이 역시 자살을 생각하지만, 이전 영화와 달리 방랑길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그의 여섯 번째 영화인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이혼하지 않은 여자&#x003E;(1992)</xref> 속의 남자 주인공은 암으로 죽어가지만 죽기 전까지 행복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곽지균의 일곱 번째 영화인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장미의 나날&#x003E;(1994)</xref>은 멜로드라마라기보다 에로틱 스릴러에 가까운데다 유일하게 그의 영화 중 죽음 충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바람피우는 남편을 응징하기 위해 여주인공은 매력적인 미녀를 고용해 남편을 유혹하고 버리도록 지시한다. 한 남자에 대한 두 여자의 복수극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여덟 번째 영화인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깊은 슬픔&#x003E;(1997)</xref>에서는 삼각관계 속에서 고통받던 여자 주인공이 또다시 자살을 선택하며 끝난다. 곽지균의 아홉 번째 영화이자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꼽히는 <xref ref-type="bibr" rid="B009">&#x003C;청춘&#x003E;(2000)</xref>에서는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괴로워하다 자살한 친구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남성이 다행히 발랄한 여성을 만나 구원을 발견하며 끝난다. 그의 유작이 된 열 번째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10">&#x003C;사랑하니까 괜찮아&#x003E;(2007)</xref>의 여자 주인공은 20대 초반의 발랄한 아가씨지만 암 투병으로 다시 죽음을 앞두고 죽기 전까지 생애 최고의 로맨스를 즐기려 노력하다 죽음을 맞이한다.</p>
<p>앞서도 언급했듯, 곽지균이 연출한 열편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죽어가거나, 자살을 생각하거나,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의 일곱 번째 영화 &#x003C;장미의 나날&#x003E;과 그의 두 번째 영화인 &#x003C;두 여자의 집&#x003E;만이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x003C;장미의 나날&#x003E;이 다소 경쾌한 에로틱 스릴러인 것과 달리, &#x003C;두 여자의 집&#x003E;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매우 짙게 스며있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들은 죽은 이를 애도하고 슬퍼할 뿐 본인들이 따라 죽으려고 한다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 김수남이 분석하듯, 곽지균 영화 속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겪는 “만남과 좌절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물으면서 그들이 겪는 모든 고통들이 삶에 있어 거쳐가야 하는 통과의례이며 동시에 누구나 극복해 가야 하는 과정임을 확인”하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은 &#x003C;청춘&#x003E;과 &#x003C;사랑하니까 괜찮아&#x003E;와 더불어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최인호, 이문열, 신경숙의 동명소설을 각각 각색한 &#x003C;겨울 나그네&#x003E;, &#x003C;젊은 날의 초상&#x003E;, &#x003C;깊은 슬픔&#x003E;이나, 다른 시나리오 작가가 각본을 집필한 &#x003C;상처&#x003E;, &#x003C;그후로도 오랫동안&#x003E;, &#x003C;이혼하지 않은 여자&#x003E;, &#x003C;장미의 나날&#x003E;과 달리 곽지균 개인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p>
<p>&#x003C;청춘&#x003E;과 &#x003C;사랑하니까 괜찮아&#x003E;는 청춘영화로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청소년과 성인의 과도기 속에서 겪는 상실감을 통한 성장통을 그리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x003C;청춘&#x003E;과 데뷔작인 &#x003C;겨울 나그네&#x003E;, 그리고 당대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x003C;젊은 날의 초상&#x003E;이 20대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곽지균은 ‘청춘영화’ 전문 감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독창성 면에서 볼 때, 2000년대에 등장한 두 편의 곽지균표 청춘영화인 &#x003C;청춘&#x003E;과 &#x003C;사랑하니까 괜찮아&#x003E;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7년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매우 유사한 정동을 공유하고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14">『상실의 시대』</xref>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발간된 무라카미의 소설은 1990년대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던, ‘문화적 신드롬’이라 할 만한 작품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 무라카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20대 젊은이들의 삼각관계와 상실감, 우울증, 죽음 등을 그리는 『노르웨이의 숲』은 개인적으로 원제보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속에서 비롯되는 성장통을 그리고 있다. &#x003C;청춘&#x003E;은 <xref ref-type="bibr" rid="B014">무라카미의 『상실의 시대』</xref>의 아류로 간주될 정도로 비슷한 플롯과 정서를 담은 영화로 2000년 당시 서울 개봉관에서만 89,604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했다. 곽지균이 <xref ref-type="bibr" rid="B014">『상실의 시대』</xref>의 영향을 받아 &#x003C;청춘&#x003E;의 대본을 집필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p>
<p>그러나 &#x003C;청춘&#x003E;은 가장 곽지균다우면서도 가장 곽지균답지 않은 영화라는 생각도 들기에 본고에서는 그의 뉴 센티멘털리즘이 반영된 대표작으로서 분석하지는 않으려 한다. 또한 2000년에 개봉된 &#x003C;청춘&#x003E;은 1980년대 후반에 형성된 뉴 센티멘털리즘의 정서가 1990년대 초중반의 로맨틱 코미디의 제작열풍 이후에 다시 재개된 이후 초기와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 영화이기도 하므로 그의 대표적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로 보기에도 다소 거리감이 있다. 이와 달리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은 곽지균이 처음으로 각본과 연출을 함께 겸한 작품으로 그의 작가주의가 최초로 발현된 작품일 뿐 아니라 그를 뉴 센티멘털리즘의 기수로 평가하도록 한 1980년대 후반의 새로운 멜로드라마적 정서를 가득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한다.</p>
</sec>
<sec id="sec004">
<title>4. &#x003C;두 여자의 집&#x003E;과 ｢애도와 멜랑콜리｣</title>
<p>&#x003C;두 여자의 집&#x003E;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한 남성 예술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두 여성과 죽은 남성을 대체하는 또 다른 남성 예술가의 등장이 불러일으키는 혼란과 파국, 화해 등을 그리고 있다. 그야말로 프로이트의 ｢애도와 멜랑콜리｣를 젠더적으로 구분해 극화한 텍스트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1980년대 후반까지의, 더 나아가 2019년 현재까지의 한국영화에서 접할 수 없는 특이한 소재를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단순히 성욕을 근간으로 하는 인간의 무의식적 심리나 신경증을 비롯한 정신병리학적 증상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 상태가 감정이나 기분, 육체적 질병으로까지 전이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정서나 정동 연구의 근간을 형성하기도 한다. 곽지균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모티프로 삼아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뉴 센티멘털리즘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죽음과 슬픔, 우울의 증세를 멜로드라마적 정동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적 정신분석을 참조하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본장에서는 프로이트를 참조하여 &#x003C;두 여자의 집&#x003E;에서 펼쳐지는 ‘죽음과 우울의 센티멘털리즘,’ 즉 곽지균적인 ‘뉴 센티멘털리즘’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p>
<p>&#x003C;두 여자의 집&#x003E;은 곽지균 특유의 프로이트적 ‘죽음 충동(death drive)’이 작품 전반을 감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성장통이나 상실에 대한 무한한 슬픔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승화(artistic sublimation)’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프로이트는 우울감(melancholia)과 애도(mourning)의 상태가 깊은 슬픔과 비애감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그는 애도의 상태가 “사랑하는 사람, 국가, 이상(an ideal) 등의 상실”로 인해 발생한 만큼 그와 유사한 대상을 만나거나 회복할 경우 극복될 수 있는 감정이라면, 우울감은 심각한 병리학적 증상으로서의 슬픈 상태이며 그것이 극복되지 못하고 과도해질 경우 ‘자기파괴(self-destruction)’인 자살로 직결되는 정신활동이라고 구분한다.<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p>
<p>&#x003C;두 여자의 집&#x003E;은 두 번째 작품을 집필하던 중 괴로워하던 소설가, 윤치호(전인택 분)의 갑작스런 죽음을 7년째 애도하는 두 자매, 오유화(한혜숙 분)와 오유경(이미숙 분)이 우연히 조현병(schizophrenia)에 시달리는 화가 강민준(강석우 분)을 만나 치호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예술, 종교, 철학 등의 높은 정신작용”과 연결시키며, “히스테리(hysteria)는 예술작품의, 강박증(obsessional neurosis)은 종교의, 망상성 치매(paranoic delusion)는 철학 체계의 캐리커처”라 구분하기도 한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 영화 속의 민준은 실상 히스테리와 강박증, 망상성 치매의 모든 증상을 다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 환자이다. 그는 치매 환자처럼 어느 때는 멀쩡하다가, 어느 때는 히스테리와 발작을 일으키고 파괴적인 면모를 보인다. 또한 “청산(靑山)에 가야한다”며 강박적으로 청산에 집착하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린다. 우연히 유화의 승용차에 치었으나 병원에서 신원에 대해 밝히지 않고 묵묵부답하는 민준을 집에 데려와서 돌보기 시작한 유화는 그의 예술에 대한 집착과 가끔씩 발작하는 모습을 보고 죽은 남편인 치호를 떠올린다. 민준에게서 치호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은 유경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치호의 죽음 이후 유화의 집을 나가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었으나 서서히 민준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p>
<p>7년 간이나 치호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픔에 빠져있던 두 자매는 민준이라는 남성 예술가가 치호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우울증과도 같은 길고 긴 애도의 터널에서 빠져나온다. 치호의 죽음 이후 유화는 7년간 알콜중독에 빠져 무용도 하지 않고 슬픔에 빠져 있었으나 의사인 민박사의 도움으로 재기를 준비하던 중 민준을 만난다. 그리고 죽음과 장례를 모티프로 한 무용 작품으로 복귀에 성공해 민준의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는다. 유경은 치호의 죽음 이후 유화의 집을 나가 패션모델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가하지만 예전과 달리 모든 것을 비웃고 코웃음치는 냉소적인 여자로 변해 버린다. 자신보다 10살 가까이 나이가 많지만 아름답고 재능있으며 모든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언니를 늘상 질투하던 유경은 언니의 남편이었고 언니를 사랑했던 치호를 대체할 수 있는 민준이 나타나자 그의 광기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다. 유경에게는 송인호(나한일 분)라는 디자이너 애인이 있고, 그가 수차례 청혼을 한 바 있으나, 결혼을 거부하던 그녀는 민준이 나타나자 인호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민준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간다.</p>
<p>애도의 과정에서 슬픔에 잠겨 있던 두 자매와 달리 우울증으로 인한 병적인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치호는, 프로이트가 분석한 바대로, 자기파괴를 선택한다. 치호가 작품활동에서의 좌절로 인해 자기비하에 시달리다 자신에 대한 증오를 아내에게 돌리며 화를 내고 물건을 부수며 광기에 사로잡히는 과정은 전형적인 우울증(melancholia/depression) 환자의 증세이다. 그는 유화가 무용을 그만 두고 전업 주부를 하며 아이를 낳고 자신의 집필 활동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온전히 지원해 주기를 원하지만 유화는 이를 거부한다. 그러나 유화를 사랑하는 그는 그녀를 떠나기보다 그녀를 미워하기 시작하며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 우울증 상태에서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증오는 곧 자신을 향하게 되어 “기이할 정도의 자존감 하락, 자아(ego)의 막대한 황폐화”<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로 변이되게 마련이다. 치호의 증오와 분노의 대상은 유화에서 자기 자신으로 전환되어 그는 “심각하게 고통스러운 낙담,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의 소멸,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모든 활동의 억제, 발언에 있어 자기비난이나 자학에 이를 정도의 자신과 관련된 감정의 비하, 처벌에 대한 망상적 기대감의 증대”<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 등을 드러낸다.</p>
<p>치호는 유경에게 “버려진 사람들의 글을 쓰고 싶었어. … 그런데 이렇게 무위도식 … 글은 한 줄도 못 쓰고 한심한 부부싸움 [아이 문제와 유화에게 항상 옆에 있어달라는 요구 등]… 모든 게 무력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한다. 또한 두 번째 소설을 완성했음에도 그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신의 고향인 태화마을의 본가에 꼭꼭 숨겨놓을 정도로 작가로서의 자신과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등산에서의 실족사로 위장해 자살을 감행하며 스스로에 대한 단죄를 실행한다. 치호의 우울증으로 인한 자기파괴의 결과인 죽음을 애도하는 두 여성에게 치호를 대신해 광기에 시달리는 남성 예술가인 민준이 나타나자 치호의 자리는 민준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치호 생전에 지속되던 이상한 삼각관계는 민준의 등장과 함께 현상유지(status quo)를 지속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p>
<p>민준은 치호처럼 아내에 대한 상처가 있는 남성이다. 처음에는 단순 기억상실증인 것처럼 자신에 대해 함구하던 그가 유화의 집에서 미친 사람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화가로서의 그의 정체는 명백해졌으나 그는 자신의 이름과 신상에 대해 밝히기를 꺼린다. 민준은 유화의 무용 공연을 본 후 감동을 받아 유경이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선선히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리고 곧 그가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한 유부남이이며 그의 아내(이혜영 분)가 그림에 미쳐 청산을 찾는 민준을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아이마저 유산시키자 이에 분노해 병원을 탈출했음이 밝혀진다. 민준은 치호처럼 자신을 정서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는 아내에게 실망해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그는 치호와 달리 작품이 풀리지 않아 우울증에 걸려 자기비하와 자기학대에 시달렸다기보다 예술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히스테리에 시달리다 신경증(neurosis)이 정신병(psychosis)으로 발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초반부터 그는 전형적인 조현병 환자로서 정상과 비정상 상태를 오가며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림을 통한 ‘구원’을 추구하는 민준은 구원의 세계이자 동양적 이상향인 ‘청산’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렘브란트의 색감’을 찾아 헤맨다. 명암의 대비로 유명한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를 표출하는 회화의 대명사로 간주되어 화가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로 꼽힌다.</p>
<p>영화 속에서 청산과 더불어 렘브란트의 색감을 찾으려는 민준의 시도는 그가 그리는 수많은 그림들 뿐 아니라 유화와 유경 자매에게도 전이되어 이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기 전의 치호와 함께 했던 ‘렘브란트 시대’를 복원해 보고자 노력한다. 민준이 강박적으로 찾으려 하는 렘브란트의 색감과 유경이 되돌리고 싶어하는 ‘두 자매의 집’에서의 렘브란트 시대는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처럼 자매에게 있어 인생의 황금기인 것처럼 지속적인 플래쉬백을 통해 반복된다. 그러나 플래쉬백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두 자매의 과거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치호의 우울과 광기의 장면들로, 이는 유경의 회상과 달리 결코 아름다운 황금기가 아니다. 유경은 단지 자신이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시절을 착각하며 반복적으로 그 시절을 회상하는데 이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죽음 충동’처럼 반복적일 뿐이다. ‘죽음 충동(death drive)’은 인간이 죽음을 갈망하는 본능이라기보다 프로이트가 삶보다 이전 단계라고 생각했던 죽음, 즉 ‘무생물 상태(inanimate state)’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회귀’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죽음 충동의 대표적 예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병사가 그것을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꿈 속에서 전투 당시를 떠올리는 것을 들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 이처럼 죽음 충동은 회피하고 싶은, 악몽같은 과거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인간의 미스테리한 자기파괴적이고 피학적인(masochistic) 면모가 ‘반복’되는 현상이라 하겠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인 플래쉬백으로 표현되는 유화와 유경의 치호에 대한 회상은 고통스럽고 피학적일 뿐 아니라 반복적이라는 면에서 자매의 ‘죽음 충동’과도 같고, 이러한 플래쉬백 기법은 ‘곽지균 영화 스타일의 죽음 충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p>
<p>영화에서 ‘죽음 충동’과도 같이 반복되는 것은 두 자매의 치호에 대한 회상 뿐 아니라 그들이 형성했던 삼각관계까지 포함된다. 유화와 유경 자매와 함께 치호-민준으로 이어지는 남성 예술가가 이루는 삼각관계는 단순한 연애관계만은 아니다. 그 관계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으나 부유한 상속녀인 두 자매 사이에서 유화가 유경의 부모 역할을 대신하며 유화의 결혼 이후 성립된 부모(유화와 치호)-자식(유경) 관계와도 같은 부르주아 가정의 삼각관계이다. 이처럼 유화와 유경 자매를 중심으로 예술가가 모여 사는 ‘두 여자의 집’은 치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벌어진 두 자매의 갈등으로 붕괴되는 듯 했으나 치호를 대신해 집에 들어온 민준을 통해 기묘하게 이전의 상태를 복원하기 시작하며 봉합된다. 이러한 회귀적인 삼각관계는 프로이트적인 죽음 충동처럼 또 다시 반복적이다. 따라서 치호의 죽음은, 렘브란트의 그림들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 명암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서려 있는 동시에 괴로운 과거를 지속적으로 반복회상하는 두 자매의 ‘죽음 충동’처럼 지배적인 모티프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유화의 바람대로 두 여자의 집은 다시 부모(유화)-자식(유경과 민준)의 삼각관계를 반복하며 상실의 공간을 메꾼다. 물론 이 과정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게 된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평형 구조를 이루는 클로징 시퀀스의 교통사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유화의 결단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유경에게 아내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 민준은 유경의 차에서 발작을 일으켜 두 사람이 탄 차는 산골짜기에서 굴러떨어져 그들에게 커다란 상해를 입힌다. 그리고 유화는 민준을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이고 병원에 입원했던 유경에게도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이처럼 모성애적 돌봄을 행하는 유화의 심적 변화는 치호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되며 이루어진다.</p>
<p>치호의 죽음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다는 사실을 7년간이나 모르고 있던 유화는 알콜중독을 극복하고 무용가로서 재기한다. 그녀가 연출하고 주역으로 공연한 복귀작은 동서양의 무용을 결합한 형태로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 내지는 진혼곡 형식의 공연이다. 치호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울에 빠졌던 유화가 자신의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극복한 것이다. 그러나 유화의 성공적인 재기 작품을 보고 질투심을 느낀 유경은 기다렸다는 듯 언니를 공격하며 형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토로한다. 유화는 남편이 죽기 전의 빈번했던 부부싸움과 자신의 무관심을 떠올리며 유경이 반복하는 “형부는 늘 버려져 있었어. 무덤 같았어”라든지 “형부는 적막했어”라는 말을 되새기며 언제나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러던 중 오프닝 시퀀스에서 민준이 가해를 입은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그러나 유경은 민준이 자신보다 연상인 유화를 “아줌마”라고 부르면서도 따르고 좋아하는 것을 보며 질투를 느낀 데다 그녀의 예술적 재능에도 질투를 표시한다. 유경은 마침내 유화에게 비난을 쏟아놓는다.</p>
<p>　</p>
<p>　　오유화씨, 오만하고 도도하신 귀부인. 당신 남편 윤치호는 자살했어. 사고가 아니라 자살! 형부의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 이것이 우리 모두의 마지막이라고. 언닌 유명 작가인 형부를 장식품처럼 달고 다니면서도 형부가 언니를 필요로 할 땐 귀찮아했고 소외시켰고 결국엔 자살까지 하도록 방관했었어. 그 때 난 참을 수 없어서 이 집을 뛰쳐나갔어. 이기심과 오만으로 가득한 이 쓰레기 같은 집! 지금도 난 이런 집에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아!</p>
<p>　</p>
<p>진실을 알게 된 충격으로 방황하던 유화는 시동생이 치호를 대신해 종손이 되는 의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댁인 태화마을에 갔다가 시아버지가 발견한 치호의 유고를 건네받는다. 치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데다 그의 유고를 읽은 후 유화는 무용만을 위해 살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는 치호의 유작집을 ‘빛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발간한다. 가히 렘브란트적이며 프로이트적인 제목이다. 이 유작집이 치호가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우울증을 빛과도 같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유화는 출간된 책을 클로징 시퀀스에서 민준의 발작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큰 골절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유경에게 전달하며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민준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휠체어에 탄 채 유화의 보살핌을 받으며 완전히 자아를 잃은 모습으로 그녀의 집에 다시 은거하게 된다. 그리고 유화는 남편의 자살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해 앞으로 민준과 유경을 보살피며 살아가기로 결심한다.</p>
<p>1980년대의 한국여성에게 요구되던 전업주부로서의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남편이 죽은 후에 자신의 여동생과 동생의 연인에게 대신하려 하는 유화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남성 예술가와 영화를 만든 남성 예술가의 여성에 대한 태도는 남성적 이기심의 발로라고 봐야 할까? 곽지균의 영화는 당대의 한국영화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남성중심주의가 강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치호의 죽음과 민준의 정신병의 원인을 그들의 아내에게 전가하는 곽지균의 태도는 당대의 남성주의와 아주 거리가 멀다고만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치호와 달리 미혼이었던 곽지균이 치호처럼 두 번째 작품으로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을 집필하고 연출한 후로도 그는 계속해서 미혼이었으며 한참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며 때때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는 있었겠지만 정신병이 아닌 신경증으로서의 우울증을 극복하는 것은 곽지균이 아니라도 현대인이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사회는 인간을 우울하게 하기 때문이다.</p>
<p>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현대사회와 정신질환, 죽음에 대한 많은 활발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개진되기 시작되었고, 곽지균은 뉴 센티멘털리즘의 정동으로 그러한 논의를 자신의 영화를 통해 발현하였다. 천정환이 지적하는 대로 “우울증은 자살이라는 사회 현상에 관한 한 오늘날 가장 강력하고 거부하기 어려운 표상이자 ‘과학적’ 패러다임”이다.<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 그러나 그는 우울증의 논리가 지나치게 확장되어 “지나치게 수줍거나 시끄러운 성격 뿐 아니라, 문학·예술, 그리고 비판적 지성과 결부된 파토스도 우울증의 질환으로 치부되기도 한다”며 이러한 ‘속류적 생물학주의’를 경계할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 어쩌면 곽지균이야말로 천정환이 말하는 ‘속류 생물학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우울하게 만들며 그 힘으로 예술 창작을 지속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죽음의 직접적, 간접적 경험을 통한 상실과 슬픔, 우울감을 예술이라는 대체물을 통해 극복하는 것은 굳이 애도의 상태가 아니더라도 영속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x003C;두 여자의 집&#x003E;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민준은 치호가 아니다’라는 대사는 곽지균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유화의 희생을 통한 프로이트적인 부르주아 부모-자식 관계의 복원을 희망적으로 예시하며 완결되는 ‘두 여자의 집’의 미래도 유화에게나, 민준에게나 잔혹할 뿐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희망적이지만은 않다.</p>
<p>‘죽음의 경험을 통한 우울/애도과 슬픔을 극복하고 이루어지는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1980년대 중후반 곽지균이라는 멜로드라마 작가를 통해 발아되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죽음과 우울, 슬픔이라는 주제로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곽지균은 한국 멜로영화의 신파성을 극복하고 세련된 센티멘털리즘을 자신의 멜로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뉴 센티멘털리즘의 기수’로서 온전히 평가받고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곽지균의 영화가 전하는 희망의 애매함으로 인해, 또한 2000년대 중반 이후 보다 급속하게 가속화된 한국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화로 인한 희망의 상실과 이로 인한 자살률의 급증으로 인해 한국의 뉴 센티멘털리즘 멜로드라마 영화는 그 실효를 다 했는지도 모른다.</p>
</sec>
<sec id="sec005">
<title>5. 결론을 대신하여: 뉴 센티멘털리즘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하며</title>
<p>본고에서는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의 기수로서의 멜로드라마 영화작가인 곽지균의 영화세계를 그의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을 중심으로 조명해 보았다. 곽지균, 김현명, 이미례 등의 뉴 센티멘털리스트들은 비슷한 시기의 ‘코리안 뉴 웨이브’ 감독들인 정지영, 박광수, 장선우 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들인 탓인지 그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진행된 바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뉴 센티멘털리즘 감독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베테랑 작가였던 곽지균의 영화사적 위치나 그의 멜로드라마 영화들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정서적 흐름을 감안하면 작가로서의 곽지균이나 뉴 센티멘털리즘에 대한 보다 활발한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절실해 보인다.</p>
<p>본고에서 진행된 연구는 서론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한국의 뉴 센티멘털리즘 멜로드라마 연구를 정초하기 위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본 연구를 기점으로 뉴 센티멘털리즘 멜로드라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강한 바람이 있다. 본고는 지면 관계상 곽지균의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을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분석하였으나, 세세한 분석은 아니더라도 곽지균의 모든 영화 작품들을 깊숙하게 읽으며 이를 &#x003C;두 여자의 집&#x003E;과 함께 분석하면 더 좋았을 것이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죽음의 경험을 통한 인간관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과 정서 변화를 뉴 센티멘털리즘의 대표적 양식이라고 할 때 &#x003C;두 여자의 집&#x003E;이 아니더라도 곽지균의 많은 작품들이 뉴 센티멘털리즘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후에 곽지균이나 뉴 센티멘털리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본 연구자보다 더 유능한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대와 함께 본고를 마치고자 한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김나형, ｢어린 연인의 시한부 사랑, &#x003C;사랑하니까, 괜찮아&#x003E;｣, 『씨네 21』, 2006년 8월 15일. <uri>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0736</uri>.</p></fn>
<fn id="fb002"><label>2)</label><p>김범석, ｢&#x003C;기자수첩&#x003E; 누가 곽지균 감독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일간스포츠』, 2010년 5월 26일.</p></fn>
<fn id="fb003"><label>3)</label><p>1919년 제작된 연쇄극 &#x003C;의리적 구토&#x003E;를 최초의 한국영화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대표적인 한국영화사 저서인 『한국영화전사』와 『한국영화 100년』에서의 논의와 더불어 계속 있어왔다. 이러한 논란은 다음의 글에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22">함충범, ｢한국영화(사)의 출발 기점에 관한 재고찰: ‘1919년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영화의 기원과 초기영화』 자료집, 2018 한국영화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문, 40-61쪽</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대표적으로 다음 책을 참조할 것. <xref ref-type="bibr" rid="B029">Christine Gledhill (ed.), <italic>Home Is Where the Heart Is: Studies in Melodrama and the Woman’s Film</italic>,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1987</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멜로드라마에 대한 가장 선구적인 연구서로 꼽히는 피터 브룩스의 1974년 저작은 멜로드라마의 기원을 프랑스 대혁명기로 추정하고 있다. 브룩스는 멜로드라마의 특징을 잘 짚어내기는 했으나 그것이 희곡에서 출발해 발자크나 헨리 제임스와 같은 소설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프랑스와 독일에서 집필된 시와 희곡 속에 멜로드라마적 특성이 이미 구현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연구들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다음을 참조할 것. Peter Brooks, <xref ref-type="bibr" rid="B029"><italic>Melodramatic Imagination: Balzac, Henry James, Melodrama, and the Mode of Excess</italic>,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xref>. 이에 대한 수정주의적 접근은 다음을 참조할 것. <xref ref-type="bibr" rid="B025">Matthew Buckley, “Unbinding Melodrama”, <italic>Melodrama Unbound: Across History, Media, and National Cultures</italic>. Christine Gledhill and Linda Williams (ed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2018, pp.15-29</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다음의 글을 참조할 것. <xref ref-type="bibr" rid="B031">Christine Gledhill, “Rethinking Genre”, <italic>Reinventing Film Studies</italic>, Christine Gledhill and Linda Williams (eds.), London: Arnold, 2000, pp.221-243</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다음을 참조할 것. <xref ref-type="bibr" rid="B034">Ben Singer, <italic>Melodrama and Modernity: Early Sensational Cinema and Its Contexts</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1</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23">Nancy Abelmann, <italic>The Melodramatic Mobility: Women, Talk, and Class in Contemporary South Korea</italic>, Honolulu: Univerity of Hawai’i Press, 2003</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김수남, ｢곽지균의 삶과 영화—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 『영화연구』 21호, 2003, 31쪽</xref>.</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김수남, 『한국영화의 쟁점과 사유』, 문예마당, 1997, 174-190쪽</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38, 2009, 181-212쪽, 182쪽</xref>. 이 논문에서 한국에서 진행된 영화, 방송, 소설에서의 멜로드라마 개념에 대한 사전연구는 매우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2009년에 발표된 이 논문 이후로도 영화 부분에서의 멜로드라마 영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된 바 있으나, 현재까지 한국에서 멜로드라마 영화에 대해 그 이후로 진척된 수정주의적 접근이나 아주 새로운 관점이 제시된 바는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연구는 박유희의 논문에서 다 언급된 것으로 보여, 본고에서는 멜로드라마 영화에 대한 선행연구와 관련된 서지사항에 대한 세세한 언급은 생략하고자 한다.</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38, 2009, 184-185쪽</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38, 2009, 192쪽</xref>.</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38, 2009, 206쪽</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7">백문임, 『월하의 여곡성—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 책세상, 2008, 238쪽</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38, 2009, 207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의 멜로드라마성에 대한 논의는 다음 연구의 Introduction과 Chapter 1을 참조할 것. <xref ref-type="bibr" rid="B033">Yun-Jong Lee, <italic>Cinema of Retreat: Examining South Korean Erotic Films of the 1980s</italic>, Irvine: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2012</xref>.</p></fn>
<fn id="fb018"><label>1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6">박진영,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의 대중문예적 계보—&#x003C;장한몽&#x003E; 연구｣, 『현대문학의 연구』 23, 2004, 231-264쪽</xref>.</p></fn>
<fn id="fb019"><label>19)</label><p><xref ref-type="bibr" rid="B020">조은선, ｢전후 한국 멜로드라마 담론을 통해 본 영화적 근대성과 근대적 여성상｣, 『문학과 영상』 8-3, 2007, 231-252쪽, 238쪽, 244쪽</xref>. 조은선은 &#x003C;자유부인&#x003E;이나 &#x003C;청실홍실&#x003E;과 같은 멜로드라마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신파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p></fn>
<fn id="fb020"><label>20)</label><p>한국영화사에서, 그리고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인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에 대한 연구는 다수 진행된 바 있다. 영화에 대한 선행 연구와 서지 사항은 다음의 논문에서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13">김훈순·김은영, ｢모성과 낭만적 사랑의 담론경합: 멜로영화 &#x003C;미워도 다시 한번&#x003E; 시리즈를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x0026;문화』 15, 2010, 121-153쪽</xref>.</p></fn>
<fn id="fb021"><label>21)</label><p>학위논문은 앞서 언급했으므로, 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에 대한 소고로 다음의 두 논문을 참조할 것. <xref ref-type="bibr" rid="B018">이윤종, ｢한국 에로영화와 일본 성인영화의 관계성—&#x003C;애마부인&#x003E;을 중심으로 본 양국의 1970-80년대의 극장용 성인영화 제작관행｣, 『대중서사연구』 21-2, 2015, 81-117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19">이윤종, ｢역진의 정치성: 80년대 한국 에로영화론｣, 『문화/과학』 93, 2018, 326-351쪽</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김양삼,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 붐｣, 『경향신문』, 1987년 4월 28일.</p></fn>
<fn id="fb023"><label>23)</label><p>김양삼,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 붐｣, 『경향신문』, 1987년 4월 28일.</p></fn>
<fn id="fb024"><label>24)</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김수남, ｢곽지균의 삶과 영화: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 『영화연구』 21호, 2003, 36쪽</xref>.</p></fn>
<fn id="fb025"><label>2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김수남, ｢곽지균의 삶과 영화: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 『영화연구』 21호, 2003, 37쪽</xref>.</p></fn>
<fn id="fb026"><label>2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38, 2009, 207-208쪽</xref>.</p></fn>
<fn id="fb027"><label>27)</label><p><uri>https://www.kmdb.or.kr/db/per/00001323</uri>.</p></fn>
<fn id="fb028"><label>2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김수남, ｢곽지균의 삶과 영화: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 『영화연구』 21호, 2003, 38쪽</xref>.</p></fn>
<fn id="fb029"><label>29)</label><p>『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이후 국내에서 원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으나, 문학사상사에서 1989년 유유정의 번역으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후 베스트셀러가 되어 1990년대 한국 중산층 젊은이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는 2006년에 3판을 발행했다. <xref ref-type="bibr" rid="B014">무라카미 하루키, 유유정 옮김,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1989</xref>.</p></fn>
<fn id="fb030"><label>30)</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Sigmund Freud, “Mourning and Melancholia”, <italic>General Psychological Theory</italic>, New York: Touchstone, 1997, pp.164-179</xref>.</p></fn>
<fn id="fb031"><label>31)</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Sigmund Freud, “Mourning and Melancholia”, General Psychological Theory, New York: Touchstone, 1997, p.164</xref>.</p></fn>
<fn id="fb032"><label>3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Sigmund Freud, <italic>Totem and Taboo</italic>, New York: W. W. Norton, 1989, p.92</xref>.</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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