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xml-stylesheet type="text/xsl" href="/resources/xsl/jats-html.xsl"?>
<article article-type="research-article" dtd-version="1.1" xml:lang="ko" xmlns:mml="http://www.w3.org/1998/Math/MathML"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mlns:xsi="http://www.w3.org/2001/XMLSchema-instance">
<front>
	<journal-meta>
		<journal-id journal-id-type="publisher-id">jpn</journal-id>
		<journal-title-group>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journal-title-group>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publisher>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publisher>
	</journal-meta>
	<article-meta>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4_321</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4.011</article-id>
		<article-categories>
			<subj-group>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subj-group>
		</article-categories>
		<title-group>
			<article-title>주거의 투기화, 투기의 여성화</article-title>
			<subtitle>-1970~1980년대 한국 서사에 나타난 복부인의 형상화 양상 연구</subtitle>
		<trans-title-group xml:lang="en">
			<trans-title>Feminizing of Real Estate Speculation</trans-title>
			<trans-subtitle>-A Study on the <italic>Bokbuin</italic> in the Korean Narratives in 1970s~1980s</trans-subtitle>
			</trans-title-group>
		</title-group>
		<contrib-group>
			<contrib contrib-type="author" xlink:type="simple">
				<name-alternatives>
				<name name-style="eastern"><surname>전</surname><given-names>봉관</given-names></name>
				<name name-style="eastern" xml:lang="en"><surname>Jun</surname><given-names>Bong-Gwan</given-names></name>
			</name-alternatives>
			<xref ref-type="aff" rid="aff01">*</xref>
			<aff id="aff01"><label>*</label>KAIST 인문사회과학부</aff><role>교수</role>
			<aff xml:lang="en">KAIST</aff>
			</contrib>
		</contrib-group>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pub-date>
		<volume>25</volume>
		<issue>4</issue>
		<fpage>321</fpage>
		<lpage>359</lpage>
		<history>
			<date date-type="received">
				<day>10</day>
				<month>10</month>
				<year>2019</year>
			</date>
			<date date-type="rev-recd">
				<day>12</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date>
			<date date-type="accepted">
				<day>15</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date>
		</history>
		<permissions>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permissions>
		<abstract>
		<title>국문초록</title>
<p>1970년대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아파트는 한국 중산층의 주거 문화를 획기적으로 변모시켰다. 아파트가 한국인 대부분이 꿈꾸는 이상적인 주거지로 탈바꿈하면서 아파트 가격은 폭등했고, 그에 따라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요한 자산 증식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복부인이 그러한 폐단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p>
<p>본 연구는 복부인을 둘러싼 담론과 복부인을 형상화한 서사 작품을 분석하여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왜 주거가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었으며, 왜 복부인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주부가 투기의 주역으로 지목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한국의 아파트 투기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으므로, 복부인에게만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기는 어려웠다.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정부는 손쉽게 주택보급률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개발업자와 건설업자는 막대한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대부분 젊은 남성들이었던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중개수수료를 얻기 위해 복부인들의 아파트 거래를 부추겼다. 하지만 정부, 개발업자, 건설업자, 중개업자의 이익 추구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으로 간주되었던 반면, 아파트의 소비자이면서 투자자였던 복부인의 이익 추구는 일부 탐욕스러운 여성들이 자행한 ‘비정상적인’ 투기로 지탄받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투기의 여성화’라고 규정하고, 그 사회문화적 원인을 해명하고자 한다.</p>
<p><xref ref-type="bibr" rid="B004">임권택의 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1">박기원의 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박완서의 소설 &#x003C;낙토의 아이들&#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서울 사람들&#x003E;</xref>을 분석하면, 1970~1980년대 한국의 아파트 투기는 가정주부가 주도했다기보다는 부부 공동의 몫을 가정주부가 떠안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복부인은 남녀가 함께 관여한 부동산 투기를 ‘여성화’한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여성 혐오의 한 가지 양상이었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In the 1970s, the full-scale development of the area now known as Gangnam began, ushering in the era of real estate investment on apartments which transformed housing styles in Korea. Apartments were pitched as the most ideal type of housing, creating a competitive market of high demand and skyrocketing prices. The apartments were also viewed as a means of quick asset investment among middle-class Koreans. Within this apartment frenzy stood the female real estate speculator, the <italic>bokbuin</italic>.</p>
<p>This study seeks to locate the <italic>bokbuin</italic> in the real estate development market after the late 1970s. The apartment speculation boom cannot be attributed to the <italic>bokbuin</italic> alone, yet she became the target of public anger and criticism, singled-out as being responsible for fueling illegal and unethical investments. The apartment boom of the 1970s was in fact generated in large part by the government, developers, construction companies and realtors. While their pursuit of profit was deemed as legitimate, the <italic>bokbuin’s</italic> conduct was mostly tainted by presumed illegitimate and greedy motivations. This study problematizes this gendering of real estate investment and treat the <italic>bokbuin</italic> as a byproduct of the family-centered culture in East Asia.</p>
<p>Analyzing Im Kwon Taek’s film “<italic>Mrs. Speculator</italic>”, Park Ki Won’s conte, “<italic>Bokbuin</italic>”, Park Wan Seo’s short story, “<italic>Children of Paradise</italic>”, “<italic>The People of Seoul</italic>”, this study shows that <italic>bokbuin’s</italic> pursuit was not hers alone; it was the collective pursuit with her husband for the enhancement of family finances. This study argue that the <italic>bokbuin</italic> embodied the thickly misogynistic climate of the 1970s that projected the chaotic rise of greed onto the woman.</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복부인</kwd>
			<kwd>아파트 투기</kwd>
			<kwd>투기의 여성화</kwd>
			<kwd>여성 혐오</kwd>
			<kwd>임권택</kwd>
			<kwd>박완서</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italic>bokbuin</italic>　</kwd>
			<kwd>apartment speculation</kwd>
			<kwd>feminizing speculation</kwd>
			<kwd>misogyny</kwd>
			<kwd>Im Kwon Taek</kwd>
			<kwd>Park Wan Seo</kwd>
		</kwd-group>
	</article-meta>
</front>
<body>
<sec id="sec001" sec-type="intro">
<title>1. 서론: 아파트와 한국 서사</title>
<p>1970년대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아파트는 한국 중산층의 주거 문화를 획기적으로 변모시켰다. 아파트가 한국인 대부분이 꿈꾸는 이상적인 주거지로 탈바꿈하면서 아파트 가격은 폭등했고, 그에 따라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요한 자산 증식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이렇듯 아파트가 주거의 공간에서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복부인이 그러한 폐단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p>
<p>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아파트 가격의 폭등에는 실제로 복부인으로 대표되는 가정주부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미등기 전매, 가격 담합과 같은 아파트 시세 조작 방법 역시 그 기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된 책임을 복부인으로 대표되는 탐욕스럽고 허영심 많은 가정주부 탓으로 전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공정한 인식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섬세한 검토가 필요하다.</p>
<p>본 연구는 1970~1980년대 복부인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과 서사 작품을 분석하여 그 시기 한국에서 왜 주거가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었으며, 왜 복부인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주부가 투기의 주역으로 지목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한국의 아파트 투기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정부는 손쉽게 주택보급률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개발업자와 건설업자는 막대한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대부분 젊은 남성들이었던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중개수수료 수익을 위해 복부인들의 아파트 거래를 부추겼다. 하지만 정부, 개발업자, 건설업자, 중개업자의 이익 추구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으로 간주되었던 반면, 아파트의 소비자이면서 투자자였던 복부인의 이익 추구는 일부 탐욕스러운 여성이 자행한 ‘비정상적인’ 투기로 지탄받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을 ‘투기의 여성화’라고 규정하고, 그 사회문화적 원인을 해명하고자 한다.</p>
<p>‘투기의 여성화’는 단지 한국의 복부인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거품 경제가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초저금리가 지속된 일본에서는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소위 ‘엔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가 유행했는데, 이 거래의 별칭이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 곧 ‘일본 아줌마 부대(Japanese housewives)’였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 한편 2010년대 이후에는 ‘다마(大媽: 큰어머니)’라고 불리는 중국인 중년 여성 투자자가 국제 금 시장에서 금값을 폭등시킨 주역으로 지목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여성의 사회참여가 결코 활발하다고 볼 수 없는 동아시아 3국에서 투기의 영역에서만큼은 모두 여성들이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셈이었다. 본 연구는 한국의 복부인 담론과 서사 작품의 분석을 중심으로 ‘투기의 여성화’라는 동아시아의 독특한 가족 문화가 낳은 기형적인 여성 혐오 현상을 구명해 보고자 한다.</p>
<p>주거환경의 변화는 개인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근대화의 대표적인 양상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공동주택으로서 아파트의 등장은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주거환경의 가장 극단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로 인식되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초 이미 ‘요(寮)’라는 독신자용 공동기숙사가 등장했으며, 1930년에는 오늘날 서대문 충정로에 토요타(豐田) 아파트가 건립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그에 따라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을 배경으로 한 한국 소설은 193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하지만 아파트라는 공간의 의미가 소설 속에서 본격적으로 탐색되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가 중산층이 욕망하는 대표적인 주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였다.</p>
<p>지금까지 한국 소설을 아파트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의 관심은 주로 아파트라는 새롭고 근대적인 공간이 드러내는 모순된 ‘공간의 성격’을 구명하는 데 모아졌다. 한국 소설에서 아파트가 주요한 서사적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문학사적으로 조망한 손종업의 연구는 한국 소설 속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대체로 폐쇄적이고, 방어적이며, 배타적인 공간, 관음증적 병리학적 공간 등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 이외에서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중산층의 욕망이 집중되는 대상이라는 모순된 공간으로서 아파트의 문화사적 의미에 주목했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1970년대 이후 한국 소설에서 아파트라는 새로운 공간이 기존의 공간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생성하는 과정을 분석한 이평전의 연구는 한국 소설에서 아파트는 삶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주거 공간이 아닌 획일성, 익명성, 비정성, 무관심, 비연대성 등과 같이 도시의 부정적 특성을 현저하게 간직한 공간으로 구별짓기와 계급의 분화가 이뤄지는 자본주의 공간의 부정적 측면을 폭로하는 건축물로 재현됨을 규명하였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아파트를 분석한 박철수의 연구는 1970년대 이후 한국 소설에서 등장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묘사를 1. 돈으로 치환되는 욕망과 소비의 상징으로서의 물질성, 2. 무한한 반복과 획일화, 표준화, 규격화된 생활공간, 3. 익명성과 그로 인한 고독이나 권태, 소통 부재, 4. 고밀화, 고층화가 낳은 고층 주거의 비안정성 등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p>
<p>이러한 선행 연구들을 통해 근대적인 주거 공간으로서 아파트에 대한 문화사적 의미는 어느 정도 해명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파트가 중산층을 넘어 전국민적 욕망의 대상이 된 또 다른 원인인 자산 증식과 투기의 대상으로서의 아파트와 그것을 서사화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반세기 가까이 자산 증식과 투기의 대상으로서 인식되어온 아파트에 대한 욕망과 그 주체로서 지목된 복부인이 한국 서사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어왔는지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인식과 비판의 타당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p>
</sec>
<sec id="sec002">
<title>2. 복부인과 부동산 투기</title>
<sec id="sec002-1">
<title>2-1. 복부인의 탄생</title>
<p>“복부인(福婦人): 부동산 투기로 큰 이익을 꾀하는 가정부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p>
<p>이처럼 지금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된 보통명사로 굳어졌지만, 그 기원에서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중산층 이상의 주부들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유행어로서 ‘1978년’을 전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8년 『동아일보』 시평에서는 ‘복부인’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p>
<p>　</p>
<p>　　복부인은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무상출입하는 상류층 부인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라고 한다. 투기꾼과 복부인들은 복덕방에서 좋은 벌이가 있다는 정보만 들어오면 몰려들어 법석이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p>
<p>　</p>
<p>1978년은 아파트 투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해였다. 1973년 닥쳐온 제1차 석유파동을 1974~1975년 무난히 넘기자, 1976~1978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해마다 10%가 넘었다. 중동 특수로 유입된 ‘오일 머니’가 부동산에 쏠리면서 1977년 하반기부터 1978년 상반기까지 서울의 주택 시장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호황을 맞았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도 이 시기 등장했다. 중동 특수와 강남 개발 덕분에 건설회사 주식은 1977년 한 해에만 175% 상승했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p>
<p>이 시기는 일부 계층에 한정돼 있었던 부동산 투기가 중산층까지 ‘대중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동산 투기는 일반 대중이 아니라 기업가, 고위 관료, 토지 브로커 등 특수한 계층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 중반부터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고, 은행에서 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중산층까지 투기가 ‘대중화’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부동산 중개업소나 아파트 분양권 추첨 현장 등 대중화된 투기의 현장에서 실제 눈에 띄는 사람은 복부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중산층 가정주부가 대부분이었으므로 그들이 투기의 주역으로 지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p>
<p>복부인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의 동경의 대상인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일확천금을 노렸던 중산층 여성들이었던 만큼, 사회적 평판이 좋을 수는 없었다.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복부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화여대 교수 백명희는 복부인의 전형적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p>
<p>　</p>
<p>　　복부인의 연령 구조는 30∼40대가 가장 많고 양장층이 대부분이다. 사철 태가 크고 굵은 안경을 즐겨 끼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며 의외로 학력이 높아 중졸 이하는 거의 없다. 복부인은 500만 원을 다섯 장이라고 표현하며, 약간은 콧소리를 내는 듯하고 삿대질을 곧잘 하며 자신만만한 팔자걸음을 흔히 걷는다. 복부인의 경제적 수준은 당초부터 상층에 속하며 남편의 사회적 지위도 상층에 속한다. 특히 사회 유명인사, 지도층에 속하는 ‘사모님’족에서도 상당수가 복부인이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p>
<p>　</p>
<p>복부인이 태가 크고 굵은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쓴 것은 얼굴을 가리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그러한 액세서리들은 오히려 이들을 더 눈에 띄게 했다. 이렇듯 외모와 말투, 행동거지까지 정형화된 복부인의 이미지는 TV 드라마, 코미디, 영화 등에서 반복적으로 희화화되면서 복부인들을 천박하고 허영심이 가득 찬 인물로 그리는 여성 혐오를 확산시켰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p>
<p>복부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무렵부터 복부인에는 부정적 인식의 강도에서 차이가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주부들이 포함돼 있었다. 『경향신문』은 1978년 2월 13일부터 3월 3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x003C;현대판 불가사리: 부동산 투기의 현장과 생태&#x003E;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는 복부인을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또순이형 복부인”과 “어느덧 전문화하여 돈도 벌고 재미도 보는 탈선형 복부인”,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p>
<p>‘또순이형 복부인’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모아서는 날마다 치솟는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잠실, 영동, 반포 등 아파트 지구를 발이 붓도록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그때까지 모은 돈에다 은행 융자나 친지들로부터 빌린 돈까지 더해 아파트를 계약하고 몇 달 후 프리미엄을 받고 되팔아 목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내 집 마련의 꿈에 다가가려는 중산층 주부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가만히 있다가는 중산층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경제적 필요성에서 아파트 투기에 나서는 일종의 생계형, 생존형 복부인이었다.</p>
<p>‘탈선형 복부인’도 시작은 대부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아파트 투기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또순이형 복부인’과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몇 차례 투기에 성공하면서 직업이나 그 시대 가정주부로서의 성 역할을 내팽개치고 직업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가 ‘탈선’하게 된다는 점에서 ‘또순이형 복부인’에 비해 더 격한 비난을 받았다.</p>
<p>복부인의 투기가 탈선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투기 탓에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는 더 어려워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대중화된 한국의 부동산 투기를 복부인의 탐욕과 탈선 탓으로만 돌리면, 중산층 대부분이 아파트 투기 대열에 동참하거나, 최소한 아파트를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인식하게 했던 그 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 강남의 부동산 신화는 군사 정권, 서울시, 관료, 투기꾼, 중개업자, 주민 모두의 합작품이었고, 소위 강남 신화는 현대 한국 사회의 모든 욕망이 집결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일 뿐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투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복부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부, 재벌, 건설회사, 부동산 중개업자 등 다양한 경제 주체가 관여하고 있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부동산 투기에서 복부인은 주모자 혹은 주도자였다기보다는 ‘얼굴마담’ 혹은 ‘꼭두각시’ 역할을 담당했다.</p>
</sec>
<sec id="sec002-2">
<title>2-2. 부동산 투기의 위계</title>
<p>1984년 민주한국당 안건일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부동산 투기에서 복부인은 얼굴만 잠깐 비쳤다가 사라지는 단역배우일 뿐이고, 주연배우는 건설회사이고 재벌은 제작자이며 보이지 않는 손이 연출을 담당한다.”고 주장했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 그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 얼버무린 것의 실체는 정부 혹은 정권이었을 것이다.</p>
<p>안건일 의원의 주장처럼, 1970~1980년대 한국 부동산 투기에는 위계화된 여러 경제 주체들이 관여했고, 그 정점에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 정권이 있었다. 강남 개발의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은 1960년대 후반 착공된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었다. 고속도로 건설에 재원이 부족했던 박정희 정권은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여 부족한 재원을 충당했다. 구획정리사업이란 일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토지들을 묶어서 합리적으로 구획하고 도로, 학교, 공원 등의 기반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기존 토지를 보다 이용 가치가 높은 토지로 전환하는 사업을 말한다.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박정희 정권은 제3한강교 남단에서 양재동에 이르는 7.6km 구간의 도로 용지를 사실상 무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p>
<p>박정희 정권은 교량과 도로 건설과 같은 공익적 목적을 넘어서 정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행정기관, 정보기관 등을 동원해 직접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기도 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윤진우는 1970년 2~8월 총 24만 8,368평을 평당 평균 5,100원에 매입한 후, 영동 2지구 구획정리사업 계획을 발표하여 토지 가격을 폭등시킨 이후, 1971년 5월까지 약 18만 평을 평균 1만 6000원에 매각하여 약 20억 원의 정치 자금을 조성했다. 이러한 정권 차원의 투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실장, 경호실장, 상공부 장관, 서울시장, 공화당 재정위원장 등이 깊숙이 관여했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p>
<p>서울의 주택부족률이 40%에 달했던 시기, 정부로서는 주거 복지 차원에서도 주택 건설을 촉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주택 한 채를 지으려면 2만여 종의 각종 부품과 재료가 드는데 주택경기가 살아나면 그만큼 많은 관련 산업도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거기에 따른 고용 효과도 상당히 늘어난다. <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정부는 투기 과열의 사회적 폐단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한편으로는 억제책을 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당한 투기는 오히려 주택 건설 촉진에 바람직하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p>
<p>정권과 정부 다음 자리에는 재벌과 건설업자들이 위치했다. 건설업자들은 공유수면 매립과 아파트 지구 제도, 아파트 선분양 제도 등을 활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공유수면이란 바다나 강처럼 땅 위에 물이 차 있을 것을 말하는데 국가의 소유다. 바다 일부를 막거나 하천의 제방을 쌓아서 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공유수면 매립이라 부른다. 동부이천동, 반포, 압구정동, 잠실 등 한강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모두 공유수면 매립 사업을 통해 개발되었다. 공유수면 매립 허가만 얻으면 제방과 도로 용지를 제외한 나머지 땅이 통째로 공사업자의 수중에 떨어지고, 조성한 토지는 공기업이나 정부 투자기관에서 일괄 매수해 가거나 공사업자 자신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할 수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p>
<p>1975년 도입된 아파트 지구 제도는 강남 일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설 수 있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강남 일대에는 군소 지주들이 많아 개별 지주들이 토지 매도를 거부하면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기 어려웠다. 아파트 지구 제도는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야 할 곳을 아파트 지구로 지정해 그 안에서는 아파트 외 다른 건축물은 짓지 못하게 하는 제도였다. 서울시는 영동구획정리사업지구의 4분의 1을 아파트 지구로 지정했다. 그에 따라 아파트 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지주들은 아파트 건설업자에게 토지를 매도하는 수밖에 없었다.<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p>
<p>아파트 선분양 제도로 197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아파트 건설업자들은 자금 부담 없이 손쉽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건설업자들은 건축허가를 받으면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었는데, 분양 계약금으로 정지공사, 기초공사를 할 수 있었다. 분양 계약서를 담보로 주택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었다. 아파트 골조공사가 시작되면 다달이 납부금이 들어왔고, 입주가 시작되면 잔금이 들어왔다. 이렇듯 건설업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금융 제도와 공유수면 매립 사업,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 사업 등을 통해 크고 작은 건설회사들은 재벌급 기업으로 성장했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p>
<p>아파트 건설을 둘러싼 정경 유착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었다. 정부는 개발업자와 개발업체의 부정을 용인하고 금융기관까지 결탁하면서 아파트 분양 특혜가 난무했다. 정부가 유수의 아파트 건설업자에게 특수분, 사원용이라는 이름으로 특수 분양을 허용하고, 그중 일부를 특권층에 상납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거액의 프리미엄 수익을 안겨주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28가구의 절반이 사원용으로 승인되었는데 준공도 되기 전에 분양가의 3배 이상 올랐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국영기업체와 은행 임직원 등 600여 명이 특혜 분양을 받았다. 서울시 부시장, 현대건설 자회사 사장 등 5명이 뇌물 수수 협의로 구속되었고, 관련 공무원은 사직 처리되거나 파면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 『경향신문』은 아파트 분양을 둘러싼 권력자들의 특혜와 비리가 복부인의 투기보다 기회의 균등이라는 헌법 정신에 입각할 때 훨씬 심각한 불공정행위라고 비판했다.</p>
<p>　</p>
<p>　　“복부인은 비록 투기를 노릴망정 결코 ‘특혜’를 노리지는 않는다. (……) 복부인이 가정에는 얼마나 충실한지 몰라도 적어도 기회 균등의 헌법 정신에는 충실한 것 같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번에 말썽난 아파트 특혜 분양은 ‘특혜’라는 데 문제가 있다. (……) 투기를 목적으로 특혜 분양을 받은 공직자는 권고사직시키기로 정부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실수요자가 특혜로 분양을 받아 살기로 하고 있다면 또 몰라도, 그것을 전매하여 프리미엄의 재미를 보았다면 앉아서 복부인 뺨을 치는 얌체다. 그래도 복부인은 헌법 정신에 충실한 편이라고, 이번에 관련된 지도급 인사들이 반성해 주기를 바란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p>
<p>　</p>
<p>투기가 대중화된 데에는 정권, 정부, 재벌, 건설업자와 함께 부동산 중개업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1970년대 이전 ‘복덕방’은 나이든 영감님들이 장기나 두면서 소일하다가 사글셋방이나 소개해주고 구전을 얻던 곳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기업형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복덕방’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개발’, ‘~부동산’ 등으로 간판을 고쳐 달았다. 1978년 영동 지구에는 1450여 개소의 크고 작은 부동산 중개업소가 영업 중이었고, 도곡동 1개 동에만 400여 개소가 밀집해 있었다. 그밖에 여의도에 120여 개소, 반포에 150여 개소, 잠실에 500여 개소 부동산 중개업소가 난립했다. 이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아파트나 토지 소유자들에게는 “빨리 현찰로 바꾸어 돈을 굴려야 한다.”고 부추기고, 현금을 쥐고 망설이는 고객들에게는 반대로 “현찰을 손에 쥐고 있으면 손해를 본다.”는 식으로 바람을 넣어 부동산 전매를 유도했다. 잠실 고층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한 채가 입주 전에 7~8번씩 전매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15번이나 전매된 사례도 있었다. 반포, 영동 지구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x003C;오늘의 아파트 시세와 투자 전망&#x003E;이라는 팸플릿을 간행해 집집마다 정기적으로 배달해 주기도 했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p>
<p>크고 작은 부동산 중개업소가 성행하면서 ‘판돌이’(부동산 판촉사원)이라는 신종 직업도 등장했다. 투기가 한창일 때는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작은 곳은 4~5명, 큰 곳은 10~20명, 기업형 중개업소에서는 30~40명에 달하는 ‘판돌이’를 고용했다. 1982년 강남 일대에서 활동한 판돌이는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었다.</p>
<p>부동산 중개업소의 최말단 영업사원인 이 판돌이들이 하는 일은 아파트 분양 현장이나 모델하우스를 찾아다니며 손님을 끌어오는 일이었다. 판돌이들은 어느 평형에 청약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분양신청자들에게 접근해 조언을 해주며 명함과 팸플릿을 돌리며 고객을 유치했다. 그 때문에 아파트 분양 현장이나 모델하우스 주변에는 분양신청자보다 더 많은 판돌이들이 북적대게 마련이었다. 고객 한 사람을 놓고 여러 명의 판돌이들이 달라붙어 실랑이를 벌이기가 다반사였다. 판돌이들은 정해진 급료는 없었고, 고객의 물건을 매매하며 받는 중개 수수료가 수입의 전부였지만, 단골고객 몇 명만 확보하면 웬만한 대기업 사원 못지않은 수입을 올렸다. 1980년 과외 금지 조치 이후 아르바이트로 판돌이를 하는 대학생들도 적지 않았다.<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p>
<p>이처럼 1970~1980년대 부동산 투기의 현장에서는 건설업자와 부동산 중개업소, 투기꾼과 복부인, 정부와 재벌 등 얽히고설킨 공생 관계가 성립돼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정권 혹은 정부를 정점으로, 재벌, 아파트 건설업자, 부동산 중개업소, 판돌이, 복부인 등이 피라미드처럼 위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복부인은 이 거대한 아파트 투기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견고한 남성중심주의 사회였던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정부, 재벌, 건설업자, 부동산중개업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말하자면, 복부인은 남성들이 중심이 된 민관합작의 거대한 ‘투기 조직’에서 ‘얼굴마담’ 혹은 ‘꼭두각시’ 역할을 했을 따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 부동산 투기 열풍이 몰아칠 때마다 가장 먼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은 투기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했던 복부인이었다. 이는 남성이 더 큰 책임이 있는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여성 혐오의 한 양상이었다.</p>
</sec>
</sec>
<sec id="sec003">
<title>3. 복부인의 형상화 양상</title>
<sec id="sec003-1">
<title>3-1. 사회악으로서의 복부인</title>
<p>1970~1980년대 한국 서사에서 복부인은 대체로 투기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켜 서민들의 주거난을 심화시키고,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회악으로 그려진다. 사회적 차원의 해악을 끼치는 존재일 뿐 아니라, 자녀 양육과 남편 외조라는 그 시대가 주부에게 요구하던 가정 내 성 역할을 등한시하고, 퇴폐 유흥업소를 출입하며, 젊은 부동산 중개업자(판돌이)들이나 소위 ‘제비족’과 외도를 일삼는 등 건전한 ‘미풍양속’과 ‘가정 윤리’를 파괴하는 존재로 형상화된다.</p>
<p>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xref ref-type="bibr" rid="B004">임권택의 상업영화 &#x003C;복부인&#x003E;(1980)</xref>을 들 수 있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명장(名匠)이 휘두른 ‘섹스’의 반란!” “허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니라…!!”라는 카피가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그 시대 가장 민감한 사회 문제 중 하나였던 부동산 투기를 ‘탐욕과 퇴폐에 빠진 가해자로서의 여성’과 그에 따른 ‘순진무구한 피해자로서의 남성’이라는 젠더 문제로 환원하려는 감독과 제작진의 의도가 드러난다.</p>
<p><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주부 ‘한정임’이 복부인으로 나섰다가 향락과 도박에 빠지게 되고, 결국에는 부동산 사기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한정임은 택시 거스름돈 50원도 알뜰히 챙기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편 김수만은 3년 남짓 중동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해 500만 원을 벌어온다. 하지만 정임 가족은 남편이 중동 가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현동 단독주택을 팔고 달동네 전세로 옮겨갔는데, 3년 동안 물가와 집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남편이 중동 뙤약볕에서 피땀 흘려 벌어온 돈으로는 팔았던 집을 다시 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허리띠 졸라매고 저축만 해서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요원하다고 생각한 정임은 시어머니를 설득해 아파트 청약 대열에 합류한다.</p>
<p>　</p>
<p>　　한정임: 저, 어머니?</p>
<p>　　황씨: 왜에?</p>
<p>　　한정임: 경애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 우리 아파트 청약 한번 해볼까요?</p>
<p>　　황씨: 아파트?</p>
<p>　　한정임: 네, 청파동 소영 엄마는 아파트 청약 한 번에 천만 원을 벌었다잖아요.</p>
<p>　　황씨: 아이구 예, 애비가 그런 투기를 좋아하겠니?</p>
<p>　　한정임: 좋지 않음 별 수 있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구선 내 집 갖긴 영 틀렸는걸요.</p>
<p>　　황씨: 글쎄다.</p>
<p>　　한정임: 우리 한번 해봐요. 어머니?<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p>
<p>　</p>
<p>정임과 시어머니 황씨의 대화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아파트 청약 제도, 전매 제도 등이 시행되던 1970년대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계약금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의 목돈이 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아파트 청약’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음이 드러난다. 청파동 소영 엄마는 아파트 청약을 받아 프리미엄을 받고 전매해, 정임의 남편이 3년 동안 중동에서 노동하여 벌어온 돈의 2배를 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직하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언젠가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경제 감각이 없는 것이었다.</p>
<p>여기서 투기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은 여성인 정임과 시어머니였을 뿐, 남편 수만은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아파트 분양권 추첨 현장을 쫓아다니는 아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아파트 투기로 일확천금하겠다는 욕망을 철저히 여성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중동에 다녀온 이후 취업이 안 돼 빈둥거리던 수만이 아파트 청약이라도 받아서 가계를 꾸려가려 바둥거리던 아내를 윤리적으로 비난할 입장은 아니었다. 아파트 투기 현장에 실제로 뛰어다닌 사람은 정임이었지만, 아무런 경제 활동도 하지 않는 채 아내에게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남편의 행동은 그 자체가 아내의 투기에 대한 묵시적 동의이자 동조였다.</p>
<p>아무것도 모른 채 나선 청약이었지만, 정임은 운 좋게 당첨이 되고, 그 분양권은 당첨 당일 600만 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전매된다. 정임은 남편이 3년간 중동에서 일해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단 한 번의 분양권 당첨으로 번 것이었다. 이후 정임은 취업이 안 돼 빈둥거리는 남편을 대신해 본격적으로 복부인으로 나선다.</p>
<p>여고 동창생 2명과 공동으로 땅 투기에 나선 정임은 부동산 브로커 송상섭에게 100만 원을 주고 산 개발 정보로 각자 2000만 원을 투자해 개발 예정지를 매입하려 한다. 하지만 정보를 미리 빼낸 복부인은 정임 일행만이 아니어서 개발 예정지에는 이미 여러 패의 복부인들로 북적였다. 정임 일행은 토지 시세의 두 배를 주겠다고 설득하지만, 토지 소유자는 “내버려 두면 머잖아 하늘까지 값이 치솟을 땅”이라며 매도를 거부한다. 정임 일행은 송상섭에게 추가로 1000만 원을 지불하며 음모를 꾸민다. 송상섭은 토지 소유자 최 노인에게 그 땅이 공원 부지로 지정될 것이라고 거짓 정보를 흘려, 정임 일행에게 헐값으로 토지를 매도하도록 유도한다. 이 한 번의 사기성 토지 거래로 정임 일행은 원금을 제하고 각자 3500만 원씩 벌게 된다. 이 사기성 토지 거래 역시 3명의 복부인이 독자적으로 기획해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니라 중요한 국면마다 남성 부동산 브로커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여성 주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었다.</p>
<p>일확천금에 도취된 정임과 여학교 동창들은 호텔방을 드나들면서 젊은 부동산업자와 외도를 하고, 카바레, 고고클럽, 비밀댄스홀을 찾아 제비족과 어울려 춤바람이 나는 등 탈선을 일삼는다. 카바레 불법 영업 단속을 나온 경찰에 연행돼서는 구류 5일 처분을 받기도 한다.</p>
<p>아내가 복부인으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여전히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빈둥거리던 남편 수만은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복부인 남편’이 된 수치심을 달랜다. 하지만 그를 위로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는 “네 여편네 복부인 돼서 벼락부자 되면 누가 죽을 자리에 들어서는 건 줄이나 알아. 이 새끼 피해자는 나야. 나처럼 돈 없어서 바닥을 기며 사는 우리 서민들이라고. 우리가 집을 사자면 네 여편네 돈 번 만큼 그 돈을 물어내야 한단 말이야. 알아 이 새끼.”<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라며 오히려 수만을 비난한다. 수만의 친구는 복부인이 투기로 벌어들인 부를 공유하는 ‘복부인 남편’은 복부인과 분리될 수 없는 경제 공동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복부인의 투기는 ‘여성의 투기’가 아니라 ‘중산층 가족’의 투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의 제작진들은 ‘탐욕스러운 복부인’ 대 ‘선량한 복부인 남편’ 구도에 집착함으로써 ‘수만의 친구’가 술김에 내뱉은 복부인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만다.</p>
<p>가정을 내팽개치고 투기와 퇴폐 향락에 젖었던 정임 일행은 급기야 부동산 사기 매매까지 시도하려다 경찰에 체포된다. 아내가 벌어준 돈으로 도박에 빠져 지내던 수만은 사기마작꾼들에 속아 350만 원을 잃고 경찰서로 연행돼 유치장에서 아내 정임과 상면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은 남편이 아내에게 “사기도박꾼보다 훨씬 반사회적 해악을 끼친 범죄자”라고 비난을 퍼부으면서 끝이 난다.</p>
<p>　</p>
<p>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기를 해서 얼마의 돈을 땄던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기 앉은 복부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노름판에서의 희생자는 그 판에 끼어든 사람들로 끝나는 거지만, 저들 복부인들의 투기는 사기도박꾼보다도 훨씬 반사회적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저 여자들 때문에 주택과 땅값은 천정을 모르게 뛰고 결국 그 대가를 마지막으로 치르는 것은 저 여자들의 투기와는 하등 관계도 없는 영세민이요, 실수요자들입니다.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p>
<p>　</p>
<p>평범한 가정주부가 복부인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는 대체로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의 한정임과 비슷했다. 경제 성장으로 물가와 집값은 폭등하는데, 쥐꼬리만 한 남편의 월급을 아껴 쓰고 저축해서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중산층 가정주부 사이에 팽배했다. 그들도 무슨 일이든 해야 했는데, 가정주부가 얻을 수 있는 직업도 제한적이었고, 노동보다 아파트를 매개로 자산 증식을 노리는 것이 수익이 더 컸기 때문에 아파트 투기에 손을 댔던 것이다.</p>
<p>실제로 1978년 당시 주택 부족률은 서울이 43%, 전국 30%에 달했다. 서울 지역 가구 월평균 소득은 14만 원 남짓이었는데,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70만 원 남짓이었다. 1970년에서 1978년까지 도매 물가는 3.17배 올랐는데, 아파트 가격은 5배 상승했다. 땅값은 7배 올라, 도매 물가 상승률보다 2배 이상 높았다.<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 이러한 경제 상황에서 빚을 얻어서라도 가정의 기초 자산으로서 아파트나 토지를 확보하겠다는 주부들의 욕망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었다.</p>
<p>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돈을 버는 행위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복부인들이 2가지 방향으로 탈선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1. 투기 과정에서 불법 행위와 범죄. 2. 유흥과 외도. 실제로 1977년에는 검사 부인 이창숙이 20억 원을 사취한 사건이 벌어졌고,<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1978년에는 투기에 실패한 사장 부인이 빚쟁이에게 독약을 먹여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 복부인들은 강남 개발과 함께 성황을 이룬 카바레, 비밀댄스홀에 출입하기 일쑤였고, 제비족의 꾐에 빠져 간통죄로 고소되기도 했다. 강남경찰서 수사과에는 한 달 평균 10여 건의 복부인 탈선에 의한 간통 고소 사건이 들어왔다고 한다.<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p>
<p>1970~1980년대 신문 사회면과 주간지에는 복부인들의 경제 범죄와 탈선행위가 연이어 보도되었으므로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이 고발한 한정임 일행의 사기성 투기 수법과 퇴폐 향락 문화가 비현실적이거나 과장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이 서사의 기저에 놓인 ‘반사회적이고 악착같은 여성’ 대 ‘고지식하고 무기력한 남성’의 이분법이 정당한 비판이었느냐는 것이다.</p>
<p>정임이 부동산 투기에 나선 직접적인 계기는 중동에서 돌아온 남편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실업자로 소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투기로 벌어온 돈으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딸이 생계를 유지하고, 아내가 투기로 벌어온 돈으로 친구들에게 술을 사주고, 도박판을 벌이던 수만이 복부인 아내에게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비난을 퍼부을 자격은 애초부터 없었다. 수만이야말로 투기의 과실로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정작 스스로는 투기의 피해자인 것처럼 가장하며, 복부인 아내를 ‘준엄하게 꾸짖는’ 이율배반적인 인물이었다. 복부인 아내가 “사기도박꾼보다도 훨씬 반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라면, 그런 복부인에 기생하는 남편은 아내의 잘못된 행동을 막으려고 노력했어야 했고, 최소한 아내가 투기로 벌어온 돈을 자기 돈인 것처럼 사기도박판 같은 곳을 기웃거리며 탕진하지는 말았어야 했다.</p>
<p>한정임 일행이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나선 배후에는 송상섭, 강유진, 봉두, 유진, 만수 등 부동산 브로커 집단의 유혹이 있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에서 사기성 부동산 거래는 사실상 이들 브로커 집단이 기획해서 한정임 일행이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범죄 수익도 두 집단이 나눠 가졌다. 이렇듯 복부인과 부동산 브로커가 함께 꾸민 부동산 사기극에 ‘여성 범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남성이 훨씬 더 자주 저지르는 경제 범죄를 부당하게 ‘여성화’시킨 것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사회악으로서 복부인은 남녀가 함께 저지른 범죄에서 모든 책임과 비난을 홀로 뒤집어쓴 희생양 혹은 ‘욕받이’인 셈이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이 복부인이 사회에 끼친 해악을 주로 다루었다면, 1979년 1월 기독교 잡지 『새가정』에 게재된 박기원의 <xref ref-type="bibr" rid="B001">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은 복부인의 투기가 가정에 끼친 악영향과 그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는 양상에 주목한 작품이다. ‘영미 엄마’는 10년 전부터 부동산에 눈을 뜨고 매매에 재미를 붙여 억대의 재산을 모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 당시 1억 원은 그녀의 남편 최 선생이 교사 월급을 20년 동안 안 쓰고 모아도 손에 쥐기 어려운 거금이었다. 그녀가 밍크코트를 걸치고 자가용을 타고 동창회에 나가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영미 엄마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남편은 자격지심에서 아내의 일을 못마땅히 여기고 “여편네가 돈 벌어온다고 길을 싸돌아다니는 동안 집안은 쑥밭이 됐다.”고 푸념한다. 아내가 살림은 식모에게만 맡겨놓은 채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고, 친구들이 “여편네 덕에 팔자 고친 놈”, “복부인 남편”이라고 수군거려서 자가용을 타고 다녀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불만이었다. 남편은 아내가 투기를 해서 번 돈으로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도, 마치 아내의 허물이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그 시대 가정주부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등한시하는 아내만 탓했다. 하지만 그가 ‘복부인 남편’이라는 조롱을 받기 싫었다면, 최소한 그 시대 교사에게는 지나치게 과분한 사치품이었던 자가용은 타고 다니지 말았어야 했다.</p>
<p>자식들도 속을 썩이긴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2번 떨어지고 삼수를 하고 있던 아들 경식이는 “길로 방황하는 불량배”가 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 딸은 벌써 고고클럽에 드나들었다. 남편은 자식들이 그렇게 된 것이 식모만 있는 집에 자식들이 정을 붙이지 못한 탓이라며 아내에게 책임을 돌린다. 엄마가 도시락이라도 한 번 신경 써서 챙겨 주었더라면, 자식들이 그처럼 엇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내를 비난한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이것이 집이야? 가정이야?”라는 최 선생의 푸념보다는 “그래 자식 교육은 에미 혼자 시키는 거예요?”라는 영미 엄마의 항변이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돈을 좇을 때 다른 것을 잃었어. 차라리 그 작은 내 봉급을 타오면 당신이 손이 부르트도록 집에서 알뜰히 살림해줄 때가 행복했어.”라는 최 선생의 후회보다는 “겨울 코트 하나 없이 당신이 다닐 때 우리는 돈을 벌자고 이를 갈았지 않아요. 그런데 돈을 벌어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니까 또 그 옛날 가난할 때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욕심”이라는 영미 엄마의 비판이 좀 더 진실에 가까웠다.</p>
<p>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던 남편은 그날 밤 집을 나가고, 통행금지 직전에 들어온 삼수생 아들은 몸살이 나서 누워 있는 엄마에게 5만 원만 달라고 한다. 그 큰돈으로 뭐할 거냐는 엄마의 질문에 아들은 “아유 엄마두 요새 5만 원이 돈예요? 몇백만 원짜리 밍크코트를 입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시는 엄마가 대가리 다 큰 아들한테 5만 원쯤 뭘 그렇게 쩨쩨하게 구세요.”라며 오히려 엄마를 탓한다. 아들이 엄마의 꾸중을 듣고 통행금지도 지난 시간에 대문을 박차고 집을 나가버리자, 영미는 “엄마 돈 두었다가 무엇하려고 그렇게 오빠한테 인색해요? 정말 나는 엄마를 이해 못하겠어.”라며 오빠 편을 들고 나선다. 영미마저 집을 나가버리자, 영미 엄마는 흉가처럼 찬바람이 부는 휑한 80평 아파트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이튿날 알약 30알을 삼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p>
<p>이처럼 <xref ref-type="bibr" rid="B001">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은 투기라는 사회적 해악을 저지르면,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는 단순한 인과응보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남편의 영미 엄마에 대한 불만의 본질은 그녀가 ‘투기’를 해서 자신에게 자가용을 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깥으로 싸돌아다니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들의 불만은 엄마가 밍크코트 입고, 자가용 타고 다녔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한 엄마가 자기에게 용돈을 인색하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즉, 영미네 가정불화의 본질은 엄마가 투기라는 비도덕적 행위를 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가정에서 주부로서의 성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데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미 엄마가 설령 투기를 하지 않고, ‘건전한 경제 활동’을 했더라도, 그 시대 가정주부로서 성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영미네 집안에는 똑같은 위기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p>
<p>영미 엄마와 같이 투기로 돈을 번 대가로 행복한 가정을 잃은 복부인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중산층 주부가 아파트로 자산을 증식시켜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는 점에서 아파트 투기가 곧 불행한 가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xref ref-type="bibr" rid="B001">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의 인과응보는 비현실적 기대였다.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1970년대 말 이후 한국의 중산층들은 대체로 아파트의 자산 가치 상승에 만족했고, 그 때문에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행복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 대중들은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켜 서민들의 주거난을 심화시킨 복부인이,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1">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에서처럼, 법의 심판을 받거나 가정불화로 불행해지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러한 대중의 기대와는 다소 달랐던 것이다.</p>
</sec>
<sec id="sec003-2">
<title>3-2. 중산층 욕망의 타자화로서 복부인</title>
<p>1970~1980년대 한국 서사에서 등장한 복부인은 대체로,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1">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에서처럼, 국가 경제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 미풍양속을 훼손하며, 가정을 해체하는 사회악으로 묘사된다. 원래부터 허영기 넘치는 주부였건, 애초에는 ‘또순이’처럼 건전한 주부였건 상관없이, 일단 복부인으로 나서면 그 시대 주부로서의 성 역할을 외면하고, 집 밖으로 떠돌며 돈을 좇아 투기에 열을 올린다. 몇 차례 투기에 성공하면, 허세를 부리며 거들먹거리고, 사치, 유흥에 빠져 외도까지도 서슴지 않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 그 시기 전형적인 복부인 서사였다. 소설, 영화, TV 드라마, 코미디, 주간지의 가십 기사 가릴 것 없이 대중 서사와 대중 매체들은 이러한 복부인의 전형성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앞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1970~1980년대 한국의 부동산 투기는 국가, 정권, 재벌, 건설업자, 부동산 중개업자와 복부인이 공모한 것이지 결코 복부인이라는 중산층 주부가 독자적으로 저지를 악행은 아니었다. 가정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복부인의 아파트 투기는 부부 공동의 이해와 욕망이 투영된 경제 행위였고, 그 결과물인 경제적 풍요 역시 가족 모두가 공유하였으므로 복부인을 가족으로부터 고립시켜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인식이 아니었다.</p>
<p>이 절에서 다룰 <xref ref-type="bibr" rid="B002">박완서의 &#x003C;낙토의 아이들&#x003E;(1978)</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서울 사람들&#x003E;(1984)</xref>은, 앞 절에서 논의한 전형적인 복부인 서사와 달리, 아파트 투자 혹은 투기를 통해 자산을 증식하려는 욕망은 복부인만이 아닌 중산층 남녀 모두가 공유한 보편적 욕망이었음을 보여줌으로써 복부인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타자화하여 비난하는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말하자면, 복부인을 모티프로 한 박완서의 두 소설은 아파트 투기의 원인과 본질을 국가 경제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빚어진 구조적 모순과 그 결과 중산층 남녀 전반에 퍼진 물질적 욕망의 과잉와 배금주의에서 찾음으로써 그 모든 책임을 복부인이라는 타자에게 전가하는 그 시대의 사회적 통념은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서사로서 논박한 보기 드문 사례인 셈이다.</p>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낙토의 아이들&#x003E;(1978)</xref>은 지질학을 전공한 대학교 시간강사 ‘나’의 시선으로, 대범한 부동산 거래로 자산을 불려 나가는 아내와 그런 ‘복부인’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상황을 그려낸다. 박완서 역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과 그에 따른 사회병리 현상으로서 투기, 그리고 새롭게 개발된 아파트 지구에서 싹튼 허영기 넘치는 신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1">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과는 달리, 그 모든 책임을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가족의 경제적 풍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복부인 아내’에게 돌리지는 않는다.</p>
<p>가상의 공간으로 설정된 무릉동은, 무릉도원에서 따왔음 직한 이름이 무색하게, 바람만 불면 모래가 날리는 한강변 황무지였다. 순수 학문을 공부하느라 경제적으로 무능한 ‘나’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런 사람 못 살 고장”에 20년 만기 대출을 끼고 ‘평민 아파트’ 한 채를 겨우 마련한다. ‘나’의 가족이 입주 신청을 할 때만 해도 신청이 분양 가구 수에 미달돼 무추첨 당첨이 될 정도로 무릉은 거주지로서 인기가 없었다.</p>
<p>집에서 가사를 돌보던 아내는 무릉으로 이주한 후, 젊은 부동산업자 탁사장을 만나, 그가 제공한 ‘극비 정보’를 믿고 부동산 투기에 나선다. 빚까지 얻어 미분양 아파트를 한꺼번에 서너 채나 계약했는데, 미처 중도금도 치르기 전에 구시가지와 무릉 신시가지를 잇는 교량 공사가 곧 착공되리라는 시의 공식 발표가 나고, 그 덕분에 아파트 가격은 폭등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낙토의 아이들&#x003E;</xref>에 묘사된 이러한 경제 상황은 제3한강교 건설 계획이 발표될 당시 압구정, 반포 등 강남 일대에서 일어난 현상과 비슷했다. 무릉이라는 이름이 가상으로 설정되었을 뿐, 소설에 묘사된 시대적 배경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다.</p>
<p>아내는 몇 차례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현재 네 식구가 살고 있는 50평 맨션아파트로 이사하고도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남을 정도로 성공적인 투자를 이어간다. 교량이 완공되자 아파트에서 시작된 부동산 붐은 인근 상업단지와 주택단지 쪽으로 번져나간다. 단지의 택지는 전매와 전매를 거듭하면서 당초 시에서 매각한 값의 열 배 내지 스무 배도 넘게 상승한 후에야 비로소 실수요자에게 넘어갔다. 이때도 ‘나’의 아내는 그 붐에 앞장서서 집안의 자산을 늘려나간다.</p>
<p>이처럼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낙토의 아이들&#x003E;</xref>의 주요한 모티프는 아내의 부동산 투기이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4">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1">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에서 그려진 것과 같이, 투기를 여성화하여 ‘여성 혐오’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부동산 투기로 거금을 벌어들이는 아내가 ‘여성’임을 강조하지 않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어렵게 하고, 국가의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지도 않는다.</p>
<p>우선, 이 소설은 부동산 투기를 복부인인 아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아내와 ‘무릉부동산 탁사장’이 공모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아내는 “탁사장이 젊은 나이에 억대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자기 덕”이라고 생각하고, 탁사장은 “아내가 지금만큼 돈을 번 것은 순전히 사람 하나(탁사장) 잘 만난 덕”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돈을 벌어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그만큼 뿌리 깊은 공생·공모 관계가 형성돼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여론이 부동산 투기의 책임을 복부인이라는 허영심 강한 여성에게 전가하려 했던 시기, 박완서는 그것이 남성 부동산 중개업자와 여성 투자자 사이의 공모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보여줌으로써 투기의 여성화나 그를 통한 여성 혐오에서 벗어나려 했던 셈이다.</p>
<p>또한, 이 소설은 아내의 투기 덕분에 가족 구성원이 누릴 수 있게 된 경제적 풍요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지질학자인 자신과 다른 관점에서 땅을 ‘답사’하는 아내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투자할 땅을 보러 다니는 일을 ‘답사’라고 일컫는 아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렇듯 아내의 부동산 투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나’였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 자신을 대신해 가족들이 중산층 생활을 가능하게 한, 아내의 공적을 부정하지 않는다.</p>
<p>　</p>
<p>　　아내는 담대하고 탁월한 사업가였다. 내가 일생 걸려도 벌까 말까 한 돈을 아내는 한 건만 잘하면 벌 수도 있었고, 자기가 번 액수에 결코 도취하거나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p>
<p>　</p>
<p>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나’는 아내의 사업가로서 재능을 ‘역설적이나마’ 높이 평가한다. ‘나’는 아이들이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덜 받고 자라나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딸이 ‘귀족학교’로 불리는 무릉국민학교에서 부반장이 되고, 수해 의연금을 신문사로 전달하러 가는 대표로 뽑힐 수 있게 된 것도, 그때 입고 갈 사진이 잘 받는 예쁜 옷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비프스테이크 외식을 하고, 케이크,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아내의 경제적 능력 덕분임 역시 ‘씁쓸하게나마’ 인정한다. 물론 이러한 ‘나’의 이중적 인식이 아내의 부동산 투기를 긍정하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듯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과실이 이처럼 강렬하다면, 아내의 투기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관망하는 자신조차 부동산 투기의 공모자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드러내는 것이다.</p>
<p>말하자면, 이 소설은 복부인과 부동산 투기의 윤리적, 정서적 측면에서의 부정적 결과와 경제적 이익이 가져올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제시함으로써 아파트에 대한 투기적인 욕망이 윤리적으로 옹호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새롭게 부상한 계층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져나간 이유를 설명해준다. 1970~1980년대 아파트 투기는 윤리적, 정서적 거부감만큼이나 물질적 유혹이 강렬했기에 중산층 남녀 모두가 그 유혹에 현혹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에 대한 비난은 타자로서 설정된 복부인이 오롯이 떠안은 형국이었다.</p>
<p>이렇듯 부동산 투기가 여성화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분양권 추첨 현장이나 개발 예정지, 부동산 중개업소 등 부동산 투기의 현장에 여성이 더 많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197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여성 차별적 가족 문화 때문이었다. 지질학 전공 시간강사인 ‘나’가 아니라 그의 아내가 탁사장을 찾아간 이유는 ‘나’에게는 불안정하나마 직업이 있었고, 아내는 전업주부였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다니며 개발 정보를 모으거나 개발 현장으로 ‘답사’를 다니거나 아파트 분양권 추첨 현장에서 줄을 서는 일 등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직업이 있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즉, 197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제한된 시기였기에 부동산 투기 현장은 직업이 없었던 전업주부로 붐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p>
<p>아파트의 투자가치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만큼 상승한 이후에도 아내가 무릉을 떠나 딴 개발지역으로 이사 갈 엄두를 못 내는 이유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신시가에 신설된 무릉국민학교는 극빈자 자녀를 위해 국가에서 제공되는 무상 교과서를 나눠줄 학생이 없어 극빈자를 조작해 평수가 작은 평민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나눠 주는 바람에 평민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소동이 빚어질 정도로 학생들의 가정환경이 풍족했다. 그만큼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뜨거웠다.</p>
<p>　</p>
<p>　　그 후 말썽 많은 구시가 사람들은 무릉국민학교를 시체 귀족학교라고 야유조로 부르게 되었지만 교장선생님은 수재학교라고 자칭하면서 더 한층 ‘완전한 학습’과 ‘완벽한 질서’를 강화해갔다. 현대의 수재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부모의 물질적인 뒷받침과 학교에서의 가장 정선된 지식의 가장 기술적인 주입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거기 때문에, 자기처럼 유능한 교육자와 골고루 있는 집 자식들로만 된 학생이 만난 자리인 무릉국민학교야말로 수재 교육의 행복한 온상이라는 거였다. 무릉국민학교야말로 무릉동 주민의 자랑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p>
<p>　</p>
<p>무릉 신시가는 이처럼 교육 환경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티끌만한 불편도 허용 안 하는” 편이성과 “구시가의 가난뱅이네 구식 뒷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생적인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와 같은 교육과 주거환경은 그 시대 가정에서 성 역할을 고려할 때, 온종일 직장에서 ‘바깥일’을 하는 남편보다는 집안에서 ‘가사’를 돌보는 주부에게 민감한 요인이었다. 자녀 교육과 가사 노동의 책임을 여성이 떠안게 됨에 따라 교육과 주거환경을 고려한 최적의 주거지를 선택하는 결정권 역시 여성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주거가 투기화되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가사를 관장하던 여성이 투기의 주역이라는 악역을 떠맡을 수밖에 없게 된 셈이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2">&#x003C;낙토의 아이들&#x003E;</xref>에서 ‘나’는 아내 덕분에 누리게 된 경제적 풍요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내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 정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긍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서울 사람들&#x003E;</xref>에서는 아파트로 자산을 증식하려는 욕망이 결코 주부에게만 한정된 욕망이 아니라 주부와 남편이 공유한 ‘중산층 가정’ 차원의 욕망이었음을 보여준다.</p>
<p><xref ref-type="bibr" rid="B003">&#x003C;서울 사람들&#x003E;</xref>에서 혜진은 조그마한 회사 총무부 과장을 5년째 하고 있는 50만 원 남짓 남편의 월급으로 변두리 달동네에서 12년을 살다가 1년 전 미분양 아파트를 3천만 원에 분양받아 이사한다. 우연히 얻은 그 아파트는 1년 만에 6천만 원으로 2배 오른다. 한 달마다 남편 월급의 5배씩 꼬박꼬박 오른 셈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년 만에 분양가의 배가 된 집을 팔아 새로 지은 아파트를 분양가로 살 경우 40평도 넘는 아파트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재산을 증식시키기란 얼마나 쉽고도 재미난 일인가? 억대 부자가 꿈이 아니라 바로 손만 뻗으면 잡히는 현실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 이러한 혜진의 꿈은 1970년대 후반 이후 아파트를 한 채라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중산층들은 누구나 한 번쯤 꾸던 꿈이었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아파트 청약을 받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경제관념이 없는 것이었다.</p>
<p>혜진은 몇 차례 청약에 실패한 후 채권입찰액을 3천만 원 써놓고 ‘K동 U아파트’ 청약에 당첨된다. 하지만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주택청약예금 300만 원이 전부였는데 채권입찰액을 3천만 원이나 써넣은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혜진은 지인들에게 자금을 융통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분양권 전매를 시도했으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혜진은 어렵게 당첨된 아파트의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없게 된 것 외에 금전적 손실은 없었지만, 혜진은 거액을 손해 본 것 같았고, “큰 부자에서 별안간 밑바닥 가난뱅이로 떨어진 것처럼 창피하고 비참해서 온 세상이”<xref ref-type="fn" rid="fb038"><sup>38)</sup></xref> 원망스러워졌다.</p>
<p>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해 거금을 벌어들일 기회를 놓친 것을 안타까워한 것은 혜진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아파트 투기를 다니는 아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야단까지 쳤던 그녀의 남편 찬국도 아쉽고, 속이 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불혹에 접어들어 직장과 가정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찬국과 그의 친구는 술자리에서 애써 숨겨왔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p>
<p>　</p>
<p>　　“처복이라니?”</p>
<p>　　“경제력이 있든지 복부인 노릇이라도 할 줄 알든지. 요샌 복처처럼 큰 처복도 없다고들하더구먼.”</p>
<p>　　찬국은 복처라는 소리에 한없이 낄낄거렸다. 자신이 왜 하루종일 쓸쓸하고 허전했던지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아내가 아파트 투기에 손을 대는 걸 눈치 채고도 모른 척 묵인했었다. 그게 뜻대로 안 돼가는 걸 알자 노발대발 누구 망신을 시키지 못해 복부인 노릇을 하려느냐고 야단을 쳤지만 실은 잘되길 얼마나 바랐던가. 잘못되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복부인이었지만 잘되면 알토란같은 복처였다. (…중략…) 찬국이 보기엔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위 출세라는 것들은 그게 사회적 지위이든 치부이든 간에 모두 어떤 비정상적인 비결 같은 걸 뒤로 감추고 있었다. 그는 자기만이 그런 비결로부터 소외된 것 같아 마냥 초라하다가, 아내가 아파트 투기에 눈을 뜨는 낌새를 눈치 채면서 마침내 그런 비결의 한 가닥과 줄이 닿은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이 부풀었던가.</p>
<p>　　“우리가 무슨 복에 복처를 모시겠나.”</p>
<p>　　처복도 없는 두 남자는 주거니 받거니 밤 깊은 줄 모르고 소주잔을 기울였다.<xref ref-type="fn" rid="fb039"><sup>39)</sup></xref></p>
<p>　</p>
<p>인용한 술자리 대화에서 보여주듯, 입바른 말로 아파트 투기에 나선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던 남편도 속마음은 아내의 투기가 성공해서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 찾아오지 않았던 ‘출세’를 위한 ‘비정상적인 비결’이 찾아와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이 없는 아내가 아파트 청약 추첨 현장에서 줄을 섰다 하더라도, ‘당첨’에 대한 기대는 부부 공동의 몫이었다. 인용문에서 보여주듯, 아파트 투기는 ‘여성’의 투기가 아니라 ‘중산층 가정’, ‘중산층 부부’의 투기였고, 복부인은 그에 대한 비난을 전가하기 위해 설정된 사회와 가정 내의 타자였다.</p>
</sec>
</sec>
<sec id="sec004" sec-type="conclusions">
<title>4. 결론: 여성 혐오로서의 복부인</title>
<p>복부인이 처음 출현한 시기, 한국 사회에서는 그 등장 배경을 ‘여성주도형 가계’에서 찾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근대 이후 한국에서는 남편이 월급을 봉투째 아내에게 건네는 문화가 있었는데, 중산층이 성장하여 여유자금이 생기게 되자, 중산층 주부가 부동산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 복부인이 출현하게 된 사회적 배경이라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40"><sup>40)</sup></xref> 실제로 한국에서 주부가 전권을 쥐고 가계를 꾸려가는 가정이 많았으므로, 여성주도의 가계가 복부인이 출현하는 데 한 원인이 되었음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여성주도의 가계가 여성의 권익이 성장한 것인지, 그와는 반대로 여성의 부담만 커진 것인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p>
<p>1979년 4월 YMCA는 복부인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진단하기 위해 &#x003C;변동사회에 있어서의 여성상&#x003E;이라는 시민논단을 개최했다. 서강대 차경수 교수와 건국대 진인숙 교수가 주제 발표한 이 시민논단에서 두 교수는 복부인을 바라보는 남녀의 시각차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p>
<p>차경수는 복부인의 등장을 여성의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우선 “변해가는 산업 사회에서 기계 부품 역할에 지나지 않게 된 남성들과는 대조적으로 가정을 주로 한 주부들의 자율성 독립성이 커져 이제는 한 가정의 성공적 기획자이며 예산 집행자 소비 주도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며 여성의 지위 변화를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복부인이라는 ‘사회병리’의 등장 원인을 남성들이 무능, 무력해진 데다가 “그나마 지위 등 때문에 남성이 돈벌이에 못 나서고 여성이 재산 증식의 주체로 나선 것이 갖가지 부작용을 빚은 것”이라 진단하고, 이러한 추세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여성들에게 판단력과 합리적 사고를 키워주어야 하며, 그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서 대학을 개방하여 주부들이 단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p>
<p>남성이 무능, 무력해진 대신 여성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진단 자체는 사실에 기반한 중립적인 진술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에 대한 차경수의 해석에는 남성중심주의적인 편견이 가득했다. 우선, 남성이 돈벌이에 못 나서고, 여성이 재산 증식의 주체로 나선 것을 ‘갖가지 부작용’을 빚고 있는 ‘사회병리’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것은 여성의 사회참여, 여성의 경제력 증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었다. 또한, ‘여성들’에게 판단력과 합리적 사고를 키워주어야 하며, ‘주부들’이 대학에서 단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은 부동산 투기라는 ‘사회병리’의 원인과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의 무지, 우매, 비합리성으로 돌린 것이었다.</p>
<p>이에 대해 진인숙은 여성의 권익이 지금도 전혀 나아진 것이 없으며, 복부인의 등장은 여성의 영향력이 증대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경제적 책임을 전가한 탓이라고 반박했다. 그 근거로 지금도 여학교에서는 현모양처를 이상으로 삼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남성 작가는 ‘작가’라 하고, 여성 작가는 ‘여류 작가’라 하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점, 남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 도박, 밀수를 혹여 여성이 하다가 적발되면, ‘주부 도박’, ‘주부 밀수’라 하여 대서특필하는 점 등을 지적했다. 또한, 재벌 집안이나 부잣집에서 남편이 재산 처분의 전권을 아내에게 맡기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들어, 중산층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월급봉투를 맡기는 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경제권을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가계 유지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결국, 진인숙은 부동산 투기와 같은 사회적 악습은 남녀 모두의 책임이자 불행이므로 남녀가 서로 협력해 남녀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선이 되어야 하며, ‘여성 고급 인력’이 사장되지 않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xref ref-type="fn" rid="fb041"><sup>41)</sup></xref></p>
<p>복부인을 형상화한 1970~1980년대 한국 서사는 차경수처럼 복부인이라는 사회악은 여성의 잘못된 욕망과 허영심 때문이라는 관점과 진인숙처럼 무능한 남성이 여성에 가정의 경제적 책임을 전가한 탓이므로 여성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관점이 공존했다. <xref ref-type="bibr" rid="B004">임권택의 영화 &#x003C;복부인&#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1">박기원의 콩트 &#x003C;복부인&#x003E;</xref>이 전자의 관점에 이어진 것이었다면, <xref ref-type="bibr" rid="B002">박완서의 &#x003C;낙토의 아이들&#x003E;</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서울 사람들&#x003E;</xref>은 후자의 관점과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관점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관점은 틀린 것이다. 두 가지 상반된 서사 유형을 분석하면서 본 연구에서는 복부인을 부동산 투기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것은 투기를 여성화하는 ‘여성 혐오’의 한 양상임을 논증하였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는 정권, 정부, 재벌, 건설업자, 중개업자, 복부인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투기의 피라미드에 포함되는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합작품이었고, 복부인은 그러한 부동산 투기의 위계에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는 ‘얼굴마담’ 혹은 ‘욕받이’였을 뿐이었다.</p>
<p>한국에서는 ‘복부인’이 부동산 투기를 주도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와타나베 부인’이 외환 투기를 주도했고, 최근에는 가상 통화 투기를 주도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큰엄마 ‘다마’가 금을 매집해 글로벌 금 시장을 교란시켰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동아시아에서 투기는 공통적으로 여성들이 주도한 것이 된다. 하지만 부의 대부분을 남성들이 소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3국에서 ‘투기’만 여성이 주도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모함이었다. 복부인, 와타나베 부인, 다마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대중의 불만을 여성에게 전가하기 위해 설정된 일종의 희생양이었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4">최정락, &#x003C;일본 환율을 뒤흔드는 숨은 주역 ‘Mrs. Watanabe’&#x003E;, 『KOTRA 해외시장뉴스』, 2010.11.12.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3/globalBbsDataView.do?setIdx=242&#x0026;dataIdx=102365)</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Chuin-Wei Yap, “China’s Consumers Show Growing Influence in Gold Market”, <italic>The Wall Street Journal</italic>, Aug. 12, 2013</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이평전, ｢아파트 건축과 공간 질서의 생성과 파괴｣,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60호, 2013, 131쪽</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일제강점기 아파트가 주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 소설 목록은 <xref ref-type="bibr" rid="B013">정주리, ｢전향 그리고 아파트와 직업여성｣, 『민족문학사연구』 제52호, 2013, 553-579쪽</xref>에 잘 정리돼 있다. 이 연구는 1930~1940년대 한국 소설에서 아파트는 “직업 생활자인 독신 여성의 생활공간”이라는 의미가 반복 제시돼 있음을 밝히면서 전향소설의 맥락에서 그 젠더적 의미를 규명하였다.</p></fn>
<fn id="fb005"><label>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8">손정업, ｢우리 소설 속에 나타난 아파트 공간의 계보학｣, 『어문론집』 제47호, 2011, 243-264쪽</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이평전, ｢아파트 건축과 공간 질서의 생성과 파괴｣,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60호, 2013, 129-151쪽</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6">박철수,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마티, 2013, 17-31쪽</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x003C;횡설수설&#x003E;, 『동아일보』, 1978.2.2.</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송은영, 『서울 탄생기』, 푸른역사, 2018, 358쪽</xref>.</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송은영, 『서울 탄생기』, 푸른역사, 2018, 380-381쪽</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백명희, &#x003C;복부인론&#x003E;, 『조선일보』, 1978.12.7.</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송은영, 『서울 탄생기』, 푸른역사, 2018, 396쪽</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x003C;현대판 불가사리(3): 복부인 부대(하)&#x003E;, 『경향신문』, 1978.2.16.</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송은영, 『서울 탄생기』, 푸른역사, 2018, 387쪽</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x003C;여록&#x003E;, 『동아일보』, 1984.3.6.</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전강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 『역사문제연구』 제28집, 2012, 13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전강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 『역사문제연구』 제28집, 2012, 14-15쪽</xref>.</p></fn>
<fn id="fb018"><label>18)</label><p>&#x003C;주택경기와 복부인&#x003E;, 『조선일보』, 1981.6.27.</p></fn>
<fn id="fb019"><label>19)</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전강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 『역사문제연구』 제28집, 2012, 16쪽</xref>.</p></fn>
<fn id="fb020"><label>20)</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전강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 『역사문제연구』 제28집, 2012, 19쪽</xref>.</p></fn>
<fn id="fb021"><label>2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2">전강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 『역사문제연구』 제28집, 2012, 31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11">장상환, ｢해방 후 한국자본주의 발전과 부동산 투기｣, 『역사비평』 제66호, 2004, 61쪽</xref>.</p></fn>
<fn id="fb022"><label>22)</label><p><xref ref-type="bibr" rid="B005">김아람, ｢1970년대 주택정책의 성격과 개발의 유산｣, 『역사문제연구』 제29집, 2013, 67쪽</xref>.</p></fn>
<fn id="fb023"><label>23)</label><p>홍승면, &#x003C;아파트 특혜&#x003E;, 『경향신문』 1978.7.5.</p></fn>
<fn id="fb024"><label>24)</label><p>&#x003C;현대판 불가사리 (4): 거간과 투기사&#x003E;, 『경향신문』, 1978.2.17.</p></fn>
<fn id="fb025"><label>25)</label><p>&#x003C;강남 새 풍속도 (43) 복덕방 (9) 판돌이&#x003E;, 『경향신문』, 1983.6.30.</p></fn>
<fn id="fb026"><label>26)</label><p>&#x003C;현대판 불가사리 (10): 끝없는 싸움&#x003E;, 『경향신문』, 1978.3.3.</p></fn>
<fn id="fb027"><label>2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오재호(원작), 윤삼육(각색), 임권택(감독), &#x003C;복부인&#x003E;(검열대본), 세경흥업주식회사, 1980, 6쪽</xref>.</p></fn>
<fn id="fb028"><label>2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오재호(원작), 윤삼육(각색), 임권택(감독), &#x003C;복부인&#x003E;(검열대본), 세경흥업주식회사, 1980, 가-23쪽</xref>.</p></fn>
<fn id="fb029"><label>2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오재호(원작), 윤삼육(각색), 임권택(감독), &#x003C;복부인&#x003E;(검열대본), 세경흥업주식회사, 1980, 다-34쪽</xref>.</p></fn>
<fn id="fb030"><label>30)</label><p>&#x003C;주택정책 이대로 좋은가&#x003E;, 『매일경제』, 1978.11.6.</p></fn>
<fn id="fb031"><label>31)</label><p>&#x003C;검사 부인 거액 사취 사건&#x003E;, 『경향신문』, 1977.12.17.</p></fn>
<fn id="fb032"><label>32)</label><p>&#x003C;살인 빚은 아파트 투기&#x003E;, 『동아일보』, 1978.8.14.</p></fn>
<fn id="fb033"><label>33)</label><p>&#x003C;현대판 불가사리(3): 복부인 부대(하)&#x003E;, 『경향신문』, 1978.2.16.</p></fn>
<fn id="fb034"><label>34)</label><p>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를 매개로 한 한국 중산층의 재테크 전략을 6명의 사례를 인터뷰해 소개하는데, 그 6명 모두 아파트 평수를 조금씩 넓혀 가며 이사를 다니면서 자산 가치가 상승하는 데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xref ref-type="bibr" rid="B007">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길혜연 역, 후마니타스, 2007, 134-141쪽</xref>.</p></fn>
<fn id="fb035"><label>3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박완서, &#x003C;낙토의 아이들&#x003E;(1978),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권, 문학동네, 1999, 305쪽</xref>.</p></fn>
<fn id="fb036"><label>3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박완서, &#x003C;낙토의 아이들&#x003E;(1978),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권, 문학동네, 1999, 316-317쪽</xref>.</p></fn>
<fn id="fb037"><label>3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박완서, &#x003C;서울 사람들&#x003E;(1984), 『박완서 소설 전집』 18권, 세계사, 2012, 217쪽</xref>.</p></fn>
<fn id="fb038"><label>3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박완서, &#x003C;서울 사람들&#x003E;(1984), 『박완서 소설 전집』 18권, 세계사, 2012, 225쪽</xref>.</p></fn>
<fn id="fb039"><label>3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박완서, &#x003C;서울 사람들&#x003E;(1984), 『박완서 소설 전집』 18권, 세계사, 2012, 240-241쪽</xref>.</p></fn>
<fn id="fb040"><label>40)</label><p>&#x003C;복부인&#x003E;, 『경향신문』, 1979.11.7.</p></fn>
<fn id="fb041"><label>41)</label><p>&#x003C;복부인은 왜 생기나&#x003E;, 『조선일보』, 1979.4.26.</p></fn>
</fn-group>
<ref-list>
<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기본자료</title>
<!-- 박기원, 〈복부인〉, 『새가정』, 1979.1.-->
<ref id="B001">
<label>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기원</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1979</year>
<month>1</month>
<article-title>복부인</article-title>
<source>새가정</source>
</element-citation>
</ref>
<!--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1978),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권, 문학동네, 1999.-->
<ref id="B002">
<label>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완서</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1999</year>
<chapter-title>낙토의 아이들</chapter-title>
<source>박완서 단편소설 전집</source>
<comment>2권</comment>
<publisher-name>문학동네</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박완서, 〈서울 사람들〉(1984), 『박완서 소설 전집』 18권, 세계사, 2012.-->
<ref id="B003">
<label>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완서</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chapter-title>서울 사람들</chapter-title>
<source>박완서 소설 전집</source>
<comment>18권</comment>
<publisher-name>세계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오재호(원작), 윤삼육(각색), 임권택(감독), 〈복부인〉(검열대본), 세경흥업주식회사, 1980.-->
<ref id="B004">
<label>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오</surname><given-names>재호</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editor">
<name><surname>윤</surname><given-names>삼육</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임</surname><given-names>권택</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원작, 각색, 감독</comment>
<year>1980</year>
<source>복부인</source>
<comment>(검열대본)</comment>
<publisher-name>세경흥업주식회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title>2. 논문과 단행본</title>
<!-- 김아람, ｢1970년대 주택정책의 성격과 개발의 유산｣, 『역사문제연구』 제29집, 2013, 47-84쪽.-->
<ref id="B005">
<label>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아람</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3</year>
<article-title>1970년대 주택정책의 성격과 개발의 유산</article-title>
<source>역사문제연구</source>
<volume>제29집</volume>
<fpage>47</fpage><lpage>84</lpage>
</element-citation>
</ref>
<!-- 박철수,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마티, 2013.-->
<ref id="B006">
<label>6</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박</surname><given-names>철수</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3</year>
<source>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source>
<publisher-name>마티</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길혜연 역, 후마니타스, 2007.-->
<ref id="B007">
<label>7</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줄레조</surname><given-names>발레리</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길</surname><given-names>혜연</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07</year>
<source>아파트 공화국</source>
<publisher-name>후마니타스</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손종업, ｢우리 소설 속에 나타난 아파트 공간의 계보학｣, 『어문론집』 제47호, 2011, 243-264쪽.-->
<ref id="B008">
<label>8</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손</surname><given-names>종업</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1</year>
<article-title>우리 소설 속에 나타난 아파트 공간의 계보학</article-title>
<source>어문론집</source>
<issue>제47호</issue>
<fpage>243</fpage><lpage>264</lpage>
</element-citation>
</ref>
<!-- 송은영, 『서울 탄생기』, 푸른역사, 2018.-->
<ref id="B009">
<label>9</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송</surname><given-names>은영</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8</year>
<source>서울 탄생기</source>
<publisher-name>푸른역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이평전, ｢‘아파트’ 건축과 공간 질서의 생성과 파괴—197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60, 2013, 129-151쪽.-->
<ref id="B010">
<label>10</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이</surname><given-names>평전</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3</year>
<article-title>‘아파트’ 건축과 공간 질서의 생성과 파괴—197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article-title>
<source>한국문학이론과 비평</source>
<volume>60</volume>
<fpage>129</fpage><lpage>151</lpage>
</element-citation>
</ref>
<!-- 장상환, ｢해방 후 한국자본주의 발전과 부동산 투기｣, 『역사비평』 제66호, 2004, 55-78쪽.-->
<ref id="B011">
<label>1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장</surname><given-names>상환</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4</year>
<article-title>해방 후 한국자본주의 발전과 부동산 투기</article-title>
<source>역사비평</source>
<issue>제66호</issue>
<fpage>55</fpage><lpage>78</lpage>
</element-citation>
</ref>
<!-- 전강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개발｣, 『역사문제연구』 28, 2012, 9-38쪽.-->
<ref id="B012">
<label>1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전</surname><given-names>강수</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article-title>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개발</article-title>
<source>역사문제연구</source>
<volume>28</volume>
<fpage>9</fpage><lpage>38</lpage>
</element-citation>
</ref>
<!-- 정주리, ｢전향 그리고 아파트와 직업여성｣, 『민족문학사연구』 제52호, 2013, 553-579쪽.-->
<ref id="B013">
<label>1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주리</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3</year>
<article-title>전향 그리고 아파트와 직업여성</article-title>
<source>민족문학사연구</source>
<issue>제52호</issue>
<fpage>553</fpage><lpage>579</lpage>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title>3. 기타자료</title>
<!-- 최정락, 〈일본 환율을 뒤흔드는 숨은 주역 ‘Mrs. Watanabe’〉, 『KOTRA 해외시장뉴스』, 2010.11.12.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3/globalBbsDataView.do?setIdx=242&dataIdx=102365)-->
<ref id="B014">
<label>1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webpage" publication-format="web">
<person-group>
<name><surname>최</surname><given-names>정락</given-names></name>
</person-group>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0-11-12">2010.11.12.</date-in-citation>
<source>일본 환율을 뒤흔드는 숨은 주역 ‘Mrs. Watanabe’</source>
<publisher-name>KOTRA 해외시장뉴스</publisher-name>
<comment>(<uri>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3/globalBbsDataView.do?setIdx=242&#x26;dataIdx=102365</uri>)</comment>
</element-citation>
</ref>
<!-- Yap, Chuin-Wei, “China’s Consumers Show Growing Influence in Gold Market”, The Wall Street Journal, Aug. 12, 2013.-->
<ref id="B015">
<label>1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person-group>
<name><surname>Yap</surname><given-names>Chuin-Wei</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3</year>
<date-in-citation iso-8601-date="2013-08-12">Aug. 12</date-in-citation>
<source>China’s Consumers Show Growing Influence in Gold Market</source>
<publisher-name>The Wall Street Journal</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
</back>
</artic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