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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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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n pub-type="ppub">1738-3188</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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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 xml:lang="ko">대중서사학회</publisher-name>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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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4_397</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4.013</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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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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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oup>
			<article-title>판타지의 리얼리티 전략과 서사적 감염</article-title>
			<subtitle>-소설 &#x003C;흡혈귀&#x003E;와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을 중심으로</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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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Reality Strategies in Fantasy and Narrative Infections</trans-title>
			<trans-subtitle>-Fiction <italic>Vampire</italic> and Movie <italic>The Grand Budapest Hotel</ita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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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 id="aff01"><label>*</label>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aff><role>HK연구교수</role>
			<aff xml:lang="en">Kyung Hee University</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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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 pub-type="ppub">
			<day>30</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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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19</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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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ume>25</volume>
		<issue>4</issue>
		<fpage>397</f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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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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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문초록</title>
<p>판타지는 합리적 현실의 균열과 틈새에서 출현한다. 이탈로 칼비노는 “판타지는 독자가 텍스트에 빠져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판타지는 현실과 가장 먼 곳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허구 사이의 혼동에서 오는 것이다. 요컨대, 판타지는 사실성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성의 경계에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p>
<p>리얼리티와 판타지는 구조적으로 얽혀 있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판타지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이다. 사실, 이 경우에 독자나 관객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혼란에 빠진다. 토도로프는 바로 이러한 경우를 ‘망설임’이라 표현하는데, 그에 따르면 이 망설임이 판타지의 핵심 요소이다. 이것이 잘 구현된 텍스트로 김영하의 단편소설 &#x003C;흡혈귀&#x003E;(1997), <xref ref-type="bibr" rid="B002">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x003C;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003E;(2014)</xref> 두 편을 살펴볼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텍스트는 서사 구조적인 유사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독자와 관객을 사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게 하면서, 흥미를 유발하는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다.</p>
<p>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에서는 하나의 텍스트가 독자에게 전달되면서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의 혼란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일종의 ‘서사적 감염’이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003E;</xref>에서는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역사 속의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려는 전략과 더불어, 소외 계층의 인물의 성공담이 현실화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의 ‘연대’의 의미가 판타지를 통해 부각되고 있다.</p>
<p>이 논문은 이 두 텍스트를 통해, 판타지가 어떻게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독자에게 판타지를 느끼게 만들며, 어떻게 그것을 확산시키는가에 대한 연구이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title>Abstract</title>
<p>Fantasy emerges from the cracks and crevices of rational reality. Italo Calvino says, “Fantasy is possible when the reader stays at a certain distance without falling into the text.” Fantasy does not form farthest from reality. It comes from the confusion between reality and fiction. In short, fantasy does not exist on the contrary of reality, but on the boundary of reality.</p>
<p>Reality and fantasy are also structurally intertwined. We can’t distinguish the reality from fantasy clearly. In fact, in this case, the reader or audience is confused about whether what I see is real or not. Todorov calls this case “hesitation.” Hesitation is a key element of fantasy. Two texts that expressed “hesitation” are Kim Young-ha’s short novel <italic>Vampire</italic> (1997) and Wes Anderson’s film <italic>The Grand Budapest Hotel</italic> (2014). On the surface, these two texts seem to have nothing to do with narrative structural similarities. And both also arouse readers’ and audiences’ interest by letting confuse reality to fantasy.</p>
<p>In Kim Young-ha’s <italic>Vampire</italic>, we can look at the process of confusion of reality called “narrative infection” when a text is read to the reader. In the movie <italic>The Grand Budapest Hotel</italic>, we can find a strategy to make an unreal story feel like a fact in history. And we can also find a process in which the success stories of alienated characters become reality through ‘solidarity’ in the film.</p>
<p>This paper is a study of how fantasy creates “reality”, makes readers feel fantasy, and how it spreads through these two texts.</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김영하</kwd>
			<kwd>흡혈귀</kwd>
			<kwd>웨스 앤더슨</kwd>
			<kwd>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kwd>
			<kwd>판타지</kwd>
			<kwd>액자소설</kwd>
			<kwd>서사적 감염</kwd>
			<kwd>리얼리티</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title>Keywords</title>
			<kwd>Kim Young-ha</kwd>
			<kwd>Vampire</kwd>
			<kwd>Wes Anderson</kwd>
			<kwd>Grand Budapest Hotel</kwd>
			<kwd>Fantasy</kwd>
			<kwd>Frame Novel</kwd>
			<kwd>Narrative infection</kwd>
			<kwd>Reality</kwd>
		</kwd-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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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id="sec001" sec-type="intro">
<title>1. 서론</title>
<p>판타지는 라틴어 ‘판타스티쿠스 phantasticus’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어로 ‘상상하다’라는 의미인 ‘판타제인 phantasein(φανταξω)’에서 파생된 말이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 판타지는 흔히 한자어 ‘환상(幻想/幻像)’으로 옮겨지곤 했다. ‘환(幻)’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판타스틱’, 혹은 ‘환상적’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기가 막히게 좋은’, ‘엄청난’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p>
<p>캐서린 흄은 “판타지란 사실적이고 정상적인 것들이 갖는 제약에 대한 의도적 일탈”, 즉 “등치적 리얼리티로부터의 일탈”이라고 말한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인간이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언어나 그림, 또 다른 무엇인가로 대치되어 소통의 통로 위에 올라오는데, 그것은 사실적이고 정상적으로 인식되도록 제약되기 마련이다. 판타지는 바로 그 제약에서의 일탈, 즉 리얼리티로부터의 일탈에서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실이 아닌 ‘상상력(想像力)의 산물’이나 ‘만들어진 허구(虛構)’, 사실로 믿기 힘든 괴이한 현상, 정상적이고 일반적이라고 보기 힘든 놀라운 광경들을 일컬어 우리는 ‘판타지’라고 말하게 된다.</p>
<p>대부분의 판타지는 합리적 현실의 균열과 틈새에서 출현한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기본적으로 모든 허구가 그러하겠지만, 판타지는 합리적이고 사실적이라고 믿어지는 물리적 현실과 비합리적이고 몰상식적이며 거짓이라 여겨지는 심리적 상상의 변증법적 산물이다. 프로이트식으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라캉의 표현으로는 상징계와 실재계의 사이에서, 들뢰즈적으로는 동일성과 타자성의 교섭에서 판타지는 나타난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p>
<p>이탈로 칼비노는 “판타지는 독자가 텍스트에 빠져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판타지는 현실과 가장 먼 곳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허구 사이의 혼동에서 오는 것이다.</p>
<p>요컨대, 판타지는 사실성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성의 경계에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판타지는 너무나 반사실적(反事實的)이면서도 동시에 사실적(事實的)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판타지는 비현실적이기만 해서는 안 되며, 지극히 사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p>
<p>때로 그것은 병렬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가령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해리포터가 살던 이모 페투니아의 집은 리얼리즘적 공간이며, 그가 입학한 마법학교 호그와트는 비현실적인 판타지적 공간이다.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공장』에서 찰리와 할아버지가 살던 집은 리얼리즘적이며,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판타지적이다.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살던 캔자스의 농장은 리얼리즘적이지만,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옮겨 간 노란 벽돌길에서부터는 판타지 공간이 시작된다.</p>
<p>때때로 리얼리티와 판타지는 구조적으로 얽혀 있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판타지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이다. 사실, 이 경우에 독자나 관객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혼란에 빠진다.</p>
<p>토도로프는 바로 이러한 경우를 ‘망설임(hesitation)’이라 표현하는데, 그에 따르면 이 망설임이 판타지의 핵심 요소이다. 토도로프는 『환상문학서설』에서 판타지의 세 가지 충족 조건을 말한다. 첫째,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을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인지, 초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망설임을 경험하게 한다. 둘째, 이러한 망설임을 독자와 인물이 모두 경험하게 된다. 셋째, 독자는 텍스트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토도로프는 이를 토대로, 판타지는 ‘독자와 작품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흡혈귀, 마법사, 날아다니는 지팡이, 산신령, 유령과 같은 ‘요소’의 유무가 아니라, 독자와 작품 사이의 긴장 관계, 그리고 리얼리티에 대한 혼란적 상황이 판타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p>
<p>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하여, 본 논문에서 주로 살펴볼 텍스트는 김영하의 단편소설 &#x003C;흡혈귀&#x003E;(1997),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003E;(2014)</xref> 두 편이다. 하나는 한국의 단편 소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해외 영화다. 장르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만들어진 시기도 15년 이상 차이가 난다. 하나는 ‘흡혈귀’라는 다소 전통적인 판타지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고, 또 하나는 2차 세계대전 무렵,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겉으로만 보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텍스트는 서사 구조적인 유사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독자와 관객을 사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게 하면서, 흥미를 유발하는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두 텍스트를 통해, 판타지가 어떻게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독자에게 판타지를 느끼게 만들며, 어떻게 그것을 확산시키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볼 것이다.</p>
</sec>
<sec id="sec002">
<title>2. 다층적인 액자 소설과 감염의 텍스트: 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title>
<p>김영하의 단편 &#x003C;흡혈귀&#x003E;는 1997년 겨울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처음 게재되었고, 1999년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소설집 <xref ref-type="bibr" rid="B001">『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xref><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에 수록되어 있다. 공지영, 권여선 등과 조금은 결을 달리하긴 하지만, 그의 첫 소설집 『호출』에 수록된 작품들 중 상당수는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후일담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두 번째 소설집에서는 보다 다양한 상상력과 서사적 전략을 선보이게 되고, 비평계도 그를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x003C;흡혈귀&#x003E;는 그 중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던 소설<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이었다. 2003년 6월 4일 EBS ≪문학산책≫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 소설 내용을 바탕으로 드라마타이즈된 내용이 방송되기도 했었다.</p>
<p>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p>
<p>　</p>
<p>　　지난해 펴낸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때문에 가끔 이상한 전화나 편지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소설에는 자살 안내라는 좀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데, 독자들 중에는 작가인 나와 그 자살 안내인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대뜸 전화를 걸어와서는 자신이 지금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뭐 해줄 말이 없느냐는 식이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그러겠는가 싶어 안쓰럽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난감한 노릇이다.(<xref ref-type="bibr" rid="B001">47</xref>)</p>
<p>　</p>
<p>인용된 부분에서 언급된 &#x003C;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x003E;는 김영하 작가의 출세작이라고 할 만한 소설로, 1996년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었다. &#x003C;흡혈귀&#x003E;가 처음 발표된 것이 1997년이니, “지난해 펴낸”이라는 표현은 엄연한 사실이다. 소설 &#x003C;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x003E; 안에 자살 안내인이라는 화자가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p>
<p>이 소설은 첫 문장부터 소설가 김영하라는 실체적 인물을 소설 속 인물인 화자와 혼동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p>
<fig id="f001"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1]</label>
	<caption>
		<title>소설 &#x003C;흡혈귀&#x003E;의 기본 구조</title>
	</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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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p>외화(外話)와 내화(內話)로 구성되는 ‘액자소설’들이 드문 것은 아니다. 액자소설의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소설의 전략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경계가 확고할수록 독자의 서사적 몰입이 강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중층화(重層化)될수록 리얼리티가 강화되는 경우가 있다.</p>
<p>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이 같은 장치를 가장 즐겨 활용한 작가일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미신이 타파되면서, 현실과 환상을 엄격히 구분하려 들기도 하였고, 환상은 배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를 즐겨했다.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관한 연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작가 허버트 퀘인을 분석하고,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서는 소설 돈키호테의 감춰진 작가 삐에르 메나르를 가상으로 만들어 내었다. 보르헤스의 서사적 전략에서 핵심 중 하나는 가상의 인물이나 소재, 공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상세히 묘사하거나 주석과 참고문헌들까지 동원하여 혼동을 유발하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그리고 또 하나의 핵심적 전략은 그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소환한 실제 작가 보르헤스와 소설 속 화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p>
<p>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가 선택한 영리한 방식은 스스로의 이름과 실제 전작(前作) 제목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혼란을 유도한 소설의 제목이 다름 아닌, ‘흡혈귀’다. 이 소설 속 인물 김희연은 자신의 남편을 ‘흡혈귀’가 아닐까 의심한다. 독자에게 소설 속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어놓고서, 정작 소설 속에는 전통적 판타지 존재인 ‘흡혈귀’를 등장시키고 있다.</p>
<p>물론, 흡혈귀는 중세가 저물고 근대적 이성의 시대,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서구 문학에서는 꾸준히 반복적으로 재현된 판타지적 존재였다.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x003C;흡혈귀&#x003E;, 브램 스토커의 &#x003C;드라큘라 백작&#x003E;, 메리셀리의 &#x003C;프랑켄슈타인&#x003E;은 낭만주의 시대 공포문학의 대표작이면서, ‘흡혈귀’를 핵심적 인물로 내세운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흡혈귀는 아동 문학의 소재거나 우스꽝스럽게 등장했다가 곧 응징당하는 ‘기이한 악당’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흡혈귀’는 특히 한국 문학에서는 흔치 않았던, 낯선 캐릭터이다.</p>
<p>김영하는 바로 그 흡혈귀를 이 소설에 끌어온다.</p>
<p>　</p>
<p>　　남편은 흡혈귀였던 겁니다. 오, 맙소사. 저는 침착해지기로 했습니다. 남편을 처음 만나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찬찬히 돌이켜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투성이였습니다.(<xref ref-type="bibr" rid="B001">65</xref>)</p>
<p>　</p>
<p>누군가가 위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이처럼 허무맹랑한 내용이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남편을 흡혈귀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그저 황당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소설이 매우 복잡한 서사 구조를 활용하면서, 교묘하게 리얼리티와 판타지 사이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p>
<p>남편을 흡혈귀라 말하는 것은 김희연이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소설 속 화자인 소설가 김영하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그리고 소설 속 김영하는 이렇게 반응한다.</p>
<p>　</p>
<p>　　오늘 소개할 이 편지도 그런 것 중의 하나려니 하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편지는 A4 용지 크기의 봉투에 담겨 두툼했다. 주소는 컴퓨터로 깔끔하게 인쇄된 것이었고 소인은 서울 도곡동 우체국으로 찍혀 있었다. …(중략)… 집에 들어와서 책상 위에 던져놓고는 며칠 동안 잊어버리고 지냈다. 내 생활 리듬이라는 게 규칙적이지 못해서 어떤 때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번도 책상 앞에 앉지 않기도 하는 터라 그 편지는 다른 쓰잘데없는 우편물, 신문 등과 뒤섞인 채로 한참을 그냥 묻혀 지내게 되었다.(<xref ref-type="bibr" rid="B001">47-48</xref>)</p>
<p>　</p>
<p>소설가가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 편지의 내용에 깜짝 놀라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다. 김희연의 편지에 대한 어떤 격렬한 반응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쓰잘데없는 것들’과 함께 묻어 두었다는 점에서 이 편지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실적이게 느껴진다. ‘소설 속 김영하’는 김희연의 편지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희연은 우편물을 받아보았냐고 물어보는 전화를 걸어온다. 그제서야 ‘소설 속 김영하’는 이 편지를 읽게 되는데, 실제 작가 김영하가 만들어놓은 교묘한 혼란 전략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p>
<p>　</p>
<p>　　전화를 끊고 나서 찬찬히 그녀가 보내온 봉투를 열어보았다. 먼저 열 장 가량의 종이 묶음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첫 문장부터 맞춤법에 맞지 않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 점이 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문장은 의외로 간결하고 산뜻했다. 다 읽고 난 후의 내 감상은 나중에 밝히기로 하고 이 흥미로운 편지를 먼저 소개하기로 하자. 몇 군데 의미가 연결되지 않는 문장은 내가 손을 보았고 맞춤법이 틀린 곳도 고쳤다. 지나치게 비약이 심하거나 감상적으로 흐른 부분도 문맥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삭제하거나 줄였다. 이 점을 참고하면서 봐주시기를 바란다.(<xref ref-type="bibr" rid="B001">49-50</xref>)</p>
<p>　</p>
<p>독자에게 온 편지를 인용하여 소개하면서, 글을 다듬고 고쳤다는 얘기는 소설 &#x003C;흡혈귀&#x003E;의 독자에게 김희연이라는 사람이 보내온 ‘편지’가 실제 존재하는 편지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려는 전략의 산물이다. 평범한 독자가 보내온 편지의 문체가 너무나 매끄럽다거나 소설가의 소설 문체와 유사하다면, 그 편지를 실제 독자의 편지로 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이미 ‘소설가’의 윤색과 퇴고를 거친 상태임을 밝혀 그러한 의심을 피해간 것이다.</p>
<p>김영하의 소설 &#x003C;흡혈귀&#x003E;에는 브램 스토커의 &#x003C;드라큘라 백작&#x003E;에서처럼 극적으로 등장하여 누군가의 목덜미를 물고 흡혈을 하는 공포스러운 흡혈귀는 등장하지 않는다. 흡혈귀가 등장하는 것은 두 차례이다. 첫 번째는 김희연이 편지에서 “남편이 흡혈귀인 것 같다.”고 추정하는 내용에서이다. 두 번째는 김희연의 남편이 과거 썼다는 단편 영화 시나리오에서이다. 김희연이 요약하여 제시한 그 줄거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p>
<p>　</p>
<p>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느 날 삶이 무한정 계속될 거라는 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죽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임진왜란 당시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휘하의 일본군을 따라온 네덜란드 군목에 의해 흡혈귀가 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이 네덜란드 군목이 흡혈귀였던 거지요. 1592년 이래로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왔다고 믿는 이 남자는 자신이 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p>
<p>　　그는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불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내가 자신을 견딜 수 없다고 믿는 거지요. …(중략)… 그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흡혈귀였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왔다고 믿었습니다. 흡혈귀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흡혈귀로서의 모든 속성을 버리고 인간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쳐왔다고 말이죠. …(중략)…</p>
<p>　　정신과 의사는 그의 증세가 망상형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하지요. 그는 강제로 입원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 정신병원에는 자신이 흡혈귀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었지만 나중에는 간호사들, 심지어는 그를 치료했던 의사마저도 자신의 흡혈귀가 되었다고 여기게 됩니다.(<xref ref-type="bibr" rid="B001">62-63</xref>)</p>
<p>　</p>
<p>김희연이 남편을 흡혈귀라고 생각한 근거는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역사에서 문학까지, 오래 전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서고금에 걸쳐 모르는 것이 없었다는 점, 식욕과 성욕이 거의 없었다는 점, 서재에서 혼자 관에 들어가 잠들곤 했다는 점, 흡혈귀가 등장하는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 오래 전 사진들 중에 특정 인물만 도려내진 사진을 발견했다는 점,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사실 김희연이 아무리 남편을 흡혈귀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상식적인 독자라면 김희연의 남편이 진짜 실존하는 흡혈귀라는 것을 믿지는 않을 것이다. 흡혈귀는 이미 비현실의 판타지적 존재의 상징이나 다름없었고, 그나마도 최근에는 유치한 코미디나 아이들 이야기책 속에서나 등장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희연의 주장이 허무맹랑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남편이 흡혈귀라는 주장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다음과 같은 구조 때문이다.</p>
<fig id="f002"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2]</label>
	<caption>
		<title>소설 &#x003C;흡혈귀&#x003E;의 중층 구조</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81&amp;imageName=jpn_2019_25_04_397_f002.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김희연은 남편이 쓴 시나리오를 읽다가 남편이 흡혈귀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희연은 소설 속 소설가 김영하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 같은 추측을 전달한다. 소설 속 소설가 김영하는 김희연의 편지를 읽고 &#x003C;흡혈귀&#x003E;라는 소설을 쓰게 되고, 그것은 독자에게 전달된다. 여기서 소설 속 김영하와 실제 소설가 김영하는 동일한 이름과 직업, 동일한 전작 때문에 구별이 잘 되지 않게 되고, 결국 위 그림에서 네모 칸 하나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하나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다른 경계들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연스럽게 소설의 독자는 김희연의 편지도, 그리고 그 편지 속 김희연의 남편까지도 현실 속 인물과 혼동하게 된다.</p>
<p>　</p>
<p>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그녀가 동봉한 참고 자료는 지면 관계상 공개하지 않는다. 다 저 편지 속에 요약된 것들이다.</p>
<p>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남편을 알고 있다. 그는 내 동료 문인이며 그녀 말대로 내 소설에 대한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p>
<p>　　그가 흡혈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유심히 보아야겠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동서양을 아우르는 문학적 식견이 그의 천재성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오래 살아온 덕택이라는 그녀의 말은 내게 힘을 준다. 그는 내게 언제나 컴플렉스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p>
<p>　　살다 보니 별 신기한 일도 다 보겠다. 이제 여러분도 그의 글을 찬찬히 살펴보기 바란다. 죽음에 대한 무한한 찬미와 삶에 대한 도저한 허무주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동료 문인의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하자. 조금만 눈밝은 독자라면 금세 짐작이 갈 것이다.(<xref ref-type="bibr" rid="B001">71-72</xref>)</p>
<p>　</p>
<p>편지 내용의 인용이 마무리된 직후, 소설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참고 자료’도 있지만 지면 관계상 공개하지 않겠다는 능청스러움은 그렇다고 치지만, “그녀의 남편을 알고 있다. 그는 내 동료 문인”이라면서 “눈밝은 독자라면 금세 짐작이 갈 것”이라는 부분까지 오면, 독자들이 나름대로 뚜렷하다고 여겼던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들은 허물어질 위기에 봉착한다.</p>
<p>실제로 개별 독자들이 이와 같은 서사 전략에 각기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았다. 과거의 독자반응비평이 독자반응을 이론적으로 추정하는 비평가들의 추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실제 독자들의 반응의 다양한 자장들을 비평가 개인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는 독자들의 구체적 반응들을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다.</p>
<p>네이버 지식인에는 “김영하의 ‘흡혈귀’에서 작가 자신과 친하다고 했던 동료문인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이 2007년 7월 3일자로 올라와 있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 한 인터넷 블로그에는 김희연의 남편이 한 유명 문학평론가일 것이라는 추정이 매우 다양한 근거와 논리로 제시되어 있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p>
<p>이 논문을 쓰는 필자는 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를 대학교 수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학생들에게 읽게 하고 짧은 리뷰를 과제로 받아본 적이 있다. 그렇게 하여 &#x003C;흡혈귀&#x003E;를 읽은 한 학생은 “아무리 소설가라도 독자의 편지를 허락 없이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지하게 분노하기도 했었다.</p>
<p>또 다른 수업에서의 학생 중 하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느낀 점은 무엇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적기도 했으며, 또 다른 학생은 “사실은 아직도 헷갈린다. 머릿속에선 ‘이런 게 실제로 있을 리 없잖아’라는데, 마음 속 한 구석에선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흡혈귀 쯤 사실 어딘가 있을 법 하지…’하고 말이다.”라고 적기도 했다.</p>
<p>분명히 흡혈귀는 없는데, 이 소설은 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알 수 없다는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토도로프가 말하는 “독자와 인물이 모두 ‘망설임’을 느끼게 되는 판타지”로 분명한 성과를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p>
<p>김영하의 소설 &#x003C;흡혈귀&#x003E;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 된다.</p>
<p>　</p>
<p>　　그녀에게선 아직 전화가 없다. 이 글이 발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생각엔 아무래도 바로 그녀가 흡혈귀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p>
<p>　　이건 그냥 내 짐작일 뿐이다.</p>
<p>　　짐작.(<xref ref-type="bibr" rid="B001">72</xref>)</p>
<p>　</p>
<p>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의 가장 충격적인 서사 전략은 바로 이 맨 마지막 부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소설가 김영하는 남편이 흡혈귀 같다고 말하는 김희연의 편지를 읽고 나서, 조금은 뜬금없이, ‘그녀가 흡혈귀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냥 짐작이라고 말할 뿐,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는 않는다.</p>
<p>여기서 잠깐 다른 글을 한 번 인용해보겠다. 과거, 필자의 수업을 들었던 또 다른 학생은 다음과 같은 과제물을 제출한 적이 있다.</p>
<p>　</p>
<p>　　마침 가방에 책을 가지고 있었기에 과제를 위해 김영하의 ‘흡혈귀’를 펼쳤다. 무언가에 홀린 듯 단숨에 읽고 나서 막 책을 덮었을 때, 문득 옆자리에 중후한 신사분이 한 분 앉아계신 것을 깨달았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내심 놀랐지만, 그 분위기가 몹시 묘한 매력을 갖고 있어 나도 모르게 의식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 그 신사분이 내 책을 유심히 보더니 아주 편안한 말투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학생이 방금 읽었던 김영하의 ‘흡혈귀’가 어떠하였는지였다. 나는 물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대답을 했고, 이어서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현실로 받아들이느냐고 물어왔다. 사실 초면에 이런 질문을 듣는다면 으레 당황하며 이상하게 생각했겠지만, 그때엔 어쩐 일인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고 마치 전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것처럼 느껴졌었다. 더욱이 특이했던 건 그때 바라본 그분의 얼굴은 나이를 구체적으로 가늠하기 힘들었고,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눈이 풍기는 묘한 느낌이었다. (중략)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혹시 그 신사분은 흡혈귀였던 것은 아니었을까?<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p>
<p>　</p>
<p>저 위에서 언급한 한 블로그의 글도 그러하지만, 이 학생의 글도 소설 &#x003C;흡혈귀&#x003E;를 읽다가 느낀 점을 쓴 것인지, 그 독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하나의 소설을 쓴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이 학생의 글의 맨 마지막이 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와 매우 닮아 있다는 점이다. 물론, &#x003C;흡혈귀&#x003E;에서의 김영하의 서사 전략과 문법을 흉내 내었을 것이다.</p>
<p>무언가를 접하였을 때, 그것을 닮게 받아들이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모방이거나 표절이지만, 그것이 또 다른 무언가로 끊임없이 옮겨지며 전파된다면, 그것은 ‘감염’이다.</p>
<p>소설 &#x003C;흡혈귀&#x003E;의 맨 마지막에 소설 속 김영하가 “그녀가 흡혈귀인 것만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남편이 흡혈귀라면 그녀 역시 흡혈귀가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다. 그런데 서유럽 낭만주의 시대 ‘흡혈귀’와는 달리, 이 소설 속 흡혈귀는 실제 ‘흡혈’을 통해 감염을 시키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감염의 매개이자 숙주는 바로 텍스트이다. 김희연은 남편의 시나리오를 읽고 감염이 되었고, 소설 속 김영하는 김희연의 편지를 읽고 감염이 되었다. 그리고 소설 &#x003C;흡혈귀&#x003E;의 독자는 또 한 번 감염될 수 있었을 것이다.</p>
<p>사실 텍스트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소통되는 과정은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감염’처럼 위험하지는 않을지라도, 그것 못지않게 역동적인 과정이다. 특히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요소들로 채워져 있는 판타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합리적 이성’의 저항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합리적 사고의 틀과 경계가 모호해지고 약화되는 순간, 판타지 텍스트는 독자를 감염시킨다.</p>
<p>평범한 독자들조차도 그 텍스트의 전략을 따르게 되고, 다시 그 전략을 활용한 또 다른 이야기를 지어내며, 또 하나의 흡혈귀를 의심스럽게 추정해보게 되는 것은, 소설 &#x003C;흡혈귀&#x003E;가 만들어낸 텍스트적 감염 현상이며, 또 한 번 현실과 허구의 경계 위에서 ‘판타지’를 구성하는 일이다.<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p>
</sec>
<sec id="sec003">
<title>3. 탈주, 생존과 연대로서의 판타지: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title>
<p>&#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2014년도 영화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x003C;로얄 탄넨바움(The Royal Tenenbaums)&#x003E;(2001), &#x003C;다즐링 주식회사(The Darjeeling Limited)&#x003E;(2007), &#x003C;판타스틱 미스터 폭스(Fantastic Mr. Fox.)&#x003E;(2009) 등의 영화에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갖고 있다는 평을 들어왔었다. 특히 짜임새 있는 서사 구조를 갖춘 시나리오와 원색을 활용한 미적인 미장센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대체로 무언가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p>
<p>&#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개막작이자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이었다. 2015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201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음악상, 미술상을 비롯한 4개 부문 수상작이 되었다. 2014년 개봉 당시, 커다란 흥행 수입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호평을 받았던 영화였다.</p>
<p>영화가 시작되면, 검은 바탕의 화면 위에 다음과 같은 자막이 흐른다.</p>
<p>　</p>
<p>　　유럽 대륙 동쪽 경계 지역에 한때 주브로브카 공화국이라 불리던 나라가 있었다.<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p>
<p>　</p>
<p>화면이 밝아지면, ‘올드 루츠 공동묘지’라는 곳에 한 여인이 찾아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여인은 한 작가의 동상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책 제목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클로즈업된다. 제목이 쓰여져 있던 책 앞표지를 보여주더니, 여인이 책을 돌려 뒤표지를 보여준다. 뒤표지에는 소설가(톰 윌킨슨 역)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데, 잠시 후 화면이 전환되며, 그 사진 속 소설가의 발화로 영화의 첫 대사가 시작된다.</p>
<p>이 부분이 영화의 프롤로그에 해당된다고 볼 때, 영화 관객은 이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이 동유럽 한 국가 출신의 소설가가 쓴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그가 쓴 소설 속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기대할 것이다.</p>
<p>화면 전환 후, ‘1985년’이라는 자막이 보여진다. 소설 책 뒤표지의 인물, 즉 소설가는 카메라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생방송 시작 사인을 받은 뉴스 앵커처럼, 카메라 정면을 바라보면서 소설가는 이렇게 말한다.</p>
<p>　</p>
<p>　　사람들은 흔히, 작가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온갖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떠올려 스토리를 창조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주변사람들이 작가에게 캐릭터와 사건을 제공한답니다. 작가는 그저 지켜보며 귀 기울여 들으면서 스토리의 소재를 ……</p>
<p>　</p>
<p>소설가가 카메라 정면을 보며 여기까지 말한 순간, 한 소년을 향해 소설가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친다. “그만둬, 그러지마, 하지 마!”라고. 소년은 장난감 총을 겨누며 장난을 치다가 달아나고 있었고, 카메라는 그 소년을 뒤쫓아 우측으로 패닝을 한다. 그리고 그 소년이 달아나던 문 쪽에는 마치 영화 촬영 세트장을 꾸미고 있는 현장인 것처럼, 벽에 페인트칠하는 사람과 몇 개의 조명과 사다리가 놓여 있다. 다시 카메라가 소설가에게 돌아오면, 소설가는 말을 이어간다.</p>
<p>　</p>
<p>　　주변인들이 삶 속에서 찾아내는 거죠.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타인의 이야기를 듣죠. 지금부터 여러분께 전혀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제가 들은 그대로, 토씨 하나 안 빼고 상세하고 온전히 전달해 드리겠습니다.</p>
<p>　</p>
<p>소설가의 발화 부분은 한 마디로 소설은 ‘소설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가 아니라, ‘현실의 모방과 전달’이라는 얘기다. 바꾸어 말하자면, 소설가가 “오로지 실제 있었던 (자신 주변의) 인물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줄 것이다.”라는 다짐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p>
<p>그러나 어쩌면 불필요하고 어수선하기만 한 듯했던, 그 소년의 난입과 카메라의 흔들림은 이 소설가의 그 같은 다짐이 관객을 현혹시키는 수단에 불과함을 드러내주는 힌트였을 것이다. 영화의 첫 부분이 마치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라고 선언하는 듯 보이겠지만, 사실 이 첫 부분의 내용이야말로, 그 자체가 모두 허구이거나, 관객에 대한 혼란적 장치, 즉 맥거핀(macguffin)일 뿐이다.</p>
<p>주브로브카 공화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한 적도 없는 나라 이름일 뿐이고,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아니고,<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 실제 있었던 인물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도 않았다. 이 영화는 소설가의 말과는 반대로, 오히려 “작가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온갖 에피소드와 사건을 떠올려 창조”한 텍스트에 가깝다.</p>
<fig id="f003"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3]</label>
	<caption>
		<title>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의 비현실적인 공간</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81&amp;imageName=jpn_2019_25_04_397_f003.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잠시 후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68년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에 위치한 호텔의 모습을 화면이 보여주는 동안, 소설가의 내레이션은 이어진다. 소설가는 과거에 신경쇠약에 걸렸을 때, 요양 목적으로 8월 한 달을 알프스 자락에 있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큰 호텔이었지만 한적했던 그 호텔에서 소설가는 호텔 컨시어지였던 ‘무슈 장’과 친해졌다. 그리고 그의 소개로 한 노신사와 대화하게 되었다. 그 노신사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 ‘제로 무스타파’라는 인물이었다.</p>
<p>소설가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을 소개하면서 “그림처럼 아름답고 웅장하며 유명한 호텔이어서 아는 분들도 계시겠죠.”라고 말하고, 무슈 장에게 처음 무스타파를 소개받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는 “나이 지긋한 분들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이죠.”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아주 유명한 그림이죠.” 혹은 “모두가 잘 아는 음악이죠.”라고 말하며 소개하는 그림이나 음악을 난생 처음 접하게 된다면, 그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몰랐었다는 자신의 무지를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 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관객은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과 ‘제로 무스타파’는 이미 실존했으며, 심지어 유명했던 것으로 인식하며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p>
<p>그러나 소설가(1968년 배경의 젊은 소설가 역할은 주드 로가 맡았다)가 8월에 요양을 했다는 알프스 지역의 풍경은 전혀 여름처럼 보이지 않는다. 호텔의 모습이나 주변 풍경 역시 사실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아주 과장된 풍경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영화 속의 인물, 배경, 사건에 대해 관객들에게 “아무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p>
<p>어찌되었건 소설가(주드 로 역)는 제로 무스타파(F. 머레이 아브라함 역)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식사 자리에서 제로 무스타파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무슈 구스타브’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p>
<p>이때부터 영화는 1932년으로 시대를 다시 거슬러 올라게 되며, ‘1부 무슈 구스타브’, ‘2부 마담 셀린느 빌뇌브 데고프 운트 탁시스’, ‘3부 체크포인트 19 교도소’, ‘4부 십자 열쇠 협회’, ‘5부 두 번째 유언장의 사본’ 편으로 구분된 서사적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영화의 대부분의 내용은 1932년에서 시작되는 ‘무슈 구스타브’와 그의 밑에서 일하던 ‘제로’라는 소년의 이야기가 차지한다.</p>
<p>소설가에게 과거 이야기를 해주는 화자는 제로 무스타파이지만, 1932년 배경의 내화(內話)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무슈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역)이다. 내화의 서사는 전체 다섯 개 부(part)로 구분되어 있다.</p>
<p>1부 &#x003C;무슈 구스타브&#x003E;는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와 백작부인 마담 D(틸다 스윈턴 역)의 은밀한 관계가 비쳐지는 가운데, 신입 벨보이로 구스타브로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게 된 제로가 등장한다. 호텔의 실소유주는 미지에 감춰진 채, 대리인 코박스(제프 골드블룸 역)가 지배인 구스타브와 함께 호텔 운영을 결정해나가는 모습도 드러난다. 2부 &#x003C;마담 셀린느 빌뇌브 데고프 운트 탁시스&#x003E;에서는 신문에 실린 두 가지 기사가 화면에 보여지면서 시작된다. 하나는 ‘전쟁 발발’ 기사이고, 또 하나는 ‘미망인 백작부인 주검으로 발견’이라는 기사이다. 백작부인의 사망 소식에 구스타브는 제로를 데리고 그녀의 저택으로 향한다. 전쟁으로 인한 국경폐쇄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은 뒤 백작부인의 저택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구스타브는 예기치 않게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명화(名畫)의 소유권을 상속받게 된다. 백작부인의 아들 드미트리(에드리안 브로디 역)와 악당 조플링(월럼 데포 역)의 위협을 피해 그림을 들고 도주하게 되지만, 결국 구스타브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p>
<p>3부 &#x003C;체크포인트 19 교도소&#x003E;에서는 제로가 구스타브의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과 제로와 아가사 사이의 로맨스, 그리고 구스타브의 탈옥 스토리가 펼쳐진다. 4부 &#x003C;십자 열쇠 협회&#x003E;에서는 다른 호텔 컨시어지와 지배인들의 협회인 ‘십자 열쇠 협회’에 의해 도움을 받은 구스타브가 탈주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조플링을 물리치는 내용이 등장한다. 5부 &#x003C;두 번째 유언의 사본&#x003E;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더욱 휘말리게 된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로 몰래 돌아온 구스타브와 제로가 숨겨놓았던 ‘사과를 든 소년’ 명화 액자에서 백작부인의 두 번째 유언장을 발견하고 결국 호텔의 후계자가 되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리고 제로와 아가사와의 결혼, 그리고 얼마 후 아가사와 아들의 죽음, 구스타브의 죽음으로 스토리가 마무리되어 간다. 구스타브의 죽음 이후 제로가 호텔을 상속받게 된 내용까지 이야기한 중년의 제로 무스타파는 소설가에게 구스타브에 대한 짧은 회고를 마지막으로 발화를 끝맺는다.</p>
<fig id="f004"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4]</label>
	<caption>
		<title>아가사와 아들, 그리고 구스타브의 죽음에 대해 소설가에게 발화하는 제로 무스타파.</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81&amp;imageName=jpn_2019_25_04_397_f004.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요약하자면, 제로 무스타파라는 난민 출신 소년이 어떻게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유서 깊은 호텔의 주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인생 스토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이 영화는 아주 다양한 접근과 해석이 가능하다. 마담 D의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를 추적하는 스릴러 영화로도 볼 수 있고, 구스타브와 제로가 탈주와 탈옥을 이어가는 긴박한 서스펜스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세계대전과 나치의 시대적 배경 위에서 몇몇 조력자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난민 소년의 ‘성장담’으로도 볼 수 있다. 드미트리로 대표되는 잔혹한 욕망과 제로로 대표되는 순수한 ‘믿음과 사랑’이 대비되는 스토리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관점과 접근이 가능한 것은 이 영화의 중층적인 구조 덕분이다.</p>
<p>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의 서사 구조를 간략히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p>
<fig id="f005"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5]</label>
	<caption>
		<title>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의 서사 구조</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81&amp;imageName=jpn_2019_25_04_397_f005.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이 영화는 앞서 살펴본 소설 &#x003C;흡혈귀&#x003E; 못지않게 중층적인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사실 매우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의 서사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의 관객들은 소설 ‘<xref ref-type="bibr" rid="B009">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의 존재와 소설가의 존재를 실존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제로 무스타파와 무슈 구스타브의 모델이 되는 실제 인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보게 될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소설가가 말한 것처럼, “주변인의 삶에서 발견하여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옮겨 놓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몰입할 수 있게 된다.</p>
<p>그러나 이 영화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무척 비현실적이고 노골적으로 판타지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배경인 호텔이 위치한 지리적 배경과 호텔의 외양, 그리고 그 호텔을 둘러싼 인물들의 설정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이다. 어마어마한 경사도의 높이에 위치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하지만, 코박스의 고급 승용차 역시 드나드는 호텔의 지리적 조건, 구스타브의 비현실적인 탈옥 과정, 조플링의 비현실적인 육체적 능력과 악행들, ‘맥거핀’ 역할을 하는 멘들 빵집의 케익에 대한 묘사 등은 하나같이 현실적인 느낌을 일부러 배제하려 한 인상까지 받게 되는 부분들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조플링의 추격을 피해 구스타브와 제로가 썰매를 타고 달아나는 장면은 노골적인 과장이 가장 두드러진 시퀀스이다. 마치 관객들에게 “이래도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겠어?”라고 묻는 듯하다.</p>
<fig id="f006"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6]</label>
	<caption>
		<title>영화에 등장하는 ‘사과를 든 소년’과 그 자리에 걸어 놓은 다른 그림</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81&amp;imageName=jpn_2019_25_04_397_f006.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영화 속 중요한 소재가 되며, 반전의 열쇠가 되는 명화 ‘사과를 든 소년’에 대해 구스타브는 이렇게 말한다. “반 호이틀 작품인데, 성인에 접어드는 소년을 아주 아름답게 그려냈어. …(중략)… 개인이 소장한 작품 중 최상급이지. 한 마디로 걸작이야.” 그런데 이 역시 전형적인 보르헤스적인 기법이다. 반 호이틀이라는 화가는 존재하지 않고, 이런 그림 역시 실존하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 것은 구스타브와 제로가 그 그림을 훔친 뒤, 두리번거리며 아무 것이나 집어다가 그 자리에 걸어둔 엉뚱한 그림이다. 동성애 관계의 여성 둘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한 이 그림은 누가 보아도 ‘에곤 쉴레’ 풍의 그림이다. 그 옆에서 또 스쳐 지나가는 그림 한 편은 전형적인 ‘클림트’ 풍의 그림이다.</p>
<p>이 영화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인물이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는 ‘정면 샷’이 아주 많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부자연스러운 사진관 구도로 평면화시킴으로써 관객의 심리적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는 의견<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정면 샷은 영화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이상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정면 샷은 관객에게 말을 걸며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거나, 브레히트적 ‘소외’ 효과를 통해 작품의 바깥 현실에 시선을 돌리도록 할 때 흔히 쓰인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 다시 말해, 정면 샷의 빈번한 쓰임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영화 내적 서사에 대한 몰입’보다는 ‘영화 바깥의 현실’을 주목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p>
<fig id="f007"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7]</label>
	<caption>
		<title>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에 자주 등장하는 정면 응시 샷.</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81&amp;imageName=jpn_2019_25_04_397_f007.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이 영화 속의 제로 무스타파는 난민 출신의 고아였다. 영화 초반부에 구스타브가 제로의 개인적 정보를 묻는 부분에서 제로는 “학력도 제로, 가족 관계도 제로”라고 말한다. 그의 불안정한 난민 신분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번 열차 안에서의 난처한 상황을 불러온다. 어쩌면 난민 출신 제로가 거대한 호텔의 주인이 되었다는 핵심 스토리 자체가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p>
<p>웨스 앤더슨 감독은 불가능해보이는 이 스토리,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 스토리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결말부에 제로의 연인이었던 아가사와 아들은 ‘프로이센 독감’에 감염되어 사망하고, 구스타브는 열차에 들이닥친 파시스트의 총에 맞아 죽는다. 영화 내내 힘겹게 탈주하며 삶을 이어 왔던 이들이 결말부에서 다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제로는 살아남았다. 소설가는 제로에게 묻는다. “이 호텔이 당신과 구스타브를 연결해주는 끈입니까?” 그러자 제로는 그와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이 호텔은 아가사를 위한 것이라면서 옷깃에 있는 배지를 보여준다.</p>
<fig id="f008" orientation="portrait" position="float">
	<label>[그림8]</label>
	<caption>
		<title>제로가 간직했던 십자 열쇠 배지(badge).</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525381&amp;imageName=jpn_2019_25_04_397_f008.jpg" position="float" orientation="portrait" xlink:type="simple"></graphic>
</fig>
<p>그것은 십자 열쇠 무늬의 배지였다. 제로와 구스타브가 탈주를 계속할 때 그들을 도와주었던 직업적 동료의 연대, 바로 ‘십자 열쇠 협회’는 제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었고, 아가사와의 순수한 사랑은 그가 낙후되어 가는 그 호텔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이유였던 것이다.</p>
<p>이렇게 본다면, 영화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정면 샷’이 관객에게 환기시키고자 했던, 현실 직시의 메시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십자 열쇠 협회’는 판타지를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힘, 소외된 계층과 난민의 생존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 바로 ‘연대’의 힘을 상징한다. 욕망이 아니라 순수의 힘으로, 경쟁이 아니라 연대의 힘으로 사회를 지탱해가는 ‘소외 계층’에 대한 응시이며, 그들의 연대에 대한 응원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p>
</sec>
<sec id="sec004" sec-type="conclusions">
<title>4. 결론</title>
<p>본 논문에서는 김영하의 소설 &#x003C;흡혈귀&#x003E;와 <xref ref-type="bibr" rid="B002">웨스 앤더슨의 영화 &#x003C;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003E;</xref>이라는 두 편의 텍스트를 살펴보았다. 얼핏 보면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편의 텍스트는 매우 중층적인 서사 구조를 통해 리얼리티를 이끌어내고 있으면서도,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독자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들이었다.</p>
<p>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두 텍스트는 토도로프적인 ‘망설임’을 유발한다. 합리적 현실과 비현실적 판타지 사이의 경계에서 인물과 독자(관객)은 망설인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현실에 대한 직시를 유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다시 쓰기”로 이어져, 원래 복잡했던 서사 구조에 한 층의 겹을 덧씌운다.</p>
<p>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는 앞서 “텍스트의 감염”이라 표현했던 것처럼, 또다시 새로운 독서와 글쓰기를 유도해낸다.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도 그렇게 텍스트를 ‘감염’시킨 사례가 있다.</p>
<p><xref ref-type="bibr" rid="B009">유형수의 단편 소설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2016)</xref><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에는 고시촌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노씨’와 ‘나’가 등장한다. 사실 이 소설에서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소설의 후반부에 “마름, 이방, 집사”에서부터 “수없는 업종에서 존재감 없이 활약 중인 ‘아줌마’들”처럼 소외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직업군의 사람들을 나열한 다음, 그들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는 영화 &#x003C;<xref ref-type="bibr" rid="B002">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ref>&#x003E;에서 제로 무스타파의 마지막 대사를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언뜻 영화와 소설은 제목 외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십자 열쇠 협회’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결국 호텔 벨보이와 컨시어지와 같은 존재들, 난민들, 빵집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 그리고 고시촌의 힘겨운 인생들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p>
<p>한 권의 책을 가죽끈이 떨어질 때까지 반복하며 읽으며 곱씹는 시대가 아니라, 짤막한 유튜브 영상들처럼 스쳐지나가 듯 소비되고 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판타지’의 요소들은 특히나 얼핏 보게 된 ‘환영’이나 상업적인 미끼에 불과하다는 투의 취급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곱씹어 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현실에 대한 직시를 발견하게 만드는 텍스트가 존재하며, 독자와 관객를 감염시켜 다시 쓰기에 나서게 하는 텍스트가 존재한다. 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 <xref ref-type="bibr" rid="B002">웨스 앤더슨의 &#x003C;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003E;</xref>이 바로 그러한 텍스트일 것이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최기숙, 『환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7쪽</xref> 재인용.</p></fn>
<fn id="fb002"><label>2)</label><p><xref ref-type="bibr" rid="B014">캐서린 흄, 『환상과 미메시스』, 한창엽 역, 푸른나무, 2000, 45-53쪽</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xref ref-type="bibr" rid="B006">나병철, 『환상과 리얼리티』, 문예출판사, 2010, 23쪽</xref>.</p></fn>
<fn id="fb004"><label>4)</label><p><xref ref-type="bibr" rid="B006">나병철, 『환상과 리얼리티』, 문예출판사, 2010, 30-36쪽</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xref ref-type="bibr" rid="B011">최기숙, 『환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18쪽</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ref ref-type="bibr" rid="B013">츠베탕 토도로프, 『덧없는 행복-루소론; 환상문학 서설』, 한국문화사, 1996, 123-141쪽</xref>.</p></fn>
<fn id="fb007"><label>7)</label><p><xref ref-type="bibr" rid="B001">김영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1999</xref>. 이 소설의 인용문에는 이 책의 쪽수만 표기하기로 한다.</p></fn>
<fn id="fb008"><label>8)</label><p>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에 대한 기존 연구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8">오윤호, ｢그림자 사나이 틈에 대한 악몽: 김영하론｣, 『작가세계』 제70호, 세계사, 2006, 98-116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04">곽상순, ｢탈주체적 등장인물 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15, 한국근대문학회, 2007, 73-99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05">김재경, ｢김영하 소설에 나타난 환상성: ‘흡혈귀’와 ‘고압선’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44, 한국현대소설학회, 2010, 87-116쪽</xref>; <xref ref-type="bibr" rid="B007">송명희, ｢젠더정치학의 전복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 또는 공포: 김영하의 &#x003C;흡혈귀&#x003E;를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7권 1호,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6, 1-21쪽</xref>.</p></fn>
<fn id="fb009"><label>9)</label><p>이해를 돕기 위해,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관한 연구｣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허버트 쾌인은 로스커먼에서 죽었다. 나는 &#x003C;타임스&#x003E;지 문학부록이 그에게 반 칼럼 크기의 추모 기사밖에 할애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 기사는 부사를 이용해 모든 수식 형용사들의 뜻을 고쳐놓고 있었다. &#x003C;스펙테이터&#x003E;지 별책에 실린 기사는 확실히 보다 길고, 보다 정중해 보인다. 그러나 기사는 쾌인의 첫번째 작품인 『미로의 신』을 아가사 크리스티 부인의 작품들 중 하나와, 다른 작품들은 게르트루드 슈타인의 작품들과 비교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동의할 것도 아닐 뿐더러 고인을 욕되게 할 그런 실수였다.”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작가｣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메나르가 현대판 &#x003C;돈키호테&#x003E;를 쓰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는 여느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은 그의 명석한 기억력을 모독하는 짓이다. 그는 또 다른 &#x003C;돈키호테&#x003E;를 집필하려는 게 아니었다. ……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메나르의 단편 &#x003C;돈키호테&#x003E;는 세르반테스의 &#x003C;돈키호테&#x003E;보다 훨씬 더 오묘하다. 후자는 아주 조악한 방식으로 기사도 소설의 허구에 자신의 나라가 안고 있는 시골의 가련한 현실을 대치시킨다. 메나르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현실로서 레빤또 전쟁과 로뻬시대의 ‘카르멘’의 땅을 선택한다. …… 그는 지방색을 소홀히 하거나 아예 배제해버린다.”; 이상의 인용에서 보듯, 보르헤스는 허구적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인 허버트 퀘인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 실제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를 인용하고, 실제 &#x003C;돈키호테&#x003E;에 대한 비평적 의문들을 차용한다. 보르헤스와 김영하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10">이상윤, ｢김영하의 흡혈귀 내의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적 요소｣, 『중남미연구』 20(1), 2001, 223-235쪽</xref>을 추가적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p></fn>
<fn id="fb010"><label>10)</label><p><uri>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3&#x0026;dirId=307&#x0026;docId=57559508</uri>.</p></fn>
<fn id="fb011"><label>11)</label><p><uri>https://drps.tistory.com/43</uri>.</p></fn>
<fn id="fb012"><label>12)</label><p>서울 마포 소재 모 대학교에서 2015년도에 필자가 강의한 ≪문학과 판타지≫ 수업을 들었던, 2011학번 나○주 학생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p></fn>
<fn id="fb013"><label>13)</label><p>흡혈귀와 유사한 매커니즘을 가진 현대적 판타지 요소는 바로 ‘좀비’일 것이다. 좀비는 주변 인물을 깨무는 행위로써 감염시키고, 점차 좀비는 확산된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x003C;살아있는 시체들의 밤&#x003E;(1968) 이후 1970~80년대 미국 B급 영화들이 좀비를 많이 다루었고, 근래 한국 영화도 &#x003C;부산행&#x003E;, &#x003C;곡성&#x003E;, &#x003C;킹덤&#x003E;(넷플릭스) 등이 이어지며 좀비를 많이 다루고 있다. 좀비는 움직이지만 여전히 시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경계적 인물’이다. 좀비는 낮에는 죽어 있다가 밤이 되면 깨어나 움직이며 감염을 확산시킨다. 좀비에게 어둠은 감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자 매개이다. 소설 &#x003C;흡혈귀&#x003E;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텍스트 읽기’이다.</p></fn>
<fn id="fb014"><label>14)</label><p>이하, 영화의 대사와 자막은 번역본을 기준으로 인용하였다.</p></fn>
<fn id="fb015"><label>15)</label><p>이 영화는 감독인 웨스 앤더슨의 오리지널 각본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엔딩크레딧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음”이라는 자막이 보인다. 역사의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작품을 썼던 유대인 출신의 독일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의 작품 중에 이 영화와 유사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p></fn>
<fn id="fb016"><label>16)</label><p><xref ref-type="bibr" rid="B003">강경래·조승우,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으로 본 &#x003C;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x003E;(2014)의 미학적 특성과 문화 정치적 함의｣, 『씨네포럼』 22, 2015, 93-127쪽</xref>.</p></fn>
<fn id="fb017"><label>17)</label><p>이와 관련해서는 영화 &#x003C;살인의 추억&#x003E;과 &#x003C;지구를 지켜라&#x003E;의 정면 샷을 분석한 <xref ref-type="bibr" rid="B012">최성민, 『다매체시대의 문학이론과 비평』, 박이정, 2017, 135-141쪽</xref>을 참조.</p></fn>
<fn id="fb018"><label>18)</label><p><xref ref-type="bibr" rid="B009">유형수,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실천문학』 122, 2016, 118-129쪽</xref>.</p></fn>
</fn-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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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참고문헌</title>
<ref-list><title>1. 기본자료</title>
<!-- 김영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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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1</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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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영하</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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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999</year>
<source>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source>
<publisher-name>문학과지성사</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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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 앤더슨 감독,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Fox,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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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2</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movie">
<person-group person-group-type="director">
<name><surname>앤더슨</surname><given-names>웨스</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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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감독</comment>
<year>2014</year>
<source>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source>
<publisher-name>Fox</publisher-name>
</element-c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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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ist><title>2. 논문과 단행본</title>
<!-- 강경래·조승우,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으로 본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미학적 특성과 문화 정치적 함의｣, 『씨네포럼』 22, 2015, 93-127쪽.-->
<ref id="B003">
<label>3</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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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강</surname><given-names>경래</given-names></name>
<name><surname>조</surname><given-names>승우</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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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15</year>
<article-title>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으로 본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미학적 특성과 문화 정치적 함의</article-title>
<source>씨네포럼</source>
<volume>22</volume>
<fpage>93</fpage><lpage>127</lpage>
<pub-id pub-id-type="doi">10.19119/cf.2015.12.31.22.93</pu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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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 곽상순, ｢탈주체적 등장인물 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15, 한국근대문학회, 2007, 7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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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4</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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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곽</surname><given-names>상순</given-name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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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2007</year>
<article-title>탈주체적 등장인물 연구</article-title>
<source>한국근대문학연구</source>
<publisher-name>한국근대문학회</publisher-name>
<volume>15</volume>
<fpage>73</fpage><lpage>99</lpage>
<pub-id pub-id-type="doi">10.19050/korlit.2007..15.004</pub-id>
</element-citation>
</ref>
<!-- 김재경, ｢김영하 소설에 나타난 환상성: ‘흡혈귀’와 ‘고압선’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44, 한국현대소설학회, 2010, 87-116쪽.-->
<ref id="B005">
<label>5</label>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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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surname>김</surname><given-names>재경</given-names></name>
</person-group>
<year>2010</year>
<article-title>김영하 소설에 나타난 환상성: ‘흡혈귀’와 ‘고압선’을 중심으로</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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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병철, 『환상과 리얼리티』, 문예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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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문예출판사</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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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희, ｢젠더정치학의 전복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 또는 공포: 김영하의 ｢흡혈귀｣를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7권 1호,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6,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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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젠더정치학의 전복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 또는 공포: 김영하의 ｢흡혈귀｣를 중심으로</article-title>
<source>인문사회과학연구</source>
<publisher-name>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publisher-name>
<volume>제17권</volume><issue>1호</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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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윤호, ｢그림자 사나이 틈에 대한 악몽: 김영하론｣, 『작가세계』 제70호, 세계사, 2006, 98-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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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그림자 사나이 틈에 대한 악몽: 김영하론</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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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제70호</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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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수,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실천문학』 122, 2016, 118-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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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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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윤, ｢김영하의 흡혈귀 내의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적 요소｣, 『중남미연구』 20(1), 2001, 223-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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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김영하의 흡혈귀 내의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적 요소</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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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숙, 『환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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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민, 『다매체시대의 문학이론과 비평』, 박이정,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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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 흄, 『환상과 미메시스』, 한창엽 역, 푸른나무,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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