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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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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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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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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1_429</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1.013</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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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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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title>멜로드라마 속의 사로잡힌 정동(Captive Affects), 탄력적 고통(Elastic Sufferings), 대리적 대상(Vicarious Objects)</article-title>
			<subtitle>-어구스틴 잘조사의 멜로드라마 재고 </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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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Captive Affects, Elastic Sufferings, Vicarious Objects in Melodrama</trans-title>
				<trans-subtitle>- Refiguring Melodrama by Agustin Zarzosa </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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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 id="aff01"><label>*</label>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aff><role>겸임교수</role>
			<aff xml:lang="en">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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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 pub-type="ppub">
			<day>2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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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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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ume>25</volume>
		<issue>1</issue>
		<fpage>429</f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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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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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문초록</title>
<p>본고는 어구스틴 잘조사(Agustin Zarosa)의 2013년 저작, 『영화와 텔레비전 멜로드라마 재고하기: 사로잡힌 정동, 탄력적 고통, 대리적 대상』(<italic>Refiguring Melodrama in Film and Television: Captive Affects, Elastic Sufferings, Vicarious Objects</italic>)을 통해, 기존의 멜로드라마의 핵심 개념들로 다루어져 왔던 모드, 정동, 고통(히스테리아), 과잉에 대한 논의들을 계보학적으로 다시 논의하며, 동시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정동이론과 환경, 동물등과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이 어떻게 멜로드라마 개념에 접목될 수 있는 지 논한다.</p>
<p>1장에서는, 모드를, 선과 악이 한 쌍이 되는 매커니즘 안에서, 사회 전체를 가로지르는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하는 장치로서의 멜로드라마의 개념으로 넓히며, 선과 악의 구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고통을 드러내는 멜로드라마의 모드에 대한 브룩스의 논의를 반박한다. 2장은 들뢰즈식 형이상학의 관점으로부터 멜로드라마가 의미의 체계라기보다는 ‘특정화’(sepcification)의 탄력적 시스템임을 논한다. &#x003C;언덕위의 집&#x003E;(빈센트 미넬리)의 분석을 통해, 신체들간의 조우를 통해 생성된 정동과 –의미가 아닌-정동이 흐르는 장소로써의 미장센에 주목한다. 3장은 브룩스의 붕괴된 도덕적 질서를 회복시키는 멜로드라마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 반대하며, 멜로드라마는 미해결로 남아 있는 (여성) 고통에 대한 인지 혹은 시각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x003C;세이프&#x003E;(토드 헤인즈)는 환경으로 인한 여성 고통을 다루면서 기존의 여성 히스테리와 멜로드라마라는 논의에 생태비평주의적 관점을 더한다. 나머지 두 챕터들은 동물과 포스트휴먼 멜로드라마를 논의함으로써, 인간의 명제를 제한하고 확장하는 데 있어서의 멜로드라마의 역할을 연구한다. 희생과 과잉이라는 멜로드라마의 명제가 어떻게 –인간중심적인-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지 분석한다.</p>
<p>잘조사는 피터 브룩스의 논의에서 도출된 모드, 정동, 고통의 개념들을 일부분 받아들이면서도, 각각 들뢰즈주의, 페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캐리 울프, 아키라 리핏)의 논의들을 부가하며, 브룩스의 정전화된 멜로드라마의 개념에 도전하고 있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This paper argues how the concept of melodrama can be articulated with the Affect Theory and Posthumanism in relation to animal or environment representation which have emerged as the new topics of the recent era. The argument will be made through the discussion of Agustin Zarzosa’s book, <italic>Refiguring Melodrama in Film and Television: Captitve Affects, Elastic Sufferings, Vicarious Objects</italic>. Using a genealogical approach, the book revisits the notion of mode, affect, suffering (hysteria), and excess which have been dealt with in the existing studies of melodrama. In chapter one, he broadens the concept of melodrama as a mode into the means of redistribution of suffering across the whole society in the mechanism of the duo of evil and virtue. It is the opposition of Brooks’s argument in which melodrama functions as the means of proving the distinction between evil and virtue. Chapter two focuses on the fact that melodrama is an elastic system of specification rather than a system of signification, with the perspective of Deleuzian metaphysics. Through the analysis of <italic>Home from the Hill</italic> (Vincente Minnelli, 1959), this chapter pays attention to an ‘affect’ generated by the encounters between the bodies and the Mise-en-Scène as a flow not of a meaning but of an affect. Chapter three argues that melodrama should reveal an unloved (woman’s) suffering, opposing the discussion on the role of melodrama as the recovery of moral order. <italic>Safe</italic> (Todd Haynes, 1995), dealing with female suffering caused by the industrial and social environment, elaborates on the arguments on melodrama in relation to female hysteria with ecocritical standpoints. The rest of the two chapters discusses the role of melodrama for the limitation and extension of the notion of the human through ‘animal’ and ‘posthuman’ melodrama. It argues that the concept of melodrama as ‘excess’ and ‘sacrifice’ blurs the boundary between human and inhuman. In summary, although the author Zarzosa partly agrees with  Peter Brook’s notion of mode, affect and sufferings,he elaborates the concept of melodrama, by articulating philosophical arguments such as Deleuzianism, feminism, and posthumanism (Akira Lippit and Carry Wolf) with the melodrama. Thefore, Zarzosa challenges the concepts of melodrama led by Brooks, which had been canonical in the field.</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사로잡힌 정동</kwd>
			<kwd>탄력적인 고통</kwd>
			<kwd>대리적 대상</kwd>
			<kwd>희생과 동물 멜로드라마</kwd>
			<kwd>과잉과 포스트휴머니즘</kwd>
			<kwd>어구스틴 잘조사</kwd>
			<kwd>언덕위의 집</kwd>
			<kwd>세이프</kwd>
			<kwd>톨치우드</kwd>
			<kwd>개의 해</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Captive Affects</kwd>
			<kwd>Elastic Sufferings</kwd>
			<kwd>Vicarious Objects</kwd>
			<kwd>Agustin Zarzosa</kwd>
			<kwd>Sacrifice and Animal Melodrama</kwd>
			<kwd>Excess and Posthumanism Melodrama</kwd>
			<kwd>Home from the Hill</kwd>
			<kwd>Safe</kwd>
			<kwd>The Year of Dog</kwd>
			<kwd>Torchwood</kwd>
		</kwd-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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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sec-type="intro">
<title>1. 서론</title>
<p>이 글은 어구스틴 잘조사(Agustin Zarosa)의 2013년 저작, 『영화와 텔레비전 멜로드라마 재고하기: 사로잡힌 정동, 탄력적 고통, 대리적 대상』(<italic>Refiguring Melodrama in Film and Television: Captitve Affects, Elastic Sufferings, Vicarious Objects</italic>)을 통해 기존의 멜로드라마의 핵심 개념들로 다루어져 왔던 모드, 정동, 고통(히스테리아), 과잉에 대한 논의들을 계보학적으로 다시 논의하며, 동시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정동이론과 환경, 동물등과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이 어떻게 멜로드라마 개념에 접목될 수 있는 지 논하고자 한다. 먼저, 피터 브룩스의 『멜로드라마적 상상력』(<italic>the Melodramatic Imagination</italic>) 이후, 30년 이상 동안, 모드-멜로드라마의 비판적 재평가를 위해 본질적인-개념은 주목 받아왔다. 기존의 장르로부터 모드로의 전이는 세 가지 방향들 안에서 멜로드라마의 진입에 반응했다. 첫 번째, 연극적 멜로드라마로부터 멜로드라마적 주제와 수사학 혹은 연극법을 불어 넣은 다른 장르로의 수평적 진입, 두 번째, 연극부터 문학,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까지 매체에 연루된 수직적 진입, 세 번째, 허구에서 사회적 영역까지의 도약적 진입이다. 잘조사는 피터 브룩스로 출발해서 크리스틴 글래힐, 벤 싱어의 논의를 경유해 이러한 모드의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재고한다. 요약컨대, 브룩스의 모드로써의 멜로드라마의 핵심은 도덕적 질서가 신비롭게 그것 자체안의 회복력을 절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논리는 텍스트를 형성하는 권력과 함께 문화적 상상력이라는 가면아래에 나타나는 도덕적 주술(moral occult)을 대리자로 부여하는 멜로드라마와 협력하게 된다고 한다. 잘조사는 이러한 브룩스의 도덕적 주술과 문화적 상상력으로서의 멜로드라마의 개념을 부정하며, 멜로드라마가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한다는 사실을 대안적으로 강조한다. 잘조사는, 특히, 이러한 대안적 개념인 모드로부터, 사로잡힌 정동과 탄력적 고통의 개념을 확장시키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p>
<p>첫째로, 사로잡인 정동(captive affect)은 사고(ideas)에 의해 포획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로잡힘의 결과로써, 신체는 신체 위에 드러나는 사고의 효과들로써의 그들의 애착(affections)들을 해석한다. 멜로드라마는 처음에 신체의 애착을 고통으로 형상화하는데, 즉, 멜로드라마는 고통을 도덕적, 사회적 사고들의 신체적 효과들로 형상화한다. 둘째로, 탄력적인 고통(elastic sufferings)은 이러한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하는 것을 구성하는 것으로써의 멜로드라마의 중심적 조절을 의미한다. 이 탄력성은 멜로드라마가 총체적인 공동체 범위를 수축시키거나 확장시키는 움직임들을 대조하는데 있어서 명백하게 된다. 즉, 멜로드라마는 전체화된 커뮤니티의 한계밖으로 개인의 고통에 대한 능력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커뮤니티의 영역을 확장하고, 반대로 관념적인 캐릭터를 이러한 한계내에 일어나는 고통에 부과시킴으로써, 커뮤니티의 영역을 수축시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대리적 대상(<italic>Vicarious Objects</italic>)들은 물질적 행위들-교환(exchange)과 대체들(substitutions)-을 지시한다. 멜로드라마는 인간과 비인간의 교환을 허용하지 않는 영역-인간은 희생되지 않는다는 영역-을 유지하거나 교환을 허용하는 것에 의해 성립된다. 다시 말하면, 교환의 영역과 그것의 한계사이의 범위들을 관찰함으로써, 멜로드라마는 인간중심에서 벗어난 공동체와 그것의 가치들의 구성을 증명한다. 이 책은 이러한 세가지 개념들을 통해 멜로드라마의 논의들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정의들을 살피기 위해서, 각각 영화, &#x003C;언덕위의 집&#x003E;(Home from the Hill), &#x003C;세이프&#x003E;(Safe), &#x003C;개의 해&#x003E;(Year of the Dog), 그리고 텔레비전 시리즈, &#x003C;톨치우드&#x003E;(Torchwood)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요약컨대, 멜로드라마는 고통의 탁월한 위치로부터 사회 전체를 형상화한다는 잘조사의 관점은, 사실 페미니스트 영화연구가들이 여성의 고통과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 주목하며 멜로드라마를 여성 영화로 논의<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 하거나,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유색인종이나 피식민자의 고통으로 본 서발턴 멜로드라마<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등의 기존 논의들과 공명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잘조사는 멜로드라마에서의 타자의 고통의 문제를 여성과 서발턴으로부터, 동물과 비인간(외계인)의 문제로 확장시킴으로써, 멜로드라마와 포스트휴머니즘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한다. 그럼으로써, 타자의 고통에 관련된 멜로드라마 연구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서 인간 대 비인간, 인간 대 동물, 인간 대 자연 등과 같은 휴머니즘의 이원론적 대립구도를 지양하는 경계 허물기/넘어서기를 시도할 수 있게 할 것이다.</p>
</sec>
<sec id="sec002">
<title>2. 모드와 사로잡힌 정동</title>
<p>제 1장, “멜로드라마의 양식들(Modalities of Melodrama)”에서 잘조사는 양식(모드)에 대한 논쟁을 종식하며, 멜로드라마의 모드에 대한 정의를 옹호한다. 이 챕터는 모드의 네 가지 개념들을 조사한다. 장르보다는 더 높은 분류학상의 그룹으로서, 문화적 상상으로서, 재현상의 전략들, 그리고 장르와 상충되는 것 안에서의 분류의 원리를 따르는 것인 카테고리로서의 모드들말이다. 그는 장르로부터 모드를 구별하는 다른 방법들을 논쟁한다. 그에 의하면, 장르가 유비와 차이라는 면에서 경험세계를 분리한다면, 모드는 전체를 표현하거나 수정한다. 장르가 본질적 특징을 통해 작품의 포함과 제외를 설정하는 반면에, 모드는 전체가 그것 자체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수반한다. 모드의 개념으로부터, 그는 사회 전체를 가로지르는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하는 장치로서의 멜로드라마의 명제를 발전시키려고 한다.</p>
<p>첫 번째로, 장르는 그것들을 하위장르들로 좁혀지거나 모드로 범위가 넓어지는데, 장르는 특성이 장르적 구조를 결여하는 텍스트에 거주하는 장르에 연결될 때, 모드로 전이된다. 이 설명은 이 특성이 내재되어 있는 텍스트에 독립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한다. 여기서 멜로드라마는 다른 구조들이 있는 작업들에 스며있는 공통된 톤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피터 브룩스가 멜로드라마를 개념의 모드로 정의한 것을 따르며, 모드를 장르보다 더 높은 분류학상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즉, 크리스틴 글래힐(Christine Gledhill)이 설명한 것처럼 멜로드라마는 “국가적 문화, 세기들, 장르들의 범위를 가로질러 적응할 수 있는 특정한 모드가 된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모드로써, 멜로드라마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누가 정당한 지, 누가 결백한 지, 악행이 지금 진행 중인지, 그것이 무엇을 초래하는지”<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등의 질문을 제기하는 허구적 세계들의 범위를 만들어 낸다. 세 번째로는 재현적인 전략들로써의 모드들을 상상한다. 멜로드라마는 리얼리즘(세계를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과 모더니즘(리얼리즘에 대한 실패에 따르는 환멸을 탐구하는) 사이의 중간적 용어로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멜로드라마의 핵심은 언어의 부적절함으로부터 의미와 정체성을 부과하는 것이다. 네 번째의 모드에 대한 개념은 감추어진 의미를 드러내는 것의 인식론적 문제와 관계한 멜로드라마를 이해하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의미의 폭로가 아닌 고통의 시각성에 관계한다.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하는 사회적 사고는 잘조사의 논쟁의 핵심이다. 고통은 신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고와 신체 양 쪽을 표현한다. 멜로드라마는 신체와 사고사이의 인과관계를 위치 짓거나 이러한 영향에 가능한 해결책을 추구함으로써, 고통을 드라마화한다. 잘조사가 강조하듯, 멜로드라마적 모드는 세계를 상상하는 문화적 형태나 감정의 구조가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전체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적 모드는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하는 요소들의 시리즈들을 요구한다. 우리가 소위 멜로드라마 장르(악행, 미덕에 대한 박해, 행운, 시각적 메타포, 감정주의와 과장)에 연결시키는 내러티브적, 스타일적 요소들은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하는 데 종사한다. 그리고 잘조사는 이러한 재분배는 비전형적인 결말-소위, 평등성-을 이끌게 한다고 말한다.</p>
<p>이러한 모드로써의 멜로드라마에 대한 개념은 기존에 린다 윌리엄스도 강조한 바 있다. 그녀는 멜로드라마가 고전적 리얼리즘이나 반 리얼리즘적인 감정적인 것, 양쪽 다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멜로드라마는 파토스와 행동의 변증법적 독해를 통해, 도덕적, 감정적인 것에 대한 드라마적인 폭로를 추구하는 민주적인 형식이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p>
<p>윌리엄스의 이러한 정의를 잘조사는 더 발전시킨다. 즉 그에게 있어서, 이 재분배는 다른 요소들의 성운들을 통해-어떠한 다른 장르들을 통해-표현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브룩스에 의하면 멜로드라마에 나타난 고통은 미덕과 악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잘조사는 선과 악이 한 쌍이 되는 매커니즘 안에서, 사회 전체를 가로지르는 고통의 시각성을 재분배하는 장치로서의 멜로드라마의 개념을 재설정한다. 즉 멜로드라마는 미덕과 악의 감각을 누구의 고통이 가시적으로 환원되거나 정당화되고, 누구의 것이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으로 되는 지 결정하기 위해서 변형시킨다는 것이다.</p>
<p>이러한 고통을 재분배하는 모드로써의 멜로드라마는 “정동”의 개념 안에도 설명될 수 있다고 잘조사는 주장한다. 먼저 잘조사는 정동(affect)의 세 가지 아바타들을 구분한다. 즉 정동 그 자체,(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통로), 정서(affection신체의 상태) 그리고 가장(affectation사고가 신체를 인수하는 애착의 한 종류)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구분들로 부터, 신체들간의 행동과 열정의 총체성은 정동의 비가시적 차원에 위치 지어지며, 정서는 그것들의 분배에 따른 시각성의 정도를 수반하며, 결국, 가장은 고통에 대한 감각 혹은 정당화를 전한다. 따라서, 2장, “정동(affect), 정서(affection), 가장(affectation)”에서 저자는 멜로드라마에 있어서의 정동의 중요한 역할을 논한다. 이 챕터는 두 가지 중요한 논의들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앞에서 분류한 정동의 세 가지 아바타들에 대한 논의이다. 두 번째는, 미장센 안에서의 정동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미장센은 스타일적인 논평뿐만 아니라, 정동이 한 신체로부터 다른 것으로 흐르도록 기본 틀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멜로드라마는 의미(signification)의 체계뿐만 아니라 ‘특정화’(specialization)의 탄력적인 체계로 나타난다. 단일한 방향 안에서, 신체의 행동과 열정은 세계가 의미의 꽉 짜여진 망이 되는 가장의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 다른 방향 안에서는 신체들간의 조우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동은 우리를 새롭게 출발하는 가능성으로 이끈다.</p>
<p>이러한 논의들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잘조사는 들뢰즈의 ‘정동’의 개념을 가져온다. 잘조사에 의하면, 들뢰즈식 윤리는 멜로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인 도덕성과 상충되지만, 들뢰즈식 형이상학은 장르의 정동적인 구조에 대해 적합한 설명을 제공한다. 들뢰즈식 형이상학을 도덕(morality)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우리는 슬픈 정서(sad affection)에 의해 발생된 부분적 이미지를 모사하는 멜로드라마의 지배적인 이론화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반동적이거나 맹종하는 조직의 전체화(도덕성으로 귀결되는)를 폐기함으로써, 우리는 멜로드라마안의 잔여분들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장은 어떻게 슬픈 정서가 그것이 그 자체로 현실을 구성함으로써, 그것들의 이미지를 세계에 모사하는지, 또한 어떻게 슬픈 애착이 다른 정동적 체계를 상정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잘조사는 이러한 들뢰즈식 형이상학의 관점으로부터 멜로드라마는 의미의 체계라기보다는 ‘특정화’의 탄력적 시스템으로 나타난다고 재차 강조한다. 신체에 대한 행동과 열정은 세계가 의미의 꽉 짜인 망이 되는 애착의 상태로 이끈다. 다른 한편으로, 신체들간의 조우를 통해 생성된 정동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끈다.</p>
<p>잘조사는 주로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에 의거하여, 정동이 인간 신체 안에서의 실체라는 측면이 아니라, 무형(incorporal)의 측면으로 존재하는지 논쟁한다. 정동은 내러티브에 구속된 신체가 아니라, 정서의 신체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멜로드라마에서 정동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동의 힘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정서를 향한 통로를 변형시켜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멜로드라마가 미장센 안에서의 정동의 흐름을 따르며, 미장센이 의미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의 신체로부터 다른 것으로의 통로를 위한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캐릭터들로부터 도출된 영화적 논평과 묘사에까지 캐릭터들의 표현되지 않은 의식을 넘어서는 장면으로 감정을 대체하는 상징적인 미장센을 취한다. 이것은 거의 지시의 추가적인 디제시스적인 모드인데, 이 경우에, 의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체된 표현이 된다기보다는, 영화 자체를 의미화하는 가능성을 통해, 이미지에 물질화되고, 압축되며 연결된다. 멜로드라마에서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의미가 미장센으로 전유된다는 이러한 논의는 멜로드라마에 있어, 미장센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보여지는 데, 이는 기존의 멜로드라마의 논의를 진전시킨 생각이다. 예를 들면, 로라 멀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멜로드라마는 많은 말들 안에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미장센의 장르이고, 정동의 장소이다. 이는 스크린의 이미지를 독해하는 모드를 의미의 해석을 찾으려고 했던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비판적 비평들의 핵심이다. 특히, 더글러스 서크의 &#x003C;슬픔은 그대 가슴에&#x003E;(Imitation of Life, 1959)는 실제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들에게 심도깊게 감정적이고 과잉적인 물질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을 바로 멜로드라마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p>
<p>잘조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동의 개념을 세분화하여, 미장센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잘조사는 들뢰즈의 정동의 개념을 빌어-무형으로서의-정동은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임시적인 사슬의 세계에 위치시킨다. 즉, 이것이 스피노자가 설명하는 자유로운 자기목적적인 이유로서의 자연이나 신(natura naturans)이다. 달리 말하자면, 정동은 natura naturans로서의 신의 표현이다. 브룩스가 멜로드라마를 초월적 질서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열망으로 봤다면, 들뢰즈주의는 멜로드라마안에 내재성의 가능성을 위치시킨다. 잘조사는 들뢰즈주의의 관점을 취하여, 물질적 세계로의 정동의 흐름이 우리를 캐릭터들의 애착에 대한 세계뿐만 아니라, 신체들의 행동과 열정을 넘어선 곳에 우리를 이끈다고 주장한다. 들뢰즈주의에서 핵심은 하나의 신체로부터 다른 것의 흐름으로써의 정동의 표현이다. 이 관점으로부터, 미장센은 의미의 저장소로써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정동이 흐르는 지향적인 국면으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잘조사는 빈센트 미넬리의 &#x003C;언덕위의 집&#x003E;(Home from the Hill, 1960)이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특징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좋은 예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즉, 캐릭터들은 장르적 전형을 따르며 (바람피는 남편, 멸시받는 아내, 사생아, 그리고 마마보이), 플롯은 익숙한 오디푸스적인 궤적이고-적자와 사생아 사이의 계속되는 대리자에 의해 완결될 수 있는-내면의 상태를 외면화하는 과장된 장식들은 붕괴된 가족적 동학에 기인하는 정신적, 사회적 위기들을 가리키며, 캐릭터들의 정동적인 신체들은 인공적 색채를 영화에 가미시킨다. 그는 이 영화의 미장센 분석을 통해 멜로드라마적 이미지가 어떻게 신체들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출현하는 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의 ‘가정 집(family home)’은 숲속에 위치한 자연적 환경뿐만 아니라 영화의 지시대상의 틀 너머에 있는 공간과 연결된다. 집으로서의 미장센은 하나의 신체로부터 또 다른 신체로 이동하는 틀 안에서 정동을 제공하는 지향성 있는 차원으로 기능한다. 여기에서의 미장센은 구성의 차원과 카메라의 빛의 정도에 관련해서 달라지는 국면들에 연루된다. 심도 있게 봉쇄되고 조직화된 가정 집과 그 주변-가정 집이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것과 차단되는 것 모두 다 의미하는-의 미장센들을 보자. 침묵하는 흑인 신체의 목소리와 섞여져 있는 방직공장, 크리스천의 타락한 신체를 분리시키는 묘지, 방 한칸 안에서 구분되는 정동이 순환하는 숲속의 소수민족 거주지인 오두막집. 사냥의 영역이자 남성 동맹지 혹은 불륜의 현장인 숲속 그 자체, 습지 가스가 가득 차 있는 황무지인 설퍼 보텀(Sulphur Bottom) 등이 그 예들이다.</p>
<p>결론적으로 이러한 미장센들안의 신체들의 상호 작용은 –들뢰즈식으로 말하자면- 총체적 도덕성이 아닌, 정동에서 더 세분화된 슬픈 정서에 기반하고 있고, 이것은 자기 목적적이라는 것이 이 장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정동이라는 개념에 탁월한 정의를 내린 이브 세즈윅(Eve Sedgwick)은 인간의 감정을 욕동(drive)과 정동(affect)으로 구분했다. 즉 그녀는 리비도적 욕동, 슬픔, 분노, 기쁨 등의 감정들은 욕망의 변형에 등가할 수 있으나, 정동은 보상과 인과관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 자기목적적이며, -파편으로서의-윤리적인 것과 관계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의 동기화와 윤리학에 기반한다고 설명한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 따라서 슬픈 정서같은 부정적 정동은 윤리학에 관계하며 패배한 자의 정신 승리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의 슬픈 정서같은 부정적 정동은, 일찍히 비주류 흑인소설들을 통해 정동의 개념을 재고한 조나단 플래트리(Jonathan Flatley)의 논의를 상기시킨다. 그의 책, 『정동적 지도그리기』(<italic>Affective Mapping</italic>)에서 말하는 “멜랑코리아의 정동”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플래트리는 진정한 멜랑콜리아는 관객으로 하여금 우울한 멜랑콜리아를 다시 흥미롭게 느끼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단지 기분이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상처받은 경험으로부터 구제해주도록 하지만-, 관객의 관심을 바로 그 상처받은 경험으로 이끌며 관객이 그것을 재고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 말하자면, 정동적 지도그리기는 멜랑콜리아와 히스테리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단순히 상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소생시키고 전용시킴으로써, 관객으로하여금 그러한 경험들을 직시하도록 하고, 재환기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잘조사는 부도덕한 아버지와 계급과 인종 차별로 인해 해체된 가정과 파괴된 사회를 –특히 미장센을 통해–알레고리화하는 “언덕위의 집”을 통해 이러한 기존의 부정적 정동에 대한 논의의 계보를 이으며, 이를 발전시켜, 정전화된 멜로드라마의 도덕성과 봉합이라는 문제에 반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정적 정동에 관한 문제는 3장, “고통을 진단하기“에서 더 심화시키고 있다.</p>
</sec>
<sec id="sec003">
<title>3. 탄력적인 고통으로서의 멜로드라마</title>
<p>잘조사는 세 번째 챕터, “고통을 진단하기(Diagnosing Suffering)”에서 기호의 끊임없는 해석을 통해, 멜로드라마가 붕괴된 도덕적 질서에 한줄기 빛을 가져다 준다는 브룩스의 설명에 반대하며, 그것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고통을 드러내 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토드 헤인즈의 영화, &#x003C;세이프&#x003E;(1995)에 초점을 맞춘다. 1980년대의 샌 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한 세이프의 플롯은 비교적 간단하다. 중상류층 가정주부인 캐롤 화이트는 알레르기성 과민증으로부터 고통을 겪게 되는데, 증상이 심해짐에 불구하고, 의료기관은 그녀의 병을 진단하거나 그녀의 증상을 치료하는데 실패한다. 결국 캐롤은 그녀의 상태를 화학물질복합과민증으로 진단하는 뉴에이지 커뮤니티인 렌우드로 가게 된다. 캐롤은 결국 렌우드에서도 회복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자기 가치와 개인적인 책임감이라는 뉴이에지의 철학을 내면화하게 된다. 여기서 잘조사는 감독 헤인즈가 캐롤의 병을 영화 자체의 해석으로 진단하는 데 있어서의 곤경들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즉 캐롤이 그녀의 병-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실존적인-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 애써야 한다면, 관객들은 캐롤의 상태의 진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의 모호한 감각에 대해서도 평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캐롤의 질병 또는 전체로써의 내러티브에 관계에 대한 영화의 명확한 입장에 대한 거부는,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에 대해 연루된 멜로드라마의 컨텍스 안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p>
<p>이 문제에 대해서 페미니스트 문화연구들은 광범위한 비평적 참조틀을 제공해준다고 하면서 예를 들면, “지하실로부터의 이야기”안에서 가예 나이스미스(Gaye Naismith)는 여성의 질병과 히스테리와 연관되는 정신분석학적 전통내에서 캐롤의 병을 위치시킨다. 나이스미스는 히스테리와 환경적 질병으로써, 캐롤의 반응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논쟁한다. 그녀는 “환경적 질병의 경우, 그녀의 병은 물리적 환경 안에서의 독과 화학물질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 반면, “히스테리의 경우, 그녀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환경의 측면이라고 말한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예를 들면 스테이시 앨러이모가 진단하듯, 세이프에서의 질병은, “산업화된 문화에서는 어느 누구도 화학물질복합과민증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례뿐만 아니라, 풍요 자체가 위험을 증식시키는 사례이기도 하다. 새 가구, 새 카펫, 새 옷, 새로 칠한 페인트, 드라이클린 증기, 유해한 섬유 유연제, 그리고 온갖 종류의 미용 용품 같은 것들이 빈번하게 위험의 원인이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자주 노출될수록 더욱 위험하다. 인종과 계급은 화학물질복합과민증의 증상 대 진단에 서로 다르게 작용하면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세이프는 멜로드라마라는 양식을 취하며 이러한 물리적, 사회적 환경을 묘사하며 캐롤이 히스테리컬하게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p>
<p>사실 히스테리와 멜로드라마의 관계는 이미 기존의 멜로드라마 연구 안에서 고찰되어 왔다. 예를 들면, 페미니즘과 멜로드라마의 관계를 탁월히 연구한 선구적인 책, 『집은 마음이 있는 곳: 멜로드라마 연구와 여성영화』(<italic>Home is Where the Heart Is: Studies in Melodrama and the Woman’s Film</italic>)에서 히스테리에 대한 프로이드식 변형을 가져오면서, 헐리우드 내러티브와 정신분석학이 같이 성립된다고 말한 제프리 노엘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히스테리 안에서는, 에너지는 신체적 증상으로 전향되기 위해 ‘억압된 것의 귀환’으로 되는 사고에 부착되어 있다고 한다. ‘억압된 것의 귀환’은 의식 있는 담론 안에서 발생하나, 환자의 신체에 전이된다고 한다. 멜로드라마 안에서, 전향은 텍스트의 본체나 캐릭터들의 행위 안에서 일어난다고 한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 또한 같은 책에서, 영화와 캐릭터들의 히스테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억압된 것의 회귀”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조안 콥젝(Joan Copjec)은 주인공이 일관적인 ‘사회적 질서’를 지탱하거나 해결과 봉합을 위해서 그자신이 퇴거한 상황으로 정의되는 ‘퇴거의 내러티브’(자기 희생)를 제시한다. 하지만 해결의 차원에서의 ‘히스테리적 상상’(Hysterical Imaginary)은 부서지기 쉬운 구조를 만든다. 원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형식의 구조화는 단단하고 빈틈없지만, ‘자기희생’은 부서지기 쉬운 구조를 만들며, 그것이 묘사하는 사회의 세계에 깊은 불평등을 지시한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 자기 희생 안에서의 그러한 불평등을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히스테리컬한 해결을 도입한다. 이는 히스테리컬한 주체를 제거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점층적인 인지의 가능성으로써 그녀의 퇴거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깨닫는다. 조앤 콥젝은 멜로드라마는 세계의 발견되지 않은 부분을 우리에게 노출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윤리적 반응의 특정한 종류를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특정한 상징적 실패를 재지시한다고 한다. 이것은 여성 일반에 고유한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특정한 종류에 고유한 것이다. 그것은 히스테리컬하다. 콥젝의 말을 빌리면, “윤리적 태도”로 정의되는 히스테리아는 상상적인 것으로 통해 상징적 비진정성을 치료하려고 시도한다.</p>
<p>이러한 논의들은 잘조사가 세이프를 읽는 방식과 겹쳐진다. 즉 잘조사는 세이프를 여자주인공 캐롤의 환경적 원인으로 인한 신체의 질병과 사회적 원인으로 인한 정신적 과민증을 히스테리로 읽으며 그것은 캐롤이 접하는 생물학적 환경, 그리고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시각화하는 멜로드라마의 힘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잘조사는 멜로드라마적 프로젝트는 고통을 묘사하도록 하고, 고통을 지탱하는 공모세력, 암시, 감각들을 수반하는 원인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논쟁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 잘조사의 의하면, 멜로드라마는 근본적으로 고통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데, 멜로드라마는 우리로 하여금 해결되거나 사라져야만 하는 문제로서의 고통을 인식하도록 한다. 멜로드라마는 고통이 시각화로 환원되기 위한, 그것의 원인들을 조사하기 위한, 또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기능한다.</p>
<p>특히 잘조사는 피터 브룩스가 미덕이 인식되는 수단으로써 고통을 환원했다고 주장하며, 멜로드라마는 미덕의 타락으로부터 그것의 회복으로 향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다. 브룩스의 모델에서는 고통은 미덕의 존재와 지금 작동되지 않은 도덕적 질서의 적절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와 반대로 세이프에서의 고통은, 콥젝이 지적한, 히스테리적 상상-자기 희생, 윤리적 태도 등을 통한-에서 말한, 풀리지 않은 채 있는 (여성)의 고통의 인지 혹은 시각화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고통은 캐롤의 히스테리적 상상을 수반한다. 요약컨대, 이 장에서 잘조사는 멜로드라마를 정동적인 세계의 반전된 이미지로써 그리는데, 이 안에서는 신체는 사고를 대변하여 행동하도록 나타난다. 세이프는 우리로 하여금 면역적인 논리의 차원안으로 이 논쟁을 위치시키도록 한다. 멜로드라마는 고통의 인지없음에 반대하여 보호적인 방패로써 행동한다. 하지만 이 보호적인 방패는 ‘풀리지 않은 문제’로써 고통을 재기입함으로써, 오로지 고통의 감각을 방어할 수 있다. 즉, 고통이 비이성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써,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써 제시되기 때문이다. 멜로드라마는 치료제로써 독약-예를 들어, 필자의 비유로 보자면, 콥젝의 논의인 자기 희생-을 사용함으로써, 고통과 싸운다.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rberto Esposito)의 말을 빌어, 잘조사는 멜로드라마는 고통을 축출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통이 멜로드라마의 자신의 체계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만듦으로써, 고통에 대항한다고 결론짓는다. 이 면역적인 논리에 사로잡힌 채, 멜로드라마는-캐롤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싸우면서도 그 고통에 매료당하는 위험도 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멜로드라마에서의 이 독약과 면역적인 논리는, 자기희생적 모티프를 자기반영성-억압된 것의 귀환과 히스테리적 상상-과 연결시켜 논의한 기존 멜로드라마에 대한 연구의 후기 산업화시기의 버전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기존의 멜로드라마와 여성의 히스테리적 상상이라는 연구의 계보를 탁월히 발전시키면서, 잘조사는 브룩스의 멜로드라마와 고통에 대한 연구가 다소 남성중심적이고 도덕적 주술에 기반하고 있다며 비판하며 이에 도전하고 있다. 또한 생태비평주의적 시점을 통해, 여성과 히스테리를 논함으로써, 동시대의 새로운 화두를 멜로드라마와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p>
</sec>
<sec id="sec004">
<title>4. 대리적 대상 Ⅰ: 희생과 동물 멜로드라마</title>
<p>나머지 두 챕터들은 동물과 포스트휴먼 멜로드라마를 논의함으로써, 인간의 명제를 제한하고 확장하는 데 있어서의 멜로드라마의 역할을 연구한다. 먼저, 동물 멜로드라마의 수사학의 윤곽을 그리려고 시도함으로써, 5장, “희생과 동물 멜로드라마”(Sacrifice and the Animal Melodrama)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쟁을 만들어 내기 위해 &#x003C;개의 해&#x003E;(Year of the Dog)”(마이크 화이트, 2007)를 분석한다. 이 논쟁의 첫 번째는 멜로드라마와 희생사이의 관계를 연구한다. 잘조사는 멜로드라마가 희생의 논리를 뒤집는다고 주장한다. 희생이 공동의 폭력을 불필요한 희생양으로 전환시키는 반면에 멜로드라마는 피해자 자체와 동일화하고, 결국 공동체와 피상적인 화해를 향해 나아가도록 한다. 이 동물 멜로드라마는 논리적 공동체에 앞서서 동물 피해자를 대변하여 발화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 행위는 멜로드라마적인 표현의 원시적인 수단으로써, 동물 신체를 위한 인간 신체의 대체에 의지해 있다. 또한 동물 멜로드라마는 표현하지 못하는 동물의 고통을, 부분적으로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 파토스로 번역함으로써 동물의 고통이 인간에 의해 기인하는 악행을 다룬다.</p>
<p>이러한 멜로드라마의 희생의 논리에 대한 역전성을 강조한 잘조사의 논쟁은 기존의 멜로드라마의 제의적인 이해와 대조적이다. 희생의 특징인 ‘희생양’ 메커니즘의 효과들을 갱신하거나, 영속화시키려는 시도의 일환인, ‘제의로써의 멜로드라마’를 이해하는 대표적인 두 명의 비평가, 마크 피짜토(Mark Pizzato)와 스튜어트 커닝햄(Stuart Cunnngham)은 폭력의 전시를 통한 희생양 메커니즘 만들기 과정이 권선징악이 분명한, 선악에 대한 멜로드라마성을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개인적인 표현에 의해 성스러운 것이 발견된다면, 이 개인적 감정과 공포에 대한 투사는 정치적이거나, 연극적으로 재현되어야만 한다고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피터 브룩스의 모델을 심화시킨다. 다르게 말하자면, 영화와 연극적 멜로드라마는 공적영역에서의 개인화된 도덕적 경험세계를 행하는 사회적 제의들이라고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잘조사는 피해자의 시각에 관심을 가진 멜로드라마는 공동의 폭력을 규칙화하는 제의가 아니라, 고통을 재분배하는 극적인 시스템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멜로드라마가 희생의 논리를 도치시키는 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멜로드라마가 공동체와 그것의 피해자 사이의 유사성의 역할을 전이시키는지 알아야 한다. 즉, 제의로써의 멜로드라마 안에서는 폭력충동이 보장되는 것으로 충족된다면, 잘조사가 다루는 멜로드라마는 폭력을 다른 방향으로 전이시킨다. 잘조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영화, “개의 해”를 분석한다. 영화의 내용은 주인공, 페기가 동물 액티비스트가 되는 과정을 따라 진행된다. 그녀의 두 반려개인, 펜슬과 발렌틴의 죽음은 이 과정을 프레임화한다. 여기에서 주로 펜슬의 죽음에 기인한 대체물들에 대해 논쟁하고, 발렌틴이 촉발하는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p>
<p>영화에서 반려견인 펜슬이 죽고 난 후, 페기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이 트라우마의 가장 큰 측면은 페기가 어떻게 펜슬을 애도할지 모르는데 있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녀의 상실에 무심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이것은 그녀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가 그녀의 상실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영화는 펜슬에 대한 상실을 대신할 대체물들에 주목한다. 먼저 펜슬은 이웃집 남자와의 로맨스로 대체하려 하나, 그 남자는 사냥애호가이자, 심지어 펜슬의 죽음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난다. 다음에는 그녀의 절친은 그녀를 위해주는 척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와 약속이 없을 때만, 페기에게 연락을 한다. 페기의 남동생 부부도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등, 페기에게는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펜슬과의 조화로운 관계와 그녀의 다른 사람들과의 소원한 관계 사이의 대조를 특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결국 그녀는 개 입양센터 직원인 뉴트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페기에게 발렌틴을 입양하도록 도움을 주고, 채식주의자가 되도록 자극한다. 그녀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함으로써, 즉, 그녀의 주체성을 획득하는데, 그녀의 친동물 보호적 생활에로의 헌신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녀를 도덕적 우월감으로 이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의 윤리적 기준을 강요함으로써 윤리적 가치를 보편화하려고 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녀를 폭력적이게 되게 한다. 즉 그녀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타인에게 강압적인 되는 것이다. 한편, 페기의 두 번째 반려견, 발렌틴은 폭력적 성향을 가진 개로써, 그녀의 손을 충동적으로 물고, 뉴트의 개를 물어 죽이게 된다. 화가 난 뉴트는 페기 몰래 발렌틴을 안락사시킨다. 결국 페기는 죄책감으로 폐사 직전의 열다섯 마리의 개들을 입양하게 된다.</p>
<p>잘조사는 이 영화가 제의로써의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동물’을 희생시킨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분석한다. 그는 이 영화가 동물을 희생시킴으로써, 우선 제의적 멜로드라마에서의 희생의 논리를 뒤집는다고 설명한다. 즉, 제의적 멜로드라마에서는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사회는 폭력을 대리적 피해자, 희생양에게 전이시킨다. 이러한 집단적 대체의 행위는 커뮤니티의 내재적 긴장을 흡수하고, 사회 조직력을 강화시킨다. &#x003C;개의 해&#x003E;도 표면적으로는 희생의 폭력을 규칙화하는 초기의 방법으로써 가해자측에 반해 향해져 있는 사법적 체계가 실행되는 사회 안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동시에 잘조사는 이 영화가 사회적 동의를 유지하는 감수성으로부터 “희생양의 고통”으로 우리의 주의를 이동시킴으로써 희생적 논리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의 멜로드라마는 희생적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통해, 폭력이 없어지게금 하는 게 아니라, 폭력을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금 유도한다. 즉 이 영화는 어떻게 동물 멜로드라마가 폭력을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지 보여준다. 즉 공동의 것이라기보다는 심리학적 현상으로써 폭력을 설명함으로써, 동물 고통을 개인화하는 행위 안에서, 멜로드라마는 인간 폭력을 개인화한다. 기존의 희생안의 대체물은 결코 심리적이거나 개인화되지 못하고 전체 커뮤니티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반면에 &#x003C;개의 해&#x003E;의 페기의 폭력적 행위는 복수라는 심리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기존 멜로드라마 안에서 희생이 집단 폭력을 입은 실제의 개인 피해자를 승인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치시킨다면, &#x003C;개의 해&#x003E;는 피해자 그 자체로 시작하고, 커뮤니티와의 애매한 화해의 진술로 끝난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페기는 그녀의 친구들과 가족에게 동물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사랑의 다른 형태들과 일치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카메라는 그녀의 동료들의 가족, 종교, 좋아하는 스포츠에 대한 각자의 사랑을 보여준다. 결국 펜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어떤 대상에 대한 일반적인 사랑과 동등화시킴으로써, 페기는 그녀자신을 간 커뮤니티에 복귀시킨다. 결국 페기는 희생의 한 종류-펜슬의 죽음-에 의해 인간 커뮤니티에 재진입한다. 그녀는 펜슬의 유일성이 아니라 펜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의 유일성을 거부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다소 애매하고 피상적인 화해이다. 페기가 남자를 향한 그녀의 엄마의 욕망을 모방하는데 실패하고 개와의 이상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녀의 욕망을 타협했던 것처럼, 영화는 펜슬이 페기를 위한 대체 대상으로써 기능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실패한 대체의 연속들은 페기를 그녀의 펜슬에 대한 집착의 진정성을 의심케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뉴트 자신의 그의 반려견에 대한 집착 안에서 그녀의 집착에 대한 인지이다. 표면적 진정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착은 모방적임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멜로드라마와는 다르게, 여기에서는 폭력은 욕망의 수렴이 아니라, 비전형적인 집착의 사회적 적합성으로부터 이탈된다. 결국, 이 폭력의 해결책은 희생양에게로의 폭력의 전이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집착중의 피상적 대체물-궁극적으로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특별히도 펜슬)-에 수반된다. 잘조사는 &#x003C;개의 해&#x003E;가 이러한 역전된 희생의 논리를 드러내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한다. 달리 말하면, 페기가 보통 인간에 대한 사랑을 수용하는 것은, 동물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거부한다는 것으로 암시된다. 하지만 이것은 애매한 화해라고 잘조사는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x003C;개의 해&#x003E;는 동물의 희생을 통해, 인간의 폭력을 가시화하는 동물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에-또한 영화 중간에, 그녀가 열다섯 마리의 개를 입양하는 점에 미루어 볼 때-, 페기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주장하는 그녀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p>
</s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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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5. 대리적 대상 Ⅱ: 과잉과 포스트 휴머니즘 멜로드라마</title>
<p>제6장에서는, “포스트 휴먼 멜로드라마의 과잉”이 삶의 연속체에 침입한다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어떻게 멜로드라마가 고통의 시각화를 재분배하는 지 설명한다. 이 챕터에서는 멜로드라마 이론과 포스트 휴머니즘 안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과잉(excess)”의 개념을 재고한다. 잘조사는 인간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던지는 과잉으로써 동물을 형상화하는 프로젝트의 중심에 멜로드라마가 놓여 있다고 논쟁한다. 사실, 동물 재현들안에서, 우리는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비인간이라는 사고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고를 만든다. ‘과잉’의 비유는 어떻게 비인간성이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지 알아내는가에 있어서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이 비유는 인간성 안에서의, 인간을 사로잡고 추궁하는 과잉으로써 동물들을 그려낸다. 우리는 멜로드라마 이론안의 과잉의 비유를 이 잔여물을 불러일으키는 허구적 시스템을 심문하고 사로잡는 환기체로 인식해야 한다. 과잉의 공식을 제시함으로써, 잘조사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의문시하는 과잉으로써의, 동물의 형상이 멜로드라마의 형태를 만든다고 논쟁한다. 그는 이것을 논쟁하기 위해서, 인간-동물의 경계를 전이시킴으로써, 삶의 연속체 안에서의 세 번째 카테고리를 소개하는 외계인에 초점을 맞춘, BBC 텔레비전 SF 드라마, 톨치우드(Torchwood)를 분석하고 있다. 동물 또는 고기로써 인간을 다루는 에피소드, “시골”(Countrycide)과 동물 혹은 고기로써 외계인을 다루는 “고기”(Meat)라는 두 에피소드, 그리고 “지구의 아이들”(Children of Earth)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에피소드들은 외계인, 인간, 동물의 카테고리들 안에서 그것들의 대체물들을 묘사함으로써 그는 어떻게 포스터 휴먼 멜로드라마가 대안적으로 인간의 영역을 수축하고 확장하는 지 분석한다.</p>
<p>잘조사는 이것들을 분석하기 전에, 먼저 과잉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포스트 휴머니즘과 멜로드라마로써 인간/동물관계를 위치시키는 지에 대한 담론들을 소개한다. 먼저 포스트 휴머니즘과 동물간의 관계에 천착한 아키라 리핏(Akira Lippit)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물은 주체를 초과하는 장소로써 과잉의 장소를 발견한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 근대성 안에서의  동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는 근대 세계 안에서의 동물 라이프로의 천착은 인간을 사로잡는 유령으로써의 부활에 의해 동반되어진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캐리 울프(Cary Wolfe)는 인간과 이성은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 없고 셀수 없는 과잉, 외부세계, 그리고 파악되지 않는 타자를 생산한다”고 쓰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울프의 포스트 휴먼 프로젝트는, 그것의 타자들 또는 그것의 대조들로써 간주되던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모든 것 안에서, 인간의 내재함과 얽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과잉에 대한 모델은 명백하다. 즉 그것은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동물의 흔적을 그리고 동물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흔적을 남기면서, 삶의 연속체내에서 파괴를 부과하는 인간의 창조에 방점을 둔다. 이러한 흔적들은 인간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는 과잉을 구성한다.</p>
<p>한편, 멜로드라마에 있어서의 과잉은 장르 혹은 모드의 각기 다른 차원들을 통해 해석되어졌다. 예를 들면, 진부한 공식들을 남용함으로써 신뢰성을 초과하는 멜로드라마적인 플롯, 우연의 일치, 감정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플롯의 비틈 등등으로 멜로드라마의 조형적 요소가 감정을 물질화하기 때문에 시각적 스타일은 리얼리즘을 초과한다. 그리고 관객의 신체적 반응은 다른 장르가 요구하는 적합한 정도를 초과한다. 잘조사는 이러한 다른 과잉에 대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가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소재들을 다루기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이 멜로드라마에서의 과잉을 ‘재현’의 측면으로 이론화시켰다고 한다. 정전으로 알려진 멜로드라마의 비평들은 과잉을 스타일적인 수사학의 차원에 놓는다. 일례로, 엘서스(Elsaesser)는 “스토리라인에 표현적인 컬러와 명암의 대비를 준다”고 말하면서 과잉을 구두점의 시스템으로써 멜로드라마의 개념에 관련하여 과잉을 위치시킨다. 비슷하게, 브룩스는 과잉을 재현의 차원 내에 위치시키는데,-“본체적 영역에 대한 거대한 참조에 이르는 차원”- 여기서의 과잉은 사실의 비가시적인 영역과 현실의 표면사이의 갭을 채우려고 시도한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p>
<p>하지만 기존의 포스트휴머니스트적 맥락에서는, 재현의 측면에서의 과잉에 대한 이해가, 보통 인간에 대한 억압의 비유로써만, 멜로드라마안에서의 동물을 향해 지시한다. 이것은 인간의 내재적 제한으로써의 동물의 역할을 놓치는 결과가 된다. 달리 말하자면, 이 모델은 어떻게 과잉적인 동물의 재현이 생성되는 지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잘조사는 ‘교환(exchange)’에 기반해서 대안적인 과잉의 개념을 제기한다. 과잉은 묘사된 내용에 잠재적으로 적합한 재현이 아니라, 등가로써 불가능한 행위 안에 거주한다. 과잉의 이러한 모델은 포스트휴머니즘 안에 멜로드라마의 핵심을 조명하게 만든다. 만약에 일반적으로 멜로드라마가 교환의 영역과 성스러운 것 사이의 경계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면, 포스트휴머니즘 멜로드라마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에 의문을 가진다. 인간과 비인간사이의 경계들의 파괴에 의해 생성되는 과잉은 이 구별을 보호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는 교환의 행위를 산출한다. 달리 말하자면, 대체와 교환의 행위가 인간-비인간의 구분에 압력을 넣기 때문에 멜로드라마는 포스트 휴머니즘에 내재되어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잘조사는 텔레비전 드라마 &#x003C;톨치우드&#x003E;를 분석한다.</p>
<p>&#x003C;톨치우드&#x003E;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시골”에서는 한 마을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 사건을 조사하는 팀, 톨치우드는 나이, 성별, 인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어떤 뚜렷한 패턴이 없고, 시체들이 그것의 피부와 내장들이 벗겨져 있는 걸로 봐서, 살인이 평범한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나 괴물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결국 그 괴물은 식인주의를 행하는 한 마을의 인간이었다. 마을의 식인주의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우리는 동물의 살과 기관들을 벗겨낸다. 따라서 인간들의 그것도 가능하다.” 식인주의는 인간이 동물이며, 따라서, 고기라고 인식한다. 더 나아가 인간은 유일히 같은 종인 인간의 피부와 내장을 벗기는 종이며, 우리는 식인주의가 인간의 살과 기관들을 벗겨내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독특함을 여전히 기념하는 것이라고 영화는 암시한다고 잘조사는 설명한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 톨치우드 팀은 갈고리에 걸려 있는 인간 고기에 혐오하면서도, 집 밖의 거위, 닭과 토끼의 살이 걸려있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는다. 톨치우드 팀의 인간중심적인 휴머니스트적 개념은 인간이 비이성적인 살인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폐쇄시킨다. 하지만 사실, 연쇄 살인을 외계인 행위로 가정했지만, 결국, 그것이 인간의 행위로 드러났을 때, 그것은 우리 안의 비인간이나 야만을 가르킬 뿐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 동물, 외계인간의 구별에 물음표를 가지도록 한다.</p>
<p>“고기”의 에피소드에서는 한 형제가 도살장에서 살아있는 거대한 외계인을 도려내는 데, 거대한 바다소처럼 보이는 이 외계인은, 계속되는 절단에도 불구하고, 계속 재생하고 자라난다. 끝이 없는 육류 생산의 순환과 고통을 상징하며, 개인적 외계인은 우리가 그것들의 고기들을 생산하기 위해, 기르는 동물 종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물 고통을 인간의 파토스로 전환시키는 멜로드라마적 번역을 볼 수 있다. 그는 산 채로 과거로 타임슬립당한 톨치우드의 한 대원인, 잭도 이러한 학대받는 동물의 처지와 비슷하며, 잭은 동물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고통의 비인간적인 형태를 인간의 번역으로 바꾸어 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면들을 서로 교환하는 것을 제안한다. “지구의 어린이들”에서는 외계인은 영국정부에게 2천 5백만 명을 죽게 하는 신종 플루를 치료제를 주는 대신에 12명의 어린이들을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외계인은 클레멘트라고 불리는 한 아이를 실험으로 변종시킨다. 하지만 이 아이는 실제로 인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화학적 물질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인간도 아니다. 이 아이가 겪는 멜로드라마적인 이중의 고통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p>
<p>잘조사는 “멜로드라마적인 것”은, 인간 없이 나타날 수 있지만, 개인화된 고통의 표현 없이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의 개인화된 고통의 표현은 인간, 동물, 또는 외계인의 것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개인화된 고통의 표현은 간접적으로 타자의 고통에 과잉적인 특성을 부과한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시골”에서 고기의 재료로써 동물에 대한 인간의 실제적인 대체는 멜로드라마적인 과잉을 생성하고, 축산 농장동물의 집합적인 고통에 대한 하나의 죽지 않는 괴기스러운 외계인에 대한 숭고한 고통의 상징적인 대체는 비슷한 과잉을 암시한다. “지구의 아이들”에서 이러한 과잉은 인간과 외계인이 연루되는 교환의 행위 안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p>
<p>사실, “인간 혹은 희생불가침의 영역”과 “동물 혹은 희생가능한 영역”간의 구별은 너무 견고한데, 그것은 단순히 종을 기준으로 하여, 시스템적으로 비 인간 동물을 죽이고 착취하는 모든 권리들이 제도적으로 당연시되는 한, 이러한 종에 대한 인간주의의 담론은 항상 몇몇 인간에 의해 다른 인간에게 적대적으로 자행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캐리 울프는 문화 연구와 포스트 휴머니즘이 멜로드라마의 논리 안에 놓여 있을 것을 주장하는데, 이 논리는 희생 불가침의 영역, 또는 교환 불가능성의 영역에 대한 역전성–대안적으로 그 영역을 축소시키거나 확장 시키는-을 절합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는 것을 말한다.</p>
</sec>
<sec id="sec006" sec-type="conclusions">
<title>6. 결론</title>
<p>이때까지 살펴봤듯이 사로잡힌 정동, 탄력적인 고통, 그리고 대리적 대상이라는 개념들을 통해 잘조사가 강조한 것은, 끝나지 않은 고통을 끊임없이 시각화하고 그것을 재분배한다는 것으로써의 멜로드라마의 효과일 것이다. 이것은 핵심적으로 기존의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써의 멜로드라마 연구들의 성과들과 공명한다. 단적으로 이 글의 필자 본인은 한국과 일본의 양공주/팡팡을 재현한 모성 멜로드라마를 통해, 여성이 처한 이중적 고통–전후 아시아를 점령한 미군과 순결을 요구하는 가부장제 국가에 의한-을 시각화한 영화의 정치성과 역사성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이들 영화는 모성 멜로드라마의 자기 반영성을 통해, 여성의 히스테리와 비극적 죽음을 시각화하면서 여성들의 고통을 폭로하고 있다. 여기서의 자기 반영성은 멜로드라마에서 주로 모티프로 사용되었던, 여성(혹은 모성)의 “자기 희생”을 극단화된 과잉 혹은 거리두기(혹은 낯설게 하기)로 전유한다는 게 핵심이다.<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다시 말하자면, 멜로드라마가 여성의 자기 희생이 당연시 되는 것을 과잉화함으로써, 오히려 이 당연시됨이 관객에게 매우 불편하게 다가가고, 반대로 멜로드라마가 이것을 네오리얼리즘같은 방식을 통해 보여주며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함으로써,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 따라서, 이 자기반영성은 특히 잘조사가 내세운 ‘탄력적 고통’의 개념에서의 ‘희생불가침 영역’의 확대와 수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이것이 잘조사가 논하는 (동물의) 희생할 수 있음에 대한 과잉성(따라서, 인간의 희생불가침 영역의 과잉적 확대)과 동물의 희생할 수 있음에 대해 낯설게 하기(인간의 희생불가침 영역의 수축)일 것이다. 이렇듯 잘조사의 책은, 흥미롭게도, 인간과 동물,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과 같은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이나 환경 오염에 관계한 여성의 히스테리를 문제시함으로써, 멜로드라마의 “자기 반영성”이 동시대 화두인, 포스트 휴머니즘과 생태비평의 관점까지에도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이에 대한 대표적인 논의로, 린다 윌리엄스는 여성의 마조히스트적 즐거움과 희생의 관계에 대해 린다 윌리엄스는 멜로드라마가 여성을 희생화하는 것을 통해 강렬한 고통의 광경과 마조히스트적 상실에 방점을 둔다고 해도, 멜로드라마의 여성 주체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제에서 실낱같은 권력과 즐거움을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멜로드라마가 여성과 어머니의 신체에 재현된 초창기 상태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에 대한 불가능성 혹은 기원의 상실에 대한 우리의 멜랑콜리한 감각을 반복하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xref ref-type="bibr" rid="B016">Linda Williams, “Film Bodies: Gender, Genre, and Excess”, <italic>Film Quarterly</italic>, Vol.44, No.4, 1991, pp.2-13</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이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에 대해서는 폴 윌먼과 요시모토의 논의를 보라. 폴 윌먼은 인도 멜로드라마 영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서구와 비서구의 사회적 형성과 역사성 안에서 작동하는 멜로드라마로써의 차별화되는 방식들에 대해 연구할 긴급성에 대해 논의하고, 요시모토 또한 일본 멜로드라마를 통해, 헐리우드의 보편성에 의문을 가지고, 전후 일본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 주목할 것을 주장한다. <xref ref-type="bibr" rid="B014">Paul Willemen, “Negotiating the transition to capitalism: The case of <italic>Andaz”, Melodrama and Asian Cinema</italic>, Wimal Dissanayake (ed.), Cambridge University, 1993, pp.179-188</xref>; Mitsuhiro Yoshimoto, “Melodrama, postmodernism, and Japanese cinema”, <xref ref-type="bibr" rid="B014"><italic>Melodrama and Asian Cinema</italic>, Wimal Dissanayake (ed.), Cambridge University, 1993, pp.101-126</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Christine Gledhill, “Rethinking Genre”, <italic>Reinventing Film Studies</italic>, Christine Gledhill ＆ Linda Willimas (eds.), London: Hodder Arnold, 2000, p.229</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Christine Gledhill, “Rethinking Genre”, <italic>Reinventing Film Studies</italic>, Christine Gledhill ＆ Linda Willimas (eds.), London: Hodder Arnold, 2000, p.234</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Linda Williams, “Melodrama Revised”, Refiguring American Film Genres, Nick Browne (ed.),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pp.42-43</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Laura Mulvey, “Social Hieroglyphics: Reflection on Two Films by Douglas Sirk”, <italic>Fetishism and Curiosity</italic>, London: British Institute, 1996, pp.29-30</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3">Eve Kosofsky Sedgwick, <italic>Touching Feeling: Affect, Pedagogy, Performativity</italic>,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3, pp.17-19</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Jonathan Flatley, <italic>Affective Mapping: Melancholia and the Politics of Modernism</italic>,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8, pp.1-3</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Agustin Zarosa, <italic>Refiguring Melodrama in Film and Television: Captive Affects, Elastic Sufferings, Vicarious Objects</italic>, Lanham: Rexington Books, 2013, e-book, p.970.</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스테이시 앨러이모, 『말, 살, 흙: 페미니즘과 환경정의』, 윤준·김종갑 공역, 그린비, 2018, 287쪽</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Christine Gledhill, “The Melodramatic Field: An Investigation”, <xref ref-type="bibr" rid="B006"><italic>Home is Where the Heart Is: Studies in Melodrama and the Woman’s Film</italic>, Christine Gledhill (ed.),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1987, pp.24-25</xref>.</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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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id="fb014"><label>14)</label><p>Agustin Zarosa, <italic>Refiguring Melodrama in Film and Television: Captive Affects, Elastic Sufferings, Vicarious Objects</italic>, Lanham: Rexington Books, 2013, e-book, p.2087. 잘조사가 아래의 원전에서 인용함. <xref ref-type="bibr" rid="B017">Cary Wolfe, <italic>Animal Rite: American Culture, the Discourse of Species, and Posthumanist Theory</italic>,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p.193</xref>.</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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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Ahn Minhwa, “Broken Motherhood, National Allegories, and Transnational Hysteria in Postwar Japanese and Korean Melodramas: Cross-reading a Hollywood Case” <italic>Inter-Asia Cultural Studies</italic>, Forthcoming, 2019, pp.1-34</xref>.</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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