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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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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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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3_211</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3.007</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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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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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title>1960년대 한국과 이집트 영화 정책 및 특성의 비교 연구</article-title>
			<subtitle>-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중심으로</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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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A Comparative Study on Korean and Egyptian Films</trans-title>
				<trans-subtitle>-Focusing on Adaptations of Novels in Films of the 1960s</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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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 id="aff01"><label>*</label>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aff><role>박사과정 수료</role>
			<aff xml:lang="en">Korea University</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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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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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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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ume>25</volume>
		<issue>3</issue>
		<fpage>211</f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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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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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문초록</title>
<p>이 글은 1960년대 한국과 이집트에서 유행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세계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를 1930~5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퍼진 각색 영화들을 주목하여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의 글을 이용하여 원인을 알아 봤다.</p>
<p>영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방향을 낳았다는 것이 바쟁의 주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이집트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이 세계적 현상을 따르기 시작한 첫 출발점을 알아보기 위해 양국에서 1960년 이전 시기에 영화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았다. 1950년대 한국에서 개봉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외국 영화들은 한국 감독들의 시선을 한국의 정통 문화와 문학에 눈뜨게 하였다. 이 시기에 많은 기사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한국 영화가 양적·기술적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었지만 빈곤한 내용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문학 작품을 재생산하는 경향이 시작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는 1950,60년대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관한 수많은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실렸다. 이 중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외국 영화를 주목하는 글, 이집트 영화의 현황에 관한 글, 뿐만 아니라 유명한 작가가 영화에 대해서 쓴 글도 있었다.</p>
<p>내적 조건을 파악한 뒤 영화에 영향을 미친 두 국가의 정책을 살펴봤다. 한국의 경우에는 미군정기 정책과 국산영화장려정책을 주목하고 이집트의 경우에는 영화까지 확대된 국유화 산업을 살펴봤다. 두 국가에서 영화 정책의 실행이 앞서 살펴본 내적 조건 보다 뒤에 나온 것을 확인하고 이 정책들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시발점이 되지 않았으나 다른 나라에서 빨리 사그라진 이 영화 경향이 두 국가에서 오랫동안 수명을 유지할 수 있게 기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나라의 영화를 원작의 작가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이의 특징을 알아봤다.</p>
<p>이 글은 한국과 이집트의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세계적 현상으로 위치 지으려는 시도이다. 두 나라의 영화들은 개별적으로 연구되어 왔지만, 이 논문을 통해서 당시 영화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지향하는 것을 기대한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Films of the 1960s in both Korea and Egypt share many common characteristics. These include the main trend of such films’ in addition to some of the political situations. This trend mainly relates to the adaptation of novels into films.</p>
<p>In the late 1940s, Andre Bazin wrote his ideas about a similar phenomenon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Based on Bazin’s thoughts and other examples for films adapted from novels in the 1940-60s, I found that the trend in both Korea and Egypt can be explained as an international phenomenon, in which film developed to a further stage due to a dialectic between content and form after the increase in the development of film techniques.</p>
<p>The trend in Korea is believed to have led to the so-called golden era of Korean movies, while in Egypt films adapted from literature were not able to earn high profits, even though in a 1996 list of the best 100 Egyptian films, 23 had been adapted from novels.</p>
<p>To explain the reasons behind this phenomenon, I looked into the internal demand from filmmakers themselves to further develop the industry through the articles written at that time. In addition, I explored the different situations and policies that influenced film production in both countries in the 1960s. I found that political situations and policies could have helped in the continuity of such trend, but it is difficult to consider these as the main reason for its creation, in contrast to the internal demand, which I believe is the main reason for the creation of such direction.</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1960년대 이집트 영화</kwd>
			<kwd>문예영화</kwd>
			<kwd>각색 영화</kwd>
			<kwd>1960년대 한국 영화</kwd>
			<kwd>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1960s’ Egyptian film</kwd>
			<kwd>Literary Film</kwd>
			<kwd>Literary Adaptation</kwd>
			<kwd>1960s’ Korean Film</kwd>
			<kwd>Adaptation of novels into films</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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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sec-type="intro">
<title>1. 서론</title>
<p>이집트와 한국의 문학 교류가 최근에 들어 어느 정도 활발해졌다. 이는 언어의 교류와 문학도서 번역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전에는 이 교류가 상당히 적었다. 두 언어와 문학 간의 연구도 이와 마찬가지로 흔하지 않았다. 요즈음 양국에 관한 비교연구는 국문 계열에서 문학보다 어학에 관한 연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나, 문학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번역과 관련 있는 연구들이다. 두 나라 사이의 비교문학 연구를 어렵게 만든 것은 이집트 문학이 아닌 아랍 문학이라는 연구의 큰 범위이다. 본 연구는 한국과 이집트의 1960년대 영화, 특히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관심을 갖고 당시 두 나라의 영화를 둘러싼 여러 조건과 상황들을 정리하고 각국 영화의 특성을 보여주고자 한다.</p>
<p>1960년대는 양국이 역사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겪은 중요한 국가 재건 시기이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한국은 식민지 시대에서 벗어나고 3년 동안 내전을 겪으며, 새로운 시대에 접하게 되어 나라를 일으키는 도전과 국가재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는 1952년 영국의 세력을 깨뜨리고 왕국이 무너지며 삼국동맹의 공격에 처하여 제2차 중동 전쟁을 겪은 후 온전한 해방을 맞이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불안정한 분위기는 1960년대로 이어졌으며, 이 시기에 군사 정부 세력이 더욱더 강력해지기 시작하였다. 역사가 기록한 이 어려운 시점에 국가가 영화에 새로이 적용한 여러 정책들로 인하여 양국의 영화산업은 많은 변모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두 영화계에는 내적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한국과 이집트 영화중에는 한국에서 ‘문예영화’라 불리는, 이른바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 상당히 많았고 두 나라에서 이 현상의 흡사한 요소들이 눈에 띈다.</p>
<p>문예영화는 한국 문학 학계 내에서 상당히 중요한 주제이다. 국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영화나 사회학 등을 전공하는 연구자들도 이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그 동안 문예영화는 연구자들에게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으로 여겨졌다. 많은 연구자들은 문예영화를 특정한 시기에 한국 영화계 내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았고 이에 따라서 문예영화는 일반적 각색 연구와 다른 맥락에서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당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 제작에 대한 관심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문예영화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이에 대하여 조명하지 않고 고립적 작업이 계속된다. 이 글에서는 한국과 이집트의1960년대 문예영화를 영화라는 예술 형태의 발전 과정 속에서 세계적 예술의 현상으로서 이해해 보려고 하며, 한국과 이집트의 문예영화, 또는 각색 연구의 새로운 지향을 찾고자 한다.</p>
<p>우선 본고에서 쓰는 용어에 대한 정리가 요구된다. 196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던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문예영화’라고 일컫는다. 한국 학계에서 흔히 정의되는 문예영화는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또는 예술성이 높은 영화가 특정한 시대에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을 일컫는 용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예술성이 높은 영화를 제외하고 문예영화를 한국만의 개별적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때문에 본고에 한해서는 문예영화라는 명칭이 객관적이지 않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문예영화’ 대신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p>
<p>본 연구는 우선 영화 비평가 앙드래 바쟁(Andre Bazin)이 1940년대 쓴 각색 영화에 대한 글을 주목하면서 유럽과 할리우드의 ‘각색’ 영화의 몇몇 사례를 조명한다. 그 다음, 1960년대 양국의 영화계의 상황과 각종 정책들을 살펴 이를 바탕으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10년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던 원인을 알아보고자 한다.</p>
</sec>
<sec id="sec002">
<title>2. 세계적 현상으로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title>
<p>영화 비평가 바쟁은<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1940년대 할리우드와 유럽에서 제작되는 각색 영화를 ‘비순수 영화를 위하여 – 각색의 옹호’라는 글에서 주목한 바 있다. 바쟁은 시네마 초기의 각색 현상과 당대 각색의 현상을 서로 분리하여 이야기한다. 초기 영화에 있어 각색은 예술로서 영화가 그의 생명을 얻기 위한 길이었으며, 새로운 예술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 그 이유는 아직 영화의 비평가가 없기 때문에 영화가 다른 예술의 형태와 혼합하여 그 힘을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예술의 혼합은 더 발전한 예술 형태를 이루기 위한 일이다. 이를 비판하거나 어떠한 예술 형태가 다른 예술보다 위대하거나 아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p>
<p>이런 의미에서 바쟁은 각색을 원작의 재생산과 너무나 먼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각색은 현대 작가들이 옛 작가들의 영향을 받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문학 내의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영화가 문학의 영향을 받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p>
<p>다른 면에서 바쟁은 각색의 제일 큰 효과가 ‘접근하기 쉬움(Accessibility)’이라고 말한다. ‘Accessibility’<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모두에게 허용되는 문화 (Culture for everyone)’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부르주아가 독점한 문화와 예술은 영화, 특히 각색 영화를 통해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것이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각색 영화는 혁신적 문화적 의사소통 수단을 제공하여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아꼈다. 현대 기술과 현대 생활이 제공하는 문화가 대중에게 축소된 형식으로 전달된다. 정신적 노력이 없으면 문화가 없다는 방어적이고 지적 모토가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잡자’는 문명의 시대가 열렸다. 각색 영화의 임무는 문학을 다른 서사 방식으로 문화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요약은 새로운 서사 방식인 영화 문법으로 인해 생긴 일이지 원작에 일부러 손해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다.</p>
<p>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각색’을 장르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바쟁은 이를 ‘방향’이라고 부른다. 각색의 정확한 범주와 특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쟁은 당시 영화계에 퍼진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방향의 지속 불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는 당대 각색 방향을 영화의 발전 서클에 필요로 하는 일부분으로 여기고 언젠가 이 방향은 영화를 다른 길로 인도할 것을 믿었다.</p>
<p>이 방향의 탄생은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기성세대의 감독들보다 결코 열등해서가 아니다. 사실 그들은 대체로 같은 인간들인 것이다. 영화제작에 있어 경제적, 또는 정치적 요인들이 그들의 영감을 불모화 했다고도 믿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재라든가 재능이라든가 하는 것은 상대적 현상이어서 그것들은 역사적 국면과 관련해서만 발휘된다고 하는 것이다. 볼테르의 연극적 실패를 그에게는 비극적 감각이 없었다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려는 태도이다. 비극을 지향치 않은 것이 그 시대이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이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바쟁은 주변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영화를 포함한 다른 예술 형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한다. 특정한 상황이 제작 환경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감독들의 창조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는 영화의 내부 문제이며, 시대의 지향, 즉, 관객의 취향에 따른 문제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하지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바쟁은 당대 일어난 각색의 열풍을 영화의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을 통해서 해명한다.</p>
<p>내용과 형식 간의 변증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영화가 주제 체계가 기술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써버리고만 것처럼 만사가 행해지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가속 몽타주를 발명한다거나 또는 사진의 양식을 바꾸어 본다거나 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가 않”았을 때이다. 따라서 “영화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시나리오 시대로 돌입하고 만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이처럼 바쟁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옹호하면서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일시적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의 주장을 빌어 본다면, 한국과 이집트의 문예영화 시기가 영화가 필요했던,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으로 인해 생긴 잠깐의 방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스크린에서 보이는 다양한 시간적 환상만으로 관객들을 충족시키지 못 하는 단계로 도달한 영화는 기술을 중심으로 아닌 내용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덧붙여야 할 것은 영화계 내부적 조건이 필연적으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근원이 된다면, 이를 유지시키는 외부적 조건도 있다는 점이다. 다음 바쟁이 알아본 내부적 조건 외에도 유럽과 미국의 일부 사례의 외부적 조건을 알아보고자 한다.</p>
<p>1964년 그리스 출신인 카코얀니스 (Michael Cacoyannis) 감독이 &#x003C;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x003E;라는 영화로 각색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고 했다. &#x003C;그리스인 조르바&#x003E;는 1946년 발표된 카잔치키스 (Nikos Kazantzakis)의 소설이다. 그리고 이를 영화화한 카코얀니스는세 부문의 아카데미상에 지명되었다. &#x003C;그리스인 조르바&#x003E;와 같은 명작에 외에도 카코얀니스는 다섯 부문의 아카데미상 지명으로 그리스 감독으로서 명성을 날렸고 문학 작품, 특히 고전 그리스 비극을 영화화하는 전문 감독이 되었으며 문학과 영화를 통해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p>
<p>이와 비슷한 사례로 플랑드르를 예로 들 수 있다. 1960년대에 플랑드르영화는 문학을 원작으로 영화들이 종종 제작되었다. 이 현상에 관하여 빌럼스 (Gertjen Willems)<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는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플랑드르 영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주장한다. 빌럼스는 당시 정부의 정책이 각색 영화의 흥행에 가장 큰 원인이 되었는데 이외에도 커져 가는 세계 영화 시장 경쟁 속에서 소수 나라의 영화들이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명한다. 그리고 이 정책이 오랫동안 유지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플랑드르에서 복잡하고 종종 모호한 각색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문화, 상업, 정치 및 이념적 요소들의 존재는 각색을 ‘안전한 길’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문학의 각색 영화는 가치가 있는 예술이며, 상업적 결과도 보여주었다. 이는 플랑드르 문화의 유산을 지키는 훌륭한 도구임을 증명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다시 말해서 그리스와 플랑드르는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세계 영화 속에서 경쟁할 수 있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을 유지시키는 도구로 사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p>
<p>이와 달리 미국은 약간 다른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연구자 에드워즈<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Kyle Edwards)는 1940년대 미국에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유행하는 원인을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 현황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에드워즈는 1940년대 할리우드의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브랜드화(Branding)라는 경제적 개념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할리우드의 초기 영화중에서 많은 영화들이 독자적 창작이 아닌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던 작품들이었다. 에드워즈는 이 중에서 1940년대 셀즈닉 스튜디오 (Selznick International Pictures)에 의해 제작된 영화를 대상으로 삼는다. 셀즈닉은 큰 영화 제작 스튜디오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후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성립했는데 문제는 미국 시장에서 제작만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시장에서 제작사와 배급, 그리고 극장 상영은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셀즈닉에게 필요한 것은 그만의 특이한 상품이었으며, 그는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즉, 셀즈닉은 각색 영화를 브랜드화(Branding)하였다. 그는 자기가 제작한 영화와 미국 시장의 다른 영화와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부여하고자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통해 ‘위엄(prestige)’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이를 홍보하고 마케팅 하였다. 에드워즈는 셀즈닉의 각색관을 셀즈닉과 히치콕(Sir Alfred Hitchcock)감독과 주고받은 편지로 분석한다. 셀즈닉은 히치콕의 &#x003C;레베카(Rebecca)&#x003E;라는 작품을 영화화한 제안서를 거절하면서 히치콕에게 영화 각색이 원작을 해석하기보다는 재생산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강력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각색에 대한 셀즈닉의 태도는 예술로서 영화보다 문학이 우세하다는 그의 생각을 보여주었고 그는 이런 방법으로만 관객의 마음을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셀즈닉의 전략은 영화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을 흥행시키는 데까지 성공하였다.</p>
<p>갓 태어나는 예술 형태인 영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방향을 낳았다는 바쟁의 주장을 여기서 알아보았다. 이러한 영화계의 내부적 조건 외에도 각 나라의 외부적 조건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유행시켰고 일례로 그리스, 플랑드르, 그리고 미국의 사례를 살펴봤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세계 영화 시장의 경쟁력을 얻기 위해 문학을 원작을 한 영화들이 번성한 플랑드르와 그리스의 경우를 알아봤고 순수한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의 경우를 검토하였다.</p>
</sec>
<sec id="sec003">
<title>3. 영화의 정책과 특성</title>
<sec id="sec003-1">
<title>3-1. 한국의 경우: 예술로서 영화의 발전</title>
<p>한국 영화계는 해방 후에 많은 변모를 경험했고 이때부터 1960 년대에 영화에 대한 많은 정책과 정치적 상황과 같은 외적 요인들은 1960년대 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본 글에서는 1960년대 한국 영화의 색깔을 전반적으로 형성하게끔 하는 내외적 요소를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다음으로 바쟁의 글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계 내부에서 일어난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을 설명하고 당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특성을 알아본 후, 해방 공간부터 시작하여 1960년대 영화 정책사<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와 여러 외적 상황들을 파악하려고 한다.</p>
<p>문학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에 대한 연구 대부분이 ‘문예영화’라는 틀 아래서 진행된다. 우선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 문예영화 개념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도록 한다. 한국에서 문예영화에 관한 연구는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다양한 방향으로 이 현상을 해석하는 데 많은 노력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문예영화라는 개념을 정하는 데 기여하였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받침대가 되었다.</p>
<p>사실 문예영화은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명칭이다. 이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영화를 일컫는 용어였다. 그러나 이후 다른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영화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해 주기 위해 신문에서 영화 홍보 글에서 ‘문예영화’라는 명칭을 붙이곤 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이 명칭은 1950년대로부터 내려온 상업적 영화에 맞설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였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문예영화는 영화를 묘사할 수 있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당시 영화의 성향을 결정하는 영화적 현상이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그리고 이는 연구자에 따라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한정되기도 하고 포괄적으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함께 예술성이 높은 영화가 포함되기도 하다.</p>
<p>한국에서 과연 문예영화를 별도의 장르로 여길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문예영화에 대한 논의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의문은 1960년대 이후에 문예영화의 열풍이 불었으나 이 후,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이르기까지 이 모습이 드물게 나타나는 이유 때문에 연구자들의 의견이 갈라진다. 결국 “이 말은 문예영화라는 용어가 한국영화사의 특정한 시기에 역사적 실정성을 갖고 쓰여 왔으며 어느 시점에서 그 용어가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문예영화는 한국영화사의 특정 시기에는 하나의 장르처럼 통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장르로서의 실체적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앞서 언급하였듯이 본 연구에서는 문예영화, 혹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장르로 여기지 않으며, 일시적 방향으로 본다. 그의 범위가 어디까지 포함시킬 수 있는지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예영화는 예술성이 강조되는 영화, 또는 본 연구의 대상인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모두 포함되는 개념인데 이 중에서 각색 영화, 혹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 한정시킨다면 ‘보이는 문학(Visual Literature)’이라는 하위 부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세부 목록은 다른 연구자들로 하여금 이미 정리되었다. 이에 덧붙여 &#x003C;<xref ref-type="table" rid="t002">부록 1</xref>&#x003E;에서 확인할 수 있다.</p>
<p>한국에서 영화와 문학의 관계는 1960년대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이 시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일찍 시작한 이 관계는 한국에서도 일찌감치 나운규 감독의 &#x003C;벙어리 삼룡&#x003E;(1929) 김영환 감독의 &#x003C;장화홍련전&#x003E;(1924), 이경손 감독의 &#x003C;개척자&#x003E;, 이구영 감독의 &#x003C;승방비곡&#x003E;(1930), 나운규 감독의 &#x003C;오몽녀&#x003E;(1937), 이명우 감독의 &#x003C;춘향전&#x003E;(1935), 안석영 감독의 &#x003C;심청전&#x003E; (1935) 등의 조선 구비문학과 근대 문학이 1920~30년대 영화화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50년대 초반까지 영화계뿐만 아니라 나라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침체되었다.</p>
<p>한국영화가 문학과의 교류가 활발치 못 하였던 1940년대, 1950년대 초반까지 영화 비평가들은 영화의 기술적 면이나 내용 측면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한국 영화의 양적 개선에 집중하였다. 당시 영화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에 대해서 남긴 글을 많이 볼 수 없지만, 이 중에서 경향 신문에 1949년에 실린 &#x003C;조선 영화와 문학&#x003E;<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이라는 제목 하에 발표된 연속 기사를 주목할 만하다. 이 글을 쓴 이태우는 미국영화 성장의 변모를 예로 들면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해서 문학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프랑스, 영국 유럽의 영향을 받아 ‘미국의 걸작은 거의 예의 없이’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면서, 한국 영화에 있어 문학의 필요성을 조명하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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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현재 조선영화와 조선 문학은 서로 냉정하다기 보다 너무나 무관심한 상태에 있지 않는가. 조선에서는 지금까지 소설의 걸작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화화되는 예는 극히 드물었다. 현대영화가 좋은 예술적 발전을 하기 위하여서는 ‘자본과 영화와 문학이 3위 1체적 통일’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선 영화예술의 발전상 자재와 제 영화과학기재의 기본적 요소인 자본이 필요한 것과 같이 조선 문학을 영화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조선과 같은 ‘씨나리오’ 빈곤의 영화계에 있어서는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동시에 급선무적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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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 글을 통해서 바쟁이 말하는 영화의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이 한국에서도 일찍 시작했고, 한국 영화인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던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해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적으로 아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이 문제를 넘어서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문학이 필요로 하다는 것이 이태우의 주장이었다. 1940년대 후반에 함세덕의 희곡 &#x003C;마음의 고향&#x003E;(1949) 영화화되면서, 문학과 영화의 관계가 새로이 성립하기 시작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 기대되었다. 하지만, 당시 조금씩 발전해 나아가는 한국 영화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3년간 침체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50년대 중반에 다시 그 흐름이 이어졌다.</p>
<p>1960년대 문예영화의 시대를 만든 것은 1950년대 중반의 영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향의 근본은 외화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당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외국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중에서 영국 영화 &#x003C;제3의 사나이&#x003E;가 있다. 이 작품은 작가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e)을 원작으로 하여 1949년 캐럴 리드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1954년 한국에서 개봉되었고 이와 동시 &#x003C;심야의 탈주&#x003E;, &#x003C;애상의 나그네&#x003E;, &#x003C;함렛&#x003E;, &#x003C;광연&#x003E; 등이 개봉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영화들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었다. 1954년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본 영화중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영화인들은 앞서 언급한 작품을 나열하였다. 참고로 화가 정규, 배우 이해랑, 평론가 백철, 작가 조경희, 여배우 최은희, 시인 오상순이 이 설문조사에 참여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p>
<p>195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개봉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세계 영화들은 한국 감독들의 시선을 한국의 정통 문화와 문학에 눈뜨게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외화 쿼터제가 생기고 나서 비평가들은 한국 영화의 내용을 발전시키자는 운동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한국 영화계에서는 양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기술적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빈곤한 내용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신문 기사의 제목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로에 슨 우리 영화’, ‘영화계의 새로운 시도, 제작 의식의 승화와 영화적 감각의 모멘트’, ‘문예작품의 영화화, 국산 영화의 예술성 높이라’, ‘국산 영화의 질을 높이자면, 시나리오 위치 재인식이 선결’등이 있다. 이러한 계기로 한국 영화계에서 바쟁의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p>
<p>영화 내용을 발전시키자는 의미에서 문학의 힘을 빌리기 시작한 영화인들은 영화 시장과 관객의 취향을 고려하여 영화화될 문학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처음에 현대 문학보다 로컬 컬러가 강한 고전 문학을 선호하였다. 앞서 언급된 설문조사에서는 또한 ‘어떤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대부분이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영화를 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경향은 1955년 개봉된 &#x003C;춘향전&#x003E;과 함께 시작되었다.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흐름과 특징을 알아보기에 앞서 다음에 당시 영화계에 영향을 행세한 몇 가지 중요한 국가 정책을 알아보도록 한다.</p>
<p>영화에 관한 정책 중에서는 제일 주목해야 할 만한 것은 바로 미군정 아래 영화 정책이다. 미군정의 정책은 제작보다 배급과 판매에 집중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미군정의 미국영화의 배급 및 판매에 집중된 정책은 당시 관객층의 취향을 형성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은 제작 편수에 비해 한국 시장에서 미국영화 점유율은 95%로 도달했고 미군정기 외화는 100편이 넘었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 물론 이 정책의 주요 원인은 미국정부의 문화정책의 일부분이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미국 문화를 확산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전략이었다. 이는 당시 남한에 자립적 영화 문화 설립에 도움을 주지 않고 미국정부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보증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p>
<p>미군정기 한국 영화의 여러 외부적 조건들을 종합해 보면 미군정 정책의 영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외화가 국내 영화시장에서 소통되지 못한 상품으로 만들었다. 한국 영화가 콘텐츠나 질적 면을 떠나서 한국 관객들로 하여금 외면을 당한 이유는 미군정이 주도한 정책으로 인해 적당한 가격으로 소개되는 미국 영화보다 한국 영화가 비용의 측면에서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영화를 선호하는 한국 관객들의 취향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서 경쟁력을 잃은 한국 영화와 3년간 미국 영화의 꾸준한 상영이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미국 대중문화와 영화, 그 중에서 오락 영화의 주요한 소비자로”<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만들고 국화보다 외화를 선호하는 관객층을 형상하였다.</p>
<p>한편, 1950년 영화 정책 중에서 영향이 1980년대까지 이어진 것은 외화수입에 관한 정책이다. 이 정책은 사실상 1949년에 최초로 실시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한 시기는 1947년 후반부터다. 이 시기부터 시작된 국산영화장려 정책에는 보상 제도와 함께 면세 조치도 포함되었다. 따라서 미군정기부터 점점 비싸지는 입장료가 국산영화 면세조치 덕에 가격 인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상황들은 국산영화가 미국영화와 경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였고 한국 영화 시장은 아직도 미국 영화가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 정책의 국산 영화 장려라는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1957년에 37편의 제작 편수가 1958년에 74편, 그리고 1959년에 111편으로 확연히 증가하였다. 대부분의 제작사는 국산영화장려 정책을 이용해 외화를 수입하려고 하였다. 제작하는 영화의 편수를 최대한 늘리고 대신 제작비를 아꼈다. 제작된 영화 편수의 증가에 잇따른 결과가 한국 영화의 질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p>
<p>196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영화계는 이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책의 효과와 더불어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변화했다. 1960년대의 주요 주점들은 영화법의 제정 및 1,2차 개정, 그리고 본격적으로 기업화정책에 포함되고 영화 보호 정책 중에서 영화수입쿼터제를 주목한다.</p>
<p>1960년대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강한 영향을 남긴 것은 정부에 의한 영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영화와 관련된 법률을 개정하기도 하였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정치적 검열보다 당시 영화들은 오히려 강력한 경제적 검열을 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수영화제도와 외화쿼터제와 기업화정책은 한국 영화의 콘텐츠와 질적 면을 결정하였다. 이 상황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여전히 외화에 솔깃하는 대중의 취향이었다.</p>
<p>요컨대 1960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약 10 년의 내외적 조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의 근원은 예술로서 영화의 발전부터 시작되었지만, 국가의 제도와 다양한 규정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90편정도 되는 이 영화들의 특징을 일일이 알아보기가 힘들다. 여기서 다음으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계 일반적 성향과 그 속에서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의 원작 선정 기준과 이의 흐름이다.</p>
<p>1955년 &#x003C;춘향전&#x003E;은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10만 관람객을 달성했으며 이 후 고전 문학, 혹은 역사 소설의 영화화의 열풍이 시작되었다. 2년간 이광수 원작의 &#x003C;꿈&#x003E;과 &#x003C;단종애사&#x003E;, &#x003C;마의 태자&#x003E;, 그리고 &#x003C;아리랑&#x003E;, &#x003C;황진이&#x003E;와 같은 전기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때 한국 영화가 사극에 집중하였던 원인은 해외 영화제에 참여하는 것이 많은 영화인들의 소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로컬 컬러가 강한 영화들이 해외 영화제에 출품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그리스, 그리고 다음에 알아볼 이집트의 경우에서도 찾을 수 있다.</p>
<p>이규환 감독의 &#x003C;춘향전&#x003E;(1955)의 대성공은 1958년 보상 특혜제도에 언급된 우수영화를 정의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경제적으로 한국 영화를 통해서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따라서 성공하는 국화의 경제적 기초를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규환의 &#x003C;춘향전&#x003E;은 한국 영화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과 함께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의 성공 가능성을 제작사에 알리게 된 계기라고 여길 수 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역사소설과 고전 문학은 외국 영화 시장과 함께 화려한 장면으로 관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 후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시도들이 이어졌고 &#x003C;자유부인&#x003E;(1956)과 &#x003C;사랑&#x003E;이 영화화 되었으며 이때부터 근현대문학을 계속해서 영화로 재생산하게 되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관객과 외국 영화제 모두를 잡으려고 하는 제작자들의 노력이 보인다. 따라서 이 당시 멜로드라마틱한 한국 로컬 컬러가 있는 작품들이 선정되었다. &#x003C;춘향전&#x003E;을 이어 10만의 관객 수에 도달하고 아시아영화제까지 출품한 이광수 원작의 &#x003C;흙&#x003E;(1960, 권영순 감독)을 예로 들 수 있다.</p>
<p>1960년대, 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전성기라고 불린 시대에 영화화될 작품의 선정은 베스트셀러에 달려 있었다는 것이 연구의 일반적 견해다. 이는 1960년대 여전한 인기를 거듭한 이광수 소설이 이 시기에 한하여 12번 영화화 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국내 작가는 아니지만,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일본 인기 작가 이시자카 요지로의 소설도 여러 차례로 영화화되었다. 그러나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영화계 내에 그 자체로 하나의 경향이었지만, 전체 영화계의 경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베스트셀러 외에도 영화화될 작품의 선정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이 중에서 시대별 관객의 취향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소통하는 영화의 장르에 따라 작품이 채택되었다. 1960년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0년대 &#x003C;춘향전&#x003E;(1950)의 성공으로 일련의 역사소설이 영화화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사극 영화는 이 현상의 제일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흥행성이 이미 성공적으로 실험된 소재를 선택하여 영화로 만드는 것은 어느 제작진의 당연한 심리다. 역사물은 한국 사회 내에 언제나 소통이 잘 되는 소재였다. ‘영웅 중심의 역사서술, 상투적 인물 구성, 멜로드라마적 서사 전개, 역사의 서사화’<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 등의 통속적 한국의 역사물 특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1950년대 후반의 역사 소재가 유행하던 시기에서 1960년대 초반 멜로드라마로 넘어가면서 전환기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역사와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함께 섞은 영화가 등장하게 된다. 사실 “1950년대의 역사 영화는 전반적으로 원작에 충실하려는 경향을 드러내면서도 원작이 내장한 멜로드라마적 특성은 약화시키고 있는 측면을 보여준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이 중에서 이광수 원작의 &#x003C;마의태자&#x003E;(1956),<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x003C;단종애사&#x003E;(1956)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반면에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역사소설에서 통속성으로 비판받던 요소들(멜로드라마적 요소)이 적극적으로 수용되며 대중의 기대지평에 부합해 갔다.”<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 박종화의 『금삼의 피』를 원작으로 한 &#x003C;연산군&#x003E;(1961), &#x003C;폭군 연산&#x003E;(1962) 등의 그 사례이다. 멜로드라마적 역사물은 1960년대 초반 약 3년간 큰 인기를 얻었으며 약 20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중에서 무려 9편이 역사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었다. 그 후 이는 흥행성 부진과 제작비의 증대로 인해 점점 사라지고 그의 열풍은 검객 영화의 유행과 함께1960년대 후반에 잠시나마 재개된다.</p>
<p>역사물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장편소설의 붐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에 이광수 원작의 &#x003C;무정&#x003E;(1962), 박경리 원작의 &#x003C;김약국의 딸들&#x003E;(1963), &#x003C;내 마음은 호수&#x003E;(1964) 등이 제작되었다. 당시 영화계 경향에 대해 서술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체적으로 작품의 경향은 작년 상반기의 시대사극 ‘붐’으로부터 차차 탈피, 현대극으로 그 소재가 바뀌어지는 한편 한때 판을 치던 ‘라디오’ 연속 방송극의 무조건 영화화도 열이 좀 식은 듯하고 새해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창작 작품, 특히 장편 소설의 영화화가 성행되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 이 기사에 따르면 사극의 붐은 한물 지나고 현대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의 영화화 시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소설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이는 번역 소설, 방송극 등을 원작으로 하고 있었다. 이는 역시 흥행성 보증 때문에 제작되었다. 김영수 연속극 원작의 &#x003C;박서방&#x003E;(1960), 임희재의 연속 방송극 &#x003C;산아제한&#x003E;(원작 제목은 &#x003C;산아 금지&#x003E;), 송태주 원작의 HLKY 방송극 &#x003C;애수에 젖은 태양&#x003E;(1960) 등이 이를 예로 들 수 있다.</p>
<p>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현대극 중에서도 단편이 아닌 장편의 채택 문제이다. 1961년 주요섭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x003C;사랑방손님과 어머니&#x003E;는 매표에서 큰 성과를 얻었지만, 이는 &#x003C;춘향전&#x003E;(1955)에 이어서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새로운 경향의 출발점이 되지 못 하였다. 이에 비해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멜로드라마 장편 소설이 영화화되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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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흥행적으로 불안했던 &#x003C;사랑방손님과 어머니&#x003E;가 의외로 성공하자 &#x003C;메밀꽃 필 무렵&#x003E;(이효석 작), &#x003C;후조&#x003E;(오영수 작), &#x003C;불꽃&#x003E;(선우휘 작), &#x003C;나무 비탈에 서다&#x003E;(황순원 작), &#x003C;카인의 후예&#x003E;(황순원 작), &#x003C;젊은 느티나무&#x003E;(강신재 작), &#x003C;모반&#x003E;(오상원 작) 등을 영화화한다는 이야기가 돌더니 어느새 좌절되고 말았다.</p>
<p>　　그 이유는 아직 한국에선 흥행적으로 위험하다는 천만번 되풀이한 소리지만 실은 얘기가 적으면 그만큼 각색과 연출이 보강되어야 하는데 대한 자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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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인용된 기사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x003C;사랑방손님과 어머니&#x003E; 후에 일련의 단편 소설들이 영화화될 예정이었으나, 실제 제작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는 단편들 대부분이 1960년대 후반에 영화화되었다. 이 원인은 단편과 장편의 차이가 아니라 두 시기에 달라진 관객의 취향이다. 1962년~65년까지 제작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대부분이 멜로드라마 장편 소설이면서도 베스트셀러로 등록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박경리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을 유행시킨 원인으로 짐작된다. 박경리는 6편으로, 1960년대 영화화된 원작을 이광수와 황순원 뒤에 이어 제일 많이 소유하는 작가이다. 권영순 감독의 &#x003C;표류도&#x003E;(1960)는 박경리의 소설이 영화화된 첫 번째 사례이다. 당시 영화에 관한 홍보 기사에서 박경리는 ‘제3회 내성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소개되었다. &#x003C;표류도&#x003E;(1960)는 큰 성과를 얻지 못 하고 원작의 스토리텔링 밖에 되지 못 하다는 혹평을 받았으며, 이후 영화화된 박경리의 소설이 없었다. 하지만 1962년 『김약국의 딸들』의 성공은 제작진들이 박경리 소설에 재도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x003C;내 마음은 호수&#x003E;(1964)가 개봉되고 &#x003C;노을 진 들녘&#x003E;(1965), &#x003C;가을에 온 여인&#x003E;(1965)이 발표되었다. &#x003C;표류도&#x003E;와 &#x003C;김약국의 딸들&#x003E;에서 원작 작가로서 박경리의 효과가 있는 반면에 나머지 3 편에 관한 기사를 살펴보면, 영화 홍보 기사 수는 전자 두 편에 비해서 훨씬 적으며, 박경리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을 경우도 있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p>
<p>1960년대 후반 들어오면서부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또 다른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멜로드라마적 색채가 약간 약화되면서 휴머니즘 영화가 유행하고 이 때문에 단편 소설의 영화화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 &#x003C;까치 소리&#x003E;(1967), &#x003C;감자&#x003E;(1968), &#x003C;분녀&#x003E;(1968), &#x003C;독짓는 늙은이&#x003E;(1969), &#x003C;봄 봄&#x003E;(1969) 등을 예로 들 수 있다.</p>
<p>단편 소설의 영화화는 이 시기의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50년대 중반, 문예 영화의 시작 알림과 함께 재생산되었다. 나도향의 &#x003C;물레방아&#x003E;(1955)는 다른 근현대소설보다 일찌감치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도향의 경우에는 영화 제작 발표 이전에는 주로 1960년대 발표한 그의 소설들이 재조명되었다. 영화가 1955년 제작하기 1년 전, 나도향의 작품들이 『사상계』 11월호와 『현대문학전집』 제3권(창인사판)에 수록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소설이 재조명되었기 때문에 영화화될 대상으로 결정 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와 달리 1960년대 후반의 단편 소설들의 영화화는 영화계의 영향을 더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황순원 작가의 작품들이 영화화되는 사례가 많다. 1960년대에 한하여 황순원의 작품이 9 차례로 영화화되었으며, 그는 이광수(12편) 다음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원작을 제일 많이 소유한 작가이다. 그의 단편 소설인 ｢과부｣(1952)는 1960년대 초반 영화화되었다. 사극물이 유행하던 이 시기에는 많은 제작자들이 영화의 수출에 대한 요망 때문에 ‘한국적’ 색채가 강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에 &#x003C;과부&#x003E;(1960), &#x003C;열녀문&#x003E;(1962)이 속한다. 그리고 그의 단편들 대부분이 1960년대 후반에 영화화되었다. &#x003C;소금장수&#x003E; <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1966), &#x003C;잃어버린 사람들&#x003E;(1967), &#x003C;일원&#x003E;(1967), &#x003C;나무들 비탈에 서다&#x003E;(1968), &#x003C;카인의 후예&#x003E;(1968), &#x003C;독 짓는 늙은이&#x003E;(1969)가 그것이다. 반공 영화가 몇 편이 있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영화의 원작들은 휴머니즘 단편 소설들이다. 당시 영화로 만들어 황순원의 작품들 대부분이 ‘현실과 유리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며, ‘정치적 상황에서 거리를 확보함으로써’<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문예물에 대한 요구가 있는 시기에 영화로 재생산되는 데 아주 적합하였다.</p>
<p>1960년대 영화의 원작은 단편 소설에만 제한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당시 ‘리바이벌’영화가 등장하였고 사극 영화의 열풍이 재개되었다. ‘리바이벌’ 영화들은 1967년에 &#x003C;청춘극장&#x003E;, &#x003C;흙&#x003E;, &#x003C;꿈&#x003E; 등 흥행에 큰 성공을 보여준 영화들을 다시 제작하는 것이다. 당시 한 기사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p>
<p>　</p>
<p>　　&#x003C;청춘극장&#x003E;, &#x003C;흙&#x003E;, &#x003C;춘희&#x003E; 등의 괄목할 만한 흥행 성공은 침체해 있는 우리 영화계를 자극, 현재 제작계에서는 광범위하게 ‘리바이벌 붐’을 형성하고 있다. &#x003C;중략&#x003E; ‘라이벌’은 자기의 작품에 대한 불만을 다시 새롭게 보완, 충족시키려는 의욕적 동기가 이를 자극하는 수가 있는데 신상옥 감독의 &#x003C;꿈&#x003E;을 10여 년 만에 다시 연출한 것을 제외하고 현재 진행 중인 영화에서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p>
<p>　　현재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리바이벌’은 작품적 동기보다는 흥행적 동기가 앞서 있는 것이 전부이며, 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그동안 우리 제작계에는 구미를 돋울 만한 작품 경향이 없었다는 것을 예증하는 좋은 본보기일 수도 있다.<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p>
<p>　</p>
<p>여기서 알 수 있듯이 ‘리바이벌’ 영화들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한한 경향이 아니었으나 이에 따라 몇몇의 문학 작품들이 재생산되었다. 이는 흥행성이 이미 실험된 영화들이 10년 지나간 뒤 다시 관객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제작자들의 소망에 의해 시작되었다. 물론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신상옥과 같은 감독의 예술적 욕심 때문인 경우도 있다.</p>
<p>이 시기의 마지막 경향은 사극 영화의 재개이다. 1960년대에는 무협 소설이 전성기에 도달하면서 영화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60년대 후반에 ‘홍콩의 &#x003C;방랑의 결투&#x003E;(1966년 홍콩에서, 1967년 한국에서 개봉)가 흥행에 성공하자 검술 영화 붐이 갑자기 일기 시작하여, &#x003C;수라문의 혈투&#x003E;, &#x003C;풍운의 검객&#x003E;, &#x003C;일지매 시리즈&#x003E;, &#x003C;암행어사&#x003E; 등이’<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 제작되었다. 검객 영화들은 문예 영화와 밀접한 관계는 없지만, 그의 붐으로 196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사극 영화가 재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역사 소설을 바탕으로 한 사극 영화들은 액션으로 가득 찬 신으로 재등장한다. 이는 박종화의 원작들의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멜로드라마 요소들이 약화되는 시기에 박종화의 소설들이 많은 관심을 받지 못 하였다. 그러나 &#x003C;연산군&#x003E;(1961), &#x003C;폭군 연산&#x003E;(1962)의 성공으로 그의 원작들이 계속해서 재생산되었고 원래 원작들이 가지고 있었던 멜로드라마적 색채가 더욱더 부각되었다. 이와 달리 1960년대 후반에 개봉된 &#x003C;다정불심&#x003E;(1967), &#x003C;풍운 삼국지&#x003E;(1968)는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함께 활극 장르에 속한다. 이로 인해 박종화는 1960년대 박경리와 함께 세 번째로 영화화된 작품을 많이 소유한 작가가 된다.</p>
<p>여기서 마지막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이광수의 작품들이 영화화된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이광수는 1960년대 영화화된 원작을 가장 많이 소유한 작가이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 그의 소설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그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다시 말해 그의 문학적 위상과 베스트셀러 작품이 많은 것이 그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1960년대 이광수의 소설 10편이 12번 영화화되었는데, 이 중에서 역사소설이 제일 많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반에 로컬 컬러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인기가 많았는데 이광수는 이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 하였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 이광수의 소설 7편이 영화화되었다. 『재생』, 『흙』, 『원효대사』, 『이차돈』, 『사랑의 동명왕』, 『무정』, 『단종애사』 가 그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7 편중에서 5편이 역사소설이다. 1960년대 후반에 갈수록 사극 영화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지면서 이광수의 소설도 마찬가지로 제작자의 관심 밖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멜로드라마적 특성을 가진 『유정』, 『흙』, 『사랑』, 『재생』이 영화화되었고 『꿈』은 역사적 배경보다 멜로드라마틱한 색채 때문에 영화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광수는 ‘1960년대에 1910년대 후반만큼이나 대단한 인기와 평판을’<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 누렸다. 당시 대중 소설뿐만 아니라, 이념적 소설까지 유행하였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기념하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당시 이광수의 인기의 원인을 박유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근대 작가 이외에 춘원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두 요소는 ‘친일파’와 ‘납북자’라는 것이다. 두 요소는 시기에 따라 그 세력을 달리하며 이광수에 대한 평가를 좌우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납북자’의 이미지가 강조되며 식민지 말기의 친일 행적은 담론의 후경으로 밀려나는 시기였다.”<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p>
<p>여기까지 1960년대 약 10년간 한국 영화계의 흥행 흐름을 살펴보았고 이에 따라 달라진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변모를 알아 봤다. 이와 함께 시기별 감독들이 선호하는 원작 작가도 살폈다.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원작 작가를 중심으로 분석하였기 때문에 특정한 유형이나 특징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다음에 살펴 볼 이집트의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영화화될 대상의 선정 기준은 원작과 그의 작가의 인기가 큰 원인인 만큼 당시 관객의 취향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p>
</sec>
<sec id="sec003-2">
<title>3-2. 이집트의 경우: 국민의 교양을 위한 도구</title>
<p>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집트 영화의 역사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들이 일찍 상영된 1985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실제 본격적인 영화 창작 활동은 1906년부터라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 이집트 영화 비평가이자 영화사가(Film historian)인 사미르 파리드는 이집트의 영화 역사가 1960년대 이르기까지 총 여덟 단계를 거쳐 변화해 왔다고 말한다. 짧은 무성 영화로부터 시작하여, 상업적 컬러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변모를 설명할 수 있다. 여덟 번째 단계는 1963년부터 1971년까지를 가리키는데 이 시기 영화는 국유화 산업 때문에 사립 영화 제작사에서 공공 부문 제작사로 이동되어 이집트 영화의 대부분<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이 국가에 의해 제작되어 전의 단계들과 많은 차별성을 보인다.</p>
<p>공공 부문 제작사의 영화 창작 전략은 많은 작품들을 생산하였고 어느 정도 전 시대의 영화보다 기술적 면에서는 질이 좋은 영화들을 탄생시킨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 영화들의 예술적 가치에 대하여 항상 의문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 이유는 국가가 택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들은 감독의 사상이나 개인적 세계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현실과 단절된 내용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996년 카이로 영화제에 발행된 이집트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100편의 영화 목록에서 무려 24편이 공공 부문 시기(1963년~1971년)에 제작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 이 중에서 23편의 영화가 문학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당대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부의 연구들은 공공 부문의 영화의 성공 여부, 혹은 당시 영화의 통계학적 분석에 머물거나 또 다른 연구들은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들은 문학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양상에 관하여 의문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이지, 이를 자세히 다루지 않고 직접적 원인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논의할 것은 1960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근원과 특성이다. 그 후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1960년대 이집트 영화의 경향에 가장 영향력을 행세한 국가 정책과 여러 가지 상황을 알아보도록 한다.</p>
<p>문학을 원작으로 한 이집트 영화가 앞서 언급한 미국과 유럽 영화의 영향을 어떻게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1930~40년대 이집트 영화의 목록 <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을 살펴보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대부분이 외국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원작과 원작 저자의 이름까지 밝히거나 ‘각색된 작품’이라는 문구만 남긴 영화가 7 편이 된다. 하지만, 당시 각색을 하여도 아예 말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외국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을 예상된다. 당시 이집트 영화인들은 에밀 졸라와 빅토르 위고, 알퐁스 카의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였다. 특히 에밀 졸라의 1868년의 『마들렌 페라(Madeleine Férat)』가 1946~47년에 세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반면에 같은 시기에 이집트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3편 밖에 되지 않는다. 일례로 1930년에 제작된 &#x003C;زينب(지납)&#x003E;이 있다. 이 영화는 이집트 문학의 최초 근대 소설이라고 여겨진 1913년 모함드 히센 히켈(محمد حسين هيكل)이 발표한 『지납(زينب)』을 각색 한 것이다. 작품의 문학적 위상이 영화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 매년 점점 많아지면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 이 시기에 문학 작품이 스크린으로 옮겨간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p>
<p>1956년에 발표된 &#x003C;시네마 심리학적(PSYCHOLOGICAL) 발전(النمو النفسي للسينما)&#x003E;<xref ref-type="fn" rid="fb038"><sup>38)</sup></xref>이라는 기사의 내용이 흥미롭다. 기사는 시네마의 발전 단계들을 사진기부터 시작하여 완성된 스토리를 전달하는 하나의 작품이 이루어지기까지 서술한다. 그리고 ‘기술적’ 발전이 더 이상 어려워지는 시점에서 소설의 힘을 빌리기 시작한 시네마의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바쟁의 글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는 이 기사는 바쟁 글의 번안일 수 있을 정도 영화계의 발전을 똑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 &#x003C;이집트 시네마의 위기(أزمة السينما المصرية)&#x003E; <xref ref-type="fn" rid="fb039"><sup>39)</sup></xref>라는 기사가 당시 관객과 영화의 단절 문제를 다루었다. 이 위기는 관객들이 영화가 제공해 주는 내용으로 더 이상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기자는 주장한다. 문학의 힘을 빌리는 것이 꼭 이 위기의 해결 방안이라고 제안하지 않았지만, ‘영화가 필요한 것이 ‘지식인’들의 도움’이라고 지적한다. 영화가 책만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개라는 것이 지식인들이 알아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며, 이 매개를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는 ‘시네마의 위기’를 곧 ‘사상의 위기’이라고 말한다.</p>
<p>위의 두 기사 외에도 1950, 60년대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관한 수많은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실렸다. 이 중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외국 영화를 주목하는 글,<xref ref-type="fn" rid="fb040"><sup>40)</sup></xref> 이집트 영화의 현황에 관한 글,<xref ref-type="fn" rid="fb041"><sup>41)</sup></xref> 뿐만 아니라 유명한 작가가 영화에 대해서 쓴 글<xref ref-type="fn" rid="fb042"><sup>42)</sup></xref>도 있었다. 이는 당시 이집트에서 영화가 국유화되기 전에도 이미 두 예술 형태의 혼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p>
<p>1960년대 이집트에는 영화와 문학의 관계가 더욱더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다른 요인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당시 많은 작가들이 영화계와 제작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여러 요인 중에 하나다. 나집 마프즈가 (نجيب محفوظ)가 이집트 영화 재단의 회장 자리를 맡았고 같은 곳에서 유명한 작가인 압둘라하만 아샬카외(عبد الرحمن الشرقاوي)도 일하였다. 유명한 두 작가 외에도 사드 알딘 와하바(سعد الدين وهبه)가 정부 제작 회사의 회장 자리를 맡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집트의 수많은, 우수한 시나리오 작가들은 문학 작가 출신이었다. 단편 소설 작가 출신이었던 워히드 하메드(وحيد حامد),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모스타파 제크리(مصطفى زكري) 등을 그 일례로 들 수 있다.</p>
<p>다음으로 1960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국가의 개입으로 번성하게 된 원인을 알아보도록 한다. 1960년대 이집트 영화는 1950년대 정치적 상황의 영향을 받고 1950년대 중반에 제정된 법률을 따랐다. 1952년에 이집트 혁명이 일어나고 자유로운 장교들<xref ref-type="fn" rid="fb043"><sup>43)</sup></xref>이 나라의 세력을 붙잡았다. 자유로운 장교들은 정확한 목적이 있었으나, 이를 도달하기 위한 분명한 이데올로기가 없었다. 자유로운 장교들은 다양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세력을 잡은 후에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1950년대는 이집트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나세르 대통령은 그때 중립을 표방했지만, 이런 전략이 경제적으로 효과를 보이지 않자 이후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국가의 모든 주요 산업과 기관들이 국유화되었다. 국유화 움직임이 1956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영화 국유화는 다른 기관들보다 비교적으로 늦은 시기인 1963년에 이루어졌다.</p>
<p>1950년대 혁명이 일어난 다음에 영화인들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혁명에 대한 영화를 만들자는 의지를 보여준다. 혁명 후 이집트 최초 대통령인 모함드 나집(محمد نجيب)이 한 연설에서 ‘예술, 특히 영화의 영향과 새로이 열린 시대의 임무’에 대해서 언급하자 영화인들과 몇몇 장교가 영화 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의 모든 인원들은 혁명의 업적을 기록하고 새로운 시대에 관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이에 대한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거론하였다. 그 결과로 몇 년 동안 혁명에 대한 영화들 <xref ref-type="fn" rid="fb044"><sup>44)</sup></xref>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경향은 얼마 안 되어서 영화계를 좌우하는 매표소와 관객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1950년대 후반 상업영화 제작이 잠깐 활발해진다.</p>
<p>상업영화에서 벗어나 각색 영화가 지배적 경향의 자리를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국유화가 실시된 후이다. 입라힘 알-아리스(إبراهيم العريس)<xref ref-type="fn" rid="fb045"><sup>45)</sup></xref>는 당시 발표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많은 격려를 받아 계몽 운동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신을 자극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하였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연구자가 가리키는 격려 담당자는 문화부를 뜻한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공공 부문으로 전환된 영화산업이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겪게 된다.<xref ref-type="fn" rid="fb046"><sup>46)</sup></xref> 영화 제작에 소비된 비용이 결국 매표소에서 보상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유화 초기 영화의 전략으로 쓰인 ‘양’의 정책에서 ‘질’의 정책으로 이동되어 일 년에 제작된 영화 수가 40~50 편에서 30~35편으로 약 10편정도 줄어들었다.</p>
<p>당시 문화부 장관인 싸르왓 오카샤(ثروت عكاشة)가 공공 부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으로 최대한 제작 편수를 줄이고 ‘서사영화’ 제작에만 제한시켰다. 질적으로 좋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그의 전략은 최고 수준의 문학 작가의 작품을 골라 능력 있는 감독에게 맡기고 최고의 남녀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47"><sup>47)</sup></xref> 때문에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편수가 확 늘어났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실시된 이 정책은 당시 국가가 영화 산업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보여준다. 제작 편수를 줄이는 것과 함께 질적으로 ‘좋은’ 영화를 제작하자는 이 정책에는 ‘좋은’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빠졌다. 세부적 전략, 특히 시장 조사나 관객 취향을 고려하는 것 등이 없었고 무작정 소설만 영화화되었다.</p>
<p>1950, 60년대 이집트 영화의 환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52년 혁명 후 몇 년간 정부는 영화에 대한 소극적 관심을 보인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이집트 정부의 무관심은 당시 영화와 극장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영화의 대중성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집트의 극장 수가 공식적 통계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1979년에 발표된 ‘문화와 예술의 보고서’<xref ref-type="fn" rid="fb048"><sup>48)</sup></xref>에서 1966년 이집트 극장이 255 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극장의 수를 떠나서 여기서 문제는 지방과 도시의 극장 배부이다. 이집트 영화 비평가인 마함모드 압둘 샤쿠르(محمود عبد الشكور)<xref ref-type="fn" rid="fb049"><sup>49)</sup></xref>가 쓴 사회전기에서 영화와 처음으로 접근하게 된 그의 경험을 서술한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영화를 처음으로 카이로에 있는 극장에서 보고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1972년 되어서야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도 일반 극장이 아닌 이동식 ‘영화 캐러밴’에서 본 것이다. ‘이동식 영화 캐러밴’은 극장이 없는 지방에서 여름마다 열리게 되는데 이는 극장을 설립하는 것을 대체했다. 그리고 끝으로 그는 자신 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이집트의 지방 극장의 실제 현황이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지방의 극장 현황과 함께 영화가 종교와 도덕과 어긋나는 것이라는 영화 주요 소비자인 중간층의 전반적 인식 때문에 영화가 대중성을 보유하는 데 핵심적 고비가 되었다. 따라서 1950년대 정부는 영화보다 국민에게 더 가까운 라디오와 노래를 통해서 선전의 효과를 누렸고 영화를 대중적 매체로 여기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p>
<p>다음으로 당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특성을 논의하도록 한다. 1960년대에 각색된 영화들의 원작들은 타워피크 알하킴(توفيق الحكيم) 작품을 제외하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으며, 대부분은 1950, 60년대의 작품들이다. 총 61 편의 원작 작가가 23명이다. 당시 영화화된 원작을 가장 많이 소유한 작가는 총 12 작품으로 이해산 압둘 꾸두쓰(احسان عبد القدوس)이다. 그 뒤 마푸즈는 11편, 알하킴은 총 6편, 요셉 이드리스 (يوسف إدريس)는 5편, 요셉 알세파이 (يوسف السباعي)는 총 4편이 있다. 나머지 원작 작가들은 1,2 편으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p>
<p>당시 검열 제도가 강력한 권력을 행세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대부분 영화가 검열과 문제가 생긴다면 도덕성과 관련된 이유 때문에 일어났다. 하지만 영화화될 작품의 선정 기준에 있어 제작자의 자아 검열이 작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작품의 흥행성도 고려되는 것이 물론이다. 작품 선정 기준을 잘 드러나는 것은 당시 영화화된 작품을 많이 소유하는 작가의 특성을 통해서 알아볼 것이다.</p>
<p>1960년대 영화화된 원작이 제일 많은 작가인 이해산(1919-1990)의 작품들은 1960년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집트 영화와 방송계에서 압도적으로 재생산되었다. 단편과 장편, 수필을 포함한 약 600 작 중에서 무려 70 편이 영화, 방송, 라디오 소설 등의 새로운 매체로 옮겼다. 1940년대 후반에 문예 활동을 시작한 후 그의 작품이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영화화되었다. 1950년대 이해산의 작품은 총 5편만 영화화되는 반면, 1960년대 무려 12 편이 영화화되었다.</p>
<p>이해산은 항상 권력과 좋은 사이를 유지한 것이 아니다. 1952년 군사 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군인들을 지속적으로 비판하여 민간에게 권력 이양을 요구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1950년대 영창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이해산의 작품들이 대폭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1950년대 후반 나세르가 사회주의를 선언하면서 사회주의자로 의심받은 문인들이나 지식인들은 전에 겪은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로 낙인이 찍힌 이해산은 작가로서 그의 명예를 되찾게 되었다.</p>
<p>이해산의 권력과 복잡한 관계에 불구하고 많은 감독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작품의 멜로드라마적 요소 때문이다. 사회 문제, 특히 중간층의 문제를 다루는 그는 여성의 심리와 사회도덕과의 갈등을 보여 주면서 젠더 문제를 자주 다루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상품성이 높은데다가 대중적이다. 이해산은 자기작품에 대해서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하지만 자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69년 발표된 &#x003C;أبي فوق الشجرة(나무 위 선 아버지)&#x003E;가 대성공한 후, 이해산은 성공의 원인을 스토리와 그에 담겨 있는 사회적 의미들이 아닌 영화에 가득 찬 키스 장면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영화에 대한 불만을 들어 놓았다.</p>
<p>이해산의 작품은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40년간 지속적으로 영화화되었다. 영화화된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각 시대의 영화 경향, 특징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영화화된 이해산의 6편의 작품들<xref ref-type="fn" rid="fb050"><sup>50)</sup></xref> 대부분이 가족과 여성의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특히 사회로부터 받은 억압과 제약을 벗어나려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이와 반면에 1960년대 스크린에 올라온 이해산의 12편의 작품들<xref ref-type="fn" rid="fb051"><sup>51)</sup></xref>은 대부분이 여성의 심리를 묘사하는 멜로드라마, 중간층의 문제를 다루는 가족 드라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민지를 바탕으로 한 투쟁 영화의 다양한 장르에 속한다. 1960년대 이해산의 멜로드라마는 결혼과 배신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여성의 자유보다 도덕적 측면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 검열을 고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례로 1960년 발표된 &#x003C;البنات والصيف(여자와 여름)&#x003E;에서는 주인공 ‘와피아’가 남편을 배신한 벌로 자살한 것으로 원작과 다른 결말을 보여 준다. 원작에서 이해산은 남편의 친구의 유혹에 빠지는 여주인공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좋아하지 않은 남편과 살면서 그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다. 이는 1960년대 이해산 작품이 사회도덕에 어울리지 못 해 검열당한 사례를 보여 준다.</p>
<p>이해산의 다음으로 영화화된 작품이 제일 많은 작가는 마푸즈이다. 이해산과 반대로 마푸즈의 작품은 중간층이 아닌 하층을 다루었고 로맨스물보다 리얼리즘과 사회 비판의 색체가 강했다. 1960년대 마푸즈의 작품들이 영화화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마푸즈는 각본가로 이름을 알린 뒤, 그의 소설이 영화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1947년 살라흐 아부 세이프 (صلاح أبو سيف) 감독의 추천하여 첫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계 각본가로 데뷔하였다. 1947년 &#x003C;المنتقم(복수하는 자)&#x003E;, 1948년 &#x003C;مغامرات عنتر وعبلة(안타르와 압라의 탈험)&#x003E; 후에 그는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썼지만, 1960년대까지 마푸즈의 소설이 스크린에 올라온 작품이 없었다. 이에 대해서 마푸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기한 것은 내가 그렇게 많은 시나리오를 썼는데 내 소설들을 영화화할 제작자가 없었다. 누군가 소설이 어려워서 안 된다고 했는데 라디오 드라마로 『بداية ونهاية(시작과 끝)』이 아흐마드 압바스(أحمد عباس)에 의해 제작 되고 나서 때 영화계 사람들이 내 소설을 처음으로 찾아보고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소설은 그들 앞에서 항상 있었는데 말이다.”<xref ref-type="fn" rid="fb052"><sup>52)</sup></xref></p>
<p>1960년대 마푸즈의 작품들이 영화화된 원인 중에서 또 다른 하나는 그가 1952년 집필을 마친 『الثلاثية(카이로 3부작 )』이다. 1950년대 출간되기 시작한 이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카이로 3부작』은 3 세대 간의 갈등을 그린 것인데 세대 간의 갈등을 소재로 삼은 이집트 소설이 몇 편이 되지 않은 시기에 마푸즈 작품의 섬세함 덕에 크게 성공하였고 이집트에서 마푸즈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가장 핵심적 계기가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53"><sup>53)</sup></xref></p>
<p>1960년대 많은 작가들은 정부의 억압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푸즈는 이와 달리 상당한 자유를 누렸다. 마푸즈와 권력의 직접적 관계가 없었는데 1960년대 체제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담긴 그의 작품인 『ثرثرة فوق النيل(나일 강변 한담)』과 『ميرامار(미라마르)』 등이 같은 시대에 발표되고 영화화되었다. 이를 통해서 1960년대 군사 정부가 문인, 혹은 지식인에 대한 양면적 태도를 취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들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과, 정치적 경향이나 당파에 속한 작가들을 억압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1960년대 군사정부는 당파를 1953년 모두 폐쇄하였고, 국가의 유일한 당파는 정부가 개설한 아랍 사회주의 연합이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54"><sup>54)</sup></xref> 따라서 국가는 다른 당파에 속하거나 속한 경력이 있는 지식인을 억압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 정책에 의해 나세르 시대의 많은 작가들의 문예 활동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당파를 멀리 한 문인들은 정부가 허락한 자유를 누렸고 이는 마푸즈와 다음에 살펴볼 알-하킴의 경우였다.</p>
<p>　</p>
<p>　　나는 7월의 혁명을 반대한 적 없고 이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적도 없다. 혁명을 반대하는 소설들이 많은데 말이다. 나는 혁명을 해칠 수 있는 단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미라마르』에서 사회주의 연합의 기회주의를 지적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 글에서 농토 개혁이나 농민이나 노동의 이익을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나 반대하는 한 마디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군사정부가 나를 해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스스로 느끼는 결백이 용기를 주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비밀 단체에 속한 것도 아니고 어느 나라의 대사관과 연락하는 일도 없었다.<xref ref-type="fn" rid="fb055"><sup>55)</sup></xref></p>
<p>　</p>
<p>앞에 인용된 글에서는 마푸즈가 당시 군사정부 탄압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직접 밝힌다. 마푸즈는 군사 정부가 혁명 그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과 정치적 성향이 있는 단체에 속한 사람을 억제하였는데 자신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 &#x003C;시작과 끝&#x003E;(1960)이 성공하고 작가로서 안정적 문예 활동을 한 마푸즈의 작품에 감독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이 덕에 마푸즈의 작품들은 10년 간 11작이 영화화된 성과를 거두었다.</p>
<p>앞서 언급한 원인 외에도 마푸즈는 소설 집필을 마치면 자신과 그의 작품의 관계가 끊어진다고 생각하여 제작 과정에서 개입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작품을 자유롭게 해석할 자유가 자연스럽게 부여되었다.</p>
<p>마푸즈와 비슷하게 알-하킴은 군사 정부시기에 안정적 문예 활동을 하였다. 알-하킴은 1920년대 문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식민지 시대이자 왕국 시대 때 『يوميات نائب في الأرياف(검사의 시골 일기)』와 『عودة الروح(영혼의 귀환)』을 통해 체제에 대한 솔직한 비판을 털어 놓았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이미 큰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그의 작품 덕분에 나세르가 알-하킴을 좋아했다. 그는 나세르 시대에 정보기관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그린 『بنك القلق(걱정 은행)』을 1966년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마푸즈와 마찬가지로 그는 정치적 성향이 없었기 때문에 권력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p>
<p>나세르의 선언을 쓴 언론인 모함드 하사닌 헤칼(محمد حسنين هيكل)이 한 인터뷰에서 “나세르가 알-하킴에 대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그가 혁명 이전에 아무런 정치적 경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타워피크(알-하킴)가 정치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그 어느 한 당파의 편을 들지 않아 그는 정치적으로 백지와 같았다”고 알-하킴과 정치의 무관함을 강조한다.<xref ref-type="fn" rid="fb056"><sup>56)</sup></xref> 덧붙여 헤칼은 나세르가 알-하킴이 쓴 작품도 직접 읽었다고 증언했다.<xref ref-type="fn" rid="fb057"><sup>57)</sup></xref></p>
<p>작가로서 알-하킴은 여러 단계(phase)가 있다. 한때 그는 상징주의 연극을 발표하였지만 이 때 쓴 작품들이 지나친 상징으로 인해 무대로 올라가지 못 하였다. 반면에 그가 쓴 리얼리즘과 위트가 함께 섞인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중에서 1960년대 영화로 제작된 것은 &#x003C;الرباط المقدس(신성한 끈)&#x003E;, &#x003C;ليلة الزفاف(결혼 첫날밤)&#x003E;이 결혼과 사회 풍습을 다루어져 로맨틱코미디 영화들이다. 그리고 &#x003C;الأيدي الناعمة(부드러운 손들)&#x003E;, &#x003C;الخروج من الجنة(천국을 떠나다)&#x003E;는 인생의 부조리와 의미가 있는 삶에 대한 요구가 그의 소재였고 &#x003C;طريد الفردوس(천국에서 쫓긴자)&#x003E;는 사회적 풍습으로 길들어진 샤머니즘을 비판하고 선과 악을 다룬다. 이 5 작품의 특징은 인간의 정서를 묘사하고 특정한 시기나 사회를 지정하는 것보다 세계를 휴머니즘적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알-하킴 작품에서 위트가 강해서 코미디 영화로 제작하기에 적합하였다.</p>
<p>마지막으로 이드리스와 알세파이는 각각 5, 4 작품을 소유한다. 이드리스는 정신과 의사 출신이어서 작품에서 인간의 깊은 감정을 논의하면서, 알하킴과 유사하게 선과 악 등의 세계적 정서를 다루며, 성장·교훈적 색체가 강하다. 한편, 알세파이는 군인 출신으로 문화와 관련된 기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였고 출신 배경 때문에 군사정부의 신뢰를 쉽게 얻었다. 하지만 그는 ‘낭만주의 기사(Romance knight)’라고 불릴 정도 그의 작품들이 감성적이며,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삼은 소설들이 많다. 또한 도덕과 질서까지 다루어 휴머니즘적 색체가 강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도덕성을 잃어버린 인간이 가게에서 도덕 약 알을 사야할 정도 한심한 존재로 묘사된 알세파이의 『أرض النفاق(위선의 땅)』은 1950년, 1968년 두 번 영화화되었고 최근에도 드라마로 만들 정도 시대를 벗어나고 현대 인간의 감정을 보편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p>
<p>영화화된 많은 작품을 가진 작가들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그들이 공통적으로 당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 구 권력과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작가와 권력 관계는 이 부분에서 확실히 드러나 있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은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문예 활동을 누릴 수 있었지만, 타하 후세인(طه حسين), 산 알라 입라힘(صنع الله إبراهيم) 등이 이와 반대되는 경우를 겪었다.<xref ref-type="fn" rid="fb057"><sup>57)</sup></xref></p>
<p>1960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이집트 영화의 양상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1970년대 상업화로 다시 돌아온 영화계는 새로운 정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있어서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화 될 작품의 선정은 더욱더 상품성이 고려되었고 그 시대에 맞는 3S의 문화가 보여주는 작품들이 선정되었으나, 원작 작가의 선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1960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원작 작가들은 1970년대 그들의 이름이 스크린에 오르게 되었다. 이해산과 마푸즈의 작품들은 지속적으로 영화화되었으나, 원작의 장르가 달랐을 뿐이다. 이는 1960년대 그들의 작품들은 스크린에서 시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로서 그들의 작품들의 적합성이 증명된 이유도 있지만, 전 시대의 영향이 아예 사라지지 않은 이유도 있다.</p>
</sec>
</sec>
<sec id="sec004" sec-type="conclusions">
<title>4. 결론</title>
<p>1960년대 한국과 이집트의 비슷한 역사적 상황과 당시 양국에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유행하는 공통점을 비교 연구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이 현상의 원인을 알아보기 다른 세계 사례를 찾아보고 한국과 이집트로 펼치는 과정을 파악해 봤다. 그리고 두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영화 정책을 살펴 국가가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p>
<p>본 논문은 1960년대 한국과 이집트에서 유행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세계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먼저 1930~5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퍼진 각색 영화들을 주목하여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의 글을 이용하여 이 현상의 원인을 알아봤다. 갓 태어나는 예술 형태인 영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방향을 낳았다는 것이 바쟁의 주장이다. 이러한 영화계의 내적 조건 외에도 각 나라의 외적 조건이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유행시켰고 일례로 그리스, 플랑드르, 그리고 미국의 사례를 살펴봤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세계 영화 시장의 경쟁력을 얻기 위해 문학을 원작을 한 영화들이 번성한 플랑드르와 그리스의 경우를 알아봤고 순수한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의 경우를 검토하였다.</p>
<p>두 번째 부분에서는 한국과 이집트 영화를 살펴봤다. 두 영화산업의 경향을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세계적인 현상으로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의 첫 출발점을 찾기 위해서 1960년 이전 시기에 영화에 대해서 발표된 기사를 살펴보았다. 1950년대 한국에서 개봉한 문학을 원작으로 한 세계 영화들은 한국 감독들의 시선을 한국의 정통 문화와 문학에 눈뜨게 하였다. 이 때 한국 영화계에서는 양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기술적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빈곤한 내용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신문 기사의 제목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로에 슨 우리 영화’, ‘영화계의 새로운 시도, 제작 의식의 승화와 영화적 감각의 모멘트’, ‘문예작품의 영화화, 국산 영화의 예술성 높이라’, ‘국산 영화의 질을 높이자면, 시나리오 위치 재인식이 선결’등이 있다. 이 계기로 한국 영화계에서 바쟁의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p>
<p>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는 1950,60년대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관한 수많은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실렸다. 이 중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외국 영화를 주목하는 글, 이집트 영화의 현황에 관한 글, 뿐만 아니라 유명한 작가가 영화에 대해서 쓴 글도 있었다. 이는 당시 이집트에서 국가가 영화계 간섭하기 전에도 이미 두 예술 형태의 혼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p>
<p>내적 조건을 파악한 뒤 영화에 영향을 미친 두 국가의 정책을 살펴봤다. 한국의 경우에는 미군정기 정책과 국산영화장려정책을 주목하고 이집트의 경우에는 영화산업까지 확대된 국유화 산업을 살펴봤다. 두 국가에서 영화 정책의 실행이 앞서 살펴본 내적 조건 보다 뒤에 나온 것을 확인하고 이 정책들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시발점이 되지 않았으나 다른 나라에서 빨리 사그라진 이 영화 경향이 두 국가에 오랫동안 수명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것을 밝혔다.</p>
</sec>
</body>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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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
	<title>부록 1 - 1960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한국영화<xref ref-type="fn" rid="fb059"><sup>59)</sup></xref></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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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 frame="box" rules="all" width="100%">
	<tbody>
		<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번호</td>
<td valign="middle">영화 제목</td>
<td valign="middle">원작 발표년도</td>
<td valign="middle">원작 저자</td>
<td valign="middle">감독</td>
<td valign="middle">원작 제목</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0</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td>
<td valign="middle">과부</td>
<td valign="middle">1953</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조긍하 </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td>
<td valign="middle">재생</td>
<td valign="middle">1925</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홍석기</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td>
<td valign="middle">표류도</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박경리</td>
<td valign="middle">권영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td>
<td valign="middle">흙</td>
<td valign="middle">1932</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권영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td>
<td valign="middle">청춘의 윤리</td>
<td valign="middle">1941</td>
<td valign="middle">정비석</td>
<td valign="middle">김화랑</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1</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td>
<td valign="middle">금단의 문</td>
<td valign="middle">1939</td>
<td valign="middle">정비석</td>
<td valign="middle">홍석기</td>
<td valign="middle">금단의 유역</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td>
<td valign="middle">오발탄</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이범선</td>
<td valign="middle">유현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td>
<td valign="middle">번지 없는 주막</td>
<td valign="middle">1954</td>
<td valign="middle">정비석</td>
<td valign="middle">강찬우</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9</td>
<td valign="middle">사랑방 손님과 어머니</td>
<td valign="middle">1934</td>
<td valign="middle">주요섭</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사랑손님과 어머니</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0</td>
<td valign="middle">상록수</td>
<td valign="middle">1935</td>
<td valign="middle">심훈</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1</td>
<td valign="middle">연산군</td>
<td valign="middle">1936</td>
<td valign="middle">박종화</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금산의 피</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2</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2</td>
<td valign="middle">육체는 슬프다</td>
<td valign="middle">1956</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이해랑</td>
<td valign="middle">산</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3</td>
<td valign="middle">폭군 연산</td>
<td valign="middle">1936</td>
<td valign="middle">박종화</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금산의 피</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4</td>
<td valign="middle">원효대사</td>
<td valign="middle">1942</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장일호</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5</td>
<td valign="middle">이차돈</td>
<td valign="middle">1935</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김승옥</td>
<td valign="middle">이차돈의 사</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6</td>
<td valign="middle">내일의 태양</td>
<td valign="middle">1958</td>
<td valign="middle">박화성</td>
<td valign="middle">오영근</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7</td>
<td valign="middle">여인천하</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박종화</td>
<td valign="middle">윤봉춘</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8</td>
<td valign="middle">사랑의 동명왕</td>
<td valign="middle">1950</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최훈</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9</td>
<td valign="middle">대도전</td>
<td valign="middle">1931</td>
<td valign="middle">윤백남</td>
<td valign="middle">노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0</td>
<td valign="middle">열녀문</td>
<td valign="middle">1953</td>
<td valign="middle">황수원</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과부</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1</td>
<td valign="middle">무정</td>
<td valign="middle">1917</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이강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3</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2</td>
<td valign="middle">대지의 성좌</td>
<td valign="middle">1957</td>
<td valign="middle">박계주</td>
<td valign="middle">홍석기</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3</td>
<td valign="middle">단종애사</td>
<td valign="middle">1930</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이규웅</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4</td>
<td valign="middle">김약국의 딸들</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박경리</td>
<td valign="middle">유현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5</td>
<td valign="middle">혈맥</td>
<td valign="middle">1946</td>
<td valign="middle">김영수</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4</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6</td>
<td valign="middle">잉여인간</td>
<td valign="middle">1958</td>
<td valign="middle">손창섭</td>
<td valign="middle">유현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7</td>
<td valign="middle">아랑의 정조</td>
<td valign="middle">1940</td>
<td valign="middle">박종화</td>
<td valign="middle">장일호</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8</td>
<td valign="middle">내 마음은 호수</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박경리</td>
<td valign="middle">박성복</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9</td>
<td valign="middle">목마른 나무들</td>
<td valign="middle">1963</td>
<td valign="middle">정연희</td>
<td valign="middle">정진우</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0</td>
<td valign="middle">벙어리 삼룡이</td>
<td valign="middle">1925</td>
<td valign="middle">나도향</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5</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1</td>
<td valign="middle">쌍무지개 뜨는 언덕</td>
<td valign="middle">1956</td>
<td valign="middle">김내성</td>
<td valign="middle">손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2</td>
<td valign="middle">노을 진 들녘</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박경리</td>
<td valign="middle">김성화</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3</td>
<td valign="middle">밤에 핀 해바라기</td>
<td valign="middle">1964</td>
<td valign="middle">이범선</td>
<td valign="middle">최훈</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4</td>
<td valign="middle">순교자</td>
<td valign="middle">1964</td>
<td valign="middle">김은국</td>
<td valign="middle">유현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5</td>
<td valign="middle">가을에 온 여인</td>
<td valign="middle">1963</td>
<td valign="middle">박경리</td>
<td valign="middle">정진우</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6</td>
<td valign="middle">갯마을</td>
<td valign="middle">1953</td>
<td valign="middle">오영수</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7</td>
<td valign="middle">흑맥</td>
<td valign="middle">1963</td>
<td valign="middle">이문희</td>
<td valign="middle">이만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6</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8</td>
<td valign="middle">유정</td>
<td valign="middle">1933</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9</td>
<td valign="middle">잃은 자와 찾은 자</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김용성</td>
<td valign="middle">고영남</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0</td>
<td valign="middle">물레방아</td>
<td valign="middle">1925</td>
<td valign="middle">나도향</td>
<td valign="middle">이만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1</td>
<td valign="middle">초연</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손소희</td>
<td valign="middle">정진우</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2</td>
<td valign="middle">산유화</td>
<td valign="middle">1955</td>
<td valign="middle">정비석</td>
<td valign="middle">박종호 </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3</td>
<td valign="middle">소금장수</td>
<td valign="middle">1955</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고영남</td>
<td valign="middle">불가사리</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7</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4</td>
<td valign="middle">청춘극장</td>
<td valign="middle">1953</td>
<td valign="middle">김내성</td>
<td valign="middle">강대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5</td>
<td valign="middle">소복</td>
<td valign="middle">1938</td>
<td valign="middle">김영수</td>
<td valign="middle">전조명</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6</td>
<td valign="middle">애인</td>
<td valign="middle">1955</td>
<td valign="middle">김내성</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7</td>
<td valign="middle">다정불심</td>
<td valign="middle">1947</td>
<td valign="middle">박종화</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8</td>
<td valign="middle">흙</td>
<td valign="middle">1932</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장일호</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9</td>
<td valign="middle">꿈</td>
<td valign="middle">1939</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0</td>
<td valign="middle">일월</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이성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1</td>
<td valign="middle">역마</td>
<td valign="middle">1948</td>
<td valign="middle">김동리</td>
<td valign="middle">김강윤</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2</td>
<td valign="middle">서울은 만원이다</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이호철</td>
<td valign="middle">최무룡</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3</td>
<td valign="middle">종자돈</td>
<td valign="middle">1964</td>
<td valign="middle">김용익</td>
<td valign="middle">김진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4</td>
<td valign="middle">풍운 삼국지</td>
<td valign="middle">1958</td>
<td valign="middle">박종화</td>
<td valign="middle">최인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5</td>
<td valign="middle">새벽길</td>
<td valign="middle">1938</td>
<td valign="middle">방인근</td>
<td valign="middle">이혁수</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6</td>
<td valign="middle">안개</td>
<td valign="middle">1964</td>
<td valign="middle">김승옥</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무진기행</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7</td>
<td valign="middle">잃어버린 사람들</td>
<td valign="middle">1956</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전조명</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8</td>
<td valign="middle">싸리골의 신화</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선우휘</td>
<td valign="middle">이만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9</td>
<td valign="middle">까치소리</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김동리</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0</td>
<td valign="middle">메밀꽃 필 무렵</td>
<td valign="middle">1936</td>
<td valign="middle">이효석</td>
<td valign="middle">이성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1</td>
<td valign="middle">막차로 온 손님들</td>
<td valign="middle">1967</td>
<td valign="middle">홍성원</td>
<td valign="middle">유현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8</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2</td>
<td valign="middle">찬란한 슬픔</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강신재</td>
<td valign="middle">전조명</td>
<td valign="middle">이 찬란한 슬픔을</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3</td>
<td valign="middle">사랑</td>
<td valign="middle">1938</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강대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4</td>
<td valign="middle">순애보</td>
<td valign="middle">1939</td>
<td valign="middle">박계주</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5</td>
<td valign="middle">젊은 느티나무</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강신재</td>
<td valign="middle">이성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6</td>
<td valign="middle">나무들 비탈에 서다</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최하원</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7</td>
<td valign="middle">화산댁</td>
<td valign="middle">1952</td>
<td valign="middle">오영수</td>
<td valign="middle">장일호</td>
<td valign="middle">화산댁이</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8</td>
<td valign="middle">절벽</td>
<td valign="middle">1958</td>
<td valign="middle">강신재</td>
<td valign="middle">이형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9</td>
<td valign="middle">카인의 후예</td>
<td valign="middle">1953</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유현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0</td>
<td valign="middle">별아 내 가슴에</td>
<td valign="middle">1954</td>
<td valign="middle">박계주</td>
<td valign="middle">정진우</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1</td>
<td valign="middle">아네모네 마담</td>
<td valign="middle">1963</td>
<td valign="middle">주요섭</td>
<td valign="middle">김기덕</td>
<td valign="middle">아네모네의 마담</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2</td>
<td valign="middle">피해자</td>
<td valign="middle">1958</td>
<td valign="middle">이범선</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3</td>
<td valign="middle">장군의 수염</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이어령</td>
<td valign="middle">이성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4</td>
<td valign="middle">직녀성</td>
<td valign="middle">1935</td>
<td valign="middle">심후</td>
<td valign="middle">이성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5</td>
<td valign="middle">이상의 날개</td>
<td valign="middle">1936</td>
<td valign="middle">이상</td>
<td valign="middle">최인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6</td>
<td valign="middle">감자</td>
<td valign="middle">1925</td>
<td valign="middle">김동인</td>
<td valign="middle">김승옥</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7</td>
<td valign="middle">분녀</td>
<td valign="middle">1936</td>
<td valign="middle">이효석</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8</td>
<td valign="middle">대원군</td>
<td valign="middle">1965</td>
<td valign="middle">유주현</td>
<td valign="middle">신상옥</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colspan="6" align="center">1969</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9</td>
<td valign="middle">암살자</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이어령</td>
<td valign="middle">이만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0</td>
<td valign="middle">젊은 여인들</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오유권</td>
<td valign="middle">조문진</td>
<td valign="middle">젊은 홀어머니들</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1</td>
<td valign="middle">시발점</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이청준</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병신과 머저리</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2</td>
<td valign="middle">고원</td>
<td valign="middle">1946</td>
<td valign="middle">정비석</td>
<td valign="middle">이성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3</td>
<td valign="middle">독 짓는 늙은이</td>
<td valign="middle">1945</td>
<td valign="middle">황순원</td>
<td valign="middle">최하원</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4</td>
<td valign="middle">자유부인</td>
<td valign="middle">1954</td>
<td valign="middle">정비석</td>
<td valign="middle">강대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5</td>
<td valign="middle">마인</td>
<td valign="middle">1939</td>
<td valign="middle">김내성</td>
<td valign="middle">임원식</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6</td>
<td valign="middle">애수의 언덕</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손창섭</td>
<td valign="middle">김대희</td>
<td valign="middle">포말의 의지</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7</td>
<td valign="middle">성녀와 악녀(성녀와 마녀)</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박경리</td>
<td valign="middle">나한봉</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8</td>
<td valign="middle">봄봄</td>
<td valign="middle">1935</td>
<td valign="middle">김유정</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9</td>
<td valign="middle">렌의 애가</td>
<td valign="middle">1937</td>
<td valign="middle">모윤숙</td>
<td valign="middle">김기영</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90</td>
<td valign="middle">석녀</td>
<td valign="middle">1968</td>
<td valign="middle">정연희</td>
<td valign="middle">김수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91</td>
<td valign="middle">재생</td>
<td valign="middle">1925</td>
<td valign="middle">이광수</td>
<td valign="middle">강대진</td>
<td valign="middle"></td>
</tr>
	</tbody>
	</table>
</table-wrap>
	</app>
	<app>
<title>부록 2 – 문학을 원작으로 한 1960년대 이집트 영화<xref ref-type="fn" rid="fb060"><sup>60)</sup></xref></title>
	<table-wrap id="t003">
	<table frame="box" rules="all" width="100%">
	<tbody>
<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번호</td>
<td valign="middle">영화 제목</td>
<td valign="middle">원작 발표년도</td>
<td valign="middle">원작 저자</td>
<td valign="middle">감독</td>
<td valign="middle">원작 제목</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0</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td>
<td valign="middle">البنات والصيف 여자와 여름</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ا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p>عز الدين ذو الفقار 이즈알딘 줄파카르</p>
<p>صلاح أبو سيف 살라흐 아부 요셉</p>
<p>فطين عبد الوهاب 파틴 압둘와합</p></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td>
<td valign="middle">الرباط المقدس 신성한 끈</td>
<td valign="middle">1944</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الحكيم 타워피크 알하킴</td>
<td valign="middle">صلاح ذو الفقار 살라흐 줄파카르 </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td>
<td valign="middle">بداية ونهاية 시작과 끝</td>
<td valign="middle">1949</td>
<td valign="middle">나지브 마푸즈 نجيب محفوظ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صلاح أبو سيف 살라흐 아부세브</td>
<td valign="middle"></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1</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td>
<td valign="middle">لا تظفئ الشمس 태양을 끄지 말아</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صلاح أبو سيف 살라흐아부세브</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td>
<td valign="middle">في بيتنا رجل 우리 집에 남자가 있다.</td>
<td valign="middle">1957</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هنري بركات 헨리 바라캇</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td>
<td valign="middle">وااسلاماه 와 이슬라마</td>
<td valign="middle">1945</td>
<td valign="middle">أحمد علي باكثير 아흐마드 알리 바카티르 아흐마드 알리 바카티르</td>
<td valign="middle">أندرو مارتن 안드루 마틴</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7</td>
<td valign="middle">ست البنات 최고의 여자</td>
<td valign="middle">1952</td>
<td valign="middle">أمين يوسف غراب 아민 요셉 코랍 아민 요셉 코랍</td>
<td valign="middle">حسام الدينمصطفى 후삼 알딘 모스타파</td>
<td valign="middle"></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2</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8</td>
<td valign="middle">جمعية قتل الزوجات الهزلية 아내를 죽이는 우스꽝스러운 자들 </td>
<td valign="middle"></td>
<td valign="middle">يوسف السباعي 요셉 알세파이</td>
<td valign="middle">حسن الصيفي 하산 알세피</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9</td>
<td valign="middle">سلوى في مهب الريح 바람 앞의 살와</td>
<td valign="middle">1955</td>
<td valign="middle">محمد تيمور 모함드 타이무르</td>
<td valign="middle">السيد بدير 알사이드 베데르</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0</td>
<td valign="middle">غصن الزيتون 올리브 가지</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محمد عبد الحليمعبد الله 모함드 압둘할림 압둘라</td>
<td valign="middle">السيد بدير 알사이드 베데르</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1</td>
<td valign="middle">اللص والكلاب 개들과 도둑</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كمال الشيخ 카멜 알샤크</td>
<td valign="middle"></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3</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3</td>
<td valign="middle">الأيدي الناعمة 부드러운 손들</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الحكيم 타워피크 알하킴</td>
<td valign="middle">محمود ذو الفقار 마함무드 줄파카르</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4</td>
<td valign="middle">عريس لأختي 여동생을 위한 남편</td>
<td valign="middle"></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أحمد ضياء الدين 아흐마드 디야 알딘 </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5</td>
<td valign="middle">لا وقت للحب 사랑을 위한 시간이 없다</td>
<td valign="middle">1957</td>
<td valign="middle">يوسف أدريس 요셉 이드리스</td>
<td valign="middle">صلاح أبو سيف 살라흐 아부 세브</td>
<td valign="middle">قصة حب 사랑 이야기</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6</td>
<td valign="middle">رابعة العدوية 랍이아 알아다위아</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سنية قراعة 사니아 코라아</td>
<td valign="middle">نيازي مصطفى 니야지 모스타파 </td>
<td valign="middle">عروس الزهد رابعة العدوية 금욕주의 신부: 랍이아 알아다위아</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7</td>
<td valign="middle">النظارة السوداء 까만 안경</td>
<td valign="middle">1952</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حسام الدين مصطفى 후삼 알딘 모스타파</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8</td>
<td valign="middle">زقاق المدق 알마다크 골목</td>
<td valign="middle">1947</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حسن الإمام 하산 알-이맘</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19</td>
<td valign="middle">سجين الليل 밤의 죄수</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يوسف أدريس 요셉 이드리스</td>
<td valign="middle">محمود فريد 마함무드 파리드</td>
<td valign="middle">الغريب 낯선 사람</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0</td>
<td valign="middle">الباب المفتوح 열린 문</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لطيفة الزيات 라티파 알자야트</td>
<td valign="middle">هنري بركات 헨리 바라캇</td>
<td valign="middle"></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4</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1</td>
<td valign="middle">الطريق 길</td>
<td valign="middle">1964</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حسام الدينمصطفى 후삼 알딘 모스타파</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2</td>
<td valign="middle">بين القصرين 두 궁궐 사이</td>
<td valign="middle">1956</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حسن الإمام 하산 알-이맘</td>
<td valign="middle"></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5</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3</td>
<td valign="middle">هارب من الأيام 날들의 도망자</td>
<td valign="middle">1956</td>
<td valign="middle">ثروت أباضة 싸르왓 아바자</td>
<td valign="middle">حسام الدينمصطفى 후삼 알딘 모스타파</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4</td>
<td valign="middle">العلمين 알알민</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سنية قراعة 사니아 코라아</td>
<td valign="middle">عبد العليم خطاب 압드알하림 카탑</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5</td>
<td valign="middle">الحرام 금지 (하람)</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يوسف أدريس 요셉 이드리스</td>
<td valign="middle">هنري بركات 헨리 바라캇</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6</td>
<td valign="middle">الجبل 산</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فتحي غانم 파트히 카넴</td>
<td valign="middle">خليل شوقي 칼리 샤위키</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7</td>
<td valign="middle">طريد الفردوس 천국에서 쫓긴 자</td>
<td valign="middle">1953</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الحكيم 타워피크 알하킴</td>
<td valign="middle">فطين عبد الوهاب 파틴 압둘와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8</td>
<td valign="middle">سكون العاصفة 폭풍의 고요</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محمد عبد الحليمعبد الله 모함드 압둘할림 압둘라</td>
<td valign="middle">أحمد حسن ضياء 아흐마드 하산 디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29</td>
<td valign="middle">المستحيل 무리</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مصطفى محمود 모스타파 모하므드</td>
<td valign="middle">حسين كمال 후세인 카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0</td>
<td valign="middle">هي والرجال 그녀와 남자들</td>
<td valign="middle">1965</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حسن الإمام 하산 알-이맘</td>
<td valign="middle"></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6</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1</td>
<td valign="middle">خان الخليلي 칸 알칼리리</td>
<td valign="middle">1945</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عاطف سالم 아티프 살램</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2</td>
<td valign="middle">ليلة زفاف 결혼 첫날밤</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الحكيم 타워피크 알하킴</td>
<td valign="middle">هنري بركات 헨리 바라캇</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3</td>
<td valign="middle">مبكي العشاق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는 곳</td>
<td valign="middle">1951</td>
<td valign="middle"> يوسف السباعي 요셉 알세파이</td>
<td valign="middle">حسن الصيفي 하산 알세피</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4</td>
<td valign="middle">القاهرة 30카이로 30</td>
<td valign="middle">1945</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صلاح أبو سيف 살라흐 아부 세브</td>
<td valign="middle">القاهرة الجديدة 새 카이로</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5</td>
<td valign="middle">فارس بني حمدان 파르스 빈 함단</td>
<td valign="middle">1954</td>
<td valign="middle">علي الجارم 알리 알가림</td>
<td valign="middle">نيازي مصطفى 니야지 모스타파 </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6</td>
<td valign="middle">المتمردون 반란자들</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صلاح حافظ 살라흐 하프즈</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صالح 타위피크 살래흐</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7</td>
<td valign="middle">3 لصوص 세 도둑들</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فطين عبد الوهاب 파틴 압둘와합</td>
<td valign="middle"><p>سارق الذهب 금 도둑</p>
<p>سارق الأتوبيس 버스도둑</p>
<p>سارق عمته 고모도둑</p></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7</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8</td>
<td valign="middle">العيب 잘못 (the fault)</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يوسف أدريس 요셉 이드리스</td>
<td valign="middle">جلال الشرقاوي 쟈랄 알샤르카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39</td>
<td valign="middle">بيت الطالبات 여자 기숙사</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فوزية مهران 파우지아 마흐란</td>
<td valign="middle">أحمد ضياء الدين 아흐마드 디아 알딘</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0</td>
<td valign="middle">قصر الشوق 그리움의 궁궐</td>
<td valign="middle">1957</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 </td>
<td valign="middle">عيسى كرامة 이사 카라마</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1</td>
<td valign="middle">إضراب الشحاتين 거지들의 파업</td>
<td valign="middle">1957</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حسن الإمام 하산 알-이맘</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2</td>
<td valign="middle">السمان والخريف 메추라기와 가을 </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 </td>
<td valign="middle">حسام الدين مصطفى 후삼 알딘 모스타파</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3</td>
<td valign="middle">الخروج من الجنة 천국을 떠나다</td>
<td valign="middle">1928</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الحكيم 타워피크 알하킴</td>
<td valign="middle">محمود ذو الفقار 마함무드 줄파카르</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4</td>
<td valign="middle">عندما نحب 사랑할 때</td>
<td valign="middle">1964</td>
<td valign="middle">محمد التابعي 모함드 알타피이</td>
<td valign="middle">حسين حلمي المهندس 후세인 핼미 알모한대스</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5</td>
<td valign="middle">جفت الأمطار 비가 말라졌다</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عبد الله الطوخي 압둘라 알투키</td>
<td valign="middle">سيد عيسى 사이드 이사</td>
<td valign="middle">영상원본없음</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6</td>
<td valign="middle">كرامة زوجتي 아내의 품격</td>
<td valign="middle">1967</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فطين عبد الوهاب 파틴 압둘와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7</td>
<td valign="middle">السيد بلطي 알사이드 불티</td>
<td valign="middle">1963</td>
<td valign="middle">صالح مرسي 살리흐 무르시</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صالح 타위피크 살래흐</td>
<td valign="middle"></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8</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8</td>
<td valign="middle">أرض النفاق 위선의 땅</td>
<td valign="middle">1949</td>
<td valign="middle"> يوسف السباعي 요셉 알세파이</td>
<td valign="middle">فطين عبد الوهاب 파틴 압둘와합</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49</td>
<td valign="middle">الرجل الذي فقد ظله 그림자를 잃은 남자</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فتحي غانم 파트히 카넴</td>
<td valign="middle">كمال الشيخ 카멜 알샤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0</td>
<td valign="middle">قنيدل أم هاشم 옴 하심의 램프 </td>
<td valign="middle">1944</td>
<td valign="middle">يحي حقي 야흐야 하키</td>
<td valign="middle">كمال عطية 카멜 아티아</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1</td>
<td valign="middle">روعة الحب 사랑의 아름다움</td>
<td valign="middle">1965</td>
<td valign="middle">هالة الحفناوي 할라 알흐프나위</td>
<td valign="middle">محمود ذو الفقار 마함무드 줄파카르</td>
<td valign="middle">العبير الغامض 신비한 향기</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2</td>
<td valign="middle">3 قصص 세 이야기들</td>
<td valign="middle">1968</td>
<td valign="middle"><p>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p>
<p>يوسف أدريس 요셉 이드리스</p>
<p>يحي حقي 야흐야 하키</p></td>
<td valign="middle"><p>إبراهيم الصحن 입라힘 알 사핸</p>
<p>حسن رضا 하산 리다</p>
<p>محمد نبيه 모함드 나비흐</p></td>
<td valign="middle"><p>دنيا الله알라의 삶5</p>
<p>ساعات 다섯시간</p>
<p>إفلاس خاطبة 중매자의 파산</p></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3</td>
<td valign="middle">البوسطجي 우체부</td>
<td valign="middle">1934</td>
<td valign="middle">يحي حقي 야흐야 하키</td>
<td valign="middle">حسين كمال 후세인 카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4</td>
<td valign="middle">3 نساء 세 여인</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p>هنري بركات 헨리 바라캇</p>
<p>صلاح أبو سيف 살라흐 아부 세브</p>
<p>محمود ذو الفقار 마함무드 줄파카르</p></td>
<td valign="middle"><p>هناء 하나</p>
<p>توحيدة 타웨히다</p>
<p>شمس 샴스</p></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 colspan="6">1969</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5</td>
<td valign="middle">ميرامار 미라마르</td>
<td valign="middle">1967</td>
<td valign="middle">نجيب محفوظ 나지브 마푸즈</td>
<td valign="middle">كمال الشيخ 카멜 알샤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6</td>
<td valign="middle">نادية 나디아</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 يوسف السباعي 요셉 알세파이</td>
<td valign="middle">أحمد بدرخان 아흐마드 바드라칸</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7</td>
<td valign="middle">بئر الحرمان 결핍의 우물 </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كمال الشيخ 카멜 알샤크</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8</td>
<td valign="middle">شيء من الخوف 약간의 공포</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ثروت أباضة 싸르왓 아바자</td>
<td valign="middle">حسين كمال 후세인 카멜</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59</td>
<td valign="middle">يوميات نائب في الأرياف 시골의 검사의 일기</td>
<td valign="middle">1937</td>
<td valign="middle">توفيق الحكيم 타워피크 알하킴</td>
<td valign="middle">حلمي حليم 힐미 하림</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0</td>
<td valign="middle">أبواب الليل 밤의 문들</td>
<td valign="middle">1956</td>
<td valign="middle">سعد مكاوي 사드 미카위</td>
<td valign="middle">حسن رضا 하산 리다</td>
<td valign="middle"></td>
</tr><tr>
<td valign="middle" align="center">61</td>
<td valign="middle">أبي فوق الشجرة 나무 위의 아버지</td>
<td valign="middle">1969</td>
<td valign="middle">إحسان عبد القدوس 이해산 압둘 꾸두쓰</td>
<td valign="middle">حسين كمال 후세인 카멜</td>
<td valign="middle"></td>
</tr>
	</tbody>
	</table>
</table-wrap>
	</app>
</app-group>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앙드레 바쟁, ｢비순수 영화를 위하여–각색의 옹호｣, 『영화란 무엇인가』, 박상규 역, 사문난적, 2013, 129-162쪽</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André Bazin, “Adaptation, or the cinema as digest”, <italic>Bazin at Work–Major Essays &#x0026; Reviews from the Forties &#x0026; Fifties,</italic> translated by Alain Piette &#x0026; Bert Cardullo, Routledge, 1997, pp.41-52</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앙드레 바쟁, ｢비순수 영화를 위하여–각색의 옹호｣, 『영화란 무엇인가』, 박상규 역, 사문난적, 2013, 158쪽</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앙드레 바쟁, ｢비순수 영화를 위하여–각색의 옹호｣, 『영화란 무엇인가』, 박상규 역, 사문난적, 2013, 161쪽</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4">G. Willems, “Adaptation policy: Film policy and adaptations in Flanders (1964-2002)”, <italic>Literature Film Quarterly</italic>, Vol.43, 2015, pp.64-76</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4">G. Willems, “Adaptation policy: Film policy and adaptations in Flanders (1964-2002)”, <italic>Literature Film Quarterly,</italic> Vol.43, 2015, p.73</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3">K. D. Edwards, “Brand new literature: Film adaptations and Selznic International Pictures’ Rebecca(1940)”, <italic>Cinema Journal</italic>, Vol.45 No.3, 2006, pp.32-58</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한국 영화 정책사를 정리하는 데 (<xref ref-type="bibr" rid="B009">이우석 외, 『한국영화정책사』, 나남출판, 2005</xref>)를 참고함.</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노지승, ｢1960년대 근대 소설의 영화적 재생산 양상과 그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제20호, 2006, 511쪽</xref>.</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정영권, ｢&#x003C;갯마을&#x003E;과 한국 문예영화의 장르적 형성-1965-1969년을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제26호, 2011, 312쪽</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이태우, &#x003C;영화시론: 조선 영화와 문학 1&#x003E;, 『경향신문』, 1949.1.27., 3면</xref>.</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이태우, &#x003C;영화시론: 조선 영화와 문학 1&#x003E;, 『경향신문』, 1949.1.27., 3면</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30">&#x003C;설문: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어떤 것인가? 어떤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x003E;, 『한국신문』, 1954.10.4., 4면</xref>.</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이우석 외, 『한국영화정책사』, 나남출판, 2005, 107-141쪽</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조혜정, ｢미군정기 영화정책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35쪽</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조혜정, ｢미군정기 영화정책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128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박유희, ｢1950년대 역사영화의 역사소설 수용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18호, 2007, 166쪽</xref>.</p></fn>
<fn id="fb018"><label>1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박유희, ｢1950년대 역사영화의 역사소설 수용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18호, 2007, 181쪽</xref>.</p></fn>
<fn id="fb019"><label>19)</label><p>영화의 제목과 개봉 년도를 표시함.</p></fn>
<fn id="fb020"><label>2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박유희, ｢1950년대 역사영화의 역사소설 수용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18호, 2007, 182쪽</xref>.</p></fn>
<fn id="fb021"><label>21)</label><p><xref ref-type="bibr" rid="B029">&#x003C;새해부터 문예작품 제작 ‘붐’/‘오리지널’빈곤의 반동/방송극의 영화화도 열 식고&#x003E;, 『조선일보』, 1963.1.13., 8면</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xref ref-type="bibr" rid="B032">&#x003C;인기 소설 뒤쫓는 영화 / 방송극 ‘붐’서 벗어나&#x003E;, 『한국신문』, 1963.3.22., 7면</xref>.</p></fn>
<fn id="fb023"><label>23)</label><p>이는 (한국영상자료원, 『신문기사로 본 한국 영화 1958-1961』, 2003; 한국영상자료원, 『신문기사로 본 한국 영화 1962-1964』, 2003; 한국영상자료원, 『신문기사로 본 한국 영화 1965』, 2003)에서 나오는 박경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관한 기사를 살펴본 결과이다. 각 영화에 관련된 기사 수는 다음과 같다. &#x003C;표류도&#x003E; 9개, &#x003C;김약국의 딸들&#x003E; 61개, &#x003C;내 마음은 호수&#x003E; 2개, &#x003C;노을 진 들녘&#x003E; 4개, &#x003C;가을에 온 여인&#x003E; 2개이다. 영화의 기사 수는 흥행성, 감독, 영화제 출품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x003C;표류도&#x003E;와 &#x003C;김약국의 딸들&#x003E;에 비해서 그 후 나온 박경리의 영화들은 좋은 성과를 얻지 못 한 것을 알 수 있으며, 1969년에 발표된 그의 원작 &#x003C;성녀와 악녀&#x003E;는 MBC드라마로 먼저 나온 후 영화화된 것이 결정되었다.</p></fn>
<fn id="fb024"><label>24)</label><p><xref ref-type="bibr" rid="B033">&#x003C;천재 나도향 소설의 영화화 / &#x003C;물레방아&#x003E;근일개봉 / 한국영화공사작품&#x003E;, 『한국신문』, 1955.11.20., 3면</xref>.</p></fn>
<fn id="fb025"><label>25)</label><p>원작은 1955년 발표된 단편소설 &#x003C;불가사리&#x003E;이다.</p></fn>
<fn id="fb026"><label>2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6">방금단, ｢매체 전환에 따른 ‘황순원 소설’의 변용연구–영화,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를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제39집, 2017, 38-39쪽</xref>.</p></fn>
<fn id="fb027"><label>27)</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x003C;리바이벌 / 흥행 수지 타산에서 온 ‘붐’&#x003E;, 『대한일보』, 1967.10.7., 6면</xref>.</p></fn>
<fn id="fb028"><label>28)</label><p><xref ref-type="bibr" rid="B031">&#x003C;영화계 두 붐 ‘문예’, ‘검객’ 그 행방과 문제점&#x003E;, 『동아일보』, 1967.11.11., 5면</xref>.</p></fn>
<fn id="fb029"><label>29)</label><p>총 91 편의 영화의 원작 작가는 38명이다. 이는 영화화될 대상을 선정할 때 특정한 작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원작 소설 작가 중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이광수이다. 그는 12작품을 소유하며, 그 다음으로 황순원은 7개, 박종화와 박경리 각 6개, 정비석은 5개, 김내성은 4개가 있다. 나머지 작가들은 2~3작품 이하를 소유한다.</p></fn>
<fn id="fb030"><label>3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권보드래, ｢저개발의 멜로, 저개발의 숭고–이광수 『흙』과 『사랑』의 1960년｣, 『상허학회』 제37집, 2013, 284-285쪽</xref>.</p></fn>
<fn id="fb031"><label>31)</label><p>최인현 감독의 &#x003C;춘원 이광수&#x003E;(1969)가 그것이다.</p></fn>
<fn id="fb032"><label>32)</label><p><xref ref-type="bibr" rid="B005">박유희, ｢춘원 문학 영화화의 추이와 맥락–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상허학보』 제37집, 2013, 266쪽</xref>.</p></fn>
<fn id="fb033"><label>3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1">사미르 파리드, 『이집트 영화: 입문』, 알하야 알마시리아 리-알키탑, 2001, 85-119쪽</xref>.</p></fn>
<fn id="fb034"><label>34)</label><p>아멜 알가말에 따르면 공공 제작사가 만든 영화의 시장 비율은 50%가 되며, 사립 제작사의 비율은 40%정도가 되는데 나머지 10%는 공동 제작사가 만든 영화가 차지한다. (<xref ref-type="bibr" rid="B024">아멜 알가말, ｢이집트 시네마의 국유화 실험｣, 『아랍시네마』 겨울호, 2015, 78쪽</xref>.)</p></fn>
<fn id="fb035"><label>35)</label><p><xref ref-type="bibr" rid="B024">아멜 알가말, ｢이집트 시네마의 국유화 실험｣, 『아랍시네마』 겨울호, 2015, 73쪽</xref>. 목록에 올라온 24편의 영화는 다음과 같다: &#x003C;الأرض(땅)&#x003E;(1970); &#x003C;المومياء(미라–영문제목: The Night of Counting the Years)&#x003E;(1969); &#x003C;الحرام(금지)&#x003E;(1965); &#x003C;الناصر صلاح الدين(살 라흐 알-딘)&#x003E;(1963); &#x003C;البوسطجي(우체부)&#x003E;(1968); &#x003C;الزوجة الثانية(두 번째 아내)&#x003E;(1967); &#x003C;لقاهرة 30(카이로 30)&#x003E;(1966); &#x003C;شيء من الخوف(약간의 공포)&#x003E;(1969); &#x003C;ميرامار(미라마르)&#x003E; (1969); &#x003C;زوجتي والكلب(내 아내와 개)&#x003E;(1971); &#x003C;مراتي مدير عام(내 아내는 직장 상사다)&#x003E; (1966); &#x003C;ليل وقضبان(밤과 막대들)&#x003E;(1973); &#x003C;الاختيار(선택)&#x003E;(1971), &#x003C;شروق وغروب(일물과 일출)&#x003E; (1970); &#x003C;المستحيل(무리)&#x003E;(1965); &#x003C;قنديل أم هاشم(옴 하심의 램프)&#x003E;(1968)‘ &#x003C;أغنية على الممر 	(복도에서 들린 노래)&#x003E;(1972); &#x003C;يوميات نائب في الأرياف(시골의 검사의 일기)&#x003E;(1969); &#x003C;الأيدي الناعمة(부드러운 손들)&#x003E;, &#x003C;المتمردون(반란자들)&#x003E;(1968); &#x003C;الجبل(산)&#x003E;(1965); &#x003C;السمان والخريف (메추라기와 가을)&#x003E;(1967); &#x003C;بين القصرين(두 궁궐 사이)&#x003E;(1964); &#x003C;الرجل الذي فقد ظله (그림자를 잃은 남자)&#x003E;(1968).</p></fn>
<fn id="fb036"><label>36)</label><p>(<xref ref-type="bibr" rid="B025">아해마드 카멜 모래시, 『이집트 영화 파노라마: 이집트 영화 사전 1972-1982』, 시네마 지원 기금, 1983</xref>)에서 나열된 영화를 바탕으로 함.</p></fn>
<fn id="fb037"><label>37)</label><p>1950년대와 1960년대의 상영된 영화 편수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편수를 다음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통계는 (<xref ref-type="bibr" rid="B026">아해마드 카멜 모래시, 『이집트 영화 파노라마: 이집트 영화 사전 1972~1982』, 시네마 지원 기금, 1983</xref>)의 이집트 영화 목록을 바탕으로 하였다.
<table-wrap id="t001">
	<table frame="box" rules="all" width="100%">
	<tbody>
<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연도</td>
<td valign="middle">상영영화</td>
<td valign="middle">원작 있는 영화</td>
<td valign="middle">연도</td>
<td valign="middle">상영영화</td>
<td valign="middle">원작 있는 영화</td>
<td valign="middle">연도</td>
<td valign="middle">상영영화</td>
<td valign="middle">원작 있는 영화</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1950</td>
<td valign="middle">47</td>
<td valign="middle">1</td>
<td valign="middle">1957</td>
<td valign="middle">40</td>
<td valign="middle">3</td>
<td valign="middle">1964</td>
<td valign="middle">43</td>
<td valign="middle">2</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1951</td>
<td valign="middle">53</td>
<td valign="middle">2</td>
<td valign="middle">1958</td>
<td valign="middle">55</td>
<td valign="middle">1</td>
<td valign="middle">1965</td>
<td valign="middle">42</td>
<td valign="middle">8</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1952</td>
<td valign="middle">58</td>
<td valign="middle">1</td>
<td valign="middle">1959</td>
<td valign="middle">57</td>
<td valign="middle">6</td>
<td valign="middle">1966</td>
<td valign="middle">34</td>
<td valign="middle">7</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1953</td>
<td valign="middle">62</td>
<td valign="middle">0</td>
<td valign="middle">1960</td>
<td valign="middle">59</td>
<td valign="middle">3</td>
<td valign="middle">1967</td>
<td valign="middle">33</td>
<td valign="middle">10</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1954</td>
<td valign="middle">66</td>
<td valign="middle">1</td>
<td valign="middle">1961</td>
<td valign="middle">51</td>
<td valign="middle">4</td>
<td valign="middle">1968</td>
<td valign="middle">38</td>
<td valign="middle">7</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1955</td>
<td valign="middle">51</td>
<td valign="middle">2</td>
<td valign="middle">1962</td>
<td valign="middle">47</td>
<td valign="middle">4</td>
<td valign="middle">1969</td>
<td valign="middle">44</td>
<td valign="middle">7</td>
</tr><tr align="center">
<td valign="middle">1956</td>
<td valign="middle">39</td>
<td valign="middle">3</td>
<td valign="middle">1963</td>
<td valign="middle">48</td>
<td valign="middle">9</td>
<td valign="middle"></td>
<td valign="middle"></td>
<td valign="middle"></td>
</tr>
	</tbody>
	</table>
</table-wrap>
</p></fn>
<fn id="fb038"><label>3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6">누리 알 라웨이, &#x003C;시네마 심리학적인(PSYCHOLOGICAL) 발전&#x003E;, 『알-아다브』 제3호, 1956.3.1, 45-46쪽</xref>.</p></fn>
<fn id="fb039"><label>39)</label><p><xref ref-type="bibr" rid="B022">살라흐 이즈 알 딘, &#x003C;이집트 시네마의 위기&#x003E;, 『알-아다브』 제2호, 1957.2.1., 75-76쪽</xref>.</p></fn>
<fn id="fb040"><label>40)</label><p>압둘파타흐 알바루디, &#x003C;맥베스: 희곡과 시네마 사이에&#x003E;, 『알싸카파』, 1951.4; 파로크 사아드, &#x003C;셰익스피어와 시네마&#x003E;, 『알-아다브』 1959.6 등을 예로 들 수 있다.</p></fn>
<fn id="fb041"><label>41)</label><p>라피크 알익티야르, &#x003C;영화와 다른 예술들&#x003E;, 『알-아디브』, 1942.5; 압둘민엠 솝히, &#x003C;문학 작품과 시네마&#x003E;, 『알싸카파』, 1965.5 등을 예로 들 수 있다.</p></fn>
<fn id="fb042"><label>42)</label><p>야흐야 학끼, &#x003C;시네마에 대하여&#x003E;, 『알싸카파』, 1945.5 등이 있다.</p></fn>
<fn id="fb043"><label>43)</label><p>‘자유로운 장교(الضباط الأحرار)’들은 나세르 대통령을 포함한 군대의 젊은 군인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다. 1952년 자유로운 장교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전복했다.</p></fn>
<fn id="fb044"><label>44)</label><p>혁명에 대한 영화들 대부분이 봉건사회, 즉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하고 혁명까지 시대적 배경을 하고 있는데 사회 문제나 정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보다 로맨스 플롯을 세우고 혁명 후 몰락한 귀족 지방에서 온 여성과 가난한 지방의 장교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전 시대에 허락되지 않은 이 관계는 영화의 대표 주제가 되었다. 이 영화들 중에서 &#x003C;الله معنا(신은 우리 곁에 있다)&#x003E;(1955)와 &#x003C;رد قلبي(내마음을 돌려줘)&#x003E;(1957) 이다. (<xref ref-type="bibr" rid="B017">두리아 샤라브 알 딘, 『이집트의 영화와 정치』, 다르 알 슈록, 1992, 9-22쪽</xref>)참조.</p></fn>
<fn id="fb045"><label>45)</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입라힘 알 아리스, ｢1952~1970년 이집트 영화의 문학과 제7의 예술의 관계｣, 『이집트 영화: 혁명과 공공 부문 1952-1970』, 문화고위협의회, 2010, 131-151쪽</xref>.</p></fn>
<fn id="fb046"><label>46)</label><p>이집트의 영화 정책은 한국과 달리 제작-배급-상영의 차원에서 집중되지 않았다. 영화사들을 공공 부문으로 이전된 후에 영화계가 갈라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립 제작사와 공공 제작사의 영화들이 많이 달랐다. 이집트 영화는 이집트적인 콘텐츠, 이집트 배우들, 이집트 감독들이 만들어도 이의 시장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아랍국가도 포함되어 있다. 시장의 큰 규모가 이집트와 아랍 나라, 두 측면은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집트가 채택한 국유화의 정책이 영화의 산업적인 체질과 어울리지 못하였다. 국유화 후에도 이집트는 계속 영화를 수출하였고 이와 동시에 외국 영화가 아닌 사립 제작사가 만든 이집트영화와 경쟁하게 된 상황을 겪게 되었다. 커다란 제작비로 만들어진 공공 부문의 영화는 오락 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하여 결국 이 경쟁 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p></fn>
<fn id="fb047"><label>47)</label><p><xref ref-type="bibr" rid="B024">싸르왓 오카샤, 『정치와 문화에 대한 나의 노트들』, 다르 알-슈룩, 2000, 766-768쪽</xref>.</p></fn>
<fn id="fb048"><label>48)</label><p><xref ref-type="bibr" rid="B021">문화협의원회, ｢이집트의 영화 산업: 현황과 국가, 민간 부문의 역할 그리고 발전의 필요성｣, 문화와 예술과 문학의 보고서, 1979/1980, 306쪽</xref>. (기관 내 보고서)</p></fn>
<fn id="fb049"><label>49)</label><p><xref ref-type="bibr" rid="B019">마함모드 압둘 샤쿠르, 『1970년대 나의 어린 시절』, 다르 알카르마, 2015, 40-45쪽</xref>.</p></fn>
<fn id="fb050"><label>50)</label><p>이는 &#x003C;نساء بلا رجال(남자없는 여자들)&#x003E;(1953); &#x003C;لا أنام(잠을 들지 못 한 내가)&#x003E;(1955); &#x003C;الطريق المسدود(막힌 길)&#x003E;(1957); &#x003C;الوسادة الخالية(빈 배게)&#x003E;(1957); &#x003C;الله معنا(하나님이 우리 곁에 있다)&#x003E;(1957); &#x003C;أنا حرة(나는 자유인이다)&#x003E;(1959)이다.</p></fn>
<fn id="fb051"><label>51)</label><p>이는 &#x003C;البنات والصيف(여자와 여름)&#x003E;(1960); &#x003C;لا تطفئ الشمس (태양을 끄지 말아)&#x003E;(1961); &#x003C;في بيتنا رجل (우리 집에 남자가 있다)&#x003E;(1961); &#x003C;عريس لأختي(여동생을 위한 남편)&#x003E;(1963); &#x003C;النظارة السوداء(까만 안경)&#x003E;(1963); &#x003C;هي والرجال (그녀와 남자들)&#x003E;(1965); &#x003C;3 لصوص(3명의 도둑들)&#x003E;(1966)&#x003E;; &#x003C;كرامة زوجتي(내 아내의 품격)&#x003E;(1967); &#x003C;إضراب الشحاتين(거지들의 파업)&#x003E;(1968); &#x003C;3 نساء(세 여인들)&#x003E;(1968); &#x003C;بئر الحرمان(결핍의 우물)&#x003E;(1969); &#x003C;أبي فوق الشجرة(아버지가 나무 위에 서 있다)&#x003E;(1969)이다.</p></fn>
<fn id="fb052"><label>5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가멜 알-키타니, 『나지브 마푸즈가 기억한다』, 베이루트: 다르 마시라, 1980, 97쪽</xref>.</p></fn>
<fn id="fb053"><label>53)</label><p>이집트에서 그 당시 베스트셀러에 관한 자료를 찾기 어렵다. 특히, 저작권의 침해가 심하였고 복사본이 많이 나온 시기라 정확한 판매율을 알아보기가 어렵다.</p></fn>
<fn id="fb054"><label>54)</label><p>아랍 사회주의 연합이 개설되기 전에 해방기관(هيئة التحرير/1953), 그리고 민족연합(الاتحاد القومي/1957)이 국가의 전체주의를 지도하였다.</p></fn>
<fn id="fb055"><label>5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가멜 알-키타니, 『나지브 마푸즈가 기억한다』, 베이루트: 다르 마시라, 1980, 78쪽</xref>.</p></fn>
<fn id="fb056"><label>56)</label><p><xref ref-type="bibr" rid="B020">모함드 요셉 알-카이드, 모함드 하사닌 헤칼, 『압둘-나세르과 지식인과 문화: 모함드 하사닌 헤칼이 기억한다』, 다르 알-슈록, 2003, 68쪽</xref>.</p></fn>
<fn id="fb057"><label>57)</label><p><xref ref-type="bibr" rid="B020">모함드 요셉 알-카이드, 모함드 하사닌 헤칼, 『압둘-나세르과 지식인과 문화: 모함드 하사닌 헤칼이 기억한다』, 다르 알-슈록, 2003, 100쪽</xref>.</p></fn>
<fn id="fb058"><label>58)</label><p>타하는 나집 마푸즈만큼 명성이 높은 작가이며, 그의 섬세한 묘사 덕분에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그의 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나세르 시대에는 1959년 개봉된 &#x003C;دعاء الكروان(The Nightingale’s Prayer)&#x003E;외에는 스크린에 올라온 그의 작품이 없었다. 타하는 나세르 시대의 적극적 정치 활동을 했기보다 왕국 시대에 그는 ‘와프드당(حزب الوفد)’에 속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신 권력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아카드는 와프드당과 함께 시작하였고 결국 왕의 편에 서게 되었다. 타하 후세인은 ‘아흐라르 두스투리인 (민주당/الأحرار الدستوريين)과 시작하였고 와프다당과 정치 생활을 끝을 보았다. 두 작가는 어떻게 보면 정치판에 들어갔기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보았다. 그들의 손해는 문학의 차원에서 제일 컸다.” (<xref ref-type="bibr" rid="B020">모함드 요셉 알-카이드, 모함드 하사닌 헤칼, 『압둘-나세르과 지식인과 문화: 모함드 하사닌 헤칼이 기억한다』, 다르 알-슈록, 2003, 68쪽</xref>).</p></fn>
<fn id="fb059"><label>59)</label><p>이 목록에서 1961-1979년의 영화는 (<xref ref-type="bibr" rid="B002">김종수, ｢1960년대 문예영화의 원작소설 연구–그 유형과 영화적 변용을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제19호, 2008, 137-140쪽</xref>)을 참조함. 1960년 영화부터는 (<xref ref-type="bibr" rid="B008">영화진흥사 간, 『한국영화 작품 색인 1919-1989』, 1990</xref>)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p></fn>
<fn id="fb060"><label>60)</label><p>이 목록은 (<xref ref-type="bibr" rid="B026">아해마드 카멜 모래시, 『이집트 영화 파노라마: 이집트 영화 사전 1972~1982』, 시네마 지원 기금, 1983</xref>)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p></fn>
</fn-group>
<ref-list>
<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논문과 단행본</title>
<!-- 권보드래, ｢저개발의 멜로, 저개발의 숭고—이광수 『흙』 과 『사랑』 의 1960년｣, 『상허학회』 제37집, 2013, 279-320쪽.-->
<ref id="B001">
<label>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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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권</surname><given-names>보드래</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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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3</year>
<article-title>저개발의 멜로, 저개발의 숭고—이광수 『흙』 과 『사랑』 의 1960년</article-title>
<source>상허학회</source>
<volume>제37집</volume>
<fpage>279</fpage><lpage>320</lpage>
<pub-id pub-id-type="doi">10.22936/sh.37..201302.008</pub-id>
</element-citation>
</ref>
<!-- 김종수, ｢1960년대 문예영화의 원작소설 연구: 그 유형과 영화적 변용을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제19호, 2008, 127-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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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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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종수</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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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8</year>
<article-title>1960년대 문예영화의 원작소설 연구: 그 유형과 영화적 변용을 중심으로</article-title>
<source>대중서사연구</source>
<issue>제19호</issue>
<fpage>127</fpage><lpage>157</lpage>
<pub-id pub-id-type="doi">10.18856/jpn.2008..19.004</pub-id>
</element-citation>
</ref>
<!-- 노지승, ｢1960년대 근대 소설의 영화적 재생산 양상과 그 의미｣, 한국현대문학연구 제20권, 2006, 503-534쪽.-->
<ref id="B003">
<label>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노</surname><given-names>지승</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6</year>
<article-title>1960년대 근대 소설의 영화적 재생산 양상과 그 의미</article-title>
<source>한국현대문학연구</source>
<volume>제20권</volume>
<fpage>503</fpage><lpage>534</lpage>
</element-citation>
</ref>
<!-- 박유희, ｢1950년대 역사영화의 역사소설 수용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18호, 2007, 155-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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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유희</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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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7</year>
<article-title>1950년대 역사영화의 역사소설 수용 연구</article-title>
<source>대중서사연구</source>
<issue>제18호</issue>
<fpage>155</fpage><lpage>189</lpage>
<pub-id pub-id-type="doi">10.18856/jpn.2007..18.005</pub-id>
</element-citation>
</ref>
<!-- 박유희, ｢춘원 문학 영화화의 추이와 맥락—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상허학보』 제37집, 2013, 237-279쪽.-->
<ref id="B005">
<label>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유희</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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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3</year>
<article-title>춘원 문학 영화화의 추이와 맥락—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article-title>
<source>상허학보</source>
<volume>제37집</volume>
<fpage>237</fpage><lpage>279</lpage>
<pub-id pub-id-type="doi">10.22936/sh.37..201302.007</pub-id>
</element-citation>
</ref>
<!-- 방금단, ｢매체 전환에 따른 ‘황순원 소설’의 변용연구—영화,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를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제39집, 2019, 37-64쪽.-->
<ref id="B006">
<label>6</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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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방</surname><given-names>금단</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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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9</year>
<article-title>매체 전환에 따른 ‘황순원 소설’의 변용연구—영화,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를 중심으로</article-title>
<source>인문과학연구</source>
<volume>제39집</volume>
<fpage>37</fpage><lpage>64</lpage>
</element-citation>
</ref>
<!-- 앙드레 바쟁, ｢비순수 영화를 위하여—각색의 옹호｣, 『영화란 무엇인가』, 박상규 역, 사문난적, 2013, 129-162쪽.-->
<ref id="B007">
<label>7</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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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바쟁</surname><given-names>앙드레</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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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상규</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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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3</year>
<chapter-title>비순수 영화를 위하여—각색의 옹호</chapt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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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사문난적</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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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Adaptation policy: Film policy and adaptations in Flanders (1964-2002)</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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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시네마 심리학적(PSYCHOLOGICAL) 발전</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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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이집트 시네마의 위기</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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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새해부터 문예작품 제작 ‘붐’/‘오리지널’빈곤의 반동/방송극의 영화화도 열 식고</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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