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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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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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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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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title>텔레비전드라마에 나타난 사회 정의와 공동선에 관한 연구</article-title>
			<subtitle>-박혜련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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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A Study on Social Justice and Common Good in Television Dramas</trans-title>
			<trans-subtitle>- With a Focus on Works by Park Hye-ryeon</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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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 id="aff01"><label>*</label>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aff><role>강사</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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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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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문초록</title>
<p>최근 텔레비전드라마에서는 판타지를 경유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방식이 대두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경향을 선도하고 있는 박혜련 작가의 &#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 나타난 사회 정의의 양상을 단계적으로 고찰한 글이다.</p>
<p>&#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는 사법정의가 무너진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사회 정의가 왜 필요한지를 말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무너진 사법정의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스템이 근본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소시민들의 고통이 양산되고 사회 정의는 이런 문제적 현실의 대안으로써 요청되기 시작한다. 또한 타인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은 진실과 믿음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진심이 지닌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 제시하게 된다. 다음 작품인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언론정의가 왜곡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사회 정의에 대한 사유의 전환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부패한 언론정의는 진실을 호도하고 권력에 기생하면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은 오히려 진실이 왜곡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궁극적으로는 진실이 지닌 절대성을 해체시킨다. 마지막 작품인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전작들의 세계관을 이어받아 공동선이라는 사회 정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사법정의가 무너지고 언론정의가 왜곡되면서 완전한 부정사회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를 보는 능력은 가능성의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고, 타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이타적인 선택은 긍정적인 미래를 실현시키게 된다. 주체들의 시공을 초월한 연대를 가능케 하는 이러한 공동선으로서의 사회 정의는 부정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p>
<p>최근 한국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공동선과 그러한 삶의 방식은 말 그대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존하는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재구축의 과정이 사회 정의를 의미한다고 할 때,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선은 오히려 문제적인 현실을 근본에서부터 개선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결국 박혜련 작가의 세 작품은 아직은 오지 않은 정의사회의 실현 가능성을 공동선의 측면에서 타진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p>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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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Abstract</title>
<p>In recent years, television dramas have adopted an emerging approach of imagining a just society via fantasy.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by stages the patterns of social justice in <italic>I Hear Your Voice, Pinocchio</italic>, and <italic>While You Were Sleeping</italic> written by Park Hye-ryeon, who has been leading this trend.</p>
<p><italic>I Hear Your Voice</italic> shows why social justice is needed, as it is set against the backdrop of a society in which legal justice has collapsed. In this drama, the collapse of the legal justice system indicates that democratic society is falling apart at the roots. As a result, pain and suffering is propagated among the petit bourgeois, with social justice being demanded as an alternative to this problematic reality. The supernatural power of reading the thoughts of others is used to remind viewers of the value of truth and trust and raises the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a true heart as an alternative from a social justice perspective. Set in a society in which media justice is distorted, <italic>Pinocchio</italic> makes an attempt at changing ideas about social justice. In this drama, the corrupt media justice covers up truth and becomes a parasite to power, creating victims that are falsely accused. In this situation, the Pinocchio Syndrome, which makes people hiccup when telling a lie, shows paradoxically that truth can be distorted, and ultimately destroys absoluteness that is not truth. Finally, <italic>While You Were Sleeping</italic> inherits the world views of the two previous dramas and proposes a type of social justice called ‘common good’ as an alternative. A completely unfair society is created when legal justice collapses and media justice is distorted. In this situation, the ability to see the future is an ability to imagine a world of possibilities. Altruistic choices based on trust in others help us to realize a positive future. Social justice as common good to enable solidarity among subjects in a way that transcends the limitations of time and space is proposed as an alternative to overcome the problem of an unfair society.</p>
<p>Given the recent reality of South Korean society, this common good and these ways of life might literally seem like a fantasy. When social justice is represented by efforts and reconstruction processes to overcome the current social issues and make a better future, common good based on the understanding and sympathy of others can be an alternative to improve a reality that is problematic at its root. Ultimately, Park’s three works explore the feasibility of a just society that is yet to come from the aspect of the common good.</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공동선</kwd>
			<kwd>사법</kwd>
			<kwd>사회 정의</kwd>
			<kwd>언론</kwd>
			<kwd>텔레비전드라마</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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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wd>&#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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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eywords</title>
			<kwd>common good</kwd>
			<kwd>legal justice</kwd>
			<kwd>social justice</kwd>
			<kwd>journalism</kwd>
			<kwd>television drama</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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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title>1. 들어가며</title>
<p>부조리한 현실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낳는다. 해방 직후부터 지속된 독재정권, 민주화 이후 닥친 IMF 외환위기, 정권 교체 및 신자유주의 사회의 도래, 그리고 최근의 대통령 파면까지 격동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텔레비전드라마가 끊임없이 현실의 문제에 주목하고 보다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와 교감하고 소통함으로써 존재 의의를 지니는 텔레비전드라마는 동시대의 사회상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 그래서인지 그동안의 한국 텔레비전드라마가 현실의 문제를 다루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말하는 방식은 주로 리얼리즘이었다. 이때의 리얼리즘이란,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과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역사와 그것을 이끄는 힘을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실제 현실과 유사한 허구의 세계 속에서 현실 문제를 다루고, 그것의 해결 과정 또한 실제 현실의 자연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p>
<p>하지만 2010년대부터는 현실 법칙의 제약을 벗어나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들이 다수 방송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의 출발점이자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박혜련 작가다. 2013년 방송된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를 시작으로 후속작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에서도 유사한 극작술과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에서 판타지는 로맨스/멜로/수사 장르의 재미를 강화하는 동시에 정의사회에 대한 상상의 시발점으로 존재한다.</p>
<p>판타지를 통해 정의사회를 말하는 작품들 중에서도 박혜련 작가의 작품들은 차별화된다. 그녀의 작품에서 판타지는 결코 핵심이 아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말하는 최근의 판타지드라마가 “환상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부조리함이 해결되지 못하는 현실을 방증”<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한다는 지적으로부터 다소간 벗어나있다는 뜻이다. 이 지적은 공적 영역에서의 정의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그것을 초능력/비(非) 인간 같은 판타지가 대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판타지가 현실에서의 결핍되고 억압된 욕망이 구현된 것<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이기 때문에 판타지가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요청<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혜련 작가의 작품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인물의 변화한 심리와 선택에 의해 해결되고, 판타지는 이를 촉발시키는 계기내지 출발로서의 기능만 한다. 즉 판타지가 현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들춰내고 정의사회 실현을 위한 사고의 전환을 꾀하는 촉매로써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박혜련 작가의 작품은 판타지의 소재적 특이성<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으로 설명될 수 없는, 판타지를 통해 드러나는 무언가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를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 재고하려는 것은 그래서이다. 한 사회의 정의는 개인 상호 간에 적용되는 산술적 정의, 개인의 공동체에 대해 행해지는 배분적 정의, 그리고 공동체의 개인에 대한 법 관계에 의해 실현되는 법률적 정의로 구성된다. 사회 정의란 이 세 양태에 대해 “그 토대를 형성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계획안, 즉 사회질서의 종합적인 틀을 만드는 것”<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정의가 완벽하게 구현된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그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세 작품은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능력,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는 판타지적 설정<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을 활용해 사회 정의를 단계적으로 형상화한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을 앞당겨 이야기하면 세 작품은 사회 정의가 왜 필요한지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 정의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시도한 뒤, 최종적으로 새로운 사회 정의를 제시하는 기(起)-서(敍)-결(結)의 과정으로 이루어져있다. 결국 세 작품이 법과 언론이라는 소재, 비현실적인 판타지 설정, 그리고 사회 정의라는 주제의식을 공유하는 계열체이자 통합체<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라는 점에서 본고에서는 세 작품을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총체적인 과정으로서 살펴보고자 한다.</p>
<p>주지하듯 사회 정의는 인간의 행동 지침과 제 요소들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역설적으로 정의롭지 않은 사회를 통해서 구체화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롭지 않은 사회는 극적 사건을 통해 형상화되는 바, 본고에서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 그려진 ‘최초의 사건’에 주목할 것이다. 모든 문제적 사건의 출발점이자 한 세계의 ‘모든 것의 시작(big-bang)’<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이 된 최초의 사건을 통해 작품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원칙과 상식, 그리고 정의에 대한 바람이 절실해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현실 법칙이 아닌 길을 통해 사회 정의를 모색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를 꾀하는 박혜련 작가의 작품이 지닌 가치가 재조명되길 기대한다.</p>
</sec>
<sec id="sec002">
<title>2. 사법정의의 붕괴와 믿음의 (불)가능성</title>
<p>어떤 사람이 부조리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일차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사법기관이다. 법은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과 공동체 간에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 법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한 사회의 정의는 그 토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법정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반<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이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는 속물 국선변호사였던 혜성이 여러 사건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그녀는 초능력자 수하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어린 시절 악연이었던 검사 도연과 대립하기도 하며, 연쇄살인범 민준국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면서 “상과 벌에 있어 공정하지 못하고 힘없는 사람이 억울함을 면치 못하는”<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 사회의 부조리함에 눈을 뜨게 된다. 즉 이 작품은 법정을 배경으로 재판과 관련된 사건을 그림으로써 우리 사회의 사법정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p>
<p>작품에 그려진 중요 사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p>
<table-wrap id="t001">
	<label>&#x003C;표 1&#x003E;</label>
	<caption>
		<title><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 중요 사건</title>
	</caption>
	<table frame="box" rules="all" width="100%">
<tbody>
<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사건</td>
<td valign="middle">개요</td>
<td valign="middle">경과</td>
<td valign="middle">진실</td>
<td valign="middle">결과</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① 박수하 아버지 사망사건</td>
<td valign="middle">박수하의 아버지가 민준국에게 살해됨</td>
<td valign="middle">박수하의 증언이 인정되지 않아 단순 사고사로 전개됨</td>
<td valign="middle">박수하 아버지에 대한 민준국의 보복범죄</td>
<td valign="middle">장혜성의 증거 제출 및 민준국의 자백으로 실형 선고</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② 서도연상해사건</td>
<td valign="middle">파티 중 서도연이 불꽃놀이 폭죽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함</td>
<td valign="middle">서도연이 장혜성을 범인으로 지목함</td>
<td valign="middle">장혜성에게 치부를 들켜 앙갚음하려는 서도연의 거짓말</td>
<td valign="middle">서대석이 서도연의 거짓말을 묵과하여 장혜성 모녀가 쫓겨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③ 문동희 추락사건</td>
<td valign="middle">여고생 문동희가 학교에서 떨어져 다침</td>
<td valign="middle">문동희가 같은 반 고성빈을 범인으로 지목함</td>
<td valign="middle">왕따 가해자 고성빈에게 복수하려는 문동희의 거짓말</td>
<td valign="middle">고성빈의 반성과 문동희의 용서로 누명이 벗겨짐</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④ 편의점 쌍둥이 강도/살인사건</td>
<td valign="middle">쌍둥이 강도 중 한 사람이 편의점주를 살해함</td>
<td valign="middle">진범을 확정할 수 없어서 모두 무죄가 될 가능성이 생김</td>
<td valign="middle">동생의 애인을 성폭행하고 협박한 편의점주에 대한 형제의 보복범죄</td>
<td valign="middle">장혜성과 서도연의 협력으로 진범이 가려지고 처벌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⑤ 장혜성 어머니 사망사건</td>
<td valign="middle">장혜성 어머니가 화재로 사망함</td>
<td valign="middle">실화로 인한 사고사로 전개됨</td>
<td valign="middle">장혜성에게 복수하려는 민준국의 살인방화</td>
<td valign="middle">사고사로 처리되어 민준국이 풀려나나 훗날 진실이 밝혀짐</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⑥ 김미경 상해사건</td>
<td valign="middle">김미경이 자신을 죽인 죄로 복역한 남편 황달중에게 상해를 입음</td>
<td valign="middle">살해의도를 가진 황달중의 살인사건으로 전개됨</td>
<td valign="middle">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아내에 대한 황달중의 우발적 폭행</td>
<td valign="middle">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황달중이 무죄로 풀려남</td>
</tr>
	</tbody>
	</table>
</table-wra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의 최초의 사건은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 ①과 ②다. 본래 민준국은 노모와 아픈 아내, 그리고 아들을 책임지고 있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런데 오랜 기다림 끝에 나타난 아내의 심장이식 기증자를 수하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 가로채는 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아내를 잃은 민준국이 수하의 아버지에게 복수한 것이 사건 ①이다. 한편 사건 ②에서 도연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커닝을 하다가 혜성에게 들키게 된다. 도연이 혜성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이러한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자신과 다르게 공부는 못하지만 매사 당당한 가정부의 딸 혜성에 대한 열패감 때문이기도 하다.</p>
<p>두 사건에 공통적으로 관계된 것은 민준국 재판의 판사이자 도연의 양아버지인 서대석인데, 이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매우 중요하다. 사건 ①에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수하의 증언은 법정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나이가 어리고 실어증에 걸린 상태인데다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해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기 때문이다. 이때 증거 부족으로 민준국이 풀려날 위기에서 혜성이 증인으로 등장, 살해 상황을 휴대폰으로 찍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때 휴대폰에는 사진이 찍히지 않았고, 서대석은 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민준국이 법정에서 폭주하는 것을 보고 그가 범인이라 확신, 혜성의 위증<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과 증거 부족을 묵과한 채 유죄 판결을 내린다. 사건 ②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대석은 도연의 성격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어서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는 혜성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죗값을 받으라고 종용한다. 이처럼 서대석은 진실을 밝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사법정의와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 그래야만 자신은 판사로서 단죄하거나 용서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가 입증되기 때문이다. &#x003C;<xref ref-type="fig" rid="f001">장면 1</xref>&#x003E;은 ‘법이 구한 눈물들’이라는 자서전을 출판해 자신을 따뜻한 판사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서대석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처럼 진실과 거짓을 가리려 하지도 않고 그저 판결 자체에만 혈안이 된 판사 서대석은 부패하고 비대해진 사법 권력을 상징한다.</p>
<fig id="f001"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x003C;장면 1&#x003E;</label>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1.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사법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악이 배태된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단순 살인범이었다가 사건 ① 이후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으로 변하게 되는 민준국이 대표적이다. 10여 년의 형기를 보내는 동안 노모와 아들이 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민준국은 증인이었던 혜성과 수하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그런데 의사에게 좋은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민준국의 아내가 받아야 할 심장을 가로챈 수하의 아버지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해 재판에서는 위증과 증거 부족의 피해자였다는 점, 나아가 이를 판사가 묵과했다는 점까지 민준국은 무너진 사법정의가 만들어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x003C;<xref ref-type="fig" rid="f002">장면 2</xref>&#x003E;의 정의의여신상 미장센은 이러한 작품의 문제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눈을 가려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공평하게 판결한다는 본래의 의미와 약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진실을 보지 않으며 그저 왼손에 내민 저울처럼 기계적으로 판결만 내린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충돌하면서 바람직한 사법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성찰이 유도되는 것이다. 결국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는 공정하고 평등해야하는 사법정의가 무너져 불신이 싹튼 사회<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속에서 소시민의 고통이 양산되는 상황을 그림으로써 정의로운 사회가 왜 필요한가를 근본적으로 묻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p>
<fig id="f002"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x003C;장면 2&#x003E;</label>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2.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이처럼 사법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판타지는 새로운 사회 정의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단지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는 수하의 초능력은 신적인 능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실제로 작품 안에서 수하의 초능력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초능력이기 때문에 증거나 증언으로 채택되지 못해 재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상대방이 눈을 감거나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면 능력 발휘가 되지 않는 상황까지도 그려진다. 실질적으로 초능력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몸싸움을 할 때와 혜성의 생각을 읽어 사랑을 확인하는 때<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에서 초능력이 유의미한 측면은 인물의 내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사건 ① 이후 수하는 초능력을 감추고 살다가 사건 ③에서 혜성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혜성은 결국 수하가 초능력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그로부터 성빈이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진 뒤, 꼼꼼히 재조사를 하여 진실을 밝힘으로써 사건을 해결한다. 사건 ④도 마찬가지다. 혜성은 1심에서 쌍둥이 형제 모두를 무죄로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수하를 통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다시 사건을 조사해 진실을 알게 되고 도연과 협력해 진범에 대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는 혜성이 수하를 믿고 진실을 밝힘으로써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가 반복적으로 그려지고, 수하의 초능력은 혜성의 믿음을 촉발시키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한다.</p>
<p>이를 통해 ‘진실’과 ‘믿음’<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이라는 키워드가 도출된다. 수하의 초능력은 타인의 생각을 읽어 감춰진 진실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진실이 진실로 인정받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에서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는가이다. 어린 시절 수하의 초능력은 믿음을 얻지 못했고, 현재에도 그를 믿는 유일한 사람은 혜성뿐이다. 혜성이 없다면, 즉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진실을 보는 수하의 초능력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렇기에 믿음은 진실의 원천이다. 진실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선행되어야만 진실이 효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잘못된 믿음이 사실을 왜곡해 잘못된 진실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 문제는 후속작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 보다 집중적으로 다뤄지게 된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에서 말하는 진실의 원천이 믿음이라는 메시지는 믿음이 있어야 진실과 거짓이 가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진실과 믿음은 ‘과거’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수하가 초능력을 통해 알게 되는 민준국의 가족사, 성빈의 왕따와 동희의 복수심, 쌍둥이 동생의 애인이 겪은 일 등은 모두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하의 초능력을 달리 말하면 타인의 과거를 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믿음과 연관시켜보면 타인의 과거를 통해 그의 현재에 대한 신뢰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 ②에서의 딸에 대한 서대석의 믿음, 사건 ③에서의 성빈에 대한 주변인들의 믿음, 사건 ④에서의 쌍둥이 형제의 서로에 대한 믿음, 사건 ⑤에서의 딸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 사건 ⑥에서의 아버지(들)에 대한 도연의 믿음 등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의 모든 사건들에는 믿음의 문제가 중요 화두로 존재한다. 그런데 믿음의 근거는 역시 과거에 달려있다. 서대석이 도연을 믿지 않는 것은 그녀의 성공/인정욕구를 알기 때문이고, 주변인들이 성빈을 믿지 않는 것은 그녀가 날라리이기 때문이며, 쌍둥이 형제가 서로를 못 믿게 되는 것은 불량배였던 형과 모범생이었던 동생의 과거 전력 때문이고, 혜성의 어머니가 딸을 끝까지 믿었던 것은 그녀의 출생부터 어떤 사람인지를 지켜봐왔기 때문이며, 도연은 친부의 정체와 서대석의 악행을 알게 되면서 믿음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누군가에 대한 믿음, 또는 불신은 모두 과거를 통해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p>
<p>하지만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먼저 진실, 또는 타인의 과거를 완벽하게 아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있다. 주지하듯 그것은 초능력이라는 판타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수하 같은 초능력자가 없는 현실에서는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을 모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는 판타지를 통해 그 불가능함을 가능함으로 바꾸어 보여주지만 여전히 현실에서의 실현 불가능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연장선에서 다음 문제가 드러난다. 설령 과거를 알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수하는 혜성의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혜성은 벌거벗겨진 듯 자신의 모든 것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수하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혜성이 그러한 수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다시 말해 또 다른 믿음을 통해 이뤄진다. 이때 혜성의 믿음은 진실을 아는 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다. 일방의 믿음이 선행되어야만 신뢰 관계가 구축되고 진실이 진실로서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제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은 오히려 진정한 공감과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p>
<p>이러한 진실과 믿음의 역학은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믿음이 선행적으로 요구되고 그로부터 상호 신뢰가 가능하다는 점은 칸트식의 조건적/제한적 환대<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데리다가 제안하는 무조건적인 환대의 실천이나 다름없다. 데리다는 무조건적 환대에 있어 타자의 위협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주체가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지만 오히려 이것이 타자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타자에 대한 포용은 교환이 아닌 개방이기 때문이다. 혜성이 자신의 치부까지도 개방하여 수하를 믿는 것은 이처럼 타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무조건적인 환대의 제스처다. 물론 데리다 스스로 인정하듯 무조건적인 환대는 실현 불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서 혜성과 같은 선택이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극적인 차원에서 그것은 혜성이 수하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다소 낭만적인 방식으로 무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후속작들을 통해 결국 해결되는 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는 사회 정의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환대를 진심이라는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공동선이라는 최종적인 대안을 청사진처럼 미리 제시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p>
<p>사법정의가 무너진 문제적 현실과 진심을 통한 인간다움의 회복이라는 대안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전자의 현실에서 후자의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 후자를 통해 전자가 개선된다는 것은 판타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법정의가 무너진 사회의 극복 방법을 사법정의의 회복이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일 수 있다. 법이 정의로운 사회를 지탱하는 규율적/제도적 장치라고 했을 때 사법정의의 붕괴는 민주주의 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정의의 회복은 개인의 양심이나 사법기관의 개선에 기댈 수 없으며 민중의 혁명 같은 다른 차원의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주지하듯 사회 정의가 개인과 집단, 그리고 쌍방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제도 등 수많은 제 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했을 때 진심을 통한 인간다움의 회복은 그러한 집단적/사회적 변화를 추동시키는 동력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결국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에서 말하는 진심이 지닌 가능성은 오히려 법률적 정의가 지닌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방법적 전환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p>
</sec>
<sec id="sec003">
<title>3. 언론정의의 왜곡과 진실의 해체</title>
<p>앞서 예로 들었던 부조리한 일을 겪은 사람이 사법기관에 의해 구제받지 못했더라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수사와 판결의 부당함을 언론에 알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 경우 그는 형성된 여론을 바탕으로 재수사, 또는 재심을 받아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사법기관이 정의롭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마저도 감시와 구제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사람은 그 어떤 일을 당해도 그저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할 뿐이다. 이처럼 사법과 사회에 대한 감시기능<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을 지님으로써 정의사회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p>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이러한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부패한 상황을 그림으로써 사회 정의를 새로운 각도에서 모색하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여러 인물들의 서로 다른 언론관을 대비시키면서 바람직한 언론정의란 무엇인가를 시청자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기자의 거짓말도 대중의 눈을 멀게 할 만큼 위험”하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진실인지..그리고 그것이 과연 아름답기만 한 것인지..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하는 의도를 인물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다.</p>
<p>작품에서 그려진 중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p>
<table-wrap id="t002">
	<label>&#x003C;표 2&#x003E;</label>
	<caption>
		<title><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중요 사건</title>
	</caption>
	<table frame="box" rules="all" width="100%">
	<tbody>
		<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사건</td>
<td valign="middle">개요</td>
<td valign="middle">경과</td>
<td valign="middle">진실</td>
<td valign="middle">결과</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① 폐기물 공장 화재사건</td>
<td valign="middle">화재 진압 중 소방대장 기호상 등 다수의 소방대원이 사망함</td>
<td valign="middle">기호상이 국민적 악인으로 몰리면서 그 가족이 파탄에 이름</td>
<td valign="middle">공장의 불법행위를 감추기 위한 박로사와 송차옥의 여론 몰이</td>
<td valign="middle">훗날 기호상의 시신이 발견되어 누명은 벗겨지나 언론이 정정보도를 하지 않아 기재명이 직접 복수에 나섬</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② 헬스장 사망사건</td>
<td valign="middle">운동을 하던 중년여성이 갑자기 사망함</td>
<td valign="middle">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한 사고로 보도됨</td>
<td valign="middle">딸에게 간이식을 하기 위해 무리하게 운동을 한 어머니의 사망사고</td>
<td valign="middle">오보를 낸 YGN과 진실을 보도한 MSC의 위상이 역전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③ 버스기사 사망사건</td>
<td valign="middle">6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버스기사가 사망함</td>
<td valign="middle">송차옥에 의해 자살로 보도되나 그녀에게 오보 의혹이 제기되면서 병사 가능성이 생김</td>
<td valign="middle">여론에 편승해 송차옥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한 버스회사 사장의 증거조작</td>
<td valign="middle">송차옥이 메인앵커직에서 하차하고 기하명이 사적 복수를 포기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④ 산타 절도사건</td>
<td valign="middle">백화점에서 산타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년 가장이 가방을 훔침</td>
<td valign="middle">고가의 가방과 사회 풍조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옴</td>
<td valign="middle">사회 분위기에 맞춰 자녀에게 고가의 가방을 사주고 싶었던 가장의 절도</td>
<td valign="middle">비판 기사를 역이용한 박로사에 의해 백화점 매출이 폭등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⑤ 폐기물 공장 화재사건</td>
<td valign="middle">공장 화재로 인해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함</td>
<td valign="middle">13년 전 기호상처럼 경찰 안찬수가 희생양으로 몰림</td>
<td valign="middle">공장 허가를 내준 국회의원과 결탁한 박로사의 여론 몰이</td>
<td valign="middle">박로사의 모든 악행이 드러나고 처벌됨</td>
</tr>
	</tbody>
	</table>
</table-wrap>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의 최초의 사건은 사건 ①이다. 산업폐기물을 불법적으로 처리하던 공장에서 당직 근로자들의 실수로 대형화재가 발생한다. 이때 화재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소방대원이 사망하는데, 공장의 불법 행위를 감춰달라는 국회의원의 청탁을 받은 범조그룹의 박로사 회장은 기자인 송차옥을 이용해 화재진압작전이 무리하게 이루어졌다는 여론 몰이를 한다. 사건의 초점이 화재 원인이 아니라 인명피해의 책임자로 옮겨지면서<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 실종된 소방대장 기호상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설상가상으로 도피 중인 기호상을 보았다는 피노키오 증후군 목격자까지 등장해 여론은 더욱 들끓는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큰아들 재명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지만 이마저도 송차옥에 의해 왜곡되고, 견디다 못한 기호상의 아내는 작은아들 하명과 함께 바다에 투신한다. 어머니를 잃은 하명은 어부에게 구조되어 최달포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다.</p>
<p>송차옥은 매우 요주의 악인이다.<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 왜냐하면 그녀는 비록 박로사와 결탁해 여러 악행을 저질렀지만 기자로서의 본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건 ①에는 실화로 인한 화재와 그것을 진압하려던 소방대원들의 사망이라는 두 가지 사건이 겹쳐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명피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송차옥의 보도 자체는 문제가 없다. 이를 테면 소방대원의 장비가 부실했다든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공장의 설계 문제라든지, 아니면 소방대원들이 무리한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든지 하는 것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언론이 기호상이라는 특정인에게 주목하도록 프레임을 짠 것도, 그런 여론이 형성되도록 부추긴 것도, 그럼으로써 정말로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관심에서 멀어지게 한 것도 송차옥이지만 적어도 그녀가 거짓을 보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사건 ③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이 사건에서 송차옥은 거짓을 보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의심한 나머지 하명과 인하가 오보를 낼 뻔 한다. 여기서도 물론 송차옥이 버스기사의 조작된 사망진단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송차옥이 왜곡은 할지언정 거짓을 보도하는 기자가 아니라는 점 또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송차옥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말하는 주인공들과 대비되면서 바람직한 언론정의의 원리적 측면, 즉 사실과 진실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 예컨대 &#x003C;<xref ref-type="fig" rid="f003">장면 3</xref>&#x003E;은 개심한 송차옥이 특강을 하는 장면인데 여기에서도 송차옥과 주인공들의 원리가 대비된다. 파급력은 있지만 원칙에는 어긋나는 송차옥의 언론관과 원칙에는 부합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아 파급력이 낮은 하명/인하의 언론관 등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언론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원리들을 작품 내내 대비<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시킴으로써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도록 한다.</p>
<fig id="f003"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x003C;장면 3&#x003E;</label>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3.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한편 이런 송차옥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박로사는 태생적인 악인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기호상이나 안찬수 같은 희생양을 만드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심지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막기 위해 테러를 지시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소시오패스다.<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이러한 박로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송차옥에게 여론 몰이를 지시한다는 점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 그려지는 부패한 언론은 정재계와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전반적으로 송차옥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부패한 언론을 그리는 데에 주력한다. 20회의 &#x003C;<xref ref-type="fig" rid="f004">장면 4</xref>&#x003E;에서는 하명과 인하 같은 중립적인 기자, 송차옥과 같은 부패한 기자, 그리고 현실의 실제 기자들이 하나의 화면에 모두 담긴다. 무수히 많은 언론과 보도가 쏟아지는 현실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그것을 어떻게 선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는 것이다. 결국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본분을 잃고 부패한 언론이 진실을 호도하는 사회를 통해 진정한 언론정의란 무엇이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진실과 믿음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재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p>
<fig id="f004"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x003C;장면 4&#x003E;</label>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4.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이때 전작에서 도출되었던 진실과 믿음이라는 키워드는 판타지적 설정과 맞물려 위상이 변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 피노키오 증후군은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한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보다 구체적으로는 ‘ⅰ)치료 불가, ⅱ)말뿐만 아니라 모든 표현과 생각에도 작용, ⅲ)거짓말을 바로 잡으면 멈춤, ⅳ)거짓말이 티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무조건 믿음’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 그가 말하는 것을 모두 진실로 믿게끔 한다는 마지막 특징이다. 작품 안에서 MSC 방송국과 송차옥이 인하를 특채로 뽑는 것도 이러한 피노키오 증후군의 힘에 기대어 자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피노키오 증후군인 사람이 어떤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그는 그것이 진실이 아님에도 딸꾹질을 하지 않게 되어 거짓이 진실로 둔갑해버린다는 것이다. 사건 ① 당시 도피 중인 기호상을 보았다고 인터뷰한 또 다른 피노키오 증후군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기호상으로 착각했지만 그것을 진실이라 여겼고 그 믿음은 전 국민으로 확산되어 기호상 가족의 비극을 초래했다.</p>
<p>이처럼 피노키오 증후군을 통해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진실에 대한 해체를 시도한다. 한마디로 말해 진실이 얼마든지 왜곡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스 보도를 하는 앵커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지는 것<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처럼 작품 안에서는 발화자의 신분(기자/앵커), 매체(뉴스/방송사), 개성(피노키오 증후군) 등 여러 주변 맥락에 의해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사건 ②와 ④는 사회 분위기라는 외부적 맥락에 의해 보도 의도가 굴절되는 상황이고, 사건 ③은 발화자에 대한 신뢰 여부가 진실을 거짓으로 인식되게끔 하는 상황이며, 사건 ⑤는 발화 집단인 언론사가 진실을 조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피노키오 증후군은 오히려 진실의 파악을 교란하는 역설적인 요인이 된다. 즉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로 말해지며, 우리는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는가라는 화두가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드러난다.</p>
<p>정의·진실·믿음·진심 등 세 작품에서 반복되는 키워드에 대한 사유의 전환이 이뤄지는 것은 이 대목이다. 그것은 진실과 사실의 구분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진실과 사실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고 사용되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언론의 측면에서는 ‘사실’이 실제로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진실’은 그에 대한 평가나 진술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명/인하와 같이 언론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특정 의견이 담기지 않은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의 객관성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언론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 즉 언어 -음성이든 문자든 영상이든- 에는 이미 특정 가치가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성에 대한 믿음, 이른바 ‘팩트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팩트의 신화는 “모든 논쟁과 모든 가치판단에 있어서 특정 의견의 진실성을 보장하고 그 의견이 다른 모든 의견을 압도하고 우위에 서도록 하는 마법의 지팡이”<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가 되면서 언론을 마치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포장한다.</p>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가 부패한 언론과 피노키오 증후군을 통해 말하는 것은 이러한 진실의 절대성에 대한 해체, 나아가 완벽한 진실이라는 헛된 믿음에 바탕을 둔 정의에 대한 부정이다. 송차옥이 거짓을 보도하지는 않았다는 말은 그녀가 사실에 기반하여 보도를 하되 자신의 특정 의견을 덧붙여 또 다른 진실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송차옥도, 하명/인하도 모두 진실을 보도했다. 단지 사실에 덧씌운 의견이 달라 서로 다른 진실이었을 뿐 모든 언론은 모두 진실<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이라는 역설적인 세계가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의 세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다중적 진실의 세계는 결코 정의롭지 않다. 왜냐하면 박로사가 보여주었듯이 특정 집단에 의해 진실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고, 피노키오 증후군이 보여주었듯이 대중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특정 진실을 사실로서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배태된 기호상 가족과 같은 피해자들은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의 소시민 민준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국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진실의 구축 과정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진실=정의’라는 공식을 깨버리게 된다. 얼마든지 새로운 진실이 날조될 수 있고, 애초에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다는 인식을 통해 사회 정의에 대한 총체적인 논의에서 진실을 배제시키는 것이다.</p>
<p>이처럼 진실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 내놓는 삶의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관적 세계만큼이나 부정적인 인식이다. 진실은 영원히 알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으니 그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TV퀴즈쇼 출전자를 뽑기 위한 교내 예비시험에서 1등을 한 달포(하명)가 담임교사로부터 의심을 받는 상황이 이러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시험지를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담임교사의 말에 “전 지금 여기를 나가면 애들한테 선생님과 저기 윤 선생님이 바람이 났다고, 제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소문을 낼 겁니다. 어디 한 번 사실이 아니란 걸 직접 증명해보시죠. 소문의 당사자시잖아요.”(2회)라고 말한다. 거짓과 사실이 구별되지 않고, 또 그럴 수 없다면 그저 나만의 진실 속에서 각자도생하며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어 사는 방법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드러나는 상황이다.</p>
<p>다른 하나는 진실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 긍정되는 것은 이쪽이다. 이는 진실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통해 암시되는 인식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박로사에게 하명이 던진 질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복수를 포기하고 자수한 형 재명의 “나나 네가 물어보고 싶었던 걸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기자답게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걸 물어봤으면 좋겠어.”라는 충고를 떠올리면서, “우리 아버지를 왜 모함했습니까?” 대신 “박 회장님, 아드님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왜 우리 가족을 모함했습니까?” 대신 “죄 없는 아들을 보도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라고, “왜 그런 짓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습니까?” 대신 “그럼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20회)라는 질문을 던져 박로사의 자백을 이끌어낸다.</p>
<p>하명은 가족사에 얽매여 개인적인 질문을 하거나, 기자라는 특권적 위치에 기대어 질문을 하는 대신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알아야 하는 것을 묻는다. 그 전까지 하명/인하가 생각한 언론관에서 기자는 마치 수사관과 같이 진실을 파헤쳐 대중에게 알리는 시혜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반대로 대중의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질문을 던져 숨겨졌던 진실을 발굴하게 된다. 즉 진실이 진실로서 힘을 얻는 또 다른 방법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언론의 수평적 위치와 윤리적 책임을 뜻한다. 유네스코가 ‘매스미디어 선언’에서 채택한 맥브라이드 보고서에서는 언론이 ‘권력의 수단, 혁명의 무기, 생산된 상품, 교육의 수단’일 수 있고, ‘해방의 목적, 인간 개성의 성장’에 기여할 수도, ‘억압의 목적, 인간 획일화의 목적’에 악용될 수도 있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언론에는 높은 윤리적 책무가 지워지고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는 이를 특권의식을 버리고 중개자로 돌아가는 기자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언론정의를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재고하도록 한다.</p>
<p>일반적으로 진실은 믿음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는 진실의 절대성을 해체함으로써 믿음이 진실의 원천이라는 전작의 메시지를 한층 강화한다. 물론 진실을 탈각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춘 만큼 또 다른 키워드인 믿음의 문제, 정확히는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남은 믿음의 문제를 통해 그려지는 사회 정의의 구체적인 모습은 마지막 작품인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p>
</sec>
<sec id="sec004">
<title>4. 부정사회(不正社會) 속 공동선의 모색</title>
<p>주인공이 변호사인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에서는 언론의 문제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주인공들이 기자인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는 법의 문제가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 반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의 주인공들은 각각 검사와 기자로 설정되어 전작들에서 별도로 다뤄졌던 법과 언론의 문제가 동시에 그려진다. 또한 이 작품은 전작들의 문제적인 사법/언론계의 실상을 다시금 보여줌으로써 전작들에서 연속된 세계임을, 즉 사법정의가 무너지고 언론정의마저 부패한 파국 이후의 세계라는 점을 암시한다.<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 “사회 전체를 무력감에 빠트리는 대규모 참사” 등 “슬프게, 분노하게 만드는 사건이 많아”지는 실제 현실을 반영했다는 기획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전작들이 형상화한 문제적 현실의 연장에서 “부질없는..그러나 간절한 소망”<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을 사회 정의로서 보여주는 작품이다.</p>
<p>작품에 그려진 중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p>
<table-wrap id="t003">
	<label>&#x003C;표 3&#x003E;</label>
	<caption>
		<title><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 중요 사건</title>
	</caption>
	<table frame="box" rules="all" width="100%">
	<tbody>
		<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사건</td>
<td valign="middle">개요</td>
<td valign="middle">경과</td>
<td valign="middle">진실</td>
<td valign="middle">결과</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① 오토바이 사건</td>
<td valign="middle">정재찬과 이유범이 탄 오토바이가 상가에 추돌함</td>
<td valign="middle">정재찬이 오토바이를 운전한 것으로 알려짐</td>
<td valign="middle">오토바이를 운전한 이유범이 정재찬에게 누명을 씌움</td>
<td valign="middle">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겼다는 미안함에 정재찬이 각성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② 탈영병 사건</td>
<td valign="middle">무장탈영병에 의해 파출소장인 정재찬의 아버지와 버스 운전기사인 남홍주의 아버지가 사망함</td>
<td valign="middle">파출소장과 버스 운전기사가 의인으로 추도되고, 탈영병의 가족이 지탄을 받음</td>
<td valign="middle">탈영병은 검찰 수사관 최담동의 동생이었음</td>
<td valign="middle">정재찬과 남홍주에게 죄책감을 갖게 된 최담동이 훗날 이유범으로부터 정재찬을 구하고 사망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③ 박준모 가정폭력사건</td>
<td valign="middle">박준모의 아내가 딸의 연주회장에서 실신하고 폭행 흔적이 발견됨</td>
<td valign="middle">변호사 이유범이 상해죄에게 단순 폭행죄로 뒤바꾸려함</td>
<td valign="middle">상습적으로 폭행이 이루어졌으나 매번 무마되어왔음</td>
<td valign="middle">정재찬ㆍ최담동의 수사와 아내의 용기로 박준모가 처벌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④ 음주운전 동승자 사망사건</td>
<td valign="middle">음주운전 동승자에 대한 검찰의 음주운전 방조 기소가 반려됨</td>
<td valign="middle">검사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림</td>
<td valign="middle">동승자가 운전자에게 차키를 건넴</td>
<td valign="middle">음주운전을 방조한 동승자도 똑같이 처벌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⑤ 보험 살인사건</td>
<td valign="middle">형 강대희가 운전하던 차에 동승했던 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함</td>
<td valign="middle">변호사 이유범이 단순 교통사고 사망사건으로 무마하려함</td>
<td valign="middle">보험금을 노린 형이 동생을 독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함</td>
<td valign="middle">무죄로 풀려난 강대희가 여동생과 남홍주를 살해하려다가 체포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⑥ 유수경 사망사건</td>
<td valign="middle">국민영웅인 양궁선수 유수경이 집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됨</td>
<td valign="middle">인터넷 수리기사 도학영이 범인으로 몰림</td>
<td valign="middle">지병을 앓고 있던 유수경이 집안에서 사고로 사망함</td>
<td valign="middle">진실이 밝혀져 도학영은 풀려나지만 판결에 불만을 가진 유수경의 아버지가 정재찬을 총으로 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⑦ 문 교수 과실치사사건</td>
<td valign="middle">문 교수의 제자가 몸싸움 중 추락해 뇌사에 빠짐</td>
<td valign="middle">뇌사자와 장기이식문제가 겹침</td>
<td valign="middle">갑질을 일삼던 문 교수가 제자의 폭로에 분노해 살인을 저지름</td>
<td valign="middle">정재찬의 기지에 의해 정기이식이 이루어지고 문 교수도 처벌됨</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⑧ 링거 연쇄살인사건</td>
<td valign="middle">독극물이 들어간 링거로 인해 다수의 환자가 사망함</td>
<td valign="middle">의사 명이석이 범인으로 체포되고 교도소에서 자살함</td>
<td valign="middle">과거 담당검사였던 이유범이 증거를 조작해 명이석에게 덮어씌움</td>
<td valign="middle">진범이 이유범에게 거래를 제안하나 역으로 그에게 살해되고, 이유범도 처벌됨</td>
</tr>
	</tbody>
	</table>
</table-wrap>
<p><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의 최초의 사건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 ①과 ②다. 전교 꼴찌인 중학생 재찬의 과외교사인 명문대생 이유범은 성적표 조작을 제안하고 그것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과외비도 올리는 윈-윈이라고 설득한다. 이에 넘어간 재찬은 성적표를 조작해 칭찬을 받고 이유범의 과외비를 나눠받아 오토바이를 산다. 어느 날 이유범이 운전한 오토바이가 상가에 추돌하고 경력에 흠집이 날 것을 우려한 그는 동승했던 미성년자 재찬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운다. 다행히 사고는 무마되지만 재찬의 아버지는 아들이 성적표를 조작했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이에 재찬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일들이 지나간 후 곧바로 사건 ②가 이어지면서 재찬의 아버지와 홍주의 아버지가 사망한다.</p>
<p>전작들과 달리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는 이유범이라는 한 명의 악인만 등장한다. 사건 ①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성적표 조작을 제안하고 운전자를 바꿔치기하는 것은 “(명문대생인) 나보다 (전교 꼴찌인) 네가 더 말이 되잖아.”(2회)라는 대사에서 드러나듯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도 아무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인물이 성장해 사법정의와 언론정의를 뒤흔든다. 검사 이유범은 사건 ⑧을 해결한 공로로 표창을 받은 뒤 변호사로 전향, 권력자들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유명사건을 맡으면서 교묘한 논리로 범죄자를 비호하고 그 과정에서 언론을 움직여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이 형성되도록 한다.</p>
<p>흥미로운 것은 이유범이 자신이 악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 ⑤가 그려지는 12회에서 친족살해범 강대희를 변호해 무죄로 만든 뒤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 자해에 가깝게 강박적으로 손을 닦는 &#x003C;<xref ref-type="fig" rid="f005">장면 5</xref>&#x003E;가 이를 보여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유범의 심리가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이 아닌, 자기혐오라는 점이다. 사실 그가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전향한 것도 증거를 조작해 가짜 범인을 만들었다는 사실, 즉 완벽하고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 싶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음에 한 선택이다. 한마디로 이유범은 자기기만자(alazon)다. 그가 검사로서 꿈꿨던 정의는 어린 시절의 행적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보편적 정의가 아닌 철저히 이기적으로 설정한 자기만의 정의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신념으로 삼아 살아왔고 그것조차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변호사로 전향해 자기부정으로부터 도피해버린다. 문제는 변호사가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의 이기적인 원칙도, 정의도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실을 가려 악을 밝히고 단죄하던 입장에서 명백한 악을 비호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면서 그는 자기혐오를 느끼게 되고 끊임없이 그런 진심을 감추면서 자신을 기만한다.</p>
<fig id="f005"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x003C;장면 5&#x003E;</label>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5.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그런 점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의 이유범은 사법/언론정의가 모두 부재하는 완전한 부정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승리자가 되고자 노력하다가 타락해버린 괴물형 인간에 다름 아니다. 이유범은 어린 시절부터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종이를 작게 찢어 돌돌 마는 강박 증세를 보인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함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가 머리로는 사회의 보편적 정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를 나오고 검사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사회에서 말하는 선과 옳음을 학습했고 정의의 편에 서고자 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겪은 사회는 사건 ①에서 알 수 있듯이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더 이득인 부정사회였다. 강박증이 “언어적 상징계와 함께 구성된 윤리적 규범에 의한 동물성의 금지”<xref ref-type="fn" rid="fb038"><sup>38)</sup></xref>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유범은 상징계의 차원에서 학습된 윤리 규범과 실제로 체험하는 현실 규범 사이의 간극으로부터 분열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비유컨대 그는 부정사회에서 자연선택된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다.</p>
<p>주지하듯 이유범은 더 큰 악, 절대악이 아니라 사법/언론정의가 무너져버린 부정사회가 만든 악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는 악이 아니다. 선이 있어야 악이 있고, 정의가 있어야 부정이 있음을 떠올려보면 이유범은 그 어떤 정의도 없는 사회가 이미 주어진 세계 속에서의 망상-분열적 인간 <xref ref-type="fn" rid="fb039"><sup>39)</sup></xref>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범의 모습은 실제 현실과의 접점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x003C;<xref ref-type="fig" rid="f006">장면 6</xref>&#x003E;에서 재찬의 앞과 뒤, 이유범, 유리벽 너머에 있는 다른 검사들은 한 화면에 담기고, 이유범은 “나의 오늘이 너희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32회)고 말한다. 이때 시청자는 유리벽을 통해 이유범을 지켜보는 검사들의 위치에서 상황을 보게 되고 이유범의 말은 그런 검사를 향하기 때문에 결국 그의 말은 시청자를 향한 말이 된다. 극적 세계와 실제 현실이 중첩되는 구도에서, 부정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 와중에 남들은 모르는 자기혐오에 시달렸던 인간 이유범의 말은 단순한 협박에 머물지 않고 시청자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p>
<fig id="f006"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x003C;장면 6&#x003E;</label>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6.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하지만 3장의 말미에서 언급했듯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서도 긍정되는 것은 이유범과 같은 이기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을 통한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세 작품을 통해 말해지는 사회 정의가 되는데, 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판타지 설정인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능력, 아니 능력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는 매우 일반적인 사유 방식이라는 점이다.</p>
<p>1~2회에서 그려지는 홍주와 재찬의 꿈을 보자. 예전부터 어머니가 죽는 꿈(A)을 꾸고 있던 홍주가 어느 날 자신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처음 보는 남자를 안는 꿈(B)을 꾸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날 아침 옆집에 꿈에서 보았던 남자인 신입검사 재찬이 이사를 온다. 며칠 뒤 재찬은 이유범과 홍주의 데이트를 목격하는데, 그 날 저녁 홍주의 차를 이유범이 운전하다가 눈길에 사고가 나서 지나가던 우탁이 사망, 홍주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몇 달 뒤 깨어난 홍주는 그 사이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하던 어머니가 과로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유범이 씌운 누명 때문에 재찬에게 수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한다. 그런데 이사 온 날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모두 재찬의 꿈이었다. 즉 재찬은 홍주의 A꿈이 이뤄지는 미래를 본 것이다. 하지만 비극을 막기 위해 재찬이 일부러 사고를 내면서 B꿈이 현실이 되고, 홍주와 재찬이 모두 꿨던 A꿈은 일어나지 않는다.</p>
<p>작품에서 설명되는 바에 따르면 그 전까지 홍주가 꾼 꿈은 모두 실제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때부터, 다시 말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의 시작부터 예지몽이 모두 실현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이런 상황은 이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사건 ③과 관련하여 우탁은 소윤이 자해를 하는 꿈을 꾸었지만 재찬을 그 자리로 불러들이는 변화를 줌으로써 사고를 막고(7회), 박준모 사건의 재판에 대해 홍주는 기소 실패의 꿈을, 우탁은 기소 성공의 꿈을 꾸는데 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인 재찬의 달라진 선택에 의해 기소에 성공하는 우탁의 꿈이 실현된다(8회). 이처럼 &#x003C;당신에 잠든 사이에&#x003E;에서의 꿈은 정해진 운명을 보는 능력이라거나 예지몽을 꾸는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서의 꿈은 관측되었을 때에만 현실이 되는 양자론에서의 가능성의 세계, 즉 평행우주<xref ref-type="fn" rid="fb040"><sup>40)</sup></xref>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p>
<p>그런데 여러 가능성의 미래 중 결국 단 하나만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현실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중요한 사건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최선과 최악, 차선과 차악 등 여러 가능성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 그 수많은 가능성의 미래 중 하나가 실현될 수도 있고,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최선과 최악의 미래를 본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함에 따라 그 중 하나가 실현됨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여러 가능성을 상상한 어떤 사람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 그것을 실현시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p>
<p>이러한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전작들에서 강조되었던 키워드 ‘믿음’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처음부터 믿음을 특별히 강조한다. 홍주의 B꿈으로 시작된 첫 회 첫 장면에서 그녀는 처음 보는 재찬을 안으며 “난, 당신 믿어요. 나니까, 당신 믿을 수 있어.”(1회)라고 말한다. 전술했듯이 홍주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던 A꿈과 B꿈을 모두 꾸었지만 그 과정은 보지 못한 채 결과만 보았다. 이유범이 사고를 내고 홍주에게 뒤집어씌운다는 A꿈의 구체적인 과정은 오직 재찬만 본 것이고 홍주는 모르는 상태인데 왜 그녀는 처음 보는 재찬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고를 냈다는 말을 믿는 것일까? 그것은 3회에서 홍주가 스스로 밝히듯 지금까지 그녀가 예지몽을 꾼 뒤 사고가 날 사람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그래서 남들이 보면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재찬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즉 나와 네가 ‘같다’는 인식이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p>
<p>그런데 믿음을 가능하게 한 같다는 생각은 단지 초능력을 공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예지몽을 꾸는 능력이 전파된다는 것이다. 본래 예지몽을 꾸는 능력을 가진 것은 홍주뿐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탈영병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의 아들인 재찬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이들이 탈영병의 형 최담동이 죄책감에 자살하려는 것을 막는 사건이 벌어진다. 물에 빠져 죽으려는 최담동을 어린 재찬이 구하려다 함께 물에 빠지게 되고 망설이던 홍주는 재찬의 몸에 묶인 줄을 끌어당겨 두 사람을 구하게 된다. 이렇게 죽을 운명에서 살아나게 된 이후 재찬과 최담동에게도 초능력이 생기게 된다. 또 다른 초능력자인 우탁도 홍주와 재찬이 꾼 A꿈에서는 이유범이 낸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었지만 B꿈이 실현되면서 살아나게 되고 초능력을 갖게 된다. 이렇듯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를 구해줌으로써 그 사람에게도 초능력이 생긴다.</p>
<p>초능력의 전파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재찬과 최담동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측은지심·연민·인(仁)·관용 등 인간애에 기반한 이타적인 선택이 초능력의 전파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최담동을 보며 홍주는 아버지를 죽게 한 탈영병의 형이기 때문에 놔두자고 하지만 재찬은 같은 인간인데 그럴 수는 없다며 물에 뛰어든다. 이러한 재찬의 입장에 공감한 홍주가 두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함으로써 초능력이 전파된다. 다른 하나는 우탁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일어나지 않은 미래, 즉 가능성의 세계에서의 일이 실제 현실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가까스로 피해 살아난 현장에서 우탁은 A꿈에서 벌어진 죽음의 순간을 느낀다. 자신이 죽는 미래가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그 잔상이 현실에 남은 것이다. 또한 애초에 그의 생존은 재찬이 A꿈을 꿈으로써 얻어진 결과 B다. 만약 홍주와 재찬이 A꿈을 꾸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가능성의 세계를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p>
<p>이를 종합해보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서 초능력의 전파가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어떤 선택의 순간 여러 가능성의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나에 국한하지 않고 타인까지도 고려하여 선택을 하면 보다 좋은 미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홍주가 처음 본 재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전적으로 믿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타적인 선행<xref ref-type="fn" rid="fb041"><sup>41)</sup></xref>을 한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 작품을 통해 최종적으로 말해지는 사회 정의, 즉 ‘공동선(the common good)’이다. 공동선은 “개인이나 집단으로서 모두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이며, 인간이 인간이라는 속성 때문에 그 본성에 따라 바라는 것”으로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보는 선”이다.<xref ref-type="fn" rid="fb042"><sup>42)</sup></xref> 이것이 왜 필요한가. 인간은 “고립되지 않고 공동체의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xref ref-type="fn" rid="fb043"><sup>43)</sup></xref>하는 존재이고 사회는 그런 인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p>
<p>사회 정의로서의 공동선은 개인과 집단의 충돌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정의의 대원칙인 공정성과 평등성을 모두 충족한다. 이는 똑같이 공동선을 추구함에도 그 개념과 방법을 달리하는 신자유주의적 공동선과 비교해보면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 자유주의는 자연권에서 연유한 인간의 기본권을 완벽히 인정하기 때문에 이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이 각자 자기의 선을 추구하면 공동선이 구현될 것이라고 본다. 이때 국가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선을 추구하도록 요구, 즉 개인에게 자유롭도록 강제하는 자치를 통해 공동선이 이뤄지도록 한다.<xref ref-type="fn" rid="fb044"><sup>44)</sup></xref> 쉽게 말해 모든 사람이 모든 권리를 평등하게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달성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공동선이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 추구는 정치적/경제적/법적 조건 등의 차이로 인해 공정하지도, 평등하지도 않기 때문에 개인 선의 총합인 신자유주의적 공동선은 실현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의 공동선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모색된 공동체주의에서 발로한 개념에 가깝다.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자연권과 같은 자족성에서 찾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정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개념이다.</p>
<p>모든 개인과 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완벽하게 합의하는 선(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공동선이 지향하는 것은 특정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공동선이라고 선택하고 결정하는가라는 참여와 논의의 과정이다.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혜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성찰로부터 공동선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살핀 세 작품은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공동선으로서의 사회 정의를 구체화한다고 할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가 무너진 사법정의를 통해 사회 정의의 기초가 되는 측면들을 개괄한다면,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왜곡된 언론정의를 통해 보편적으로 합의된 ‘정의=진실’ 개념을 뒤집고,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상호 신뢰와 연대를 바탕으로 한 공동선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p>
<p>그렇다면 공동선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란 무엇인가. 이는 다시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의 초능력과 연관되어있다. 상술했듯이 초능력의 전파는 가능성의 세계를 생각한 인간의 선택, 즉 타인을 구한다는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구호가 아닌 자신의 손실까지도 감내한 이타적인 행동이라는 점이고, 공동선은 이러한 이타심과 관용, 무조건적인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다. 만약 홍주와 재찬이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대의 선을 추구한다면(신자유주의적이라면) 구호행위는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올 혜택을 줄이는 대신 그만큼 타인의 혜택을 증진시키는 이타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실현시킨다.</p>
<p>이러한 삶의 방식이 가장 극적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최담동이다. 탈영병의 형 최담동은 재찬과 홍주에 의해 살아난 뒤 초능력을 갖게 된다. 그가 본 미래는 먼 훗날 자신이 이유범으로부터 재찬을 구하고 대신 죽는 것이었다. 그는 동생을 위로하지도, 말리지도 못해 비극을 초래하게 놔두었다는 죄책감에 죽음을 알고서도 자신이 본 미래를 선택해 살게 된다. 그 결과 최담동은 죽는다. 하지만 그는 동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속죄를 할 수 있게 되고 인과응보까지 실현,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혜택이 오는 미래를 실현시킨다.</p>
<table-wrap id="ft001">
<table width="100%">
<tbody>
<tr align="center">
<td><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7.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p>&#x003C;장면 7&#x003E;</p></td>
<td><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467799&amp;imageName=jpn_2019_25_02_73_f008.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p>&#x003C;장면 8&#x003E;</p></td>
</tr>
</tbody>
</table>
</table-wrap>
<p>이유범을 자수시키려고 설득하는 &#x003C;<xref ref-type="table" rid="ft001">장면 7</xref>&#x003E;에서 &#x003C;<xref ref-type="table" rid="ft001">장면 8</xref>&#x003E;로의 전환은 이러한 공동선으로서의 삶의 방식이 지닌 의의를 함축하고 있다. 예지몽이 가능성의 세계라는 점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의 본편은 어쩌면 무수히 많은 평행우주 중 하나일 수 있다. 최담동이 죽는 최종 세계가 32회 내내 여러 차례 행해진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최초의 사건이었던 탈영병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평행우주 중 하나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최담동이 동생을 위로하는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시작된 세계, 반대로 말하면 만약 그때 최담동이 동생을 위로하고 안아주었다면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을 세계. 그런 점에서 보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망각됐던 공동선의 실천을 통해 정의가 회복되는 세계의 구축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
<p>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자기희생조차도 감수하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동체주의의 근간이 되는 연대의식이다. 32회 말미에서 지금까지 등장했던 주변 인물들이 서로의 일상에서 사소하게 관련되면서 작은 인연을 만드는 상황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모든 인간은 서로 관계되어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작은 선택이 나를 넘어 타인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나에게 닥칠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서 선택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지만, 모두의 행복까지 고려해서 선택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거기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믿음을 바탕으로 나와 네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존재할 때 공동체가 될 수 있고 그러한 연대의식을 통해 정의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박혜련 작가의 작품들에서 최종적으로 말하는 공동선으로서의 사회 정의다.</p>
<p>최담동이 보여준 희생도 결국은 나와 네가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 즉 초시대적인 연대의식으로부터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작들에서도 이미 말해지고 있었다. 하명이 박로사에게 던진 질문은 그저 대중이 궁금해 하는 가십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타당한 질문이었다. 민준국의 공포스러운 얼굴 뒤에는 가족을 잃은 평범한 가장의 슬픔이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공동선의 실천은 타자에게 작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관심은 나와 네가 같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공감을 가능하게 하며 마침내 나와 타자의 경계를 해체시킨다. 데리다가 제안한 무조건적인 환대의 실현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공동선으로서의 사회 정의를 숙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는 나의 손실을 유발할 수도 있는 환대를 사유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관념<xref ref-type="fn" rid="fb045"><sup>45)</sup></xref>을 갖게 된 사회는 정의로움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된다.</p>
</sec>
<sec id="sec005">
<title>5. 나가며</title>
<p>최근의 텔레비전드라마에서는 판타지를 경유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방식이 대두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선도하는 박혜련 작가의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서 그려진 사회 정의를 고찰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는 사법정의가 무너진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사회 정의가 왜 필요한지를 말하는 작품이다. 무너진 사법정의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스템이 근본에서부터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수많은 소시민들의 고통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인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은 진실과 믿음이라는 키워드를 산출해내고 최종적으로는 진심의 가치를 일깨운다. 다음 작품인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는 언론정의가 왜곡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사회 정의에 대한 사유의 전환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부패한 언론정의는 진실을 호도하고 권력에 기생하면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해 진실의 수호자처럼 여겨지는 피노키오 증후군은 진실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진실이 지닌 절대성을 해체시키고 진실에 기반한 정의 개념을 부정한다. 마지막 작품인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전작들의 세계관을 이어받아 공동선이라는 사회 정의를 제시하는 작품이다. 사법정의가 무너지고 언론정의가 왜곡되면서 완전한 부정사회가 만들어져 각자도생하는 악인이 출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그려지는 예지몽은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타인의 행복까지도 고려한 이타적인 선택, 즉 공동선으로서의 삶의 방식이 긍정적인 미래를 실현시킨다는 것이 말해진다.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믿음은 부정사회를 살아가는 주체들의 연대를 가능케 하며 이러한 인간다움의 회복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의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p>
<p>최근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박혜련 작가의 작품들이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공동선과 그러한 삶의 방식은 말 그대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정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차등적 정의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실리를 취하려는 모습<xref ref-type="fn" rid="fb046"><sup>46)</sup></xref>도 보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선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 사회 정의를 의미한다고 할 때 그것은 역동성을 띠는 재구축의 과정이다. 칸트는 “정의가 무너지면 세상은 더 이상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더 이상 살지 못한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부정사회가 끼치는 실손(實損)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라는 종적(種的) 특성 자체를 잃고 정의를 사유하지 않게 된 인간은 동물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선의 바탕이 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문제적인 현실을 가장 근본에서부터 돌아보고 개선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p>
<p>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텔레비전드라마가 현실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결말에 이르러서는 정의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는 낙관적 비전만 제시된다. 텔레비전드라마가 치유와 기망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지적<xref ref-type="fn" rid="fb047"><sup>47)</sup></xref>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고에서 살펴본 공동선으로서의 사회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공동선이 판타지에 기댄 희망적 메시지로만 이해된다면 그것은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 중 실현되지 않는 미래처럼 순간의 백일몽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정의사회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탐색으로 본다면 현실과의 접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왜냐하면 텔레비전드라마는 근본적으로 환상성을 내재하고 있어서 “현실세계의 존재자들(시청자)로 하여금 생활세계적 존재성을 재인식”<xref ref-type="fn" rid="fb048"><sup>48)</sup></xref>하게끔 하는 일상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의 세계다. 평범한 일상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의사회의 실현 가능성은 달라진다. 텔레비전드라마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는 판타지적 설정을 활용해 공동선으로서의 사회 정의를 단계적으로 그려낸 의미 있는 작품이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21">윤석진, ｢영상예술시대 극예술 장르에 관한 시론—2000년대 후반 TV드라마를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제44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1, 86쪽</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3">윤혜준, ｢리얼리즘과 폭력—｢모래시계｣를 기념하며｣, 『실천문학』 통권 제38호, 실천문학사, 1995, 434-435쪽</xref> 참조.</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1">박혜련 극본, 조수원 연출, 총18회, 2013.6.5.~2013.8.1.</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박혜련 극본, 조수원·신승우 연출, 총20회, 2014.11.12.~2015.1.15.</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박혜련 극본, 오충환·박수진 연출, 총32회(30분), 2017.9.27.~2017.11.16.</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8">백소연, ｢OCN 수사드라마에 나타난 ‘환상’의 의미—&#x003C;뱀파이어 검사&#x003E;와 &#x003C;귀신 보는 형사 처용&#x003E;을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제55집, 한국극예술학회, 2017, 285쪽</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로즈메리 잭슨, 『환상성-전복의 문학』,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역, 문학동네, 2004, 241쪽</xref> 참조.</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7">백경선,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에 나타난 판타지의 유형과 의의—201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제58권,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18, 239-240쪽</xref> 참고.</p></fn>
<fn id="fb009"><label>9)</label><p>백경선은 텔레비전드라마에 나타난 판타지 모티프를 시간(시간여행, 시간교섭, 환생), 공간(설화적 상상공간, 디지털 가상공간), 육체(영혼 전환, 빙의, 변신), 인간(초능력자, 상상 존재), 역사(대체역사, 가상역사, 신화역사)로 유형화한 바 있다(<xref ref-type="bibr" rid="B017">백경선,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에 나타난 판타지의 유형과 의의—201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제58권,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18, 221-236쪽</xref>). 하위 유형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텔레비전드라마는 판타지적 설정 및 소재의 특이성,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이한 극적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p></fn>
<fn id="fb010"><label>10)</label><p>김일수, ｢법질서에서 정의—왜 정의여야 하는가?｣, <xref ref-type="bibr" rid="B008">김일수 외, 『한국사회 정의 바로세우기』, 세창미디어, 2015, 9-24쪽</xref> 참조.</p></fn>
<fn id="fb011"><label>11)</label><p>초능력이 등장하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에 비해 가상의 증후군이 등장하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가 판타지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피노키오 증후군은 동화를 변주한 것이며, 스스로도 인지할 수 없는 사고(思考)의 진위 여부에 따라 신체 반응이 나타난다는 다분히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판타지가 광의적 개념에서는 자연 법칙이나 현실 법칙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xref ref-type="bibr" rid="B017">백경선,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에 나타난 판타지의 유형과 의의—201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제58권,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18, 218쪽</xref>)이라는 측면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또한 판타지 설정이 활용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p></fn>
<fn id="fb012"><label>12)</label><p>박노현은 &#x003C;추적자&#x003E;, &#x003C;황금의 제국&#x003E;, &#x003C;펀치&#x003E;를 권력이라는 소재와 정의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계열체-통합체로 보면서 권력 3부작이라고 명명한 바 있고(<xref ref-type="bibr" rid="B014">박노현, ｢박경수 미니시리즈 삼부작 연구—극적 세계의 친연성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제42집,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 346-347쪽</xref> 참조), 권양현 또한 &#x003C;부활&#x003E;, &#x003C;마왕&#x003E;, &#x003C;상어&#x003E;를 복수 3부작으로 명명하여 그 속에 담긴 현실 인식을 파국 담론과 연관해 논의한 바 있다(<xref ref-type="bibr" rid="B005">권양현, ｢김지우·박찬홍의 ‘복수 3부작’에 나타난 파국과 성찰｣,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xref>). 이처럼 특정 작가의 작품들을 시리즈로 볼 때에는 각 작품들이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본고에서 선정한 세 작품은 소재·설정·주제의식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조명동, ｢빅뱅이론의 신화와 철학적 분석｣, 『한국문화융합학회 2017년 동계전국학술대회 자료집』, 한국문화융합학회, 2017, 46쪽</xref> 참조.</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19">법원행정처, 『사법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상)』, 사법발전재단, 2008, 77쪽</xref> 참조.</p></fn>
<fn id="fb015"><label>1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 기획의도 (<uri>https://programs.sbs.co.kr/drama/yourvoice/about/50282</uri>, 최종접속일: 2019.5.7.)</p></fn>
<fn id="fb016"><label>16)</label><p>혜성의 위증은 형법 152조(위증, 모해위증)를 위배한 것으로 “①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피의자 또는 징계혐의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중범죄이다.</p></fn>
<fn id="fb017"><label>17)</label><p>김강원은 서대석을 “‘판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이 있어야”하고 “그 역할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xref ref-type="bibr" rid="B006">김강원, ｢판타지 드라마 &#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의 장르 혼종 양상 연구｣, 『한국언어문화』 제66권, 한국언어문화학회, 2018, 113쪽</xref>).</p></fn>
<fn id="fb018"><label>18)</label><p>무너진 사법정의로 인한 피해는 나머지 사건들에서도 확인된다. 사건 ③은 왕따 가해자인 성빈, 사건 ④는 성폭행과 협박을 저지른 편의점주가 애초에 제대로 처벌되지 않아 발생한 일이고, 사건 ⑥은 과거 잘못된 판결을 내린 서대석으로 인해 황달중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결과 일어난 일이다.</p></fn>
<fn id="fb019"><label>19)</label><p><xref ref-type="bibr" rid="B029">하태훈, ｢합리적인 사법제도 구현방안｣, 『고려법학』 제75권,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4, 96쪽</xref> 참조.</p></fn>
<fn id="fb020"><label>20)</label><p>이에 대해 김강원은 수하의 초능력이 추리 장르와의 결합에 있어서는 아쉬우나 멜로 장르와의 결합에 있어서는 여성의 판타지가 극대화된 지점이라고 평가했다(<xref ref-type="bibr" rid="B006">김강원, ｢판타지 드라마 &#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의 장르 혼종 양상 연구｣, 『한국언어문화』 제66권, 한국언어문화학회, 2018, 132-33쪽</xref> 참조).</p></fn>
<fn id="fb021"><label>21)</label><p>이는 김강원에 의해서도 분석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에서 진실과 믿음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수하의 초능력인 진실을 보는 능력은 추리와 판타지라는 이질적인 장르의 유기적 결합을 가능케 하면서 작품을 전반적으로 감성적 서사로 이끈다(<xref ref-type="bibr" rid="B006">김강원, ｢판타지 드라마 &#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의 장르 혼종 양상 연구｣, 『한국언어문화』 제66권, 한국언어문화학회, 2018, 111-119쪽</xref> 참조).</p></fn>
<fn id="fb022"><label>2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107쪽</xref> 참조.</p></fn>
<fn id="fb023"><label>2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84쪽</xref> 참조.</p></fn>
<fn id="fb024"><label>24)</label><p>2016~2017년 한국의 촛불혁명에서 국민들의 행동이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근거한 헌법질서의 회복이었다는 점(<xref ref-type="bibr" rid="B030">홍윤기,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 주권자의 헌법공동체로 만들기｣, 『NGO연구』 제12권 2호, 한국NGO학회, 2017, 21-27쪽</xref> 참조)이 이를 방증한다.</p></fn>
<fn id="fb025"><label>25)</label><p><xref ref-type="bibr" rid="B031">Vincent Blasi, "The checking value in the First Amendment theory", <italic>American Bar Foundation Research Journal</italic>, Vol.2 No.3, 1977, p.541</xref>. <xref ref-type="bibr" rid="B024">이재진, ｢언론의 파수견 개념의 발전과 적용｣, 『한국언론정보학보』 제41호, 한국언론정보학회, 2008, 109쪽</xref> 재인용.</p></fn>
<fn id="fb026"><label>2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 기획의도 (<uri>https://programs.sbs.co.kr/drama/pinocchio/about/53212</uri>, 최종접속일: 2019.5.7.)</p></fn>
<fn id="fb027"><label>27)</label><p>참사의 초점이 옮겨가면서 특정인에 대한 마녀사냥식의 보도가 난무하고 정작 문제의 본질은 간과되는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은 세월호 사건 당시 언론의 실제 보도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 당일인 2014년 4월 16일부터 4월 28일까지는 구조자와 사망자, 구조 작업 등에 대한 기사가 대부분이었으나, 4월 29일 이후부터는 책임 공방이 불거지면서 이런 뉴스는 점차 감소하였고 유병언 일가의 비리에 대한 수사 뉴스가 급증하였다(<xref ref-type="bibr" rid="B009">김태원·정정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기별 뉴스 프레임 비교 연구｣, 『사회과학연구』 제27권 1호, 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16, 206-218쪽</xref> 참조). 물론 청해진해운의 부실 운영에서부터 비롯된 사고의 책임 등 유병언 일가에 대한 보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정부의 안이한 대응, 재난 대응 체계의 미비, 구조 실패의 원인 등 사상자 규모가 급증한 실질적 이유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도외시되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 그리는 것은 이러한 언론 보도의 문제적인 흐름이다.</p></fn>
<fn id="fb028"><label>28)</label><p>“기자로서 자기 관리가 뛰어나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기자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일 뿐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xref ref-type="bibr" rid="B022">윤석진, ｢신자유주의 시대, ‘치유(治癒)’ 혹은 ‘기망(欺罔)’의 텔레비전드라마｣, 『어문연구』 제92집, 어문연구학회, 2017, 287쪽</xref>)는 윤석진의 분석처럼 송차옥은 양면성이 강한 인물이다.</p></fn>
<fn id="fb029"><label>29)</label><p>강남대로 침수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얕은 물에 무릎을 꿇어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것처럼 보도했다거나 유치원 버스사고를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마트에서 운동화를 사서 유품인 듯 보도했다는 내용이 그려지는 3회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송차옥의 언론관을 10회에 그려지는 특강 제목을 변용하여 한마디로 말하면 ‘팩트를 보도하되 임팩트 있게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p></fn>
<fn id="fb030"><label>30)</label><p>인하의 면접 상황이 그려지는 3회에서 송차옥은 실내 흡연을 용인하는 식당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시킨다. 피노키오 증후군인 인하는 식당 주인에게 흡연이 가능하냐고 정직하게 질문했다가 취재에 실패하는 반면 송차옥은 방송국 고위간부들의 회식이 있다며 자연스럽게 흡연도 가능하냐고 물어 취재에 성공한다. 이처럼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에서는 딜레마 상황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언론정의인지를 반복적으로 돌아보게 한다.</p></fn>
<fn id="fb031"><label>31)</label><p>“소시오패스는 감정이 있되 타인에게 공감을 하지 않는 것”이자 “자신의 감정/욕망/이익 등을 타인의 가치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두는 이기적인 성격과 유사하다.”(<xref ref-type="bibr" rid="B015">박상완,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의 재벌 소시오패스 캐릭터 연구—&#x003C;별에서 온 그대&#x003E;, &#x003C;리멤버&#x003E;, &#x003C;미세스 캅2&#x003E;를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제53집, 한국극예술학회, 2016, 154-155쪽</xref>)는 지적처럼 박로사는 아들 범조를 사랑하는 등의 감정은 있지만 이러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타인의 생명보다도 우위에 놓는다는 점에서 소시오패스다. 단, 그러한 성격의 발단이 된 후천적 요인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이코패스로 볼 여지도 있다.</p></fn>
<fn id="fb032"><label>3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6">박흥식, ｢뉴스 앵커의 평판이 프로그램의 신뢰도와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04-111쪽</xref> 참고.</p></fn>
<fn id="fb033"><label>33)</label><p>주형일, ｢옳은 언론을 위한 정의의 기초｣, <xref ref-type="bibr" rid="B008">김일수 외, 『한국사회 정의 바로세우기』, 세창미디어, 2015, 265-272쪽</xref> 참조.</p></fn>
<fn id="fb034"><label>34)</label><p>주형일, ｢옳은 언론을 위한 정의의 기초｣, <xref ref-type="bibr" rid="B008">김일수 외, 『한국사회 정의 바로세우기』, 세창미디어, 2015, 275쪽</xref>.</p></fn>
<fn id="fb035"><label>35)</label><p>주형일은 한국사회의 언론에게 해방 이전에는 민족, 해방 이후에는 반공 등 진실을 결정짓는 기준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한국사회에는 ‘좋은 언론’만 있었지 ‘옳은 언론’은 없었다고 지적한다(주형일, ｢옳은 언론을 위한 정의의 기초｣, <xref ref-type="bibr" rid="B008">김일수 외, 『한국사회 정의 바로세우기』, 세창미디어, 2015, 257-265쪽</xref> 참조).</p></fn>
<fn id="fb036"><label>36)</label><p>마지막 사건인 링거연쇄살인사건의 핵심 단서가 되는 피해자 사진이 담긴 휴대폰을 재찬에게 넘기는 좀도둑 박대영은 과거 부장검사에게 체포되어 실형을 받는 바람에 아픈 딸이 아사한 경험이 있어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너의 목소리가 들려&#x003E;</xref>의 민준국을 상기시킨다. 또한 홍주의 방송국 선배와 상사들은 자극적이고 대중이 좋아할 만한 보도를 하라고 종용해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피노키오&#x003E;</xref>의 MSC 방송국을 떠올리게 한다.</p></fn>
<fn id="fb037"><label>3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당신이 잠든 사이에&#x003E;</xref> 기획의도 (<uri>https://programs.sbs.co.kr/drama/wyws/about/50327</uri>, 최종접속일: 2019.5.7.)</p></fn>
<fn id="fb038"><label>3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문장수·심재호, ｢강박증에 대한 프로이트적 정의와 원인에 대한 비판적 분석｣, 『철학논총』 제82집, 새한철학회, 2015, 213쪽</xref>.</p></fn>
<fn id="fb039"><label>39)</label><p>홍준기, ｢불안｣, <xref ref-type="bibr" rid="B007">김서영 외,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현실문화연구, 2016, 207쪽</xref> 참조.</p></fn>
<fn id="fb040"><label>40)</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미치오 가쿠, 『평행우주』, 박명철 옮김, 김영사, 2006, 271-272쪽</xref> 참조.</p></fn>
<fn id="fb041"><label>41)</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강영안, 『타자의 얼굴』, 문학과지성사, 2005, 189쪽</xref> 참조.</p></fn>
<fn id="fb042"><label>4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5">이종은,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현대 정의 이론과 공동선 탐구』, 책세상, 2015, 743, 752쪽</xref>.</p></fn>
<fn id="fb043"><label>4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5">이종은,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현대 정의 이론과 공동선 탐구』, 책세상, 2015, 701쪽</xref>.</p></fn>
<fn id="fb044"><label>44)</label><p><xref ref-type="bibr" rid="B025">이종은,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현대 정의 이론과 공동선 탐구』, 책세상, 2015, 636-666쪽</xref> 참조.</p></fn>
<fn id="fb045"><label>45)</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지오반나 보라도리, 『테러 시대의 철학: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손철성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235쪽</xref>.</p></fn>
<fn id="fb046"><label>4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3">박노자, ｢냉소의 시대, 정의란 무엇인가｣, 『비굴의 시대』, 한겨레출판, 2014, 44쪽</xref> 참조.</p></fn>
<fn id="fb047"><label>47)</label><p><xref ref-type="bibr" rid="B022">윤석진, ｢신자유주의 시대, ‘치유(治癒)’ 혹은 ‘기망(欺罔)’의 텔레비전드라마｣, 『어문연구』 제92집, 어문연구학회, 2017, 294-295쪽</xref> 참조.</p></fn>
<fn id="fb048"><label>48)</label><p><xref ref-type="bibr" rid="B020">양승국, ｢생활세계의 경계 허물기와 공감의 소통형식—판타지 드라마의 미학과 존재론｣, 『한국극예술연구』 제58집, 한국극예술학회, 2017, 111쪽</xref>.</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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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기본자료</title>
<!-- 박혜련 극본, 조수원 연출, 〈너의 목소리가 들려〉, SBS, 2013.6.5.~20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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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혜련</given-names></name>
<name><surname>조</surname><given-names>수원</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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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너의 목소리가 들려</source>
<comment>SBS, 2013.6.5.~2013.8.1</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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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련 극본, 조수원ㆍ신승우 연출, 〈피노키오〉, SBS, 2014.11.12.~201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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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2</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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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혜련</given-names></name>
<name><surname>조</surname><given-names>수원</given-names></name>
<name><surname>신</surname><given-names>승우</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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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극본, 연출</comment>
<source>피노키오</source>
<comment>SBS, 2014.11.12.~2015.1.15</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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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련 극본, 오충환ㆍ박수진 연출, 〈당신이 잠든 사이에〉, SBS, 2017.9.27.~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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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3</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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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혜련</given-names></name>
<name><surname>오</surname><given-names>충환</given-names></name>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수진</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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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극본, 연출</comment>
<source>당신이 잠든 사이에</source>
<comment>SBS, 2017.9.27.~2017.11.16</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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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ist><title>2. 논문과 단행본</title>
<!-- 강영안, 『타자의 얼굴』, 문학과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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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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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강</surname><given-names>영안</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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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5</year>
<source>타자의 얼굴</source>
<publisher-name>문학과지성사</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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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양현, ｢김지우·박찬홍의 ‘복수 3부작’에 나타난 파국과 성찰｣,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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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5</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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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권</surname><given-names>양현</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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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6</year>
<source>김지우·박찬홍의 ‘복수 3부작’에 나타난 파국과 성찰</source>
<publisher-name>충남대학교</publisher-name>
<comment>박사학위논문</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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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원, ｢판타지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르 혼종 양상 연구｣, 『한국언어문화』 제66권, 한국언어문화학회, 2018, 101-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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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6</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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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강원</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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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8</year>
<article-title>판타지 드라마 &#x3008;너의 목소리가 들려&#x3009;의 장르 혼종 양상 연구</article-title>
<source>한국언어문화</source>
<publisher-name>한국언어문화학회</publisher-name>
<volume>제66권</volume>
<fpage>101</fpage><lpage>135</l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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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영 외,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현실문화연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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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7</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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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서영</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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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6</year>
<source>헬조선에는 정신분석</source>
<publisher-name>현실문화연구</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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