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xml-stylesheet type="text/xsl" href="/resources/xsl/jats-html.xsl"?>
<article article-type="research-article" dtd-version="1.1" xml:lang="ko" xmlns:mml="http://www.w3.org/1998/Math/MathML"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mlns:xsi="http://www.w3.org/2001/XMLSchema-instance">
<front>
	<journal-meta>
		<journal-id journal-id-type="publisher-id">jpn</journal-id>
		<journal-title-group>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journal-title-group>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publisher>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publisher>
	</journal-meta>
	<article-meta>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4_159</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4.006</article-id>
		<article-categories>
			<subj-group>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subj-group>
		</article-categories>
		<title-group>
			<article-title>광장과 법정</article-title>
			<subtitle>-블랙리스트 시대 한국영화의 사회적 상상력</subtitle>
		<trans-title-group xml:lang="en">
			<trans-title>Square and Court</trans-title>
			<trans-subtitle>-Social Imagination of Korean Cinema in Blacklist Era</trans-subtitle>
			</trans-title-group>
		</title-group>
		<contrib-group>
			<contrib contrib-type="author" xlink:type="simple">
				<name-alternatives>
				<name name-style="eastern"><surname>송</surname><given-names>효정</given-names></name>
				<name name-style="eastern" xml:lang="en"><surname>Song</surname><given-names>Hyo-Joung</given-names></name>
			</name-alternatives>
			<xref ref-type="aff" rid="aff01">*</xref>
			<aff id="aff01"><label>*</label>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창조융합학부</aff><role>조교수</role>
			<aff xml:lang="en">Daegu University</aff>
			</contrib>
		</contrib-group>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pub-date>
		<volume>25</volume>
		<issue>4</issue>
		<fpage>159</fpage>
		<lpage>190</lpage>
		<history>
			<date date-type="received">
				<day>21</day>
				<month>10</month>
				<year>2015</year>
			</date>
			<date date-type="rev-recd">
				<day>13</day>
				<month>11</month>
				<year>2015</year>
			</date>
			<date date-type="accepted">
				<day>15</day>
				<month>11</month>
				<year>2015</year>
			</date>
		</history>
		<permissions>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permissions>
		<abstract>
		<title>국문초록</title>
<p>본 논문은 2010년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온 사회파 영화의 정치적 무의식에 관심을 두며 해당 시기 한국영화의 사회적 상상력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p>
<p>실화를 소재로 한 사회파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2013)</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2017)</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운전사&#x003E;(2017)</xref> 등의 영화는 상식과 정의에 기반한 시민사회의 에토스를 반영하였다. 평범한 소시민이 정치적 올바름을 각성한 후 공적인 공간(법정, 광장)으로 나아간다는 서사구조도 동일했다. 무엇보다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것이 블랙리스트 시대의 검열을 피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었다.</p>
<p>이들 사회파 영화에서 법정과 광장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반체제적 저항을 의미하는 광장 정치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이 있던 박근혜 정권기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이나 제작사의 영화는 제작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이 시기 영화 속 법정은 당시 정권의 검열과 기피의 대상인 광장 정치를 ‘합법적’으로 재현가능하게 하는 상징적 대리공간이 될 수 있었다. 한편 광장은 점차 ‘실화’를 표방한 정치영화의 주된 공간이 되어갔는데, 영화 속 재현된 1980년대의 광장은 2017년 관객들이 경험한 광화문 촛불광장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이는 ‘민주주의의 열린 공간’이라는 추상적 광장의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다.</p>
<p>이러한 작품의 기저에는 1980년대의 실패한 민주화 운동의 트라우마를 2010년대 실패한 진보 운동의 트라우마와 동일시하는 심리적 기제가 깔려있다. 본 연구를 통해 2010년대 사회파 정치영화가 ‘정치적 올바름’과 헌법적 상식을 강조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블랙리스트 시대의 검열을 벗어난 상상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탈정치적 대중영화라는 한계도 동시에 품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This paper aims to examine to the political unconsciousness of social movies that have caused social repercussions in the 2010s, and to study the social imagination of Korean films at that time.</p>
<p>Korean Movies such as &#x003C;The Attorney&#x003E;(2013), &#x003C;1987&#x003E;(2017) and &#x003C;The Taxi Driver&#x003E;(2017) reflect the ethos of civil society based on common sense and justice. The epic structure was the same as that of ordinary citizens, who move toward a public space (court, square) after awakening their political correctness. More than anything else, the fact that such films were based on “a historical fact” could have been a strategy to avoid censorship in the era of the blacklist.</p>
<p>In these social films, courts and squares have become places for democracy.</p>
<p>The conservative government of the time was tired of anti-government resistance and the politics of the square. Thus, films from directors and producers blacklisted were difficult to produce. That’s why the court in the movie during this period could become a symbolic proxy for the “legitimate” reenactment of the politics of the square, which was subject to censorship and avoidance by the regime of the time.</p>
<p>Meanwhile, the square has gradually become the main venue for political films that advocate “historic true stories.” The square of the 1980s, which appeared in the movies, will be connected to the Gwanghwamun candlelight square that audiences experienced in 2017. Furthermore, it was able to reach the concept of an abstract square as an “open space for democracy.”</p>
<p>At the foundation of these works is a psychological framework that equates the trauma of the failed democratic movement of the 1980s to the trauma of the failed progressive movement of the 2010s. Through this study, we were able to see that social political films in the 2010s were quite successful, emphasizing “political correctness” and constitutional common sense. But they also had limitations as “de-political popular films” that failed to show imagination beyond the censorship of the blacklist era.</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사회파 영화</kwd>
			<kwd>광장</kwd>
			<kwd>법정</kwd>
			<kwd>2010년대</kwd>
			<kwd>실화 소재 영화</kwd>
			<kwd>정치적 올바름</kwd>
			<kwd>헌법적 가치</kwd>
			<kwd>민주주의</kwd>
			<kwd>애도와 공감</kwd>
			<kwd>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kwd>
			<kwd>분별 있는 관찰자</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social films</kwd>
			<kwd>square</kwd>
			<kwd>court</kwd>
			<kwd>in the 2010s</kwd>
			<kwd>a true-life film</kwd>
			<kwd>political correctness</kwd>
			<kwd>constitutional value</kwd>
			<kwd>democracy</kwd>
			<kwd>mourning and sympathy</kwd>
			<kwd>a blacklist of cultural and artistic circles</kwd>
			<kwd>judicious spectator</kwd>
		</kwd-group>
	</article-meta>
</front>
<body>
<sec id="sec001" sec-type="intro">
<title>1. 서론</title>
<p>201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 비교적 가까운 현대사의 시기를 회고하며 재평가하는 사회적 상상력이 강하게 개입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쳐 제작된 한국영화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회의감과 민주주의적 가치 회복에 대한 열망을 내보이며 보다 사회적 상상력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p>
<p>사회파 영화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주된 소재로 하는 영화로서 불의나 부정의를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를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 시기 대중적 사회파 영화는 상상력이 가미되기 쉬운 장르영화에서 점차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한 진지한 “사회파 드라마”<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내지 정치영화로 변화해갔다.</p>
<p>지난 보수집권 10년의 시기 동안 한국사회는 실로 역동적이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 광우병 촛불집회가 발생했다. 촛불집회가 촉발된 계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의사표명이었지만, 100일 이상 집회가 지속되면서 점차 4대강 대운하 문제,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 정권에 반대하는 의제들이 결합되었다. 2009년 1월 도심재개발 사업 관련 철거문제로 인해 발생한 용산 참사에 이어 같은 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며 전 국민적 애도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2007년부터 진행되어온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은 2012년 대대적인 반대시위로 이어졌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참사의 수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2016년 9월 농민운동가 백남기 씨가 시위 강경 진압 도중 사망하였다. 같은 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촉발된 정권퇴진운동은 매주 토요일 광화문 및 전국에서 일어난 촛불집회로 이어졌고 결국 박근혜를 대통령 직에서 퇴진하게 만들었다.</p>
<p>근 10년의 시기동안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소통 가능한 정치에 대한 열망을 품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섰다. 이들이 만들어낸 ‘광장의 정동(affect)’은 이 시기 제작된 한국영화에 반영되어 왔으며 때로는 영화가 광장의 정동을 구성하는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p>
<p>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실화소재 사회파 드라마가 뚜렷한 대중적 흥행코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은 2013년 제작된 양우석의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에서부터다. 이 작품을 전후로 하여 2017년의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운전사&#x003E;</xref>에 이르기까지의 사회파 드라마는 정치영화의 외견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들은 국가상(國家象)의 파탄에 대한 절망감을 반영하는 한편 상실된 민주주의적·헌법적 가치에 대한 향수감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강한 지향을 반영하고 있었다.</p>
<p>역사적·국가적으로 예술을 인민에 봉사하도록 하는 지도적 도식<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의 대중영화들이 2010년대 등장하면서 1000만 관객의 시대를 열고 있다. 이 시대 정치영화의 외견을 띤 사회파 영화들은 이전 세대의 영화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 가령 군사정권 시대의 국책영화, 노골적인 정치 선전 영화를 한 축에 반사회적 상상력을 품은 미학적·정치적 전위(前衛)영화를 다른 한 축에 둘 때 이들은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하여 본 논문은 2010년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온 사회파 드라마의 흐름을 살펴본 후 이와 관련된 정치사회적 무의식을 살펴보려 한다. 본 연구의 주된 연구 대상은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 운전사&#x003E;</xref>이며, 이들이 등장한 한국영화사적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시기 비슷한 주제와 소재를 공유하는 영화들을 함께 언급할 것이다.</p></sec>
<sec id="sec002">
<title>2. 본론</title>
<p>“스펙터클은 인민을 위해 행해지며, 그 절대적인 질은 인민에게 미치는 효과에 의해서만 결정된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이러한 루소의 발언에서 바디우는 예술의 첫 번째 도식, 즉 예술의 좋은 본성이 예술 작품 안에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미치는 효과에 통해 전달된다는 ‘지도적(didactique) 도식’을 읽어냈다. 바디우는 마르크스주의를 지도적 도식과 연관 지으며 이를 사회주의 국가들의 (예술에 대한) 지령이나 탄압이 아니라 섬세하고 창조적인 브레히트의 사유 안에서 찾아내고자 한다. 바디우의 관점에서 브레히트는 스탈린화 된 플라톤주의를 행한 것이라 보이는데, 그가 비아리스토텔레스적인 예술적 창안을 통해 참(眞)의 외재적인 객관성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p>
<p>유사한 사고를 자크 랑시에르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문화적 비판 전통에서 성장한 랑시에르의 경험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전통에서 성장한 한국사회 비판적 대중의 경험은 일견 유사해 보인다. 그가 보기에 브레히트와 앙토냉은 각각 전자가 마르크스주의를 후자가 아방가르드를 대변하는 경우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단지 자리만 바꾼 채 복화술 하는 목소리 마냥 체계의 한가운데 존재한다. 랑시에르에 의하면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항의를 스펙터클로 만들고, 모든 스펙터클을 상품으로 만든다. 마르크스주의적 지혜(이 글에서는 이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각성이라 해도 좋겠다)는 항의를 공허함의 표현이면서 또한 죄책감의 증명으로 만든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p>
<p>예술을 재정치화하려는 의지는 다양한 전략과 실천 속에서 표명된다. 자크 랑시에르는 “모더니즘 패러다임에 대한 고발과 예술의 전복적 힘에 관한 지배적 회의주의의 시대가 가고, 예술이 경제적·국가적·이데올로기적 지배 형태에 답해야 한다는 사명이 곳곳에서 다시 주장되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고 언급한다. 관련하여 조강석은 최근의 한국문학과 관련하여 정치적 올바름과 윤리적 올바름에 대한 테제가 예술을 재정치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p>
<p>이러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하여 이 글은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지도적 도식의 영화들, 즉 의회정치의 상식에 기반한 계몽적 사회파 영화들이 대중들의 정치적 죄책감과 같은 정서를 활용한 스펙터클 영화로 제작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현실에 대한 성찰의 지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시기 한국영화가 역사적 실존 인물 내지 실제 사건을 가져와 어떻게 재현의 ‘사실주의’를 강조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중적 전략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p>
<sec id="sec002-1">
<title>2-1. 상실된 유토피아와 좌파적 멜랑콜리<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title>
<p>이번 장에서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사회의 사회적 분위기와 이례적인 영화적 현상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영화적으로 가공한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은 이후 한국 대중영화의 지형을 크게 뒤바꿔 놓은 작품이다. 이 영화가 천만 관객<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을 동원할 수 있던 동력은 한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연관 지어 해석될 수 있다.</p>
<p>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과반 이상의 지지율(51.55%)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다. 2위인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48.02%)과 근소한 차이였다. 그해 연말 뮤지컬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레미제라블&#x003E;(2012, 톰 후퍼)</xref>이 개봉하여 이듬해까지 총 59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국내 개봉 뮤지컬 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하였다. 뮤지컬 영화가 그토록 주목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못했던 문화예술계는 이를 ‘문화적 신드롬’으로 파악하며 여러 해석을 끌어냈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제18대 대선 정국 직후 패배감과 상실감에 젖어있는 상대 진영의 대중들에게 실패한 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레미제라블&#x003E;</xref>이 위안을 주었다는 해석이 그 하나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p>
<p>영화평론가 정한석은 대규모 뮤지컬 장르 영화인 이 작품이 “우리에게는 실패한 집단적 유토피아를 상기시키는 리얼리즘의 텍스트”가 되었음을 언급하였다. 그에 의하면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레미제라블&#x003E;</xref>은 ‘지나가버린 군중됨의 경험’을 일깨우고 그 집단적 경험의 기억을 불러와서 그 열기를 다시 한 번 데우는 데 일조하는 영화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p>
<p>광우병 촛불집회에 나섰던 대중들은 진보 정치에 대한 열망의 좌절을 경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으며, 이어진 대선에서 민주 세력이 석패하여 보수 정권이 정권을 이어갔다. 바로 그 시점에 개봉한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레미제라블&#x003E;</xref>은 실패한 급진 공화파의 혁명 시도를 웅장한 음악과 함께 보여주는 감성적 뮤지컬이었다. 영화의 엔딩 신은 혁명의 과정에서 죽은 자들이 소환되어 코뮌의 이상을 노래하는 합창의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영화의 신파적 감정은 극대화되었고 관객의 파토스는 강하게 추동되었다.</p>
<p>대중영화가 선사하는 신파와 애도의 정서는 영화적 흥행으로 거듭 이어졌다. 이듬해 1월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7번방의 선물&#x003E;(2013, 이환경)</xref>이 개봉하여 1,281만 명으로 예상을 뛰어넘은 흥행을 거두었다. 단순한 구도의 최루성 코미디 영화였지만 이 영화 역시 한국 사회에서의 애도와 위안의 코드로 읽힐 여지가 있었다. 영화 초반에 교도소의 담장을 넘지 못하는 노란 풍선이 등장하며 영화의 주인공은 딸만 바라보는 바보 아빠다. 노란색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하는 색으로 독해 가능하며, ‘바보’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별칭이기도 하다.</p>
<p><xref ref-type="bibr" rid="B008">&#x003C;7번방의 선물&#x003E;</xref>은 죽은 바보 아빠에게 딸이 보내는 사후적 애도의 영화다. 영화는 무구하고 헌신적인 죽은 바보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의 입장에 관객이 이입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한국사회가 성취하지 못한 정치적 좌절과 한국대중이 지켜내지 못한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애도의 알레고리로 읽힐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평가된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  한편으로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7번방의 선물&#x003E;</xref>은 법정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하다. 주인공 용구가 법정에서 불합리한 판결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고, 성인이 된 주인공의 딸이 변호사가 되어 모의 국민 참여 재판에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는 내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죽은 아버지의 억울함이 법적 진리를 통해 해소되는 형식을 취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레미제라블&#x003E;</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7번방의 선물&#x003E;</xref>은 영화가 제작된 본래 취지나 장르적 소비 행태와 무관하게 2012년 연말 대선정국을 경유하며 한국사회 구성원의 감성을 자극하는 촉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한석이 언급했던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레미제라블&#x003E;</xref>의 특징 중 ‘실패한 집단적 유토피아에 대한 상실감’과 ‘지나가버린 군중됨의 경험’은 한국사회에서 가까이는 1980년 ‘서울의 봄’에서 광주민주화항쟁 그리고 1987년 민주화대투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흐름 및 그 실패의 과정과 맞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p>
<p>그리고 <xref ref-type="bibr" rid="B008">&#x003C;7번방의 선물&#x003E;</xref>은 표층의 서사와는 상이한 지점인 대중적 무의식의 지평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집단심리를 강화하는 분위기와 맞닿을 수 있었다. 18대 대선정국에서 흥행한 두 영화의 키워드들을 뽑아보자면 ‘실패한 집단적 유토피아’, ‘군중됨의 기억’, ‘애도’, ‘위안’, ‘법적 정의’ 등을 들 수 있다.</p>
<p>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은 같은 해 2013년 12월에 개봉한 영화다. 총 1,137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대한민국 영화 흥행기록 9위를 기록하였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던 인간이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을 지닌 인간으로 부드럽게 전향한다는 이야기의 배후에는 실존인물 노무현의 일화와 부림사건을 비롯한 실제 1980년대의 근대사가 깔려있다. 검열, 고문, 폭력에 ‘헌법적 가치’로 맞서는 영화의 서사는 엔딩장면인 재판 신에서의 거대한 감정적 격동을 일구어냈다.</p>
<p>영화는 개인의 성공에 골몰하던 속물적 변호사가 인권적 가치에 눈을 뜨고 법정에서 시민의 대리인이 된다는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1980년대 이후 지난 30여 년간 한국사회의 삶을 되돌아보며 인간 보편의 존엄을 일깨워주었다. 영화는 대중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속물적으로 살아오면서 보다 근원적 가치, 즉 민주주의와 인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이타주의 등이 망각되었던 것은 아닌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었다. 관객은 영화 초반 속물적 소시민이던 주인공의 입장에 동조하여 점차 시민적 각성으로 나아가게 된다.</p>
<p>&#x003C;변호사&#x003E;의 흥행은 사회적 현상과 같았다. 관람의 경험 자체가 지난 시절에 대한 회심의 과정이 되는 동시에, 잃어버린 가치(민주주의, 헌법정신, 인권)에 대한 애도와 공감의 사건이 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소박한 이타주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공감의 에토스는 영화가 촉발시킨 대중적 감수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은 관객의 정동이 영화 흥행으로 연결됨을 입증하는 강력한 모델이 된 영화이기도 했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 이후에 한국영화계는 제2의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을 열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일련의 제한 조치로 인해 이의 실현은 쉽지 않았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총 9,473명을 목록화 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야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한 문화예술인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끊거나 검열 및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비밀리에 작성된 목록이다.</p>
<p>그럼에도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이 이후 한국 사회파 영화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사회파 영화로서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이 이후의 영화에 끼친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 가능하다. 첫 번째 특징은 대개 속물적 소시민이던 주인공이 점차 민주주의적 가치를 깨달아가는 각성과 성장의 서사를 취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과 계층 상승을 바라는 이념에 무구한 ‘중산층 소시민’이며 이들이 점차 현실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보편적 시민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p>
<p>두 번째 특징은 법정과 광장이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때 법정은 헌법<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인하는 공간이자 광장과 상징적으로 연관되는 공적 공간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p>
<p>세 번째 특징은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과 직접 연관되지는 않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에 호응하던 관객들이 느낄 법한 정치 불신(특히 검찰과 경찰 등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소재로 한 음모 영화가 제작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후의 영화들에서는 ‘선거’가 중요한 사태가 되어 총선이나 대선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세 번째 특징은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의 서사에 대한 영향 뿐 아니라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이 개봉하여 흥행했던 선거 시즌을 겨냥한 대중영화 제작관행이 자리 잡게 된다고 해석할 법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p></sec>
<sec id="sec002-2">
<title>2-2. 법정영화, 검경 불신과 변호인의 시대</title>
<p>이 시기 영화에서 정치는 선거로 환유되었으며 법정이 광장을 대체하게 되었다. 보수정권 기간 동안 민주적 가치의 퇴보에 대한 감각은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나 법적 정의를 소재로 한 법정영화를 통해 드러났다. 본 장에서는 선거영화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한 후 당대 본격적으로 제작된 법정영화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p>
<p>18대 대선을 통해 선거제도에 대한 환멸을 경험한 이후 선거를 소재로 한 극영화는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차용한 진지한 드라마로 나타나고 있었다. 2016년 개봉한 <xref ref-type="bibr" rid="B011">&#x003C;비밀은 없다&#x003E;(이경미)</xref>나 2017년 개봉한 <xref ref-type="bibr" rid="B010">&#x003C;특별시민&#x003E;(박인제)</xref>의 경우가 그러하다.</p>
<p>영화 <xref ref-type="bibr" rid="B011">&#x003C;비밀은 없다&#x003E;</xref>는 국회 입성을 노리는 정치인 부부의 딸이 총선 보름 전 실종되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개봉 전 영화는 홍보 카피를 “선거 D-15, 딸이 사라졌다!”로 잡았다. 정치 미스터리처럼 홍보되었지만 실상 이 영화는 식별 가능한 장르로 설명되지 않는 복합장르의 영화였으며<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비평에서 거둔 성과와 달리 흥행에서는 실패했다.</p>
<p><xref ref-type="bibr" rid="B010">&#x003C;특별시민&#x003E;</xref>은 서울시장 선거를 배경으로 한 정치 미스터리 영화였다. 작품은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 9단 변종구(최민식)가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선거 캠프 내부의 공작과 음모를 다뤘다. 달변가이며 쇼맨쉽에 능하지만 실제로는 타락한 정치인인 정종구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선거를 위해서는 불법과 편법을 손쉽게 자행한다. 특히 음주운전을 하다가 단속을 피하는 장면이나, 뺑소니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났다. 영화는 선거를 매개로 하여 타락한 정치인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의 몰락의 과정을 따라간다.</p>
<p>이 두 편의 영화의 공통점은 선거에 나선 주인공이 보수 정당의 후보인 남성이라는 점과, 영화 내에서 이들의 정치적 패착이 아내, 딸, 보좌진 등 주변의 여성캐릭터를 통해 부각된다는 점에 있다. 영화 속에서 정치적이거나 심리적인 변화를 보이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이 정치인의 가까이에 있는 여성들이기 때문이다.</p>
<p>선거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영화들은 2000년대 후반 주류상업영화 장르였던 한국형 액션 스릴러가 봉착한 난관을 소통과 민주적 공정성이라는 시대적 의제에 맞춰 만들어낸 수정주의 스릴러의 일종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 대한 영화적 관심은 대중영화 판에서의 흥행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p>
<p>한편 선거를 비롯한 정치 음모를 다룬 영화는 상업적 스릴러에서부터 저널리즘 다큐멘터리<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에 이르기까지 상당하지만 사회파 드라마인 정치영화의 범주를 넘어서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p>
<p>한편 정치 불신의 시대에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이 시기 가장 빈번하게 사회파 영화에 소환된 공간이 법정이라는 사실이다. 법정 스릴러는 정치 과잉의 시대에 관객이 즐기는 서사의 하나가 되었다. 진실을 추구하는 정의의 담론을 통해 관객은 현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었다. 정치적 올바름이 시대의 대중서사의 흥행 코드기 된 셈이다.</p>
<p><xref ref-type="bibr" rid="B006">&#x003C;부러진 화살&#x003E;(정지영, 2011)</xref>, &#x003C;도가니&#x003E;(황동혁, 2011),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양우석, 2013)</xref>, &#x003C;또 하나의 약속&#x003E;(김태윤, 2014), &#x003C;<xref ref-type="bibr" rid="B009">소수의견&#x003E;(김성제, 2015)</xref>, <xref ref-type="bibr" rid="B012">&#x003C;침묵&#x003E;(정지우, 2017)</xref>, &#x003C;재심&#x003E;(김태윤, 2017), &#x003C;증인&#x003E;(이한, 2018), &#x003C;어린 의뢰인&#x003E;(장규성, 2019) 등의 영화가 법정영화의 외견을 띠고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한편 박유희는 법정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이 법조인이거나 사법체계와 관련된 정의를 다루고 있는 사회물까지도 넓은 의미의 ‘한국 법정영화’로 개념화한다.<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2010년대 법정영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이다.</p>
<p>위의 영화 중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부러진 화살&#x003E;</xref>은 2007년의 일명 ‘석궁 사건’<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을, &#x003C;도가니&#x003E;는 2000년대 중반 일어난 광주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을, &#x003C;또 하나의 약속&#x003E;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의 실화를, <xref ref-type="bibr" rid="B009">&#x003C;소수의견&#x003E;</xref>은 2009년 발생한 용산 참사의 후일담을 소재로 가져온 영화다. 이들은 모두 실화를 소재로 한 ‘사회파 드라마’에 속하는 작품들이다.</p>
<p>이들 영화에서 법정은 블랙리스트 시대의 전형적인 상징 공간이 되었다. 광장의 정치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이 있던 박근혜 정권기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이나 제작사의 영화는 제작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이 시기 영화에 등장한 법정을 당시 재현되기 어려운 정치적 상징공간이던 ‘광장’을 합법적으로 재현가능하게 드려내는 상징적 대리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p>
<p>&#x003C;변호사&#x003E;에서 전형을 드러냈던 전통 속에서 법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수호하는 공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견지한 진실의 가치를 인정받는 공간이 되었다. 그 과정이 광장에서 외쳐지는 생경한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치밀하고 논리적인 법률적 설득의 과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의 시대의 영화 검열을 피하면서도 사회적 의제에 공감하는 관객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p>
<fig id="f001"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49&amp;imageName=jpn_2019_25_04_159_f001.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p>좌측부터 변호인을 주요 인물로 부각시킨 법정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부러진 화살&#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9">&#x003C;소수의견&#x003E;</xref></p>
</fig>
<p>이 시기 법정영화에서 다른 한편으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으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인’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변호인은 사회적 약자인 피고인의 편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대리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약자의 편이고 나아가 시민의 편이다. ‘변호인’은 영화가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경찰과 검찰에 대한 불신감을 강하게 반영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경찰이 조사한 형사 사건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고, 정권친화적인 검찰 권력에 맞서 치열한 법리투쟁을 벌이는 인물이다.</p>
<p>이러한 영화에는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는 ‘시적 정의’의 에토스가 깔려있다. 누스바움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공적(公的) 결정에는 문학적 정의가 절대로 필요하다. 누스바움이 예를 들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좋은 삶에 필수적인 공적인 상상의 힘을 키워준다. 누스바움은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에서 발전시킨 개념인 ‘분별 있는 관찰자(judicious spectator)’를 활용한다. 분별 있는 관찰자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에 더해,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능력을 동시에 가진 제3자를 뜻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능력 가운데 하나는 그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 각각의 처지와 느낌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이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p>
<p>말하자면 이 시기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을 위시로 한 법정영화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관객을 법정의 참관자로 소환하는, 즉 관객을 ‘분별 있는 관찰자’로 소환하는 유형의 영화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공적인 상상력을 계발시키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대중들의 사회적 공감능력 및 도덕적 능력을 발굴시킨다는 의미에서다.</p>
</sec>
<sec id="sec002-3">
<title>2-3. 공감의 열망과 광장의 애도</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을 기점으로 하여 ‘정치 신파’라 불릴만한 대중주의적 영화들이 연속으로 제작되었다. 대개는 1980년대를 소환하여 현재 보수 정권기에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하려 하는, 공감과 연민을 자극하는 영화들이다.</p>
<p>흥행에 성공한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의 전략을 잇는 대표적 영화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이나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 운전사&#x003E;</xref>다. 영화의 저변에는 한국의 동시대 시민사회가 느끼는 정치적 피로감과 우울을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회고를 통해 공감하고 위로받겠다는 영화적 무의식이 깔려 있다. 이들은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의 전략을 계승하는 한편 영화가 길어내는 공감의 에너지를 법정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장소인 ‘광장’ 쪽으로 이동시켰다.</p>
<p>우선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은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치사로 사망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연세대생 이한열이 사망하는 1987년 6.10 민주화항쟁의 여명까지를 다룬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이 한 명의 개인에 집중한 영웅주의 서사에 가까웠다면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은 특정한 주인공을 두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간 개별 인간들을 모두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별적이었다.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 운전사&#x003E;</xref>에서 평범한 택시 운전사는 광주로 내려가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의 동료가 된다. 즉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 운전사&#x003E;</xref>는 모두 특별한 개인보다는 보편 시민들, 즉 광장에 나서게 되는 보통사람 일반을 영화의 주된 인물로 부각시킨 셈이다.</p>
<p>이들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정치에 무관심했던 세속적 인간의 각성을 통한 소프트한 계몽의 기획이 그것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에서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그러했고,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에서는 연세대 87학번 연희(김태리)가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 운전사&#x003E;</xref>에서는 평범한 소시민 가장인 택시 운전사(송강호)가 그러한 인간의 유형이다. 영화는 이들을 따라 변호사 사무실, 방, 택시 등 개인의 공간에서 법정, 가두, 광장과 같은 공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관객은 이들에게 공감하며 심리적 동선을 함께 광장의 동료가 되며 시민으로 성장한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의 마지막 법정장면에서 관객은 송우석을 변호하는 99인 변호인의 자리에 서서 송우석을 지지하게 된다.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은</xref> 신입생 연희를 따라 마지막에는 시청 앞 버스에 올라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격동과 열망을 공유하게 된다.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운전사&#x003E;</xref>의 주인공은 외신언론인을 따라 간 광주의 금장로에서 처절한 ‘시민됨’을 경험한다.</p>
<fig id="f002"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49&amp;imageName=jpn_2019_25_04_159_f002.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p>광장의 스펙터클을 재현한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좌)와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운전사&#x003E;</xref>(우)</p>
</fig>
<p>사실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은 연대의식을 갖고 공적 장소로 나아가는 시점까지만 보여줄 뿐, 그 이후 민주주의적 가치 실현이 좌절된 실제 역사의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1980년대 광장과 법정을 2017년의 촛불 광장의 민주주의와 연결시켜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회고적 시선을 보여준다.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정치를 소재로 했지만 세심하게 조율된 탈정치적 상업영화라는 영화의 외견도 유사하다.</p>
<p>5.18 광주민주화항쟁을 경험한 평범한 외부인의 시선을 따라간 영화 &#x003C;택시운전사&#x003E;가 취한 방식도 마찬가지다. 소시민이 역사에 동참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정치적 급진성을 취해야 하는 장면에서 개그를 통한 이완과 재현의 트릭으로 저항감을 극소화하는 전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p>
<p>광주민주화운동, 부림사건 그리고 6.10 민주화항쟁 등 1980년대 역사적 사건이 대중영화의 소재로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10년의 보수정권 동안 사람들이 열망했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에토스와 맞닿아있다. 그런데 이러한 영화들이 블록버스터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내장하고 있는 탈정치적 드라마의 서사가 시대적 우울증과 조응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p>
<p>영화들의 배경으로 삼은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세대가 내건 진보적 정치의 의제는 좌절되었다. 짧았던 서울의 봄과 이어진 1980년 광주에서의 잔혹한 진압, 1987년 시청광장의 열망과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의 좌절은 시민사회 구성원에게 깊은 상실감을 심어주었다. 특히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은 비극적으로 사망한 특별한 개인이 경험했던 80년대를 소환하여 부재하는 가치를 조망하였다.</p>
<p>이들 영화가 자극한 감성은 1980년대와 2010년대의 시민사회의 열망을 연결짓는다. 이들 영화가 보이는 상실과 부재에 대한 정치적 트라우마는 2000년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열망과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에 대한 열망에서 극적으로 마주칠 수 있었다.</p>
<p>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은 이한열의 죽음과 패배한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상실감에서 대중적 에너지를 끌어와 2017년의 광장의 열기와 조응시킨다.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 운전사&#x003E;</xref>는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일어났던 참혹한 폭력과 탄압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에 맞섰던 평범한 시민들의 역량을 강조하며 광장의 정치적 역능을 상기시켰다.</p>
<p>영화는 좌절된 사건을 회고적으로 되돌아보며 향수에 젖는 방식으로 슬픔을 포장하며 관객들에게 감성적으로 파고들었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외형상 정치영화이자 사회파 드라마이며, ‘상식’이라는 가치로 이타주의적 공감을 요청하는 영화들이다.</p>
<p>기저에서는 미래에 대한 혁명적 전망 보다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격렬한 저항보다는 질서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상식이 강조되었다. 비폭력과 질서를 외치던 촛불광장의 분위기와 맞물리며 영화는 저편의 권위, 폭력에 대조되는 영화 속 주동인물(과 관객)의 합리성, 비폭력주의를 강조했다. 안전한 개혁에 대한 슬로건과 이타주의적 공감의 요청 속에 혁명과 전복에 대한 의지는 무의식적으로 억제되고 있었다.</p>
</sec>
</sec>
<sec id="sec003">
<title>3. 안전하고 위생적인 (탈)정치</title>
<p>2000년대 초기의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지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보수정권의 성립이 이루어진 2009년을 전후로 하여 한국사회의 영화제작 관행이 변화해왔다. 이 시기 한국의 대중영화는 정치적 올바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장한 드라마들에 관심을 보였다.</p>
<p>이러한 영화들은 영화 속 소시민에 동조한 관객들을 ‘분별 있는 관찰자’로 소환하여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상식에 대한 담지자로 만들어낸다. 이들은 가까운 과거인 1980년대를 소환하여 상실된 무언가에 대한 애도의 작업을 수행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하고 승인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영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죽은 자들을 딛고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확산시켰다.</p>
<p>역사의 선별적 소환, 개인 혹은 집단의 죽음에 대한 애도라는 반복된 형식 속에서 본래 그 사건들이 품었던 정치적 급진성은 탈색되었고, 결과적으로 영화들은 상업적으로 안전한 정치 신파로서 최종적인 대중신을 통해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흥행 전략을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었다.</p>
<p>광우병 촛불집회와 촛불시민혁명을 경유한 광장의 민주주의가 촉발한 ‘정동’의 역동성은 미래가 아니라 상실된 과거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재현하는 장면을 통해 공감과 승인, 그리고 상실에 대한 애도를 진행해왔다. 이는 특히 지난 2014년 한국사회가 경험한 슬픔의 격동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였다.</p>
<p>사회학자 김홍종은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의 ‘마음의 부서짐(heartbreak)’ 개념을 통해 이 시기 한국사회의 우울증을 분석한다. 모순들과 적대, 이들이 구성하는 정치적인 것의 무게에 짓눌려 존엄을 손상당한 자들에게 주권자들의 우는 얼굴을 발견할 수 있으며, 국가신화의 파상이라는 공통체험을 야기한 경험 속에서 ‘국가’의 의미에는 소위 ‘87년 체제’의 성취에 뿌리 내린 주권재민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의 가치가 내장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사라진 곳에 국가와 대치하던 주권적 우울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역시 1980년대를 한국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려할 때 되돌아가야 할 시기로 상정한다. 이어진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운전사&#x003E;</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역시 이 시대를 민주주의적 열망이 격동하던 시대로 회고한다. 이러한 승인 속에는 광장의 민주주의가 안전한 민주주의로 시민의 합의와 공감이 가능한 이타적인 것이라는 정동적 출렁임이 놓여있다.</p>
<p>이러한 영화들은 역사적 실존 인물 내지 실제 사건이라는 디테일을 가져와 재현의 ‘사실주의’를 강조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중 추수의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문화예술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 시기 정치는 자율적인 상상의 영역으로 재현되기 어려웠으며 그 결과 이들은 ‘실화’에 기반하여 서사에 정당성을 얻으려 하였고 온건 개혁 성향의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p>
<p>이 시기 사회파 정치영화는 시민들의 열망을 반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광장의 정동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는 시대적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상업적 정치영화가 반복되는 현상에 대한 반성적 사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p>
<p>알랭 바디우의 장 주네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며 이러한 과정에서 물신화되고 있는 것의 지위를 탐문할 때가 되었다. 장 주네는 자신의 책 서문에서 그의 시대의 시인들이 인민, 자유 ,혁명에 대한 작업에 열중해 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의 희곡 『발코니』의 한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p>
<p>　</p>
<p>　　자유, 인민, 덕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사람들이 이것을 칭송한다면 어떻게 이것들을 사랑할 것인가! 만약에 사람들이 이것들을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그 생생한 현실 속에 그냥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시와 이미지를 준비한다면 그것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하는 것입니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p>
<p>　</p>
<p>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장 주네의 희곡을 분석하면서 바디우는 혁명의 이념이 부재하게 된 이후로 우리의 세계는 시장민주주의라는 합의적이고 외설적(obscene)인 이미지 하에 살고 있음을 언급한다. 모두에게 편안한 민주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체계 하의)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디우는 오늘날 유일하게 급진적인 비판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라 언급한다. 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도로 창의적인 비판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 우리는 이미지들로 가득한 유곽에 머물게 되고 말 뿐이라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p>
<p>다시금 앞선 영화들을 살펴보면 각 클라이막스에서 법정, 금장로 및 광장의 스펙터클이 제시되며 이후 정치적 해방의 순간 즉 정치적 트라우마의 카타르시스적 해소가 일어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인민을 위한 스펙터클’(루소를 경유한 바디우) 내지 죄책감에 기반한 마르크스주의적 스펙터클(랑시에르)을 활용한 심리적 해소법인 셈이다. 이들 영화는 민주주의, 헌법적 가치, 보편적 상식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낸다. 바디우는 이렇게 제공되는 것들을 유곽의 시뮬라크르라 명명한 바 있다.</p>
<p>사실 광주는,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은, 가혹한 고문과 탄압은 그 진리가치를 보유한 상태로 안전하게 재현될 수 없다. 하지만 영화들은 최대한의 인간적 위엄을 갖추어 그러한 역사적 현장을 재현 할 수 있다 주장하는데, 그 태도의 기저에는 역사적 진실을 스펙터클로 가시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까지 ‘분별 있는 관찰자’로 소환된 관객은 영화 주인공의 소시민적인 각성을 통해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게 된다. 관객은 가두와 대공 분실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고통을 공감각하며 죄책감에 강하게 연루되다가 이윽고 주인공과 함께 민주주의의 열린 공간으로 나아간다.</p>
<p>영화 관람의 과정은 영화의 무의식이 지닌 부드러운 계몽의 기획을 따르고 있다. 관객은 보이는 장면을 신뢰하며 그것의 조작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정치적 올바름’ 내지 ‘법적 정의’는 이들 영화에서 일종의 ‘무량한 척도(measureless measure)<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로 기능한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고문, 구타, 학살당하는 시민들의 고통은 바디우의 표현을 빌자면 진정으로 대면되기보다 연민의 수사 속에 용해되어 버린다.<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p>
</sec>
<sec id="sec004" sec-type="conclusions">
<title>3. 결론을 대신하여</title>
<p>정치영화와 법정영화를 표방한 최근의 작품 중에 <xref ref-type="bibr" rid="B011">&#x003C;비밀은 없다&#x003E;(2016)</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12">&#x003C;침묵&#x003E;(2017)</xref>은 이러한 흐름에서 돌발적이다. 이경미 감독의 <xref ref-type="bibr" rid="B011">&#x003C;비밀은 없다&#x003E;</xref>는 일견 선거 기간 자행된 정치 음모로 오인될 법한 정치인의 딸의 실종사건을 다루고 있다. 1980년대를 회고한 사회파 정치영화는 사적영역에서 출발해 공정영역으로, 불의에서 정의로, 무지와 부조리에서 합리로 나아간다. <xref ref-type="bibr" rid="B011">&#x003C;비밀은 없다&#x003E;</xref>는 그 반대다. 공적 영역에서의 관심은 사적 영역으로 이행하며 사건은 점차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 광기로 치닫는다. 이 영화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합의된 성숙한 시민적 관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그러한 윤리적 판단에 무심하기조차 하다. 해당 시기 정치 영화들이 대개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남성 집단(법조인들, 언론인들, 택시운전기사들)의 합리성에 기반한 유통을 전제로 한 점과 상이한 지점이다.</p>
<p>정지우 감독의 <xref ref-type="bibr" rid="B012">&#x003C;침묵&#x003E;</xref>은 반재벌적 정서를 기반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법정영화의 외견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진실은 상식적 합의에 의해 규정될 수 없으며,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더 거대한 진리에 봉사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 <xref ref-type="bibr" rid="B012">&#x003C;침묵&#x003E;</xref>은 우리가 보는 이미지를 신뢰할 수 있는가를 탐문한다.</p>
<p>이들의 기저에는 다음과 같은 불편한 질문들이 놓여있다. 영화는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가? 관객은 민주적인가? 합의된 상식적 가치가 존재하는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진실이 대중을 위한 스펙터클로 재현 가능한가?</p>
<p>오늘날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사회파 드라마는 신파성을 내장한 정치영화로서 재현의 역능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합의 가능한 국가 민주주의(안전한 개혁)라는 욕망을 채워주는 오늘날의 정치영화는 포스트 IMF시대 작가주의 영화의 미학적 실험 속에 잠재되어 있던 근본주의적 정치성과 극점에 위치하고 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 현상이 일회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운전사&#x003E;</xref>로 이어지는 현상, 그리고 진실과 정의를 탐문하던 법정영화들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로 이어지는 법정 드라마의 유행 속에서 우리는 2010년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주류서사로 자리잡아가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영화는 평범한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이 민주주의나 헌법적 가치, 인권이라는 추상적 가치에 자각해가며 주위의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가는 각성과 성장의 서사를 취하고 있다.</p>
<p>독립영화 감독이자 영화칼럼니스트 김곡은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를 돌아보며 ‘관변 히어로’가 우리사회의 증후적 현상임을 지적한다.<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 진보적 문화예술계가 소위 ‘국뽕’영화라 칭한 복고적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강조한 영화들의 다른 축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과 &#x003C;명량&#x003E;과 같은 영화는 합리적이면서도 진지한 외견을 띠고 ‘관변에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p>
<p>정치성의 측면에서 2010년대 사회파 드라마의 대조적 참조점은 &#x003C;연평해전&#x003E;(2015)이나 &#x003C;인천상륙작전&#x003E;(2016)처럼 조악한 프로파간다의 외견을 띤 소위 ‘국뽕영화’기보다 &#x003C;복수는 나의 것&#x003E;(2002)나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자가당착&#x003E;(2010)</xref>과 같은 포스트 IMF시대의 영화로 보아야 한다. 박찬욱의 &#x003C;복수는 나의 것&#x003E;(2002)에서 혁명적 무정부주의 동맹은 불온한 것이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택시운전사&#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1987&#x003E;</xref>에서 비폭력적이고 합리적인 시민은 안전한 것이다. 공권력을 희롱하고 국가지도자를 희화화하여 제한상영가 상영 및 검열 논쟁을 벌인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x003E;(김선)</xref>나 청소년관람불가 정치-아방가르드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철의 여인&#x003E;(김곡, 김선)</xref>은 온건한 전체관람가 사회파 영화와 대척점에 놓여있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p>
<p>블랙리스트 시대 제작된 사회파 정치영화들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언급한 ‘키치적인 것’에 가까워보인다. 그린버그는 키치를 보편적 문해력의 산물이자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대량생산품으로 보고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대중예술을 허깨비로 보았다. 키치는 아카데미화 되 시뮬라크르를 원료로 사용하는데, 그러한 키치의 일부는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적합한 높은 수준의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만적인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p>
<p>사회파 정치 영화들은 지난 보수 정권기 검열에 대한 사고를 내면화하여 이를 웰 메이드의 외견으로 선보여 왔다. 이들은 상식적 공감을 표방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소프트한 계몽(소시민에서 평균적 민주 시민으로의 각성)의 기획을 보이며 시민 일반을 정치적 미성숙의 단계에 머문 균질한 존재로 규정한다. 이들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오가면서, 허구적으로 재현된 스펙터클을 제시하며 사실의 유일성에서 이데올로기적 메시지의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상식, 민주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이 작품들은 관객의 참여와 공감을 요청한다. 한편 검열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불온한 정치영화들은 시민성을 규정될 수 없는 자율적인 것으로 전제한다.</p>
<p>정치적 상업영화들이 필견의 영화가 되었고 광장에서는 비폭력과 질서를 통한 안전한 개혁과 헌법적 가치가 존중된다. 오늘날 1,000만 관객의 사회파 드라마는 재현의 역능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한편 영화 자체의 소재가 지닌 정치적 불온성을 부드럽게 완화시킨 격동적 신파물로 흥행을 견인했다.</p>
<p>푸코는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이자 숙고된 비순종의 기술이며, 진실을 둘러싼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 속에서 탈예속화를 그 본질적 기능으로 삼는 것을 비판의 본질로 보았다.<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합의 가능한 국가 민주주의’라는 허상 혹은 오늘날의 안전한 탈정치적 정치영화는 포스트 IMF시대의 미학적 실험 및 전위적 독립영화 속에 잠재된 근본주의적 정치성과는 상이한 위상학 속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가. 2010년대 사회파 정치영화는 ‘정치적 올바름’과 헌법적 상식을 강조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블랙리스트 시대의 검열에 익숙한 탈정치적 대중영화라는 한계도 동시에 품고 있었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 이 글의 연구대상 이전에 제작된 2000년대 사회파 영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00년대 중반 한국의 사회파 영화는 국민의 정부(1997-2002)와 참여정부(2002-2007) 시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이나 오랜 집권해온 보수정당 정권에 비해 넓어진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었던 분위기 탓이 크다.</p>
<p>이 시기 상대적으로 가까운 역사적 사실을 소환하여 사회적 상상력을 가미해 제작한 작품으로는 유신정권 말기 박정희 서거 사건을 다룬 임상수의 정치 블랙코미디 &#x003C;그때 그 사람들&#x003E;(2007), 정치적 금제의 소재였던 광주민주화운동을 대중영화의 최루성 소재로 소환하였던 &#x003C;화려한 휴가&#x003E;(2007), 대공수사에 저항하는 운동권 학생의 투신을 소재로 하여 여기에 개인의 몽환적 기억을 가미한 황규덕의 &#x003C;별빛 속으로&#x003E;(2007)과 같은 작품이 있다. 각각 블랙코미디, 사회파 드라마,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로 제작된 이들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제작되어 왔다.</p>
<p>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제작된 사회파 정치영화의 분명한 차별점은 ‘실화의 진지한 재현’에 놓여있다. 그런 탓에 이 시기 영화는 장르적 스타일보다는 사실주의적 사회파 드라마의 외견을 띠게 되는 경향이 강했다. 2007년부터 이어진 보수 정권기에는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일어났던 현대사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1990년에 일어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사건을 소재로 한 박인제의 &#x003C;모비딕&#x003E;(2011), 2007년 일명 ‘석궁 사건’을 소재로 하여 불의한 사법부와 맞서는 개인의 투쟁을 다룬 정지영의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부러진 화살&#x003E;(2012)</xref>, 정치인 김근태가 민주화 운동 시 청년연합사건으로 받은 고문을 소재로 한 정지영의 &#x003C;남영동 1985&#x003E;(2012) 등이 대표적이다.</p></fn>
<fn id="fb002"><label>2)</label><p>영화에서 드라마(drama)란 갈등을 감당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진지한 분위기와 주제를 전개하는 제작물을 지칭한다. 이 글에서 사회파 드라마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진지한 분위기와 주제의 영화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2000년대 후반기 한국의 주류 사회파 드라마는 ‘정치영화’의 외견을 띠고 있다.</p>
<p>이 글에서 다루는 사회파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으로 일컬어지는 영화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잔 헤이워드는 사회적 리얼리즘 미학에 기반한 영화사 상의 세 가지 영화운동을 언급하며 이러한 경향을 ‘사회 문제 영화’라 지칭한다. 그 세 가지 경향은 194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운동, 1950년대 후반 영국의 프리시네마와 영국 뉴웨이브, 1960년대 프랑스에서 느슨하게 전개된 시네마 베리테 그룹이다. <xref ref-type="bibr" rid="B021">수잔 헤이워드, 『영화사전』, 이영이 외 역, 한나래, 2012, 195-196쪽</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바디우는 예술과 철학의 관계맺음을 보여주는 세 가지 도식을 설명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를 예술의 기능에 대한 세 가지 도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지도적(didactique)도식으로, 이는 예술의 교훈적·계몽적 속성과 연관된다. 둘째는 예술만이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낭만적 도식이다. 세 번째는 예술의 규범이 감정의 다스림에 있어서 유용하다고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인 고전적 도식이다. 이 경우 맑스주의는 지도적인, 정신분석은 고전적인, 하이데거의 해석학은 낭만적인 도식과 연관된다. <xref ref-type="bibr" rid="B026">알랭 바디우, ｢예술과 철학｣, 『비미학』, 장태순 역, 이학사, 2010, 10-34쪽</xref> 참고.</p></fn>
<fn id="fb004"><label>4)</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알랭 바디우, ｢예술과 철학｣, 『비미학』, 장태순 역, 이학사, 2010, 13쪽</xref>에서 재인용.</p></fn>
<fn id="fb005"><label>5)</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알랭 바디우, ｢예술과 철학｣, 『비미학』, 장태순 역, 이학사, 2010, 17-18쪽</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자크 랑시에르, ｢비판적 사유의 재난｣, 『해방된 관객』, 양창렬 역, 현실문화, 2016, 50쪽</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자크 랑시에르, ｢정치적 예술의 역설｣, 『해방된 관객』, 양창렬 역, 현실문화, 2016, 73쪽</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29">조강석, ｢메시지의 전겅화와 소설의 ‘실효성’-정치적,윤리적 올바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단상｣, 『문장웹진』, 2017.4.1. http://webzine.munjang.or.kr/archives/139778(검색일: 2019.11.11)</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본 글에서 ‘좌파적 멜랑콜리’는 발터 벤야민의 용례를 따른다. 벤야민은 자신의 당대에 급진적으로 보이던 특정한 예술적 시도를 ‘반동적’이라 비판한 바 있다. 그는 틀에 박힌 소시민 비판을 일삼았던 시인 케스트너를 ‘좌파 근본주의der linke Radikalismus’의 신봉자라 보았다. 좌파 근본주의는 냉소적이며 조롱하는 말에는 적극적이지만 완강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만다. 실천적 무기력과 방향상실, 무자비한 공격성, 무의미, 허무 등은 좌파 멜랑콜리에 빠진 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이다. 벤야민은 사뭇 비판적인 입장에서 좌파 멜랑콜리를 개념화하였으며, 좌파적 멜랑콜리의 문학자나 저널리스트가 실상은 붕괴해 가는 부르주아 계층의 프롤레타리아적 모방을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벤야민이 매 경우 파시즘의 발흥이 실패한 혁명을 증언한다고 할 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좌파의 멜랑콜리가 좌파적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xref ref-type="bibr" rid="B020">발터 벤야민, ｢생산자로서의 작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2007, 253-263쪽</xref> 참조.</p></fn>
<fn id="fb010"><label>10)</label><p>이 작품은 1,218만 명을 동원하여 역대 한국박스오피스 13위의 흥행을 거두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uri>http://www.kobis.or.kr/kobis/business/stat/boxs/findFormerBoxOfficeList.do</uri>) 참고.</p></fn>
<fn id="fb011"><label>11)</label><p>&#x003C;레미제라블 500만 관객 돌파. 팍팍한 삶을 치유하다&#x003E;, 『한국경제』, 2013.1.18.; &#x003C;문재인 지지자들이 레미제라블을 봤다고?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x003E;, 『뉴시스』, 2013.7.15.; &#x003C;젊은 층은 왜 영화 &#x003C;레미제라블&#x003E;에 열광하는가&#x003E;, 『주간경향』, 2013.1.2. 참조.</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정한석, &#x003C;군중의 기억으로 ‘따고 들어가’다&#x003E;, 『씨네21』, 2013.2.7.</xref> 이 글에서 정한석은 영화 &#x003C;레미제라블&#x003E;이 양식화된 뮤지컬 장르의 전형으로 보자면 특이하게도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감독인 톰 후퍼는 통상 연기와 녹음을 따로 하는 뮤지컬 영화와 달리 배우들이 현장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게 하는 방식의 라이브 형식에다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하는 송 스루(sung-through) 방식을 결합시켰다. 정한석은 핸드 헬드를 활용한 촬영이 결합하여 뮤지컬에 리얼리즘을 증폭시키며, 착각에 빠진 리얼리즘 무드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적 통각을 자극하는(그것을 위안이라 느끼게 하는) 가설이 성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2">송효정, &#x003C;1월의 크리스마스 선물 &#x003C;7번방의 선물&#x003E;&#x003E;, 『씨네21』, 2013.1.23.</xref></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을 통해 영화계 전체가 좌편향 되었다고 보고 있던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은 정보보안국 산하에 ‘엔터테인먼트’ 파트(일명 엔터팀)를 두고 진보성향의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을 사찰하고 우익적 색채가 짙은 영화 제작을 기획하였다. 국정원 내 엔터팀에서는 유독 <xref ref-type="bibr" rid="B001">&#x003C;변호인&#x003E;</xref>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찰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영화 감독을 섭외해 애국영화를 만들면 지원하겠다는 의향을 보였다고 한다. 김완, 정완봉, 하어영, <xref ref-type="bibr" rid="B014">김성훈, &#x003C;국정원 ‘엔터팀’,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도 안보를 할 수 있다”&#x003E;, 『씨네21』, 2017.9.10.</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마사 누스바움은 헌법이 ‘인류애의 정치’와 매우 깊은 관련성을 지닌 분야라는 점에 주목했다. 헌법이란 우리 모두가 시민으로 누리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를 다루는 법이며, 정치적 공존을 이해하고 그 근저에 있는 목표를 말로 표현해내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xref ref-type="bibr" rid="B017">마사 누스바움, 『혐오에서 인류애로, 성적 지향과 헌법』, 강동혁 역, 뿌리와이파리, 2016, 31쪽</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이 작품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버와 언더를, 냉혹한 합리와 신비주의적 무속을 마구 뒤섞어 경험해보지 못한 장르를 만들어냈다”(송효정), “한국 스릴러의 많은 관성을 찢어버리고, 자매애와 모성애의 틀마저 구겨버리고, 그 틈으로 억압된 것들을 복권시킨 붉은 비명 같은 영화”(김혜리), “학원폭력, 부르주아지의 허위의식, 정치권력의 치졸함, 중산층 가정의 천박한 가족사 등 현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문제적 요소들의 종합선물세트”(김지미)라는 평가를 들으며 주목받았다. &#x003C;2016 한국영화 베스트5&#x003E;, 『씨네21』, 2016.12.19.</p></fn>
<fn id="fb017"><label>17)</label><p>이 글에서는 언론인 출신이 제작한 저널리즘에 가까운 다큐멘터리를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로 개념화한다. 이 시기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로는 18대 대선의 선거부정을 소재로 한 음모론 기반의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로는 언론인 김어준이 총 제작을 맡은 &#x003C;더 플랜&#x003E;(최진성, 2017)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보수정권 시대 정치 음모를 다룬 &#x003C;다이빙 벨&#x003E;(이상호, 2014), &#x003C;천안함 프로젝트&#x003E;(백승우, 2013), &#x003C;자백&#x003E;(최승호, 2016), &#x003C;그날, 바다&#x003E;(김지영, 2018), &#x003C;7년, 그들이 없는 언론&#x003E;(김진혁, 2017), &#x003C;공범자들&#x003E;(최승호, 2017), &#x003C;저수지 게임&#x003E;(최진성, 2017)의 경우가 있다. 이 영화에서 제작이나 감독을 맡았던 김어준, 이상호, 최승호, 김진혁 등은 모두 언론인 출신이다.</p></fn>
<fn id="fb018"><label>18)</label><p>이러한 법정영화 붐의 분위기는 TV법정드라마로 이어졌다. &#x003C;동네 변호사 조들호&#x003E;(2016), &#x003C;검법남녀&#x003E;(2018), &#x003C;무법변호사&#x003E;(2018), &#x003C;미스 함무라비&#x003E;(2018), &#x003C;친애하는 판사님께&#x003E;(2018), &#x003C;스위치&#x003E;(2018), &#x003C;슈츠&#x003E;(2018)등은 기존 수사물에 내장된 추리 서사와 2010년대 이래 대중서사가 된 정치적 올바름의 에토스를 결합시킨 텔레비전 드라마이다. 법정영화가 대개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법조인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켰다면, 법정 TV드라마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주인공 혹은 적대적 악인으로 등장시켰다.</p></fn>
<fn id="fb019"><label>19)</label><p>여기서 넓은 의미의 한국 법정영화로 언급된 작품은 &#x003C;부당거래&#x003E;(류승완, 2010), &#x003C;내부자들&#x003E;(우민호, 2015), &#x003C;더 킹&#x003E;(한재림, 2016) 등이다. <xref ref-type="bibr" rid="B019">박유희, ｢한국 법정영화의 젠더 보수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어문논집』 84권, 민족어문학회, 2018, 146쪽</xref>.</p></fn>
<fn id="fb020"><label>20)</label><p>1995년 성균관대학교 본고사에서 출제되었던 수학 문제 오류와 관련되어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교수지위를 상실한 전직 교수가 민사소송을 담당했던 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석궁 테러를 가해 실형을 받았던 사건을 지칭한다.</p></fn>
<fn id="fb021"><label>2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마사 누스바움, 『시적정의』, 박영준 역, 궁리, 2013, 159-170쪽</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김홍종, ｢마음의 부서짐-세월호 참사와 주권적 우울｣, 『사회와 이론』 26, 2015, 172-181쪽</xref>.</p></fn>
<fn id="fb023"><label>23)</label><p> Jean Genet, <italic>Le balcon</italic>; <xref ref-type="bibr" rid="B024">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라피』, 강현주 역, 북노마드, 2015, 47-48쪽</xref>에서 재인용.</p></fn>
<fn id="fb024"><label>24)</label><p><xref ref-type="bibr" rid="B024">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라피』, 강현주 역, 북노마드, 2015, 40-42쪽</xref>.</p></fn>
<fn id="fb025"><label>25)</label><p>무량한 척도(measureless measure)라는 표현은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에서 아우슈비츠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알랭 바디우의 해석이 개입된 표현이다. <xref ref-type="bibr" rid="B025">알랭 바디우, 『바그너는 위험한가』, 김성호 역, 북인더갭, 2012, 76쪽</xref>.</p></fn>
<fn id="fb026"><label>26)</label><p><xref ref-type="bibr" rid="B024">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라피』, 강현주 역, 북노마드, 2015, 118쪽</xref>.</p></fn>
<fn id="fb027"><label>27)</label><p>탐욕적 재벌인 주인공의 연인이 살해되자 그의 딸이 유력한 용의자로 부각된다. 영화는 이 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나쁜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은 법정드라마처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자행된다. 여기까지라면 영화는 진실이 규명되는 승리의 서사다. 하지만 영화는 이후 불필요해 보이는 에피소드를 연장해 보여주며 사실을 규명하는 것,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질문을 던진다.</p></fn>
<fn id="fb028"><label>28)</label><p>비판적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 본문을 직접 인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변에의 의지’ (‘힘에의 의지’ 니체 땡큐)는 여전히, 한국 히어로가 겪어왔던 오욕과 피멍의 역사적 문맥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역사적 문맥이 증거하는 것은, 한국 히어로는 언제나 일그러진 허상으로서만 실존했다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래서 소녀 감히 우려되옵니다. 최근의 관변적 시도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에 각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리더십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도리어 눈감기 위해서 시도되는 상상력의 궁여지책은 아닌가, 리더십의 복원을 핑계로 리더십의 대중 장악력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 할리우드가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마구잡이로 소환했던 것처럼, 한국 영화계가 관변 히어로들을 마구잡이로 소환하는 것은 아닌가.” <xref ref-type="bibr" rid="B013">김곡, &#x003C;우리 시대 진짜 영웅은 누굴까&#x003E;, 『씨네21』, 2014.9.5.</xref></p></fn>
<fn id="fb029"><label>29)</label><p>필자는 다른 지면에서 사실주의 및 정치적 올바름에 긴박된 사회파 영화의 대척점에 놓인 포르노-프로파간다 양식의 독립영화에 주목하며 앞선 양식을 키치에 뒤의 양식을 아방가르드에 비한 바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23">송효정, &#x003C;불온하고 장난스런 노이즈&#x003E;, 『문장웹진』, 2018.4.1.(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41927. 최종접속일 2019.11.11)</xref></p></fn>
<fn id="fb030"><label>30)</label><p>클레멘트 그린버그, ｢아방가르드와 키치｣, 『예술과 문화』, 조주역 역, 경성대학교출판부, 2004, 13-33쪽.</p></fn>
<fn id="fb031"><label>3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8">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오르트망·심세광·전혜리 역, 동녘, 2019, 47쪽</xref>.</p></fn>
</fn-group>
<ref-list>
<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기본자료</title>
</ref-list>
<ref-list><title>*1차 자료</title>
<!-- 〈변호인〉(2013, 양우석)-->
<ref id="B001">
<label>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양</surname><given-names>우석</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3</year>
<source>변호인</source>
</element-citation>
</ref>
<!-- 〈1987〉(2017, 장준환)-->
<ref id="B002">
<label>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장</surname><given-names>준환</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7</year>
<source>1987</source>
</element-citation>
</ref>
<!-- 〈택시운전사〉(2017, 장훈)-->
<ref id="B003">
<label>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장</surname><given-names>훈</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7</year>
<source>택시운전사</source>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title>*2차 자료</title>
<!-- 〈철의 여인〉(2009, 김선·김곡)-->
<ref id="B004">
<label>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선</given-names></name>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곡</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9</year>
<source>철의 여인</source>
</element-citation>
</ref>
<!--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2009, 김선)-->
<ref id="B005">
<label>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선</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9</year>
<source>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source>
</element-citation>
</ref>
<!-- 〈부러진 화살〉(2012, 정지영)-->
<ref id="B006">
<label>6</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지영</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source>부러진 화살</source>
</element-citation>
</ref>
<!-- 〈레미제라블〉(2012, 톰 후퍼)-->
<ref id="B007">
<label>7</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후퍼</surname><given-names>톰</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source>레미제라블</source>
</element-citation>
</ref>
<!--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
<ref id="B008">
<label>8</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이</surname><given-names>환경</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3</year>
<source>7번방의 선물</source>
</element-citation>
</ref>
<!-- 〈소수의견〉(2015, 김성제)-->
<ref id="B009">
<label>9</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성제</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5</year>
<source>소수의견</source>
</element-citation>
</ref>
<!-- 〈특별시민〉(2016, 박인제)-->
<ref id="B010">
<label>10</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인제</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6</year>
<article-title>박인제</article-title>
<source>특별시민</source>
</element-citation>
</ref>
<!-- 〈비밀은 없다〉(2016, 이경미)-->
<ref id="B011">
<label>1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이</surname><given-names>경미</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6</year>
<source>비밀은 없다</source>
</element-citation>
</ref>
<!-- 〈침묵〉(2017, 정지우)-->
<ref id="B012">
<label>1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지우</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7</year>
<source>침묵</source>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title>2. 논문과 단행본</title>
<!-- 김  곡, 〈우리 시대 진짜 영웅은 누굴까〉, 『씨네21』 2014.9.5.-->
<ref id="B013">
<label>1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person-group>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곡</given-names></name>
</person-group>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4-09-05">2014.9.5</date-in-citation>
<source>우리 시대 진짜 영웅은 누굴까</source>
<publisher-name>씨네21</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김성훈, 〈국정원 ‘엔터팀’,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도 안보를 할 수 있다”〉, 『씨네21』, 2017.9.10.-->
<ref id="B014">
<label>1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person-group>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성훈</given-names></name>
</person-group>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7-07-10">2017.9.10</date-in-citation>
<source>국정원 ‘엔터팀’,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도 안보를 할 수 있다”</source>
<publisher-name>씨네21</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김홍종, ｢마음의 부서짐—세월호 참사와 주권적 우울｣, 『사회와 이론』 26, 2015, 143-186쪽.-->
<ref id="B015">
<label>1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홍종</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5</year>
<article-title>마음의 부서짐—세월호 참사와 주권적 우울</article-title>
<source>사회와 이론</source>
<volume>26</volume>
<fpage>143</fpage><lpage>186</lpage>
</element-citation>
</ref>
<!-- 마사 누스바움, 『시적정의』, 박영준 역, 궁리, 2013.-->
<ref id="B016">
<label>16</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누스바움</surname><given-names>마사</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영준</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3</year>
<source>시적정의</source>
<publisher-name>궁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마사 누스바움,, 『혐오에서 인류애로, 성적 지향과 헌법』, 강동혁 역, 뿌리와이파리, 2016.-->
<ref id="B017">
<label>17</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누스바움</surname><given-names>마사</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강</surname><given-names>동혁</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6</year>
<source>혐오에서 인류애로, 성적 지향과 헌법</source>
<publisher-name>뿌리와이파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오르트망·심세광·전혜리 역, 동녘, 2019.-->
<ref id="B018">
<label>18</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푸코</surname><given-names>미셸</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심</surname><given-names>세광</given-names></name>
<name><surname>전</surname><given-names>혜리</given-names></name>
</person-group>
<collab collab-type="translator">오르트망</collab>
<comment>역</comment>
<year>2019</year>
<source>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source>
<publisher-name>동녘</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박유희, ｢한국 법정영화의 젠더 보수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어문논집』 84권, 민족어문학회, 2018, 139-189쪽.-->
<ref id="B019">
<label>19</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유희</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8</year>
<article-title>한국 법정영화의 젠더 보수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article-title>
<source>어문논집</source>
<publisher-name>민족어문학회</publisher-name>
<volume>84권</volume>
<fpage>139</fpage><lpage>189</lpage>
</element-citation>
</ref>
<!-- 발터 벤야민, ｢생산자로서의 작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2007.-->
<ref id="B020">
<label>20</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벤야민</surname><given-names>발터</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반</surname><given-names>성완</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편역</comment>
<year>2007</year>
<chapter-title>생산자로서의 작가</chapter-title>
<source>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source>
<publisher-name>민음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수잔 헤이워드, 『영화사전』, 이영이 외 역, 한나래, 2012.-->
<ref id="B021">
<label>2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헤이워드</surname><given-names>수잔</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이</surname><given-names>영이</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외 역</comment>
<year>2012</year>
<source>영화사전</source>
<publisher-name>한나래</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송효정, 〈1월의 크리스마스 선물 〈7번방의 선물〉〉, 『씨네21』, 2013.1.23.-->
<ref id="B022">
<label>2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person-group>
<name><surname>송</surname><given-names>효정</given-names></name>
</person-group>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3-01-23">2013.1.23</date-in-citation>
<source>1월의 크리스마스 선물 〈7번방의 선물〉</source>
<publisher-name>씨네21</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송효정, ｢불온하고 장난스런 노이즈｣, 『문장웹진』, 2018.4.1.-->
<ref id="B023">
<label>2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person-group>
<name><surname>송</surname><given-names>효정</given-names></name>
</person-group>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8-04-01">2018.4.1</date-in-citation>
<source>불온하고 장난스런 노이즈</source>
<publisher-name>문장웹진</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라피』, 강현주 역, 북노마드, 2015.-->
<ref id="B024">
<label>2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바디우</surname><given-names>알랭</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강</surname><given-names>현주</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5</year>
<source>오늘의 포르노그라피</source>
<publisher-name>북노마드</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알랭 바디우,, 『바그너는 위험한가』, 김성호 역, 북인더갭, 2012.-->
<ref id="B025">
<label>2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바디우</surname><given-names>알랭</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성호</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2</year>
<source>바그너는 위험한가</source>
<publisher-name>북인더갭</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알랭 바디우,, 『비미학』, 장태순 역, 이학사, 2010.-->
<ref id="B026">
<label>26</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바디우</surname><given-names>알랭</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장</surname><given-names>태순</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0</year>
<source>비미학</source>
<publisher-name>이학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양창렬 역, 현실문화, 2016.-->
<ref id="B027">
<label>27</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랑시에르</surname><given-names>자크</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양</surname><given-names>창렬</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6</year>
<source>해방된 관객</source>
<publisher-name>현실문화</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정한석, 〈군중의 기억으로 ‘따고 들어가’다〉, 『씨네21』, 2013.2.7.-->
<ref id="B028">
<label>28</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person-group>
<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한석</given-names></name>
</person-group>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3-02-07">2013.2.7</date-in-citation>
<source>군중의 기억으로 ‘따고 들어가’다</source>
<publisher-name>씨네21</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조강석, ｢메시지의 전경화와 소설의 ‘실효성’—정치적, 윤리적 올바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단상｣, 『문장웹진』, 2017.4.1.-->
<ref id="B029">
<label>29</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person-group>
<name><surname>조</surname><given-names>강석</given-names></name>
</person-group>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7-04-01">2017.4.1</date-in-citation>
<source>메시지의 전경화와 소설의 ‘실효성’—정치적, 윤리적 올바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단상</source>
<publisher-name>문장웹진</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
</back>
</artic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