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xml-stylesheet type="text/xsl" href="/resources/xsl/jats-html.xsl"?>
<article article-type="research-article" dtd-version="1.1" xml:lang="ko" xmlns:mml="http://www.w3.org/1998/Math/MathML"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mlns:xsi="http://www.w3.org/2001/XMLSchema-instance">
<front>
	<journal-meta>
		<journal-id journal-id-type="publisher-id">jpn</journal-id>
		<journal-title-group>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journal-title-group>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publisher>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publisher>
	</journal-meta>
	<article-meta>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4_361</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4.012</article-id>
		<article-categories>
			<subj-group>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subj-group>
		</article-categories>
		<title-group>
			<article-title>상상적/실제적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에 대한 미디어고고학<xref ref-type="fn" rid="fn01">*</xref></article-title>
		<trans-title-group xml:lang="en">
			<trans-title>An Archaeology of Cinema as a Real/Imaginary Narrative Medium</trans-title>
			</trans-title-group>
		</title-group>
		<contrib-group>
			<contrib contrib-type="author" xlink:type="simple">
				<name-alternatives>
				<name name-style="eastern"><surname>정</surname><given-names>찬철</given-names></name>
				<name name-style="eastern" xml:lang="en"><surname>Jeong</surname><given-names>Chan-Cheol</given-names></name>
			</name-alternatives>
			<xref ref-type="aff" rid="aff01">**</xref>
			<aff id="aff01"><label>**</label>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교양대학</aff><role>조교수</role>
			<aff xml:lang="en">The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aff>
			</contrib>
		</contrib-group>
	<author-notes>
		<fn id="fn01"><label>*</label><p>이 논문은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2016S1A5B8914175).</p>
<p>이 연구는 2019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의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p></fn>
</author-notes>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pub-date>
		<volume>25</volume>
		<issue>4</issue>
		<fpage>361</fpage>
		<lpage>395</lpage>
		<history>
			<date date-type="received">
				<day>18</day>
				<month>10</month>
				<year>2019</year>
			</date>
			<date date-type="rev-recd">
				<day>12</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date>
			<date date-type="accepted">
				<day>15</day>
				<month>11</month>
				<year>2019</year>
			</date>
		</history>
		<permissions>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permissions>
		<abstract>
		<title>국문초록</title>
<p>이 논문은 영화에 대한 미디어고고학적 작업의 일환으로서 영화가 어떠한 서사 미디어로서 상상되었는지, 그리고 영화가 실제로 어떻게 서사 미디어로 제도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 상상과 실제가 영화의 기술적 속성, 즉 지표성과 1초당 24프레임과 몽타주 등으로 대변되는 물질적, 기술적 속성으로 서로 공명하고 있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p>
<p>초기영화의 과도기 시기, 영화는 쇼트 분할과 몽타주 등의 시각적 표현 기법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기록이라는 복제 미디어와 시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어트랙션 미디어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사 미디어로 전환되었다. 1912년 미국에서 영화 저작권법의 등장은 바로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의 제도화를 의미하는, 즉 영화의 저자성(authorship)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제도적 변화였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영화라는 뉴미디어는 과거의 모든 미디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완벽한 서사 미디어로 상상되었다. 미디어고고학이라는 미디어 비판이론에 따르면, 상상적 미디어는 단지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대의 욕망을 반영하는 실제 미디어의 무의식에 해당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미디어고고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이 시대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에 대한 상상들은 단지 공상의 결과가 아닌 당대 실제 서사 미디어로 변화되고 있는 영화라는 뉴미디어가 표출한 시대적 욕망의 결과라 말하고자 한다.</p>
<p>첫째, 이를 위한 이론적 토대로서, 미디어 이론으로서 미디어고고학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에릭 클루이텐베르크의 상상적 미디어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방법론을 논의한다. 둘째,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에 대한 이 시대의 상상을 레프 톨스토이, 잭 런던, 버지니아 울프, 데이비드 그리피스 등의 문인과 영화인의 상상을 통해 논의한다. 영화가 어떻게 실제 서사 미디어로 제도화 되었는지를 보기 위해, 영화 저작권법의 등장으로 이어졌던 에디슨과 루빈 그리고 칼렘과 하퍼 브라더스 간의 영화 저작권 소송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 논문은 이러한 영화의 실제와 상상 사이의 관계를 미디어고고학이 강조하는 기술 결정론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영화의 어떠한 기술적 특성이 이러한 상상들과 제도화를 추동하고 결정했는지 논의한다.</p>
<p>지금까지 영화의 역사는 영화의 형식과 내용의 분석, 산업적 변화 등을 통해 접근되었다. 그 외에 동시대의 문헌에 나타난 영화에 대한 상상이나 예언 들은 동시대의 영화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음에도 사료로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논문은 영화에 대한 동시대의 상상이 얼마나 실제 현상들과 공명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영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This paper take a media archaeological approach to cinema transformed into a narrative medium during its transitional period, 1903-1915. To accomplish this, I will explore the question of as which narrative medium cinema was imagined and also how it was institutionalized as a narrative medium with authorship. I will explain that the imaginary and real ideas and changes on cinema resonated with each other on the foundation of its technological aspects such as indexicality, 23 frames/sec. and montage.</p>
<p>It was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that cinema was transformed from a medium representing spectacle to a medium of narration. The establishment of the American film copyright law in 1912 was an institutional, real outcome from the contemporary understanding of cinema as a narrative medium. At the same time, various ideas emerged that led to imagining of cinema as a complete narrative medium, incomparable to any other. From a media archaeological perspective, the imaginary ideas of media resonate with their actual course of development. These imaginary ideas are not just imaginary, but rather reflect the contemporary desire for the medium. This paper looks into the transitional period based on this media archaeological point of view.</p>
<p>To this end, this paper will briefly introduce the notion of media archaeology as a media theory and then discuss Eric Kluitenberg’s concept of ‘an archaeology of imaginary media’ and its methodologies. Second, it will explore literary and cinematic imagining of cinema as a powerful medium of storytelling, while discussing the ways in which cinema’s technological characteristics played a decisive role in these imaginings. Also to show the techno-deterministic role of cinema in the real world, this paper will explore how its technological characteristics were considered as an important element in the processes through which America’s first motion picture copyright was institutionalized in 1912 after two historical copyright cases: one is Edison v. Lubin in 1903 and Kalem v. Harper Brothers in 1909. Ultimately, this paper will lead us to an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cinema as a medium and its developments in more multi-layed way, as communication between the real and imaginary, and give us perspectives toward what cinema is.</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미디어고고학</kwd>
			<kwd>상상적 미디어</kwd>
			<kwd>기술미디어 결정론</kwd>
			<kwd>영화</kwd>
			<kwd>영화 저작권</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Media Archaeology</kwd>
			<kwd>Imaginary Media</kwd>
			<kwd>Technological Media Determinism</kwd>
			<kwd>Cinema</kwd>
			<kwd>Motion Picture Copyright</kwd>
		</kwd-group>
	</article-meta>
</front>
<body>
<sec id="sec001" sec-type="intro">
<title>1. 서론</title>
<p><xref ref-type="bibr" rid="B016">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xref>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알비누스는 어느 날 영화에 관한 글을 쓰다가 펜을 잠시 멈추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가 상상한 것은 지금으로 치자면 &#x003C;러빙 빈세트 Loving Vincent&#x003E; (2017)나 &#x003C;셜리에 관한 모든 것 Shirley: Visions of Reality&#x003E; (2013)과 같은 회화 영화, 혹은 활동회화(moving paintings)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색채 만화영화였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p>
<p>　</p>
<p>　　그즈음 막 나타나기 시작한 색채 만화영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 방법을 이용해 유명한 그림 몇 점-네덜란드 유파의 것이면 더 좋겠지만-을 생생한 색깔로 화면에 완벽하게 재현한 뒤 생명을 부여하면 얼마나 매혹적일까. 동작과 몸짓이 원래 그림 속의 정적인 상태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계속 시각적으로 전개해나가는 거야. 예를 들어 자그마한 사람들이 나무 탁자에서 술을 들이켜는 선술집과 해가 설핏 비쳐든, 안장 얹은 말들이 있는 뜰, 이 그림이 갑자기 생명을 얻어 빨간 옷을 입은 그 작은 남자는 큰 술잔을 내려놓고, 쟁반을 든 이 처녀는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고, 암탉은 문지방을 쪼기 시작하는 거야 (...) 화가의 눈에 비친 세상에 관한 이야기. 눈과 붓의 행복한 여행. 그리고 화가 자신이 발견한 색조로 채워진, 그 화가의 기법으로 이루어진 세계!</p>
<p>　</p>
<p>물론 알비누스의 천재적인 활동회화 구상은 그의 정부 마르고트의 형편없는 영화제작의 여파로 서사에서 더는 등장하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물음, ‘영화는 어떠한 서사 미디어로서 상상되었는가?’그리고 ‘영화는 어떻게 서사 미디어로서 제도화 되었는가?’를 논의하기에 매우 적합한 텍스트로 소환된다. 알비누스의 ‘활동회화’의 구상에서 영화라는 뉴미디어는 독자적인 서사 미디어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멈추어 있는 것에 “생명”을 부여한다는 표현에 담겨있듯이 알비누스의 상상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마법적인 미디어로 상상되었다. 독일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의 정식 용어로 말하자면 영화는 상상계의 ‘기록시스템’(Aufschreibesystem)으로서의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p>
<p>이 논문에서는 영화에 대한 미디어고고학적 작업의 일환으로서 영화가 어떠한 서사 미디어로서 상상되었는지, 그리고 영화가 실제로 어떻게 서사 미디어로 제도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 상상과 실제가 실제로 서로 공명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상상적/실제적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에 대한 미디어고고학적 탐구라 할 수 있다.</p>
<p>초기영화의 과도기(the transitional period of early cinema), 즉 &#x003C;대열차강도 The Great Train Robbery&#x003E;와 같이 멀티 쇼트의 영화가 등장하는 1903년부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직전인 1915년 사이, 영화는 쇼트 분할과 몽타주 등의 시각적 표현 기법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기록이라는 복제 미디어와 시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어트랙션(attraction) 미디어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사 미디어로 전환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이뿐만 아니라, 영화라는 뉴미디어는 알비누스가 상상한 ‘활동회화’처럼 과거의 모든 미디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완벽한 서사 미디어로 지속적으로 상상되었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서사 미디어로 상상되면서 그리고 영화적 표현기법을 통해 실제로 서사 미디어로 발전되면서 단순한 복제 기술에서 저자성(authorship)을 가진 미디어로, 즉 창작물이라는 의미에서 저작권 보호의 대상으로 제도화된다. 미디어고고학이라는 미디어 비판이론에 따르면, 상상적 미디어는 단지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대의 욕망을 반영하는 실제 미디어의 무의식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에 대한 상상들은 단지 공상의 결과가 아닌 당대 영화라는 뉴미디어에 담긴 시대적 욕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고고학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 시기 복제와 스펙터클의 미디어에서 서사 미디어로의 영화의 재탄생의 역사는 단지 영화적 언어의 등장과 법적 제도화라는 실제만으로 들여다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에 대한 상상에 병행하여 재사유될 필요가 있다.</p>
<p>이 논문은 이러한 영화의 실제와 상상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보기 위해, 우선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상상들을 미디어고고학이 강조하는 기술 결정론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영화의 어떠한 기술적 특성이 이러한 상상들을 추동했는지 보고자 한다. 본론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그 핵심은 필름이라는 기술 미디어의 특성인 강력한 현실재현 능력이었다. 또한 마찬가지로 영화 저작권의 제도화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영화가 서사 미디어로서 저자성을 법적으로 부여받게 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기술적 특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상술할 것이다. 미리 말하자면, 그것은 상상에서와 유사하게 지표성과 ‘1초당 24프레임’이라는 영화의 물질적·기술적 속성과 그로부터 연유한 몽타주라는 영화적 기법이었다. 이렇게 이 논문은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의 탄생에 대한 미디어고고학적 분석을 통해 영화의 역사를 보다 다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p>
</sec>
<sec id="sec002">
<title>2. 상상적 미디어의 고고학</title>
<p>지난 20여 년 동안 미디어고고학(media archaeology)이라는 학문영역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미디어고고학은 자칫 표면적 의미로만 본다면, 과거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미디어를 발굴하고 그에 대한 문화적 분석과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미디어의 역사로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미디어고고학이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 an archaeology of knowledge’ 개념에서 기원했다는 점을 망각하거나, 몰이해한 결과이다. 미디어고고학은 푸코주의 역사관이 그러하듯 지금까지의 미디어 역사 서술의 패권에 대한 인식론적 도전이며, 대안적인 미디어 역사의 서술이자, 이를 위한 방법론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에르키 후타모(Erkki Huhtamo), 지그프리트 칠린스키(Siegfried Zielinski),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 볼프강 에른스트(Wolfgang Ernst) 등의 미디어고고학자(media archaeologists)라 불리는 이들은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A. Kittler)로 대표되는 독일 미디어 이론의 전통 속에서 미디어의 역사와 발전을 메시지, 즉 내용이나 서사 분석에 치중하여 설명하거나, 미디어의 등장과 변화를 관련 기술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기술 결정론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미디어의 물질성이 새로운 시대, 지식, 체제 등의 등장에 있어 얼마나 중대한 행위자(actor)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독일 미디어 이론가 볼프강 에른스트는 미디어고고학을 미디어에 대한 문화연구와 구분하여 이렇게 정의한다.</p>
<p>　</p>
<p>　　“미디어고고학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렇다. 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새로운 역사적 상(imagination)이 등장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미디어 때문인가 아니면 그 시대의 인식론적 기반(담론의 질서)이 그러한 미디어를 요구했던 것인가? 다시 말해, 동판(etching)에서 석판인쇄술(lithography)과 사진술(photography)로의 매끄러운 진화적 발전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사진과 그 외 초창기 문화 기술 사이의 차이로 인해 결정적으로 형성된 극적인(역사적, 인식론적) 단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p>
<p>　</p>
<p>다시 말해, 미디어고고학은 미디어를 새로운 지식이나 체제의 등장을 이끄는 행위자로 바라보는 인식론적 반전을 도모하는 일종의 미디어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이라 표현할 수 있다.</p>
<p>특히, 미디어고고학은 이른바 뉴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에르키 후타모는 발전론적 도식을 버리고 미디어의 역사를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것, “(재)등장과 소멸과 재등장이라는 순환적 되풀이 현상”로 설명하고, 이러한 미디어의 역사적 순환을 ‘토포이 topoi’라 불렀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칠린스키의 경우, 시간과 역사를 성장과 더 좋은 것을 향해 나가가는 발전으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선형적 인식론에서 벗어나 대안적 시간성으로 볼 수 있는 방법론으로 미디어고고학을 정의했다. 칠린스키는 미디어를 “신성한 계획을 따르지 않는” 발전의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미디어의 역사는 원시적 장치에서 복잡한 장치로의 필연적이고 예상이 가능한 발전의 사물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p>
<p>앞서 설명한 미디어고고학의 개척자들이 실제로 현존했던 미디어를 통해서 미디어고고학을 실천했다면, 미디어 예술가이자 학자인 에릭 클루이텐베르크(Eric Kluitenberg)는 중요한 발상이나 상상으로 만들어진 미디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미디어 등과 같은 상상적 미디어(imaginary media)를 통해 미디어고고학 분야를 개척했다. 클루이텐베르크에 따르면, 미디어는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상상적이다. 그렇기에 미디어의 대안적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즉 미디어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사유함에 있어서 상상된 미디어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대단히 중요한 연구대상이다.</p>
<p>　</p>
<p>　　공동체가 그러한 것처럼, 미디어 역시도 부분적으로 실제이며 또한 상상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만으로 미디어는 작동할 수 없다. 특히나 통신 미디어의 경우가 그러하다. 따라서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상상된 미디어를 고려하면] 인간관계의 질적인 변형을 위해 거의 신에 가까운 능력을 부여받는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p>
<p>　</p>
<p>우리는 미디어를 정의할 때, 정보의 기록과 저장, 그리고 전달 및 가공과 같은 체계적이고 기술적인 실제 작동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클루이텐베르크의 말처럼 미디어에는 실제적인 만큼의 비실제적인, 즉 상상적인 측면이 있다. 이는 상상적으로 만들어진 미디어의 기능이자 능력으로서, 물론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미디어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래 인용한 바와 같이, 클루이텐베르크는 실제 미디어처럼 상상적 미디어 역시 동시대의 역사적 상황, 사회적, 문화적 욕망과 결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상상적 미디어는 단지 어느 발명가의 몽상 속에서만 작동하거나, 구상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당대 기술문화(technological culture)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일종의 미디어의 무의식인 것이다.</p>
<p>　</p>
<p>　　대개, 이러한 상상들에 포함된 기대들이란 실제 미디어 기계들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을 훨씬 초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 미디어 기계들만이 고안자와 이를 접한 대중들이 부여하거나 투영한 불가능한 욕망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상상적 미디어와 실제 미디어 사이에는 의미의 차원에서 본다면 거의 이음새가 없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p>
<p>　</p>
<p>그렇기 때문에, 클루이텐베르크는 상상적 미디어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를 실제 미디어의 문화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클루이텐베르크는 상상적 미디어는 항상 그렇게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상상적 미디어는 실제 미디어의 구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상적 미디어의 실현 가능성으로 인해 실제 미디어로만 이루어진 미디어의 역사는 더욱 복잡한 결로 구성된다. 클루이텐베르크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상상적 미디어의 탐구가 선형적인 미디어의 역사를 재사유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됨을 강조한다.</p>
<fig id="f001"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 1]</label>
	<caption>
		<title>조르쥬 뒤 모리에르(George du Maurier)의 상상적 영상전화 장치 ‘텔레포노스코프 the Telephonoscope.’</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77&amp;imageName=jpn_2019_25_04_361_f001.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상상적 미디어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의 사례로서, ‘텔레포노스코프 the Telephonoscope’를 떠올려보자. 작가이자 삽화가인 조르쥬 뒤 모리에르(George du Maurier)는 1879년도 『펀치 알마낙 Punch Almanack』 잡지에 가족, 친구들과 텔레포노스코프라는 이름의 영상전화 장치를 사용하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 상상된 영상전화 장치의 본래 명칭은 ‘에디슨의 텔레포노스코프’이다. 모리에르는 당대의 뉴미디어 발명가 에디슨의 영화장치와 축음기에 전화기를 결합하다면 아마도 이러한 모습이 일거라고 상상했다. 이는 다름 아닌 빅토리아 시대의 스카이프(Skype)나 페이스타임(FaceTime)이라 할 수 있다. 1883년 미래학자이자 풍속가인 알베르 로비다(Albert Rodida)는 소설 『20세기 Le Vingtième』에서 상상적인 미디어 장치들로 가득한 상상된 미래를 그렸다. 도시 공간의 곳곳이 원거리 통신, 상상의 운송장치,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리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영상장치와 감시 장치가 침투한 일상이 펼쳐진다. 이는 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의 말대로, “오늘날 스마트폰의 가장 강력한 핵심기능이다. 빛의 속도를 자랑하는 소셜 네트워크와 영상통화는 일찍이 1870년에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p>
<p>클루이텐베르크는 이러한 이유에서 미디어의 상상적 그리고 실제적 부분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실상 이 둘은 하나의 미디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상상적 미디어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클루이텐베르크의 이 같은 상상적 미디어에 대한 탐구의 강조는 아래 문장에 함축돼있다.</p>
<p>　</p>
<p>　　...상상적 미디어의 상상들은 순수하게 상상적인 미디어 기계와 실제로 현실화될 수 있는 것 사이를 들락날락 거린다. 정말로 불가능한 욕망들은 결코 완전히 현실화되거나 충족될 수 없기에, 결국 상상적 미디어는 장치(실현된 미디어 기계)의 영역과 이들의 ‘역사’를 초월하기 마련이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p>
<p>　</p>
<p>유시 파리카는 이러한 클루이텐베르크의 문제의식, 무엇 때문에 상상적 미디어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며 그것이 미디어의 정의를 재사유할 수 있는 텍스트임을 강조한다. “상상적 미디어는 상상의 훈련으로서뿐 아니라, 기술문화를 둘러싸고 있는 방대한 무의식으로 향하는 진입점으로서 매우 주요하기”때문이며, 상상적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희망, 욕망, 그리고 매개에 관한 상상들이 기술적 조합에 내포되는지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미디어에 대한 상상은 단지 상상으로 그치지 않고 “나중에 실제 현실의 일부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 기술을 바라보는 방식을 좌우”하기도 한다. 따라서 상상적 미디어는 단지 실제 세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환상이나 공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제 미디어의 역사에 깊이 침투하여 때로는 실제 미디어로 탄생하기도 하고, 동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을 반영함으로써 “미디어의 역사를 재사유하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p>
</sec>
<sec id="sec003">
<title>3.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에 대한 상상</title>
<p>이 장에서는 상상적 영화에 대한 미디어고고학적 실천으로서 완벽한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에 대한 문인과 영화감독 등과 같은 예술가들의 상상을 들여다본다. 이들의 상상은 영화라는 뉴미디어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나 기대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영화라는 뉴미디어의 실제적 특성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의 기술적 특성이 상상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키틀러식으로 표현하자면, 미디어의 물질적·기술적 속성이 상상의 결을 결정했다. 이 장에서는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에 대한 상상들에서 미디어 기술의 선험론적 지점을 밝힘으로써 영화에 대한 미디어고고학적 이해를 더불어 도모하고자 한다.</p>
<sec id="sec003-1">
<title>3-1. 영화: 상상계의 미디어</title>
<p>전후 독일 미디어 이론의 개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영화를 라캉의 상상계에 대응하는 매체로 규정했다. 소리를 기호화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저장하고 전달하는 축음기와 달리 영화라는 매체는 광학적 데이터를 그 자체로 기록하지 못한다. 대신 광학적 파장은 파편적 이미지로, “물리적 파장 대신 매우 개괄적으로, 단지 그것의 화학적 효과만이 네거티브의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 다시 말해, 필름은 기록과 재현과정에서 필수적으로 1초에 24번의 순간 사진으로 조각을 내고 그 사이사이의 포착되지 않은 실재들은 관람자의 시신경적 특성인 잔상효과와 스트로보 효과에 의해 봉합되기 때문이다.</p>
<p>또한 키틀러가 “영화는 상상계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한 이유는 영화가 상상의 이야기를, 환상적인 시각적 스펙터클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완벽하게 완성하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그리고 상상계가 그러한 것처럼 영화가 욕망하는 것을 추구하거나, 현실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잠시 떠나게 돕는 등 “완벽한 거울”의 효과를 수행하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p>
<p>특히, 키틀러는 ｢영화 Film｣에서, 문인들을 여러 번 등장 시켰는데, 이는 &#x003C;프라하의 학생 The Student of Prague&#x003E;의 시나리오 작가인 하인츠 에버스(Heinz Evers)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가 얼마나 문자보다 강력하게 상상을 재현할 수 있는 기록시스템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키틀러는 하인츠 에버스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전한다.</p>
<p>　</p>
<p>　　“나는 토마스 엘바 에디슨이 아주 싫다. 모든 발명품 중 가장 끔찍한 것들이 그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축음기! – 그러나 나는 또한 그를 사랑하기도 한다. 그는 환상에서 깨어난 세상에 다시 환상을 돌려주면서 자신의 실수를 모두 만회했기 때문이다 – 영화를 통해서!”<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p>
<p>　</p>
<p>특히, 키틀러는 하인츠처럼 성공한 문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인으로 자신의 직업을 단숨에 바꾼 이들의 삶을 집요하게 조사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영화라는 미디어가 단번에 “한 세기 동안 문학이라고 불렸던 모든 환상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넘겨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얼마나 적합한지를, 그 위력을 설명하려는 의도였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 하인츠 에버스는 판타지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였지만, 전직에 머물지 않고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의 직업을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p>
<p>이러한 키틀러의 작가탐구는 영화가 상상계의 미디어라고 부를 정도로 환상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인지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또한 영화가 상상적 미디어로서 현실세계의 인간의 행동, 문화, 사회 그 자체의 변화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는 ｢영화 Film｣를 가로지르는 키틀러의 또 다른 주제이다. 여기서는 보다 1903-1915년이라는 시대, 즉 영화가 서사 미디어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확인받았던 시대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보고자 한다. 레프 톨스토이, 잭 런던, 버지니아 울프는 영화를 접하고, 에버스와 같이 전업을 꿈꾸거나 문학의 한계를 실토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는 알비누스처럼 영화를 전지전능한 서사 미디어로 상상했다. 이러한 작가들의 상상은 영화라는 기술 미디어의 현실 복제성, 즉 지표성에 기반하여 펼쳐졌다.</p>
</sec>
<sec id="sec003-2">
<title>3-2. 영화에 대한 문학적·영화적 상상</title>
<p>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영화는 완벽한 서사 미디어로 상상되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는 1908년 8월, 80살 생일날에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의 전업을 꿈꾼다. 이날 어느 기자가 영화 카메라를 들고 찾아와 ‘톨스토이에게 영화란?’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톨스토이는 영화보다 더 삶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확신에서 “영화! 아름답도다!”라고 외치며 비극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이제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 톨스토이는 현실을 폭로할 수 있는 영화의 재현 능력을 탐내며 심지어 시나리오 작가로의 전업을 꿈꾸었던 것이다. 1915년,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기질의 미국 소설가 잭 런던(Jack London)은 영화의 생생한 현실재현 능력 덕분에 “사회의 양극단이 인류의 여정에서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재조정의 과정에서 서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고 말했다.<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그 역시도 영화 작가로의 전업을 꿈꾸었다.</p>
<p>이렇듯, 두 작가 모두는 영화를 문자로는 도달 불가능한 비극의 완성과 사회모순의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서사 미디어로 상상했다. 영화에 대한 이러한 상상적 기대는, 현실 복제라는 영화의 미디어 기술적 능력과 더불어, 다양한 영화적 언어에 기반한 서사 중심의 영화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변화로 추동된 것이었다. 이 시기 영화라는 기표는 그것의 기의와 내재적 그리고 상상적 관계를 동시에 맺었는데, 문인의 상상 속에서 영화는 보다 완벽한 서사 미디어로 거듭 탄생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의 잠재력을 보았기에 ‘문학’의 경지에 도달했던 톨스토이였지만, 영화 앞에서 그렇게 자신의 경력 바꾸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단어’를 결코 버리지 않았지만, 그의 언어는 이미 영화적이었으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문자로 이미지를 쓰는, 영화적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p>
<p>정확히 이 과도기에 나온 글은 아니지만, 상상적인 것을 창조하는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의 잠재력 앞에서 문자의 무기력함을 실토했던 문인이 또 있었는데, 이 문인은 톨스토이와 잭 런던의 경우보다 더 나아가 영화를 촉각을 전달할 수 있는 서사 미디어로 상상했다.</p>
<p>독일 고전주의미학을 완성한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60여 년의 긴 세월에 걸쳐 완성한 『파우스트』의 제1부를 “아아!”라는 한숨으로 시작했다. 괴테의 페르소나 파우스트는 “벌레 먹고 먼지 낀 책 더미가 높은 천장까지 수북이 쌓여”있는 “숨 막히는 저주받은 골방”에 앉아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 키틀러는 필사가 완성한 문예공화국의 소멸의 징후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시스템 1800-1900』의 첫 장에서 이렇게 필사에 지쳐 몸부림치는 파우스트를 소환했다. 그러한 의도에서 키틀러는 파우스트가 오늘도 여전히 “앉아서 책을 읽고 발췌하고 주해를 달다가” “생산자도 소비자도 없이 그저 말들을 회전시키는 문예공화국의 끝없는 순환에” 갇혀있는 자신을 문뜩 발견하고는 참을 수 없이 밀려오는 답답함의 끝에서 그렇게 한숨을 내었음을 강조했다.<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 타자기라는 새로운 글쓰기 미디어의 등장을 목전에 둔 시기에 필사라는 글쓰기 방식이 표현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암시하는 이 몸부림은 거의 1세기를 지난 후 영국 모더니즘 문예를 완성한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다시 흘러나왔다. 이번엔 영화라는 서사 미디어 때문이었다.</p>
<p>1926년 버지니아 울프는 ｢영화와 현실 The Movies and Reality｣이라는 에세이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정의하기에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돌연히 괄호를 치고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언어는 비참할 정도로 빈곤하다)” 심지어 이 부분을 괴테의 한숨 ‘아아!’로 바꾸어도 의미는 변하지 않을 듯하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p>
<p>　</p>
<p>　　사진보다 영화가 더 사실적이어서 아름다운 게 아닌데 (우리의 언어는 비참할 정도로 빈곤하다.)[아아!],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으니 혹은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사실성을 지닌 현실이라고 할까?</p>
<p>　</p>
<p>버지니아 울프는 문학작품을 영화로 제작한 영화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독자들의 상상을 망쳐 버렸는지를 지적하며 에세이를 시작했지만, 의식의 흐름 장르를 시작하고 완성한 작가답게, 모든 상상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영화의 잠재력 앞에서 그만 문자의 한계를 실토한 것이다.</p>
<p>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영화의 기계적 특수성을 인지하고는 존재론적 무게를 지닌 영화를 상상했다. 그것은 단지 현실의 표면을 복제한 것이 아닌 현실의 무게까지도 주인공의 감정과 육감까지도 담아내는 영화였다. 오늘날 우리가 촉각적 영화(cinematic tactility)라고 부르는 것을 영화가 지닌 현실과 다른 현실성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상상했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바로 이 신비한 영화의 능력이 그 무엇보다도 영화의 기계적인 현실 복제 능력에서 비롯됨을 강조하기 위해 에세이의 끝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현실의 정확성과 표현력”이 “추상적이고” “의식적인” 미까지도 전달하게 될 것이며, “언젠가 영화관에서 우리는 (영화의) 엄청난 기술적 능숙함으로...아직은 알 수 없고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p>
<p>이러한 작가들의 실토와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라는 미디어 그리고 영화의 기술적 속성에 의해 추동되었고, 상상 위에 상상이 더해질수록, 앞서 인용한 클루이텐베르크의 표현을 다시 쓰자면, “거의 신에 가까운” 서사 능력이 영화에 부여되었다. 이러한 영화에 대한 상상은 영화감독에서 완전히 완성된 듯하다.</p>
<p>시네마의 근원지 프랑스에서 바쟁이 ‘완전영화라’는 상상적 영화의 밑그림을 미디어고고학의 관점에서 그렸다면, 이보다 일찍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가진 이가 대서양 반대편에 있었다. 스크린의 콜럼버스로 불리었던 데이비드 그리피스다. 그리피스는 1915년 3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상상계의 대륙을 아직 다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영화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더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들 쉽게 단정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영화는 여전히 배내옷을 입고 있습니다.”<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데이비드 그리피스는 지금의 오락 중심의 영화산업이 언제가 저물어갈 때, 더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잉태되지 않을 때에 새로운 영화의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p>
<p>　</p>
<p>　　머지않아 10년 안에 아이들이 공립학교에서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영화를 통해 배울 때가 올 것입니다. 다시는 역사를 읽어야하는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의 공공 도서관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야별로 정돈된 여러 줄의 분류함이 있습니다. 각각의 분류함에는 스위치가 있고 의자가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삶에서 독파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칩시다. 행정기관을 모두 탐문하고 수많은 책을 고생스럽게 읽었지만 서로 다른 의견들 때문에 혼돈에 빠져 결국엔 정확히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지 못한 채로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단지 최신 장비로 이루어진 방에서 (눈높이에 맞게) 적당히 조절되어 있는 창 앞에 앉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스위치를 누르면 있었던 일들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어떠한 의견도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역사가 만들어지는 그 곳에 있는 것입니다. 공인된 전문가들이 매우 신중하게 쓰고 수정하고 분석하고 복사하는 모든 작업을 도와줌으로써 여러분은 생생하고 완벽한 표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p>
<p>　</p>
<p>그리피스는 어떠한 이유에서 영화가 결국 역사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일까? 그것은 마찬가지로 현실 복제라는 영화의 기계적인 속성에서 근원했다. 그리피스는 미래의 영화를 상상하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미국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초지일관 사실적이고 실재하는 것인데요, 인류가 고안한 것 중에 이를 보여(show)줄 수 있는 것은 영화밖에 없습니다.” 그리피스는 영화 장치의 기록과 서사 능력을 떠올리며 영화의 미래를 그렇게 상상했다. 뉴욕 타임즈의 기자는 분명히 그리피스가 상상하는 영화가 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독자에게 주기위해서 그를 “예지력 visionary”이 있는 존재라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끝냈다.<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 그리피스에게 있어 ‘보여 준다’는 것이 기계적 복제가 아닌 쇼트의 분절과 쇼트의 배열로 구성된 “영화적인 언어 cinematic languages”를 의미했다는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의 설명을 상기해 본다면, 그리피스의 미래의 영화 도서관은 바로 서사 미디어에서 발현한 상상적 영화관이라고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 이러한 모든 전업의 희망과 영화에 대한 상상, 잠재력, 그리고 객관적 역사의 재현 가능성은 미디어로서 영화의 물질적, 기술적 속성인 지표성에 근간하고 있었다.</p>
</sec>
</sec>
<sec id="sec004">
<title>4. 영화 저작권법: 서사 미디어로서의 영화의 제도화</title>
<p>영화는 1초에 24장의 정사진에 담아서 잔상효과와 스트로보스코프 효과를 통해, 재현되지 못한 실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실재처럼 보이도록 하는 조작에 근본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키틀러는 기술미디어로 작동하는 영화는 실재계와의 연결에 실패하기 때문에 상상계에 대응하는 기록체계로 정의했다. 이렇게 본다면, 초기영화 시대, 영화 카메라와 상영기의 회전이 수동방식에 머물러있었을 때, 상상계의 기록체계로서의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했던 것은 렌즈 앞의 사물이 아닌 촬영기사와 상영기사의 정교한 손기술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p>
<p>하지만 이러한 영화 이미지는 당시 저작권법에 근거하면 현실의 정확한 복제라는 이유에서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즉 저자성이 없는 이른바 법적인 생명력이 없는 기록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규정되었다. 1912년 영화 저작권법이 제도화 되면서, 영화는 더 이상 현실의 똑같은 복제가 아닌 독자성을 지닌 미디어로서 정의되었다. 같은 해, 영화는 법적으로 언론이 아닌 상품으로 정의되었는데, 그 결과 영화에 대한 국가의 검열과 통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검열의 시작은 영화가 단지 상상적인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실세계에 영향을 강력하게 미치는 기록체계임을 또한 인정한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 이 장에서는 영화 저작권법의 필요성에 관한 담론의 형성 과정과 실제로 영화 저작권법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영화의 기술적 특별함이 어떠한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영화의 서사 미디어로의 변화의 역사를 미디어고고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즉, 실제적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에 대한 미디어고고학이다.</p>
<sec id="sec004-1">
<title>3-1. 에디슨 VS. 루빈 저작권 침해 소송</title>
<p>영화는 1903년 에디슨과 루빈(Edison v. Lubin)의 저작권 침해 소송, 1909년 칼렘과 하퍼 브라더스(Kalem v. Harper Brothers)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거쳐 ‘1912년 타운센드 개정안’(the 1912 Townsend Amendment)의 발표로 최종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아래에서는 그 일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p>
<p>피터 드셰르니(Peter Decherney)에 따르면, 초기영화 시대에 영화필름을 복제하는 것은 제작사의 상업적 전략이었으며, 영화 기술의 비표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에디슨 영화제작 회사(the Edison Manufacturing Company)는 외국 영화를 불법 복제하여 배급했던 회사로 악명이 높았는데, 특히 멜리에스가 제작한 영화를 전략적으로 복제했다. 에디슨의 이러한 외국 영화 복제 전략은 미국 내에서 인기가 많았던 멜리에스의 영화와 파테의 영화를 견제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멜리에스는 에디슨 영화 제작사에게 자사의 필름을 팔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슨 영화 제작사는 복제를 위해 2중, 3중의 대리인을 통해 멜리에스의 영화를 구매했다.<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p>
<p>또한 초기영화 시대, 영화 필름의 규격이 통일되지 않았기에 복제는 상영을 위해 필요했다. 예를 들어 퍼포레이션의 크기와 개수는 나라마다 그리고 회사들 마다 달랐다. 따라서 배급이나 상영 중심의 영화회사에게 있어서 자사가 소유한 영사기의 규격에 맞는 필름으로 영화를 복제하는 것은 비용의 측면과 편의를 고려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었다. 즉, 배급과 상영부분에서 영화의 복제는 불법이 아닌 사업을 위한 기술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 특히, 이 시기 미국에서는 영화 콘텐츠보다는 영화 카메라와 영화 상영기 등의 영화 장비의 판매와 특허권 소유가 영화사에게 더 중요한 수입의 원천이었다. 영화의 제작과 상영과 배급에 필요한 모든 장비의 규격을 자사의 것으로 표준화하게 되면 해당 장비의 특허권 판매로 막대한 수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에디슨 영화 제작 회사가 영화 장비의 특허권 소송에 매달렸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저작권 문제는 당시에는 부차적인 문제였다.1902년, 에디슨 영화 제작사가 자산의 가장 큰 경쟁상대였던 바이오그라프(Biograph)와 루빈(Lubin)을 상대로 진행한 영화 장비에 관한 특허권 소송에서 승소하게 됨으로써 미국영화 산업을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후에, 영화제작사들 사이에서 영화 저작권법의 필요성과 관련 소송전이 전면적으로 전개되었다.</p>
<p>1902년 6월 에디슨은 자사의 뉴스릴 영화 &#x003C;카이저 빌헬름의 요트 ‘유성’의 진수식 Christening and Launching Kaiser Wilhelm’s Yacht ‘Meteor’&#x003E; (1902)의 일부분을 불법 복제하여 배급했다고 루빈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에디슨은 일찍이 1894년부터 자사의 영화의 모든 프레임을 낱장의 사진으로 인화하여 사진으로서 저작권 신청을 시도했으며, 자사의 영화 앞에 에디슨 회사의 로고와 저작권 등록 표식을 넣는 방식으로 영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xref ref-type="fig" rid="f002">그림 2</xref>).</p>
<p>에디슨 측의 주장은 루빈이 의도적으로 이 영화에서 에디슨 회사의 로고와 저작권 등록 표식이 들어간 장면을 잘라내고 복제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에디슨과 루빈의 소송에서 판사와 각 측의 변호사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불법 복제인가 아닌가? 어떻게 불법 복제를 막을 수 있는가와 같은 사건 자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이 아니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영화라는 기술미디어의 정체성을 따지는 문제가 선행되어야 했다. 즉, 과연 영화가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를 결정해야 했다.<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p>
<fig id="f002"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 2]</label>
	<caption>
		<title>“Edison Kinetoscopic Record of a Sneeze” (1894),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Washington, D.C. 20540 USA</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77&amp;imageName=jpn_2019_25_04_361_f002.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p>(<uri>http://hdl.gov./loc.pnp/ppmsca.35374</uri>)</p>
</fig>
<p>에디슨 측 변호인은 그동안 에디슨 회사의 저작권 등록 전략대로 영화는 사진의 연장이기에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빈 측 변호인은 “영화는 사진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반박했다. 1902년 6월 27일 발표된 첫 번째 재판의 결과는 루빈의 승리였다. 담당 판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개정 저작권법에 따르면 모든 사진은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 하지만, 이는 사진의 종합에 불과한 영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 영화의 복제가 합법으로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담당 판사의 결론을 영화의 정체성에 관한 판결로 해석하자면 사진의 나열에 불과하기에 ‘영화는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다’였다.</p>
<p>에디슨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하워드 헤이즈(Howard Hayes) 변호사를 새로 고용하여 2차 소송을 준비했다. 헤이즈는 고민했다. “영화가 어떻게 사진과 같이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 헤이즈의 이 물음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 영화는 사진과 같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 둘, 그렇다면 고용인이 원하듯이, 어떻게 영화를 사진으로 위장할 수 있는가? 헤이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영화의 기술적 속성에 기반 한 수사학을 찾았다. 헤이즈는 이렇게 변호하겠다고 구상한다. 영화라는 “움직임의 재현 장치는 토마스 에디슨의 천재성이 낳은” 것이기에 독창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영화는 전적으로 “작가의 작업이나 예술 작품이 아니라 일부분 영화장치로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영화의 개별 프레임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연속해서 보여 질 때만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현행 사진에 관한 저작권법은 영화를 그 자체로서 뿐만 아니라(에디슨의 천재성이 낳은 결과이기에) 영화를 구성하는 프레임들 전체를 한 장의 사진으로서 간주해야 한다.”<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 헤이즈는 이렇게 영화 상영의 기술적 원리에 기존 에디슨의 사진에 기반한 영화 저작권 신청 전략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헤이즈의 변호에는 키틀러가 말한 상상계의 기록체계로서의 영화의 속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이다. 즉, 영화는 개별 프레임의 단순한 결합이 아닌, 이들이 모여서 많든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라는 것.</p>
<p>이러한 헤이즈의 구상은 사실 더더욱 영화와 사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에디슨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소송의 결과는 에디슨의 예상과 달리 매우 성공적이었다. 세 번째 소송에서 헤이즈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해서 “사진으로 구성된 활동사진은 오직 영사기를 통해 상영 되었을 때만 의미를 가진다”라고 보다 기술적인 속성에 근거해서 명료하게 주장했다.<xref ref-type="fn" rid="fb038"><sup>38)</sup></xref> 담당한 판사 버핑턴(Buffington)는 헤이즈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금까지의 결과를 뒤집었다. 기술이 낳은 승리였다. 물론, 에디슨의 최종 승소로 영화는 법적으로 사진이 되었지만 그것은 완벽히 영화라는 기술미디어의 속성을 버린 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분명히 영화적인 것이 반영 된 결론이었다. 즉, [<xref ref-type="fig" rid="f002">그림2</xref>]에서와 같이, 저작권법이 인정한 사진으로서 영화의 정체성인 “단일 사진으로서의 영화 전체 an entire film as a single photograph”에는 영화를 구성하는 기술적(24frame/sec), 물질적(photograph) 정체성이 모두 담겨있었다.</p>
<p>에디슨과 루빈의 소송에서 문제가 되었던 작품이 뉴스릴 영화였던 것처럼 이 시기 대부분의 영화는 현실의 기록물이거나 연극이나 보드빌 쇼의 기록이었음을 상기시켜 본다면, 이 시기 영화를 사진으로서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콘텐츠의 보호 차원이 아닌, 영화의 기술적 원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이렇게 자신의 기술적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버림으로써 저자성을 처음으로 인정받게 된다. 다시 말해, 사진을 재매개함으로써 영화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게 되고 공식적인 역사에 편입하게 되었는데, 이는 영화의 역사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사진 역사의 기이한 연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저자성은 기술이 낳은 것이라는 점이다.</p>
<p>1903-1911년까지 영화는 이렇게 사진으로 법의 보호를 받았다. 영화가 사진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 창조적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독립적 미디어로서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된 것은 1912년이었다.</p>
</sec>
<sec id="sec004-2">
<title>3-2. 칼렘 VS. 하퍼 브라더스 저작권 침해 소송</title>
<p>영화가 독립적인 미디어인가 아닌가라는 상상적 기록시스템으로서의 영화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은 1909년 영화 &#x003C;벤허&#x003E;를 두고 벌어진 제작사 칼렘(Kalem)과 원작인 루 월리스(Lew Wallice)의 소설 &#x003C;벤허&#x003E;의 판권 소유자 하퍼 브라더스(Harper Brothers) 사이의 소송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때 영화를 독립적인 미디어로 만든 측은 앞의 에디슨과 루빈의 소송과 달리 하퍼 브라더스, 즉 문자 미디어의 주인공들인 원작의 판권 소유자였다. 오히려 영화인으로 구성된 칼렘은 영화는 문학작품과 같은 가치 있는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독립적인 미디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p>
<p>칼렘 측 변호인단은 단호하게 영화의 저자성을 다음과 같이 부정했다. 영화 &#x003C;벤허&#x003E;의 광고에 “로마시대의 스펙터클 Roman Spectacle”이라고 명시한 것처럼, 영화는 시각적 “스펙터클”에 불과하다. 영화 &#x003C;벤허&#x003E;는 문학작품 &#x003C;벤허&#x003E;의 표현과 서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x003C;벤허&#x003E;의 주요 핵심 장면에 담긴 인상을 전달할 뿐이다. “영화는 책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것을 채울 뿐이다.”<xref ref-type="fn" rid="fb039"><sup>39)</sup></xref> 하지만, 하퍼 브라더스는 영화 속 배우의 연기는 문학작품의 단어에 상응하기에 영화 &#x003C;벤허&#x003E;는 소설 &#x003C;벤허&#x003E;의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p>
<p>칼렘과 하퍼 브라더스의 소송전에서는 영화가 독립적으로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영화의 저자성의 판단에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이 소송을 담당한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Oliver Wendell Holmes Jr.) 판사는 저작권 보호 대상의 조건으로 창작 도구 그 자체가 아닌 작가의 창조적 역할과 창작품의 내용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따라서 영화가 상상적인 것을 기록하고 저장하고 재현할 수 있는 독립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양측 변호인이 풀어야할 난제였다.</p>
<p>이 소송의 결과는 2년 후인 1911년에 최종 발표되었다. 홈스 판사는 그 동안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기술’이 특정 저작권 보호 대상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덧붙여, 이렇게 결론 내린다. 영화는 소설처럼 ‘극 drama’을 전달할 수 있는 ‘연기 action’라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연기는 이미 연극에서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홈스의 최종 결정에는 ‘완벽한 거울’ 효과를 내는 기술미디어로서의 영화의 속성이 반영되어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송 과정에서 어떻게 필름에 복사된 배우의 ‘연기’가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배우의 ‘연기’와 동일한가라는 물음이 쟁점이 되었었는데, 이에 대한 홈스의 판결은 이렇듯 매우 상상계적 답변이었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종종 “거울”을 사용하는 것처럼, 영화 필름도 그에 못지않게 생생하게 배우의 모습을 전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40"><sup>40)</sup></xref></p>
<p>칼렘과 하퍼 브라더스의 소송의 결론이후, 1912년 미국의회는 영화에 관한 공식적인 저작권법 제정 작업에 착수하고, 당해에 발표된 저작권에 관한 ‘타운샌드 개정안’에 공식적으로 영화가 포함되었다. 이 개정안에는 영화(motion pictures)는 다음 두 종류, ‘극 활동사진 Motion Picture Photoplay’과 ‘극이 포함되지 않은 영화 Motion Picture other than Photoplays’로 구분되어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밝힌다. 특히, 법안은 극적 요소가 있는 영화를 가리키는 ‘극 활동사진’을 저작권 보호의 우선 취급대상으로 명시했다. 이는 뉴스릴이나 보드빌 그리고 권투 경기를 기록한 영화 등과 같이 ‘극이 포함되지 않은 영화’와 소설이나 창작 시나리오와 같은 상상적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영화를 구분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후자가 더욱 영화적인 것, 즉 명백하게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독립된 저작물(writing)임을 명시하려는 의도였다. 특히, 개정안에서는 영화를 저작물로 인정한 이유로, 영화가 새로운 이야기나 기존의 작품을 시각적으로 해석한 새로운 작품임을 명시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개정안에서는 몽타주와 같은 다양한 영화적 기법을 시각적 해석의 기술로서 언급한다.<xref ref-type="fn" rid="fb041"><sup>41)</sup></xref></p>
<p>이렇게 영화는 문자의 힘에 의해 서사를 전달하는 미디어로서 공식적인 역사를 시작했지만, 영화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기록체계임을 판가름 하는 데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이른바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필름 미디어의 복제 기술과 시각 언어적 요소였다.</p>
</sec>
</sec>
<sec id="sec005">
<title>5. 나가면서</title>
<p>지금까지 이 논문은 서사 미디어로서 영화가 어떻게 상상되었는지를 보고자 했고, 영화가 서사적 미디어로서 어떻게 제도화 되었는지를 보고자 했다. 이는 미디어를 상상적 측면과 실제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미디어고고학적 실천이다. 영화 미디어의 역사를 실제 영화 미디어의 바깥에서 봄으로써 영화의 역사를 확장하고, 실제와 상상의 종합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 또한 키틀러의 ‘기술 선험론’을 영화의 역사쓰기 과정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영화 저작권법에 관한 판결을 키틀러의 방식으로 종합하면 이렇다. 상상계의 미디어로 탄생한 영화가 드디어 복제의 기술이라는 통념을 벗어던지고 그 동안 문학작품이 담당했던 상상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을 영화적이라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 서사 미디어가 되었다. 영화를 공식적으로 서사 기록체계로 인정한 법적 담론은 말과 문자로 작성됨으로써 효력을 발휘했지만, 이는 다분히 영화라는 기술미디어를 문자로 담은 것일 뿐이다.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서의 영화에 관한 담론은 지극히 영화가 대상을 기록, 저장, 재현하는 기술적 방식이 낳은 것이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6">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어둠 속의 웃음소리』,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16, 8-9쪽</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키틀러는 ‘기록시스템’을 “임의의 문화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송부, 저장, 처리하는 기술적·제도적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키틀러는 미디어 기술로 역사와 문화의 변화를 재구성하려는 학문적 목적에서, 미디어의 역사를 ‘기록시스템 1800’과 ‘기록시스템 1900’으로 구분한다. ‘기록시스템 1800’(1785-1815)은 모든 데이터의 처리방식이 문자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시대를 가리키고, ‘기록시스템은 1900’(1885-1915)은 축음기, 영화(필름), 타자기라는 아날로그 기술 미디어로 데이터의 처리방식이 세분화되는 시대를 가리킨다. ‘기록시스템 1900’의 개념에서 키틀러의 독창적인 논리는 1900년대 초기 유럽에서 정보 처리를 주도했던 이 세 기술 미디어의 상호 차별적 존재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라캉의 이론을 전유하여 축음기-실재계, 필름-상상계, 타자기-상징계와 같이 각각 대응시킨 점이다. <xref ref-type="bibr" rid="B001">프리드리히 키틀러, 『기록시스템 1800·1900』, 윤원화 역, 문학동네, 2015, 645쪽</xref>.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저작을 볼 것. D. E. Wellbery, “Foreword”, <italic>Discourse Networks 1800/1900</italic>,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pp.vii-xxxiii; G. Winthrop-Young &#x0026; N. Gane, “Friedrich Kittler: An Introduction”, <italic>Theory, Culture &#x0026; Society</italic>, vol.23 no.7/8, 2006; G. Winthrop-Young and M. Wutz, “Translators’ Introduction: Friedrich Kittler and Media Discourse Analysis”, <italic>Gramophone, Film, Typewriter</italic>,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pp.xi-xxxviii.</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17">제프리 노엘-스미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이영아 외 역, 열린책들, 2006, 36-48쪽</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4">W. Ernst, <italic>Digital Memory and the Archive</italic>,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2, p.42</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6">E. Huhtamo, “From Kaleidoscomaniac to Cybernerd: Notes Towards an Archaeology of Media”, <italic>Leonardo</italic> 30.3, 1997, p.222</xref>. ‘토포이’ 개념에 대한 보다 구체적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 자료 참고. <xref ref-type="bibr" rid="B007">E. Huhtamo, “Dismantling the Fairy Engine: Media Archaeology as Topos Study”, <italic>Media Archaeology: Approaches, Applications, Implications</italic>,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p.27-47</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3">S. Zielinski, <italic>Deep Time of the Media: Toward an Archaeology of Hearing and Seeing by Technical Means</italic>, Cambridge, Mass.: The MIT Press, 2006, p.7</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8">E. Kluitenberg, “Second Introduction to an Archaeology of Imaginary Media”, <italic>Book of Imaginary Media: Excavating the Dream of the Ultimate Communication Medium</italic>, Rotterdam: NAi, 2006, p.8</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E. Kluitenberg, “On the Archaeology of Imaginary Media”, <italic>Media Archaeology: Approaches, Applications, Implications</italic>,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48</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브라이언 머천트, 『원 디바이스: 우리가 모르는 아이폰의 숨은 역사』, 정미진 역, 매일경제신문, 2017</xref>.</p></fn>
<fn id="fb010"><label>1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8">E. Kluitenberg, “Second Introduction to an Archaeology of Imaginary Media”, <italic>Book of Imaginary Media: Excavating the Dream of the Ultimate Communication Medium</italic>, Rotterdam: NAi, 2006, p.10</xref>.</p></fn>
<fn id="fb011"><label>11)</label><p><xref ref-type="bibr" rid="B007">E. Kluitenberg, “On the Archaeology of Imaginary Media”, <italic>Media Archaeology: Approaches, Applications, Implications</italic>,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48</xref>.</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0">J. Parikka, <italic>What is Media Archaeology?</italic> London: Polity, 2012, pp.44-49</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F. Kittler, <italic>Gramophone, Film, Typewriter</italic>,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p.219.</p></fn>
<fn id="fb014"><label>14)</label><p>F. Kittler, <italic>Gramophone, Film, Typewriter</italic>,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p.16.</p></fn>
<fn id="fb015"><label>15)</label><p>F. Kittler, <italic>Gramophone, Film, Typewriter</italic>,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p.150. 키틀러는 탈인간중심적인 미디어 이론을 체계화했다.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의 핵심은 기존 개별 미디어에 대한 연구와 대중에의 영향력 등 미디어 콘텐츠 연구에 집중하던 일반적인 미디어에 관한 연구와 달리 역사의 동인으로서 미디어의 역사를 구축하는 것이다. 키틀러는 푸코의 담론 개념을 미디어 연구와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푸코가 다루지 않은 담론의 형성을 실천하는 기술미디어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였다. 키틀러는 푸코의 이론은 담론의 생산을 단지 설명했을 뿐이라고 단정했다. 푸코의 저작에는 이러란 담론의 원천, 즉 담론의 경로 혹은 담론의 수신기에 대한 설명이 없음에 키틀러는 주목했다. 키틀러는 담론(의 형성)과 미디어의 관계를 보기 위해 담론을 기록하고,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술미디어를 들여다보기를 제안했다. 키틀러는 인간과 자연의 매개 장치로서의 미디어에 대한 고전적 개념을 담론의 형성과 변화의 조건으로 수정했다. 이러한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고하기 바람. <xref ref-type="bibr" rid="B014">B. D. Geoghegan, “After Kittler: On the Cultural Techniques of Recent German Media Theory”, <italic>Theory, Culture &#x0026; Society</italic>, vol.30 no.6, 2013, pp.66-82</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2">프리드리히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유현주·김남시 역, 문학과지성사, 2019, 283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프리드리히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유현주·김남시 역, 문학과지성사, 2019, 283쪽</xref>.</p></fn>
<fn id="fb018"><label>18)</label><p>L. Tolstoy, “It May Turn Out To be a Powerful Thing”, <xref ref-type="bibr" rid="B005"><italic>Authors on Film</italic>, Bloomington and Lond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72, p.11</xref>.</p></fn>
<fn id="fb019"><label>19)</label><p>J. London, “The Message of Motion Pictures”, <xref ref-type="bibr" rid="B005"><italic>Authors on Film</italic>, Bloomington and Lond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72, p.107</xref>.</p></fn>
<fn id="fb020"><label>20)</label><p><xref ref-type="bibr" rid="B021">E. Marzierska, <italic>Nabokov’s Cinematic Afterlife</italic>, Jefferson: Macfarland, 2011</xref>.</p></fn>
<fn id="fb021"><label>21)</label><p>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김인순 역, 열린책들, 2017, 27쪽.</p></fn>
<fn id="fb022"><label>22)</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프리드리히 키틀러, 『기록시스템 1800-1900』, 윤원화 역, 문학동네, 2015, 13쪽</xref>.</p></fn>
<fn id="fb023"><label>23)</label><p>V. Woolf, “The Movies and Reality”, <xref ref-type="bibr" rid="B005"><italic>Authors on Film</italic>, Bloomington and Lond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72, p.87</xref>.</p></fn>
<fn id="fb024"><label>24)</label><p>촉각적 영화에 대해서는 다음 자료 참고. <xref ref-type="bibr" rid="B018">J. M. Barker, <italic>The Tactile Eye: Touch and the Cinematic Experience</italic>,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9</xref>.</p></fn>
<fn id="fb025"><label>25)</label><p>V. Woolf, “The Movies and Reality”, <xref ref-type="bibr" rid="B005"><italic>Authors on Film</italic>, Bloomington and Lond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72, pp.90-91</xref>.</p></fn>
<fn id="fb026"><label>26)</label><p>R. Barry, “Five Dollar Movies Propheised”, <italic>New York Times</italic>, March 28, 1915. SM16. (재인용 출처: <xref ref-type="bibr" rid="B012">A. Slide, <italic>D. W. Griffith: Interviews</italic>, Jackson: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12, p.23</xref>)</p></fn>
<fn id="fb027"><label>27)</label><p>R. Barry, “Five Dollar Movies Propheised”, <italic>New York Times</italic>, March 28, 1915. SM16. (재인용 출처: <xref ref-type="bibr" rid="B012">A. Slide, D. W. Griffith: Interviews, Jackson: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12, p.26</xref>)</p></fn>
<fn id="fb028"><label>28)</label><p>R. Barry, “Five Dollar Movies Propheised”, <italic>New York Times</italic>, March 28, 1915. SM16. (재인용 출처: <xref ref-type="bibr" rid="B012">A. Slide, <italic>D. W. Griffith: Interviews</italic>, Jackson: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12, pp.26-27</xref>)</p></fn>
<fn id="fb029"><label>29)</label><p><xref ref-type="bibr" rid="B020">S. Kracauer, <italic>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italic> ,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0, pp.41-59</xref>.</p></fn>
<fn id="fb030"><label>30)</label><p><xref ref-type="bibr" rid="B019">L. Grieveson, <italic>Policing Cinema: Movies and Censorship in Early Twentieth Century America</italic>,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4</xref>.</p></fn>
<fn id="fb031"><label>31)</label><p>이후 이어지는 에디슨과 루빈 간의 저작권 침해 소송 과정과 결과는 다음 자료를 기반으로 재구성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p.11-58</xref>; <xref ref-type="bibr" rid="B009">M. H. Aronson, “Motion Picture Copyright”, <italic>Washington University Law Quarterly</italic>, vol.25 no.4, 1940, pp.554-572</xref>; <xref ref-type="bibr" rid="B011">P. Jaszi, “Copyright, Fair Use and Motion Pictures”, <italic>The Oxford Handbook of Film and Media Studies</italic>,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xref>.</p></fn>
<fn id="fb032"><label>32)</label><p>에디슨 영화사의 멜리에스 영화 복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책을 참조하기 바람. <xref ref-type="bibr" rid="B022">C. Musser, <italic>Before the Nickelodeon: Edwin S. Porter and the Edison Manufacturing Company</italic>,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p.209</xref>.</p></fn>
<fn id="fb033"><label>33)</label><p>미국 영화제작자들의 유럽영화 복제는 따라서 합법적이고, 드셰르니의 표현처럼 “가장 먼저 복제하는 회사가 영화시장의 리더”가 되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었다. <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19</xref>.</p></fn>
<fn id="fb034"><label>3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12</xref>.</p></fn>
<fn id="fb035"><label>35)</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27</xref>.</p></fn>
<fn id="fb036"><label>3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p.24-25</xref>.</p></fn>
<fn id="fb037"><label>3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p.25-26</xref>.</p></fn>
<fn id="fb038"><label>3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p.26</xref>.</p></fn>
<fn id="fb039"><label>39)</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48</xref>.</p></fn>
<fn id="fb040"><label>40)</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P. Decherney, <italic>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ita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p.48</xref>.</p></fn>
<fn id="fb041"><label>41)</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M. H. Aronson, “Motion Picture Copyright”, <italic>Washington University Law Quarterly</italic>, vol.25 no.4, 1940, pp.555-558</xref>.</p></fn>
</fn-group>
<ref-list>
<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기본자료</title>
<!-- 프리드리히 키틀러, 『기록시스템 1800·1900』, 윤원화 역, 문학동네, 2015.-->
<ref id="B001">
<label>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키틀러</surname><given-names>프리드리히</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윤</surname><given-names>원화</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5</year>
<source>기록시스템 1800·1900</source>
<publisher-name>문학동네</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프리드리히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유현주·김남시 역, 문학과지성사, 2019.-->
<ref id="B002">
<label>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키틀러</surname><given-names>프리드리히</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유</surname><given-names>현주</given-names></name>
<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남시</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9</year>
<source>축음기, 영화, 타자기</source>
<publisher-name>문학과지성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Decherney, Peter, 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
<ref id="B003">
<label>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Decherney</surname><given-names>Peter</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source>Hollywood’s Copyright Wars: From Edison to the Internet</source>
<publisher-loc>New York</publisher-loc>
<publisher-name>Columbia University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Ernst, Wolfgang & Jussi Parikka, Digital Memory and the Archiv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2.-->
<ref id="B004">
<label>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Ernst</surname><given-names>Wolfgang</given-names></name>
<name><surname>Parikka</surname><given-names>Jussi</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source>Digital Memory and the Archive</source>
<publisher-loc>Minneapolis</publisher-loc>
<publisher-name>University of Minnesota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Harry, Geduld, Authors on Film, Bloomington and Lond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72.-->
<ref id="B005">
<label>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Harry</surname><given-names>Geduld</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1972</year>
<source>Authors on Film</source>
<publisher-loc>Bloomington and London</publisher-loc>
<publisher-name>Indiana University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Huhtamo, Erkki, “From Kaleidoscomaniac to Cybernerd: Notes Towards an Archaeology of Media”, Leonardo 30.3, 1997, pp.221-224.-->
<ref id="B006">
<label>6</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Huhtamo</surname><given-names>Erkki</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1997</year>
<article-title>From Kaleidoscomaniac to Cybernerd: Notes Towards an Archaeology of Media</article-title>
<source>Leonardo</source>
<volume>30</volume><issue>3</issue>
<fpage>221</fpage><lpage>224</lpage>
<pub-id pub-id-type="doi">10.2307/1576453</pub-id>
</element-citation>
</ref>
<!-- Huhtamo, Erkki & Jussi Parikka, Media Archaeology: Approaches, Applications, Implication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1.-->
<ref id="B007">
<label>7</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Huhtamo</surname><given-names>Erkki</given-names></name>
<name><surname>Parikka</surname><given-names>Jussi</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1</year>
<source>Media Archaeology: Approaches, Applications, Implications</source>
<publisher-loc>Berkeley</publisher-loc>
<publisher-name>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Kluitenberg, Erkki, “Second Introduction to an Archaeology of Imaginary Media”, Book of Imaginary Media: Excavating the Dream of the Ultimate Communication Medium, Rotterdam: NAi, 2006, pp.7-27.-->
<ref id="B008">
<label>8</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Kluitenberg</surname><given-names>Erkki</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6,</year>
<chapter-title>Second Introduction to an Archaeology of Imaginary Media</chapter-title>
<source>Book of Imaginary Media: Excavating the Dream of the Ultimate Communication Medium</source>
<publisher-loc>Rotterdam</publisher-loc>
<publisher-name>NAi</publisher-name>
<fpage>7</fpage><lpage>27</lpage>
</element-citation>
</ref>
<!-- Milton, Aronson, “Motion Picture Copyright”, Washington University Law Quarterly, vol.25 no.4(January 1940), pp.554-572.-->
<ref id="B009">
<label>9</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Milton</surname><given-names>Aronson</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1940)</year>
<month>January</month>
<article-title>Motion Picture Copyright</article-title>
<source>Washington University Law Quarterly</source>
<volume>25</volume><issue>4</issue>
<fpage>554</fpage><lpage>572</lpage>
</element-citation>
</ref>
<!-- Parikka, Jussi, What is Media Archaeology? London: Polity, 2012.-->
<ref id="B010">
<label>10</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Parikka</surname><given-names>Jussi</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source>What is Media Archaeology?</source>
<publisher-loc>London</publisher-loc>
<publisher-name>Polity</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Peter, Jaszi, “Copyright, Fair Use and Motion Pictures”, The Oxford Handbook of Film and Media Studi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ref id="B011">
<label>1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Peter</surname><given-names>Jaszi</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8</year>
<chapter-title>Copyright, Fair Use and Motion Pictures</chapter-title>
<source>The Oxford Handbook of Film and Media Studies</source>
<publisher-loc>Oxford</publisher-loc>
<publisher-name>Oxford University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Slide, Anthony, D. W. Griffith: Interviews, Jackson: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12.-->
<ref id="B012">
<label>1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Slide</surname><given-names>Anthony</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2</year>
<source>D. W. Griffith: Interviews</source>
<publisher-loc>Jackson</publisher-loc>
<publisher-name>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Zielinski, Siegfried, Deep Time of the Media: Toward an Archaeology of Hearing and Seeing by Technical Means, Cambridge, Mass.: The MIT Press, 2006.-->
<ref id="B013">
<label>1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Zielinski</surname><given-names>Siegfried</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6</year>
<source>Deep Time of the Media: Toward an Archaeology of Hearing and Seeing by Technical Means</source>
<publisher-loc>Mass.</publisher-loc>
<publisher-name>The MIT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title>2. 논문과 단행본</title>
<!-- 베르나르트 디오니시우스 게오그헤간, ｢키틀러 이후—최근 독일 미디어 이론으로서 문화기술학에 관하여｣, 정찬철 역, 『문화과학』 94호, 2018, 236-260쪽. 원문 출처: Bernard Dionysius Geoghegan, “After Kittler: On the Cultural Techniques of Recent German Media Theory”, Theory, Culture & Society 30-6, 2013, pp.66-82.-->
<ref id="B014">
<label>1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게오그헤간</surname><given-names>베르나르트 디오니시우스</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찬철</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8</year>
<article-title>키틀러 이후—최근 독일 미디어 이론으로서 문화기술학에 관하여</article-title>
<source>문화과학</source>
<issue>94호</issue>
<fpage>236</fpage><lpage>260</lpage>
<comment>원문 출처: Bernard Dionysius Geoghegan, “After Kittler: On the Cultural Techniques of Recent German Media Theory”, Theory, Culture &#x26; Society 30-6, 2013, pp.66-82</comment>
</element-citation>
</ref>
<!-- 브라이언 머천트, 『원 디바이스: 우리가 모르는 아이폰의 숨은 역사』, 정미진 역, 매일경제신문, 2017.-->
<ref id="B015">
<label>1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머천트</surname><given-names>브라이언</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미진</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7</year>
<article-title></article-title>
<source>원 디바이스: 우리가 모르는 아이폰의 숨은 역사</source>
<publisher-name>매일경제신문</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어둠 속의 웃음소리』,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16.-->
<ref id="B016">
<label>16</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나보코프</surname><given-names>블라디미르</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정</surname><given-names>영목</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역</comment>
<year>2016</year>
<source>어둠 속의 웃음소리</source>
<publisher-name>문학동네</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제프리 노엘-스미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이영아 외 역, 열린책들, 2006.-->
<ref id="B017">
<label>17</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person-group-type="author">
<name><surname>노엘-스미스</surname><given-names>제프리</given-names></name>
</person-group>
<person-group person-group-type="translator">
<name><surname>이</surname><given-names>영아</given-names></name>
</person-group>
<comment>외 역</comment>
<year>2006</year>
<source>옥스퍼드 세계영화사</source>
<publisher-name>열린책들</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Barker, Jennifer M., The Tactile Eye: Touch and the Cinematic Experienc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9.-->
<ref id="B018">
<label>18</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Barker</surname><given-names>Jennifer M.</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9</year>
<source>The Tactile Eye: Touch and the Cinematic Experience</source>
<publisher-loc>Berkeley</publisher-loc>
<publisher-name>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Grieveson, Lee, Policing Cinema: Movies and Censorship in Early Twentieth Century America,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4.-->
<ref id="B019">
<label>19</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Grieveson</surname><given-names>Lee</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4</year>
<source>Policing Cinema: Movies and Censorship in Early Twentieth Century America</source>
<publisher-loc>Berkeley, CA</publisher-loc>
<publisher-name>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Kracauer, Siegfried, 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
<ref id="B020">
<label>20</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Kracauer</surname><given-names>Siegfried</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1997</year>
<source>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source>
<publisher-loc>Princeton, New Jersey</publisher-loc>
<publisher-name>Princeton University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Marzierska, Ewa, Nabokov’s Cinematic Afterlife, Jefferson: Macfarland, 2011.-->
<ref id="B021">
<label>2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Marzierska</surname><given-names>Ewa</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1</year>
<source>Nabokov’s Cinematic Afterlife</source>
<publisher-loc>Jefferson</publisher-loc>
<publisher-name>Macfarland</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Musser, Charles, Before the Nickelodeon: Edwin S. Porter and the Edison Manufacturing Compan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ref id="B022">
<label>2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person-group>
<name><surname>Musser</surname><given-names>Charles</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1991</year>
<source>Before the Nickelodeon: Edwin S. Porter and the Edison Manufacturing Company</source>
<publisher-loc>Berkeley</publisher-loc>
<publisher-name>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ref>
<!-- Winthrop-Young, Geoffrey & N. Gane, “Friedrich Kittler: An Introduction”, Theory, Culture & Society, vol.23 no.7/8, 2006, pp.5-16.-->
<ref id="B023">
<label>2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person-group>
<name><surname>Winthrop-Young</surname><given-names>Geoffrey</given-names></name>
<name><surname>Gane</surname><given-names>N.</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06,</year>
<article-title>Friedrich Kittler: An Introduction</article-title>
<source>Theory, Culture &#x26; Society</source>
<volume>23</volume><issue>7/8</issue>
<fpage>5</fpage><lpage>16</lpage>
<pub-id pub-id-type="doi">10.1177/0263276406069874</pub-id>
</element-citation>
</ref>
</ref-list>
</ref-list>
</back>
</artic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