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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id journal-id-type="publisher-id">jpn</journal-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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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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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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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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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3_103</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3.004</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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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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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oup>
			<article-title>역사적 인간과 소설적 인간의 사이</article-title>
			<subtitle>-선택, 변형, 배제의 논리로 읽는 『칼의 노래』</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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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Between a Historical Subject and a Novel Subject</trans-title>
				<trans-subtitle>-Reading <italic>The Song of sword</italic> based on the Logic of Choice, Transformation, and Exclusion</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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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name-style="eastern"><surname>김</surname><given-names>원규</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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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ref ref-type="aff" rid="aff01">*</xref>
			<aff id="aff01"><label>*</label>포스텍 인문사회학부</aff><role>대우부교수</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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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month>8</month>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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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ume>25</volume>
		<issue>3</issue>
		<fpage>103</fpage>
		<lpage>141</l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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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date-type="received">
				<day>17</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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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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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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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itle>국문초록</title>
<p>이 글은 역사 기록을 상호 텍스트로 하여 『칼의 노래』에 나타나는 선택, 변형, 배제의 논리를 살피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의 소설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지를 밝혔다. 또한 이렇게 소설이 생산되는 방식을 살핌으로써 『칼의 노래』가 소설적(근대적) 인물의 ‘세계에 대한 환멸의 서사’로 변화하는 양상을 추적하였다.</p>
<p>선택의 논리에서는 소설에서 어떤 시간과 공간이 선택되고, 어떤 인물이 선택됨으로써 소설의 내용·형식적 틀이 갖추어지는가를 보았다. 변형의 논리에서는 적대적 인물을 변형하고 전쟁의 의미를 변형함으로써 역사 기록과 달리 소설에서 ‘개인’ 혹은 ‘주관성’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배제의 논리에서는 특정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역사적 인간의 특성이 배제되면서 소설에서 근대적(소설적) 인물의 특성이 부각되는 모습을 보았다.</p>
<p>이 글은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칼의 노래』를 역사 기록과 상호텍스트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한 편의 소설이 생산되는 방식을 고찰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역사적 실재, 작가의 이데올로기와 상상력, 동시대의 욕망 등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완결된 형식으로 봉합될 수 없는 텍스트의 요소들을 살핌으로써 안정되지 않은 체계로서 소설 텍스트가 갖는 의미를 알 수 있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logic of choice, transformation, and exclusion in <italic>The Song of sword</italic>, comparing it with the historical records. This paper explains how a novel is ‘produced’. Through this, it searches for the aspects in which <italic>The Song of sword</italic> changed into ‘a narrative revealing the disillusionment of the novel’s  subject with the world’.</p>
<p>In the logic of choice, it explores which time and space were chosen in the novel, and which character was chosen to prepare the content and formal framework of the novel. In the logic of transformation, it is confirmed that the meaning of ‘individual’ is highlighted in the novel, unlike the historical records, by transforming both the character of the enemy and the meaning of war. In the logic of exclusion, it studi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modern (novel’s) subject in the novel by exclud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historical subject that existed in a particular time and space.</p>
<p>This paper differs from previous studies in that it examines the way in which a novel is produced by comparing and analyzing <italic>The Song of sword</italic> based on the historical records. Through these analyses, we can see the unity of various heterogeneous elements, such as the historical reality, the writer’s ideology and imagination, and the desire of the contemporary in the form of a novel. Also, by examining the elements of text that can not be sutured into a complete form, we can see the meaning of the novel’s text as an unstable system.</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환멸의 서사</kwd>
			<kwd>역사적 인간/소설적 인간</kwd>
			<kwd>선택</kwd>
			<kwd>변형</kwd>
			<kwd>배제</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The narrative of disillusionment</kwd>
			<kwd>historical subject/novel subject</kwd>
			<kwd>choice</kwd>
			<kwd>transformation</kwd>
			<kwd>exclusion</kwd>
		</kwd-group>
	</article-m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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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title>1. 머리말</title>
<p>이 글은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 등의 역사 기록<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을 상호텍스트<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로 하여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타나는 선택, 변형, 배제의 논리를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먼저 하나의 소설 텍스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지를 밝힐 것이다. 다음으로 이렇게 소설이 생산되는 방식을 살핌으로써 『칼의 노래』가 역사적 인물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는 소설적(근대적) 인물의 ‘세계에 대한 환멸의 서사’로 변화하는 양상을 추적할 것이다.</p>
<p>『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1인칭 주인공 화자인 ‘나’로 등장하면서 그가 왜적과 맞서고 있는 16세기 후반 조선의 전쟁 상황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이 소설이 쓰이기 위해서는 상호텍스트로서의 역사 기록이 필요하다. 따라서 역사 기록에서 소설 『칼의 노래』를 위해 특별히 어떤 것이 ‘선택’되는가, 소설에서 어떤 것들이 역사 기록과는 다른 차원으로 ‘변형’되는가, 또한 역사 기록이 소설화되면서 ‘배제’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은 역사 기록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 편의 소설이 어떻게 성립되는지를 밝히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p>
<p>이 글에서 『칼의 노래』에 나타나는 선택과 변형, 배제의 논리가 무엇인지를 보기 위해 비교항으로 삼은 주 텍스트는 이순신의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이다. 모든 역사 기록이 마찬가지겠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 역시 역사적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글쓴이의 시각이 반영된 이야기(재현)일 수밖에 없다. 『칼의 노래』의 상호텍스트로 기능하고 있는 역사적 기록도 글쓴이(이순신 혹은 역사가)의 시각이 반영된, ‘사실에 대한 재현’일 뿐이고 『칼의 노래』는 ‘재현에 대한 또 다른 재현’이라는 것이다.</p>
<p>그렇지만 『칼의 노래』는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와는 전혀 다른 양식의 재현물이다. 역사 기록이 역사적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반면, 허구의 산물인 소설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칼의 노래』가 역사 기록과는 전적으로 무관한 작가의 허구적 상상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이 역사 기록에 기대고 있다는 것은 텍스트의 독해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칼의 노래』가 역사 기록에 의존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허구적 산물로서의 소설임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p>
<p>『칼의 노래』는 2001년 발간된 이후 2007년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돌파한 밀리언셀러 소설이다. 이 소설은 대중적 인기와 함께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대중성과 문학성을 공히 인정받으면서, 현재까지도 이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학계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p>
<p>『칼의 노래』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것은 크게 작품의 형식 및 기법에 관한 연구, 내용에 드러나는 현실 비판적 성격에 관한 연구, 작가의 세계관 내지 이데올로기에 관한 연구로 구분된다. 먼저 작품의 형식 및 기법에 관한 연구로는 『칼의 노래』에 나타나는 시점과 문체의 의미를 강조한 연구,<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현실재현방법으로서의 ‘묘사’에 관한 연구<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 등이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주로 형식과 기법 측면에서 『칼의 노래』가 이전 역사소설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p>
<p>내용에 드러나는 현실 비판적 성격에 관한 연구로는 『칼의 노래』가 선조가 통치하는 현실, 즉 상징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분석<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과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하나의 허상임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분석<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등이 있다. 이러한 연구들에서는 ‘화자-이순신’과 대비되는 세계의 부정적 성격을 드러내면서 작품의 현실 비판적 성격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작가의 세계관 내지 이데올로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지적한 연구들도 있다. 세계 자체를 궁극적으로 불가해한 것으로 보는 (작가의) 가치관이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된다거나 역사의 무의미성을 말하기 위해 역사를 차용함으로써 소설이 비역사성과 나르시시즘을 드러내게 된다는 지적<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 등이 그러하다. 이밖에 『칼의 노래』가 역사를 빌려와 작가의 자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연구<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들도 있다.</p>
<p>기존의 연구들이 『칼의 노래』에 대한 이해를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역사 기록을 상호텍스트로 삼고 있는 『칼의 노래』와 같은 소설 연구에서 상호텍스트로서의 역사 기록에 대한 충실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문제이다. 『칼의 노래』의 상호텍스트로 역사 기록을 검토하는 것은 단지 역사 기록과 소설이 어떤 부분에서 같고, 어떤 부분에서 다른가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 기록을 선택, 변형, 배제하는 양상을 통해 한 편의 소설이 ‘생산’되는 방식을 살필 수 있다는 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역사 기록과 근대적 형식으로서의 소설 사이에 있는 차이의 지점들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p>
<p>『칼의 노래』라는 텍스트가 소설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녹아들어야 하지만 텍스트에는 결코 완결된 체계(형식)로 봉합되지 않는 요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유형, 무형의 요소들은 텍스트의 매끄러운 체계를 흔들면서, 텍스트가 결코 안정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것은 한 작품으로서의 소설, 나아가 한 장르로서의 소설이 지닌 한계라기보다는 소설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편의 소설이 생산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이러한 특성을 조금 더 분명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p>
</sec>
<sec id="sec002">
<title>2. 분노와 환멸을 담기 위한 장치들: 선택의 논리</title>
<p>소설이 어떤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지, 또한 그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인물들이 세상과 부딪치면서 어떤 사건을 만들어 가는지 하는 것 등은 결코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다. 소설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개별 텍스트로서의 소설이 되기 위한 시간과 공간, 인물, 사건 등이 ‘선택’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개별 텍스트로서의 소설이 되기 위해 무엇이 선택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은 다른 소설들과 구별되는 그 소설만의 고유한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된다.</p>
<sec id="sec002-1">
<title>2-1. 영웅의 마지막 시간</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 식의 연대기적 시간과 다르게 『칼의 노래』의 시간은 선택된 시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사적’ 시간이다. 소설에서는 ‘내(이순신)’가 의금부에서 풀려난 1597년 음력 4월 1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1598년 11월 19일까지의 1년 반 정도의 특정한 시간이 선택되고 있는데 그 선택된 시간이 순차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중간 중간에 임진년(1592년)과 병신년(1596년)의 기억들이 소환되며, 임진왜란 직전 혹은 ‘내’가 함경도에서 육군의 종팔품 권관으로 여진족과 맞서던 시절(1577년)까지도 이야기된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연대기적 시간 서술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게 되고, 소설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현재’ 주인공의 심리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끔 정보 제공의 기능도 하게 된다.</p>
<p>선택된 시간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왜 1597년 4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9일까지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이 문제를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칼의 노래』의 처음과 끝 사이에 배치된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서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p>
<p>　</p>
<p>　　①1597년 4월 1일 ‘내(이순신)’가 의금부에서 풀려남.</p>
<p>　　②백의종군을 시작함.</p>
<p>　　③1597년 4월 어머니가 별세함.</p>
<p>　　④1597년 7월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전멸함.</p>
<p>　　⑤1597년 8월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됨.</p>
<p>　　⑥1597년 9월 12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왜선을 맞아 명량해전에서 승리함.</p>
<p>　　⑦1597년 10월 막내아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음.</p>
<p>　　⑧1598년 2월 수영을 고금도 덕동포구로 옮김.</p>
<p>　　⑨1598년 10월 명군과의 수륙합동작전이 명군의 소극적 태도로 실패함.</p>
<p>　　⑩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함.</p>
<p>　</p>
<p>‘내(이순신)’가 의금부에서 풀려나는 1597년 4월 1일부터 소설이 시작된다는 것은 위인의 전기가 그 사람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고,<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 또한 이광수의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이순신&#x003E;</xref>과 같은 소설이 임진왜란 직전의 상황에서 시작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예를 들어 신채호의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수군 제일위인 이순신&#x003E;</xref>은 이순신의 탄생부터 죽음까지가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 된다. 또한 이광수의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이순신&#x003E;</xref>은 1591년부터 1598년까지의 시간을 소설의 배경으로 하면서 ‘임진왜란 전반’이 이야기된다. 그러나 『칼의 노래』의 시간은 이순신 삶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생의 마지막 1년 반’이다. 소설에 관한 고전적인 논의에서 루카치(Georg Lukacs)는 “소설은 그것이 시작하고 끝나는 바로 그 지점을 통해서 문제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전적으로 본질적인 구간을 제시”<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작가는 소설의 처음과 끝을 경계로 하여 나름의 완결성 있는 서사를 만들고 그 처음과 끝 사이의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p>
<p>1597년 4월이야말로 이순신 인생의 가장 비참한 시간일 수 있다.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나 백의종군 길에 나선 ‘내’가 듣게 되는 것은 어머니의 부음이다. 이 비참한 시간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내’가 적을 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력으로 명량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영웅의 시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이후 아들 면의 죽음, 노량해전에서의 전사에 이르면서 영웅의 삶은 마무리된다. 일련의 사건들이 1년 반의 시간에 배치되면서 이 시간은 ‘내’ 삶의 가장 비참한 순간, 위기의 순간, 승리의 순간, 그리고 한 영웅의 마지막 순간을 담게 되며 이러한 시간 속에 배치되는 사건들을 통해 소설은 형식적 틀을 갖추게 된다.</p>
<p>16세기 후반 전쟁 막바지의 ‘시간’과,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조선반도 남쪽의 ‘공간’이 선택되고 이에 더해 이순신이라는 영웅적 ‘인물’이 선택됨으로써 『칼의 노래』라는 텍스트가 생산되기 위한 조건들은 갖추어진다. 소설에서 어떤 인물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그 인물을 통해 “세계의 특정한 문제성을 보여주기에 적합”<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하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특정한 인물-『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선택하는 데에는 작가만의 ‘시각(perspective)’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적의로 가득한 싸움터, 더군다나 더 이상 왕과 나라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하기 어렵게 된 1597년 4월 이후의 상황, 외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반도 남쪽의 외로운 현실, 여기에 난세의 영웅이 주인공으로 선택됨으로써 소설의 내용·형식적 틀은 마련된 셈이다.</p>
</sec>
<sec id="sec002-2">
<title>2-2.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의미</title>
<p>이러한 시공간적 틀에 이순신을 소설의 화자 ‘나’로 내세우면서 주인공인 ‘나’의 시선에 따라 소설의 사건이 전개된다. 이는 “1인칭 시점으로 특정 사건 또는 행위가 일어난 시점에서 당일 또는 하루 이틀 지나 즉시적으로 (사건 등을) 기록”<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하는 일기의 특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 나타나는 1인칭 주인공의 말하기 방식이 『칼의 노래』에서도 선택되고 있는 것이다.</p>
<p>이 소설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선택된다는 것은 『칼의 노래』라는 텍스트가 성립하기 위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신채호의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수군 제일위인 이순신&#x003E;</xref>과 이광수의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이순신&#x003E;</xref>에서 이순신은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인물의 행동은 작가에 의해 관찰되고 묘사된다. 이에 비해 『칼의 노래』에서는 역사적 인물인 이순신이 1인칭 화자 ‘나’가 되어 주인공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p>
<p>일반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서술자아(화자)와 경험자아(이야기 세계 속의 인물)가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루는 서술상황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나’의 존재 입증과 세계에 대한 진실의 표명이 뒤섞인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그리고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1인칭 주인공 소설에서 경험자아가 서술자아로 전환되는 순간은 바로 일생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의 순간’이라는 점이다. 서술의 충동은 경험자아가 겪은 상처의 경험에서 비롯되며 이 경험은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의 자기 분열과 고통을 동반하게 된다.<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p>
<p>　</p>
<p>　　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내가 받은 문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 위관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헛것을 쫓고 있었다. (중략) 형틀에 묶여서 나는 허깨비를 마주 대하고 있었다. 내 몸을 으깨는 헛것들의 매는 뼈가 깨어지듯이 아프고 깊었다. 나는 헛것의 무내용함과 눈앞에 절벽을 몰아세우는 매의 고통 사이에서 여러 번 실신했다. (중략) 나는 장독(杖毒)으로 쑤시는 허리를 시골 아전들의 행랑방 구들에 지져가며 남쪽으로 내려와 한 달 만에 순천 권률(權慄) 도원수부에 당도했다. 내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시작이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1">김훈, 『칼의 노래』 1, 생각의 나무, 2001, 18∼19쪽</xref>. 이하 권수와 쪽수만 표기)</p>
<p>　</p>
<p>위의 인용문은 『칼의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나’라는 화자가 어떤 사건의 순간에, 어떤 서술 충동 하에 ‘이야기를 시작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부분에서 화자(서술자아)인 ‘나’는 왜 이 -『칼의 노래』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경험자아인 ‘나(이순신)’는 임진년 이후 부족한 자원과 열악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왜적을 맞아 연전연승을 해 왔다. 충과 효를 내면화한 ‘나’는 임금과 나라, 부모와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쪽 바다를 지켜왔다. 그런 ‘나’에게 “조정을 능멸한 죄,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가 덮어씌워지고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28쪽</xref>)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p>
<p>화자인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위의 인용문에 드러나는 ‘나’의 고통과 슬픔, 세상에 대한 분노와 환멸, 그로 인한 현실 인식과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왜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p>
<p>『칼의 노래』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선택’됨으로써 화자인 ‘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환멸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런데 이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경험자아라는 점에서 『칼의 노래』는 독특한 방식의 서사가 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화자인 ‘나’의 정체 및 위치와 관련된 사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자인 ‘나’는 물론 이순신이다. 소설에 펼쳐지는 세계는 ‘나’의 시선에 의해 포착된 세계이고,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나’의 시선과 사유를 넘어선 세계는 서사화될 수 없고 서사화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때 ‘나’의 경험 시간과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동시적일 수 없다’. 즉 ‘내’가 무엇을 경험했든 화자인 ‘나’는 그 경험을 ‘사후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p>
<p>“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xref ref-type="bibr" rid="B002">『칼의 노래』 2, 211쪽</xref>)로 표현되는 이순신 최후의 순간이야말로 이순신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없이 이순신의 영웅담은 완성될 수 없다. 그런데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할 경우 이순신의 죽음은 이야기될 수 없다. 죽은 후의 영혼을 화자로 상정하지 않는 한 ‘나’의 죽음을 ‘내’가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에서는 그럼에도 이 ‘위험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선택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소설의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죽음 이후 세계가 화자의 시선에 포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칼의 노래』는 ‘내’가 죽기 ‘직전’에 마무리된다. 논리적으로 모순은 없는 셈이다.</p>
<p>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영웅을 주인공(경험자아)으로 하고, 이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사화한다는 것이야말로 『칼의 노래』의 독특성이자 이 소설의 ‘내용’을 담아내기 위한 형식이 된다. 작가는 경험자아와 서술자아(화자)의 시간적 간극이 주는 부담감, 역사적 영웅의 내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한다. 그럼으로써 독자 입장에서는 –허구적이기는 해도- 역사적 영웅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신채호나 이광수의 이순신 서사에서는 독자가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독자는 『칼의 노래』에서 역사적 인물과 현실 독자 사이의 좁혀진 거리를 확인하게 된다. 허구적인 형태이기는 하나 독자는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접하게 되고, 나아가 그러한 영웅의 내면이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의 반(半) 공식적인 기록과는 다른 진정한 내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p>
<p>1인칭 주인공 화자와 독자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과 함께 이 화자가 이순신이라는 점은 독자 입장에서는 『칼의 노래』의 화자를 가깝게 느끼면서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순신은 사적인 이익보다는 공적인 것을 우선시하면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민족의 영웅’이다.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민국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인물만큼 긍정성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도 드물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 그렇기에 독자는 『칼의 노래』의 화자인 ‘나-이순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기가 어렵다. 즉 소설에서 ‘나’의 생각과 말은 긍정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화자는 역사적 인물의 ‘긍정성’에 기대 유리한 입장에서 ‘자기 식으로’ 세계 해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p>
<p>작가 입장에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함으로써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게 되고,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화자의 목소리 역시 부정하기 어려운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경험자아가 지닌 역사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의 성격과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을 소설에 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1인칭 주인공 화자의 목소리가 작가의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흘러나온다는 것도 성립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작가가 작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화자인 ‘나’의 목소리를 통해 담아내는 것은 역사(혹은 역사적 영웅)가 주는 제약이 있음에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역사적 실재로서의 인물과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만나는 이 지점은 긴장이 발생하는 지점이자 긴장을 감추는 지점이고, 모순이 발생하는 지점이자 모순을 봉합하는 지점이다.</p>
<p>소설 텍스트가 생산되기 위한 시간적·공간적 배경, 인물들, 주요 사건이 선택되고 그 전체적인 서사를 이끌어가는 1인칭 주인공 화자가 자리함으로써 『칼의 노래』는 형식적, 내용적 틀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 영웅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함으로써 독자는 주인공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기보다는 긍정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작가-화자의 목소리는 교묘한 형태로 울려나온다. 화자인 ‘내’가 쏟아내는 세상에 대한 도저한 환멸과 분노는 그렇기에 ‘경험자아-이순신’과 ‘작가’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 위치하는 목소리이다. 그것은 분노의 대상이 된 세계(1597∼1598년의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인물의 목소리일 수도 있지만, 동시대(2000년대 초반) 세계의 무의미함과 속물성에 대한 작가의 환멸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p>
</sec>
</sec>
<sec id="sec003">
<title>3. ‘나’와 ‘세계’의 이분법적 구도: 변형의 논리</title>
<p>역사 기록이 어떤 식으로 변형되어 소설화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소설이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의 생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소설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틈입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이데올로기, 동시대의 욕망 등을 확인할 수도 있다. 『칼의 노래』 역시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칼의 노래』를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 등의 역사 기록과 비교해 보면 두드러지는 변형의 양상들이 있다. 그것은 주로 적대적 인물의 변형과 인물의 세계 인식 변형의 문제로 나타난다.</p>
<sec id="sec003-1">
<title>3-1. 적대적 인물의 변형</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와 『칼의 노래』를 비교해 보면 ‘나(이순신)’와 대립하는 인물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 ‘나’와 대립하는 적대적 인물이 원균이라면 『칼의 노래』에서는 ‘임금(선조)’이 된다. 역사 기록을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적대적 인물의 변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p>
<p>　</p>
<p>　　(가) 원 수사는 너무도 음흉하여 말로는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 1593년 2월 23일</xref>. 이하 날짜만 표기)</p>
<p>　　(나) 원 수사가 망령된 말을 하였는데 나에 대해서도 좋지 못한 말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모두가 망령된 짓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xref ref-type="bibr" rid="B007">1593년 8월 2일</xref>)</p>
<p>　　(다) 원 수사가 와서 흉악하고 속이는 말을 마구 하였다. 지극히 해괴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3년 8월 28일</xref>)</p>
<p>　　(라) 원 수사의 일은 놀랍기 그지없다. 내가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는다고 했다니 천 년을 두고 한탄할 노릇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4년 8월 30일</xref>)</p>
<p>　　(마) 원균이 포구에서 교대하려고 도착하였기에 수사 배설이 교서에 절하라고 하였는데 불평하는 기색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여러 번 타이른 뒤에야 억지로 행하였다고 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무식하기 짝이 없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5년 2월 27일</xref>)</p>
<p>　　(바) 원균이 온갖 계략을 써서 나를 모함하려고 하는데 이 역시 운수다. 뇌물로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에 잇닿아 있으며, 헐뜯는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스스로 때를 못 만난 것만 한탄할 따름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7년 5월 8일</xref>)<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p>
<p>　</p>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 적힌 위의 내용은 원균에 관한 기록의 일부이며, 나머지 기록들도 원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임진왜란 발발부터 원균이 전사하는 1597년까지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는 단 한 차례도 원균에 대한 긍정적 언급이 없다. ‘음흉함’, ‘망령됨’, ‘흉악스러움’, ‘해괴함’ 등이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원균에 대한 인식의 전부이다. 게다가 –소설의 시간과도 겹치는- 1597년 5월 8일,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때의 일기를 보면 원균의 모함 때문에 자신이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음을 한탄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전라좌수사일 때도 삼도수군통제사일 때도 백의종군 때도 이순신이 원균에 대한 증오와 적의를 거두는 일은 없다.</p>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 원균에 대한 적대 감정은 집요하리만치 지속된다. 즉 이 일기의 주인공 이순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제1의 인물을 -‘왜적’이라는 집단화된 무리를 제외하면- 원균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굳이 르네 지라르(Rene Girard) 식의 욕망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순신이 욕망하는 –그것이 싸움에서의 승리든, 명예든, 세속적 지위든- 그 무엇의 매개 혹은 라이벌의 자리에 원균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실제로’ 원균이 이순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자는 문제가 아니다. 이순신의 정신세계에서 원균은 강력한 적대자로 자리 잡고 있었고 이것이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의 원균에 대한 집요하리만치 부정적인 서술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p>
<p>『칼의 노래』에서는 이러한 ‘이순신 대 원균’의 적대 구도가 ‘이순신 대 임금(선조)’의 구도로 바뀐다. 1597년 4월 1일부터 소설이 시작된다는 점에서도 기인하는 바이겠지만 『칼의 노래』에서는 원균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p>
<p>　</p>
<p>　　서울로 가는 함거에 오르기 전에 나는 내 후임자인 원균에게 함대, 병력, 군량, 총포, 화약, 창검, 포로 그리고 행정 사항을 인계했다. 원균은 나를 실은 함거가 어서 떠나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중략) 나는 안다. 원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무서운 적의를 지닌 사내였다. 그 사내는 모든 전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전투이기를 바랐다. (중략) 함거가 통제영을 떠날 때, 격군(格軍)과 군관들은 길을 막고 주저앉아 통곡했다. 원균이 쓰러져 우는 군사들을 채찍으로 때려서 길을 열었다. 원균은 소리쳤다. “울지 마라. 적들이 듣겠다.” 원균은 내 함거 위에 서울의 요로에 보내는 진상품 보따리를 실었다. 말린 홍어와 미역이었다. “갈 길이 멀겠소.” “무운을 비오.” 원균과 나의 작별은 그토록 무덤덤했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25∼27쪽</xref>)</p>
<p>　</p>
<p>‘나(이순신)’의 원균에 대한 서술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의 집요한 적의와 혐오를 찾기는 어렵다. 원균은 그저 자기 자신의 보신(保身)만을 생각하는 세속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그는 적대적 존재로서 ‘나’와 같은 자리에 놓일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칼의 노래』에서 ‘나’의 적대적 역할을 임금이라는 강력한 주체가 담당한다. 이 소설에서 ‘나’와 임금이 직접 부딪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임금이 내리는 교서와 하사품, 면사첩 등과 ‘내’가 임금에게 올리는 장계 등을 통해 긴장감이 조성되고 둘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전개된다.</p>
<p>『칼의 노래』에서 ‘내’가 임금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판적이고 냉정하다. “강한 신하를 두려워하는” 임금은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신하들과 장수들을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살육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76∼77쪽</xref>) 이 잔인하고 교활한 임금은 전쟁 중 위기상황에 놓이자 단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xref ref-type="bibr" rid="B002">『칼의 노래』 2, 51쪽</xref>)한다. 이러한 내용 없는 형식과 공허한 수사를 ‘나’는 참을 수 없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75쪽</xref>),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78쪽</xref>)와 같은 결론에 이른다.</p>
<p>소설에서 임금과 ‘나’의 갈등은 특히 ‘면사첩’과 관련하여 극적으로 그려진다.</p>
<p>　</p>
<p>　　(가) 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免死帖)을 받았다. 도원수부의 행정관이 면사첩을 들고 왔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다른 아무 문구도 없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중략)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139∼140쪽</xref>)</p>
<p>　　(나)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내 숙사 도배지 아래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150쪽</xref>)</p>
<p>　　(다) 어두운 수평선 너머에서, 사각 사각 사각, 적의 함대가 노 저어 다가오는 환청에 시달리는 저녁이나,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숙사 방에서 요를 적시는 식은땀의 한기에 깨어나는 새벽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주 조선소를 돌아보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154∼155쪽</xref>)</p>
<p>　　(라) 고하도로 수군 진영을 옮긴 뒤에도 내 숙사 방 안에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을 걸어놓았다. 그것이 내 운명의 지표인 것 같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183쪽</xref>)</p>
<p>　　(마) 마지막 읍진의 군사와 장비가 도착하던 날 나는 종사관 김수철을 데리고 군사와 장비를 검열했다. 내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xref ref-type="bibr" rid="B002">『칼의 노래』 2, 180쪽</xref>)</p>
<p>　</p>
<p>(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임금은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뜻을 ‘면사첩’을 통해 전한다. 죽일 수 있지만 전쟁이 급하니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고, 어차피 ‘내’가 죽고 사는 것은 임금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나), (다), (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면사첩’은 소설에서 시종일관 ‘나’를 옥죄는 강력한 기표로 작동한다. 그리고 (마)에서처럼 면사첩을 불아궁이에 던져버림으로써 ‘나’는 “임금의 칼”이 아닌 다른 형태의 죽음을 맞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즉 소설에서 면사첩은 ‘나’와 임금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치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p>
<p>그런데 소설에서의 이 중요한 장치가 정작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는 “양 경리의 차관이 초유문과 면사첩을 가지고 왔다.(<xref ref-type="bibr" rid="B007">1597년 11월 17일</xref>)”<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라고 짧게 언급되는 데 그친다.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 언급되는 면사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04">『선조실록』</xref>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p>
<p>　</p>
<p>　　통판(명나라 도통판 양성)이 아뢰기를, “듣건대 귀국의 많은 인민들이 왜적에게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들을 꾀어낸다면 적정을 알아볼 수 있으며 사기에도 관계가 됩니다.” 하니, 상(上)이 이르기를, “이미 군문(형개)과 경리(양호) 대인의 분부에 따라 면사첩 3만 장을 인출하여 차관 3명을 삼협에 나누어 보냈소이다.”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B007">선조 30년 12월 23일</xref>)<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p>
<p>　</p>
<p>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면사첩은 ‘적에게 붙었던 사람이라도 돌아와 자수하면 죽음에서 면제시킨다는 증명’이다. 이것은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에서 도입된 제도였으며, 부적(附賊)했거나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적용했던 제도이다.”<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 즉, 양 경리의 차관이 가져온 면사첩은 왜적에게 부역한 조선인들을 회유하고 구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 이순신과는 관련이 없는 문서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임금(선조)이 이순신에게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했다는 역사적 근거는 더욱 찾기 어렵다.</p>
<p>역사적 사실로서 면사첩과 관련된 사건이 소설에 ‘올바르게’ 재현되고 있는가 아닌가를 밝히는 것은 이 글에서의 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칼의 노래』에서 면사첩이라는 장치를 활용하여 ‘나’와 임금 사이의 긴장 관계와 갈등을 극적으로 고조시키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소설적 장치를 활용하여 인물 간의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극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이야말로 『칼의 노래』가 지닌 허구적 서사로서의 특성 내지는 문학적 상상력과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p>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역사)에서 이순신과 원균의 대립이 『칼의 노래』(소설)에서 이순신과 임금의 대립으로 변형됨으로써 ‘나’의 세계와 임금으로 대변되는 세계의 대립은 세계관 대 세계관의 대립이라는 더 큰 문제로 확장된다. 그것은 단순히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이는 증오나 혐오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세계와 임금의 세계의 대립은 결국 ‘나-화자’ 혹은 작가가 속한 세계와 ‘나’ 혹은 작가가 환멸의 대상으로 삼는 세계의 대립으로 확장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칼과 몸과 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세계와 ‘울음과 언어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세계의 첨예한 대립이다. 이 극단적인 대립의 지점이야말로 작가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 즉 동시대의 욕망들이 복잡하게 부딪치고 얽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에 화자 혹은 작가가 긍정하는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에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이 우세한 세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화자 혹은 작가가 긍정하는 세계와 속물적인 세계, 화자 혹은 작가가 긍정하는 세계와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해 있는 세계가 서로 대립한다. 이 대립의 지점은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욕망의 충돌 양상을 가시화하는 지점이다.</p>
<p>그런데 이러한 뚜렷한 대립 구도 속에 작동하는 작가의 이데올로기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작가의 이데올로기는 화자에 의해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세계의 긍정적 가치 뒤에 숨어 작동한다. 독자 입장에서 대립되는 두 세계 중 어느 쪽을 긍정하고 어느 쪽을 부정할지 선택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결국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고 속물들이 판치는 세계는 혐오스럽고 무의미하다는 것, 이러한 ‘나’와 ‘세계’의 이분법적 적대 관계에서 개인이 공동체와 연결되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자기 나름의 ‘개인적인’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강조된다. 작가의 이데올로기는 ‘긍정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것은 ‘긍정적 가치’에 기대어 텍스트에 드러나는 주관성의 이데올로기 혹은 작가의 허무주의적, 반공동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p>
</sec>
<sec id="sec003-2">
<title>3-2. ‘나라’의 전쟁에서 ‘나’의 전쟁으로</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를 통해 이순신이 충과 효를 내면화한 인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즉 그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이 아니고, 그러한 세계관 너머를 상상한다는 것도 당시의 시대상황 하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p>
<p>　</p>
<p>　　(가) 밤기운이 매우 서늘하여 자리에 누웠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잠시도 풀리지 않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3년 7월 1일</xref>)</p>
<p>　　(나) 촛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서 나랏일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또 팔순의 병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5년 1월 1일</xref>)</p>
<p>　　(다) 사직의 위엄과 영령의 도움으로 겨우 형편없는 공밖에 세우지 못했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쳤다. 장수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티끌만 한 공로도 바치지 못하였으니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군사를 거느리기에는 부끄러울 뿐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5년 5월 29일</xref>)</p>
<p>　　(라) 혼자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어머님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어떠하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7년 8월 2일</xref>)<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p>
<p>　</p>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를 보면 이순신은 늘 어머니 걱정, 자식 걱정, 나라 걱정을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에게 전쟁은 가족 공동체를 지키고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공적’인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 곳곳에서 전쟁 중에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 들거나 자신의 안위만을 꾀하는 사람들에 대해 극도의 분노와 혐오를 드러낸다.</p>
<p>　</p>
<p>　　방답진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우후(虞候), 가수(假守)들이 또한 감독을 소홀히 하여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제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고 이와 같이 병선은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또한 짐작하겠다. 성 밑에 사는 병졸 박몽세는 석수장이인데 선생원에 쓸 돌 뜨는 데로 가서는 동네 개를 잡아먹는 등 민폐를 끼쳤으므로 곤장 80대를 때렸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2년 1월 16일</xref>)<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p>
<p>　</p>
<p>임진왜란 발발 직전의 일기만 봐도 이순신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공적 업무에서 매우 엄격한 태도로 일관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 전반(全般)에서 ‘(군)법’을 집행하는 그의 모습은 냉정하고도 단호하다. 공적 업무를 태만히 한 자, 나라를 배신한 자, 군법에 따르지 않은 자에 대해 그는 망설임 없이 법을 집행하고 형벌을 가한다. 즉 유교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군법을 중시하면서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을 앞세우는 이순신에게 전쟁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일이고 그렇기에 이것은 ‘나라’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임금의 신하이자 한 나라의 장수로서, 또한 가족 공동체와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마땅히 수행해야 할 공적 인간의 일인 것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의 어디에서도 이순신이 ‘나(개인)’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p>
<p>『칼의 노래』에서 ‘나라’의 전쟁은 ‘나’의 전쟁이 된다. 이것은 이순신이 소설에서 전쟁 중에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거나 단순히 공보다는 사를 중시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전체의 일부로서 주체(subject)가 기계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적 주체(Subject)’가 의지를 담아 전쟁을 수행하고 그 수행 과정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식으로 나타나는 소설적 변형이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75쪽</xref>)고 하면서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78쪽</xref>) 바란다. 그러면서 “나의 전쟁은 나의 죽음으로써 나의 생애에서 끝날 것이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28쪽</xref>)라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전쟁은 ‘남(나라)’의 전쟁이 아닌 ‘나’의 전쟁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전쟁의 의미도 단순히 왜적과의 싸움이라는 차원을 넘어 임금과의 싸움 나아가 ‘내’가 환멸을 담아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무의미한 세계 전체와의 싸움이라는 의미로 확대된다.</p>
<p>기계처럼 부려지다가 권력에 이용당해 무의미하게 죽지 않겠다는 것, 장수로서 왜적과 싸우다 전장에서 죽겠다는 것, 그것이 무의미한 세계 전체와 싸우는 ‘나만의’ 방식이고, ‘나’의 전쟁이 지닌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의 ‘내용’과 ‘형식’은 지극히 ‘근대적’인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기 자신을 대립 항으로 놓으면서, 세계를 환멸의 대상으로 삼는 ‘개인·주체’의 형상을 근대적 인간상과 분리시켜 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칼의 노래』에서처럼 ‘나’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개인이 전제되어야 한다.</p>
<p>이것은 『칼의 노래』의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태도가, 유교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나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의 이순신의 태도와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나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과거의 이순신이 ‘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칼의 노래』의 이순신으로 변형됨으로써 소설은 역사 기록과는 다른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이 ‘다른 의미’는 세계에 대한 환멸, ‘내’가 아닌 세계 혹은 공동체에 대한 부정, 개인이 세계 속에서 느끼는 허무함과 무의미함이라는 형태로 텍스트 전반(全般)에 드러난다. 1990년대 한국사회가 “연대성을 창출하지 못한” 채 “회의주의와 냉소주의의 나락으로 빠져들었”<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다는 진단대로라면 『칼의 노래』가 이러한 동시대의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 준다. 이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으로써 작가의 이데올로기와도 무관하지 않다.</p>
</sec>
</sec>
<sec id="sec004">
<title>4. 근대적 인간의 형상화: 배제의 논리</title>
<p>역사 기록이 소설화되면서 무엇이 ‘배제’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은 그러한 배제를 통해 어떤 내용과 형식을 지닌 소설이 생산되는가를 살피는 데 중요하다. “무언가를 말할 수 있으려면 말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기”<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 마련이다. 즉, 무엇인가를 배제했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텍스트에 담지 않았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 무엇인가의 배제 자체가 특정한 의미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의 생산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전근대적 특성들이 배제되는 양상과 일상성이 배제되는 양상이다.</p>
<sec id="sec004-1">
<title>4-1. 전근대적 특성의 배제</title>
<p>앞서 언급한 것처럼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의 이순신은 나라와 가족을 생각하면서 임금의 신하라는 위치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즉 그는 유교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인물이며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 이순신이 유교적 세계관 너머의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있다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p>
<p>　</p>
<p>　　(가) 둘째 형님 요신의 제삿날이라 관청에 나가지 않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2년 1월 23일</xref>)</p>
<p>　　(나) 장모님의 제삿날이어서 관청에 나가지 않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4년 5월 29일</xref>)</p>
<p>　　(다) 나라의 제삿날(세조의 제삿날)이어서 공무를 보러 나가지 않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5년 9월 8일</xref>)</p>
<p>　　(라) 나라의 제삿날(명종의 비 인순왕후 심씨)이어서 공무를 보지 않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8년 1월 2일</xref>)<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p>
<p>　</p>
<p>위와 같이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 왕실, 가족의 제삿날이라는 이유로 이순신이 관청에 나가지 않았다거나, 공무를 보러 나가지 않았다는 기록은 반복해서 나온다. 전쟁 직전에도, 전쟁 중에도, 백의종군 이후에도 제사는 이순신의 일상을 지배하는 의례이다. 제사는 “제사공동체의 결속과 연대를 강화”<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시키는 기능을 한다. 특히 제사는 “유교 윤리의 핵심인 효 관념을 사후에도 관철시키고자 한 기획”으로 “공경의 내면적 태도”를 키우면서 “유교 윤리를 내면화하도록 요구”<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한다.</p>
<p>제사 이외에도 이순신은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 음력 초하루와 보름이면 임금을 향한 배례 의식인 ‘망궐례’를 행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즉 그는 유교적 의례를 성실히 행하고 있는 인물이며, 이러한 의례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이 국가 공동체 내지 가족 공동체의 일원임을 증명한다.</p>
<p>　</p>
<p>　　여러 장수들에게 왕이 내린 교서와 유서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하였다. 배설은 교서와 유서에도 예를 올리지 않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그 아래 딸린 이방과 영리들을 붙들어다가 곤장을 때렸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7년 8월 19일</xref>)<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p>
<p>　</p>
<p>백의종군 이후에도 이순신은 임금에 대한 예를 잃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처럼 임금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는 이들에 대해 놀라움과 분노를 표현한다. 즉 그는 자신이 속한 가족과 국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효와 충을 몸소 행하는 16세기의 인간이며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적인 세계에서 그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인물이다.</p>
<p>『칼의 노래』에서는 이러한 유교적 세계관을 내면화한 역사적 인물의 특성이 완전히 사라진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제사 의식도 임금을 향한 망궐례도 『칼의 노래』에는 나오지 않는다. 『칼의 노래』의 화자(나-이순신)는 ‘나’와 임금을 대립 구도로 설정하고, 공동체의 가치가 아닌 ‘나(개인)’의 가치와 의미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이와 같은 소설적(근대적) 인물 즉 개인주의적, 근대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인물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유교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16세기 인물의 특성은 배제되어야 한다.</p>
<p>　</p>
<p>　　(가) 새벽에 꿈에서 아들을 얻었다. 이는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을 얻을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3년 7월 29일</xref>)</p>
<p>　　(나) 꿈에 왜적이 나타났다. 새벽에 각 도의 대장에게 알려 바깥 바다에 나가 진을 치도록 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3년 8월 25일</xref>)</p>
<p>　　(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 어떨지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 같다는 괘가 나왔다. 다시 점을 치니 임금을 뵙는 것 같다는 괘가 나왔다. 좋은 괘라고 모두 기뻐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6년 1월 10일</xref>)</p>
<p>　　(라) 꿈에 원균과 한자리에서 있는데 내가 원균 위에 앉아서 음식상을 받을 때 원균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7년 7월 7일</xref>)</p>
<p>　　(마) 밤에 꿈을 꾸었는데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7년 8월 2일</xref>)<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p>
<p>　</p>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 자주 나오는 것으로 이순신이 꿈에 대한 해몽을 하거나 점(주역점)을 치고 이에 대해 풀이하는 장면들이 있다. 한치 앞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전쟁 중 한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투영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순신은 이 꿈이나 점의 내용을 매우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도 미래를 알기 위해 점을 치고, 꿈 꾼 내용의 의미를 찾기 위해 해몽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와 내용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꿈과 점의 내용을 ‘근거로’ 특정한 행위를 한다거나 이를 맹신하는 일은 현실에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p>
<p>『칼의 노래』에서는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전근대적 특성들이 배제된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소설 속의 ‘나-이순신’이 성립하기 위해 점을 치고, 꿈풀이를 맹신하는 16세기 인간 이순신의 특성은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한 전근대적 특성들이야말로 ‘근대의 합리적 주체’를 형상화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는 『칼의 노래』의 ‘나’와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의 이순신은 결코 하나일 수 없는 차이를 드러낸다.</p>
<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의 이순신, 즉 역사적으로 실재한 이순신이 특정한 공간(조선), 특정한 시간(16세기)의 한 개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가 유교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전근대적 특성들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 등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이 그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칼의 노래』의 ‘내’가 근대적 합리성을 갖춘 ‘개인’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16세기적 특성들이 배제되어야 한다. 『칼의 노래』에서 주인공 화자가 ‘세계와 대립’하면서 보이는 사유와 분노는 ‘근대의 합리적 주체’를 상정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특성들을 감추는 배제의 논리야말로 『칼의 노래』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p>
</sec>
<sec id="sec004-2">
<title>4-2. 반복되는 일상(성)의 배제</title>
<p>배제의 논리와 관련하여 언급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소설에서 일상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p>
<p>　</p>
<p>　　맑다. 아침에 미조항 첨사가 보러 왔다. 술 석 잔을 권하고 보냈다. 종사관에게 공문 세 건을 처리하여 보냈다. 밥을 먹은 뒤 활터 정자에 올라갔더니 경상 수사가 찾아왔다. 우조방장도 도착하여 같이 취하였다. 저물 무렵에 활을 3순 쏘았다. (<xref ref-type="bibr" rid="B007">1594년 2월 11일</xref>)<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p>
<p>　</p>
<p>위와 같은 일기는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누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눴고, 누구와 술을 마셨고, 어떤 공문을 처리했고, 누구와 얼마나 활쏘기를 했고 등의 내용은 일기에 반복되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일들이야말로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무장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급박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전쟁 중에도’ 이러한 일상들은 되풀이된다. 일상이라는 낱말 뜻 그대로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기라는 장르 자체가 일상의 기록이기도 하다.</p>
<p>이러한 일상성이 『칼의 노래』에서는 배제된다.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에서 이순신은 자주 아프고, 반복해서 신체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이러한 일상적인 아픔이 이야기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소설화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들이다. 적어도 이러한 아픔들은 세계와의 대결의 흔적, 개인-존재가 세계와 마주한 분노와 고통이라는 의미를 지녀야 한다.</p>
<p>　</p>
<p>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구들에 불을 때지 않고 자는 밤에도 땀은 흘렀다. 등판과 겨드랑과 사타구니에 땀은 흥건히 고였다. (중략) 군법을 집행하던 날 저녁에는 흔히 코피가 터졌다. (중략) 종을 불러서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누우면, 실신하듯이 밑 빠진 잠이 쏟아졌다. 나는 바닥 없는 깊이로 떨어져내렸고,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에는 식은땀에 젖었다. 의식이 다시 돌아올 때 나는 어둠 속에 걸린 환도 두 자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xref ref-type="bibr" rid="B001">『칼의 노래』 1, 198∼199쪽.</xref>)</p>
<p>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순신의 신체적 고통조차도 임금과 왜적이라는 ‘나와 대립하는 두 종류의 세계’와의 싸움의 흔적으로 의미화된다. 즉 『칼의 노래』에서 일상적인 것은 소설에 담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된다. 세계(왜적, 임금)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나-이순신’에게 일상성이 주는 ‘긴장감의 결여’는 배제되어야 할 요소이다. ‘아침에 일어나 공무를 처리하고, 사람을 만나 식사를 하고, 저녁에 활터에 나가 활을 몇 순 쏘았다.’는 일상성의 ‘지루한 반복’을 이순신 서사에서 기대할 독자는 없을 것이다. 또한 1597년 4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9일까지 조선반도 남쪽의 긴박한 시공간이 선택된 상황에서 그러한 일상성은 끼어들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p>
<p>일상성의 배제가 소설의 극적 효과와 관련하여 『칼의 노래』에서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지루한 일상성’이야말로 한 인간의 삶에서 부정할 수 없는 실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일상을 살 수밖에 없고, 나아가 인간은 이 ‘일상을 통해’ 타자와 관계를 맺는다. 일상을 통해 타자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한 인간은 스스로가 세계와 대립하는 주체, 주관성에 함몰된 주체로 머물 수만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복잡한 세계 내 관계 속의 하나임을 인지하게 된다.</p>
<p>역사적 존재로서의 이순신의 삶이 극적이고 예외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삶의 대부분(혹은 전부)이 일상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는 나라의 녹을 먹는 임금의 신하이자 무장,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계의 자식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살아갔고, 주변 사람들과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으면서 일상을 지속해 나갔다. 소설에서 일상성을 배제했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존재의 일상적 삶이 무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배제한다고 해서 배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배제된 실재는 소설의 형식적, 내용적 완결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소설 텍스트와 함께한다.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역사적 존재의 삶이, 일상성이 소거된 상태에서 ‘나와 세계의 대립’을 지속하는 소설적 인물의 비장한 삶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p>
</sec>
</sec>
<sec id="sec005">
<title>5. 맺음말</title>
<p>지금까지 『칼의 노래』에 드러나는 선택, 변형, 배제의 논리를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 등의 역사 텍스트를 비교 항으로 삼아 살펴보았다. 먼저 선택의 논리에서 주목한 것은 『칼의 노래』에서 어떤 시간과 공간이 선택되고, 어떤 인물이 선택됨으로써 소설의 내용·형식적 틀이 갖추어졌는가 하는 점이었다. 특정한 시공간과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할 서사적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특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선택됨으로써 화자인 ‘나-이순신’의 목소리에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개입해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서 『칼의 노래』가 화자인 ‘나’ 혹은 작가의 세상에 대한 적의와 환멸을 담은 텍스트로 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p>
<p>변형의 논리에서는 적대적 인물을 변형하고 전쟁의 의미를 변형함으로써 역사 기록과는 달리 『칼의 노래』에서 ‘개인’ 혹은 ‘주관성’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음을 보았다. 이는 ‘나(개인)’와 ‘세계’를 명백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설정하고 한쪽에 긍정적 가치를, 다른 한쪽에 부정적 가치를 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변형이다. 결국 이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환멸을 담게 되며, 세상의 무의미함을 강조하는 허무주의로 나아가면서 개인의 주관성 너머를 부정하는 반공동체주의적 사유와 연결되기도 한다.</p>
<p>배제의 논리에서는 먼저 16세기의 인간이자, 유교적 세계관을 내면화한 인간의 역사적 실재와 관련된 특성들이 배제되는 양상을 보았다. 특정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이 그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칼의 노래』의 ‘나’는 그러한 16세기의 특성들을 배제한 채 근대적인 인물의 특성을 드러낸다. 이 근대적인 인물은 개인과 세계를 대립 구도로 만들면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적의와 환멸을 드러낸다. 또한 소설에서 일상성을 배제함으로써 역사적 존재의 일상적 삶보다는 특수한 상황의 대립과 갈등이 강조된다. 그러면서 소설은 개인과 세계와의 대립만이 부각된 채 개인과 개인의 만남, 타인과의 일상적인 관계는 소거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p>
<p>선택, 변형, 배제의 논리를 통해 『칼의 노래』를 독해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소설 텍스트가 어떤 식으로 생산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소설은 역사 기록을 기반으로 그러한 역사적 사건이 작가의 상상력과 이데올로기, 동시대의 무의식적 욕망과 어떤 식으로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국 소설이라는 특정한 형식에 어떻게 담기는지를 보여준다.</p>
<p>이러한 소설 생산의 논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칼의 노래』가 단순히 역사적 인물 이순신에 대한 서사로 한정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세계에 대한 화자(주체)의 도저한 적의와 환멸을 담고 있는 이 텍스트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는 크게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칼의 노래』에는 역사적 사실, 작가의 상상력과 동시대의 욕망, 작가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제약하는 요소로서의 소설 형식 등이 서로 얽히고 서로를 견제하면서 ‘소설 텍스트’라는 이름으로 모인다. 그러면서 소설 텍스트는 이처럼 서로 맞서는 요소들을 봉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봉합될 수 없는 다양한 차이들, 모순들을 드러내기도 한다.</p>
<p>『칼의 노래』는 2000년대 초반, 역사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의 최대치 내지는 1인칭 주인공 환멸 소설의 내용·형식적 측면의 최대치를 보여 준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칼의 노래』에 대한 대중의 호응, 문학(사)적 평가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것은 이 소설의 한계와도 연결된다. 먼저 그것은 어떠한 공동체에 대한 모색에도 이르지 못하고 개인적 주관성에 머무는 것과 연결되는 한계이다. 『칼의 노래』는 세계와 맞서는 ‘개인’ 혹은 주관성의 진지한 모색을 담고 있지만 이러한 주관성은 결국 달성(완성)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소설에서 이순신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필연적’ 결말로 묘사된다. 『칼의 노래』에서는 작품 속 세계, 나아가 작가가 몸 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의 주관성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그려지지만, 그러한 주관성의 완성 내지 승리가 현실세계에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p>
<p>다른 하나는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가 지닐 수밖에 없는 모순과 연결되는 한계이다. 『칼의 노래』에는 역사 혹은 실재, 작가의 이데올로기, 소설의 형식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공존한다. 그렇지만 작가의 이데올로기조차도 아무런 제약 없이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순신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이 있는 한 작가가 이 인물의 생각과 목소리에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담아내는 데에는 반드시 (무)의식적 경계가 설정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역사적 실재 나아가 역사 기록 등은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소설이 되기 위해 특정한 형식 속에서 변형(선택, 배제)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유형, 무형의 형태로 텍스트에 혼재한다. 문제는 어떤 것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어떤 것을 억압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봉합한다고 해서 그 감추어진 것들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텍스트에서 배제되어 있지만 실재하는 전근대적 특성들처럼 말이다. 『칼의 노래』에는 이러한 다양한 모순들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p>
<p>2000년대 초반 대중성과 문학성 측면에서 공히 높은 평가를 받은 『칼의 노래』를 텍스트가 생산되는 방식에 주목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텍스트를 단순히 역사적 인물에 대한 서사라는 의미로 한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하고, 배제된 것들이 의미를 획득하는 양상을 통해 ‘동시대를 향한 발화’이자 ‘세계에 대한 환멸의 서사’로서 이 텍스트가 지니는 복잡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성을 등에 업은 이 환멸의 서사는 세계와 대립하는 개인-주체의 형상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속물성과 내용 없음을 비판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 분노하고 환멸하는 개인조차 이제는 세계에 설 자리가 없음을, 세계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관계 맺기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동시대의 허무주의적, 반공동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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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는 매일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물)에 가깝다. 이를 개인의 자아 성찰을 담은 근(현)대적인 일기와 같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서구의 경우 “대체로 가계서의 범주에 머물렀던 일기가 개인의 성찰이라는 현대적 특징으로 방향을 튼 시기는 보통 17세기 후반쯤”이었으며,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현대적 개인 일기의 중요한 특징인 세속적 자아에 대한 각성과 성찰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xref ref-type="bibr" rid="B012">곽차섭, ｢일기 연구의 이론과 실제-서양의 경우를 중심으로｣, 『코기토』 제85호, 2018, 121-123쪽</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모든 텍스트는 선행하는 텍스트로 구성된다. ‘상호텍스트성’은 이미 주어진 단어들과 형식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35">H. 포터 애벗, 『서사학 강의』, 우찬제 외 역, 문학과지성사, 2014, 450-451쪽</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공임순은 역사소설에 대한 터너의 분류법을 참조하여 역사소설을 ①기록적 역사소설, ②가장적 역사소설, ③창안적 역사소설, ④환상적 역사소설로 구분한다. ①에 가까울수록 역사 서사에 가깝고, 미메시스적 전통에 기대게 된다. 반면 ④에 가까울수록 역사 서사와는 멀어지고 허구성과 환상성에 기대게 된다. (<xref ref-type="bibr" rid="B018">공임순, ｢역사소설의 개념과 장르적 유형론｣, 『역사소설이란 무엇인가』, 대중서사학회, 2003, 30-40쪽</xref>.) 이러한 분류법에 따르면 『칼의 노래』는 “기록된 과거를 변장”하는 가장적 역사소설보다도 오히려 ‘기록적 역사소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p></fn>
<fn id="fb004"><label>4)</label><p>이 글에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세 가지를 구분하고자 한다. 먼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실재’라고 부를 것이다. 이것은 실제 발생한 사건이면서 일회적인 것으로, 온전히 재현될 수 없는 특정한 시기와 장소의 사건이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실재는 말해지지 않으면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말해지는(기록되는)’ 순간 누수(漏水)가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다음으로 사실에 대한 기록을 ‘역사 (기록)’라고 부를 것이다. 이 글에서의 <xref ref-type="bibr" rid="B007">『난중일기』</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4">『선조실록』</xref> 같은 것들이 역사 텍스트가 될 것이다. 역사 텍스트는 실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기록자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밖에 없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는다. 따라서 허구적 이야기와는 다른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토대로 하여 허구로 만든 『칼의 노래』를 ‘소설(허구적 서사)’의 범주에 놓을 것이다. 역사 기록에 기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소설인 한 역사 기록과는 구별되는 ‘허구’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p></fn>
<fn id="fb005"><label>5)</label><p>&#x003C;동인문학상/수상작 선정의 말&#x003E;.</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34">홍혜원, ｢김훈의 ‘칼의 노래’ 연구｣, 『구보학보』 2집, 2007, 389-411쪽</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6">김택호, ｢서사와 묘사: 인간의 삶을 재현하는 두 가지 방법과 작가의 태도-김훈의 ‘칼의 노래’와 윤성희의 소설을 중심으로｣, 『한중인문학연구』 제17집, 2006, 117-137쪽</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고강일, ｢김훈의 ‘칼의 노래’와 정신분석학의 윤리｣, 『비평문학』 29호, 2008, 33-52쪽</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30">최영자, ｢이데올로기적 환상으로서의 김훈 소설｣, 『우리문학연구』 제26집, 2009, 371-400쪽</xref>.</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정건희, ｢김훈 역사소설의 비역사성-‘칼의 노래’,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관학어문연구』 제36집, 2011, 197-218쪽</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xref ref-type="bibr" rid="B024">이성혁, ｢김훈의 ‘역사소설’에 나타난 파시즘 문제에 대한 고찰｣, 『한민족문화연구』 46권, 2014, 365-395쪽</xref>.</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이혜경, ｢역사성과 인간성 사이의 ‘이순신’｣, 『한국사상문학』 45권, 2008, 63-80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15">김윤정, ｢김훈의 역사소설에 나타난 역사 변용의 원리 연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75집(21권 2호), 2017, 181-203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14">김성진, ｢이순신 역사 소설에 투영된 작가와 시대의 욕망｣, 『문학치료연구』 45권, 2017, 133-154쪽</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신채호의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이순신전(수군 제일위인 이순신)&#x003E;</xref>에서 동시대 상황에 대한 글쓴이의 비판이 담긴 도입부와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이야기의 시작은 “동래 부산에 살기가 날로 급박하매, 우리 조상 단군의 신령이 청구 강산에 사람이 없는 것을 비탄하사 큰 적국을 대적할 간성지장을 내려 보내시니, 때는 선묘조 을사(1545년) 3월 8일 자시라. 한양 건천동에서 갓 낳은 아이 울음소리가 나니라”(<xref ref-type="bibr" rid="B005">신채호, &#x003C;이순신전&#x003E;, 『백세 노승의 미인담 외』, 범우, 2004, 52쪽</xref>.)부터이다.</p></fn>
<fn id="fb014"><label>14)</label><p>이광수의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이순신&#x003E;</xref>은 1591년 1∼3월에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배들을 점고하고, 거북선을 만들어 진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부각되는 것은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는 이순신의 선견지명, 거북선과 같은 놀라운 병기를 만들어내는 영웅의 비범함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6">이광수, &#x003C;이순신&#x003E;, 『이광수 전집』 제12권, 삼중당, 1962, 171-182쪽</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김경식 역, 문예출판사, 2018, 93쪽</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김경식 역, 문예출판사, 2018, 95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xref ref-type="bibr" rid="B031">최효진·임진희, ｢개인 일기의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와 전망-‘5월 12일 일기컬렉션’을 중심으로｣, 『기록학연구』 46호, 2015, 97쪽</xref>.</p></fn>
<fn id="fb018"><label>1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7">나병철, 『영화와 소설의 시점과 이미지』, 소명출판, 2009, 245쪽</xref>.</p></fn>
<fn id="fb019"><label>19)</label><p><xref ref-type="bibr" rid="B017">나병철, 『영화와 소설의 시점과 이미지』, 소명출판, 2009, 246쪽</xref>.</p></fn>
<fn id="fb020"><label>20)</label><p>『칼의 노래』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독자들이 영웅의 내면과 화자의 목소리를 보고 들으면서 어느 정도 여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대중적 호응도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순신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칼의 노래』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이 소설의 특이성과 대중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p></fn>
<fn id="fb021"><label>21)</label><p>“‘영웅 이순신’은 한국인에게 여전히 현재적인 의미이며 여기에 ‘인간’이란 새로운 의미층을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결과라 할 것이다.” (<xref ref-type="bibr" rid="B022">윤진현, ｢이순신과 영웅의 쇄신-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14호, 2005, 12쪽</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이상의 내용을 <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xref>에서 발췌함.</p></fn>
<fn id="fb023"><label>2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 402쪽</xref>.</p></fn>
<fn id="fb024"><label>2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선조실록』 23, 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88, 89-90쪽</xref>.</p></fn>
<fn id="fb025"><label>25)</label><p>제장명, ｢이순신 정론 1-해전횟수, 면사첩, 백의종군｣, 『이순신연구논총』 제17호, 2012, 44쪽.</p></fn>
<fn id="fb026"><label>26)</label><p>이상의 내용을 <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xref>에서 발췌함.</p></fn>
<fn id="fb027"><label>2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 25쪽</xref>.</p></fn>
<fn id="fb028"><label>28)</label><p><xref ref-type="bibr" rid="B029">주은우, ｢자유와 소비의 시대, 그리고 냉소주의의 시작: 대한민국, 1990년대 일상생활의 조건｣, 『사회와 역사』 제88집, 2010, 331쪽</xref>.</p></fn>
<fn id="fb029"><label>29)</label><p><xref ref-type="bibr" rid="B033">피에르 마슈레,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윤진 역, 그린비, 2014, 125쪽</xref>.</p></fn>
<fn id="fb030"><label>30)</label><p>이상의 내용을 <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xref>에서 발췌함.</p></fn>
<fn id="fb031"><label>31)</label><p><xref ref-type="bibr" rid="B025">이숙인, ｢‘주자가례’와 조선 중기의 제례문화｣, 『정신문화연구』 제29권 제2호, 2006, 37쪽</xref>.</p></fn>
<fn id="fb032"><label>3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5">이숙인, ｢‘주자가례’와 조선 중기의 제례문화｣, 『정신문화연구』 제29권 제2호, 2006, 39-40쪽</xref>.</p></fn>
<fn id="fb033"><label>3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 378-379쪽</xref>.</p></fn>
<fn id="fb034"><label>34)</label><p>이상의 내용을 <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xref>에서 발췌함.</p></fn>
<fn id="fb035"><label>3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 149쪽</xref>.</p></fn></fn-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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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기본자료</title>
<!-- 김훈, 『칼의 노래』 1, 생각의 나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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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칼의 노래』 2, 생각의 나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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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생각의 나무</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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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성룡, 『징비록』, 김흥식 역, 서해문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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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실록』 23, 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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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 〈수군 제일위인 이순신〉, 『백세 노승의 미인담 외』, 범우,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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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이순신〉, 『이광수 전집』 제12권, 삼중당,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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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난중일기』, 노승석 역, 여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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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임진장초』, 조성도 역, 연경문화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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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난중일기』, 송찬섭 역, 서해문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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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ist><title>2. 논문과 단행본</title>
<!--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김경식 역, 문예출판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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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강일, ｢김훈의 ‘칼의 노래’와 정신분석학의 윤리｣, 『비평문학』 29호, 한국비평문학회, 2008, 3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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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김훈의 ‘칼의 노래’와 정신분석학의 윤리</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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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차섭, ｢일기 연구의 이론과 실제—서양의 경우를 중심으로｣, 『코기토』 제85호,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8, 113-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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