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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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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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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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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1_349</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1.011</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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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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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oup>
			<article-title>일본적인 것, 혹은 금지된 ‘소리’의 계보</article-title>
			<subtitle>- 한일국교정상화 성립기 ‘왜색(倭色)’ 비판담론과 양의성의 정치미학</subtitle>
			<trans-title-group xml:lang="en">
				<trans-title>The Genealogy of <italic>Forbidden Sound</italic></trans-title>
				<trans-subtitle>- Political Aesthetics of Ambiguity in the Criticism of <italic>Japanese Style</italic> in Korean Society of the 1960s</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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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name-style="eastern"><surname>정</surname><given-names>창훈</given-names></name>
				<name name-style="eastern" xml:lang="en"><surname>Jeong</surname><given-names>Chang-Hoon</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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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 id="aff01"><label>*</label>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aff><role>박사과정 수료</role>
			<aff xml:lang="en">Dongguk University</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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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 pub-type="ppub">
			<day>2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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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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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1</issue>
		<fpage>349</f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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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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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문초록</title>
<p>한일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일본이 또 다시 한반도로 온다’라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정조가 조성되었으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왜색’ 비판담론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다만 기존의 ‘왜색’ 비판담론이 미처 처분하지 못한 식민지 잔재에 대한 민족적 반감을 표명하는 것이었다면, 1960년대 비판담론은 대중문화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고 있던 ‘왜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며 그것을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변함없는 악의’가 징후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으로서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대두된 ‘왜색’ 비판담론은 기존 비판담론과는 질적인 차이를 지녔다. 이 새로운 ‘왜색’ 비판의 논리는 “국경을 넘는 문화적 현대성의 매개”, 즉 냉전체제하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유동하고 연쇄되었던 서구(미국)발 탈민족적·탈국가적 ‘대중문화’와 그것의 소비주체로서 성장한 ‘대중’에 대한 경계와 검열의 의지를 동반하고 있었던 것이다.</p>
<p>따라서 1960년대 한국에서 ‘대중적인 것=왜색적인 것=소비적인 것’의 위상학은 그 사회 내부에 존재했던 “도덕적 요구의 역설”을 드러내 보인다. 이는 일본이라는 타자와의 직접적 접촉을 회피하도록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한없이 이끌리며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드는 분열적 순환구조를 고착화하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자타를 엄밀하게 가르는 도덕적 절단을 통해 대상을 저편으로 밀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대상에 매료되어 다시 이편으로 끌어들이는 반복강박을 내포하는 것이다.</p>
<p>이 글은 그것이 구조화된 궤적을 더듬어보고 그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불협화음의 의의를 정치미학적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당대에 발생된 상이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볼 작정이다. 그것은 곧 한국사회의 내적 통제원리를 구축하려는 권력이 강력하게 발동하면 할수록, 혹은 그 권력이 지닌 억압적이고도 폭력적인 이면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되풀이하여 끌어들어야만 했던 ‘일본(적인 것)’이라는 대타성, 즉 완전히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소멸시켜 버릴 수도 없는 역설에 대한 고찰이 될 것이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In the 1960s of Korea,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led to a sense of a vigorous anxiety and fear that "Japan will once again come to the Korean peninsula”. As a reaction to this, the discourse on the criticism of ‘Japanese Style’ strongly emerged. If the prior discourse of criticism was to express the national antipathy toward the colonial remnants that had not yet been disposed of, the critical discourse of the 1960s was the wariness of the newly created ‘Japanese Style’ in popular culture, and to grasp it as a symptomatic phenomenon that ‘evil-minded Japan’ was revealed. Thus, this new logic of criticism of the ‘Japanese Style’ had a qualitative difference from the existing ones. It was accompanied by a willingness to inspect and censor the ‘masses’ that grew up as consumers of transnational ‘mass culture’ that flowed and chained in the geopolitical order under the Cold War system.</p>
<p>Therefore, the topology of ‘popular things=Japanese things=consuming things’ reveals the paradox of moral demands that existed within Korean society in the 1960s. This was to solidify the divisive circulation structure that caused them to avoid direct contact with the other called ‘Japan’, but at the same time, get as close to it as ever. It is a repetitive obsession that pushes the other to another side through the moral segregation that strictly draws a line of demarcation between oneself and the other, but on the other hand is attracted to the object and pulls it back to its side.</p>
<p>This paper intends to listen to the different voices that have arisen in the repetitive obsession to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the dissonance that has been repeated in the contemporary era. This will be an examination of the paradoxical object of Japan that has been repeatedly asked to build the internal control principle of Korean society, or to hide the oppressive and violent side of the power, and that can neither be accepted nor destroyed completely as part of oneself.</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왜색</kwd>
			<kwd>대중가요</kwd>
			<kwd>총독의 소리</kwd>
			<kwd>1960년대 한국</kwd>
			<kwd>후식민성</kwd>
			<kwd>한일관계</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Japanese style</kwd>
			<kwd>popular song</kwd>
			<kwd>The Voice of a Governor</kwd>
			<kwd>1960s Korea</kwd>
			<kwd>Postcoloniality</kwd>
			<kwd>Korea-Japan relations</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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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title>1. 머리말</title>
<p>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p>
<p>　</p>
<p>　　모든 혐오감은 원래 접촉에 대한 혐오감이다. 혐오감을 극복하려고 할 때에도 그것은 과도하게 급작스러운 동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혐오스러운 그것을 재빨리 움켜쥐고 먹어 치우는 것이다. 이때 아주 부드러운 피부 접촉은 금기가 된다. 이렇게 해서만 다음과 같은 도덕적 요구의 역설은 충족될 수 있다. 그것은 혐오감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그 혐오감을 매우 세심하게 키워 나가는 태도가 인간에게 요구된다는 데 있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p>
<p>　</p>
<p>벤야민의 철학적 단상을 엮은 『일방통행로』에서 발췌한 이 문장은 흥미롭게도 ｢장갑｣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그는 ‘장갑’이라는 사물의 양의적 성격, 즉 그것이 주체가 무언가와 접촉하고자 할 때 필요한 도구이면서 한편으로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직접적 접촉을 차단하는 도구라는 점을 가시화하며, 인간의 도덕적 심리에 내포된 이중성을 설명한다.</p>
<p>이러한 벤야민의 성찰은 한국사회 속 ‘일본’, 혹은 ‘일본적인 것’의 위상을 고찰할 때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해방이후 ‘왜색(倭色)’이라는 부정적인 말로 지칭되어 온 그것은 일소되어야 할 것이자 접해선 안 될 금기의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부에 깊이 침투되어 있거나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왔으며 공포와 혐오의 대상인 동시에 매력적인 것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이렇듯 한국사회 속 ‘일본(적인 것)’의 위상은 그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도덕적 요구의 역설”을 드러내 보인다. 대상과의 접촉을 회피하면서도 그것을 손에 쥐고자 하는, 또는 이미 손에 쥐어져 있는 그것과의 접촉을 부정하려는 ‘장갑’의 원리, 그것은 자타를 엄밀하게 가르는 도덕적 절단을 통해 대상을 저편으로 밀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대상에 매료되어 다시 이편으로 끌어들이는 반복의 과정을 내포한다. 이는 ‘일본’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감정, 그리고 그에 대한 선망과 동경의 감정이 각기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 역학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p>
<p>이 양가적 태도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수립됨으로써 한층 심화된 양상을 띠게 되었다. 국교정상화를 전후로 ‘일본이 다시 온다’라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정조가 조성되었으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왜색’ 비판담론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비판담론은 ‘매국적 외교’를 무력으로 성사시킨 정권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라는 맥락을 내포했었으나, 그보다도 한국사회 내부의 정화와 문화적 주체성의 확립을 역설하는 차원에서 지속될 수 있었다. 그 결과 ‘반일(反日)’이란 과거체험이나 역사의식의 문제를 초월하여 한국사회의 견고한 도덕적 규범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알다시피 이것은 정치적 타자로서의 ‘일제(日帝)’뿐 아니라, 문화적 타자로서의 ‘일제(日製)’, 즉 ‘왜색’에 대한 향유와 소비 모두를 도덕적 악으로 금기화하는 프로세스를 동반한 것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다음과 같은 ‘불행’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했다.</p>
<p>　</p>
<p>　　‘황국식민의 세대’의 불행은 (…중략…) 그들이 어렸을 때의 봄은 분명 빼앗긴 들에서의 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들의 이성은 분명하게 그걸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선 그들의 감정은 제 생애의 두 번 다시 되풀이될 수 없는 유일한 어린 시절의 봄에 대해서 사랑의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네들의 의식분열이고, 인격상실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낮에 입으로는 일제의 과거를 핏대를 올려 열렬히 규탄했다가도 밤이 되어 노곤한 몸에 술이나 한잔 들어가고 나면 일본 대중가요의 ‘흘러간 멜로디’에 속절없이 감상하고 마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p>
<p>　</p>
<p>“일제의 과거를 핏대를 올려 열렬히 규탄”하는 이성과 “노곤한 몸에 술이나 한잔 들어가고 나면 일본 대중가요의 ‘흘러간 멜로디’에 속절없이 감상하고 마는” 노스텔지아를 대비하여 말하는 위 글의 저자 최정호는 이러한 모순을 ‘황국식민의 세대의 불행’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특정 세대의 차원을 초월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에 대한 원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선망과 동경을 고백하는 목소리와 혼선되어 공명하는 것은 한국사회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일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누구든 쉬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양자의 목소리가 뒤섞여 판별 불가능한 ‘소리’로 현상되는 사회구조가 고착화되어 온 것이다.</p>
<p>따라서 국교의 회복과 동시적으로 강화된 ‘일본(적인 것)’에 대한 금제, 그것은 더 견고하고 튼튼한, 그렇지만 그 두께의 정도가 한층 얇아진 ‘장갑’을 주체에게 수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라는 타자와의 직접적 접촉을 회피하도록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한없이 이끌리며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드는 분열적 순환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글은 그것이 구조화된 궤적을 더듬어보고 그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불협화음의 의의를 정치-미학적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한국국교정상화를 기하여 발생된 상이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볼 작정이다. 이미자의 &#x003C;동백아가씨&#x003E;를 비롯한 당대 대중가요와 그를 둘러싼 ‘왜색’ 시비의 목소리들, 그리고 최인훈의 연작인&#x003C;총독의 소리&#x003E;가 그것이다.</p>
<p>이 둘은 대중가요와 문단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여 있기에 무관하게 비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교정상화가 몰고 온 위기감 속에서 한국의 정치적, 문화적 주체성에 대한 모색이 이뤄지고, 전후일본에 대한 권위적 지식이 생산되며 그에 대한 배타적 해석규범이 체계화되던 바로 그 지점에서,<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공전의 히트를 이어가던 &#x003C;동백아가씨&#x003E;는 금지곡 처분을 받았고 &#x003C;총독의 소리&#x003E;는 문학의 힘을 빌려 금지된 타자의 목소리를 전송하였다. 의도와 맥락은 상이하나 &#x003C;동백아가씨&#x003E;와 &#x003C;총독의 소리&#x003E;는 ‘일본(적인 것)’에 이끌리고 그 금지된 것에 귀를 기울이던 존재들의 모습을 내비추고 있었던 것이다.</p>
<p>특히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가수나 작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틈새에 잡음처럼 생기하는 정체불명의 ‘소리’이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배타적 대립항의 문턱에 자리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구성하는 동시에 파괴한다. 온전히 파악하려 해도 일순간 지나가버리고 예고도 없이 다시 출몰하는 그것은, 위의 글에서처럼 이성에 의해 통제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무엇이자, 주체의 목소리에 내포된 채로 그네들의 “의식분열”과 “인격상실”을 암시하는 무엇이다. 따라서 저 정교하게 고안된 ‘장갑’(도덕적 요구의 역설)의 기능마저 무용지물로 만드는 ‘소리’의 역량, 그 무형의 잠재력은 새로이 조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한국사회 속에서 괴음(怪音)처럼, 때로는 묘음(妙音)처럼 떠도는 ‘일본(적인 것)’이라는 타자의 위상을 환기할 뿐 아니라, 그 위상학적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지식의 체계를 해체할 새로운 앎의 실마리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p>
</sec>
<sec id="sec002">
<title>2. ‘왜색’의 선율과 ‘악의(惡意)’의 해석학</title>
<p>해방이후 한국사회 속 ‘왜색(倭色)’ 혹은 ‘왜색적인 것’이란 민족적 주체성을 훼손하는 식민지배의 ‘잔재(殘滓)’, 혹은 일본의 문화 전반을 얕잡아 일컫는 말로 쓰여 왔다. 나아가 그것은 ‘퇴폐(頹廢)’, ‘저속(低俗)’, ‘외설(猥褻)’ ‘불건전(不健全)’ 등의 공시적 의미를 지닌 말로서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색’이란 무언인가라는 본질규정적인 물음에 선뜻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근거로 특정 사물을 ‘왜색적’이라고 규정하였는지를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나의 명증한 근거를 끄집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p>
<p>그렇기에 특정 대상을 ‘왜색적’이라고 낙인찍고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 행위로서 이해되어 왔다. 예컨대 &#x003C;동백아가씨&#x003E;의 금지곡 처분은 한일협정을 통해 정통성의 결여를 드러내게 된 군사정권이 스스로를 ‘민족적’인 존재로서 내비추고자 했던 정치적 전략과 맞닿아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견해이다. 다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그와 같은 정치적 전략을 가능하게 했던 근본 원리, 즉 어떤 대상을 ‘왜색적’이라는 이유로 금제하고 비난하는 적대적 행위 자체의 ‘무근거성(inconsistance; 비일관성, 자의성 등)’이다.</p>
<p>‘왜색적인 것’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는 사람조차 ‘왜색’이라는 개념을 명쾌하게 진술한다거나 ‘왜색적인 것’의 일반 특성을 해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이때 문제적인 것은 그러한 개념적 불명료성, 혹은 판별불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왜색적인 것’을 곧 ‘악의적인 것(the malicious)’으로 규정하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x003C;동백아가씨&#x003E;에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무엇이 이 곡을 ‘왜색적’으로 만들고 있는지 말할 수 없다. 단지 ‘왜색적’인 느낌이 난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될지 모른다. 실제로 그것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반복했던 것이기도 하다.</p>
<p>　</p>
<p>　　‘昨今兩年에 큰 ‘히트’를 하고 요즘 流行하는 日本色調의 先導的인 役割을 한 &#x003C;동백아가씨&#x003E;를 들어보자. (…중략…) 唱法이든, 發聲法이든, ‘무드’이든 日本色은 確然하다. 理論的으로 말로 바꾸어하기란 쉽지 않다. 거기에는 音樂的인 批判과 素養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분은 ‘무드’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노래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멜로디’나 ‘리듬’이나 ‘창법’이나 모두 노래를 構成하는 材料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作品으로서 일정한 形이 成立되면 벌써 色이나 線의 材料的인 要素가 문제가 아니고 그것 자체가 目的으로 意味를 表現한다. 그러므로 노래 全體에서 풍기는 情緖가 문제된다. 앞에 旋律과 리듬을 論했지만 歌謠는 그 歌謠가 가지는 感情 ‘무드’가 더욱 중요하다. 인간이 지닌 理智的인 面과 感情的인 面 중에서 노래는 感情의 表出이지 理智的인 것은 못된다. 喜怒哀樂의 心情을 나타낸 것이 바로 노래이다. (…중략…) 곡 全體를 통하여 풍기는 냄새라고 할까, ‘무드’라고 할까 品位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것으로 日本色을 가려낸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p>
<p>　</p>
<p>위의 글은 당대의 음악평론가 서경술이 &#x003C;동백아가씨&#x003E;에 대해 논평한 것이다.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경술은 &#x003C;동백아가씨&#x003E;가 “일본조(日本調)”를 띠는 것은 확연하다, 다만 그것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간에 직관적으로 확실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는 가사, 멜로디, 창법, 리듬 등 음악의 제 요소를 분석하며 그럴듯한 논거를 대려 하지만 자신이 내세운 논리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곡 전체를 통하여 풍기는 냄새”라는 지극히 애매한 기준에 의거하여 &#x003C;동백아가씨&#x003E;는 “왜색적이다”라는 최종판결을 내린다.</p>
<p>이렇듯 ‘왜색’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현실의 구체적인 대상에서 확인하려고 할 때 그에 정확히 들어맞는 합리적 표본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와 같은 불가능성 속에서 ‘일본(적인 것)’에 대하여 한국의 지식계급이 공유해온 적대(antagonism)의 원리를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적대는 타자를 불순한 ‘악의(malveillance)’를 지닌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구성되는 배타적 관계성의 양상을 말하는데, 문제는 타자의 ‘악의’란 기본적으로 감춰져 있는 것이며 그것이 특정한 사건으로 현실화되기 전에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악의’란 그 ‘악의’가 파악되기 어렵고, 그렇기에 그에 맞서 대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진정 ‘악의적’인 것이 된다.</p>
<p>알다시피 한일국교정상화를 전후로 하여 잡지 및 신문지상에는 그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구체적 내용은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결여된 협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한 정권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일본 거대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의 예속화를 경계하거나 한일협정이 궁극적으로는 일본을 동아시아 자유진영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노림수임을 고발하고 규탄하는 것 등을 포괄한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 따라서 현무암이 지적한 바대로 한일협정 반대여론은 단순히 피식민지배의 ‘과거’를 둘러싼 분노의 표출이었던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일본의 막강한 영향력 하에 종속될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p>
<fig id="p001"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41427&amp;imageName=jpn_2019_25_01_349_p001.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p><xref ref-type="bibr" rid="B003">『신동아』</xref> 에 수록된 <xref ref-type="bibr" rid="B003">｢韓國 속의 日本｣ 기획사진첩. 『신동아』는 통권3호(1964.11)에서 ｢韓國 속의 日本을 告發한다｣</xref>라는 표제의 특집을 기획하였고, 그와 유사하게 <xref ref-type="bibr" rid="B002">『세대』</xref> 또한 <xref ref-type="bibr" rid="B002">통권27호(1975.10)에서 ｢韓國 속의 日本｣</xref>이라는 특집을 기획한 바가 있다. 이 둘 모두는 일상 속 ‘왜색’ 범람의 실태와 사회 각계각층에서 발견되는 일본의 침투를 고발하였다.</p>
</fig>
<p>다만 현무암의 연구와는 달리 이 글에서는 식민지지배를 받은 ‘과거’의 기억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복합적 불안을 구성하는 핵심 인자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자 한다. 실제로 당대의 잡지들을 살펴보면 “日本은 다시 온다”, “韓日關係의 低流” 등의 일본관련 특집을 기획함으로써 전후일본을 제국주의시대 일본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려는 지식을 생산한다거나, 임진왜란 시기까지 소급하여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정리한다거나 식민지시기 일본에 의한 민족적 수난의 경험담 등을 나열하며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고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일본’이라는 타자의 침범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반복될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이 그 적대적 타자를 불가해한 ‘악의’를 지닌 존재로서 상상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p>
<p>한일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대두된 ‘왜색(문화)’ 비판담론은 그 공포와 두려움이 한국사회 내부로의 공격성으로 전이되어 나타난 것으로, ‘한국 속의 일본’이라는 현상을 표적으로 삼아 ‘악의’의 해석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 해석의 실천은 문화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구분, ‘일제(日製)’와 ‘일제(日帝)’의 구별을 무효화하는 정치-미학을 동반하는데, 그것은 한국사회 속 ‘일제(日製)’의 범람이라는 현상을 곧바로 ‘일제(日帝)’의 변함없는 ‘악의’를 해석하기 위한 단초로서 자리매김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p>
<p>　</p>
<p>　　일본의 외설소설, 외설잡지는 세계제일이요 ‘性’의 상품화에 있어서는 파렴치할 정도로 집요하다. 타락한 日本의 ‘色’的文化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녹여 다시 ‘無名化’로 만들 것이 분명하며 이 ‘性’ 매스콤이 벌써 보이지 않는 침략의 손을 뻗친지 오래이다. 선거 때나 입에 잠시 오르내리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주체성쯤은 이 ‘色情攻擊’ 앞에 쉬이 굴복하고 말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p>
<p>　　무엇보다도 더 深刻한 問題는 저들의 소위 無償·有償供與로 再開되는 經濟侵略에 따라 들어올 보다 더 可恐할 毒素를 지닌 文化情神的인 再侵略이다. 우리가 꼼짝달싹 못하게 될 저들의 必死的인 經濟侵略은 必然 필수적으로 저들의 倭色文化 腐敗毒素로 가득 찬 文化情神的인 再侵略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일이다. (…중략…) 우리 無意識大衆이 低俗한 倭國文化에 휩쓸려들 것은 勿論이고 저들 現在日本의 大多數知識層의 政治的 向背의 左傾的인 影響 역시 우리의 對共意識을 不透明하게 만들 憂慮가 짙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p>
<p>　</p>
<p>여기서 ‘왜색’이란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라기보다 피식민지배의 경험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악의를 지닌 존재로서의 일본’과 그에 무분별하게 이끌리는 ‘대중의 몰지각함’을 상징하는 말로 통용되기 시작한다. 해방이후 ‘왜색’ 비판담론이 미처 처분하지 못한 식민지 잔재에 대한 민족적 반감을 표명하는 것이었다면, 한일협정을 기점으로 대두된 비판담론은 외래문화의 유입에 따라 새롭게 생성되고 확대되어 가던 ‘왜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며 그것을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변함없는 악의’가 징후적으로 예견되는 현상으로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요컨대 ‘왜색’에 대한 추종은 더 이상 기존 사회규범과 법적 제재를 통해 해결될 수 없고, 오히려 그것들을 무력화하는 무의식이나 초의식 차원의 문제로 재발견됨으로써, 피식민 체험의 정신적 후유증일 뿐 아니라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한 것으로서 담론화된다.</p>
<p>이처럼 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대두된 ‘왜색’ 비판담론은 기존 비판담론과는 질적인 차이를 지녔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국가의 규제를 우회하여 비공식적 루트로 유입되었던 대중소비문화였다. 천정환의 연구도 지적했듯 새로운 ‘왜색’ 비판의 논리는 “국경을 넘는 문화적 현대성의 매개”, 즉 냉전체제하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유동하고 연쇄되었던 서구(미국)발 탈민족적·탈국가적 ‘대중문화’와 그것의 소비주체로서 성장한 ‘대중’에 대한 경계와 검열의 의지를 동반하고 있었던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p>
<p>따라서 어떤 현상을 ‘왜색적인 것’의 출현 또는 범람으로 규정하는 ‘악의’의 해석학은 전도된 도식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당대의 일부 지식인이 자각했던 것처럼 새삼스레 “일본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어와 있던 것이 한일협정을 계기로 해서 일깨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 즉 ‘왜색적인 것’의 무분별한 범람이라는 객관적 실태로부터 ‘악의를 지닌 존재로서의 일본’에 대한 적대가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 당대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일본’을 불순한 ‘악의’를 지닌 적대적 타자로 배척하려는 관점이 촉발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한국사회의 주체성과 순수성을 위협하는 ‘왜색적인 것’의 존재가 대중문화 속에서 발견될 수 있었던 셈이다.</p>
<p>그러한 당대사적 맥락에서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를 지으면 그것이 일본노래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日本色을 의식하면서 작곡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라고 한탄했던 작곡가 박춘석의 말을 참고점으로 삼는다면,<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1960년대가 유독 ‘왜색적인 것’이 비이상적으로 범람하였던 시기였는지 여부는 사실상 확인할 길이 없다. &#x003C;동백아가씨&#x003E;를 비롯한 많은 ‘왜색’ 금지곡이 지정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곧 식민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상품의 대량생산이나 일본문화의 무절제적 유입의 결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왜색적인 것’이란 일본이라는 타자를 불가해한 ‘악의’를 지닌 절대적 적대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그것의 불명료하고 비가시화된 ‘악의’를 규명하겠다는 의지로부터 자의적으로(무근거적으로) 지목되거나 소급적으로 산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p>
<p>그렇다면 ‘왜색적인 것’의 ‘악의’에 노출되어 있던 존재는 대중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던 것이 아닐까. 이는 대중보다도 오히려 지식인들이 ‘일본적인 것’을 더 향유하고 소비했다는 뜻이 아니라, “대중의 몰지각함”을 계몽하겠다는 사명으로 ‘왜색’ 판별과 고발에 몰두해야 했던 그들이야말로 ‘왜색’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적 코기토가 인식의 ‘위기’를 초래하는 감각적 대상들을 통해 반성적 주체로서의 자기를 재확인하려는 것처럼, 당대 지식인들은 온갖 영역에서 정력적으로 ‘왜색’을 색출하고 비판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민족적’ 주체로 인식할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왜색’을 낙인찍고 금지하는 자신의 무근거성(비일관성, 자의성)은 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p>
<p>다만 대중음악의 영역은 그러한 판정의 무근거성이 쉬이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독 ‘왜색’ 시비 논쟁에 오르내렸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음악의 영역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영화에서처럼 의상이나 배경에 근간하여 ‘왜색’ 판정의 기준을 정할 수도 없고, 문학에서처럼 일본작품의 무단번역이나 일본어의 남용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중음악은 여타의 대중예술에 비해 명확한 ‘왜색’ 판정의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판정에 대한 반론의 여지를 적잖이 드러내었다. 실제로 &#x003C;동백아가씨&#x003E;의 작곡가 백영호는 ‘왜색’ 판정에 대해 “약 1年前 作曲해서 세상에 내놓은 &#x003C;동백아가씨&#x003E;는 찬사의 홍수를 이루더니 이제는 왜 그 입에서 비난을 일삼을까”라고 항의하며 평론가들의 부당한 주장과 그 논리의 무근거성(비일관성, 자의성)을 조목조목 비판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 『주간 한국』에 게재된 백영호의 이 반박문은 공교롭게도 서경술의 평론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사실상 서경술은 여기서도 “&#x003C;동백아가씨&#x003E;가 ‘일본조(日本調)”를 띠는 것은 확연하다, 다만 그것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간에 직관적으로 확실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새로운 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즉 이 설전은 서경술이 패배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p>
<p>그런데 문제는 그가 이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x003C;동백아가씨&#x003E;를 ‘왜색적인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는 점이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 서경술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음악의 선율은 물질적 형태를 취하지 않으며, 언어적 해석이 불가한 무형상성으로 인해 어떤 악곡이 일본적 색채를 띠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의 난망함, 그 해석될 수 없는 소리가 폭로하는 주체(언어)의 무력함이야말로 그 노래를 그 무엇보다 ‘왜색적인 것’으로서, 즉 가장 혐오스럽고도 ‘악의적’인 것으로 단정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최인훈의 &#x003C;총독의 소리&#x003E;에서 인용한 아래의 문장은 바로 그와 같은 ‘악의’의 해석학을 작동시키는 ‘적대’의 원리를 정확하게 예시한다.</p>
<p>　</p>
<p>　　음악이란 장르는 번역불가능한 것으로 문학의 경우처럼 본질과 풍속의 분리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도인의 정서가 일본선율이라는 벡터(Vector)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제국의 문화정책의 일대승리를 뜻하는 것으로 흡족한 마음 이루 다 할 수 없습니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p>
<p>　</p>
<p>작중의 화자(총독)가 “반도인의 정서가 일본선율이라는 벡터(Vector)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제국의 문화정책의 일대승리를 뜻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던 까닭은 바로 음악의 ‘번역불가능성’에 있다. 즉 음악은 지성의 언어로 그것의 풍속적 특성(한국적인가 일본적인가)을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불순한 ‘악의’를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 것으로 판정되는 것이다. 이성의 힘이 제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일본 대중가요의 ‘흘러간 멜로디’에 속절없이 감상하고 마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고 말했던 최정호의 고백처럼, 음악은 듣는 이를 그 소리의 불가해한 떨림 속에 붙잡아두려 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분석되고 정복되길 거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하염없이 감동시키고 복종시키려 한다.<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그 소리 앞에 철저히 무력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일제(日帝)’를 규탄하는 주체의 목소리도 더욱 더 커져야만 하는 것이다.</p>
<p>그러므로 ‘왜색적인 것’이 왜 ‘악의적인 것’인지를 논하려는 일, 왜 그것이 그토록 제어하기 어려운 ‘악의적인 것’인지를 밝히려는 일은, 이미 그 ‘악의’를 품은 선율에 언표의 주체가 종속되어 있으며 그것에 속절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된다. ‘민족적’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한 주체가 “흘러간 멜로디” 앞에서 제어불능 상태에 놓인 신체를 노출하는 순간, 결국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왜색적인 것’의 ‘악의’에 그 자신이 종속되어 있음을 실토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p>
<p>사회학자 김성민은 ‘왜색’을 금지하고 밀어내려는 강박적 실천은 이미 주체 내부에 내포되어 있는 그것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임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 여기서 논의를 진전시키자면, 무언가 이질적인 요소가 감각됨에도 불구하고 지성의 언어로 그것을 정확히 언어화할 수 없을 때 특정 대상은 ‘왜색적인 것’이라는 부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곧장 주체의 도덕적 의미망에 포획되어 ‘퇴폐’, ‘저속’, ‘외설’ ‘불건전’ 등으로 규정됨으로써 지성의 한계를 상상적으로 극복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환영을 제공했던 것임에 다름 아니다. 발터 벤야민이 지적한 “혐오감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그 혐오감을 매우 세심하게 키워 나가는 태도”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p>
<p>그러므로 ‘왜색적인 것’이란 한국적 전통성과 주체성의 ‘위기’를 논하던 탈식민 담론 속에서 구성된 대상인 동시에, 그 담론의 지속적인 전개를 위해 언제나 무분별하게 유입되거나 범람하는 것으로서 재발견되어야 했던 대상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주체성과 전통성의 적자임을 자임하던 지식인들에 의해 거의 예외 없이 대중문화 속에서 발견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 거칠게 말해 ‘왜색’에 대한 혐오는 지식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혐오였으며, 나아가서는 그러한 사정을 방관한 채 한일협정을 체결한 ‘친일’ 군사정권에 대한 혐오이기도 했던 것이다.</p>
<p>그러나 이와 같은 혐오는 중대한 모순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대상을 두고 그것이 ‘왜색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비교의 실천이 신경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그것은 곧 한국이라는 비교의 주체 스스로가 ‘일본(적인 것)’을 경유하여 ‘한국적인 것’을 상상하고 생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왜색’ 금지의 체제야말로 당대 한국사회 속 그것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p>
<p>사이렌의 노래 없이 오르페우스의 이성의 힘이 증명될 수 없듯이, 지식인들은 ‘대중(문화)’ 속에서 ‘왜색적인 것’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친일권력’이나 ‘무의식대중’과 구별되는 지식인으로 인식할 수 없었으며, ‘금지’의 반복을 통해 ‘악의를 지닌 일본’이라는 사회적 환상을 세심하게 키워나가기 않고서는 동아시아 냉전질서 속 ‘한국’이라는 존재의 주체성과 자율성, 그리고 탈식민성을 사유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그렇기에 한국사회는 그 스스로 부정하려는 ‘왜색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밀어낼 수밖에 없는 ‘악의’의 굴레에 갇혀 맴돌고 있던 것이다.</p>
</sec>
<sec id="sec003">
<title>3. ‘생산에의 의지’와 소비의 시학</title>
<sec id="sec003-1">
<title>3-1. ‘시적인 것’의 효용</title>
<p>앞장에서 살펴본 바대로 ‘왜색’을 둘러싼 당대의 비판 담론은 대중혐오라는 함의를 동반하였는데, 그것은 한국사회 내에서 지식계급의 자기 존재증명이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지식인들은 단순히 ‘일본적인 것’을 “쓸모없는 大衆文化”로 배척하는 부정의 운동만을 반복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긍정성, 혹은 ‘한국적인 것’이라는 주체성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함으로써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예컨대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건전가요 부르기 캠페인을 통해 대중가요 ‘정화’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문학에서는 유주현의 역사소설을 필두로 식민지시기를 배경으로 항일서사 및 민족수난사를 담은 소설들이 활발히 발표되며 멜로드라마적 선악구도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거나 한국의 문화적, 도덕적 우월성을 역설하는 담론들이 전개되었다.</p>
<p>그러나 이 장에서 다룰 연작 단편소설 &#x003C;총독의 소리&#x003E;는 그와 같은 시대 분위기를 고려할 때 다분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텍스트는 타자에 대한 ‘악의’의 해석학을 통해 자기 존재증명을 반복했던 담론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하여, 지식인과 문학적 글쓰기의 ‘쓸모’ 그 자체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라는 부정성을 경유하여 ‘한국적인 것’의 긍정성이 상상되고 생성되었던 당대 시대상에 대해 메타적(비평적) 관점을 선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는 비상한 관심을 요구한다.</p>
<p>최인훈은 1960년대 중후반 &#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 세 편과 &#x003C;주석의 소리&#x003E; 한 편을 포괄하는 &#x003C;소리&#x003E;의 연작을 총 네 편 발표했다.<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 &#x003C;소리&#x003E; 연작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것들이 당대 시점에서는 이미 소멸되어버린 정치적 주체(조선총독, 임시정부주석)와 그의 목소리가 상상적으로 회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며, 나아가 그것이 게릴라 라디오(해적방송) 전파를 타고 청취자에게 전달되어 그들에게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x003C;소리&#x003E; 연작에서 ‘~의 소리’란 기본적으로 현 위기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청취자들에게 정치적 행동의 실천을 요구하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p>
<p>특히 &#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총독의 담화가 ‘악의를 지닌 존재로서의 일본’을 상상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총독은 한반도에 대한 재지배(식민지화) 의지를 드러내며, 반도에서 여전히 은인자중하고 있는 “충용한 제국신민”, “제국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들을 호명한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 그는 자신의 ‘악의’가 점차 실현되는 방식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의 정세가 전개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청취자들에게 변함없는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다. 다만 총독의 담화는 한국사회에 대한 험담이나 조소, 빈정거림으로만 일관되는 것이라, 한편으로는 국내외적 정세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드러내며 반성적인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양의적인 성격을 지닌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따라서 한일국교정상화라는 역사적 사건과 &#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을 겹쳐 읽으면 한일협정의 부당함과 그것이 가져올 총체적인 악영향 등을 역설적 화법을 통해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이해가능하다.</p>
<p>그러나 이행미의 연구가 지적했듯, 이와 같은 해석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나 텍스트에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 시인의 존재를 쉬이 간과하도록 만든다.<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 &#x003C;소리&#x003E; 연작은 게릴라 라디오의 청취자로서 시인을 등장시킨다. 특히 &#x003C;총독의 소리&#x003E;는 총독의 담화가 “충용한 제국신민”, “제국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들이 아니라,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호명에 부응할 수 없는 시인에게 전달된다는 특수한 상황을 내포한다.</p>
<p>늦은 밤 시인은 ‘총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스스로 갈기갈기 해부해 놓은 청각기관을 한사코 긁어 세워서 부서진 청진기로 천리 밖에 있는 함정을 알아보려는 사람처럼 귀를 곤두세운” 그는 ‘총독의 소리’에 이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그것은 시인에게 매혹의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눈앞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붙잡아 둘 수도 없기 때문에 단연히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그 목소리, 즉 ‘총독의 소리’는 시골뜨기를 문전에 붙잡아둔 카프카 소설의 ‘법’처럼 시인을 얽어매고 그를 무력화하는 힘을 발휘한다.</p>
<p>　</p>
<p>　　지척 지척 내리는 비 소리와 어울려 들려오던 방송은 여기서 뚝 그쳤다. 그는 어둠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창틀을 꽉 움켜잡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더 어두운 소리들이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피아노 치는 손마디 소리. 부스럭대는 엽전잎 소리. 올빼미의 목쉰 울음. 어딘가에서 다리미질하는 은밀한 소리. 니나노 니나노. 창백한 손마디에 쌍가락지 끼는 소리. 유세장으로 실려다가다 객사한 늙은 아이들의 허기진 울음. 총독의 피 묻은 너털 웃음. 시인의 흐느끼는 소리―오 아시아의 비극의 밤은 길기도 함이여. 그리고 아주 가까이 아주 아주 가깝게 들리는 소리. <bold>아구구아구구아구구구아구구구구. 비명. 아구구아구구구아구구구구구.</bold> 빗소리와 범벅으로 어우려져 들려오는 그 많은 소리들 가운데서 제일 가깝게 들려오는 이 소리는 그의 목구멍 속에서 나오는 소리였다.<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강조-인용자)</p>
<p>　</p>
<p>　　방송은 여기서 뚝 그쳤다. 시인은 어둠을 내다 보았다. 그리고 창틀을 꽉 움켜잡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중략…) 방대한 헛소문이 엉킨 전선들의 잡음처럼 뜻 없는 푸른 불꽃을 튀기는 속에서 갈피 있는 통신을 가려내기 위해서 원시의 옛날의 울울한 숲에서 먼 천둥소리를 가려 듣던 원시인의 귀보다 더욱 가난한 초라한 장치를 조작하면서 이 세상의 악의와 선의의 목소리를 알아 들으려는 나를 죽이려는 움직임과 나에게 따뜻한 지평선을 가리키는 손길 끝의 무지개를 알아보려는 마음으로 (…중략…) 한 여자의 진실을 배반했기 때문에 시의 여신의 복수를 받아서 너절한 시밖에는 쓰지 못하게 된 시인과 자기도 감당하지 못할 너무나 좋은 말을 너무도 많이 했기 때문에 한 평생을 거짓말만 하고 살아야할 사람들과 이 세상에는 까닭과 갈피와 앞뒤끝이 있어야 한다는 병적 공상 때문에 정신병원의 어두운 창살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밝은 웃음을 수수께끼처럼 바라봐야 할 신세가 된 사람들과 그 자신이 살고 있는―이 도시를 바라보면서 오래 오래 서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p>
<p>　</p>
<p>시인의 이성은 “방대한 헛소문이 엉킨 전선들의 잡음”에 불과한 총독의 메시지가 허위적이고 모순적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지만, 그의 감정은 근사하고도 실감나게 메시지를 설파하는 화법에 이끌리며 반복적으로 ‘총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 문제는 ‘방송’이 종료된 후 기나긴 사유의 과정을 거치고도 그가 확고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그는 명확히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시어들을 “비명”처럼 내지를 뿐이며, 어둠이 내리깔린 “도시를 바라보면서 오래 오래 서” 있을 따름이다. 독자는 시인이 총독의 담화를 속 시원히 반박해주기를 기대할지도 모르지만, 끝내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 채로 소설은 막을 내리고 만다. 즉 시인은 총독이 그토록 조소하는 “정치적 음치(音癡)”임에 다름 아니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 이처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논리정연하게 밝힐 수 없는 존재인 시인은 무력하다. 그러나 무력한 시인의 그 “비명”이야말로 “방대한 헛소문이 엉킨 전선들의 잡음”들과 이 연작 텍스트를 근본적으로 구별 짓는 중요한 차별점이 아닐까.</p>
<p>우선 시인이 “악의와 선의의 목소리”를 분별한다거나 ‘총독의 소리’가 어째서 잘못된 것인지를 비평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 보자. 이는 그가 다름 아닌 ‘시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함을 뜻한다. 총독의 담화가 ‘소설적인 것(the novelistic)’을 구성하는 것, 즉 “공들여 구상되고 자급자족적이며 의미화된 행들로 귀결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라면,<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 시인은 그와 정반대되는 ‘시적인 것(the poetical)’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작가 최인훈이 어째서 지식인의 대표 혹은 그 자신의 분신처럼 비춰지는 등장인물을 시인으로 설정하였는가에 대한 정확한 의도 파악은 불가능하다. 다만 총독의 담화가 구축한 논리의 세계, 그 철저히 ‘악의’에 의해 “공들여 구상되고 자급자족적이며 의미화된 행들로 귀결되는 세계”에 맞설 존재로 시인이 등장함으로써, 작가의 의도 여하와는 무관하게 이 텍스트는 ‘소설적인 것’과 ‘시적인 것’의 대결구도를 가시화한다. 총독의 담화에 또 다른 담화로 맞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탈신비화하고 해체할 ‘시적인’ 사유를 촉발한다는 점에서 &#x003C;총독의 소리&#x003E;는 새로운 반성적 사고의 지평을 개시한다.</p>
<p>작중 시인이 논리적 구조를 구축해가는 서사적 글쓰기 대신 단말마적인 “비명”의 시를 쏟아낼 수밖에 없던 까닭, 그것은 아마도 총독과 제국 일본의 존재를 부정하는 ‘적대’의 글쓰기가 그들의 정치적 화법과 똑 닮은 형식을 통해 이뤄지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궁극적으로 그들을 또 다시 긍정하고 불러들이는 순환성의 오류에 갇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인 것이다. 현 위기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청취자들에게 정치적 행동의 실천을 요구하는 담화의 형식, 그것은 곧 지성의 언어와 권력의 언어가 하나가 되어 공명하는 글쓰기 실천의 방식이자 “방대한 헛소문이 엉킨 전선들의 잡음”이 제각기 그럴싸한 정치적 이념으로 미화되어 인민을 현혹하는 방식임을 시인은 ‘비명’을 통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온전히 ‘선의’에 의해 쓰인 것처럼 비춰지는 “환상의 상해임시정부” 주석의 담화문에도 회의적 태도를 취하며 완전한 긍정과 부정을 보류하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p>
<p>따라서 시인의 존재는 단순히 무력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악의’의 해석학적 순환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지 아니면 적(friend or foe)’이라는 적대적 판단원칙을 고수하는 ‘정치적 절대음감’의 소유자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음치”가 되어야 한다고 시인은 몸소 예시한다. 김동식의 연구가 정확히 지적했듯 “총독은 한국 사회의 집단적 무의식의 후미진 모퉁이에 억압되어 있는 그 무엇”이자 “우리 내부에 숨겨진 자아이자 타자”라고 볼 수 있으며,<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 시인은 그 초월적인 자아/타자의 목소리에 순응하길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시적인’ 존재가 된다. 그는 강박적으로 ‘올바른 소리’만을 가려내려는 비교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한편으로, 저 “비명”같은 시어들의 불협화음 속에서 전혀 다른 ‘소리’의 출현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p>
<p>그러나 그것은 결코 예술의 태고적인 힘이 복원되는 신화적인 형태를 지시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이행미의 연구도 &#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에서 시인의 위상을 비중 있게 다루며 그것이 지니는 문학적 의미에 천작하였는데, 최종적으로는 최인훈 문학의 본령이 ‘시’의 추구에 있으며, 그것을 곧 “말과 힘이 분리되지 않는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규정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 아마도 이는 &#x003C;주석의 소리&#x003E; 중에서 “말이 권력과 금력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들은 국민이 권력과 금력을 움직이는 것입니다”라는 작중 주석의 발언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 그러나 그처럼 ‘말’과 ‘힘’이 합일된 예술적 시원에의 회귀라는 준거 틀로 텍스트를 평가한다면, 시인의 “비명”은 그것의 중도실패를 의미하게 되고 결국 &#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은 완성성의 결여라는 부정적 가치평가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p>
<p>오히려 &#x003C;소리&#x003E; 연작은 총독과 주석의 담화문처럼 ‘말’과 ‘힘’을 합일시키려는 회고적인 글쓰기에 대한 풍자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래의 인용에서처럼 총독의 담화가 점차 시인의 화법을 닮아가며 불가해한 말들을 나열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이는 ‘말’과 ‘힘’의 합일을 추구해온 정치적 글쓰기가 분열의 징후를 드러내며 그 자체의 허구성과 허위성을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총독의 화법이 시인의 그것을 닮아가는 과정은 “말과 힘이 분리되지 않는 문학”의 이데아가 점차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와 같은 문학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탈구축되는 과정인 셈이다.</p>
<p>　</p>
<p>　　깊은 밤 돌아가는 길에 창을 내린 군용열차의 검은 운동을 사춘기의 눈으로 바라본 현지인 소년들은 무릇 기하이며 그들의 생애에 끼친 재류 일본인 부녀자들의 밤의 문간에서의 찰나의 시선의 양은 무릇 기하이며 벌과 고문실 사이를 잇는 우주와 역사의 신비를 위하여 엇되게 잠을 설친 식민지 대학생의 귀성한 밤의 시간의 총량은 무릇 기하이며 자욱한 안개 속 シナノヨル 속에서 민중의 종교에 불을 붙여 물고 바이칼의 바람이 스산한 고향의 하늘 밑에서 고량이삭처럼 멋쩍었던 첫사랑의 밤을 회상하는 샹하이의 소녀는 무릇 기하이며 (…중략…) 일세를 도도히 흐르는 귀축들을 흉내낸 하이칼라 바람으로부터 제국의 향기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의 실존을 쇄국(鎖國)하여 국수(國粹)를 앓은 자의적 병자와 가난한 것이 곧 국수였던 타의적 병자는 무릇 기하이며 그것은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하여 그것이 서러워서 더욱 쇄국(鎖國)의 길을 달려간 사람들은 무릇 기하이며 달려간 사람들의 선봉에 서서 타향의 적지(敵地)에서 철조망의 이슬로 사리진 충용한 장병이 무릇 기하인지. 본인은 다만 가슴벅찰 뿐입니다. 충용한 군관민 여러분 오늘을 당하여 권토중래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는 것만이 반도에서 구령을 지키는 우리들의 본분이라고 알아야 하겠읍니다. 제국의 반도 만세.<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p>
<p>　</p>
<p>위 인용된 부분은 &#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 중 제3편에 해당하는 결말부분인데, 이때 총독이 시인의 화법을 닮아가는 현상과 더불어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껏 1편과 2편에서 등장했던 청취자로서의 시인이 나타나지 않은 채 저대로 소설이 막을 내린다는 점이다. 즉 3편의 결말은 청쥐자를 불특정다수로 무한정 확장시킨다. 이와 같은 글쓰기 전략은 텍스트를 읽고 있는 독자에게 그 청취자의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총독의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 소수 지식인들만의 과업일 뿐 아니라 독자 일반의 과업으로서도 전유되어야 함을 환기하는 것이다.</p>
<p>반면 총독의 담화전략이 지니는 특징은 그것이 기존하는 “충용한 제국신민”을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 담화를 불특정다수에게 전파함으로써 그와 같은 정치적 주체 자체를 생산하려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담화 방식은 단순히 허구적 텍스트 속에서만 찾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임태훈의 연구가 지적했듯 60년대 한국사회에서 라디오는 정치적 도구로 활발히 이용되며 정권의 프로파간다 방송을 ‘벽촌(僻村)’에까지 송출하는 기능을 도맡았다.<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 단지 이 경우에는 “충용한 제국신민”을 대신하여 “친애하는 국민여러분”이 호명되며 정권에 순종하는 ‘국민’의 형상이 주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x003C;총독의 소리&#x003E;는 단순히 식민지적 향수에 이끌리는 몰지각한 독자에게 경고와 비판의 메시지를 주었던 것이 아니라, 정권의 프로파간다 방송을 패러디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그것 또한 그럴싸한 화법으로 인민을 현혹시키는 “방대한 헛소문이 엉킨 전선들의 잡음”에 지나지 않음을 독자가 자각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p>
<p>이러한 ‘낯설게 하기’의 화법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적 맥락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제’의 범람 혹은 식민지의 잔재란 일반 통념대로 대중문화나 그것을 향유하는 ‘대중’의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국가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주체로서 재생산하려는 정권의 담화와 그에 저항하면서도 권력의 권위적 논법을 그대로 닮아버린 지식인들의 담화 속에 잠재되어 있음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당시 군사정권은 ‘순종적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수출주도형의 국가건설에 몰두했으며, 그 반대편에서는 정권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민족적 정통성에 근거하여 민주주권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자 ‘건전한 시민’ 만들기의 계몽 프로젝트를 전개하였다. 이 텍스트는 그처럼 ‘국민’과 ‘시민’ 되기를 역설하는 담론들이 사실상 저 ‘악의적’으로 표상된 총독의 담화와 닮아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급진적인 의문을 가시화한다.</p>
<p>따라서 담화를 거부한 시인의 “비명”은 ‘말’과 ‘힘’의 합일이라는 글쓰기의 이데올로기적 생산 기능을 방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비명은 수많은 무명의 존재들의 “피아노 치는 손마디 소리, 부스럭대는 엽전잎 소리, 올빼미의 목쉰 울음, 어딘가에서 다리미질하는 은밀한 소리, 니나노 니나노. 창백한 손마디에 쌍가락지 끼는 소리, 유세장으로 실려다가다 객사한 늙은 아이들의 허기진 울음 총독의 피 묻은 너털 웃음”과 뒤섞이며 주어를 상실한 거대한 울림을 이루고, 그 의미 전달과 설득의 논리를 방기한 ‘소리’의 덩어리 속에서 타자와의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이 모색되는 것이다.</p>
<p>물론 그것은 암중모색의 단계에서 그쳤지만 이는 무력한 좌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미완’의 영역은 ‘애국자 대 용공분자’, ‘시민적 교양과 대중의 몰지각함’, ‘반일 아니면 친일’, 등 적대의 ‘정치적 절대음감’만을 강요했던 당대 사회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환기하는 것이 아닌가. 시인의 임무는 그 ‘정치적 절대음감’을 훈육하는 서사에 맞서 부단히 그것을 미숙하고 부정합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다. 제 사물들을 종합하고 그것들 사이의 우열관계를 규정하는 총독의 담화와 그 아류들에 반하여, 시인의 “비명”은 사물들을 무차별적으로 나열하며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미완’의 성좌(constellation) 속에 남겨둔다.</p>
</sec>
<sec id="sec003-2">
<title>3-2. 생산의 노래와 금지된 소리</title>
<p>그러나 이 ‘미완’의 시학이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당시 정권과 지식인 모두에게 지탄의 대상이었던 ‘무의식대중’에게 있어 그것은 반성적 차원을 경유하지 않고도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장에서 필자는 ‘왜색’에 대한 혐오는 곧 대중(문화)에 대한 혐오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혐오는 필연적인 것이라기보다, 경제적인 부의 생산이든, 민족적 주체성의 생산이든 여하튼 간에 무엇이든 정력적으로 생산하고자 했던 당대 한국사회의 의지가 낳은 부작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당대 군사정권과 그에 대항했던 지식인들은 각자의 분명한 입장 차이에서도 불구하고 이른바 ‘생산에의 의지’를 공유하였던 셈이다. <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 그것은 ‘총독의 소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과 힘이 일치된 권력의 언어가 “공들여 구상되고 자급자족적이며 의미화된 행들로 귀결되는 세계”를 건축하려는 의지임에 다름 아니며, 이는 곧 ‘총독의 소리’가 그 주어만 교체된 채 ‘정치인의 소리’ 또는 ‘지식인의 소리’로 회귀하여 이데올로기적 호명의 전술을 반복했음을 의미한다.</p>
<p>앞서 박두진은 “우리 無意識大衆이 低俗한 倭國文化에 휩쓸려들 것은 勿論”일 뿐 아니라, “現在日本의 大多數知識層의 政治的 向背의 左傾的인 影響 역시 우리의 對共意識을 不透明하게 만들 憂慮”가 있다며 한일협정 반대를 주장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38"><sup>38)</sup></xref> ‘低俗한 倭國文化’와 ‘政治的 向背의 左傾的인 影響’은 그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상이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양자 모두는 한국의 내부 정체성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악의적인 것’으로서 동질화된다. ‘低俗한 倭國文化’이든 ‘政治的 向背의 左傾的인 影響’이든 간에 ‘일본(적인 것)’의 영향은 ‘한국적인 것’의 총체적 ‘쓸모’(가치)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 표상되었다. 특히 민족주의 우파 지식인들이 견지했던 이러한 일본 인식은 그에 대한 방어적인 태세를 구성했을 뿐 아니라, ‘친일적’ 군사정권과의 차별화된 민족적 정통성과 정치적 주체성의 ‘생산-축적-확대’라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p>
<p>그런데 이러한 생산주의의 대원칙은 한일협정을 추진한 군사정권의 지침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지식인들의 한일협정 반대논리를 피해의식과 열등감의 소산으로 규정하며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고 나가겠다는 優越感”과 “積極的인 姿勢”를 강조한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39"><sup>39)</sup></xref> 물론 이러한 주장은 당시 비대칭적 권력구도에 있던 한일관계를 고려한다면 현실성을 결여한 것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40"><sup>40)</sup></xref> 다만 ‘일본(적인 것)’이 진정 ‘악의적인 것’이라면 주체 스스로가 그것을 이겨낼 만큼 강력해지면 된다는 자강의 논리 또한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내부적 ‘생산-축적-확대’를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반대파의 논리를 단순히 물리치기보다 그와 동일한 궤도를 형성함으로써 그것을 자기 편의대로 포괄하고자 했던 것인데, 이는 곧 ‘한국적인 것’의 총체적 ‘쓸모’와 배타적 국가체제를 구성할 수 있는 결정적 권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었다.</p>
<p>결국 당대 한국사회의 엘리트들은 정치적 현안을 둘러싼 명백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것을 창조해야 한다’라는 프래그머티즘적인 사유를 공유했었다고 볼 수 있다. ‘생산량의 증대-해외 수출-부의 축적-근대화 실현’이라는 개발주의의 환상이 그 동력원으로서 ‘국민’을 생산하려 하고, 그 반대편에서 독재개발체제에 저항했던 지식들 또한 올바른 국가적 정통성의 확립과 민주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저항하는 ‘시민’ 생산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경계되고 죄악시되었던 것은 ‘국민’과 ‘시민’이라는 규정적 정체성이 소멸되는 지점으로서의 대중문화, 그리고 그것을 ‘소비’함으로써 비로소 자율적인 개인을 향유할 수 있었던 ‘대중’임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야말로 “국경을 넘는 문화적 현대성의 매개”로서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외부의 이질적인 것과 소통하고 있었으며, 그처럼 국가사회의 정치경제학적 규범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개인을 구속하려는 온갖 ‘정치인의 소리’와 ‘지식인의 소리’를 불안정한 ‘미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던 것이다.</p>
<p>이런 맥락상에서 볼 때 음악에 대한 총독의 발언, “음악이란 장르는 번역불가능한 것으로 문학의 경우처럼 본질과 풍속의 분리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도인의 정서가 일본선율이라는 벡터(Vector)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제국의 문화정책의 일대승리를 뜻하는 것으로 흡족한 마음 이루 다 할 수 없습니다”라는 발언은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즉 ‘왜색’ 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통제는 ‘일본(적인 것)’에 대한 금제이기 전에, 주체를 ‘비생산성’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정서적 벡터(소비활동)에 대한 통제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정서적 벡터를 ‘교화’해서 ‘생산에의 의지’로 전환시키기 위해 ‘왜색’ 금지 운동뿐 아니라 건전가요 부르기 캠페인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비근한 예로서 박정희가 직접 작사·작곡한 &#x003C;새마을노래&#x003E;, &#x003C;나의 조국&#x003E; 같은 것을 들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41"><sup>41)</sup></xref> 그 군가풍의 노래들은 단지 ‘생산에의 의지’를 고취하는 기능을 했을 뿐만이 아니라, “貧困과 奈落과 安逸無事主義” 혹은 “分裂 派爭”과 대비되는 ‘생산적인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대상 그 자체를 생산하였다고 볼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42"><sup>42)</sup></xref> 즉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거나 ‘생산-축적-부의 증대’라는 부르주아적 경제 성장원리를 교란하는 일체의 것들을 ‘소비적인 것=대중적인 것=왜색적인 것=악의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그와 대비하여 정부 그 자신은 국가의 근대화라는 ‘생산적인 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신화적 의미체계를 구축했던 셈이다.</p>
<p>그러나 대중문화에 “속절없이 감상하고 마는” 감정의 번역불가능성은 결코 국가와 지성의 언어로 통제될 수 없었으며, 그러한 통제가 오히려 강력한 ‘저항에의 충동’을 야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저항 충동’은 지적인 반성의 결과라기보다 온갖 ‘권력의 언어’에 대한 ‘신체적 저항’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무심코 흐르던 레코드의 선율이 중지된 이후의 적막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이, 금지된 ‘소비’와 그것에 대한 일상적 위반은 일정한 틀로 주조되고 생산된 자기정체성이 아닌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자아의 가능성을 현시했다. 그런 연유로 국가의 ‘생산성’과 사회의 ‘건전성’을 부르짖던 노래들이 ‘한낮’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어둠이 내리깔린 ‘한밤’의 세계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다. 최정호의 말처럼 “밤이 되어 노곤한 몸에 술이나 한잔 들어가고 나면” 노동에 지친 사람들은 건전가요가 자아내는 ‘통제된 서정성’의 선율에서 해방되어 금지된 ‘소리’의 영역으로 흘러들어 갔던 것이다. 그것은 총독이 말하는 “제국의 문화정책의 일대승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통금’이 내린 노동재생산의 시간이 일탈과 향락의 시간으로 ‘소비’되며 모든 권위적 문화정책들의 ‘일대참패’가 선고되는 지점이었던 셈이다.</p>
<p>&#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은 그처럼 말과 힘이 합일된 문학의 ‘실패’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적인 것’이 될 수 있었으며, 그 ‘미완’의 시학을 통해 ‘생산에의 의지’를 소진시키고 소비해버린다는 점에서 지식인의 자기비판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즉 작가의 의도여부를 떠나 이 텍스트는 지식인의 자기기만적 역설을 ‘억압된 것의 회귀’라는 형식을 통해 직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앞서 필자는 시인의 무력해 보이는 “비명”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인 정치담화를 불안정한 ‘미완’의 것으로 되돌려놓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총독의 ‘악의’의 해석학을 저지하는 그 처절한 “비명” 없이는, 타자의 불가해성과 판별불가능성을 ‘악의적인 것’으로 단정 짓는 ‘적대’의 메커니즘과 대중혐오의 ‘무근거성(비일관성, 자의성)’이 미학적으로 가사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x003C;총독의 소리&#x003E; 연작을 단순히 한일국교정상화의 부당함, 일본의 침략근성, 군사정권의 굴욕적 외교 등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해석하는 것은 표면적 독서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연작 텍스트는 ‘일본’이라는 상상적 타자를 경유하여 한국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도덕적 요구의 역설”을 알레고리적으로 환기하고, 그 모순의 정점에 서 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요구한다.</p>
<p>요컨대 그것은 ‘일본(적인 것)’의 출현을 ‘악의적인 것’의 침입으로 단정하고, 몰지각한 대중이 그러한 ‘악의’의 실현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가로지름으로써, 그것이 곧 당대 한국사회 내부의 뒤틀림, 부조리, 불완전성 등을 감추기 위해 마련된 하나의 일그러진 형상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xref ref-type="fn" rid="fb043"><sup>43)</sup></xref> 즉 ‘대중적인 것=왜색적인 것=비생산적인 것’에 대한 혐오란 사실상 지식인 그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비이성적이고도 감정적인 영역에 대한 혐오가 투사된 것에 불과함을 예시한다. 한국사회의 내적 통제원리를 구축하려는 ‘생산에의 의지’가 강력하게 발동하면 할수록, 혹은 그 ‘생산에의 의지’가 지닌 억압적이고도 폭력적인 이면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되풀이하여 끌어들어야만 했던 ‘일본(적인 것)’의 대타성(alterity). 완전히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소멸시켜 버릴 수도 없는 그 역설적 대상 앞에서, 숨겨둔 내면의 비밀이 투사된 그 금기의 ‘소리’ 속에서, 안정된 목소리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시인의 “비명”은 반복해서 자문하는 것이다.</p>
</sec>
</sec>
<sec id="sec004">
<title>4. 결론을 대신하여: “Blue ‘Night’ Yokohama”를 흥얼거리는 소리의 풍경</title>
<p>재일한국인 출신의 저명 성악가이자 음악 에세이스트인 전월선(田月仙)은 2000년대 중반 한국의 한 중고음반점에서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빽판’을 손에 넣었다. 그녀가 발견한 앨범은 일본의 가수 이시다 아유미(いしだあゆみ)의 &#x003C;블루 라이트 요코하마(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x003E;(1968)의 해적판 앨범이었다. 그녀가 이 앨범의 해적판을 굳이 추적했던 까닭은 금수조치에서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일본가요의 흔적을 직접 더듬어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 대히트하여 밀리언셀러의 판매고를 기록한 노래 &#x003C;블루 라이트 요코하마&#x003E;, 경쾌하고도 세련된 선율이 특징적인 이 노래는 전파월경을 통해 한국사회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속으로 흘러들어와, 일어세대뿐 아니라 해방이후에 출생한 일본어를 모르는 젊은 세대조차 그 멜로디를 흥얼거릴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 ‘왜색’으로 간주되던 트로트 작법을 따르지 않은 재즈풍의 곡이었기 때문에, 새롭고 세련된 음악을 갈구하던 젊은 세대에게 더 큰 관심과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당시 모든 일본가요는 예외 없이 ‘왜색조’를 이유로 금지되었기에 이 노래 또한 ‘빽판’으로 불법 복제되어 유통될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입에서 입으로 그 의미도 모르는 가사가 구전되며 불리곤 했다.<xref ref-type="fn" rid="fb044"><sup>44)</sup></xref></p>
<p>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 노래는 점차 한국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난 뒤 한 음악가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자신의 빛바랜 모습을 세상 앞에 다시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녀가 발견한 ‘빽판’에는 노래의 제목이 교묘하게도 바뀌어 있었다. 아래의 그림에서처럼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Blue Light Yokohama)’가 어이없게도 ‘블루 나이트 요코하마(Blue Night Yokohama)’로 그 표제를 바뀌어 달고 있는 것이다.</p>
<p>전월선은 이 조악한 ‘빽판’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는 소감을 밝혔지만, ‘블루 라이트’가 ‘블루 나이트’로 뒤바뀌어야 하는 저 기막힌 사례는 쉬이 웃어넘길 수 없는 한국근대사의 슬픈 이면을 가시화하는 것이 아닐까. 서장에서 언급한 최정호의 표현을 빌려 “불행”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무엇이 저 도시의 삶과 연인들의 사랑을 칭송하는 “푸른 빛(블루 라이트)”의 노래를 “우울한 밤(블루 나이트)”의 노래로 고쳐 부르게끔 만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단지 금지의 체제를 교묘하게 피하거나 검열의 눈을 속이려던 당시 불법복제의 조잡한 수법을 예시하는 것이라기보다, 철권적인 국가권력에 의해 자유의 ‘푸른 빛’이 소등되어야 했던 ‘통금이 내린 밤’의 우울한 풍경 전체를 떠올리게끔 만든다.</p>
<fig id="p002"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41427&amp;imageName=jpn_2019_25_01_349_p002.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p>좌측이 이시다 아유미의 앨범 &#x003C;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Blue Light Yokohama)&#x003E;(1968)</p>
<p>우측이 불법 복제된 ‘빽판’인 &#x003C;BlUE NIGHT YOKOHAMA&#x003E;. 일본가요인 것을 감추기 위해 제목이 모두 알파벳으로 적혀 있으며, 한국에서 생산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p>
</fig>
<p>그러나 이 “우울한 밤”의 풍경이 권력 아래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만을 표상하는 것은 아니다. 저 무의도적이고도 즉자적으로 들려오던 노래조차도 금지의 체제를 통해 불온한 ‘소리’가 되어 떠돌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적극적인 청취 욕구를 자극하는, 전에 없던 ‘영력(靈力)’을 얻기 때문이다. 즉 무언가가 들린다는 것이 생리적인 현상이라면 무언가를 듣는다는 것은 정신적인 행위에 해당한다.<xref ref-type="fn" rid="fb045"><sup>45)</sup></xref> 이미 일상을 맴돌고 있는 ‘소리’의 금지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위반하고 있던 인간에 대한 금지이고 억압이기에, ‘무언가가 들려온다’라는 생리적 현상이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듣고 말겠다’라는 정신적인 행동으로 전환되는 ‘저항에의 충동’을 야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60년대 한국사회에서 라디오는 정치적 도구로 활발히 이용되며 정권의 프로파간다 방송을 송출하는 기능을 도맡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북한이나 일본으로부터 넘어 오는 불온한 ‘소리’를 청취하기 위한 반목적적인 도구로서 활용되곤 하였다. <xref ref-type="fn" rid="fb046"><sup>46)</sup></xref>
</p>
<p>그러므로 “왜색적인 것”에 대한 취미와 향유를 “식민지시대에 대한 향수”에서 기인한 것으로 한정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규율과 통제가 낳은 일탈의 충동이 아니었을까. ‘왜색’ 비판 담론들은 대중가요의 “어둡고 슬픈 정조”, “짜는듯한 소리”를 힐난했지만, <xref ref-type="fn" rid="fb047"><sup>47)</sup></xref> 그것은 역으로 인간존재가 “씩씩하면서도 명랑하게” 살아가길 강제하는 권력의 의도대로만 삶을 영위하는 존재가 아님을 반증했던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48"><sup>48)</sup></xref> 그런 맥락에서 볼 때 &#x003C;Blue ‘Night’ Yokohama&#x003E;를 흥얼거리던 당시의 풍경은 군사정권의 통치 아래 짓눌려 있던 한국사회의 모습을 환기한다는 점에서는 애처롭지만, 동시에 그 권위적인 의미의 체계를 우스꽝스럽고 초라하게 만들었던 ‘소리’의 영력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양의성의 정치미학을 내포하게 된다. 국가와 사회에 의해 비생산적이고 유해하며 비천한 것으로 규정되었던 예의 금지된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존재들은 그 몰두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력을 소비했을 뿐만 아니라, 기꺼이 그 스스로가 비생산적이고 유해하며 비천한 존재가 됨으로써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국가사회의 규범 그 자체를 소비해버렸던 것이다.</p>
<fig id="p003"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41427&amp;imageName=jpn_2019_25_01_349_p003.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p>&#x003C;동백아가씨&#x003E;의 일본어 버전 &#x003C;사랑의 붉은 등불(愛の赤い灯)&#x003E;을 몰래 끼워 넣은 편집 음반인 &#x003C;리듬파레이드 25집&#x003E;. 출처: <xref ref-type="bibr" rid="B033">『대중문화 ‘빽판’의 시대』(청계천 박물관, 2018)</xref>.</p>
</fig>
<p>끝으로 &#x003C;동백아가씨&#x003E;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x003C;동백아가씨&#x003E;는 금지 처분 이후에도 해적판(빽판)이 나돌며 대중의 지속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심지어는 이미자가 일본에서 발매한 &#x003C;동백아가씨&#x003E;의 일본어 버전인 &#x003C;사랑의 붉은 등불(愛の赤い灯)&#x003E;이 무단 복제되어 팔리기도 하였다. 위의 그림은 &#x003C;사랑의 붉은 등불&#x003E;을 몰래 끼워 넣어 발매된 ‘빽판’으로, 등사지에 수기로 작성된 조악한 가사집이 첨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복제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해상도가 떨어지며 겉표지가 하얗게 되어버린 이 앨범을 ‘백반(白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빽판’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을 만큼,<xref ref-type="fn" rid="fb049"><sup>49)</sup></xref>> 금지의 체제가 역으로 ‘소리’의 지하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아이러니를 초래했다.</p>
<p>요컨대 총독의 담화 속에 시인의 비명이 새어나오고 턴테이블 위의 음반이 히스와 노이즈를 동반하며 재생되는 것처럼, 배타적인 내부의 원리를 구축하려는 운동들은 그 내부 질서를 위협하는 이질적인 힘을 동시적으로 생산했다. 이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대상과의 접촉을 회피하면서도 그것을 손에 쥐고자 하는, 또는 이미 손에 쥐어져 있는 그것과의 접촉을 부정하려는 ‘장갑’의 원리를 가시화했다. 그런데 개인을 소비하는 주체로 전환시키는 ‘소리’의 영력은 바로 그러한 ‘장갑’의 원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었음에 다름 아니다. ‘대중적인 것=왜색적인 것=비생산적인 것’이라는 당대 한국사회의 혐오스러운 대상들. 국가나 사회가 “혐오스러운 그것을 재빨리 움켜쥐고 먹어 치우기 위해” 제 아무리 견고한 ‘장갑’으로 무장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무형질의 ‘소리’처럼 미끄러지며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것이었고, 또 다시 망령처럼 돌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었던 셈이다.</p>
<p>결국 ‘장갑’의 “도덕적 요구의 역설”은 이성적 주체(국가 및 사회)가 ‘대중적인 것=왜색적인 것=비생산적인 것’에 이끌리는 비천한 존재들과 자기를 양분함으로써, 이미 자기 안에 내포되어 있는 타자적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였던 것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네들의 의식분열”로 귀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적인 것)’, 그 금지된 ‘소리’의 계보는 한편으로 한국사회의 “의식분열”의 계보로서 읽힐 수 있으며, 그 계보는 저 ‘빽판’들의 사례가 보여주듯 “혐오감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그 혐오감을 매우 세심하게 키워 나가는 태도” 속에서 점차 중층화되고 정교화되어 온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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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발터 벤야민, ｢장갑｣,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김영옥·윤미애·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2007, 78쪽</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김성민은 그의 저서 『일본을 禁하다』에서 “국가·민족 정체성의 문제로서 왜색이 비판되는 것과 일본 대중문화가 유통, 소비되는 현실은 하나의 통일된 담론으로 파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분명 일리가 있는 설명이지만, 오히려 이 글에서는 그 둘이 거의 “하나의 통일된 담론”인 것처럼 생산되고 수용될 수밖에 없었던 당대사적 특수성에 주목하려 한다. 특히 “국가·민족 정체성”의 위기를 “일본 대중문화가 유통, 소비되는 현실”을 통해 입증하고자 했던 당대 지식계급의 담론구조를 문제화하려 한다. <xref ref-type="bibr" rid="B019">김성민, 『일본을 禁하다』, 글항아리, 2017, 41-42쪽</xref> 참고.</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최정호, ｢일본과 독일과 우리｣, 『세대』 제85호, 1970.8, 87쪽</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이 글에서 말하는 ‘왜색’ 또는 ‘왜색적인 것’이란 그러한 해석규범을 통해 언표화된 ‘담론의 대상으로서의 일본 또는 일본적인 것’을 지칭한다. 즉 그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그 문화의 실제적 특성을 그대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적인 것’의 내부성(주체성)이 지적으로 사유되고 반성되는 과정에서 소급적으로 구성된 ‘일본(적인 것)’의 표상인 것이다.</p></fn>
<fn id="fb005"><label>5)</label><p>이와 같은 견해에 대한 반박은 <xref ref-type="bibr" rid="B032">장유정, ｢한국 트로트 논쟁의 일고찰―이미자 관련 논쟁을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제20호, 2008, 56-59쪽</xref>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여론 주도층과 문화계 지인식들이 주도했던 ‘왜색’ 비판 여론에 정권이 발맞추어 “단호한 일본색 척결의 포즈”를 취함으로써, 한일국교정상화로 인한 반정부적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했다는 이영미의 최근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xref ref-type="bibr" rid="B028">이영미, 『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인물과 사상사, 2017, 178-197쪽</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서경술, ｢歌謠의 日本調―어떤 것이 倭色인가｣, 『경향신문』, 1965.9.27.</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당시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표명했던 글들은 <xref ref-type="bibr" rid="B001">『사상계』</xref>, <xref ref-type="bibr" rid="B006">『청맥』</xref>, <xref ref-type="bibr" rid="B003">『신동아』</xref>, <xref ref-type="bibr" rid="B002">『세대』</xref> 등을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이 중 정권에 대항하여 강건한 입장표명을 했던 잡지로서는 <xref ref-type="bibr" rid="B001">『사상계』</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6">『청맥』</xref>이 유명하지만, 정치·경제·문화 제 영역에 걸쳐 일본 및 한일관계에 관한 포괄적이고도 체계적인 담론을 지속하여 생산했던 잡지는 <xref ref-type="bibr" rid="B003">『신동아』</xref>였다. <xref ref-type="bibr" rid="B003">『신동아』</xref>는 1964년 9월 복간된 직후부터 일본과 관련된 특집기사와 대담 및 좌담을 빈번히 다루면서 여타 종합잡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봉범의 연구가 지적하듯 이는 1960년대 사회변동에 기민하게 대응한 매체전략의 성과이자 여타 잡지에 비해 광범한 독자층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했다. <xref ref-type="bibr" rid="B027">이봉범, ｢잡지미디어, 불온, 대중교양―1960년대 복간 『신동아』론｣,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7호, 2013, 385-440쪽</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37">玄武岩, 『｢反日｣と｢嫌韓｣の同時代史―ナショナリズムの境界を越えて』, 勉誠出版, 2016, 190-191쪽</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6">『청맥』</xref>의 예를 살펴보자면 창간호(1964.8)에서는 ｢아아 이 民族의 受難｣이라는 표제의 특집으로 임진왜란부터 식민지시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제2권 4호(1965.5)에서는 ｢日本은 다시 온다｣라는 특집을 기획하여 전후일본의 경제적, 군사적 대국화를 경계하며 독자일반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들을 수록하였다. 또한 <xref ref-type="bibr" rid="B003">『신동아』</xref>에는 창간호(1964.9)에서부터 유주현의 역사소설 『조선총독부』가 연재되기 시작하며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시대감각에 미학적으로 부응하였다.</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신일철, ｢文化的 植民地化의 防備: 日本의 ‘色情文化’를 막으라!｣, 『사상계』 제133호(긴급증간호), 1964.4, 61쪽</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xref ref-type="bibr" rid="B008">박두진, ｢調印直前 韓日會談 이대로 갈 것인가 (4)｣, 『동아일보』, 1965.6.22.</xref></p></fn>
<fn id="fb012"><label>12)</label><p>천정환, ｢‘1960’은 왜 일본문화를 좋아했을까?―일본문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분열증｣, <xref ref-type="bibr" rid="B016">권보드래·천정환, 『1960년을 묻다―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천년의 상상, 2012, 516-517쪽</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이규태, ｢韓國속의 日本: 社會｣, 『세대』 제27호, 1965.10, 100쪽</xref>.</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아쉬운 홈·송 大衆歌謠｣, 『경향신문』, 1967.11.25.</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백영호, ｢冬柏아가씨가 어째 倭色인가｣, 『주간한국』 제52호, 1965.9.19, 23쪽</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서경술, ｢倭色歌謠란 어떤 것 인가｣, 『주간한국』 제52호, 1965.9.19, 22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장유정이 지적한 바대로 서경술은 상당히 강한 논조로 ‘왜색’ 비판을 이어가며 대중가요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가요인 및 연예협회의 항의와 저항에 부딪치며 그 논조가 일층 과격화된 결과, 한국문화의 주체성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왜색가요’뿐 아니라 미국의 ‘팝송’까지 배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그 중 ‘왜색’을 뿌리 뽑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와 같은 그의 논리는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 또한 서구에서 유래했다는 점에 대해 반성이 결여된 것이었다. <xref ref-type="bibr" rid="B032">장유정, ｢한국 트로트 논쟁의 일고찰―이미자 관련 논쟁을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제20호, 2008, 50-59쪽</xref> 참고.</p></fn>
<fn id="fb018"><label>1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최인훈, &#x003C;총독의 소리Ⅱ&#x003E;, 『월간중앙』 창간호, 1968.4, 415쪽</xref>.</p></fn>
<fn id="fb019"><label>19)</label><p>파스칼 키냐르는 주체가 음악을 청취하는 행위 속에서 발생되는 일종의 역전된 주종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음악은 육체에 침입하고 그를 사로잡는다. 음악은 자신이 지배하는 인간을 노래라는 덫에 가두어 복종하게 한다. (…중략…) 음악은 주의를 끌고 마음을 사로잡아, 소리가 울리는 그곳에 붙잡아 둔다. 음악은 최면을 걸어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길 포기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듣고 있을 때, 인간은 한낱 수감자에 불과하다.” <xref ref-type="bibr" rid="B034">파스칼 키냐르, 『음악혐오』, 김유진 역, 프란츠, 2017, 206-207쪽</xref>.</p></fn>
<fn id="fb020"><label>20)</label><p><xref ref-type="bibr" rid="B019">김성민, 『일본을 禁하다』, 글항아리, 2017, 104-106쪽</xref> 참고.</p></fn>
<fn id="fb021"><label>21)</label><p>아래의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해당기사의 필자가 대중문화를 곧 저속한 ‘왜색문화’와 동일시하며 그에 대한 혐오감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韓日協定 중에는 兩國國民間의 文化關係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가능한한 협조한다는 文化協力條項이 들어있다. 그러나 兩國政府의 협조없이도 쏟아져 들어오는 값싼 日本文化에 대해 뜻 있는 인사들은 日本財力의 進出못지않게 앞날을 우려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文化의 移入이 문제될리 없다. 文化도 水面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대로 흘러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가 겪어온대로 外國文化의 경우 앞장서 들어오는 것은 쓸모없는 大衆文化다.” <xref ref-type="bibr" rid="B008">｢玄海灘에 물결높다 韓日協定正調印뒤에 오는 것(8)―大衆文化의 浸透｣, 『동아일보』, 1965.7.6.</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x003C;총독의 소리Ⅳ&#x003E;(『한국문학』 제35호, 1976.10)</xref>는 70년대 중반에 발표된 것으로서 &#x003C;총독의 소리&#x003E;제1-3편 및 &#x003C;주석의 소리&#x003E;와 시간적 간격을 두고 쓰인 것임을 알 수 있다.</p></fn>
<fn id="fb023"><label>23)</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최인훈, &#x003C;총독의 소리&#x003E;, 『신동아』 제36호, 1967.8, 472쪽</xref>.</p></fn>
<fn id="fb024"><label>24)</label><p><xref ref-type="bibr" rid="B031">장세진, ｢강박으로서의 식민(지), 금기로서의 제국을 넘어—1960년대 한국 지식인들의 일본 상상과 최인훈 텍스트 겹쳐 읽기｣, 『비교한국학』 제24권 3호, 2016, 195쪽</xref>.</p></fn>
<fn id="fb025"><label>25)</label><p><xref ref-type="bibr" rid="B029">이행미, ｢부활과 혁명의 문학으로서의 ‘시’의 힘—최인훈의 연작소설 &#x003C;총독의 소리&#x003E;를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제39호, 2015, 313-346쪽</xref>.</p></fn>
<fn id="fb026"><label>2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최인훈, &#x003C;총독의 소리Ⅱ&#x003E;, 『월간중앙』 창간호, 1968.4, 420쪽</xref>.</p></fn>
<fn id="fb027"><label>2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최인훈, &#x003C;총독의 소리&#x003E;, 『신동아』 제36호, 1967.8, 483쪽</xref>.</p></fn>
<fn id="fb028"><label>2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최인훈, &#x003C;총독의 소리Ⅱ&#x003E;, 『월간중앙』 창간호, 1968.4, 418쪽</xref>.</p></fn>
<fn id="fb029"><label>29)</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최인훈, &#x003C;총독의 소리&#x003E;, 『신동아』 제36호, 1967.8, 475쪽</xref>.</p></fn>
<fn id="fb030"><label>30)</label><p><xref ref-type="bibr" rid="B022">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영도』, 김웅권 역, 동문선, 2007, 32쪽</xref>. 영역본(<xref ref-type="bibr" rid="B038">Roland Barthes, <italic>Writing Degree Zero</italic>, translated by Annette Lavers and Colin Smith, New York: Hill and Wang, 1977</xref>)을 참고하여 번역을 수정하였다.</p></fn>
<fn id="fb031"><label>3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4">최인훈, &#x003C;주석의 소리&#x003E;, 『월간중앙』 제15호, 1969.6, 372쪽</xref>.</p></fn>
<fn id="fb032"><label>3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8">김동식, ｢&#x003C;총독의 소리&#x003E;와 &#x003C;주석의 소리&#x003E;에 관한 몇 개의 주석｣, 『기억과 흔적—글쓰기와 무의식』, 문학과 지성사, 2012, 168쪽</xref>.</p></fn>
<fn id="fb033"><label>3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9">이행미, ｢부활과 혁명의 문학으로서의 ‘시’의 힘—최인훈의 연작소설 &#x003C;총독의 소리&#x003E;를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제39호, 2015, 341쪽</xref>.</p></fn>
<fn id="fb034"><label>34)</label><p><xref ref-type="bibr" rid="B014">최인훈, &#x003C;주석의 소리&#x003E;, 『월간중앙』 제15호, 1969.6, 371쪽</xref>.</p></fn>
<fn id="fb035"><label>3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3">최인훈, &#x003C;총독의 소리3&#x003E;, 『창작과 비평』 제12호, 1968년 겨울, 628-829쪽</xref>.</p></fn>
<fn id="fb036"><label>36)</label><p><xref ref-type="bibr" rid="B030">임태훈, ｢국가의 사운드스케이프와 붉은 소음의 상상력—1960년대 소리의 문화사 연구를 위하여 (1)｣, 『대중서사연구』 제25호, 2011, 284쪽</xref>.</p></fn>
<fn id="fb037"><label>37)</label><p>한석정은 “한국이 가진 근면의 뿌리를 1960년대 재건 체제, 나아가 만주식 속도전과 결합된 개척의 에토스”에서 찾고자 하였다. 한편 김건우는 국가주도의 만주식 근대화의 모델을 비판하고 거부했던 민족적 민주주의 지식인들 또한 민주화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나아갔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과 설계”라는 ‘개척의 에토스’를 담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생산에의 의지’란 그 양자가 상충하면서도 공유하고 있었던 동시대적인 공통감각을 뜻한다. <xref ref-type="bibr" rid="B035">한석정, 『만주 모던—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문학과 지성사, 2015, 443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17">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느티나무책방, 2017, 9-11쪽</xref>.</p></fn>
<fn id="fb038"><label>3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8">박두진, ｢調印直前 韓日會談 이대로 갈 것인가 (4)｣, 『동아일보』, 1965.6.22.</xref></p></fn>
<fn id="fb039"><label>3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8">박정희, ｢韓日會談 妥結에 즈음한 特別談話文｣, 『朴正熙大統領演說文集』 第2輯, 大統領祕書室, 1966, 210쪽</xref>.</p></fn>
<fn id="fb040"><label>40)</label><p>천정환, ｢‘1960’은 왜 일본문화를 좋아했을까?—일본문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분열증｣, <xref ref-type="bibr" rid="B016">권보드래·천정환, 『1960년을 묻다—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천년의 상상, 2012, 539-540쪽</xref>.</p></fn>
<fn id="fb041"><label>41)</label><p>그러나 박정희 작사·작곡의 &#x003C;새마을노래&#x003E;, &#x003C;나의 조국&#x003E;이야말로 일본식 음계로 쓰인 군가풍의 악곡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즉 박정희 시대에 강력하게 근절하고자 했던 ‘왜색가요’가 아이러니하게도 ‘애국가요’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불렸다는 것이다. 송화숙, ｢박정희, 국가 근대화 프로젝트와 음악｣, <xref ref-type="bibr" rid="B023">민은기 외, 『독재자의 노래—그들은 어떻게 대중의 눈과 귀를 막았는가』, 한울, 2012, 251쪽</xref>.</p></fn>
<fn id="fb042"><label>4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4">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 向文社, 1963, 22쪽</xref>.</p></fn>
<fn id="fb043"><label>43)</label><p>세대론적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자각이 ‘마지막 일어세대’라고 칭할 수 있는 최인훈의 문학을 통해 예시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일찍이 김윤식이 논평한 대로 &#x003C;총독의 소리&#x003E;는 피식민의 체험이 낳은 “후유증”의 문학으로, 억압된 유년의 기억으로 “원점회귀”하는 방법을 통해서 자기 “역사성의 탐구”를 실천한 결과물로 명명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특정 세대의 ‘문학사적 사명’이라는 틀에 준거하여 작품의 의의와 의미를 판별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지만, 일본이라는 매개항을 통해 ‘자아분열’을 경험한 세대감각이 문학적 글쓰기 속에 반영되었다는 가설은 적잖이 설득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20">김윤식, 『한일문학의 관련양상』, 일지사, 1974, 145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21">김윤식, ｢관념의 한계—최인훈론｣, 『한국현대소설비판』, 일지사, 1981, 9-13쪽</xref>.</p></fn>
<fn id="fb044"><label>44)</label><p><xref ref-type="bibr" rid="B036">田月仙, 『禁じられた歌―朝鮮半島音楽百年史』(中公新書ラクレ), 中央公論新社, 2008, 162-173쪽</xref>.</p></fn>
<fn id="fb045"><label>45)</label><p>“Hearing is a psysiological phenmenon; listening is a psychological act.” <xref ref-type="bibr" rid="B039">Roland Barthes, “Listening”, in <italic>The Respnsibility of Forms: Critical Essays on Music, Art, and Representation</italic>, translated by Richard Howar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p.245</xref>.</p></fn>
<fn id="fb046"><label>46)</label><p><xref ref-type="bibr" rid="B030">임태훈, ｢국가의 사운드스케이프와 붉은 소음의 상상력—1960 년대 소리의 문화사 연구를 위하여 (1)｣, 『대중서사연구』 제25호, 2011, 284쪽</xref>.</p></fn>
<fn id="fb047"><label>4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서경술, ｢倭色歌謠란 어떤 것인가｣, 『주간한국』 제52호, 1965.9.19, 22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09">나운영, ｢한국을 찾자(14)—한국의 가요｣, 『매일경제』, 1966.9.8.</xref></p></fn>
<fn id="fb048"><label>48)</label><p>“씩씩하면서도 명랑하게”는 박정희 작사·작곡 &#x003C;새마을 노래&#x003E; 악보에 적혀 있는 창법에 대한 지문에 해당한다. 참고로 &#x003C;나의 조국&#x003E;에는 “힘차게”라는 지문이 덧붙여져 있다.</p></fn>
<fn id="fb049"><label>49)</label><p>최규성, ｢빽판의 메카 청계천 세운상가｣, <xref ref-type="bibr" rid="B033">청계천 박물관 편,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청계천 박물관, 2018, 125쪽</xref>.</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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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정, 『만주 모던—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문학과 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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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田月仙, 『禁じられた歌―朝鮮半島音楽百年史』(中公新書ラクレ), 中央公論新社,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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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玄武岩, 『｢反日｣と｢嫌韓｣の同時代史―ナショナリズムの境界を越えて』, 勉誠出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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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thes, Roland, Writing Degree Zero, translated by Annette Lavers and Colin Smith, New York: Hill and Wang,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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