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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 xml:lang="ko">대중서사연구</journal-title>
		<journal-title>Journal of Popular Narrative</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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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The Association of Popular Narrative</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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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pn_2019_25_04_429</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8856/jpn.2019.25.4.014</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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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Research Article</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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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title>1970년대 한국 영화와 타자들의 풍경</article-title>
			<subtitle>-‘가족’과 ‘죽음’ 모티프를 중심으로</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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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1970s Korean film and landscape of Others</trans-title>
			<trans-subtitle>-with ‘family community’ and ‘death’ mot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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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 id="aff01"><label>*</label>세명대학교 교양대학</aff><role>부교수</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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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 pub-type="p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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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대중서사학회</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19</copyright-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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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문초록</title>
<p>이 글은 1970년대 한국 영화에 재현된 타자들의 존재 방식에 대해 분석했다. 당대의 사회 변화들, 가령 급속한 산업 근대화로 인한 도시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근대화의 열매를 얻기 위해 산업 역군으로서의 주체 구성을 해 나갔지만, 이러한 주체 구성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양산되었던 타자들의 풍경은 그동안 젠더 및 청년 담론 속에서 제한적으로 분석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이 글은 시각을 달리하여 1970년대적 타자들의 풍경을 추출해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p>
<p>타자들의 존재 방식은 다음의 두 가지 구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첫째, 1970년대 영화에서 가족 공동체는 1960년대의 그것과는 달리 해체되고 균열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는 타자들이 그 공동체에 진입할 수 없거나 이탈함으로써 발생한다. 가족 공동체는 더 이상 주체 구성의 안정된 토대 혹은 구심점으로 작용하지 못하는데, 안정감과 소속감을 가질 수 없다는 공동체에 대한 절망적 인식은 공동체 안팎을 배회하는 타자들의 존재 방식을 통해 잘 드러난다. 둘째, ‘죽음’은 1970년대 국가 이데올로기의 폭력과 일상화된 예외 상태 속에서 사회적 삶의 한 양태를 보여 주는 요소이다. 국가가 요청한 정상적 주체성에서 완벽하게 배제되고 추방된 타자들이 영화 안에서 죽는 방식은 일상화된 죽음 혹은 잠재적 죽음의 상태가 1970년대의 삶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통해 추구된 정상적 삶은 타자화된 존재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하지만, 실제 타자들의 존재 방식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부여하는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색해진 1970년대 절망적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다.</p>
<p>결과적으로 1970년대 타자들의 풍경은 1970년대 산업 근대화가 그토록 지향했던 완벽한 중산층 가족 담론을 파괴하고 그것이 오히려 수많은 죽음을 초래하는 타자들을 양산하는 폭력적 현실을 드러낸다. 한국 영화는 정권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재현의 우회로를 따라 1970년대가 가져온 삶의 폭력성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있었던 것이다.</p>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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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Abstract</title>
<p>This paper analyzed the ways in which “others” were reproduced in Korean movies in the 1970s. In the midst of the social changes of the era, such as urbanization due to rapid industrial modernization, many people became laborers for industry in order to obtain the fruits of modernization.But the landscape of others, which was inevitably produced in the process of constructing such subjects, has been limited to analysis that is focused on gender and youth discourse. This article aims to extract the landscape of others in the 1970s by adopting a different perspective.</p>
<p>The way in which the other is present can be divided into the following two categories. First, in 1970s film, the family community, in contrast with 1960s film, has disintegrated and cracked, due to the inability of others to enter or leave the community. The desperate perception that the family community can no longer function as a stable foundation or center of the constitution, and that it cannot have a sense of security and belonging,is revealed through the way the others are wandering in and out of the community. Second, ‘Death’ is an element of social life in the violence of the national ideology of the 1970s, and the everyday exceptional state. The way in which the ‘other’ is completely eliminated from the normal subjectivity requested by the state and is deported in film reflectshow everyday death or potential death is part of life of the 1970s. Normal life pursued through rapid urba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leads to the death of the other beings, but the way of existence of others is the desperate reality of the 1970s, when the boundaries of the state that provide stability and belonging are broken.</p>
<p>As a result, the landscape of others in the 1970s reveals a violent reality that destroys the perfect middle class family discourse that industrial modernization was oriented around in the 1970s, and that produced masses of others who caused numerous deaths. In spite of regime censorship, Korean films were popularly revealing the violence of life brought in by the 1970s, following a detour of representation.</p>
		</trans-abstract>
		<kwd-group kwd-group-type="author">
		<title>주제어</title>
			<kwd>1970년대 한국 영화</kwd>
			<kwd>타자</kwd>
			<kwd>가족 공동체</kwd>
			<kwd>죽음</kwd>
			<kwd>경계</kwd>
			<kwd>안정감</kwd>
			<kwd>소속감</kwd>
			<kwd>도시화</kwd>
			<kwd>산업화</kwd>
		</kwd-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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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eywords</title>
			<kwd>1970’s Korean film</kwd>
			<kwd>the other</kwd>
			<kwd>family community</kwd>
			<kwd>death</kwd>
			<kwd>boundary</kwd>
			<kwd>sense of stability</kwd>
			<kwd>sense of belonging</kwd>
			<kwd>urbanization</kwd>
			<kwd>industrialization</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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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1. 서론</title>
<p>이 글은 1970년대 한국 영화와 타자들의 풍경에 접근하기 위해 1971년 8월 10일 발생했던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주목으로부터 시작해 보고자 한다. 이는 1970년대 ‘타자들의 풍경’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당대 사회 문제로 제기된 도시 빈민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한 성격을 지녔던 것이 바로 ‘광주 대단지 조성 사업’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 그런데 사업의 목표 및 성격과 실제 대단지 조성 사업의 실상은 매우 달랐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개발 정책과는 달리,<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철거민들이 정착했을 무렵 도시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기반 시설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결과적으로 6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갑작스럽게 발생한 후 사라진 광주대단지 사건은 “빈곤에서 온 강제 이주와 고립, 고립이 낳은 빈곤의 악화, 여기서 발전한 불만과 공포”<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에서 비롯된 것이었다.</p>
<p>광주대단지 사건을 통해 잠시 출몰했던 ‘도시 빈민’의 존재는 1960~70년대 축적되어 왔던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이동이 낳은 결과였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지난 10여년 간 서울로 많은 인구가 이동했으며, 이들은 서울 안에서 가난한 도시 빈민 집단을 형성했다. 국가 차원에서 볼 때, 이들은 어느 순간 ‘공포와 무질서를 낳는 난동자’, 즉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p>
<p>근본적으로 ‘광주 대단지 사건’은 1970년대 사회에 유통되던 ‘이주’와 ‘가난’, ‘공포’, ‘난동’ 등의 부정적 수식어로 둘러싸인 ‘타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를 테면, 당대 지배 담론이 요청했던 정상성의 규범 하에 포섭되지 않는 가난하고 위협적인 존재들의 생산과 그 논리적 구조를 ‘광주 대단지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p>
<p>1970년대 국가가 환영하고 요청했던 ‘정상인’ 혹은 ‘정상성’의 모델은 영화 &#x003C;팔도강산&#x003E;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을 법한 주체, 즉 ‘중산층’이자 ‘산업 역군’으로서의 계급적 정체성 및 경제적 조건, 성실·건전한 진취적 정신을 갖춘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들로서<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 당대가 요청했던 ‘정상적 주체’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제공한다. 이 반대항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비정상적 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광주 대단지 사건을 일으킨 존재들 또한 이러한 ‘비정상적 타자’의 목록 안에 포함될 수 있겠다.</p>
<p>그런데 마사 너스바움에 따르면, ‘정상’은 철저히 규범적인 개념이다. 정상인을 자처하는 존재는 ‘정상성’의 규범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환상 속에서 어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낙인 찍고 ‘비정상’의 범주로 그들을 내몬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핵심은 피해자를 비인간화함으로써, 낙인 찍힌 자를 수치스러운 집단의 구성원으로 분류하고, 인간으로서의 개별성을 없애려는 충동에 정상인들이 사로잡히게 된다는 점이다.<xref ref-type="fn" rid="fb009"><sup>9)</sup></xref> 이 논리는 ‘정상적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강박적 노력이 그만큼 ‘비정상적 타자성’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말해 준다. 동시에 누구나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적 불안정성, 즉 어느 순간 자신도 ‘타자들’로 분류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 그에 따른 수치심의 감정들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가 본격화되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이 일상화된 예외 상태 속에서 국가가 요청했던 정상적 주체성의 확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비정상적 타자들이 생산되었는지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개인의 공포와 불안, 수치심 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얼마나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p>
<p>이 경로를 따라 본 고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대에 요청되던 ‘정상적 주체’의 반대편에 놓인 ‘비정상적 타자들’의 편린을 찾아 보는 데 목적을 두기로 한다. 말하자면 당대 한국 영화 속에서 재현된 타자들의 몇몇 존재 방식을 살펴보고 그것이 이른바 ‘정상적 주체’의 재현과 맞물리며 어떤 의미를 드러내는지, 즉 1970년대 영화가 당대의 가혹한 검열을 통과·우회하면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양상을 추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0"><sup>10)</sup></xref></p>
<p>사실, ‘타자들’의 재현 양상과 비판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 주제는 아니다.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 이른바 ‘비정상적 타자들’로 명명될 만한 존재들에 대한 분석은 이미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p>
<p>가장 대표적인 연구 경향은 1970년대 대표적인 영화로 손꼽히는 <xref ref-type="bibr" rid="B002">김호선 감독의 &#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1975)</xref>, <xref ref-type="bibr" rid="B004">이장호 감독의 &#x003C;별들의 고향&#x003E;(1974)</xref> 등에서 재현되는 하위 계급 여성을 분석한 연구이다.<xref ref-type="fn" rid="fb011"><sup>11)</sup></xref> 이들 연구 경향은 공통적으로 호스티스를 비롯한 하위 계급 여성들의 영화적 재현 방식을 탐구함으로써 이들이 사회에서 불온한 존재로 타자화되는 양상을 당대 요청되던 사회적 지배 담론 및 남성 주체성의 확립과 대비하여 분석한다. 하위 계급 여성은 이들의 현실적 존재 방식 및 저항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1970년대가 요구한 정상적 주체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나간 타자의 형상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타자화된 여성이 비단 호스티스 등을 비롯한 하위 계급적 정체성 속에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은 때로 ‘대학생’<xref ref-type="fn" rid="fb012"><sup>12)</sup></xref> 혹은 ‘순수한 소녀’<xref ref-type="fn" rid="fb013"><sup>13)</sup></xref>로 재현되기도 하는데, 이들 또한 신분·계급과는 상관 없이 주로 당대가 요청하던 지배 담론 및 남성 주체성의 확립을 위해 부차적 존재들로 타자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1970년대 한국 영화 연구가 주로 ‘성’이나<xref ref-type="fn" rid="fb014"><sup>14)</sup></xref> ‘젠더’ 문화 정치의 스펙트럼 안에 놓여 있는 상황을 짐작케 한다.</p>
<p>한편으로 1970년대 ‘청년 문화’를 호출하여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 이들의 재현 방식을 탐구하고, 균열된 주체성을 분석하는 연구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15"><sup>15)</sup></xref>당대 활발하게 논의되던 ‘청년 문화’와 그들이 내면화하고 있던 ‘순응’과 ‘저항’의 균열적 정체성을 살펴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배 담론이 요청했던 ‘주체성’과 ‘타자성’의 구체적 양상을 살펴보는 데 참조점을 제공한다. ‘청년’은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일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존재였지만, 당대의 대중 문화 담론 형성 과정에서 저항적 존재로 부각되며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중적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 혹은 ‘청년 문화’는 바로 지배 이데올로기의 ‘강제’와 ‘균열’ 사이에서 복잡하게 형성되는 ‘주체’와 ‘타자’의 생산 논리를 따라가는 중요한 요소 역할을 했다.</p>
<p>요컨대, 위에서 살펴본 1970년대 한국 영화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은 대체적으로 ‘여성’과 ‘청년’을 호출하여 이들이 당대 지배 담론과 맺는 관련성에 주목한다. 그런데 논의가 주로 ‘젠더’와 ‘청년’ 문화의 범주로 초점화되다 보니 당대 타자화된 존재들의 양상을 협소한 틀 안에서만 파악하는 한계를 보여 주는 것도 사실이다.</p>
<p>문제는 과연 두 범주의 대표적 존재들로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의 타자들을 전체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느냐이다. 앞서 언급했던 1971년 8월의 광주 대단지 사건에서 드러난 가난한 도시 빈민들의 시위로 잠시 돌아가 보면, 이러한 사건을 통해 돌출된 타자들의 존재 방식 혹은 양상은 매우 복잡한 층위 속에서 가늠할 수 있는 것들이다.<xref ref-type="fn" rid="fb016"><sup>16)</sup></xref> 마찬가지로, 만약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 타자들의 존재 방식 및 양상을 가늠하려면 영화의 복잡한 재현 방식과 양상을 다각도에서 세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로써 1970년대 한국 영화가 재현해낸 타자들의 의미를 다각도에서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다. 광주 대단지 사건의 복잡한 층위 속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것이 정착에의 욕망을 둘러싼 ‘터전’ 문제 속에서 타자들의 출현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1970년대 거대 도시화와 인구 이동으로 변화해 가는 삶의 풍경과 접속한다. 당대 삶의 풍경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전유하되, 어떤 ‘상실’의 이면을 드러내는 다양한 재현의 양상들에 주목해야 한다. 1970년대 한국 영화는 이러한 안정된 ‘터전’의 문제를 둘러싼 시대의 공기를 흡입하면서 타자들의 풍경이 직조되어 가는 재현의 특정한 양상을 보여 준다고 판단된다.</p>
<p>본 고에서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두 가지 패턴에 주목한다. 첫째, 그것은 ‘가족 공동체 안팎의 배회’라는 반복되는 재현 방식이다. 인물들이 공동체의 안팎을 배회함으로써 안정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반복 재생되는 패턴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가족’의 공동체를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1970년대 요청되던 지배 담론으로서의 ‘중산층 가족 공동체’가 주체 구성의 중요한 매개체로서 작용했다면, 이 중요한 공동체의 안팎을 배회하는 존재들은 당대의 정상적 주체 구성에 실패한 낙인 찍힌 존재들로서의 타자성을 구성하고 매개한다. 이러한 패턴은 1970년대 ‘장소’가 지닌 공간적 의미에서부터 ‘진입’과 ‘이탈’의 서사 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타자들의 존재 방식 등을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데 참조점을 제공한다.</p>
<p>둘째, ‘죽음’의 재현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 ‘죽음’이라는 사건은 1970년대 발전주의적·진보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유토피아적 성공 신화와 가장 극단적인 대척점에 존재한다. 그래서 1970년대 한국 영화에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죽음’과 연루된 존재들을 살펴보는 것은 시대가 요청한 정상적 주체와 가장 멀리 떨어진 타자들의 존재 방식과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p>
<p>본 고는 이 두 가지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영화 속의 패턴에 주목하고자 한다. ‘가족’과 ‘죽음’의 모티프는 1970년대 한국 영화를 둘러싼 시대적 상황, 즉 도시화와 산업화의 진전으로 인한 본거지로부터의 이탈과 귀환의 불가능성 그것으로부터 초래되는 절망의 극단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이전 박정희 시대로부터 점차 증폭되기 시작했던 근대화의 부작용들로 인해 대중들의 삶이 변화된 양상을 영화적으로 잘 재현한다.<xref ref-type="fn" rid="fb017"><sup>17)</sup></xref> 따라서 이 글에서는 1970년대 한국 영화들의 재현 양상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되, 필요한 경우 1960년대 한국 영화 대표 작품과의 비교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1970년대 타자들이 그려내는 영화적 풍경을 역사적으로 밝힐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18"><sup>18)</sup></xref></p>
</sec>
<sec id="sec002">
<title>2. 가족 공동체 안팎을 배회하는 자들</title>
<p>1970년대 한국 영화를 분석하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 방법은 대체적으로 인물의 재현 방식과 특징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들, 가령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1975)</xref>,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1974)</xref>,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겨울여자&#x003E;(1977)</xref>,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바보들의 행진&#x003E;(1974)</xref> 등에 재현된 인물들은 당대의 사회 문화적 변동 양상과 특징을 잘 대변해 주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듯 두드러진 인물들의 재현 방식에 주목하다 보니, 실제로 이들의 삶이 재현되는 배경으로서의 공간, 즉 ‘장소’의 의미는 다소 후경화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1960년대 한국 영화에서 주요한 분석 대상으로 호출되었던<xref ref-type="fn" rid="fb019"><sup>19)</sup></xref> ‘가족’ 공동체는 1970년대 한국 영화 분석에서는 본격적인 분석의 틀로 활용되기보다는 ‘도시화’ 및 ‘산업화’와 관련된 분석 틀 속에서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경향을 보인다. 1970년대 영화 분석에서 ‘도시’로 몰려든 무작정 상경남녀를 분석하면서<xref ref-type="fn" rid="fb020"><sup>20)</sup></xref> ‘고향(농촌)’<xref ref-type="fn" rid="fb021"><sup>21)</sup></xref>을 떠나온 자들의 도시적 삶을 전반적으로 논의하는 경향은 1960~1970년 10년 간 한국이 85.2%의 도시 인구 증가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 지역 인구 증가의 59.8%가 사회 증가에 해당한다는 것을 감안하면,<xref ref-type="fn" rid="fb022"><sup>22)</sup></xref>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p>
<p>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들면서 이 장소는 이른바 ‘집단 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모든 사람과 자원이 서울로 몰리는 국토의 기형적 이용구조가 나타나고, 서울은 공업화와 함께 땅에서 쫓겨난 ‘산업 난민’들로 득시글거리는 곳이 되었다.”<xref ref-type="fn" rid="fb023"><sup>23)</sup></xref>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 속에서 오로지 ‘적대적 경쟁’을 위해 달려야 하는 난민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들에게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대도시’라는 물리적 공간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파편화된 난민들로 존재하는 대중들의 ‘소속감’과 ‘안정감’에 대한 욕망을 재현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대중 문화적 방식이다.</p>
<p>다시 ‘가족’이라는 테마로 돌아오면, 이 ‘가족’ 공동체는 1970년대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대중들의 욕망과 삶의 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비단 1970년대 가족 공동체의 재현 방식 혹은 장소적 의미에 대한 분석에 국한되는 문제만은 아니다. 왜냐 하면 ‘가족’ 공동체는 비단 물리적 거주의 의미나 가족 구성의 과정 자체로만 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24"><sup>24)</sup></xref> 특히, ‘집’에 주목하여 그것을 물리적 거주 혹은 ‘소유’의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면, 대도시에서 ‘집’을 소유하는 자본주의적 문제 해결 차원으로 논의가 귀착될 우려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난민적 정체성을 보유한 1970년대적 개인이 근본적으로 닿고자 하는 지점, 즉 ‘공동체적’ 존재감을 갖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xref ref-type="fn" rid="fb025"><sup>25)</sup></xref> 이것이 실제로 에드워드 렐프가 말한 “진정한 장소감”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진정한 장소감이란 무엇보다도 내부에 있다는 느낌이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장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집이나 고향, 혹은 지역이나 국가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것인데,<xref ref-type="fn" rid="fb026"><sup>26)</sup></xref> 실상 이는 ‘적대적 경쟁 체제’ 속에 존재하는 개인이 파편화된 난민적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동체적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라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가족’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러한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을 전제하되, 그것이 지닌 의미의 차원을 좀더 확장시킨 것으로 기능한다.</p>
<p>따라서 ‘가족’은 그것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상호작용과 움직임 속에서 과연 무엇(누구)을 ‘주체-타자’로 구성하고 있느냐를 포착할 수 있는 근거로서 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변화, 이를 테면 박정희 정권의 산업 근대화와 변화된 삶 등을 복합적으로 파악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xref ref-type="fn" rid="fb027"><sup>27)</sup></xref></p>
<p>‘가족’ 공동체를 활용한 국가 이데올로기의 주입과 선전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여전했지만, 적어도 한국 영화에 재현된 ‘가족’ 공동체의 재현 방식은 이전과 그 양상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한국 영화에서 재현되는 가족의 양상 또한 균질한 형태의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물질적·정신적 풍요와 안정의 토대로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용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강대진 감독의 &#x003C;박서방&#x003E;(1960), &#x003C;마부&#x003E;(1961), 신상옥 감독의 &#x003C;로맨스 빠빠&#x003E;(1960), 이형표 감독의 &#x003C;서울의 지붕 밑&#x003E;(1961) 등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초반 가족 영화가 미래 지향적이고 건전한 서민 가족 이데올로기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산업 근대화의 가치에 순응적인 주체를 표현하기도 했던 반면, 같은 시기 유현목 감독의 &#x003C;오발탄&#x003E;(1961)이나 김기영 감독의 &#x003C;하녀&#x003E;(1960)는 오히려 당대 가족 공동체 내부의 균열과 모순을 다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공동체’는 1960년대 중후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중심으로 한 산업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 박정희 정권이 일관되게 주창하던 산업 일꾼을 생산해내는 물질적·정신적 토대로서 대중들의 경제적인 풍요와 정신적 안정에의 욕망을 실어 나르는 강력한 장소였다. 물론, 이는 대중의 현실에서는 쉽게 다다를 수 없는 중산층 판타지로 작용하면서<xref ref-type="fn" rid="fb028"><sup>28)</sup></xref> 1960년대 중후반 대중 매체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가령, 김기덕 감독의 &#x003C;맨발의 청춘&#x003E;(1964)에서 재현되는 중산층의 화려한 삶과 그것을 욕망하는 빈털터리 두수의 행위는 박정희 정권의 산업 근대화가 초래한 빈부 격차와 그로 인한 현실적 삶의 부조리를 세대적 관점에서 엿보게끔 한다. 정소영 감독의 &#x003C;미워도 다시 한 번&#x003E;(1968)처럼 중산층 가족 내부에 은폐된 문제를 ‘사생아’의 출생을 통해 비판하는 영화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196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가족 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를 둘러싼 ‘주체-타자’의 관계항 속에서 정권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적 봉합’과 그것의 ‘균열’을 살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산업 근대화에 기반한 ‘성장’과 ‘풍요’, ‘안정’ 등의 키워드를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는 요소였던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29"><sup>29)</sup></xref></p>
<p>이러한 1960년대 한국 영화에 재현된 ‘가족 공동체’의 호출은 일부 체제 순응적인 국책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타자들’의 출현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이 시대 한국 영화에는 가족 구성원의 귀환 불가능성에 기반한 ‘공동체’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엿보인다.</p>
<p>포괄적으로 보았을 때,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 재현되는 가족은 두 양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1975)</xref>나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1974)</xref> 등에 재현되는 ‘가족’은 ‘영자’와 ‘경아’ 등이 떠나온 고향에 존재하는 아련한 기억 속의 신화적 공동체인 반면에,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겨울여자&#x003E;(1977)</xref>나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가시를 삼킨 장미&#x003E;(1979)</xref>,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어제 내린 비&#x003E;(1974)</xref> 등에서 재현되는 ‘가족’은 도시의 중산층 핵가족의 현실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p>
<p>그런데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가족은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서 혹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의미화되면서, 이전 시대 당대 사회가 요구하던 주체 구성의 중요한 토대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이는 가족이 비유하는 ‘국가’ 혹은 ‘집’, ‘고향’으로서의 의미로 확장되어 더 이상 어떤 곳에서도 자신의 소속과 안정의 기반을 찾을 수 없다는 불안정과 두려움의 정서를 환기하는 알레고리로 기능한다.</p>
<p>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이면에 드리운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1975)</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1974)</xref>에서 영자와 경아는 끝내 그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곳을 발견하지 못한다. 경아는 여러 남자들과의 새로운 삶, 즉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고자 노력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엄마에게 보낸 편지마저 반송됐다고 되뇌이는 경아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녀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문호’와 함께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진심으로 안정감과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어떤 의미 있는 곳, 혹은 어떤 존재를 만나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그녀의 말로 전달되는 ‘고향’과 ‘어머니’는 도시에서 실패한 그녀가 최후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으나 그녀는 그 곳으로부터 반송된 편지가 비유하듯 귀환의 불가능성에 직면한 채 죽음에 이른다. 이러한 진입의 실패는 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결과적으로 창녀의 삶을 청산한 채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 성공은 진정한 고향으로의 귀환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와 남편의 신체적 결핍에서 비유적으로 드러나듯 도시 밖의 가난한 빈민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과 공포를 밑바탕에 드리우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30"><sup>30)</sup></xref></p>
<p>이러한 귀환의 불가능성은 도시적 삶의 불안정성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도시로 밀려든 1970년대 초중반 무작정 상경남녀들이 부딪혀야 했던 공동체적 삶에 대한 근본적 절망 및 회의와 맞닿아 있다. 이미 많은 관련 연구들에서 언급했듯이, 당대 서울로 밀려든 무작정 상경남녀들은 도시 하층민들을 형성했다. 중동 건설 붐과 강남 개발 붐이 많은 한국인을 들썩거리게 하고, 누군가는 이러한 경제 성장을 혜택을 입고 부유해져 갔지만, 1970년대 초부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던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져서 1977년에 이르면 재야 민주화 인사들이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유신 체제 해체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인권과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절망적 빈곤의 시대에 가장 밑바닥 인생을 재현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상 ‘영자’와 ‘경아’와 같은 존재들이었다.<xref ref-type="fn" rid="fb031"><sup>31)</sup></xref> 이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도, 목표로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곳도 없었던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32"><sup>32)</sup></xref> 한국 영화는 1970년대 유신 체제 하에서 가속화되는 빈곤의 절망에 처한 여성 인물을 통해 귀환의 불가능성에 직면한 채 근본적으로 ‘공동체적 안정감’을 상실해 가는 당대 타자화된 대중의 풍경을 재현한다.</p>
<p>이러한 진입의 실패는 거리의 삶을 대변해 준다. ‘거리’는 어떤 방향성과 목적성을 가진 경로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나서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33"><sup>33)</sup></xref> 그러나 이미 가족을 상실한 존재들에게 ‘거리’는 이정표를 잃어 버린 자들이 막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의미를 상실한 장소를 일컫는다.<xref ref-type="fn" rid="fb034"><sup>34)</sup></xref> 어딘가를 향해 가야 하지만 가야 할 명확한 주소지를 갖지 못한 존재들의 이 빈번한 서성거림은 ‘거리’에 선 1970년대적 타자들의 또다른 풍경이라고 할 만하다. 가야 할 곳을 상실했던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xref> 속 경아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무장소적 공간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도 이러한 패턴의 또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추문에 휩싸여 고향에서 이탈한 직업 여성 현주의 경우는 어떤가. <xref ref-type="bibr" rid="B001">김수용 감독의 영화 &#x003C;야행&#x003E;(1977)</xref>에서 만나게 되는 이 여성은 과거의 남자와도 현재의 동거남과도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채 거리를 방황한다. 그녀의 목적 없는 방황은 영화의 말미에서 남자들이 추근대는 거리에 선 모습으로 가장 잘 재현된다. ‘고향’과 ‘가족’의 의미 있는 공동체 속으로 진입하려 하지만 끝없이 이탈하는 이러한 존재들이 놓여 있는 장소는 결과적으로 1970년대 타자들이 그만큼 정처 없는 유랑의 과정 속에 끊임 없이 내몰리고 있는 현상을 고발하는 것이다.</p>
<p>그렇다면 국가가 요청했던 ‘중산층’ 가족 담론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어떠한가.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어제 내린 비&#x003E;(1974)</xref>에서 재현되는 중산층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는 가족 공동체가 놓여 있는 불안정한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중견 회사를 소유한 아버지를 둔 영호는 화류계 출신 어머니를 둔 숨겨둔 자식으로서, 본처와 아들로 단란하게 구성된 아버지의 본가로 들어간다. 마라톤 선수이자 정열가인 영호와 유약하고 예술적인 본처의 아들 영욱의 상반된 관계 설정은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는 민정의 존재로 인해 파국에 이르는데, 이 파국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영호가 이 중산층 가족의 공동체 속으로 완전하게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영호는 ‘패배주의자’이자 ‘열등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는 존재로서 보란 듯이 영욱의 약혼자인 민정을 소유하는데, 형제로서 혹은 가족으로서의 윤리와 인정을 거부하는 영호의 뒤틀린 사랑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영호는 중산층 가족 공동체로의 진입과 이탈을 반복함으로써 결국 그 가족 공동체의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스스로 발언했던 안정감과 소속감이 은폐하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존재로 의미화되는 것이다.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바보들의 행진&#x003E;(1975)</xref>에서 영철의 반항과 죽음은 강력한 아버지의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드러난다. 부유한 가족 공동체에서 다른 자식들에 비해 기대 만큼 성장하지 못한 영철은 죽음을 통해 가족 공동체를 내파(內波)한다. 따라서 그것은 복구되거나 봉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붕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p>
<p>이와 비슷한 패턴은 1970년대 후반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겨울여자&#x003E;(1977)</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가시를 삼킨 장미&#x003E;(1979)</xref>에서도 발견된다. 영화의 주인공 ‘이화’와 ‘장미’는 각각 번듯한 중산층 가족 공동체에서 자라난 대학생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중산층 가족 공동체를 균열하는 반동적 인물로 변화한다. 이화는 성적 해방과 자유를 선언하고 그것을 실천하되, 결혼을 통한 가족 공동체의 형성을 적극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기독교적 분위기의 엄격한 중산층 가족 담론을 해체한다. 장미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가족 공동체에 대한 반항과 거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방법으로서 성적 자유와 해방을 선언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인정 욕망 속에서 자기 파괴적인 길로 나아간다. 방식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이 두 여성은 육체적·정신적 해방을 시도함으로써 그들이 자라온 가족 공동체의 안정성 이면에 놓인 결핍을 내파하고 자유로운 개별적 삶을 추구한다. 이들은 스스로 타자의 길을 밟음으로써, 그들이 상처받고 내몰린 것의 이유가 그들 자신에게 있기보다는 그들이 놓여 있는 자리,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더 이상 그들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p>
<p>중심을 상실한 이들이 택한 곳은 공동체의 바깥, 역시 ‘거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겨울여자&#x003E;</xref>의 이화가 개발이 진행 중인 한강변을 거침 없이 걸었던 것처럼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가시를 삼킨 장미&#x003E;</xref>의 장미는 도시의 거리를 정처 없이 배회하다 어느 순간 기차길 위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이들이 서 있는 장소는 중심적 의미를 상실한 공동체의 바깥이자 가야 할 이정표를 찾을 수 없는 방황의 거리였다.</p>
<p>이쯤에서 1960년대 영화들의 인물을 떠올려 본다. 가령, ‘가족’과 ‘죽음’의 모티프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1960년대 초반 영화 &#x003C;오발탄&#x003E;(1961)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가난한 해방촌 판자집에서 살아가는 월남민 철호네 가족이다. 월남민이자 빈곤 계층이라는 정치적·경제적 신분은 파편화되고 타자화된 가족 공동체의 삶을 잘 보여 준다. 4.19혁명의 여파 속에서 제작·상영된 이 영화가 박정희 정권의 도래와 함께 상영금지처분을 받은 사실은 당대 이 영화가 보여 준 세계가 정권의 취지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실상 이러한 삶은 이후 산업화의 부작용 속에서 점차 가시화될 예정이었다.</p>
<p>1970년대 들어 도시는 산업 난민들로 발 붙일 데가 없게 되었으며, 유신 체제로의 진입을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더욱 살풍경하게 변했다. 그러한 변화의 어떤 양상은 한국 영화 재현의 장에서 가족 공동체의 안정감과 소속감을 상실한 채 거리를 배회하는 타자들의 풍경을 연출해내었다. ‘중심-주변’의 사라짐은 ‘주체-타자’의 불확정성과도 연관된다. 공동체 안팎을 배회하는 타자들은 끊임 없이 중심의 불완전성을 건드림으로써, 정상성의 환상과 대결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거리를 서성이던 타자들의 풍경이 그려내는 1970년대 현실의 어떤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p>
</sec>
<sec id="sec003">
<title>3. 타자들의 죽음과 남겨진 질문</title>
<p>계급과 신분, 성별과 상관 없이 누구나 그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그 공동체는 때로 ‘국가’의 모습으로, 때로 ‘가족’의 모습으로, 때로 ‘고향’으로 모습으로 발견되거나 구성된다. 그런데 근본적인 차원에서 ‘국가’와 ‘가족’, ‘고향’ 등의 집단적 공동체는 그 안에 편입되어 있다는 주체의 인식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 1970년대 상황을 돌이켜 보면, 과연 주체의 이러한 인식이 가능했던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의 유신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됨으로써 사회는 일상화된 예외 상태 속에 놓이게 되었다. 국가 발전을 위한 명분을 내세워 국민의 기본권은 물론,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원천봉쇄하는 무자비한 폭력적 방법들이 시행됨으로써,<xref ref-type="fn" rid="fb035"><sup>35)</sup></xref>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귀속되어 있는 국가에 포함될 수 없으며, 또한 자신이 이미 항상 포함되어 있는 국가에 귀속될 수 없다’는 인식, ‘귀속’과 ‘포함’, ‘외부’와 ‘내부’, ‘예외’와 ‘규칙’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당하기에 이른다.<xref ref-type="fn" rid="fb036"><sup>36)</sup></xref> 사실상 모두가 잠재적 타자로 규정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국가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획득할 가망성이 없는 존재들에게는 생존의 명분이 주어질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인이 될 수 없을 때 언제든 추방당해 사라질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는 타자화된 죽음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국가의 정상성에 소속되지 못한 타자가 죽음으로 내몰린다는 것은 정치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xref ref-type="fn" rid="fb037"><sup>37)</sup></xref></p>
<p>따라서 ‘죽음’이라는 현상을 당대의 살풍경한 체제 논리의 변화 양상 속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 한국 영화 속 ‘죽음’에 대한 분석은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1975)</xref>와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1974)</xref> 등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었다. 가령, 전자의 경우 영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과는 달리 완벽하게 다른 결말을 보여 주는 영화는 하층 여성의 저항성을 보여 준다고 분석한다.<xref ref-type="fn" rid="fb038"><sup>38)</sup></xref> 후자의 경우 1970년대 여성 영화에 나타난 공사 영역의 접합 양식을 포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xref> 속 경아의 죽음을 논한다. 그에 따르면 이 죽음은 공적 영역에서 추방된 경아를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판타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남성적 시각의 결과물이다.<xref ref-type="fn" rid="fb039"><sup>39)</sup></xref> 이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은 몇 편의 영화에서 그것도 젠더와 계급 차원에 국한되어 부분적으로만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p>
<p>그러나 ‘죽음’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파시즘이 자행한 폭력에 내몰린 타자화된 생명들의 존재적 기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40"><sup>40)</sup></xref> 좀더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분석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p>
<p>사실 1970년대 영화에서 ‘죽음’은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는데, 주로 그것은 비자발적 죽음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죽음은 죽음 뒤에 많은 질문을 남긴 채 그것을 지켜보는 자들에게 죽음을 둘러싼 정황을 돌이켜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하는 특징을 보인다.</p>
<p>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어제 내린 비&#x003E;(1974)</xref>에는 역전된 죽음이라고 일컬을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후 자기 방에서 밧줄로 목을 매는 시늉을 하는 영호를 보면, 그에게는 ‘죽음’이 일상의 한 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항시적 죽음 상태’에 놓여 있는 그의 존재는 그가 놓인 아버지의 부유하고 안정된 기독교 가족 공동체에는 매우 외설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죽음에 이르는 것은 동생 영욱과 민정이다. 민정을 영호에게 빼앗긴 영욱의 분노가 결국 두 사람의 죽음을 초래하는데, 이 두 사람의 죽음은 일상적 죽음 상태에 놓여 있던 영호를 다시 뛰게 한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패자였던 마라토너 선수로서의 자신을 뒤로 한 채 다시 뛴다. 가족 공동체의 경계 안으로 진입하기에는 너무나 외설적인 영호의 질주는 영욱의 죽음 뒤에 다시 시작되지만, 이것이 주체로서의 영호를 구성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영욱과 영호의 역전된 죽음은 정상적 주체성을 획득함으로써 미래의 발전적 남성 주체로 나아갈 만한 길이 봉쇄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질주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코치의 나레이션이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춤거리는 모양새로 뒤를 돌아볼 뿐 아니라, 여전히 죽음의 유예 상태 속에 놓인 타자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고도, 그렇다고 죽었다고도 볼 수 없는 이 애매모호한 생명의 움직임은 1970년대적 타자들이 놓인 자리가 과연 ‘국가’ 혹은 ‘가족’의 ‘안’인지, ‘밖’인지를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보인다.</p>
<p>이러한 ‘죽음’에 얽힌 질문은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6">&#x003C;가시를 삼킨 장미&#x003E;(1979)</xref>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가족 공동체를 둘러싼 ‘억압’과 ‘해방’ 속에서 굴곡된 삶을 살아가던 장미에게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죽음’이다.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이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채 기찻길에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이렇듯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죽음은 장미의 성적 해방과 자유에의 의지를 ‘방종’으로 낙인 찍는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의 처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은 그녀의 자기 해방적 몸부림, 즉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가부장적 가족 공동체로부터의 탈주가 과연 ‘죽음’이라는 처벌적인 형태로 귀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기차가 달려오고 그 기차를 마주한 채 떨어진 인형을 주워 드는 장미를 스틸 컷으로 마무리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예견된 죽음의 순간을 유예함으로써, 이 죽음에 얽힌 그녀의 삶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질문을 관객 스스로 인식하도록 시간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이 유예된 죽음의 시간은 1970년대의 타자화된 한 여성이 과연 그렇게 죽음에 이르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질문한다. 아버지의 계획대로 살아갈 수 없는 한 여성은 말하자면 아버지의 법, 즉 국가의 법적 테두리 안에 포섭되지 못하는 타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둘러 국민들을 자신의 뜻대로 계몽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의 1970년대 현실을 감안하면,<xref ref-type="fn" rid="fb041"><sup>41)</sup></xref> 이러한 타자의 예견된 죽음은 자못 심각해진다. 이 예견된 죽음 바로 직전, 사유하는 시간의 틈을 벌려 놓음으로써 이 죽음에 앞서 관객이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장미’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보여 준 1970년대 현실과 타자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xref ref-type="fn" rid="fb042"><sup>42)</sup></xref></p>
<p>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3">&#x003C;겨울여자&#x003E;</xref> 속 요섭의 갑작스러운 자살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화로부터 거부당한 요섭이 수치심으로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는데, 문제의 핵심은 이화로부터의 거절 자체에 있지 않다. 그의 소외되고 폐쇄된 정체성은 아버지의 권위주의적인 억압과 폭력에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이화로부터의 거부는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억압과 폭력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를 완전히 봉쇄당하는 결정적 사건이었을 뿐이다. 요섭의 죽음은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되거나 배제된 존재들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소멸을 제시함으로써, 1970년대에 요청된 남성 중심의 발전적 이데올로기가 은폐하고 있던 기형적인 타자들의 풍경을 그려낸다. 요섭의 죽음은 이화에게는 자기 육체에 대한 인식 전환의 형태로 변형되는데, 이화의 삶은 결국 요섭의 ‘죽음’이라는 한 사건으로부터 새롭게 시작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삶은 ‘삶-죽음’ 및 ‘주체-타자’의 완벽한 경계를 허무는 해체적인 과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p>
<p>1970년대 한국 영화의 ‘죽음’은 어쩌면 이렇듯 정상적 주체성을 위해 그어지는 경계선들을 흐리게 만들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바로 타자들의 완벽한 배제와 추방을 통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 하다.</p>
<p>이렇게 보면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xref> 속 경아의 죽음도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이런 곳에서 잠들면 안 돼”라고 말하지만 경아는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하얀 눈밭 위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의 마지막 말처럼 죽음은 의지와 상관 없이 도래한다. 따뜻하고 다정한 어떤 사람 혹은 장소를 갖고 싶어하던 경아에게 닥친 죽음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은 1970년대 도시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빈민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중산층 가족 담론이 산업 근대화의 발전 속에서 그 신화적 힘을 발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안팎에서 생존 경쟁에 휩싸여 자신이 놓인 주변의 처참함을 목도해야 했던 수많은 난민들이 존재했던 현실을 감안하면 ‘경아’의 죽음은 이러한 도시 빈민들의 삶에 드리운 ‘임박한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죽음’의 잠재성을 환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국가 혹은 가족 공동체의 경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의 ‘가능/불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하필이면 어두운 소재”를 다룬다면서,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xref> 이후 쏟아져 나오는 아류 영화들을 비판하는 신문 기사의 내용은 본질적 사안의 일면만을 보는 것일 테다.<xref ref-type="fn" rid="fb043"><sup>43)</sup></xref></p>
<p>과연 이러한 ‘죽음’이 남긴 질문들은 1960년대의 그것과 비교해서 어떤가. 1960년대 영화에서도 여러 죽음을 목도할 수 있다. 가령, 영화 &#x003C;하녀&#x003E;(1960)에서는 중산층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이방인 ‘하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 &#x003C;맨발의 청춘&#x003E;(1964)에서 만나는 죽음 또한 자못 심각하다. 두 영화의 인물들은 가난하고 외로운 타자들이자 욕망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욕망은 결국 ‘죽음’을 통해 마무리됨으로써, 각각 그들의 욕망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드러낸다. 1970년대의 영화들에도 물론, 타자들의 다양한 욕망과 그로 인한 죽음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죽음은 ‘사랑’과 같은 낭만적 로맨스로 포장되기보다는 어떤 ‘안정’과 ‘소속’의 ‘장소성’과 연결되는 측면을 보인다.</p>
<p>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된 강력한 국가 체제의 작동과 중산층 가족 담론 그리고 탈향과 도시화 등은 이러한 집단적 장소로의 이동과 그에 따른 소속감·안정감을 암암리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청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장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제는 더욱 절박하고 더욱 절망적인 문제로 인식되었다. ‘안’으로 들어가 정상적 주체를 구성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생사여탈권’의 문제로 치환되었고, 진입 불가능한 존재로 낙인 찍힌 타자들은 죽음의 잠재성 속에 놓인 채 때로 죽음으로써 혹은 죽음에 다가감으로써 1970년대 박정희 체제가 은폐하고 있던 생명 정치의 문제들을 고발하고 있었다.</p>
<p>그런 점에서 보자면,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1975)</xref>가 선택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간과할 수 없다. 조선작의 대중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에서 영자는 창녀로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소설과는 달리 가난하지만 성실한 남자를 만나 창녀의 삶을 청산하고 살게 된다. ‘죽음’을 삭제한 이면에는 당대 여성 하층민들의 정상적 삶에 대한 판타지 충족과<xref ref-type="fn" rid="fb044"><sup>44)</sup></xref> 대중 문화에 대한 정부의 시책 등이 두루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죽음’의 모티프와 관련시켜 보면, 이는 ‘죽음’을 삭제한 자리에 최소한의 ‘삶의 장소’들을 마련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던 1975년을 전후한 시대적 상황을 극복해 보려는 영화적 모색은 아니었을까. 실상 그 최소한의 ‘삶의 거점’이 도시 밖의 허름하고 가난한 판자촌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대리 충족 장소였다 하더라도 말이다.</p>
</sec>
<sec id="sec004" sec-type="conclusions">
<title>4. 결론</title>
<p>이 글에서는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 재현된 타자들의 존재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p>
<p>첫째, ‘가족 공동체 안팎을 배회하는 자들’에서는 그동안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던 ‘가족’에 주목하여, 이 공동체의 안팎을 배회하는 타자들의 재현 양상을 논의하였다. ‘가족’은 일반적으로 ‘국가’ 구성의 비유적 양태로 인식되어 왔던 바, 1970년대의 경우 한국 영화에서 그것은 국가가 요청한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타자들의 존재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영화에서 가족 공동체는 때로 고향에 두고 온 돌아가야 할 신화적 장소로서 혹은 도시의 중산층 핵가족의 현실적 장소로 재현되는데, 인물들은 이 장소로 완벽하게 진입하지 못한다. 때로 인물들은 가족 공동체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을 차단당하거나 때로 가족 공동체에서 스스로 이탈한다. 이들이 이렇듯 가족 공동체로의 귀환 불가능성에 봉착하게 되는 것은 1970년대 국가가 요청한 주체 구성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산업의 역군으로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건전하고 성실하게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정상적 주체는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요청되었지만, 성공을 위해 서울로 물밀 듯이 밀려든 도시 난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도시인들에조차 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불가능한 신화였다. 박정희 정권의 집권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성공과 발전의 가시적 성과를 낳았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특히,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로의 변화와 그로 인한 일상화된 예외 상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산업 난민들의 폭발적 증가 등은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부작용들을 낳았고, 이는 안정성과 소속감에의 욕망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뿌리 뽑힌 자의 내면 의식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모두가 타자가 되는 사회였던 것이다. 가족 공동체의 안팎을 배회하는 타자화된 존재들은 바로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불안, 공포 등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p>
<p>둘째, ‘타자들의 죽음과 남겨진 질문’에서는 1970년대 한국 영화에 재현된 ‘죽음’의 형태들에 주목하여 타자들이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1970년대 국가의 폭력적 실체와 총체적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한다고 분석하였다. 특히, 이 죽음은 일상화된 죽음 혹은 죽음의 잠재성을 적극적으로 호출한다. 삶 자체가 죽음을 항상 포함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는 1970년대 치열해진 생존 경쟁 사회가 국가의 규율과 법 밖으로 내몰고자 했던 완벽하게 배제되고 추방된 존재들의 삶을 반영한다. 이러한 영화적 죽음은 당대가 내포하고 있던 일상화된 죽음을 통해 시대의 절망을 우회적으로 그려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바보들의 행진&#x003E;</xref>에서 보여지듯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철의 자살은 시대가 요구한 주체 구성에 실패한 자유로운 청년 세대의 절망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자살은 ‘국가가 호명한 1970년대적 주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선명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이다. 오히려 비자발적 죽음의 양상들을 따라가 보면, 이 다양한 죽음 뒤에 놓여 있는 숨어 있는 1970년대적 타자들의 잠재적 죽음 상태 혹은 임박한 죽음의 문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가족 공동체의 안팎을 배회하는 타자들의 행로 속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사라져 버린 1970년대의 가장 절망적이고 암울한 현실의 편린들이 놓여 있다.</p>
<p>1970년대 한국 영화에 재현되는 타자들의 존재 방식이 다각도에서 논의되어 오는 가운데, 이 글은 그러한 논의 경향에서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면들에 좀더 관심을 가져 본 데 불과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재현해 왔던 타자들의 특정한 존재 방식을 역사적으로 규명해내는 것은 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거칠게나마 1960년대 한국 영화와의 비교 분석을 시도한 것도 그러한 차원에 속한다. 부족하나마 이 글이 196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영화사에 대한 좀더 다각화된 연구 방법의 개진과 실천에 어느 정도 참조점을 제공하길 바란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id="fb001"><label>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5">김원,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연구｣, 『기억과전망』 18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 연구소, 2008, 222쪽</xref>.</p></fn>
<fn id="fb002"><label>2)</label><p>1971년도 6월 16일자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당시 서울시가 서울시내판잣집의 집중 철거로 금년 말까지 광주대단지 인구를 20만명에 이르게 하고 국민학교 8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1개교 등을 세우는 것을 비롯해 73년 말까지 30개 학교를 세우고, 1백개의 공장을 유치, 4만 5천명의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상수도 시설과 준고속도로 마련 또한 약속함으로써 광주 대단지 철거민 정착지에 대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xref ref-type="bibr" rid="B044">&#x003C;투자 규모 269억원 광주 대단지 사업 73년까지 민자 포함 각종 시설 확장&#x003E;, 『경향신문』, 1971.6.16.</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임미리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재해석하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광주대단지는 서울시 외곽의 철거민 정착지와 달리, 서울시 경계 밖의 장소라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전설과도 같이 낯선 곳으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도시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기반 시설, 즉 학교와 공장, 병원, 집 등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다른 철거민 정착지와 달리 유독 광주대단지 이주민들은 소득과 교육 측면에서 기회를 차단당한 채 빈곤의 심화를 겪어야만 했다.(<xref ref-type="bibr" rid="B032">임미리,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의 재해석｣, 『기억과전망』 26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2012</xref> 참조)</p></fn>
<fn id="fb004"><label>4)</label><p><xref ref-type="bibr" rid="B032">임미리,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의 재해석｣, 『기억과전망』 26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2012, 258쪽</xref>.</p></fn>
<fn id="fb005"><label>5)</label><p>“1960-1970년간의 우리나라의 도시인구 증가율(연평균 증가 8.5%)은 공업국의 가장 급속한 도시화의 시기(주로 19세기)의 매 10년 평균 증가율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최근 10년 간의 평균 증가율과 비교해도 매우 높다.(중략)1970년의 서울의 인구는 5백만인을 돌파했다(5,536,377인). 이 숫자는 남한 전 인구의 17.6%, 전 도시인구의 42.7%에 해당한다.”(<xref ref-type="bibr" rid="B037">홍경희, ｢한국의 도시화-제3부 인구면으로 본 1960-1970년간의 도시화-｣, 『논문집』 17, 경북대학교, 1973, 91-101쪽</xref>)</p></fn>
<fn id="fb006"><label>6)</label><p>&#x003C;광주 단지주민들의 가난한 나날 무법 부른 불모의 황야&#x003E;, 『동아일보』, 1971.8.11.</p></fn>
<fn id="fb007"><label>7)</label><p>김원은 ‘광주 대단지 사건’을 ‘도시 봉기’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도시 위생학의 측면에서 도시하층민·빈민을 교화 혹은 배제시키며, 중산층으로 상징되는 정상인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질적 타자’이자 사회적 무질서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지배적 담론을 정리했다.”(<xref ref-type="bibr" rid="B015">김원,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연구｣, 『기억과전망』 18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 연구소, 2008, 226쪽</xref>)</p></fn>
<fn id="fb008"><label>8)</label><p>이상록은 박정희 체제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탄생 과정을 면밀히 분석한다. 1970년대 가속화되는 경쟁 체제와 사회에 유통된 출세와 성공 신화에 기반하여 중산층 샐러리맨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여성들은 호모 에코모니쿠스가 되는 과정을 밟아 나간다. 이러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탄생은 근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정상성으로 규정한 중산층 담론과 성공 신화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1970년대에 요청된 ‘주체성’을 내용을 짐작하는 데 참조점을 제공한다.(<xref ref-type="bibr" rid="B013">이상록, ｢산업화시기 출세성공 스토리와 발전주의적 주체 만들기-박정희 체제에서 탄생한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중심으로-｣, 『인문학연구』 28,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7</xref> 참조)</p></fn>
<fn id="fb009"><label>9)</label><p><xref ref-type="bibr" rid="B021">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조계원 옮김, 민음사, 2015, 395-403쪽</xref>.</p></fn>
<fn id="fb010"><label>10)</label><p>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3년 2월 개정된 영화법으로 인해 국산 영화의 제작·흥행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이를 테면 “폭력이나 애무신을 덮어 놓고 윤리성을 따져 검열에 걸리는 실정인데 영화에서 이런 것을 빼면 무엇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면서 외화 검열 만큼 완화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는 국산영화 제작자들의 하소연이 신문지상에 언급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영화법 개정은 철저히 국가가 검열을 통해 영화의 제작·상영을 통제하는 형국이었다.(<xref ref-type="bibr" rid="B043">&#x003C;영화법 발효 10개월 문제점 많아 허덕이는 영화가&#x003E;, 『경향신문』, 1973.12.1.</xref>)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 제작자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통해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1970년대 한국 영화의 재현 층위에서 ‘타자들의 풍경’은 ‘검열’이라는 국가의 통제선을 돌파할 수 있는 우회로를 어느 정도 감안하면서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p></fn>
<fn id="fb011"><label>11)</label><p>대표적인 것으로 다음의 논문을 들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19">노지승,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 혹은 이주, 성노동, 저항의 여성 생애사｣, 『여성문학연구』 41권, 한국여성문학학회, 2017</xref>; <xref ref-type="bibr" rid="B017">노지승,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타난 하층민 여성의 쾌락｣, 『한국현대문학연구』 24, 한국현대문학회, 2008</xref>; <xref ref-type="bibr" rid="B031">이충직·이수연, ｢1970년대 한국영화에 나타나는 여성 노동자의 계급적 상상력｣, 『영상예술연구』 21, 영상예술학회, 2012</xref>; <xref ref-type="bibr" rid="B025">손정임, ｢1970년대 한국영화의 ‘무작정 상경’한 여성 표상｣, 『한국근현대사연구』 83집, 한국근현대사학회, 2017</xref>; <xref ref-type="bibr" rid="B012">권은선, ｢유신정권기 생체정치와 젠더화된 주체 만들기-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하이틴 영화를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29, 한국여성문학학회, 2013</xref>; <xref ref-type="bibr" rid="B023">박소영, ｢1970년대 호스티스 수기의 영화화 연구｣, 『한민족어문학』 81권, 한민족어문학회, 2018</xref> 등.</p></fn>
<fn id="fb012"><label>12)</label><p><xref ref-type="bibr" rid="B008">강유정, ｢영화 &#x003C;겨울여자&#x003E;의 여대생과 70년대 한국사회의 감정구조｣, 『대중서사연구』 21, 대중서사학회, 2015</xref>.</p></fn>
<fn id="fb013"><label>13)</label><p><xref ref-type="bibr" rid="B028">오영숙, ｢아빠와 소녀: 70년대 한국영화의 표상 연구｣, 『영화연구』 42호, 한국영화학회, 2009</xref>.</p></fn>
<fn id="fb014"><label>14)</label><p><xref ref-type="bibr" rid="B016">김청강, ｢좌절하는 ‘남자다움’-섹스영화, 임포텐스, 그리고 ‘성’ 치료 담론(1967~1972)｣, 『역사문제연구』 40권, 역사문제연구소, 2018</xref>.</p></fn>
<fn id="fb015"><label>15)</label><p>대표적인 것으로 다음의 논문을 들 수 있다. <xref ref-type="bibr" rid="B025">손영님, ｢1970년대 청년영화, 저항과 ‘공모’의 균열｣, 『대중서사연구』 24, 대중서사학회, 2018</xref>; <xref ref-type="bibr" rid="B029">이민영, ｢“영자의 전성시대”, 1970년대와 ‘청년문화’의 복화술｣, 『우리어문연구』 63집, 우리어문학회, 2019</xref>.</p></fn>
<fn id="fb016"><label>16)</label><p>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이 사건에 가담한 사람들이 ‘철거민’으로 묶일 수 있는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서울의 판자촌에서 광주로 강제 이주해 온 실제 철거민들뿐만 아니라, 철거민들에게 할당된 토지를 매매한 전매업자들, 그리고 철거당한 서울 판자촌에서 세입자로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광주를 노다지의 땅으로 여기고 한 몫 보기 위해 이주한 그 외의 가난한 외부인들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사건에 개입하는 방식과 광주를 인식하고 체험하는 과정은 모두 달랐다. 요컨대, 타자들의 존재 방식은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다양한 개별성 속에서 새롭게 규명되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앞서 언급한 임미리, 김원의 논문을 참조할 것.</p></fn>
<fn id="fb017"><label>17)</label><p>1970년대 영화들에 재현된 타자들의 재현 양상은 여러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 가능하다. 이 글은 그 중에서도 ‘가족 공동체’와 ‘죽음’의 모티프가 재현된 영화들을 선정하여 70년대 타자들의 재현 양상을 부분적으로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다음의 영화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xref ref-type="bibr" rid="B005">이장호, &#x003C;어제 내린 비&#x003E;(1974)</xref>; <xref ref-type="bibr" rid="B004">이장호, &#x003C;별들의 고향&#x003E;(1974)</xref>; <xref ref-type="bibr" rid="B002">김호선, &#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1975)</xref>; <xref ref-type="bibr" rid="B007">하길종, &#x003C;바보들의 행진&#x003E;(1975)</xref>; <xref ref-type="bibr" rid="B003">김호선, &#x003C;겨울 여자&#x003E;(1977)</xref>; <xref ref-type="bibr" rid="B001">김수용, &#x003C;야행&#x003E;(1977)</xref>; <xref ref-type="bibr" rid="B006">정진우, &#x003C;가시를 삼킨 장미&#x003E;(1979)</xref>. 이 영화들에는 ‘가족 공동체’ 안팎을 배회하면서 귀환의 불가능성에 직면한 자들과 그들의 삶에 스며든 절망적 선택, 가령 ‘죽음’의 문제가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p></fn>
<fn id="fb018"><label>18)</label><p>본 고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타자들은 곧 1970년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타자들의 모습들 중에서 어떤 특정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의 존재 방식과 삶의 패턴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삶의 한 형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타자의 재현’ 혹은 ‘타자의 출현’에 대한 분석은 ‘타자들의 풍경’을 보여 주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p></fn>
<fn id="fb019"><label>19)</label><p>‘가족’ 공동체와 관련된 1960년대 영화 분석 논문은 대표적으로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신정원, ｢한국 영화의 가족담론을 통해 본 여성주체｣, 『한국여성철학』 27, 한국여성철학회, 2017; <xref ref-type="bibr" rid="B022">박선영, ｢공간, 관계, 여성으로 다시 읽는 ‘가족드라마’ &#x003C;박서방&#x003E;｣, 『영상예술연구』 27, 영상예술학회, 2015</xref>; <xref ref-type="bibr" rid="B036">한영현, ｢탈제도화된 가족과 대중의 감정 구조｣, 『영화연구』 64, 한국영화학회, 2015</xref>; <xref ref-type="bibr" rid="B018">노지승, ｢영화, 정치와 시대성의 징후, 도시 중간계층의 욕망과 가족｣, 『역사문제연구』 15, 역사문제연구소, 2011</xref> 등.</p></fn>
<fn id="fb020"><label>20)</label><p>가령, 정현경은 영화 <xref ref-type="bibr" rid="B004">&#x003C;별들의 고향&#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2">&#x003C;영자의 전성시대&#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7">&#x003C;바보들의 행진&#x003E;</xref>, <xref ref-type="bibr" rid="B005">&#x003C;어제 내린 비&#x003E;</xref>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1970년대 도시적 정체성과 그 안에서 자본주의 도시화를 체현한 도시인들의 우울한 육체적·정신적 표상을 탐구한다.(<xref ref-type="bibr" rid="B033">정현경, ｢1970년대 혼성적 도시 표상으로서의 도시인의 우울: 별들의 고량, 영자의 전성시대, 바보들의 행진, 어제 내린 비를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41, 한국극예술학회, 2013</xref>) 이외의 관련 논의는 앞의 각주 11번 논문을 참조할 것. ‘도시’와 ‘도시화’에 대한 영화 분석의 경향은 당대 문학 분야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대표적으로 <xref ref-type="bibr" rid="B024">박찬효, ｢최인호의 1960~1970년대 중단편 소설에 나타난 도시 재현 양상과 “사랑”의 윤리｣, 『현대소설연구』 54, 한국현대소설학회, 2013</xref>; <xref ref-type="bibr" rid="B009">권경미, ｢대중소설의 도시적 교양성과 타자의 윤리-조선작의 1970년대 후반 소설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56, 한국현대소설학회, 2014</xref> 참조) 1970년대 한국 소설과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 문화 예술 분야를 분석하는 논문에서 부분적이지만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주제였다. 그만큼 1970년대 대중 문화 예술 분야에서 ‘도시’ 혹은 ‘도시화’는 물질적 토대로서의 당대 도시화가 중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p></fn>
<fn id="fb021"><label>21)</label><p>이와 관련된 논의는 주로 ‘무작정 상경남녀’를 다룬 영화들을 분석하는 논문에서 부분적으로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와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고향(농촌)’은 ‘도시’와의 공간적 대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논리 구조로 배치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향(농촌)’에 대한 분석 또한 영화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당대 소설 및 사회 현상을 다룬 논문들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xref ref-type="bibr" rid="B039">황병주, ｢박정희 체제의 근대적 시공간 인식과 시골/도시 담론｣, 『역사연구』 31, 역사학연구소, 2016</xref>; <xref ref-type="bibr" rid="B010">권경미, ｢신화화된 고향과 현실 공간으로서의 농(어)촌-1970년대 농(어)촌 소설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63, 한국현대소설학회, 2016</xref>; <xref ref-type="bibr" rid="B020">류보선, ｢탈향의 정치경제학과 미완의 귀향들-한국현대소설의 계보학1-｣, 『현대소설연구』 61, 한국현대소설학회, 2016</xref> 등 참조.</p></fn>
<fn id="fb022"><label>22)</label><p><xref ref-type="bibr" rid="B037">홍경희, ｢한국의 도시화—제3부 인구면으로 본 1960-1970년 간의 도시화-｣, 『논문집』 17, 경북대학교, 1973, 90쪽</xref>.</p></fn>
<fn id="fb023"><label>23)</label><p><xref ref-type="bibr" rid="B038">홍성태, ｢폭압적 근대화와 위험사회｣, 이병천 엮음,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 창비, 2012, 331쪽</xref>. 이 글에서 홍성태는 “난민은 모든 것은 잃은 사람이며, 불신은 난민의 생존 본능이다. 종종 ‘최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무자비한 경쟁은 난민의 생존 비결이었다.”고 논의하였다. 말하자면, 1970년대 도시로 몰려든 난민들에게 ‘생존경쟁’과 ‘불신’은 서로에 대한 ‘적대적 경쟁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p></fn>
<fn id="fb024"><label>24)</label><p>정현경은 그의 논문에서 도시로 이주한 인물들이 ‘집’을 획득하지 못함으로써 의미 있는 장소에 거주하지 못한다고 논의한다.(<xref ref-type="bibr" rid="B033">정현경, ｢1970년대 혼성적 도시 표상으로서의 도시인의 우울: 별들의 고량, 영자의 전성시대, 바보들의 행진, 어제 내린 비를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41, 한국극예술학회, 2013</xref> 참조) 그러나 근본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는 장소에 있다는 존재적 안정감은 물리적 공간의 획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공간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도시인들의 ‘안정감’과 ‘소속감’을 물리적 장소에 한정할 때,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떤 물질적인 ‘소유’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어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들이 상실한 ‘소속감’과 ‘안정감’의 정신적 의미를 놓치는 우려는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p></fn>
<fn id="fb025"><label>25)</label><p>여기서 ‘공동체적 존재감’으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1970년대 난민으로서 적대적 생존 경쟁 시장으로 내몰린 개인들이 ‘적대적’ 상호관계로부터 근본적으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친밀하고 안정된 ‘우리’로서의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어떤 정서적 소속감과 안정감을 ‘공동체적 존재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p></fn>
<fn id="fb026"><label>26)</label><p><xref ref-type="bibr" rid="B027">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 상실』, 김덕현·김현주·심승희 옮김, 논형, 2005, 150쪽</xref>.</p></fn>
<fn id="fb027"><label>27)</label><p>주요 논문으로 <xref ref-type="bibr" rid="B022">박선영, ｢공간, 관계, 여성으로 다시 읽는 ‘가족드라마’ &#x003C;박서방&#x003E;｣, 『영상예술연구』 27, 영상예술학회, 2015</xref>; <xref ref-type="bibr" rid="B036">한영현, ｢탈제도화된 가족과 대중의 감정구조｣, 『현대영화연구』 64, 2015</xref>; <xref ref-type="bibr" rid="B018">노지승, ｢영화, 정치와 시대성의 징후, 도시 중간계층의 욕망과 가족｣, 『역사문제연구』 15, 연사문제연구소, 2011</xref> 등 참조.</p></fn>
<fn id="fb028"><label>28)</label><p>이와 관련된 논의는 김예림, ｢1960년대 중후반 개발 내셔널리즘과 중산층 가정 판타지의 문화정치학｣, 『현대문학의 연구』 32, 한국문학연구학회, 2007 참조.</p></fn>
<fn id="fb029"><label>29)</label><p>‘중산층 담론’에 기반하여 산업 근대화의 역군을 통해 성장과 개발의 신화를 판타지적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1967년부터 제작·상영된 국책 영화 &#x003C;팔도강산&#x003E;(1967)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엄청난 흥행은 이후 양종해 감독의 영화 &#x003C;(속) 팔도강산 세계를 간다&#x003E;로 이어졌다. 이후 1971년 강대철 감독의 &#x003C;내일의 팔도강산&#x003E;과 장일호 감독의 &#x003C;우리의 팔도강산(대완결편)&#x003E;(1972)까지 &#x003C;팔도강산&#x003E; 시리즈는 박정희 정권의 산업 근대화 이데올로기를 영화에 재현된 산업 역군 가부장 가족 공동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환한다. 한편으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x003C;아내들의 행진&#x003E;(1974)은 ‘팔도강산 시리즈’와 내용상 차이를 보이지만, 산업 근대화의 개척자로 나선 아내들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산업 역군 중심의 굳건한 가족 공동체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렇듯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에서 ‘가족 공동체’가 굳건하게 유지되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1970년대 ‘가족 공동체’ 자체의 붕괴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재현 양상을 살피는 과정에서 1960년대와 연계되면서도 달라지는 1970년대 한국 영화 속의 타자들의 풍경을 살피는 과정에서 ‘가족 공동체’의 특정한 변화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p></fn>
<fn id="fb030"><label>30)</label><p>그녀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구성된 것이자 ‘불구성’과 ‘빈민성’ 및 ‘주변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1970년대 한국 영화에 재현된 가족 공동체가 지닌 균열적 지점을 복합적으로 서사화하고 있다.</p></fn>
<fn id="fb031"><label>31)</label><p><xref ref-type="bibr" rid="B013">허은, ｢불신의 시대, 일상의 저항에서 희망을 일구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 창비, 2016</xref> 참조.</p></fn>
<fn id="fb032"><label>32)</label><p>1970년대 초반 그토록 동경하던 서울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음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다. “미치도록 가고 싶던 서울의 현실은 시간의 주인으로서 ‘자아’가 소실되고 기계화된 시간의 노예로 전락해 피곤한 잠을 청하는 일상으로 묘사된다. 서울에 오기 전에는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던 고층건물과 대로도 더 이상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서울은 ‘나’를 찾을 수 없는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어느 서울 시민은 말한다.”(<xref ref-type="bibr" rid="B013">이상록, ｢고도성장기 서민의 체감 경제｣,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 창비, 2016, 158쪽</xref>)</p></fn>
<fn id="fb033"><label>33)</label><p>케빈 린치는 도시의 이미지를 분석한 논문에서 도시 안에 존재하는 ‘길(path)’들의 구성을 통해 도시가 구조화된다고 말하면서 이 길에 대한 인식을 통해 방향을 정해 나아가며 도시의 이미지를 구성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말하자면 길은 방향과 목적을 알려 주고 도시의 이미지를 파악하게 해 주는 세분화된 조각들인 셈이다.(<xref ref-type="bibr" rid="B041">Kevin Lynch, <italic>The Image Of The City</italic>,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1960. pp.95-99</xref>)</p></fn>
<fn id="fb034"><label>34)</label><p>에드워드 렐프는 옛길과 달리 20세기의 창조물인 새 길은 장소들을 연결시키지 않으며 주변 경관과도 연결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길, 철도, 공항은 경관과 함께 발전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관을 위압하고 가로질러서 경관을 토막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무장소성의 표현이다.”(<xref ref-type="bibr" rid="B027">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 상실』, 김덕현·김현주·심승희 옮김, 논형, 2005, 198쪽</xref>)</p></fn>
<fn id="fb035"><label>35)</label><p>1970년대 유신 체제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정보 정치’와 ‘총력안보체제’, ‘냉전질서 변화에 대한 대처 방식’과의 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유신 정권은 정보·사찰 기관을 활용하여 대중의 일상 생활에 깊이 개입하고 지배했으며, 국가 안보 제일주의를 외치면서 총화단결에 약화를 초래하는 혐의를 받는 문화는 배격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냉전 체제의 변화로 인해 반공의 생활화가 강화됨으로써 유신 시대 대중은 개인의 자각 여부와 상관 없이 치밀한 감시 체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xref ref-type="bibr" rid="B013">허은, ｢불신의 시대, 일상의 저항에서 희망을 일구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70년대』, 창비, 2016</xref> 참조) 김원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이후 ‘위험스러운 존재’들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고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에서 드러나듯 일상에서 저항이나 반대, 불만 등을 ‘적’으로 간주하는, 봉기나 집단 행동을 하는 개인과 집단은 ‘베트남 공비’처럼 섬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사고하게 만들었다.(<xref ref-type="bibr" rid="B014">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 2011, 412쪽</xref>)</p></fn>
<fn id="fb036"><label>36)</label><p><xref ref-type="bibr" rid="B035">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72쪽</xref>. 위의 내용은 아감벤의 ‘예외’에 대한 다음의 진술을 원용한 것임을 밝힌다. “예외란 자신이 귀속되어 있는 집합에 포함될 수 없으며, 또한 자신이 이미 항상 포함되어 있는 집합에 귀속될 수 없다. 이런 한계양상 속에서는 귀속과 포함,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 예외와 규칙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p></fn>
<fn id="fb037"><label>37)</label><p>이는 조르조 아감벤이 그의 책에서 다룬 근대 주권 국가의 ‘생명 정치’와도 연결되는 내용이다. 그는 ‘호코 사케르’의 존재를 근대 주권 국가의 생명 정치와 긴밀하게 연결시키면서 국가가 그 테두리(경계선) 안에 포함될 자와 배제될 자를 선택할 때 필연적으로 생명에 대한 가치 평가 및 정치화를 시도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그는 “모든 사회는-가장 현대적인 사회일이라도-자신의 ‘신성한 인간들’이 누구인지를 결정한다”면서 “국가의 법질서 하에서의 자연 생명의 정치화와 ‘예외화’의 결정은 이러한 한계를 기초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xref ref-type="bibr" rid="B035">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xref>, 참조) 1970년대 유신 체제 기간 동안 박정희 정권은 발전 국가 논리에 포섭될 생명들을 선택함으로써 그 안에 포함될 수 없는 배제된 타자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고문했었다. 많은 민주 투사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당했고 이는 생명을 담보로 한 국가의 경계 설정 과정이었다. 배제된다는 것, 눈에 거슬린다는 것은 죽음에 맞닿아 있었다. 초법적 권력은 언제든 배제된 자들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였고, 바로 1970년대 박정희 체제는 그러한 파시즘의 얼굴을 한 권력이었기 때문이다.</p></fn>
<fn id="fb038"><label>38)</label><p><xref ref-type="bibr" rid="B018">노지승,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타난 하층민 여성의 쾌락｣, 『한국현대문학연구』 24, 한국현대문학회, 2008, 439쪽</xref>.</p></fn>
<fn id="fb039"><label>39)</label><p><xref ref-type="bibr" rid="B040">황혜진, ｢1970년대 여성영화에 나타난 공사 영역의 접합양식｣, 『영화연구』 26, 한국영화학회, 2005, 435쪽</xref>.</p></fn>
<fn id="fb040"><label>40)</label><p>박정희 정권의 산업 근대화가 은폐한 산업 현장의 부조리는 1970년 11월 13일 발생한 전태일 분신 자살 사건으로 드러났다. 청계천 피복 공장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고발하고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외치며 자살한 전태일 분신 사건은 이후 수없이 죽어간 정권의 희생양들을 예견하는 하나의 죽음이었다. 이후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에서 발생한 죽음 등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파시즘이 자행한 폭력의 부작용들로서 누구나 정권의 희생물로서 죽음에 내몰릴 수 있다는 극단의 절망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시대적 사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p></fn>
<fn id="fb041"><label>41)</label><p>박정희의 권위주의는 한편으로는 전근대화된 국가를 새롭게 개조하고 국민 또한 근대적 주체로서 재탄생시키고자 하는 하이 모더니즘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발전과 진보에 대한 강박적인 믿음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국가 전반을 근대화시키고자 했던 산업 근대화 프로젝트는 박정희 정권 스스로 국민을 개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계몽의 주체이자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제임스 C. 스콧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후기 식민지 근대주의자들은 종종 자신의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는데, 그 이유는 낙후된 상태에 처한 나머지 계몽이 절실한 국민을 개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경제적 낙후를 증오하고, 자랑스러워할 국민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민주주의 정서를 낭비했다.(<xref ref-type="bibr" rid="B034">제임스 C. 스콧, 『국가처럼 보기』, 전상인 옮김, 에코 리브르, 2010, 517쪽</xref>)</p></fn>
<fn id="fb042"><label>42)</label><p>영화에 재현된 죽음은 당대 정부 영화 정책과의 관련성 속에서 좀더 깊이 있게 다루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민족 사관 정립과 민족 문화의 자주성 구현을 내세웠다. 정부의 지침·검열·지원 방향은 근대화와 서구 문화 확산에 따른 퇴폐, 비도덕, 빈곤 등 어두운 현실이 아닌 명랑한 미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중략) 임권택의 &#x003C;상록수&#x003E;(1978)에서 드러나듯이, 원작과 달리 최용신은 근대적 여성상이 아니라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되었고, 이는 당대 지배 담론이 지향하는 한국적 인간형인 가정의 수호자이자 위기의 남성을 구원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강조했다.”(<xref ref-type="bibr" rid="B011">권보드래·김성환·천정환·황병주, 『1970 박정희 모더니즘』, 천년의상상, 2015, 64쪽</xref>) 정부의 영화 시책이 국민총화를 위한 민족 사관 정립과 민족 문화 자주성 구현에 맞춰져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영화에 재현된 여성의 탈주는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재현된 여성이 철저히 수동적인 가정 부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이 ‘죽음’의 순간에서 스틸컷으로 촬영을 정지함으로써, 이 유예된 죽음의 순간 동안 관객으로 하여금 과연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이 자체로 한국 영화는 정부의 영화 시책과 당대의 정권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p></fn>
<fn id="fb043"><label>43)</label><p>“작부, 창녀에 이어 다방레지 요정마담 호스티스까지. 마치 그늘진 인생의 여인들의 퍼레이드라도 벌이려는 기세. 남이 월척을 낚은 자리라고 해서 그 자리를 탐내는 낚시꾼은 없다. 한데 영화기획에서는 낚시꾼의 교훈을 외면하고 있다. 손님이 들지 안 들지는 영화를 개봉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하필이면 그늘진 인생 밑바닥 인생을 테마로 한 어두운 소재만을 택하려 하는 기획 의도는 이해할 수 없다.”(<xref ref-type="bibr" rid="B042">&#x003C;&#x003C;영자의 후배들&#x003E; 홍수-하필이면 어두운 소재를&#x003E;, 『경향신문』, 1975.4.28.</xref>)</p></fn>
<fn id="fb044"><label>44)</label><p><xref ref-type="bibr" rid="B017">노지승,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타난 하층민 여성의 쾌락｣, 『한국현대문학연구』 24, 한국현대문학회, 2008</xref> 참조.</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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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직·이수연, ｢1970년대 한국영화에 나타나는 여성 노동자의 계급적 상상력｣, 『영상예술연구』 21, 영상예술학회, 2012, 45-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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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규모 269억원 광주 대단지 사업 73년까지 민자 포함 각종 시설 확장〉, 『경향신문』, 197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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