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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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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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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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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3_9</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3.001</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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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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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oup>
			<article-title>파토스에의 거리와 합리적 거래의 감성화<xref ref-type="fn" rid="fn01">*</xref><xref ref-type="fn" rid="fn02">**</xref></article-title>
			<subtitle>-1990년대 한국영화 장르의 변전(變轉)과 감성의 재편</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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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Keeping Distance from Pathos and Turning Rational Trade into Emotions</trans-title>
				<trans-subtitle>-The Change of Genres and the Reorganization of Emotions in the South Korean Films in the 1990s</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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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name-style="eastern"><surname>박</surname><given-names>유희</given-names></name>
				<name name-style="eastern" xml:lang="en"><surname>Park</surname><given-names>Yu-Hee</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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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ref ref-type="aff" rid="aff01">***</xref>
			<aff id="aff01"><label>***</label>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aff><role>교수</role>
			<aff xml:lang="en">Korea University</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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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otes>
		<fn id="fn01"><label>*</label><p>본 학술논문은 2019년도 고려대학교 문화스포츠대학 특성화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K1829371).</p></fn>
		<fn id="fn02"><label>**</label><p>이 논문은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100주년 특별 심포지엄: 한국영화라는 정체성, 국가와 장르 사이’(2019.5.4.)에서 발표한 “멜로드라마에서 코미디·스릴러의 시대로: 1990~2000년대 한국영화 장르의 변전과 감성의 재편”의 전반부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p></fn>
</author-notes>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month>8</month>
			<year>2019</year>
		</pub-date>
		<volume>25</volume>
		<issue>3</issue>
		<fpage>9</fpage>
		<lpage>40</l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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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date-type="re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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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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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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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itle>국문초록</title>
<p>본고는 1990년대 한국영화를 장르의 변전과 감성의 재편이라는 차원에서 고찰한 것이다. 1990년대는 영화산업구조와 미디어 환경의 획기적 변화에 따라 장르의 변전과 재편이 일어나며 한국영화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1987년 민주화와 1998년 IMF로 상징되는 세계자본주의화에 의한 감성의 변화와 연관된다고 보고 영화 텍스트에 나타난 현상을 분석하며 그 이면의 계기와 맥락을 밝혀보고자 했다. </p>
<p>이 연구가 기존의 논의와 다르게 1990년대 한국영화사에 접근한 지점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1990년대에 왜 하필이면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부상했는지, 로맨틱코미디는 어떤 단계를 거쳐 성립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므로 우선적으로 이 부분에 착목했다. 둘째, 1987년부터 1999년까지를 전환기로 보고 이 시기에 나타난 장르와 감성의 주류를 읽어내기 위해 최고 흥행작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한 영화들은 장르 판도와 대중의 취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셋째, 멜로드라마와 로맨틱코미디에 대한 분리된 고찰에서 벗어나 두 장르를 아우르는 감성구조를 살펴봄으로써 1990년대 한국영화에 보다 거시적이고 역동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역사는 면면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인 만큼 그것은 이전 시대와의 단절이 아니므로 연속선상에서 변곡점과 계기에 유의할 때 변화의 역학과 구조가 적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p>
<p>이러한 접근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는 멜로드라마였고, 이는 구조적 정합성에 어긋나는 모순과 과잉의 요소들이 파토스에 의해 상쇄되거나 봉합되는 오랜 관습을 유지해왔다. 여기에서 구조적 정합성이란 합당한 규약이나 거래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장르가 재편되는 과정은 구조적 정합성을 희생하는 관습에 거리를 확보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그 방향은 합리적 이성주의와 자본의 논리에 의한 통어가 강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웃음을 통해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임계를 확장하는 코미디로 시작하여 감성을 취향의 항목으로 기호화하고 상호 합의와 실리적 거래의 논리를 통해 구축해가는 로맨스로 전개된다. 이를 통해 1990년대 한국영화는 무조건적 가족주의에 긴박된 파토스의 서사로부터 멀어져가는 쪽으로 발전되어 간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사회가 근대 합리주의의 쌍생아로서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향된 궤도에 진입하는 것과 동궤를 이루는 것이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This study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South Korean films in the 1990s in the aspects of genre change and emotional reorganization. The 1990s witnessed a change of genres and a paradigm shift in the history of Korean films according to the revolutionary changes of the film industry structure and media environment. Believing that these changes had something to do with emotional changes driven by global capitalization symbolized by democratization in 1987 and the foreign currency crisis in 1998, the investigator analyzed the phenomena in film texts and examined the opportunities and context behind them.</p>
<p>Unlike previous researches, this study made an approach to the history of Korean films in the 1990s with three points: first, this study focused on why the romantic comedy genre emerged in the 1990s and what stages its formation underwent since there had been no profound discussions about them; secondly, this study analyzed the biggest hits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from 1987~1999 to figure out the mainstream genres and emotions during that period since these hits would provide texts to show the genre domain and public taste in a symbolic way; and finally, this study grew out of the separate investigation approach between melodramas and romantic comedies and looked into an emotional structure to encompass both genres to make a more broad and dynamic approach to South Korean films in the 1990s. History flows continuously without severance from previous times. When there is attention paid to inflection points and opportunities in the continuum, it can show the dynamics and structures of changes.</p>
<p>This research led to the following conclusions: the mainstream genre of South Korean films had been melodramas until the 1980s. The old convention had been kept to offset or suture contradictions and excessive elements deviant from the structural consistency. Here, the structural consistency refers to no compliance to rational regulations or trade. The process of genre reorganization in the 1990s happened while securing some distance from the convention of making the structural consistency a sacrifice. The direction was to reinforce control through reasonable rationalism and logic of capital. It developed into romance, which would start with comedy to keep distance from the objects through laughter, heighten the level of remarks, and expand criticality, symbolize emotions with taste items, and build through the logic of mutual consensus and practical trade. In the 1990s, the South Korean films thus developed in a direction of moving away from the narrative of urgent pathos based on unconditional familism. It was on the same track as the entry of the South Korean society into the upgraded orbits of democracy and capitalism as the twins of modern rationalism since the latter part of the 1980s.</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멜로드라마</kwd>
			<kwd>로맨틱코미디</kwd>
			<kwd>스릴러</kwd>
			<kwd>영화 장르</kwd>
			<kwd>거리</kwd>
			<kwd>파토스</kwd>
			<kwd>감성 재편</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Melodrama</kwd>
			<kwd>Romantic comedy</kwd>
			<kwd>Thriller</kwd>
			<kwd>Film Genre</kwd>
			<kwd>Distance</kwd>
			<kwd>Pathos</kwd>
			<kwd>Reorganization of Emotions</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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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1. 멜로드라마에서 코미디의 시대로</title>
<p>이 글은 십진법식 시대구분에 의해 ‘1990년대’라고 불리는, 1987년 이후부터 2000년에 이르는 시기 한국영화 장르의 변전과 감성의 재편에 대한 고찰이다. 이 시기에 한국영화는 산업, 정책, 영화인력, 시스템, 콘텐츠 면에서 전방위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까지 정책에 의해 억압되고 유예되었던 한국영화계 전반의 문제가 1980년대에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예비된 것이 1980년대 후반에 현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1985년에 시행된 영화법 제5차 개정으로 제작과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고, 제6차 개정으로 1988년부터 할리우드 직배가 허용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영화에 대한 행정적 사전 통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검열의 위헌 판결을 향한 투쟁과 더불어 UIP 직배에 대항한 싸움도 본격화되었다. 1987년을 기점으로 이두용, 이장호, 배창호로 이어져온, 1970년대부터 새로운 영화를 주도했던 세대의 퇴진이 두드러지고, 이들의 영화를 보며 성장한 세대가 전면에 나서며 다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갔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그럼에도 외화 수입 자유화와 시장 개방의 영향으로 한국영화 점유율은 계속 하락하여 1993년에는 15.9%까지 떨어졌다. 그러다가 1994년부터 한국영화 점유율이 반등하기 시작하여 1999년에는 30%를 넘어서게 된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여기에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유입에 따른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도입, 도시문화와 고등교육의 세례를 받고 성장하여 1980년대 대중문화의 광장에서 경험을 쌓은 세대의 역할,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강화된 한국영화계의 자생력과 확장된 시야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p>
<p>이러한 변동은 관객의 취향과 소구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흥행하는 영화의 판도에서 확연히 감지된다. 1987년부터의 한국영화 흥행작들을 보면 우선 젊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가 부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87년 한국영화 흥행 1위가 &#x003C;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x003E;(26만), 2위가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19만)이었다. 1988년에는 &#x003C;어른들은 몰라요&#x003E;(22만), 1989년에는 &#x003C;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x003E;(15만)가 각각 흥행 3위에 랭크되었다. 이외에도 &#x003C;비오는 날의 수채화&#x003E;(1990), &#x003C;있잖아요 비밀이에요&#x003E;(1990), &#x003C;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x003E;(1990)와 같은 영화가 10위권에 들어있다. 그리고 1990년대를 열었던 흥행작은 1977년 &#x003C;겨울여자&#x003E;의 관객 동원 기록을 13년 만에 깬 &#x003C;장군의아들&#x003E;(67만)이었다. 여세를 몰아 1991년에도 &#x003C;장군의아들2&#x003E;(35만)가 흥행 1위를 차지하고, &#x003C;장군의아들3&#x003E;은 1992년 흥행 5위(16만)에 오른다.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 액션물의 대표적인 주인공 중 하나였던 김두한을 소년의 이미지로 새롭게 재현하여 폭넓은 관객층에게 호응을 얻으며 크게 성공했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p>
<p>이즈음에 눈에 띄게 부상하는 장르가 로맨틱코미디이다. 1991년에는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xref>(21만)가 흥행 2위, 1992년에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52)가 1위, &#x003C;미스터 맘마&#x003E;(22만)가 2위, 1993년에는 &#x003C;그 여자 그 남자&#x003E;(21만)가 2위, 그 뒤를 이어 &#x003C;가슴 달린 남자&#x003E;(15만), &#x003C;백한번째 프로포즈&#x003E;(8만), &#x003C;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x003E;(7만)가 4위와 6위에 랭크되어 있다. 1993년의 이러한 결과에는 &#x003C;결혼이야기&#x003E;의 성공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1995년 흥행 1위와 2위가 &#x003C;<xref ref-type="bibr" rid="B004">닥터봉</xref>&#x003E;(37만)과 &#x003C;<xref ref-type="bibr" rid="B005">마누라 죽이기</xref>&#x003E;(34만)이고, &#x003C;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x003E;(1995, 10만)가 그 뒤를 잇고 있으며, 1996년부터 1998년까지 &#x003C;박봉곤 가출사건&#x003E;(1996, 17만), &#x003C;코르셋&#x003E;(1996, 16만), &#x003C;고스트맘마&#x003E;(1997, 25만), &#x003C;체인지&#x003E;(1997, 16만), &#x003C;미술관 옆 동물원&#x003E;(1998, 17만), &#x003C;찜&#x003E;(1998, 16만) 등이 흥행 10위권에 들어있다. 이렇게 보면 1990년대에 들어서며 가장 두드러지는 장르가 로맨틱코미디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p>
<p>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시기에는 로맨틱코미디 뿐만 아니라 코미디 장르가 우세했다는 점이다. 1994년에 86만을 동원하며 흥행 1위를 기록한 &#x003C;투캅스&#x003E;에 이어 &#x003C;너에게 나를 보낸다&#x003E;, &#x003C;세상 밖으로&#x003E;가 2,3위를 차지하고, 1995년에는 &#x003C;개 같은 날의 오후&#x003E;, &#x003C;돈을 갖고 튀어라&#x003E;, &#x003C;총잡이&#x003E;, &#x003C;헤어드레서&#x003E;, 1996년에는 &#x003C;투캅스2&#x003E;, 1997년에는 &#x003C;할렐루야&#x003E;, &#x003C;넘버3&#x003E;, &#x003C;깡패수업&#x003E;, 1998년에는 &#x003C;조용한 가족&#x003E;, 1999년에는 &#x003C;주유소 습격 사건&#x003E; 등이 모두 10위권 안에 랭크된다. 또한 1990년대 영화에서는 코미디 장르가 아닌 경우에도 웃음의 요소가 보다 적극적으로 혼성된다. 예컨대 &#x003C;장군의 아들&#x003E; 같은 액션물에도 1970년대와는 다른 가벼움과 유머가 들어있고, &#x003C;경마장 가는 길&#x003E;과 같이 지식인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1980년대식의 비장함과 진지함은 사라지고 풍자와 고소가 드러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역사를 보면 멜로드라마에 이어 액션과 코미디가 주요 장르였다고는 하나 제작 총량에서 코미디가 차지하는 비율은 10% 정도였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또한 코미디의 주류는 스타 중심의 ‘코미디언 코미디’<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였고, 코미디와 멜로드라마 사이의 경계 또한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1990년대 코미디 장르 제작 비율의 괄목할 만한 상승과 코미디 코드의 편재화(遍在)는 장르 재편에서 획기적인 전환이다.</p>
<p>한편 로맨틱코미디 이외의 코미디 영화는 대부분 범죄나 액션 장르와 혼성되어 있어서 이를 통해 1990년대 영화 장르의 판도를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는 로맨틱코미디가 우세한 와중에 액션과 범죄 장르 또한 약진하고 있었는데, 액션물이 보다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면 범죄물은 1990년대 후반까지 스릴러의 잠재태로 액션과 코미디에 혼성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99년에 &#x003C;텔미썸딩&#x003E;과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해피엔드&#x003E;</xref>가, 그리고 2000년에 &#x003C;공동경비구역 JSA&#x003E;가 나오면서 한국영화사에서 비로소 본격적인 스릴러 시대가 도래한다.</p>
<p>그러면 1980년대까지 명실 공히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였던 멜로드라마는 어디로 간 것인가? 1990년대에도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건재했으며 1997년과 1998년에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접속&#x003E;</xref>(67만),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편지&#x003E;</xref>(72만), &#x003C;약속&#x003E;(66만)이 크게 흥행하며 멜로드라마로의 복고시대가 다시 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의 멜로드라마는 인물과 서사 구성에서 이전과는 다른 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이보다 더 중요한 현상은 이때부터 ‘멜로’와 ‘드라마’가 분절된 형태로 쓰이는 경향이 강화되며 ‘드라마’의 형태로 광의의 멜로드라마가 다양한 장르에 스며들었다는 점이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 예를 들어 &#x003C;경마장 가는 길&#x003E;, &#x003C;은행나무 침대&#x003E;, &#x003C;돈을 갖고 튀어라&#x003E;에는 모두 멜로드라마가 들어있다. 또한 로맨틱코미디는 멜로드라마의 핵심 요소인 대상과의 동일시와 그로 인한 감정 과잉을 웃음을 통해 거리를 확보하며 전복한 장르라는 면에서 멜로드라마와는 반영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의 부상을 위시한 장르의 재편은 1980년대까지 압도적인 주류를 이루었던 멜로드라마 장르의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해 볼 수 있다.</p>
<p>지금까지 199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정리된다. 페미니즘,<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 문화사회학,<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그리고 장르론<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이다. 이 연구들에서는 한국사회가 정치, 경제, 세대적인 면에서 변환을 맞이한 시기로 1990년대를 규정하고, 이때 한국영화 또한 산업과 인력, 콘텐츠 면에서 총체적으로 전환된다고 보는 점에서는 합의를 이루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 본고에서는 이러한 선행 연구의 성과 위에서 1990년대 한국영화의 장르 전환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감성의 재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연구가 기존 논의와 다르게 1990년대 한국영화사에 대해 접근하는 부분은 세 가지다. 첫째, 멜로드라마의 로맨스와 코미디가 결합하며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가 성립했다는 것은 목도되는 현상이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 그런데 왜 하필이면 로맨틱코미디였는지, 로맨틱코미디는 어떤 단계를 거쳐 성립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본고에서는 우선적으로 이 부분에 착목한다. 둘째, 1987년부터 1999년까지를 전환기로 보고 이 시기에 나타난 장르와 감성의 주류를 읽어내기 위해 최고 흥행작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한 영화들은 장르 판도와 대중의 취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셋째, 멜로드라마와 로맨틱코미디에 대한 분리된 고찰에서 벗어나 두 장르를 아우르는 감성구조를 살펴봄으로써 1990년대 한국영화에 보다 거시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1990년대는 한국영화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라고 할 만하나 역사는 면면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인 만큼 그것은 이전 시대와 단절이 아니다. 따라서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변곡점과 계기에 유의할 때 변화의 역학과 구조가 적시될 수 있다.</p>
</sec>
<sec id="sec002">
<title>2. 멜로드라마의 재편과 로맨틱코미디의 성립</title>
<p>우선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은 1990년대에 왜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부상했느냐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는 1980년대까지의 주류 장르였던 멜로드라마와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 그리고 이러한 장르화는 기존의 장르를 어떻게 재편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2장에서는 이 문제부터 들여다보면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xref>를 지나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마누라 죽이기&#x003E;</xref>에 이르는 로맨틱코미디의 성립과 전개 과정을 고찰할 것이다.</p> 
<sec id="sec002-1">
<title>2-1. “코믹(섹스) 멜로영화”로서의 로맨틱코미디</title>
<p>1990년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은 1992년 ‘기획영화’ 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되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의 성공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는 대기업의 자본과 198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문화 인력이 만나 제작 공정에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어 1990년대 이후 영화 제작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는 기획자가 시나리오 작가를 고용하고,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관객의 취향과 요구를 파악하여, 이를 바탕으로 공동 창작과 제작팀의 피드백을 진행하여 대본을 완성해나감으로써 투자의 위험을 최소화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한국영화 제작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례가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 여기에서 새로운 영화를 지향하면서도 당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며 치밀한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거친 영화가 로맨틱코미디 장르였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영화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멜로드라마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로맨틱코미디는 그것에 거리를 두며 뒤집은 장르였기 때문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가 성공을 거둔 1992년에 기획된 &#x003C;그 여자, 그 남자&#x003E;(1992)의 콘셉트가 “현대 남녀의 사랑에 대한 고민과 의식을 다루는 경쾌한 코믹(섹스) 멜로영화”<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였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p>
<p>멜로드라마는 “‘순수한 개인의, 장애가 많은 사랑 이야기’라는 의미로부터 ‘연애, 결혼, 가족에 관한 근대적 제도에서 비롯되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 ‘평면적 인물과 폐쇄적인 공간 그리고 닫힌 결말의 설정, 음악의 사용을 통해 감정 과잉을 유도하는 표현방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미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장르이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 이에 비해 로맨틱 코미디는 “로맨스라는 서사의 형태와 코미디라는 양식의 형태가 결합된 장르”인데, ‘로맨스’는 몽상적이고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로 통용된다는 점에서 ‘멜로드라마’와 상통한다.<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멜로드라마는 대중비극에서 출발한 장르인 데 비해 로맨틱코미디는 희극[코미디]이라는 점이다. 코미디란 한 마디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르이다. 따라서 웃음을 유발하는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한 서사문법이나 양식이 없이 다양한 장르와 혼성될 수 있는 장르이며 그러기에 범주를 정하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다. 그나마 코미디 장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필요조건을 꼽자면 해당 텍스트에서 웃음이 결말까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코미디라고 할 때에는 웃음이 텍스트 전반에 지속되고 그것이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p>
<p>웃음을 유발하고 지속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대상과의 거리이다. ‘세상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요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라는 호레이스 월폴의 말처럼, 코미디는 관객이 대상과 감정적으로 맞닿기 전에 ‘생각의 거리’를 확보할 때 성립하는 장르이다. 대상에 대한 전폭적인 연민이나 공감에서 벗어나 거리를 확보하여 대상을 관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웃음이 유발되는 것이다. 이러한 웃음의 본질은 멜로드라마에서 사건의 국면에 대한 수용자의 연민과 공감 유발을 극대화하여 서사의 개연성이나 인과율보다 심리적 리얼리티를 중요시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그래서 멜로드라마가 가장 주정적인 장르라면, 코미디는 그 반대편에 놓이는 주지적 장르 중 하나이기도 하다.</p>
<p>1980년대 말이 되면 여전히 멜로드라마가 우세한 가운데에서도 코미디 요소가 들어있는 영화들이 속속 출현하고 대중의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x003C;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x003E;와 같이 젊은이들의 세태를 발랄하게 다루는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과 같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리는 멜로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의 순수성은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또한 &#x003C;성공시대&#x003E;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욕망을 우의적으로 풍자하는 영화, 그리고 &#x003C;너에게 나를 보낸다&#x003E;처럼 계몽적 이념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서 자본주의적 욕망이 전면화되는 1990년대로의 이행을 외설을 통해 냉소하는 영화가 등장하기도 한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심지어 가부장적인 세계관과 마초적인 비장함 면에서는 1970년대의 액션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x003C;장군의 아들&#x003E;과 같은 영화에서도 과거에 대해 거리를 두는 시선이 감지된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말 이후 ‘세계화’로의 경제적·정치적 재편이 본격화되면서, 당대를 ‘탈냉전’과 ‘포스트-시대’로 호명하고 ‘신세대’ 담론과 ‘후일담 문학’이 부상했던 1990년대의 분위기<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와 맥을 함께 한다. 1990년대에는 이전 시대에 결별을 고하려고 했으며 그것에 거리를 두는 형태로 새로움을 발굴하려는 시도와 에너지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었다. 코미디 장르의 부상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p>
<p>그러나 코미디 장르의 부상을 과거 혹은 대상과의 주지적인 거리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만 해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왜냐하면 대표적인 주지적 장르로 추리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리물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이는 1990년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에서 코미디의 핵심인 웃음의 효과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웃음은 화해, 풍자, 아이러니 등 여러 효과로 이어질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대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임계로 삼는다. 그 대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농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임계 내에서라면 웃음은 진지함에 비해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폭을 넓힐 수 있다. 전근대시대 신하가 왕에게 감히 직언하기 힘든 내용을 말할 때 활용했다는 권도(權道)로서의 풍간(諷諫)은 웃음을 통해 에두르는 것이 화자에게 [때로는 청자에게도] 보다 큰 자유로움을 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1990년대 영화에서는 이러한 웃음을 도입함으로써 이전까지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폭을 확보한다.</p>
<p>게다가 코미디에서는 웃음으로 에두르며 표현의 임계를 확장한 만큼 그 문제제기에 대해 반드시 합리적인 해결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추리물이라면 범인과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목표와 임무가 주어지나 코미디에서는 최소한 아무도 치명적인 위해를 입지 않은 채 웃으며 끝날 수 있다면 그뿐 더 이상의 해답이 요구되지 않는다. 따라서 파격적이고 참신한 발언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보다 자유롭게 발언되고 수용될 수 있는 데에 코미디만한 장(場)은 없다. 더구나 웃음은 불균질하고 모순되는 것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므로 해답이나 대안이 없는 문제를 제기하기에도 코미디는 매우 유용한 장르이다.<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 이러한 코미디가 멜로드라마와 친연성을 지니는 로맨스와 결합할 때 기존의 멜로드라마 문법에 거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멜로드라마에서의 도덕적 비계(飛階)가 웃음을 통한 전위적 발언으로 대체될 수 있다.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는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하고 부상한 것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 1987년 멜로드라마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에서 1991년 과도적인 로맨틱코미디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xref>를 지나 1995년 살벌한 로맨틱코미디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마누라 죽이기&#x003E;</xref>에 이르는 과정은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의 정체성 구성과 전개 과정을 잘 보여준다.</p>
</sec>
<sec id="sec002-2">
<title>2-2. 과거로서의 ‘멜로’와 거리두기로서의 ‘웃음’</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은 영민(안성기)이라는 주인공이 혜린(황신혜)이라는 여성을 일관되게 사랑하는 이야기다. 영민은 기름집을 하는 홀아버지(최불암) 밑에서 자라 연세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청년이다. 그는 연극에 출연하고 희곡을 습작하는 등 예술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지만 집안 형편상 취직해야 한다. 그녀가 한눈에 반한 혜린은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다니는 학생으로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꾼다. 영민은 혜린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녀의 깔깔대는 웃음뿐이었다. 혜린은 산부인과 의사라는 미국 교포(전무송)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나고, 영민은 아버지의 권유대로 무역회사에 취직한다. 그런데 몇 년 후 혜린이 결혼에 실패하여 돌아온다. 이를 우연히 알게 된 영민은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그녀와 결혼한다. 혜린이 임신까지 하여 영민과 혜린의 사랑은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듯 했으나, 혜린은 임신중독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다. 혜린은 아기를 낳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영민은 혜린이 남기고 간 그녀와 꼭 닮은 딸을 키우며 살아간다.</p>
<p>이 영화에서 영민과 혜린은 당시 기준에서 ‘과거’와 ‘현재’의 취향을 대변하듯 드러내며 대비를 이룬다. 영민이 준비하는 ‘삶은 달걀과 사이다’, 그리고 혜린이 주문하는 ‘햄 샌드위치와 커피’는 두 인물의 취향을 넘어 성격까지 환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민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그의 아버지다. 아버지 덕팔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는 못했지만 건실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전쟁 중에 인텔리 여성을 만나 결혼했으나 그녀가 영민을 낳고 죽자 재혼하지 않은 채 영민을 키우며 살아왔다. 영민은 사랑의 롤모델을 아버지로 삼고 있으며 혜린에 대해서도 아버지와 상의한다. 영민이 혜린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돌아온 날 아버지와 하는 대화는 아버지의 사고방식과 함께 그것을 그대로 계승하려는 영민의 태도를 말해준다. 영민이 아버지에게 그녀가 왜 자기를 보고 깔깔 웃는 것이냐고 묻자, 아버지는 “그건 널 좋아해서겠지”라고 대답하는 것이다.</p>
<p>이러한 영민과 혜린은 어울리지도 맺어질 수도 없는 인물들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혜린에게 영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겨야 한다. 영화에서는 혜린에게 결혼 실패라는 결함을 만듦으로써 영민과의 결합으로 이끈다. 만일 이 영화가 두 인물의 결합으로 끝났다면 그것은 로맨틱코미디가 되었을 것이다. 시종일관 이 영화는 영민의 지순한 사랑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혜린은 딸을 남겨두고 떠나는 길을 선택하여 결과적으로 영민에게 머무르지 않는다. 이로써 이 영화는 영민을 아버지와 같은 운명에 묶어둔다. 이 비극적 사랑이야기는 결국 시류에 맞춰 변화하는 여성과 변화하지 못하는 남성의 갈등을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름으로 아슬아슬하게 봉합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노정되는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드라마 사이의 머뭇거림은 그 봉합의 위태로움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죽음으로 무마하면서도 웃음으로 눙치지 않고는 영민과 혜린 사이의 치명적 균열을 잠시나마 메울 대안이 없는 것이다.</p>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의 조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던 이명세 감독이 만든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xref>는 여러 가지 면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과 상관관계를 가지면서도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에서 ‘영민’(안성기)이 썼던 희곡의 제목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xref>이고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 또한 ‘영민’(박중훈)이다. 이러한 설정에서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의 영민이 꿈꾸었던 사랑과 결혼을 보여준다. 영민은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며 소설을 쓰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사귀어온 미영(최진실)과 결혼한다. 결혼하면서 미영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영민을 내조한다. 그녀는 완두콩으로 사랑한다고 새긴 도시락을 싸주면서 영민이 글 쓰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한편 영민은 미영과의 결혼생활에 불만이 없는데도 자유분방한 여성과의 외도를 꿈꾼다. 그러면서도 미영이 과거 직장상사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하고 오해하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영민의 서술로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영민의 이중성이 폭로되며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1980년대까지 당당하고 진지한 주인공이었던 남성인물에 대한 양면적 시선을 보여준다. 그들에 대해 못나고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과거의 인물로 거리를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들이 순수하고 낭만적이었다는 그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주제가인 ‘새드무비<italic>Sad Movie</italic>’<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만큼이나 먼 과거를 보는 듯한, 시화(詩畫)와 같은 화면과 에피소드로 이 영화가 구성된 것은 이러한 태도를 드러낸다. 게다가 두 아이를 둔 중년 부부의 시점으로 끝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적어도 10년 이상의 과거의 것임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아련한 거리감을 주는 장치들과 희화화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은 인물들은 이제 웃음을 의장 삼지 않고는 흥미로울 수 없으며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진지한 멜로드라마는 가능하지 않음을 방증한다.</p>
<p>&#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에서 영민과 미영이었던 박중훈과 최진실이 1995년 &#x003C;<xref ref-type="bibr" rid="B005">마누라 죽이기</xref>&#x003E;에 부부로 다시 등장한다는 것은 몇 년 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 남편은 아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아내를 죽여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은 영화기획자 아내와 제작자 남편이라는 설정과 맞물리고 있다. 이는 영화제작 시스템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그것을 부부관계와 연동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에서처럼 남편의 모순되고 불합리한 요구에 순응하는 아내는 개연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으며 따라서 관객에게 수용되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아내를 받아들이기는 것 역시 힘들다. 로맨틱코미디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1960년대 ‘멜로-코미디’에서도 여성의 일탈이나 여성에 의한 전복이 이루어지기는 했었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면 모든 일탈이나 전복이 가부장질서로 환원되고, 여성들은 그 질서에 무리 없이 순치되는 것으로 봉합되곤 했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 1990년대에 들어서면 이러한 봉합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니 가부장이 기성의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한 아내를 죽여야 한다는 ‘농담’으로 비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내가 남편에게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등가교환을 요구할 때 그것은 여전히 놀랍고 적응이 되지 않는 일이었음을 이 영화는 ‘마누라 죽이기’라는 극단적 아이디어를 통해서 보여준다. 이를 재현하는 데 코미디 이상의 장르를 찾을 수 없으며, ‘마누라 죽이기’는 코미디가 포용할 수 있는 임계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코미디임에도 스릴러적인 장르 요소가 삽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1999년 멜로-스릴러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해피엔드&#x003E;</xref>에 가면 추리소설을 탐독하는 남편에 의해 아내 살해가 이루어진다. 추리물은 자본주의적 거래와 합리주의가 발달했을 때 확실히 대두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사회의 변화를 징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1987)</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1991)</xref>,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마누라 죽이기&#x003E;(1995)</xref>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를 통해 보건대, 1990년대의 한국영화는 기존의 멜로드라마 문법으로는 대중의 변화한 눈높이와 기호에 맞출 수 없는 상황에서 웃음을 통해 운신의 폭을 확보하는 가운데 멜로드라마와 거리를 두면서 로맨틱코미디로 전이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의 흐름은 1970~80년대의 사랑에 대해 웃음을 통해 거리를 두고 있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로맨틱코미디 장르로서 비로소 성립한 것이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xref>라고 하겠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는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를 간파하고 그것을 사업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영화였다.</p>
</sec>
</sec>
<sec id="sec003">
<title>3. ‘사랑’이라는 상호합의와 합리적 거래</title>
<p>그렇다면 기성의 멜로드라마로는 재현할 수도 없고 부응할 수도 없었던 1990년대의 감성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 영화에서는 도시를 배경으로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 눈에 띈다. 특히 여성인물에 대해서는 신세대 담론과 연관 지어 꽤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그런데 남성인물에 주목해 보면 1990년대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가 코미디로 옮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함께 그 전개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우선 1990년대 남성인물은 가부장적인 관습이 몸에 밴 마초에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변천한다. 이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와 &#x003C;미스터 맘마&#x003E;의 주인공(최민수)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닥터 봉&#x003E;</xref>을 거쳐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접속&#x003E;</xref>과 &#x003C;8월의 크리스마스&#x003E;의 주인공(한석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여기서는 당시에 최고로 흥행했던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 구현되고 있는 사랑을 추적하여 감성구조를 살펴볼 것이다.</p>
<sec id="sec003-1">
<title>3-1. 남녀 인식의 괴리와 ‘상호이해’라는 봉합기제</title>
<p>설문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한 기획으로 당대 대중의 변화한 기호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는 신혼부부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태규(최민수)는 방송국 PD이고, 지혜(심혜진)는 성우이다. 두 사람은 방송국 동료로 만나 결혼에 이르고, 결혼 이후에도 함께 직장생활을 한다. 사내(社內) 커플이기에 겪을 수 있는 현실적 상황들, 그리고 신혼부부에게 흔한 사소한 말다툼과 섹스트러블 등에서 부부 갈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 핵심은 젠더에 대한 재래적인 요구는 깨져나가고 있음에도 남편은 여전히 관습적인 태도를 견지하려는 데 반해 아내는 새로운 요구에 맞춰나가는 것에 있다. 아내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고 우위를 점하려는 남편의 태도를 아내는 ‘허세’로 보고, 동등한 대우와 상호협의를 요구하는 아내를 남편은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태규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뱉는 “너 정말 한 대 맞을까?”라는 대사는 태규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p>
<p>“여자와 북어는 3일마다 패야 한다”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여성은 미개한 존재이기에 남성이 강제로라도 훈육해야 된다는 관념은 오랫동안 일상화되어 있었다. 한국영화에서도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일은 다반사였을 뿐 아니라 대부분 정당화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x003C;마부&#x003E;(강대진, 1961)에서 아버지(김승호)는 남편의 구타에 쫓겨 친정에 온 큰 딸(조미령)을 다시 억지로 남편에게 돌려보내고, 큰오빠(신영균)는 아프레걸 여동생(엄앵란)의 따귀를 때린다. 이는 연인관계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x003C;젊은 느티나무&#x003E;(이성구, 1968)에서 의붓오빠 현태(신성일)는 자신의 친구와 데이트하고 돌아온 숙희(문희)의 따귀를 때린다. 그런데 이는 모두 정당한 교육 내지 사랑으로 수용되어, 아프레걸은 개과천선하고, 숙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의 태규도 결국 지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 장면은 변화한 세태, 그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장르 관습, 그리고 이면의 현실논리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태규가 지혜와 다투던 끝에 지혜를 강간하려 하자, 지혜는 “비싼 원피스 버릴 필요 없다”면서 스스로 벗겠다고 말한다. 이 말에 태규는 지혜를 때리고 두 사람은 파경을 맞이한다.</p>
<p>앙리 베르그송에 의하면 웃음은 경직성이 무너질 때 유발된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이 영화에서 예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직된 인물은 태규이다. 태규는 유능하고 책임감 강한 남성이라는 점에서 &#x003C;마부&#x003E;의 큰아들이나 &#x003C;젊은 느티나무&#x003E;에서의 현태의 직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를 지닌 인물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경직된 모습으로 희화화될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가 그다지 코믹하게 다가오지 않는데, 그것은 태규의 폭력이 이제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에 과도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태규의 행동은 형사법 위반의 영역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는 이러한 남성인물에 대한 희화화와 더불어 그에 대응하여 시대에 앞서가는 여성들에 대한 희화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웃음의 포용력 안에서 젠더 간 요구의 격차와 갈등 심화를 봉합해내고 있는 것이다.</p>
<p>한편 이왕 폭행을 피할 수 없다면 원피스라고 구하겠다는 지혜의 말은 그녀의 최후 선택을 보여주면서 여주인공 성격과 사회인식의 변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1960~70년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남편의 분노를 잠재워 위기 국면을 벗어나거나, 남편에게 상처받고 울면서 떠났다가 스스로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1980년대의 ‘애마부인’도 남편의 외도와 폭력 때문에 남편을 떠났다가도 남편이 사과하면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1990년대 영화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부부관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내가 독립하여 혼자 살려면 무엇보다 경제적 능력과 기반이 필요하다. 부부 관계가 끝나는 결정적인 순간 지혜가 발화하는 대사는 경제적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남편에게는 최고의 모욕이 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재현되어온 것들과 그것에 반하는 행동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괴리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의 결말을 봉합하는 ‘로맨스’의 실체는 괴리의 사이, 혹은 괴리를 아슬아슬하게 봉합하는 순간에 무지개처럼 잠시 나타난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의 마지막에 태규가 지혜를 찾아가 재결합을 호소하면서 내세우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간절한 이해’이다. ‘간절한 이해’야 말로 관습에 매인 남편과 시대에 부응하는 아내를 합의에 이르게 하는 1990년대식 ‘로맨스’의 한 이름일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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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3-2">
<title>3-2. 로맨스와 결혼, 합리적 거래와 실리적 결합</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 이후 영화들은 남녀의 결합에서 실리적인 측면에서의 암묵적 합의가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기에서 과도기적인 영화가 &#x003C;미스터 맘마&#x003E;이다. 이 영화에서 형준(최민수)은 ‘보통 남자들’처럼 가사와 육아는 아내에게 맡겨둔 채 회사 일에 몰두하다가, 어느 날 아침 아내로부터 버림 받는다. 졸지에 갓난아이와 함께 남게 된 형준은 회사에 아기를 데리고 출근한다. 형준은 사무실의 유일한 여직원인 영주(최진실)에게 아기를 돌봐줄 것을 종용한다. 여성이라면 당연히 모성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화를 내던 영주는 점차 아기의 귀여움에 빠져들면서 ‘엄마’가 되어간다. 그리고 종국에는 부유한 약혼자(김세준)와 파혼하고 형준과 결합한다. 일견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이러한 결말에서 먼저 유의해야 할 것은 약혼자의 ‘사랑’이다. 그는 영주의 의견을 묻지 않고 영주의 부모에게 아파트를 선물한다. 그리고 영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스토커 수준으로 감시한다. 이에 대해 영주가 항의하자 그는 “그게 바로 너에 대한 사랑”이라고 답한다. 영주가 과감히 버리고 떠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나친 사랑’이며 일방적 감정의 크기가 사랑이라고 믿는 남자이다.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는 남성 캐릭터는 1996년 판타지 멜로드라마 &#x003C;은행나무 침대&#x003E;에서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 황장군(신현준)은 수천 년 동안 미단 공주(진희경)만 바라보다 괴물이 된 인물이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과 함께 황장군과 같은 감정과 행동은 ‘남성의 순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물이 수천 년 전의 인물로 과거화된 것은 1990년대에 일어난 인식 변화의 폭을 짐작케 한다.</p>
<p>여기에 또 하나 가미되는 것은 형준의 아들 상아는 영주가 하는 일―아동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감별하는 것―을 가장 잘 도와주는 신뢰할 만한 모니터 요원이라는 점이다. 상아가 웃고 좋아하는 비디오를 출시하여 영주는 회사에 인정받게 됨으로써 형준과 결합하기 전에 상아를 보살펴야 하는 이유가 마련된다. 한번 결혼에 실패한 남성은 두 번의 실패를 두려워하므로 새 아내를 보다 배려할 것이고, 여성의 입장에서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미 아기가 있는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실리적일 수 있다. &#x003C;미스터 맘마&#x003E;에서는 이러한 측면보다는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과거형 남성에서 벗어난다는 데에 무게중심이 놓이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닥터봉&#x003E;</xref>에 가면 실리적인 결합으로서의 ‘로맨스’가 보다 분명해진다.</p>
<p><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닥터봉&#x003E;</xref>은 우연히 아래층 위층에 살게 된 홀아비 치과의사 닥터봉(한석규)과 미혼의 작사가 황여진(김혜수)의 연애담이다. 도저히 결합할 수 없어 보이는 남녀 캐릭터가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에서는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에는 결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하는데,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남녀 캐릭터의 부조화가 두드러지는 경우이다. 두 인물은 교통사고를 통해 만나고, 이후에도 서로를 혐오하고 비방하며 피해를 입힌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행하는 가해는 폭행, 뺑소니, 상해, 기물 파손, 허위사실 공포, 성희롱 등 범법 행위에 해당하나 이러한 것들이 모두 극중 코미디 요소로 활용된다. 이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데 비해 법치주의적 인식은 미처 일상화되지 못한 상황을 말해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싫어할 뿐 아니라 직업, 생활습관, 문화적 취향 면에서도 접점이 없다. 두 사람의 매개가 되는 유일한 존재는 닥터봉의 아들 훈이다. 훈이는 아빠의 여자친구들을 모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 여진과 결혼하라고 아빠를 부추긴다. 여진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닥터봉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여진이 훈이를 잘 돌봐주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큐피드 노릇을 하는 훈이 덕분에 결합하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p>
<p>그런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면의 논리가 있다. 우선 닥터봉이 여진과 결합하는 우선적인 이유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자가 최고의 재혼 상대자’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편 여진이 닥터봉에게 호감을 가진 것을 알게 된 친구는 “너를 그렇게 헐값에 넘기지 말라”로 충고한다. 이에 여진은 어떻게 그렇게 ‘계산적’이냐고 반박하면서도 “애는 안 낳아도 되는 거”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청혼하면서 닥터봉은 결정적으로 말한다. “난 건강하고 꽤 유능한 치과의사고, 결혼하면 다른 여자한테 절대로 한눈파는 일 없을 거야.” 1995년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이 영화는 이와 같이 실리적인 결합 이유를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닥터봉&#x003E;</xref>에서 드러나는 부자연스러운 감정 전개는 이면의 현실적 필요에 의한 작위적 감정 배치에 기인하는 바 크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당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주의가 강화되기는 했지만, 호주 중심 가족의 현실적 편의는 여전히 유효한 상황<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에서 로맨스라는 명분으로 가장 적실한 타협점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p>
</sec>
<sec id="sec003-3">
<title>3-3. 감성의 기호화, 표상의 접점으로서의 사랑</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닥터봉&#x003E;</xref>에서 나타났던 감정 배치가 ‘PC통신’을 통한 사랑이라는 설정을 통해 매우 자연스러운 형태로 서사화된 것이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접속&#x003E;</xref>이었다. 멜로드라마의 부활을 알렸던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접속&#x003E;</xref>은 친구의 연인을 짝사랑하는 여자 수현(전도연)과 과거 연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 동현(한석규)이 PC통신을 통해 맺어지는 이야기이다.<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두 인물의 상황이 관객에게는 노출되는 가운데 두 인물은 PC를 통한 문자 통신,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음악, 폴라로이드 사진 등을 매개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간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두 인물이 서로를 아는 것보다 두 인물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둘의 결합을 간절히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이 서로에 대해 아는 정보는 한정적이고 단편적이며 기호화되어 있다. 그래서 두 인물은 영화관 앞, 지하철 등에서 마주치면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한정된 정보 안에서 공감대를 갖게 되고, 관객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 영화는 음악, 이미지, 문자 등을 통해 기호화된 취향의 접점이 사랑을 구성한다는 관념을 관객과 공모하여 구축한다. 다시 말해 이 영화를 통해 구현되는 사랑은 열정, 정념, 순정과 같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표상과 표상이 교차하며 형성하는 일종의 기호화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수현이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필요에 따라 인공눈물을 주입하는 안구건조증 환자로 설정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감성이 기호로 분할된 형태로 구성되고 필요에 따라 발현된다는 점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닥터봉&#x003E;</xref>에서 나타났던 실리에 의한 로맨스의 성취와 접맥되는 지점이 있다. 두 편의 영화에서 구현되는 사랑의 감성은 모두 합리적 판단과 상호 합의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p>
<p>이러한 변화는 이른바 ‘복고적’ 멜로드라마로 불렸던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편지&#x003E;</xref>와 같은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환유(박신양)와 정인(최진실)은 취향의 접점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관객 앞에 전시한다. 그들은 한적한 역사(驛舍)와 수목원, 나무와 꽃, 시, 편지를 함께 공유하는데 그들이 그것을 함께 즐기는 만큼 관객에게 그들의 사랑이 입증된다. 환유는 고아로, 정인은 고아나 다름없는 인물로 설정되고, 두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외부세계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것은 개인의 취향을 부각시키기에 적절한 세팅이다.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 가족이 사라지다시피 하는 것 역시 이러한 필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개인적 취향의 기호로 사랑의 감성을 구축하려면 개인이 오롯해질 수 있도록 관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관습적인 멜로드라마의 감정과잉은 대개 이성적 판단으로 끊을 수 없고 논리화할 수 없는 가족관계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엄마와 아이가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개연성에 관계없이 눈물을 자아내고, 씻지 못할 죄를 저지른 아버지여도 아버지이기에 모른 체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비합리적이지만 그렇다고 이성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 상황은 눈물의 파토스로만 무마되고 봉합될 수 있다.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 가족을 지우는 설정은 이러한 관습에서 벗어나는 선택이자 표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개인주의의 발달을 기반으로 하는 현상이다.<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 1990년대 말에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편지&#x003E;</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접속&#x003E;</xref>을 통해 앞서 논급한 것과 같은 멜로드라마의 문법이 재정립되는 것에 곧이어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해피엔드&#x003E;</xref>, &#x003C;텔미썸딩&#x003E;과 같은 스릴러 장르가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의 변동을 반영한다. (이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고를 달리하여 논하기로 한다.)</p>
</sec>
</sec>
<sec id="sec004">
<title>4. 귀일적(歸一的) 파토스에서 거리(距離)와 합리(合理)의 장르로</title>
<p>지금까지 장르의 변전과 감성의 재편이라는 차원에서 1990년대 한국영화사를 살펴보았다. 1990년대 장르 판도에서 두드러진 현상에 주목하여 이면의 계기와 맥락, 이전에 주류를 이루었던 장르와의 연관성을 고찰하였다. 여기에서 질문은 크게 두 축이었다. 하나는 1990년대에 왜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부상했느냐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장르가 1980년대까지의 주류 장르였던 멜로드라마와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립했느냐에 대한 질의를 포함한다. 다른 하나는 기성의 멜로드라마로는 재현할 수도 없고 부응할 수도 없었던 1990년대의 감성은 무엇이었고, 그것은 영화에서 어떻게 드러나느냐는 것이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2장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기쁜 우리 젊은 날&#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나의 사랑, 나의 신부&#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마누라 죽이기&#x003E;</xref>로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 해명했다. 두 번째는 3장에서 로맨틱코미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 이야기&#x003E;</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닥터 봉&#x003E;</xref>, 그리고 멜로드라마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접속&#x003E;</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편지&#x003E;</xref>를 분석하면서 밝혔다. 그 결과 도달한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p>
<p>1990년대는 영화산업구조와 미디어 환경의 획기적 변화에 따라 장르의 변전과 재편이 일어나며 한국영화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이다. 이전까지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는 멜로드라마였고, 이는 구조적 정합성에 어긋나는 모순과 과잉의 요소들이 파토스에 의해 상쇄되거나 봉합되는 오랜 관습을 유지해왔다. 여기에서 구조적 정합성이란 합당한 규약이나 거래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장르가 재편되는 과정은 구조적 정합성을 희생하는 관습에 거리를 확보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그 방향은 합리적 이성주의와 자본의 논리에 의한 통어가 강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웃음을 통해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임계를 확장하는 코미디로 시작하여 감성을 취향의 항목으로 기호화하고 상호 합의와 실리적 거래의 논리를 통해 구축해가는 로맨스로 전개된다. 이제 유부남에게 속아 임신을 하거나 혼인빙자간음을 당하고도 자기 잘못이라며 떠나거나(&#x003C;미워도 다시 한번&#x003E;, &#x003C;별들의 고향&#x003E;), 외도는 남편이 했는데도 내연녀만을 응징하거나(&#x003C;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x003E;, &#x003C;월하의 공동묘지&#x003E; 등), 젊고 조건 좋은 애인이 생겼음에도 무능한 남편에게 돌아가는 일(&#x003C;이 생명 다하도록&#x003E;, &#x003C;애마부인&#x003E; 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무조건적인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긴박된 파토스의 서사로부터 멀어져가는 쪽으로 전개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사회가 근대 합리주의의 쌍생아로서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향된 궤도에 진입하는 것과 동궤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사건에 대한 거리를 확보하여 호기심과 의심을 생성하면서 이성적 추론에 의거하여 전개되는 스릴러 장르로 나아가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2000년대에 스릴러가 주류 장르로 부상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1980년대 한국영화계의 변화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17">박유희,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 『영화연구』 제77호, 한국영화학회, 2018, 243-280쪽</xref> 참조.</p></fn>
<fn id="fb002"><label>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조준형, ｢한국영화산업과 정책: 1980~1997｣,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사공부 1980~1997』, 이채, 2005, 202쪽</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영화 흥행 통계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30">한국영화진흥공사 편, 『한국영화연감』 (1988~2000)</xref> 참고.</p></fn>
<fn id="fb004"><label>4)</label><p>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코미디 장르의 제작 비중에 대해서는 유지나<xref ref-type="bibr" rid="B023">, ｢60년대 한국 코미디｣, 『영화연구』 제15호, 한국영화학회, 1999, 284쪽</xref> 참고.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비교적 코미디가 활발하게 제작되었을 때의 비율이 10% 정도였는데, 1970~80년대에는 코미디 장르가 오히려 위축되었다.</p></fn>
<fn id="fb005"><label>5)</label><p>박선영은 스타 코미디언 중심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코미디언 코미디’라고 칭하며, 이를 1950년대 후반 한국영화사에 코미디 장르가 부상한 이후의 특징으로 논한다. <xref ref-type="bibr" rid="B014">박선영, 『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 소명출판, 2018, 271-280쪽</xref> 참조.</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22">오영숙, ｢코미디 영화의 세 가지 존재방식｣, 『영화연구』 제26호, 한국영화학회, 2005, 238쪽</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멜로-드라마’의 분절과 장르의 탄력성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제3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09, 181-212쪽</xref> 참조.</p></fn>
<fn id="fb008"><label>8)</label><p>페미니즘 관점의 논의로는 기정수, ｢1990년대 한국여성영화 비평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보과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7; 유지나, ｢돌아온 멜로드라마의 섹슈얼리티 전략｣, 『멜로드라마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9, 247-260쪽; 최윤식, ｢1990년대 후반 한국영화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와 젠더 이데올로기: &#x003C;정사&#x003E;, &#x003C;해피엔드&#x003E;, &#x003C;접속&#x003E;, &#x003C;인터뷰&#x003E;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주유신, ｢한국영화의 성적 재현에 대한 연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김선아, ｢레즈비언, 싸이코킬러, 여괴: &#x003C;노랑머리&#x003E;, &#x003C;텔미썸딩&#x003E;, &#x003C;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x003E;｣, 『여/성이론』 제3호, 도서출판여이연, 2000, 216-232쪽; 김선아, ｢신르네상스 시기 한국영화에서의 성별/성에 대한 재현｣, 『여성문학연구』 제5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01, 73-112쪽; 김선아, ｢한국영화의 시간, 공간, 육체의 문화정치학: 코리안뉴웨이브와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등이 있다.</p></fn>
<fn id="fb009"><label>9)</label><p>문화사회학적 접근으로는 이상길, ｢1990년대 한국 영화장르의 문화적 정당화 과정 연구: 영화장의 구조변동과 영화 저널리즘의 역할을 중심으로｣, 『언론과사회』 제13집 2호, 사단법인 언론과사회, 2005, 63-116쪽; 안지혜, ｢시민사회의 성장과 한국영화의 역동적 관계에 관한 연구: 1990년대 한국영화의 정책, 산업, 문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김승경, ｢문화 연구를 통해 본 90년대 한국영화의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x003C;결혼이야기&#x003E;와 &#x003C;서편제&#x003E;, &#x003C;쉬리&#x003E;와 &#x003C;공동경비구역 JSA&#x003E;를 중심으로｣, 『현대영화연구』 제6호,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08, 27-57쪽; 김익상·김승경, ｢1990년대 기획영화 탄생의 배경과 요인 연구｣, 『씨네포럼』 제27호,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7, 257-288쪽; <xref ref-type="bibr" rid="B027">전우형, ｢접속하는 도시에 투영된 &#x003C;접속&#x003E;의 무의식적 욕망｣, 『현대영화연구』 29호,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7, 43-68쪽</xref>; 정민아, ｢87년 체제에서 IMF까지 한국영화 주류 장르와 관람문화: 1987~1997년을 중심으로｣, 『영화』 제10집 2호,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2018, 207-238쪽 등이 있다.</p></fn>
<fn id="fb010"><label>10)</label><p>장르 차원에서 1990년대 한국영화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는 최연희, ｢90년대 한국 로맨틱코메디 연구: 여성관객의 대중문화 수용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김시무, ｢한국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경향: &#x003C;접속&#x003E;, &#x003C;편지&#x003E;, &#x003C;8월의 크리스마스&#x003E;｣, 『멜로드라마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9, 227-246쪽; 문관규, ｢1990년대 한국 코미디 연구: 희극장면과 아버지 재현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박지연, ｢1990년대 이후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의 변화: &#x003C;접속&#x003E;에서 &#x003C;오버 더 레인보우&#x003E;까지｣, 『영상예술연구』 제4호, 영상예술학회, 2004, 167-197쪽; <xref ref-type="bibr" rid="B026">윤성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변형 양상과 요인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xref>; <xref ref-type="bibr" rid="B025">윤성민, ｢한국 멜로드라마 계보에서의 로맨틱코미디｣, 『영상문화콘텐츠연구』 제9호, 동국대학교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2015, 107-120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10">김소연, ｢1990년대 청춘물 한국영화와 이행기적 욕망의 궤적｣, 『한국학논집』 제59호,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5, 53-73쪽</xref>; 이호걸,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에서의 근과거 재현｣, 『대중서사연구』 제22권 4호, 대중서사학회, 2016, 187-233쪽 등이 있다.</p></fn>
<fn id="fb011"><label>11)</label><p>이러한 관점에서 1990년대 한국영화에 대해 보다 총체적인 논의를 펼친 성과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기획한 <xref ref-type="bibr" rid="B024">『한국영화사 공부 1980~1997』,이채, 2005</xref>; 김미현 책임편집, ｢새로운 한국영화의 움직임 1988~1995｣, 『한국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299-337쪽 등이 있다.</p></fn>
<fn id="fb012"><label>12)</label><p>로맨틱코미디를 멜로드라마의 연속으로서 규정한 논의로는 <xref ref-type="bibr" rid="B025">윤성민, ｢한국 멜로드라마 계보에서의 로맨틱코미디｣(『영상문화콘텐츠연구』 제9호, 동국대학교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2015, 107-120쪽)</xref>가 있다.</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결혼이야기&#x003E;</xref>를 비롯한 기획영화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21">영화진흥위원회 편, 『한국영화산업구조분석(연구보고 2001-3): 할리우드 영화 직배 이후를 중심으로』, 영화진흥위원회, 2001, 47쪽</xref> 참조.</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조준형, ｢한국영화산업과 정책: 1980~1997｣,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사공부 1980~1997』, 이채, 2005, 200-201쪽</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제3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09, 181쪽</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8">박진형, ｢로맨틱코미디: 연애의 사회경제학｣, 『대중영화와 현대사회』, 도서출판 소도, 2005, 136-137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장르로서의 코미디의 정의와 범주에 대해서는 박유희, ｢총론: 웃음의 서사와 한국 대중문화｣,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4.코미디』, 이론과실천, 2013, 12-29쪽 참조.</p></fn>
<fn id="fb018"><label>18)</label><p>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16">박유희, ｢장선우 외설 논란 영화를 통해 본 포스트 시대 한국영화의 동향｣, 『드라마연구』 제48호, 한국드라마학회, 2016, 225-254쪽</xref> 참조.</p></fn>
<fn id="fb019"><label>19)</label><p>1990년대의 문화 상황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11">김정남 외, 『1990년대 문화키워드 20』, 문화다북스, 2017</xref> 참조.</p></fn>
<fn id="fb020"><label>20)</label><p>김소연은 1990년대를 “카오스의 법칙이 지배하는 지극히 문제적인 시기”(이해영, ｢90년대와 80년대: 하나의 정신사적 고찰｣, 『문화과학』 제20호, 문화과학사, 1999, 119쪽)로 본 사회학적인 조망에 정신분석학을 접목하여 장르적 특질을 구명한 바 있다. 그는 1990년대 로맨틱코미디가 “감정자본주의를 희극적으로 세속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xref ref-type="bibr" rid="B010">김소연,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 ‘코믹 모드’의 문제: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이행기적 등장을 중심으로｣, 『영화연구』 제60호, 한국영화학회, 2014, 29-55쪽</xref>.</p></fn>
<fn id="fb021"><label>21)</label><p>윤성은은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대해 통시적으로 고찰하면서 1990년대를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포뮬라와 캐릭터가 비로소 형성된 ‘고전적 단계’라고 주장한다. <xref ref-type="bibr" rid="B026">윤성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변형 양상과 요인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73-114쪽</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1926년생 미국 가수 슈 톰슨(Sue Thompson)이 1960년에 불러 히트한 노래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대표적인 ‘추억의 올드팝송’으로 회자된다.</p></fn>
<fn id="fb023"><label>23)</label><p>1950~60년대 멜로드라마와의 경계가 불분명한 형태로 존속했던 ‘멜로-코미디’의 특징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23">유지나, ｢60년대 한국 코미디: 핵심코드와 사회적 의미 작용｣, 『영화연구』 제15호, 한국영화학회, 1999, 283-306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22">오영숙, ｢코미지 영화의 세 가지 존재방식｣, 『영화연구』 제26호, 한국영화학회, 2005, 235-264쪽</xref> 참조.</p></fn>
<fn id="fb024"><label>24)</label><p><xref ref-type="bibr" rid="B019">앙리 베르그송, 『웃음』, 정연복 옮김, 세계사, 1992, 13-16쪽</xref>.</p></fn>
<fn id="fb025"><label>25)</label><p>1987년 민주화 이후 호주제를 폐지하라는 여성계의 목소리가 커졌으나 1997년에 동성동본 금혼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고, 호주제 폐지는 2005년에야 국회를 통과했다.</p></fn>
<fn id="fb026"><label>26)</label><p>전우형은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접속&#x003E;</xref>을 1990년대의 기획영화이면서도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원체험을 당대화하고 있는 텍스트로 읽어낸다. 주목한 지점은 본고와 다르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 읽어내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본고의 관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27">전우형, ｢접속하는 도시에 투영된 &#x003C;접속&#x003E;의 무의식적 욕망｣, 『현대영화연구』 제29호,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7, 43-68쪽</xref> 참조.</p></fn>
<fn id="fb027"><label>27)</label><p>에바 일루즈는 이러한 감성 통제를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으로 탐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20">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김정아 옮김, 돌베개, 2010</xref> 참조.</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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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기본자료</title>
<!-- 〈결혼 이야기〉(김의석,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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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2</year>
<source>결혼 이야기</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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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쁜 우리 젊은 날〉(배창호,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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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2</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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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87</year>
<source>기쁜 우리 젊은 날</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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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이명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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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3</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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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이</surname><given-names>명세</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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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0</year>
<source>나의 사랑 나의 신부</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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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봉〉(이광훈,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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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4</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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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이</surname><given-names>광훈</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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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5</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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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누라 죽이기〉(강우석,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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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5</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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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4</year>
<source>마누라 죽이기</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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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속〉(장윤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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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6</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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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장</surname><given-names>윤현</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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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7</year>
<source>접속</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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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이정국,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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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7</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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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7</year>
<source>편지</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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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엔드〉(정지우,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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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8</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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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지우</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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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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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ist><title>2. 논문과 단행본</title>
<!-- 김미현 책임편집, 『한국영화사: 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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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9</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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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미현</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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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책임편집</comment>
<year>2006</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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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커뮤니케이션북스</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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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연,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 ‘코믹 모드’의 문제｣, 『영화연구』 제60호, 한국영화학회, 2014, 29-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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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10</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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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소연</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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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4</year>
<article-title>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 ‘코믹 모드’의 문제</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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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제60호</issue>
<fpage>29</fpage><lpage>55</lpage>
<pub-id pub-id-type="doi">10.17947/kfa..60.201406.002</pu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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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 외, 『1990년대 문화키워드 20』, 문화다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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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11</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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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정남</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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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외</comment>
<year>2017</year>
<source>1990년대 문화키워드 20</source>
<publisher-name>문화다북스</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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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1: 멜로드라마』, 이론과실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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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b>대중서사장르연구회</collab>
<year>2007</year>
<source>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1: 멜로드라마</source>
<publisher-name>이론과실천</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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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4: 코미디』, 이론과실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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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13</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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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b>대중서사장르연구회</col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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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 소명출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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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선영</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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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8</year>
<source>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source>
<publisher-name>소명출판</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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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유희, ｢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제3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09, 181-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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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유희</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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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한국 멜로드라마의 형성 과정 연구: 저널리즘에 나타난 ‘멜로드라마’ 장르 개념을 중심으로</article-title>
<source>현대문학이론연구</source>
<publisher-name>현대문학이론학회</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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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장선우 외설 논란 영화를 통해 본 포스트 시대 한국영화의 동향</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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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한국드라마학회</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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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유희</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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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8</year>
<article-title>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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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한국영화학회</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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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형, ｢로맨틱코미디: 연애의 사회경제학｣, 『대중영화와 현대사회』, 도서출판 소도, 2005, 136-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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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진형</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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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title>로맨틱코미디: 연애의 사회경제학</chapt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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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감정 자본주의</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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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b collab-type="editor">영화진흥위원회</collab>
<comment>편</comment>
<year>2001</year>
<source>한국영화산업구조분석(연구보고 2001-3): 할리우드 영화 직배 이후를 중심으로</source>
<publisher-name>영화진흥위원회</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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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오</surname><given-names>영숙</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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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5</year>
<article-title>코미디 영화의 세 가지 존재방식: 50년대 코미디 영화를 중심으로</article-title>
<source>영화연구</source>
<publisher-name>한국영화학회</publisher-name>
<issue>제26호</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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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9</year>
<article-title>60년대 한국 코미디: 핵심코드와 사회적 의미 작용</article-title>
<source>영화연구</source>
<publisher-name>한국영화학회</publisher-name>
<issue>제15호</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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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title>1990년대 한국영화</chapter-title>
<source>한국영화사공부 1980~1997</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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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한국 멜로드라마 계보에서의 로맨틱코미디</article-title>
<source>영상문화콘텐츠연구</source>
<publisher-name>동국대학교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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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한양대학교</publisher-name>
<comment>박사학위논문</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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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접속하는 도시에 투영된 &#x3008;접속&#x3009;의 무의식적 욕망</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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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title>한국영화산업과 정책: 1980~1997</chapter-title>
<source>한국영화사공부 1980~1997</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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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사 공부: 1980~1997』, 이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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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5</year>
<source>한국영화사 공부: 1980~1997</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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