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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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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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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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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4_223</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4.008</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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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group>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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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oup>
			<article-title>어느 페미니스트 범죄 서사의 딜레마</article-title>
			<subtitle>-<xref ref-type="bibr" rid="B001">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xref> 소고<xref ref-type="fn" rid="fn01">*</xref></subtitle>
		<trans-title-group xml:lang="en">
			<trans-title>A Dilemma of Feminist Crime Narrative</trans-title>
			<trans-subtitle>-focus on Yang Gui-Ja’s Romance <italic>I Wish For What Is Forbidden</italic></trans-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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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name-style="eastern"><surname>이</surname><given-names>혜령</given-names></name>
				<name name-style="eastern" xml:lang="en"><surname>Lee</surname><given-names>Hye-Ryoung</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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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 id="aff01"><label>**</label>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aff><role>부교수</role>
			<aff xml:lang="en">Sungkyunkwan University</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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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otes>
		<fn id="fn01"><label>*</label><p>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8S6A3A01023515).</p></fn>
</author-notes>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pub-date>
		<volume>25</volume>
		<issue>4</issue>
		<fpage>223</fpage>
		<lpage>261</l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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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date-type="re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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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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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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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itle>국문초록</title>
<p>이 글은 페미니스트 범죄서사인 <xref ref-type="bibr" rid="B001">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xref>을 1990년대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대중화, 강남 중산층 소비문화와 미디어 문화의 전면화를 배경으로 중산층 가정의 사회적 도덕적 규범성이 강화되는 맥락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고자 하였다.</p>
<p>이 소설의 여성 주인공인 강민주와 백승하는 모두 1990년대 텔레비전과 광고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한 강남의 거주자이다. 다른 한편으로 남녀 주인공에게 각각 할당된 페미니스트이자 강한 소비적 정체성을 지닌 여성과 부드럽고 가정적인 남성은 모두 당대 여성운동의 성장과 대중화된 페미니즘의 이슈를 체현한다. 소비주의 미디어 문화, 여성운동, 민주화의 결합은 무엇보다 중산층이라는 물질적 토대를 가시화하는 가운데 부드럽고 가정적인 남성상을 창출했다. 이 소설에서 가정적 남성상은 페미니스트 범죄 서사를 중산층 가정의 안정과 위엄을 공격하는 팜므 파탈의 서사로 전화시키며, 바로 그 전화의 순간에 강민주는 자신을 흠모해온 하층계급 남성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p>
<p>양귀자의 이 소설은 1990년대 본격화된 강남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의 사회문화적 재현과 페미니즘 이슈를 중첩시킨 텍스트로서 시사적일 뿐만 아니라 징후적이다.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에서 펼쳐질 범죄 서사의 핵심 코드로서 여성 혐오 살인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This article is a reexamination of the feminist criminal narrative I wish for what is forbidden by Yang Gui-ja in the context of the rise of the women’s movement and consumer culture of the middle class in Gangnam in the 1980s and 1990s. At this time, the explosive media culture served to strengthen the ideology that placed the middle-class family at the center as well as the consumption culture.</p>
<p>The combination of consumer media culture, women’s movement and democratization created a soft and domestic male image while visualizing the material foundation of the middle class in the 1990s of South Korea. In this novel, the domestic male image transforms the feminist criminal narrative into the narrative of the femme fatale attacking the stability and dignity of the middle class family, and at the moment of the transformation, the feminist woman Kang Min-ju is killed by a lower class man who has admired and loved her.</p>
<p>This novel is not only current but also signifying as a text that overlaps sociocultural reproduction and feminist issues of the middle class based on Gangnam in the 1990s. This is because it shows the sociocultural context of femicide, such as serial murder of targeting women, as a core code of criminal narrative to be held in Korea since the late 1990s.</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페미니스트 범죄 서사</kwd>
			<kwd>중산층</kwd>
			<kwd>소비문화</kwd>
			<kwd>강남</kwd>
			<kwd>가정적 남성</kwd>
			<kwd>여성혐오 살인</kwd>
		</kwd-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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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eywords</title>
			<kwd>feminist criminal narrative</kwd>
			<kwd>middle class</kwd>
			<kwd>consumer culture</kwd>
			<kwd>Gangnam</kwd>
			<kwd>domestic male</kwd>
			<kwd>femicide</kwd>
		</kwd-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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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title>1. 강민주를 기억하기 위하여</title>
<p>1992년 간행된 양귀자(1955~)의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xref><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은 단숨에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출간된 지 석 달 만에 30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작가가 억대가 넘는 인세 수입을 올렸으리라고 보도되는가 하면 20개의 영화사가 판권을 사기 위해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당대 영화, 광고, 텔레비전 드라마 등 대중문화산업의 히로인이었던 최진실 주연의 동명 영화가 1994년에 개봉된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도 무대에 올라<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소설, 영화, 연극이 동시에 독자와 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p>
<p>이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한국에는 등장이 늦어진 리들리 스콧 감독의 &#x003C;델마와 루이스&#x003E;(한국개봉, 1993.11.27.)<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의 주인공들보다 일찍 도착했다. 깅민주는 한국에서는 훨씬 이목이 집중된 페미니스트 범죄 서사물의 히로인이지만 그 이후로 페미니즘 문화와 관련해서는 델마와 루이스에 비하자면<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뚜렷한 각인을 남기지 못했다. 경찰의 추격에 멈추지 않기를 결정한 델마와 루이스의 선더버드가 그랜드케년의 절벽에서 허공으로 질주하는 데서 끝나는 엔딩과 서울 강남의 11층 아파트에서 저주하던 이성애적 관계의 덫에 걸려 자신이 수족으로 부린 남자가 쏜 총에 맞은 강민주의 죽음이 발신한 메시지의 차이랄 수도 있지만, 1990년대의 비평 담론의 경향은 그녀를 추방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p>
<p>지난 30여 년간 이 소설에 대한 연구는 당대의 몇몇 비평을 빼놓는다면 놀랄 만큼 드물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저간에는 대중적 성공을 문학의 이데아에는 마이너스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한국 문학장의 오랜 관습, 페미니즘이 사회적 입장권을 얻자마자 상업화를 우려해야 했던 상황이 맞물려 있었다. 당시 막 등장하기 시작한 페미니즘 문학평론의 기수들인 김양선과 김은하<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는 주인공 강민주가 여성 폭력에 기반한 남성중심주의 사회에 대한 복수로 남자배우 백승하를 납치와 감금하는 전반부의 서사가 지니는 “현실일탈 혹은 현실초월에의 욕망을 표출해주는” “대리욕망충족 원리”와, 강민주가 백승하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후반부의 통속적인 사랑원리가 교묘하게 결합하면서 작품의 대중적 요소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 그런 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여성억압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이러한 소설전략이 자칫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통속성의 차원으로 떨어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점, 그것이 최근 젊은 소설가들이 지나간 ‘80년대’를 상품화하듯 ‘여성문제’를 소재적 차원에서 상품화하여 가볍게 취급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라고 말한다. 이들 말고도 이 소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 박혜경은 이 소설을 “여성문제의 람보식 접근”일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강민주가 백승하에게 감화된다는 결말을 취함으로써 남성에 대한 응징의 논리를 허구로 돌려버리고 말았다고 평가한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류보선은 이 소설이 리얼리즘의 소설에서의 주인공과 다르게 완벽한 초월적인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90년대적 혼란을 추상성과 통속성으로 해소해버렸으며, 이러한 통속화 경향은 리얼리즘을 유보한 대가임을 지적한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포기할 수 없는 여성해방의 이념과 새로운 소설 상품의 형식이 절묘하게 만나는 광경”<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을 보여주지만, 그 절묘한 광경이 어디에 이로운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결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
<p>여기서 상품, 통속성, 대중성 등의 용어는 1990년대 출판시장에서 강세를 나타낸 여성 소설과 관련한 비평 담론의 키워드였으며,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들 작품의 문학성을 반드시 입증해주는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페미니즘은 문학을 편향적이고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쉽게 간주되곤 하였는데, 그 준거점으로 1990년대 초반 발표되어 대중적으로 성공한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 그리고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는 페미니즘의 의미를 형성하는 데 있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정정희에 따르면, 두 소설의 인물과 주제에서 끌어낸 페미니즘은 남녀차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여성의 고통을 현실감 있게 드러내는 것, 혹은 남녀의 적대적 대립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고.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그렇게 정의된 페미니즘은 도식적이라거나 통속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 그러나 1980년대와 대비되는 1990년대 문학을 대표한다고 평가된 신경숙과 여성 작가의 소설을 특징짓는 내면성, 고백, 개인, 일상성 등은 더 문학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면 급기야 “여성” 작가나 페미니즘이라는 호명을 여성 작가들 스스로 거부하는 사건을 낳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여성”과 페미니즘은 문학적 강등으로 의미화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게다가 1997년 외환위기에 의해 촉발된 생계부양자로서 남성들의 위축을 방어하려는 사회문화적 실천들이 횡행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강민주는 증발되었다.</p>
<p>이 글은 여성 전사, 테러리스트 강민주를 복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녀가 두 남자 사이에서 무력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강민주의 범죄가 서사를 결말로 치닫게 만든 중심적 사건이자 그녀를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된 수동성에서 벗어나 의미를 창출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페미니스트 범죄서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한편 이 소설은 강민주가 가장 깊은 수동성의 상태에 놓인 피해자-시체로 발견되고 난 후 비로소 서사를 얻는 구조이기도 하다. 강민주는 남성지배에 내재된 “여성혐오”적 폭력에 의해 살해당한다.</p>
<p>강민주가 남긴 비망록과 범죄 현장에 있던 두 남자의 기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여전히 프로파일링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글은 범죄자들이 지닌 성격적 특성과 심리 등을 유추함과 동시에 그들의 범죄가 벌어진 장소와 인물들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페미니즘의 이슈와 접속하고 있는 20대 페미니스트이자 싱글인 강민주와 배우이자 부드럽고 가정적인 남성인 백승하는 각각 양재동과 청담동 소재 아파트에 사는 강남 거주민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강남의 두 남녀, 주소지가 천호동으로 밝혀진 살인범 황남기는 이제 막 민주화를 자유화라는 결실로 얻은 1990년대 한국사회에서 충분한 상징성을 띤 인물이기도 했다.</p>
</sec>
<sec id="sec002">
<title>2. 페미니즘과 강남 중산층 소비문화의 조우</title>
<sec id="sec002-1">
<title>2-1. 1990년대 페미니즘의 이슈와 분리주의 페미니스트 강민주</title>
<p>강민주의 비망록인 이 소설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비교적 자세히 밝히고 있다. 강민주는 “고통·인내·굴종·수동성과 같은 여성적 자질들을 철저히 거부”하고 “감정”보다는 “이성”과 “계획”<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에 따르는 성격적 심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성적 자질이란 작중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의 자원봉사자인 강민주가 전화 상담을 통해 집적해온 케이스로부터 유추해온 남편으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도 결코 분리, 다른 말로는 이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의존성으로 수렴된다.</p>
<p>강민주의 비망록에는 그 사례가 자세히 서술된 상담 케이스가 여섯 개 등장한다. 첫 상담 케이스에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대놓고 차려놓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자 구타를 당한 여성은 교육자인 부모님의 체면과 자식들을 생각하여 정작 이혼을 결심하지 못한다.(<xref ref-type="bibr" rid="B001">26~29</xref>) 두 번째 케이스는 석 달 전 외출에서 집에 돌아오는 밤길에 강도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결혼 5년 차의 남매의 어머니로 그간 남편의 신뢰를 받아왔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점차 난폭해지는 남편의 학대와 이혼 종용에 시달린다.(<xref ref-type="bibr" rid="B001">55~56</xref>) 또 다른 여성은 자신보다 학력이 높으나 밥벌이를 못하는 남편은 그 학벌을 무기삼아 자신과 처가에게 이런저런 돈을 요구하며 군림하지만 그 자체로는 이혼 사유가 될 수 없어 안타깝다.(<xref ref-type="bibr" rid="B001">56~57</xref>) “손찌검 하는 버릇은 별로 없는데 그 대신 심한 욕설을 다반사로 하”(<xref ref-type="bibr" rid="B001">86</xref>)여 자식들 앞에서도 남편의 욕설을 들어온 여성, 20년 간 알콜 중독자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으나 딸들의 혼인길을 막을까봐 이혼을 할 수 없다는 여성도 등장한다.(<xref ref-type="bibr" rid="B001">71~72</xref>) 여성은 15년 동안 살림만 살았던 주부로 이혼을 하려고 하니 한 푼의 재산도 나누어 줄 수 없다고 남편이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강민주는 그녀에게 이혼 시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아내가 공동재산의 축적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재산에 대한 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신설된 개정가족법에 대한 안내를 해준다.(<xref ref-type="bibr" rid="B001">103~104</xref>) 이러한 상담 케이스와 이혼을 권유하고 그에 관한 법룰적 조언을 하는 강민주의 상담 내용은 “아내폭력”과 “개정가족법”이라는 1980-90년대 여성운동의 주요한 흐름과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강민주가 다니는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연구소”는 그 상담 내용으로 보아 1984년 창립된 “여성의 전화”와 부분적으로는 “가정법률상담소”와 같은 조직을 결합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p>
<p>먼저, 1983년 “가부장제의 맥락 속에서” “아내폭력” 문제를 한국 최초로 여성 이슈이자 사회적 이슈로 내건 “여성의 전화”가 창립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여성의 전화”의 이슈는 1970년대 “여성의 인간화”라는 프레임을 내건 크리스천아카데미 내부에서 여성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집단이 발굴, 제기한 이슈였다. 자유주의 경향을 지닌 지식인과 중산층 주부 그룹이 결합하여 급진적 페미니즘이 제기한 아내폭력 이슈를 받아들여 “매 맞는 아내”에 대한 실태 조사와 상담원 교육을 통해 조직을 창립하기에 이른다. “여성의 전화”는 전화 상담을 실시하자마자 폭발적인 전화로 전화국이 방문하여 회선을 늘려주겠다는 제안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p>
<p>성폭력과 성문화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 여성운동의 지배적인 경향이었지만,<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의 상담소에서 강민주가 다룬 사안은 거의 자녀를 갖고 있고 살림에만 전념해온 중산층 가정주부 여성들의 “아내폭력”과 관련된 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개정가족법을 피상담자에게 알려주는 강민주의 상담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정치적 상황에 의해 소강상태에 있던 3차 가족법개정운동은 1984년 가정법률상담소, 대한YWCA,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을 위시하여 “가족법 개정을 위한 전국여성연합회”가 결성되고 적극 추진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호응이 부진하여 법안 상정에 난항을 겪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분위기가 일변하여 1988년 과반수가 넘는 국회의원들의 제안으로 개정안이 제출되고 1989년 국회를 통과, 1990년 1월 12일 공포된다. 3차 개정가족법은 동성동본금혼폐지와 호주제폐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혼 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 신설, 친권 및 양육권의 부부평등, 아들 딸 기혼 미혼에 상관없는 평등한 상속분배 등을 포함된 것이었다. 이러한 개정에 의해 여성은 아내, 며느리, 딸이라는 신분관계에 구속된 존재이기는 여전했지만, 재산관계에서는 평등한 존재가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이와 관련하여 가족법개정은 1956년 이태영 변호사가 설립한 “가정법률상담소”(설립 당시는 여성법률상담소, 1966년 개칭)의 핵심적인 운동 의제였다. 특히 이혼은 대다수가 여성이었던 내담자들의 주된 고민이었으나, 3차 개정가족법이 실시되기 이전에 가족법상에서 이혼은 여성에게 재산분할이나 친권· 양육권에 있어 현저히 불리해 차마 여성에게 이혼을 법률구조의 현실적 방안으로 제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의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문제 상담소”에서도 여성들이 겪는 남편이 행사하는 폭력과 가정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상담자가 이혼을 권유하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개정가족법은 언제라도 이혼할 수 있다는 심리적 보상물로 기능하여 도리어 이혼율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상담봉사자 박 여사의 진술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여류 명사”이자 여성 장관을 노리는 윤 소장을 비롯하여 상담소의 자원봉사자 대부분인 40대 이상의 기혼 여성들을 “구세대”(<xref ref-type="bibr" rid="B001">105</xref>)라 일컫는 강민주는 그들의 “좋은 게 좋다”(<xref ref-type="bibr" rid="B001">105</xref>)는 식의 도덕관념을 경멸한다. “좋은 게 좋다”는 것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 또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에 다름 아니었다. 이는 상담소 선배들이 강민주에게 중매를 주선하려 한다거나 그녀에게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독신주의자인지 아닌지 하는 관심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관심을 강민주는 경멸한다. 은사의 사모님인 윤 소장의 상담소에 들러 얼핏 본 그녀에게 접근한 김인수라는 남자의 첫인상을 강민주는“보통”이라는 말로 꼬집고 있다.</p>
<p>　</p>
<p>　　기억이 났다. 키도 보통, 얼굴도 보통, 행동거지도 보통이어서 참말이지 보통 사람의 표본이구나 하는 평가를 내린 사람이었다. 옛 은사를 위해 점심을 사겠다는 것도 보통의 도덕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그 청년의 평이함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생각으로는 더럽혀지고 비뚤린 이 시대에 <bold>보통의 삶, 보통의 도덕성</bold>으로 살 수 있다는 것만도 굉장한 미덕이다.(<xref ref-type="bibr" rid="B001">39</xref>, 강조-인용자)</p>
<p>　　<bold>세상의 보통 사람은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한다.</bold>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결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다. 나는 세상 그 자체를 초월해 있다. 나는 그 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내게 주어진 몫이다. 나는 나의 이 역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xref ref-type="bibr" rid="B001">125</xref>, 강조-인용자)</p>
<p>　</p>
<p>두 번째 인용문은 강민주가 백승하를 납치하여 “사육”하고 있는 동안 사무실로 끈질기게 전화를 하며 만나줄 것을 요구하는 김인수를 두고 한 평가이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이 바로 보통의 사람과 보통의 세상을 떠받치는 믿음과 행위, 도덕을 이루는 체계인 것이다. “나는 세상 그 자체를 초월해 있다”는 서술은 독신주의, 페미니스트와 같은 세간의 말로 자신을 담아낼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여성억압 장치를 철폐해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자신의 생활정치를 통해 실천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스트 <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사랑도, 섹스도, 결혼도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목격한 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폭력, 그리고 여러 여성들과의 상담을 통해 남자들의 폭력 사례를 집적하면서 얻게 된 결론이다. 물론 그녀는 서구의 레즈비언 연속체로까지 나아갔던 여성들 간의 연대나 공동체 추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성들에게 절망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는 더 크게 절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범죄는 결혼과 가족에서 남성들의 끊임없는 폭력과 몰염치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남성에 대한 관계적 경제적 의존을 벗어나지 못하며, 심지어 결혼에 대한 환상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판단에서 이를 계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범죄대상은 신념에 몰두한 테러리스트의 범죄처럼 구체적 대상을 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은 특정 집단의 대표이거나 세상 전체를 지시하는 상징이다. 그 “세상 전체가 나의 적”(<xref ref-type="bibr" rid="B001">76</xref>)임을 선언하는 행위가 반도덕의 현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뭇 여성들에게 이상적 남편 상으로 흠모되는 배우 백승하를 납치하여 미디어를 통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전적인 거부를 선동하고 이러한 범죄를 계획하고 감행한 자신의 능력을 과시, 세상을 조롱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p>
</sec>
<sec id="sec002-2">
<title>2-2. 강남의 소비문화: 신세대 또는 중산층 가정주부</title>
<p>여성적 자질과 반하는 것으로 구축되었다고 설명되기는 하나, 강민주의 두드러진 심리적 성격적 특징은 타인과 세계에 대한 냉소와 거리 두기이다. 그것은 자신의 독립성을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p>
<p>일찍이 짐멜이 돈은 개인의 가장 내밀한 영역을 지키는 수문장이라고 지적했듯이,<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 독립성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켜진다. 술과 도박, 여자문제에 폭력까지 휘둘렀던 사내의 사생아였던 강민주의 모녀는 그가 새로운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떠나버리자 단둘의 삶을 경영해온 것으로 이야기된다. 강민주는 명동에서 달러 상을 해서 치부를 한 엄마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자신만이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은 단지 독립이라기보다는 어떤 남자의 폭력으로부터도 해방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부-그녀는 주식과 부동산의 임대료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불로소득자였다-는 유년기의 자신와 엄마를 지배했던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얻게 된 지울 수 없는 원초적 분노와 슬픔을 강민주가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제였다. 그러한 감정은 세상을 향해 표출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린 총알처럼 장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p>
<p>독립성이 세상에 자기정의의 권한을 내주지 않는 것, 어떻게 드러내보일까를 자신이 결정하는 것을 의미할 때, 그것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엄폐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이나 공간으로 표상되는 것은 자연스럽다.</p>
<p>　</p>
<p>　　자동차를 바꾸어야겠다.(<xref ref-type="bibr" rid="B001">19</xref>)</p>
<p>　</p>
<p>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강민주는 인상적이게도 올림픽 대로를 자신의 “애마”로 달리며 무아지경에 빠진 오너드라이버로서 첫 등장을 했다는 사실은 기억해 둘만하다.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에서 자동차는 아파트와 함께 범죄의 도구이자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정체성을 처음 드러내주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p>
<p>　</p>
<p>　　올림픽 대로로 들어가면서 나는 한 번 더 꽉 죄고 있는 안전벨트를 좀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앞차의 청년이 백미러로 힐끔거리는 것을 보며 나는 에어컨을 낮추고 음악의 볼륨을 높인다.</p>
<p>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피아노 음이 머리를 때리고 심장을 때리는 것을 아무 느낌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운전할 때의 이 무아경이 좋다. 나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기계들을 조작한다. 머리를 텅 비어있고, 지상을 나는 육체의 팽팽한 긴장감이 산뜻하다고 느끼는 것이 이때의 감각전부이다.(<xref ref-type="bibr" rid="B001">20</xref>)</p>
<p>　</p>
<p>자신을 백미러로 힐끗 보는 청년의 시선을 느끼지만 강민주는 볼륨을 높이고 올림픽 대로에 올라선 자동차의 주행에 일체화시킨 온몸의 지각만이 감지될 뿐인 자기만의 공간으로 만든다. <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 자동차와 일체화가 된 드라이버란 보통 남성을 연상시킨다고 한다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기계와 팽팽한 근육과 신경의 긴장감으로 상쾌함을 느끼는 여성 드라이버란, 그 자체로 독립적이며 남성에 대한 의존과는 거리가 먼 여성이란 이미지를 각인한다.</p>
<p>그런데 이러한 설정은 자동차가 1990년대 한국사회의 본격화된 개인주의 소비문화를 견인한 상품으로 단연 압도적인 기능했다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자동차를 국가 및 사회의 정체성 형성에 기능을 하는 미디어로 보는 시각에서 한국 근현대역사에서 자동차의 기호와 상징에 주목한 강준만은, 1990년대 자동차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완시키는 분리주의를 미디어로서 기능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동차의 소유와 아파트의 거주는 상호 상승관계를 유지한 데서 드러나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자동차 증가율은 가장 높은 아파트 거주율의 동인이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강민주는 양재동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자가용을 몰고 올림픽대로, 그리고 동호대교를 건너 상담소를 오갔다. 완벽한 소음 방지로 더 강렬한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은 강민주의 새 차는 국산 검정 빛깔의 고급 승용차로 그녀는 변경 가능한 내부 옵션을 외제차의 것으로 채운다. “내가 사는 강남에 서는 BMW나 벤츠를 흔히 보게 되는데 그럼에도 운전을 하다 앞에 그런 차가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자동차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인 것이다.”(<xref ref-type="bibr" rid="B001">53</xref>) 그녀는 “졸부들의 그 날고 튀는 형태를 경멸”하여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지 않았”지만, “그럴 자격이나 안목이 있다면 삶을 보다 편안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것”(<xref ref-type="bibr" rid="B001">53-54</xref>)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교정한다. 강민주는 말한다. “새 것은 좋다.”(<xref ref-type="bibr" rid="B001">53</xref>)</p>
<p>당연하게도 강민주의 자동차 소비를 통해 드러내는 자아 정체성 또한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쉽게 목격되는 소비의 계급적 젠더적 기호체계에 의존해 있다. 강민주는 백승하를 납치, 감금한 강남 아파트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그 사건을 두고 떠드는 여자들을 보고 이렇게 짐작한다.</p>
<p>　</p>
<p>　　남편은 그랜저 쯤 몰 것이고 자기는 은회색 소나타를 손수 운전하고 다니는 수준이리라.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보지 않은 자들이 흔히 그렇듯 여자 또한 말간 얼굴과 탱탱한 피부를 지니고 있다. 희고 말간 것은 싫다. 탱탱하고 반들거리는 살갗도 싫다. 한 번도 깨져 보지 않아서 굳은 살이 박히지 않은 삶은 정상적인 삶의 행로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삶은 가짜다. 역사가 없는 것이다.(<xref ref-type="bibr" rid="B001">135</xref>)</p>
<p>　</p>
<p>은회색의 소나타는 곧바로 젊은 중산층 기혼 여성의 희고 말한 피부로 넘어간다. 그리고 곧 경멸을 표한다. 이 인용문은 강민주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있어 구별짓기의 대상이 강남의 젊은 중산층 기혼 여성임을 말해준다. 이 구별짓기에 삽입된 역사적 매개는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너무나 많이 깨지고 채어서 굳은 살 밖에 남지 않았던 당신”(<xref ref-type="bibr" rid="B001">135</xref>)은 희고 말간 강남의 주부들과는 다르다. 엄마의 굳은살은 아버지의 폭력의 상처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가장이었던 엄마의 사회적 삶과 노고를 의미한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부모로부터의 상속자의 삶은 남편의 부에 의존하는 삶보다는 정당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p>
<p>이와 관련하여, 이 텍스트에서 주의 깊게 간취되어야 할 것은 스물일곱 살, 당시로 보자면 세대 상으로는 386세대<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라고도 할 수 있는 강민주가 스스로를 신세대와 관련지어 설명한다는 데 있다. 가령, 엄마가 살아계실 때 자신에게 큰방을 내어준 이유 중 하나를 “내가 소유한 <bold>신세대다운 각종 문화용품</bold>들을 제자리에 놓기 위해서는 넓은 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xref ref-type="bibr" rid="B001">65</xref>, 강조-인용자)고 말한다. 또 그녀가 백승하 납치에 대한 입장을 언론사로 보내어 알렸을 때, 언론은 “경악할 만한 <bold>신세대 윤리</bold>”(<xref ref-type="bibr" rid="B001">215</xref>)라고 개탄했다고 나온다.</p>
<p>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주체로 호명된 신세대는 소비행위에 적극적이고 욕망의 자연스러운 표현에 능한 소비 세대였을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와 기성사회의 가치체계에 저항하는 특성을 지닌 집단으로 언급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당시 그 출발을 알린 “문화연구”<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 그롭에 의해, 강남의 압구정동은 특정한 사회적 존재의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배제와 선택의 논리가 작동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전시장”이자 “우리 사회 전체의 욕망구조의 표상”<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으로 규정되는가 하면, “압구정동의 아이들”인 신세대는 압구정의 역사적 과거의 시간성-이 아니라 연속된 것이 아니라 유럽, 북미의 어느 공간을 복제한 듯한 장소, 선적인 시간이 아닌 현재라는 시간에만 존재하길 원하는 세대로 의미화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 신세대는 결핍의 콤플렉스에 입각한 욕망의 과잉억압이 현실적 요구이자 미덕이었던 한국 근현대사와의 단절이 이루어진 <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 시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세대로 이야기되었다. 그들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시각 이미지와 영상 이미지로 재현되었던 것만큼이나 미디어가 매개한 광고와 대중문화의 파생물이기도 하다.</p>
<p><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의 강민주는 87년 전후 민주화와 자유화의 과정적 산물이자 효과였던 페미니즘과 신세대의 특성을 결합시킨 형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소비에 대한 억압이 없으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신세대적이며 기성세대를 ‘구세대’로 비판하며 그들의 권위를 무시하는 냉소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 경향 또한 신세대답다고도 할 수 있다.</p>
<p>그러나 그녀의 구체적인 소비 품목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신세대들과 같은 대중음악, 영상문화, 패션, 카페 등이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자가용, 아파트와 인테리어였다. 그녀는 납치한 백승하를 은닉, 감금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11층의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자신이 실소유자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양도세가 무서워 집 등기 명의 이전을 늦추려고 하는 매도인을 물색”(<xref ref-type="bibr" rid="B001">31</xref>)하고, “안방 벽을 헐고 베란다까지 방을 넓혀” 놓아 “침대와 안락의자, 오디오와 비디오, 벽으로 잇대어 설치한 책상 겸 장식대”(<xref ref-type="bibr" rid="B001">87</xref>)를 놓는다. 강민주는 욕실의 발판, 손톱깎이, 목욕 가운, 향기 좋은 차 한 봉지, 백승하가 머리 맡게 두고 읽을 만한 책 몇 권, 면도용 비누거품 등을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과 스타일”로 “가장 좋은 것”으로 백화점에서 구매한다.(<xref ref-type="bibr" rid="B001">68-69</xref>) “잎이 고운 난 화분”과 “꽃다발”까지.</p>
<p>이러한 아파트 구매와 그곳을 장식할 소품에까지 미치는 인테리어의 세목들은 그 수명이 길지는 않았던 “신세대”보다 더 오래되고 문화적으로 지속적인 헤게모니를 지니게 될 소비 품목이었다. 즉 강남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중산층의 주거문화 양식은 미디어적 재생산을 통해 이상화 규범화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중산층 가정주부들을 주요 독자로 삼는 여성잡지는 더 일찍이 이러한 기능을 해 왔으며<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1990년대는 아예 부동산 구매와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지의 창간으로 그 피크에 이르게 된다. 이 소설이 처음 연재된 것은 월간 여성지 『리빙센스』(1990년 창간)를 통해서였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리빙센스』는 『우먼센스』(창간 1988.7)를 발행해온 서울문화사가 인테리어, 패션, 요리 등을 특화한 여성생활전문지이다.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에 나온 『리빙센스』, 『행복이 가득한 집』 『홈 인테리어』 는 “비교적 생활이 여유가 있는 중산층 주부를 대상으로 센스 있게 집안을 꾸미는 요령, 가구배치법, 조명, 커튼, 화초 가꾸기 등”<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을 다루는 것이 특색이다. 뿐만 아니라 폭발적으로 늘어난 광고(특히 가전제품)와 드라마는 세련된 가구와 인테리어로 잘 꾸며진 중산층 가정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은 기본 벡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
<p>예컨대,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의 주인공이자 1990년대라는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 배우라 할 수 있는 최진실을 일약 스타로 만든 그 첫 무대가 된 삼성 VTR 광고는 영화를 시청하다가 퇴근 후 곧장 집에 돌아온 남편을 맞이한 남편에게 녹화된 프로야구를 보게 하는 젊은 주부의 “남자는 여자 하기 마련이에요.”라는 멘트가 대미를 장식한다. IMF위기 이전까지 1990년대 초중반을 길지 않은 시간을 구가했던 신세대보다는 중산층 가정과 가정주부는 강남 아파트라는 공간의 문화정치와 결합하여 고도성장에 이은 신자유주의가 더욱 심화시킨 양극화의 물질적 토대이자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상징이 되어갔다.</p>
<p>강민주의 자기 취향을 한껏 살린 아파트 인테리어는 자신의 범죄를 우아한 미학으로 구상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 강민주는 남편을 위해 집안을 꾸미는 젊은 중산층 주부를 모방해야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모방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강남 중산층의 주거양식에 익숙해져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센스 있게 꾸며진 강남의 아파트는 백승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데서 강민주의 범죄는 어떤 곤혹을 예비하고 있었는데 백승하는 그 곤혹을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만든다.</p>
</sec>
</sec>
<sec id="sec003">
<title>3. 부드러운 가정적 남성은 과녁이 될 수 있는가</title>
<sec id="sec003-1">
<title>3-1. 1990년대 가정적 남성상의 출현</title>
<p>　　백승하의 인기는 단순하게 그의 배우 생활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남자배우들에 비하여 크게 미남인 편도 아니다. 그가 스크린에서 펼치는 연기도 박력있거나 섹스어필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땅의 여자들이 최고로 선망하는 남성이다. 내가 분석할 때 백승하가 누리는 인기는 모두 그의 부드러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p>
<p>　　그렇다. 백승하는 부드러운 남자이다. 그가 파안대소할 때의 얼굴을 보라. 그의 온 얼굴에 퍼져있는 맑고 부드러운 기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미소가 우러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 텔레비전에 출연했을 때 그의 매력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절대 사회자를 앞질러서 말하는 법이 없다. 그는 모든 대답을 지극히 겸손한 어투로 말하며 돼먹지 않은 몇 가지 지식으로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그 부드러운 웃음으로 머뭇거리거나 코에 주름살을 만들며 크게 웃는다. 그의 이런 모습은 확실히 여자들의 마음을 찡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p>
<p>　　게다가 백승하는 스캔들이 없다. 그는 자기 가정을 지극히 아끼는 애처가로 소문이 나있다. 여성잡지들은 그의 신혼시절부터 정기적으로 그의 가정을 소개하면서 그가 얼마나 미모의 아내를 사랑하는지 낱낱이 알려줬다.(<xref ref-type="bibr" rid="B001">49-50</xref>)</p>
<p>　</p>
<p>백승하<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는 35세의 배우이자 설문조사에서 대한민국의 기혼, 미혼 여자들이 모두 이상형으로 꼽는 남자로 좋은 이미지를 지녔다. 위의 인용문에서 배우 백승하와 이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소비사회이자 미디어 사회에서 정체성은 스타일, 이미지 생산, 외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며, 미디어는 이러한 정체성을 결코 이미지에 그치거나 찰나적이고 파편적인 것, 불안정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서사, 이데올로기를 함께 생산하고 사회적 정체성을 구조화하고 사고나 행동을 형성하는 데 역할을 한다.<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 배우 백승하가 대표하는 부드럽고 가정적인 중산층 남성상은 무수한 아내폭력 사례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라는 제도적이고 문화적 규범을 지속시키는 데 기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던 것이다.</p>
<p>강민주는 이 사실을 간파하여 범죄를 계획했지만, 그의 이미지는 벗겨낼 수 있는 가면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 또한 보통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하에, 납치를 통해 그의 주변으로부터 그를 둘러싼 추잡한 진실 폭로를 유도하여 사건을 증폭시키고 여자들의 환상을 깨뜨려 주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강민주는 이러한 스캔들 전략이란 이성애에 기초한 중산층 가정의 성적 규범성에 기반해 있는 것이자 도리어 그 강화에 기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녀 자신이 그 스캔들을 구성하게 된다.<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p>
<p>여기서는 인용문에서처럼 백승하가 가정적 남성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백승하가 가진 부드러움은 그를 미디어로 접할 뿐인 여성 팬들에 의해서는 자기 주변의 남자들이 갖지 않은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이 부드러움이 향하는 대상은 가정이며, 아내, 그리고 아이이다. 아내가 출산을 할 때 수술실 문 앞에서 아내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남자, 촬영 때문에 아내의 생일을 함께 하지 못하여 촬영 기간 내내 목각을 배워 아내의 얼굴을 조각해서 선물한 남자. 또한 납치되어 있는 동안 백승하의 더 지극한 사랑은 자신의 아들을 향해 있었음이 밝혀진다.</p>
<p>백승하의 “부드러움”은 그 자신의 이미지이자 당대 다른 문화 텍스트에도 드러나기 시작한 중산층 남성 정체성의 재구성의 요소와도 관련 깊은 것이다. 왜냐하면 부드러움이란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부상하고 있었던 중산층 가정의 규범화하는 이데올로기인 가정성(domesticity)<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p>
<p>민주화에 의해 국가적 차원에서도 사회적 차원에서도 억압적이고 권위적 가부장제는 비판되고 있었으며 여성운동은 이에 대한 자극과 동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p>
<p>1980-90년대 강인한 노동자계급 남성상을 창출했던 장르인 노동문학은 당대의 여성운동 이슈에 호응하며 가정적 남성상을 그려냈다. 노동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인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며｣(1985), 정화진의 ｢쇳물처럼｣(1987), 방현석의 ｢내일을 여는 집｣(1992)과 같은 작품은 노동자의 가정은 아내의 일이었던 가사와 양육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된 남성 노동자들의 초상이 그려진다. 특히 노동소설에서 청년, 중년, 장년의 남성 세대로 이루어진 현장의 네트워크는 노조설립 등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투쟁을 지속하는 것과 가정을 지키는 것을 어떻게 둘 다 이룰 수 있는지를 세대적 경험의 기억 속에서 이끌어낸다. 즉 현장과 세대적 네트워크는 가족들의 생계 때문에 투쟁에 나서지 못했던 비겁하고도 억눌렸던 과거와, 노동자 가정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과격한 투쟁을 벌였던 ‘학출’의 경험들이 교호되고 성찰되는 공간이자 관계망이다. 이 작품들에서 노동자의 가정은 부르주아의 그것처럼 자기 자신과의 대화와 성찰이 이루어지는, 침범할 수 없는 내밀한 사적 영역이 아니라, 생산과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자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과 연결된 사회적 공간으로, 가정을 광범위한 정치적 동맹의 일부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시각<xref ref-type="fn" rid="fb038"><sup>38)</sup></xref>이 제시되지만,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노동자 상이 그려지게 된 중요한 동기는 1980-90년대 여성운동이 제공했으며 그에 대한 노동문학 작가들의 문학적 호응이랄 수도 있다.</p>
<p>이러한 호응이 노동자운동이 사회적 성원권의 획득을 위한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과도 관련 있다. 1980-90년대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의 남성 노동자 중심성은 파업과 총파업으로 치다를수록 강고해지는 형제적 연대의 표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형제들 각자는 가부장으로서도 존재해야 하고 서로의 가정의 상태에도 관심을 갖는 가부장들 간의 연대이기도 하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 남성 노동자들이 경제적 차원에서나 사회적 차원에서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한 정상 가족의 가부장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노동운동의 헤게모니는 가정에서도 찾아져야 했다. 곤궁한 살림을 해온 아내에 대한 위로를 전하고 가사 및 육아를 도와주는 남성 노동자상은 때로 공권력의 폭력과 해고, 체포, 투옥 등을 감당해야 했던 당대 전투적 노동운동의 주체들을 가정을 지키고 돌볼 줄 아는, 그리고 지키고 싶은 열망이 누구보다 강한 모범적인 가장들로 제시함으로써, 투쟁에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동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xref ref-type="fn" rid="fb039"><sup>39)</sup></xref></p>
<p>물론 부드러운 남성상에 대한 훨씬 더 대중적인 재현은 1990년대 광고과 드라마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당시 최진실이 전속모델로 활약한 삼성전자의 전자레인지 광고에서 남편은 앞치마를 두르고 아픈 아내를 대신해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너끈히 저녁을 차려낸다. 아픈 척했던 아내의 응석을 받아준 것으로 밝혀진다. 다른 버전의 광고에서는 아침도 차려주고 두 신혼부부는 맞벌이로 아파트 복도에 나서며 저녁 당번을 가위바위보를 하여 정한다. 최진실은 빅 히트를 친 &#x003C;질투&#x003E;(1992, MBC방영)의 히로인이도 했다. 대학졸업 전후의 20대 여성의 사회적 성취와 낭만적 사랑을 동시에 성취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로 알려진 이 드라마에서 최진실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사회적 성공을 이룬 남자에게 한때 끌리지만 결국에는 어릴 적부터 알아온 속 깊은 남자친구가 더 좋은 동반자임을 깨닫게 된다. 강준만은 이 드라마 속에서 “사랑은 ‘풍요 속의 선택’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현실 문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이 드라마 속의 ‘보통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시장 경제가 제공해주는 소비의 특혜를 완벽하게 만끽한다. 피자, 점보트론, 롯데월드, 자가용 승용차, 컴퓨터, 팩시밀리, 편의점, 무선전화, 해외여행 등등. …(중략)…사랑도 아이스크림을 먹듯이 부드럽게 소비할 수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xref ref-type="fn" rid="fb040"><sup>40)</sup></xref>고 일갈했다.<xref ref-type="fn" rid="fb041"><sup>41)</sup></xref> &#x003C;질투&#x003E;와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오랜 우정이 결국 사랑이 된다거나 사랑이었다는 서사는 학벌, 계급적,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중산층이 낭만적 사랑의 적합한 주체로 등장하였음을 반영한다. 특히 지적이고 능력을 갖춘 신세대 여성은 구질구질한 현실이 장애가 되거나 거기에 메일 필요가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상대방에게서 보아야 할 것은 마음의 자질이라는 것이다.</p>
</sec>
<sec id="sec003-2">
<title>3-2. 가정적 남성상의 서사적 역능: 페미니스트/ 팜므 파탈의 피살</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의 백승하의 부드러움이 억압도 결핍도 없는 소비적 욕망 충족의 감각적 느낌이 아니라, 마음의 자질이라는 데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백승하 또한 강남의 주민이었지만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소비적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견고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오히려 그는 검소하기조차 하다. 강민주가 그의 아들 생일에 맞춰 값비싼 코트를 사서 선물로 보낸 것에 대해 자신이라면 그런 고가의 선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내와 아이에 헌신과 진실함, 타인에 대한 겸손함과 배려, 절제 등이 그것이다.</p>
<p>이러한 미덕은 낸시 암스트롱이 말한 가정적 여성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이는 낸시 암스트롱이 18-19세기 영국에서 소설이란 새로운 글쓰기 장르의 탄생이 가정적 여성(domestic woman)의 등장과 관련 있다고 보았다. 18세기 영국의 작가들은 개인의 가치를 영국의 사고를 지배했던 복잡한 신분체계 대신 마음의 자질(qualities of mind)에 있는 것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는 남성들이 경영하는 정치적 세계를 무시하는 듯이 보이는 가정적 여성에 의해 표현되었다. 그들이 지닌 마음의 특정한 자질에 수반된 도덕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여성적인 것은 사회관계에 있어 전혀 새로운 용어로 도입되었다. 이는 여성과 남성을 젠더에 기초한 마음의 상대적 자질들 차원에서 이해하게 만들었으며,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나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의 예에서 나타나듯이 남성들 또한 여성들과의 감정적 관계 속에서 그 자질을 드러내는 인물로 등장한다.<xref ref-type="fn" rid="fb042"><sup>42)</sup></xref> 영국 소설이 중산층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 것은 그것이 여성성의 이상으로 표현된 중산층의 도덕을 전파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소설이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떼어놓고서는 이해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xref ref-type="fn" rid="fb043"><sup>43)</sup></xref> 암스트롱은 푸코를 쫓아서 욕망의 억압이 서사와 표현의 생산을 낳았던 근대 섹슈얼리티 역사의 단면을 무엇보다 가정 소설이 잘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중산층 가정은 혼인관계로만 국한되지 않았던 섹슈얼리티를 가정이라는 테두리로 묶어두는 규범을 확산시키는 장치였기 때문이다. 가정소설은 그 억압을 이야기하는 것과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xref ref-type="fn" rid="fb044"><sup>44)</sup></xref></p>
<p>이 소설은 낸시 암스트롱의 가정 소설 구도와는 다른 묘한 젠더적 전도를 보여준다. 즉 가정적 여성 대신 가정적 남성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 소설에서 집안에 갇힌 백승하는 이미 고급한 사회적 범죄의 형식을 띤 정치적 행동의 대의를 설파하려는 강민주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경청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는 강민주가 자신을 납치하여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동두천에서 밤마다 미군의 수없는 폭력에 시달려온 기지촌 여성인 노랑이 아줌마에 대한 기억을 새삼 떠올리며, 폭력을 겪어온 여성의 상태를 미루어 이해할 정도이다. 그는 뜻밖에 동두천의 가난한 “세탁쟁이”의 아들이었음을 고백한다. 기지촌에서의 가난하고 거친 어린 시절에 있어 깊은 어둠은 엄마였다. 미녀였고 화장품과 옷을 사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그의 엄마는 자신이 다섯 살 때 삼형제를 두고 다른 남자와 떠나버렸으나, 그런 엄마에게도 원망을 갖지는 않았노라고 고백한다.</p>
<p>강민주에게 백승하가 있는 아파트는 긴장과 불안이 도사린 바깥 활동의 정서적 피난처가 되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진형준은 “그 부드러움은 강민주를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시킨다.”<xref ref-type="fn" rid="fb045"><sup>45)</sup></xref>라고 썼지만, 그것이 어떻게 강민주로 하여금 파국을 맞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사건이 끝이 향해 가고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파국, 그리고 그 심리적 상태를 “황홀한 비극”(<xref ref-type="bibr" rid="B001">93</xref>)이라 일컫고 “그러나 비극에는 오르가즘이 있다.”(<xref ref-type="bibr" rid="B001">94</xref>)는 성적인 표현을 쓴다.</p>
<p>백승하와의 동거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민주는 자신이 풍부하게 부여받았다고 믿고 있었던 이성이 아니라 감정, 감성에 의해 움직여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아내와 아들과 격리되어 있는 백승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강민주가 이해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의 가정성은 다른 데서 아니라 그가 사라지고 없는 집에서 아내는 쇠약해하고 어린 아들은 우울해지는 것으로 그려진다. 백승하는 엄마마저 아파서 돌봄의 손길이 가닿지 않은 아들을 꿈에서 볼 정도로 걱정한다. 이에 강민주는 아들을 납치하여 백승하와 하룻밤 자게 해주는 등 위험한 일을 꾸미게 된다. 강민주는 백승하의 아내가 입원한 병원에서 아이를 납치한다. 공교롭게도 그 병원을 방문 중이던 김인수가 그녀를 얼핏 본 것이 그녀가 범인임을 밝히는 데 화근이 된다.</p>
<p>여하튼 이 소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남성과의 정서적 성적 관계를 거부해온 강민주가 백승하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과 성적 욕망을 발견하는 서사라고도 할 수 있다. 배우인 백승하를 위해 구해다 준 연극대본으로 둘만의 공간에서 함께 한 연극 연습은 곧 강민주의 욕망이 드러나는 또는 욕망이 누군가에 의해 읽히는 성적인 신(sexual scene)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무대에 서기 위해 차려입은 순백의 드레스는 피로 물들여지게 된다. 그 연극의 유일한 관객은 백승하의 납치와 감시를 도운 황남기이기 때문이다.</p>
<p>그는 강민주의 소유의 부동산 세입자들에게 세를 받아오는 등 재산관리인이기도 하지만, 나이트클럽 등 “밤의 세계”(<xref ref-type="bibr" rid="B001">162</xref>)에 몸 담아왔다. 그 만큼 남녀 간의 성적 질서가 금전적 교환과 맞물리는 사업이자 남성들 간의 물리적 폭력에 의해 사업의 성쇠가 결정되는 그런 세계에서 성인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강민주와의 관계는 그에게 ‘밤의 세계’와는 전도된 질서를 요구했다. 황남기의 가족은 강민주의 엄마로부터 은혜를 입어 왔으며, 강민주는 그러한 경제적 지배력이 강민주를 주인처럼 섬기도록 만들어왔기 때문에 애초부터 지니고 있었던 그녀에 대한 이성애적 감정을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학벌에 의한 지적 격차는 동갑인 강민주를 선생님이라 부르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도된 질서 또한 황남기 그에게는 배타적인 이성애적인 관계의 문법 속에 있었다고 해도 좋은데, 강민주가 아무런 남자도 사랑하지 않는 분리주의 페미니스트인 한 어떤 쓰임에서라도 자신이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며 아파트까지 들이닥친 김인수를 떼어놓기 위해서 그러했듯이, 자신이 강민주의 남자이자 보호자인 것처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승하의 납치가 오래되고, 아파트에서 세 남녀의 어색한 동거가 길어지고 강민주가 백승하를 가둬놓은 안방에 들어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을수록, 강민주가 자신과는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것에 안절부절 못한다. 그것은 명령이 아닌 대화의 언어였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출입을 금지한 방에서의 둘만의 연극연습은 황남기로 하여금 억압해오던 강민주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는 계기가 된다. 황남기는 그 긴장과 질투, 불안을 종식하기 위해 연극 상연을 서둘렀지만, 볼 수 있게 된 둘만의 연극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황남기는 준비해둔 총으로, 백승하가 아닌 강민주를 죽인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알아오던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변했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46"><sup>46)</sup></xref></p>
<p>소설의 대단원에 이르러 강민주는 그녀의 범죄가 한 가정을 위협한 것이자 성적인 욕망과 관련이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에서 전형적인 여성 범죄자 또는 악당의 정체인 팜므 파탈의 형상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팜므 파탈이 야기하는 중요한 공포는 가족의 사랑과 도덕적 안정감의 원천으로서 가정이 지니는 존엄성에 대한 잠재적 위험이다.<xref ref-type="fn" rid="fb047"><sup>47)</sup></xref> 아들과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백승하와 강민주를 사랑하지만 지적 계급적 열등함 때문에 어느 선 이상으로 다가갈 수 없었던 황남기, 그리고 자신의 속물적인 구애를 거절당한 후 우연히 병원에서 본 강민주를 백승하의 납치범일 것이라고 단정한 후 경찰에 제보한 김인수까지 이 세 남자의 우연치 않은 공모 아닌 공모로 팜므 파탈은 제거된다. 그녀는 그 셋 모두에게 남성성의 손상을 가한 여자였던 셈이다.</p>
</sec>
</sec>
<sec id="sec004">
<title>4. 남성 상징살인의 불가능성과 여성혐오살인</title>
<p><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xref>은 1990년대는 각별하게 젠더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폭했던 상황 속에서 쓰인 것이다. 9살 때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를 21년 후에 찾아가 살해한 김부남 사건, 자신을 9년 동안 강간해온 의붓아버지를 남자 친구와 함께 살해한 김보은 김진관 사건이 발생하자 광범한 여성운동단체들이 연대하여 재판 지원을 했으며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벌였다.<xref ref-type="fn" rid="fb048"><sup>48)</sup></xref> 보복살인을 정당방위로 주장해온 운동 덕분에 김부남 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고, 김보은 씨는 특별사면을, 김진관 씨는 감형을 받게 된다. 여성들이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남성들에 대한 보복살인은 법정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변호되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 범죄서사의 단초들은 범죄로도 인식되지 않아 온 젠더폭력을 여성 스스로가 응징한다는 서사이다. 위의 사건들과 &#x003C;델마와 루이스&#x003E;는 그 응징이 실제로 폭력을 가한 구체적인 가해자를 향해 있는 데 반해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의 강민주는 그 모든 남성의 폭력과 남성 지배에 대항하여 남성 대표에 대한 상징적 살인을 시도한다. 이미 김양선, 김은하가 지적했듯이, 이 상징적 기획이 개별적 인격관계로 전환할 때 그 파탄을 예비하고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49"><sup>49)</sup></xref> 나는 그것을 독립적이고 능력 있는 중산층 페미니스트 여성가 중산층 가정을 위협하는 팜므 파탈로 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으며 거기에는 1990년대 물질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견고해진 중산층 가정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보았다. 가정적 남성의 등장이야말로 이를 말해준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페미니스트 범죄로서의 상징 살인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것일까?</p>
<p>대표성을 띠는 남자를 사로잡아 그 헤게모니를 박탈한다는 상징 살인은 문학적 상상 속에서도 실패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살인을 연거푸 범하는 연쇄살인은 1986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필두로 한국 사회에서 시작되고 있었으며, 그들은 영화로, 드라마로 제작되어 널리 풍미되는 미디어 텍스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강민주는 왜 실패했는가. 그가 테러 대상을 지나치게 고른 데서 바로 그 실패가 예비되었던 것은 아닌가? 그녀가 무작위로 남자들을 죽이는 연쇄살인을 기획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다름 아니라 다음의 상황이 떠오르기 때문이다.</p>
<p>2003년에 잡힌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이혼한 아내와 똑 같은 직업을 가진 출장 마사지사를 불러 왜 연쇄살인을 했냐고 하니, “이 일을 계기로 여성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라고 변명하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 김씨는 “평소에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하였다. 그들의 변명은 여성성에 관한 통념적 인식을 핵심으로 삼는다. 그들의 범죄와 메시지가 곧 바로 여성들의 행동을 구속하는 사회적 메시지로 해석되곤 하는데, 그것은 여성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범죄의 대상이 될 만한 속성이 내재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속성이란 여성 섹슈얼리티로부터 기원한다. 정숙/문란, 숙녀/악녀, 순수/오염이라는 여성성의 이분법적 쌍은 여성들을 두 범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후자를 여성들에게 내재한, 다스려져야 할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구성된 짝패인 것이다. 이처럼 무작위의 여성이 여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어떤 남성이라도 남성을 대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여성을 통제하는 것을 통해서만 대표할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에서 상징 살인의 실패는 남성에 대한 여성 지배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아주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을 말해준다. 여성 일반을 향한 상징 범죄로서의 “여성혐오” 살인에서 여성은 상징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 죽임을 당한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의 역사, 그 이데올로기의 축적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p>
<p>페미니스트이자 강한 소비적 정체성을 지닌 강민주와 지적 계급적으로 그녀를 소유할 수 없는 남자 황남기. 황남기에 의한 그녀의 죽음은 1990년대 이후 더욱 잔인한 상상력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의 젠더 정치의 징후일 수도 있다. 황남기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여자에 대한 응징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그 여자의 도덕적 자질-다른 남자 때문에 변해버린 마음-의 결핍으로 돌려버린 데서 강민주를 살해하게 된다. 황남기의 살인은 2000년대 점증하게 되는 이별살인 및 데이트폭력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폭력 및 살인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의 우월성을 전제하는 관념에 기초한 것이다. 황남기의 최후진술은 강민주에 대한 살해를 그녀 자신도 원했을 자신의 역할수행으로 의미화하고 있다. 이는 데이트폭력에서 보여주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인식으로, 가해 남성들은 대개 폭력 발생의 책임을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행동으로 간주한다.<xref ref-type="fn" rid="fb050"><sup>50)</sup></xref> 나아가 여성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폭력은 훼손과 폐기 처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죽여서라도 남이 갖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독점적인 소유물로 파악하는 물화된 인식을 보여준다.</p>
<p>한편으로 86 아세안 게임, 88올림픽 등을 전후로 고도성장한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가시화될 무렵부터 최근 진범이 밝혀진 화성연쇄살인 등 여성 일반에 대한 상징살인으로서 연쇄살인이 등장하였으며, 지강헌 사건(1988), 지존파 사건(1993-4) 등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소외된 하층계급 남성들의 강력 범죄가 발생하였으며 그들은 저마다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표출하고자 하였다.</p>
<p>여기에 덧붙여, 강민주는 죽고, 황남기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백승하만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들 셋은 모두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음을 떠올려볼 때, 무고한 가장의 아내와 아들이 있는 가정으로의 복귀는 특별한 의미망을 지닌다. 정상성을 웅변하는 중산층 가정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얼룩 또는 성채로 남아 있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이 작품은 『리빙센스』에 1991년 7월에서부터 이듬해 7월까지 연재되었다. 이 글에서는 다음을 판본으로 사용한다. 양귀자,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살림, 1992. 이하 『나는 소망한다』</xref>로 약칭하며, 인용시 본문 괄호에 쪽수만 쓰도록 한다.</p></fn>
<fn id="fb002"><label>2)</label><p>이상은 다음 신문 기사를 참조. &#x003C;8월 베스트셀러 집계&#x003E;, 『매일경제』, 1992.9.4., 13면; &#x003C;’92출판계 밀리언셀러 크게 늘었다&#x003E;, 『매일경제』, 1992.11.30., 13면; <xref ref-type="bibr" rid="B034">&#x003C;영화계 ‘미니넘 개런티제’ 확산&#x003E;, 『한겨레신문』, 1993.9.19., 3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2">&#x003C;연휴극장가 화제작 풍성 방화·직배 외화 흥행경쟁&#x003E;, 『경향신문』, 1994.2.9., 31면</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33">&#x003C;양귀자 소설 극화 … ‘여성해방’ 문제 다뤄 연극 『나는 소망한다 내게…』&#x003E;, 『동아일보』, 1994.1.7., 15면</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1년 작품인 영화는 미국의 제작사 MGM이 국내 배급사 화천공사와 다국적 직배사 UIP와 이중계약을 맺은 후 전자와의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화천공사과 MGM, 화천과 UIP와의 소송, 수입 및 상영금지처분 등으로 국내 개봉이 늦어진다. <xref ref-type="bibr" rid="B034">&#x003C;배급권 법정다툼 ‘델마와 루이스’ UIP, 27일 개봉 강행&#x003E;, 『한겨레신문』, 1993.11.9. 11면</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x003C;델마와 루이스&#x003E;는 다른 지역에서는 상영되지 않았으며 서울의 6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었으며 누적관객수는 119,301명으로 집계되었다. 1993년 9월 25일 개봉된 제인 캠피온의 &#x003C;피아노&#x003E;는 475,850명으로 집계되었다.(이상은 KOBIS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참조) <uri>http://www.kobis.or.kr/kobis/business/mast/mvie/searchMovieList.do</uri>.&#x003C;델마와 루이스&#x003E;는 페미니즘 영화로 알려진 두 영화의 관객 수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남성지배를 상징하는 성폭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가해자를 살인한 데서 여성 범죄 서사보다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영화가 더 많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강간범의 혀를 물어 재판 최초의 여성 범죄 서사이자 법정 서사였던 1990년에 개봉된 &#x003C;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x003E;는 누적 관객수는 49,844명이었다.</p></fn>
<fn id="fb006"><label>6)</label><p>이 소설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xref ref-type="bibr" rid="B005">김양선·김은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이르는 길｣, 『여성과 사회』 4, 한국여성연구소, 1993, 102-125쪽</xref>; 정영자, ｢양귀자 소설연구｣, 『한국여성소설연구』, 세종, 2002, 483-522쪽; <xref ref-type="bibr" rid="B011">류보선, ｢길 찾기, 혹은 소설가의 숙명-｢숨은 꽃｣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대하여｣, 『경이로운 차이들』, 문학동네, 2002, 257-282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16">박혜경, ｢폐허 속에 일구는 희망의 연대–양귀자의 작품세계｣, 『문학의 신비와 우울』, 문학동네, 2002, 151-174쪽</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5">김양선·김은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이르는 길｣, 『여성과 사회』 4, 한국여성연구소, 1993, 102-125쪽</xref>. 이 평론은 당시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숨은 꽃｣의 작가이기도 했던 양귀자의 전 작품에서 드러난 여성문제 인식의 한계를 논증함으로써, 작가의 문학적 경향에서 돌출적으로 출현이 소설이 “페미니즘의 소설 계보에 든다”고 하더라도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돌파하지 못했음을 주장하였다.</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5">김양선·김은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이르는 길｣, 『여성과 사회』 4, 한국여성연구소, 1993, 123-124쪽</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5">김양선·김은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이르는 길｣, 『여성과 사회』 4, 한국여성연구소, 1993, 124쪽</xref>.</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16">박혜경, ｢폐허 속에 일구는 희망의 연대–양귀자의 작품세계｣, 『문학의 신비와 우울』, 문학동네, 2002, 167쪽, 169쪽</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류보선, ｢길 찾기, 혹은 소설가의 숙명-｢숨은 꽃｣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대하여｣, 『경이로운 차이들』, 문학동네, 2002, 278-280쪽</xref>.</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24">이광호, ｢리얼리즘이 있던 자리–현길언·양귀자의 소설｣, 『문학과 사회』 6(4), 1993, 1405쪽</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정정희, ｢1990년대 여성작가 소설에 대한 비평담론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25-29쪽</xref> 참조. 익명의 심사위원이 지적한 바대로, 베스트셀러가 된 여성 작가의 페미니즘 소설의 대중성 내지 통속성에 대한 평가가 문학성을 둘러싼 의구심으로 변전되는 현상을 최근의 『82년생 김지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2000년대 초중반 출판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칙릿에 대한 평단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별고를 요할 정도의 접근이 필요할 정도지만, 간략히 입장을 표하자면 이들 소설의 인기는 여성 독자들의 특별한 호응의 결과라는 것을 강조해두겠다. 동시대의 20-30대 여성의 삶과 지향을 다룬 이들 소설의 문 앞에서 멈춘 ‘문학’, ‘문학성’이란 잣대는 한국문학 비평담론이 특정한 집단과의 커뮤니케이션 기능과 역능을 지니지 않아왔음을 보여준다. 20-30대 여성들은 <xref ref-type="bibr" rid="B001">『나는 소망한다』</xref>가 간행된 1990년대에, 『82년생 김지영』이 간행된 2010년대 후반에 페미니즘 운동의 주제들로도 자신들을 가시화한 집단이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하나의 현상이 된 『82년생 김지영』은 그 자체로 이들 집단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플렛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문학 내지 문학성을 재구축, 갱신하는 데 있어 성찰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연대기적 형식을 띠는 동시에 개성을 거세한 얼굴 없는 김지영이 어떤-미학적?- 장치로 요구되었다는 것과 여성 독자들의 익명적이고도 집단적 호응을 나란히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 중에서, “K문학/비평”에 대한 젠더 정치적 접근 속에서 여성독자 집단을 성찰적 기제로 삼을 것을 주장한 오혜진의 다음 논문을 참조. <xref ref-type="bibr" rid="B021">오혜진,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2015년 문학권력 논쟁 및 문학장의 뉴웨이브를 중심으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한국문학의 정상성을 묻다』, 오월의 봄, 2019, 80-117쪽</xref> 참조.</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26">정정희, ｢1990년대 여성작가 소설에 대한 비평담론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58-61쪽</xref>. 그 외에도, <xref ref-type="bibr" rid="B019">심진경, ｢2000년대 여성문학과 여성성의 미학｣, 『여성과 문학의 탄생』, 자음과 모음, 2015, 221-225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08">김항‧이혜령 엮음, ｢김영옥과의 인터뷰｣, 『인터뷰: 한국 인문학의 지각변동』, 그린비, 2011</xref> 참조.</p></fn>
<fn id="fb015"><label>1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5">김양선·김은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이르는 길｣, 『여성과 사회』 4, 한국여성연구소, 1993, 119-120쪽</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인혜, ｢‘여성인권운동’의 프레임과 주체 변화에 대한 연구｣, 성공회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84-88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박인혜, ｢‘여성인권운동’의 프레임과 주체 변화에 대한 연구｣, 성공회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91쪽</xref>.</p></fn>
<fn id="fb018"><label>18)</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조주현, ｢여성 정체성의 정치학 :80-90년대 한국의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진보평론』 7, 진보평론, 2001, 141쪽</xref>.</p></fn>
<fn id="fb019"><label>19)</label><p>이상의 내용은 소현숙의 다음 논문을 통해 정리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B017">소현숙, ｢1956년 가정법률상담소 설립과 호주제 폐지를 향한 기나긴 여정｣, 『역사비평』 113, 역사비평사, 2015, 82-83쪽</xref>. 그 밖에도 맏아들이라도 강제로 호주가 되지 않게 하였으며, 친족범위를 부계·모계, 남편·아내 쪽을 평등하게 하는 등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사이트 참조. <uri>http://newfl.or.kr/newhome/sub01/body02.php</uri>.</p></fn>
<fn id="fb020"><label>20)</label><p>여성해방운동가들은 경향적으로 결혼을 이에 대해서는 미셀 바렛, 메리 맥킨토시의 다음 구절에서 대강의 이해를 얻는 것이 좋겠다. “페미니스트 사유는 평생 지속되는 일부일처제, 특히 결혼법이 부과하는 일부일처제를 거부해왔다. 여성해방운동가들은 1920년대의 보헤미안, 1960년대의 히피들의 발상에 의거해 부르주아적 도덕 관습을 거부하는 기구를 만들었고, 공과 사의 경계를 깨뜨림으로써 개인생활의 가치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1970년대 초에 이르면, 집안의 모든 문을 없애고 여분의 침대가 있는 방이면 아무 데서나 자는, 그리고 그저 손에 잡히는 옷을 입고 사는 페미니스트 가구들이 생겨났다. 최근 <bold>남성과의 관계 개혁에 실망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분리주의로 선회해 가급적 남성의 도움이나 남성 동반자 없이 살아가기도 한다.</bold> … 분리주의자들은 남자와 사는 여자들을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인간이라고 비웃었다.” <xref ref-type="bibr" rid="B013">미셸 바렛·메리 맥킨토시, 『반사회적 가족』, 김혜경·배은경 역, 나름북스, 2019, 274-275쪽</xref>.</p></fn>
<fn id="fb021"><label>21)</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김덕영, 『현대의 현상학–게오르그 짐멜 연구』, 나남출판사, 1991, 130-131쪽</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강민주는 범죄를 위한 다른 아파트를 구하고 그곳을 드나들다가 그곳에 함께 있던 남자들 속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p></fn>
<fn id="fb023"><label>23)</label><p>사생활의 공간으로서의 자동차의 성격을 집과 비교하여 설명한 장 보드리야르의 언급을 참조해도 좋겠다. “자동차는 양분된 일상성 속에서 집에 대립된다. 즉 자동차 역시 거주이지만 예외적인 주거이다. 또한 자동차는 사생활로 닫혀져 있는 영역이지만, 사생활의 습관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고 형식적인 강렬한 자유와 대단한 기능성을 지닌 영역이다. 가정의 사생활은 가정의 관계와 습관 속에서 이루어지는 합일의 사생활이고, 자동차의 사생활은 시간과 공간의 가속된 신진대사로 이루어지는 사생활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사고’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이 경우 때때로 실현되지 않지만 언제나 상상되고 언제나 본의 아니게 사전에 수용되는 운(運) - 자동차의 사생활, 즉 죽음 속에서 만큼이나 아름답지 않은 형식적 자유 – 은 우연 속에서 절정에 달한다. 어떤 놀랄만한 타협, 즉 가정에 있거나 가정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의 주체성이 제한되는 반면, 자동차는 그 주변이 아무데도 없는 새로운 주체성의 중심이다.”  장 보드리야르, 『사물의 체계』, 백영달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1, 106쪽; <xref ref-type="bibr" rid="B023">육현승, ｢미디어로서의 자동차｣, 『독일어문학』 80, 한국독일어문학회, 2018, 126쪽</xref>에서 재인용.</p></fn>
<fn id="fb024"><label>2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강준만, ｢자동차의 미디어 기능에 관한 연구–자동차는 한국인의 국가, 사회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언론과학연구』 9-2, 한국지역언론학회, 2009, 29쪽</xref>. 1980년대 중후반 한국은 세계가 놀랄만한 자동차 수출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거쳐, 1990년대에는 한해 한해가 다른 본격적인 마이카시대에 육박해갔다. 국내 수요 자동차는 1990년 6월에 3백만대, 1991년 10월에는 4백만대, 1994년 8월에는 7백만 대를 돌파하여 대부분의 중산층은 마이카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준만에 따르면,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일상적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근대화의 상징이자 일부 특권층의 부의 상징이었던 자동차는 1980년대에 이르러는 발전국가의 자부심을 표상하는 미디어로 기능하였다.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였던 1990년대에는 자동차는 중산층의 전원주택에 대한 수요, 근교외식과 여행 수요를 늘렸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폭발적 판매와 연동하여 자동차는 국토의 재발견을 통한 국가적 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무엇보다 계급적 구별 짓기의 가장 강력한 소비품목으로 기능하였다.</p></fn>
<fn id="fb025"><label>25)</label><p>물론 “386”이라는 용어는 ‘신세대’보다 늦게 출현했다. 즉 이 소설이 처음 간행된 해에는 386세대라는 용어는 없었다.</p></fn>
<fn id="fb026"><label>26)</label><p><xref ref-type="bibr" rid="B029">주은우, ｢자유와 소비의 시대, 그리고 냉소주의의 시작: 대한민국, 1990년대 일상생활의 조건｣, 『사회와 역사』 88, 한국사회사학회, 2010, 307쪽</xref>.</p></fn>
<fn id="fb027"><label>27)</label><p>이 시기 “문화연구”는 경제 결정론적인 마르크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문화로의 전회를 통한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갱신을 지향했다. 주요 리더였던 강내희는 광범위한 민중 생존권 투쟁을 수반했던 1991년의 5월 투쟁의 실패를 통해 문화연구에 대한 필요함을 느꼈다고 진술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8">김항·이혜령, ｢강내희와의 인터뷰｣, 『인터뷰: 한국 인문학의 지각변동』, 그린비, 2011</xref>.</p></fn>
<fn id="fb028"><label>28)</label><p>이와 관련한 대표적 출판, 전시 기획으로는 <xref ref-type="bibr" rid="B007">김진송, 엄혁, 조봉진 기획,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현실문화연구, 1992</xref> 참조. 인용은 여기에 수록된 강내희, ｢압구정동의 문제설정: 한국자본주의의 욕망구조｣, 23-29쪽 참조.</p></fn>
<fn id="fb029"><label>2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엄혁, ｢압구정동: 억압적 역사와 아이들의 미학｣, 김진송, 엄혁, 조봉진 기획,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현실문화연구, 1992, 165쪽</xref>.</p></fn>
<fn id="fb030"><label>3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엄혁, ｢압구정동: 억압적 역사와 아이들의 미학｣, 김진송, 엄혁, 조봉진 기획,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현실문화연구, 1992, 157-159쪽</xref>.</p></fn>
<fn id="fb031"><label>31)</label><p>오자은은 1965년 4월 창간되어 현재도 발간되는 『주부생활』에서부터 1980년대 『행복이 가득한 집』에 이르기까지 여성지나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중산층은 “아파트적 생활양식, 현대적인 문화생활을 누리고 향유하는 중산층 주부의 이미지로 형성화된다. 30평형대 아파트의 홈 인테리어와 베란다 원예, 가구와 수입 전자제품 등 라이프 스타일은 빠르게 보급된다. …더 나아가 유럽의 문화나 부유층의 화려한 취향을 소개하고 중산층 주부 혹은 중산층 주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지적한 바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20">오자은,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중산층의 정체성 형상화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53-54쪽</xref>. 특히 박완서의 소설은 현재의 송파구를 주무대로 한 강남 개발과 아파트 중산층 문화의 형성에 행위자들이었던 가정주부들의 소비적 정체성이 지닌 모방적 매개적 성격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쳤다.</p></fn>
<fn id="fb032"><label>32)</label><p><xref ref-type="bibr" rid="B034">&#x003C;특정층 겨냥 전문여성지 쏟아진다&#x003E;, 『한겨레신문』, 1990.9.23., 9면</xref>.</p></fn>
<fn id="fb033"><label>33)</label><p>이 소설의 백승하가 안성기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출간 직후 영화화가 이야기되면서부터 나돌았으며, 안성기 자신 또한 이 소설을 읽고 소름끼칠 정도로 자신과 닮아 자기를 연기하는지 배역을 연기하는지 분간이 안 될 것 같아 배역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한다. <xref ref-type="bibr" rid="B033">&#x003C;나는 “영화로만 부는 바람”&#x003E; , 『동아일보』, 1993.2.6., 11면</xref>. 한편 양귀자는 자 이 소설을 끝마치고야 백승하가 안성기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xref ref-type="bibr" rid="B032">&#x003C;우리 삶의 代役 같은 사람–영화배우 안성기&#x003E;, 『경향신문』, 1993.6.21.</xref></p></fn>
<fn id="fb034"><label>3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더글라스 켈너, 『미디어 문화』, 김수정·정종희 역, 새물결, 1997, 434-438쪽</xref> 참조.</p></fn>
<fn id="fb035"><label>35)</label><p>이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14">미셸 푸코, 『성의 역사』I, 이규현 역, 1997</xref> 참조.</p></fn>
<fn id="fb036"><label>36)</label><p>소설에서 언론은 백승하의 납치범이 오랫동안 여자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는다. 나중에 강민주가 중년의 여성으로 변장을 하고 백승하 아이의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 간 백화점 직원에 대한 조사로 납치범이 여자일 것이라는 추측이 시작되는 것으로 설정된다.</p></fn>
<fn id="fb037"><label>37)</label><p>주지하듯이, 서구 시민사회의 성립과 관련하여 이야기되는 공/사 영역의 분리는 사회와 가족 사이에 그어지는 것이고 젠더는 이 경계를 표시하는 범주였다. 가정성에 관한 이념은 여성의 덕목과 자질로 표현되었으며 그것은 혁명이나 여성운동의 대두 속에서 도전받고 재구성되는 영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27">조용욱, ｢근대 영국에서의 가정성(domesticity) 이념｣, 『한국학논총』 39,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2013, 325-356쪽</xref> 참조. 실제로 1990년대 여성운동은 각종 법 개정 및 제정에 의해 가정성의 재구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은 문화적으로는 가정과 사회에서 평등을 추구하고,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에 반대 급부적인 가정적인 남성상의 출현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p></fn>
<fn id="fb038"><label>38)</label><p>부르주아의 그것과 구별되는 노동자 가정의 성격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12">마거릿 콘, 『래디컬 스페이스』, 장문석 역, 2013, 79쪽, 182쪽</xref> 참조.</p></fn>
<fn id="fb039"><label>39)</label><p>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중산층 가정 만들기는 1997년 IMF 위기 시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족 부양자, 숙련노동자로서의 남성 노동자를 특권화한 결과, 여성 노동자의 배제와 차별, 비정규직 노동자의 광범한 생성으로 귀결되었다. 노동시장의 신자유주의적 유연화는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적인 단층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1998년 현대자동차는 노조와 합의 하에 결국 144명의 식당 여성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고 하청화를 하고, 133명의 남성 노동자는 무급휴직자로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다.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적 정리해고 타협은 자본과 ‘민주’ 노조운동 세력의 남성 편향적이며, 가부장제적 경향이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이다. <xref ref-type="bibr" rid="B018">신병현, ｢여성노동자의 집단적 정리해고와 ‘민주’노조 운동｣, 『진보평론』 1, 진보평론사, 1999, 261-262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22">원영미, ｢자동차공장 식당 여성노동자의 일상｣, 『울산사학』 15, 울산대 사학회, 254-265쪽</xref>.</p></fn>
<fn id="fb040"><label>4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강준만, ｢‘질투’와 ‘최진실 신드롬’｣, 『한국현대사산책 1990년대편』 1권, 인물과사상사, 2006, 214-215쪽</xref>.</p></fn>
<fn id="fb041"><label>41)</label><p>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신세대는 탱크처럼 강한 여성과 쿠키처럼 부드러운 남자를 좋아한다”는 보고가 나올 정도였고, 이는 무엇보다 광고가 잘 반영하고 있었다. <xref ref-type="bibr" rid="B033">&#x003C;신세대 광고 女强男弱 부각&#x003E;, 『동아일보』, 1996.7.6., 11면</xref>.</p></fn>
<fn id="fb042"><label>42)</label><p><xref ref-type="bibr" rid="B031">Nancy Amstrong, <italic>Desire and Domestic Fiction: A Political History of the Novel</italic>.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pp.7-8</xref>.</p></fn>
<fn id="fb043"><label>43)</label><p><xref ref-type="bibr" rid="B031">Nancy Amstrong, <italic>Desire and Domestic Fiction: A Political History of the Novel</italic>.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p.17</xref>.</p></fn>
<fn id="fb044"><label>44)</label><p><xref ref-type="bibr" rid="B031">Nancy Amstrong, <italic>Desire and Domestic Fiction: A Political History of the Novel</italic>.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pp.18-21</xref>.</p></fn>
<fn id="fb045"><label>45)</label><p><xref ref-type="bibr" rid="B030">진형준, ｢작품 해설 여성성의 신화적 임재｣,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살림, 1992, 324쪽</xref>.</p></fn>
<fn id="fb046"><label>46)</label><p>소설을 구성하는 마지막 기록물은 황남기의 최후진술서이다.</p></fn>
<fn id="fb047"><label>4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레너드 카수토, 『하드보일드 센티멘탈리티』, 김재성 역, 2012, 193쪽</xref>. 카수토는 1950년대 미국의 범죄소설에서 남성 영웅은 감상주의적 가성사의 수호자로 떠오르며, 일탈한 여성은 미국의 가족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범죄의 주체로 등장한다고 주장한다.</p></fn>
<fn id="fb048"><label>48)</label><p>김부남 사건은 1991년 1월 30일, 김보은 김진관 사건은 1992년 1월 17일 일어났다. 이 사건 뒤에 여성운동단체의 운동과 재판경과에 관한 추이는 다음 기사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33">&#x003C;20년전 성폭행범 주부가 보복살해&#x003E;, 『동아일보』, 1991.1.31., 14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2">&#x003C;性폭행남자 살해여인 여성단체서 구명운동&#x003E;, 『경향신문』, 1991.8.7., 15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3">&#x003C;“성폭력 몰아내자” 여성단체들 선언&#x003E;, 『동아일보』, 1991.11.14., 11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4">&#x003C;‘성폭행 보복살인’ 집행유에&#x003E;, 『한겨레신문』, 1991.8.31., 15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3">&#x003C;의붓아버지는 짐승이었다&#x003E;, 『동아일보』, 1992.3.14., 15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3">&#x003C;性폭행 義父살해는 정당방위&#x003E;, 『동아일보』, 1992.3.31., 11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4">&#x003C;성복행 의붓하버지 살해 김보은 씨 사건 여성계 ‘제2의 김부남’ 공동대응&#x003E;, 『한겨레신문』, 1992.1.29., 8면</xref>; <xref ref-type="bibr" rid="B034">&#x003C;시국·공안사범 1백 44명 풀려나&#x003E;, 『한겨레신문』, 1993.3.7., 1면</xref>.</p></fn>
<fn id="fb049"><label>4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5">김양선·김은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이르는 길｣, 『여성과 사회』 4, 한국여성연구소, 1993, 124쪽</xref>.</p></fn>
<fn id="fb050"><label>5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6">김지연, ｢젠더폭력과 가부장제 사회: 데이트폭력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6-27쪽</xref> 참조.</p></fn></fn-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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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자동차의 미디어 기능에 관한 연구—자동차의 미디어 기능에 관한 연구, 자동차는 한국인의 국가, 사회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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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작품 해설 여성성의 신화적 임재</article-title>
<source>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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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strong, Nancy, Desire and Domestic Fiction: A Political History of the Novel,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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