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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연구소</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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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tnirvw_2019_09_1_121</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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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title>한국 시의 영역(英譯) 리뷰</article-title>
			<subtitle>- 서정주와 고은의 시 -</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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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A Review of the English Translations of Korean Poetry</tran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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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x00A9; 2019 by ERITS All rights reserved. Published by Ewha Reseach Institute for Translation Studies.</copyright-stat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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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alic>The aim of this critical essay is to review the existing English translations of Korean poems by prominent Korean poets — Seo Jungju and Ko Un, in this essay —and suggest my own. Although the existing English translations have been made by English-speaking scholars, who came to Korea in their youth, and being enamored of Korean literature, try their best with keen interest in and wide knowledge of Korean literature to render Korean poems into English, misunderstanding or insufficient understanding of the poems per se as well as misreading of the Korean words and expressions are found under scrutiny. In this respect, leaving this task of translation entirely up to the English-speaking foreigners is to be reconsidered, and Korean nationals who have the ear and sensibility for poetry should take part in this task with sincerer responsibility and zeal</ital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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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wd><bold>English translation</bold></kwd>
			<kwd><bold>Korean poetry</bold></kwd>
			<kwd><bold>Seo Jungju</bold></kwd>
			<kwd><bold>Ko Un</bold></k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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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서론</title>
<p>이 글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현대 시인들 중 가장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인들인 서정주와 고은 시의 영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서양인들에게 가장 어필할 만한 호소력을 가진, 즉 “모던” 하면서도 “로컬” 한, 가장 대표적인 우리나라 현대 시인들이 그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에 목말라 하는 우리나라 문단에서 예전 그 일순위로 꼽히던 이가 서정주였으며, 근자에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고은이 그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초기 시절 서정주를 정신적 선배로 따랐던 고은이 서정주의 친일 행위와 군사정권 미화 행위를 비판하며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회복할 수 없는 금이 가게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 시인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p>
<p>노벨 문학상이든 어떤 상이든 그 상이 서양에서 주어지는 상이라면 영어로 번역이 된 텍스트가 있어야 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양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타고르의 『기탄잘리』인데, 원래 벵골어로 쓰여진 것을 타고르 자신이 직접 영역해서 출간하였고, 그 영역 시집이 서양에서 예이츠와 같은 대가들에 의해 격찬을 받으면서 노벨 문학상을 동양에서 최초로 타게 되었던 것이다. 동양에서 그 다음 두 번째로, 그리고 일본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로, 그의 『설국』 영역본이 서양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노벨 문학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던 것인데, 타고르 자신이 직접 영역했던 시집과는 달리 『설국』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Seidensticker)라는 미국인이 영역을 했던 것으로, 이 영역본이 서양에서 많이 읽히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설국』이 노벨 문학상을 탈 만한 소설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p>
<p>따라서 서양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기 위해선 훌륭한 영역본이 있어야 함은 필수적이라 하겠는데, 문제는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을 포함하여 서양 독자들이그 문학 작품의 원래의 언어를 잘 모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다시 말해, 그 영역된 텍스트가 서양 독자들이 읽기에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잘 읽히고, 영어 문장도 제법 세련되게 잘 되어 있으면, 그 원래의 언어로 쓰여진 작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이 그저 좋은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워진다는 말이다<xref ref-type="fn" rid="fb001"><sup>1)</sup></xref>. 그 작품의 원래의 나라에서도 처음에는 서양에서 주는 상을 자국 작가가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상을 받았다는 그 자체에 도취되어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영역 텍스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설국』만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원전과는 다른 부분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아예 누락된 부분들이라든가 오역인지 아니면 번역자의 의도적인 자의적 번역인지 모호한 부분들 같은 것이 지적되었던 것이다.</p>
<p>그래도 『설국』만 해도, 일단 번역자가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흔히 하는 속말로 “애교”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몰라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은 꽤나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관한 것으로, 이 소설의 영역이 요즘 상당한 이슈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2016년에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받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 거의 십 년 전에 나왔던 소설집(2007년 창비 출간)이 때늦게 베스트셀러의 제일 위에 올라갔었다. 지금도 베스트셀러 1위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목록 안에 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 년 정도 지난 2017년부터 부쩍 그 소설의 영역이 문제투성이라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xref ref-type="fn" rid="fb002"><sup>2)</sup></xref> 사실 우리나라에도 왔다 간, 『채식주의자』의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는 자신이 한국어를 잘 모르며 번역하는 데 있어 상당 부분 한영 및 영한사전에 의존했었다라고 솔직히 토로한바 있다. 그러다 보니 오역이 상당히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p>
<p>번역하면 우리는 흔히 외국의 작품을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는 것밖에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따라서 우리나라 작품을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에는 잘 주목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외국의 작품들이 우리나라말로 잘 번역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 성찰의 글들이 꽤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xref ref-type="fn" rid="fb003"><sup>3)</sup></xref>, 반면 우리나라 작품을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별로 되고 있고 있지 않은 편이며, 최근 『채식주의자』의 영역에 대한 논의는 워낙 『채식주의자』가 큰 상을 받아 국내외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쪽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시 분야는 더욱 그런 논의가 빈약한 편이라 볼 수 있고, 따라서 필자는 앞으로 이 분야에 집중하여 꾸준히 글을 써 나가고자 한다. 우리나라 시를 영역한 것을 보면, 손으로 꼽을 정도의 소수의 외국인 학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고, 우리나라 학자와 손을 잡아 공동 번역한 것으로 기획하여 나온 경우에도 실상은 허울만 공동 번역이라고 나올 뿐 외국인 학자가 거의 주도적으로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렇게 번역해서 나온 영역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실정이다. 필자의 글에서는 이 몇몇 소수의 외국인 학자 분들의 영역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한국문학을 외국에 알리려는 그 분들의 노고를 결코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또한 어차피 이 분들의 영역을 토대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상), 오로지 우리나라 시 작품들이 좀 더 잘 된 번역으로 이 세상과 조우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는 것을 밝혀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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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2. 서정주</title>
<p>서정주의 보다 근작들을 영역한 데이비드 맥캔(David McCann)의 영역은 추후 다른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서정주의 초기 시들을 영역한 안토니수사(Brother Anthony)의 영역 세 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 花蛇)』(1938)에 실린 시들이다. 우선 「도화도화(桃花桃花)」를 보자. 다음은 그 시 전편이다.</p>
<p>　</p>
<p>　　　푸른 나무 그늘의 네갈림길 우에서</p>
<p>　　　내가 볼그스럼한 얼굴을 하고</p>
<p>　　　앞을 볼 때는 앞을 볼 때는</p>
<p>　</p>
<p>　　　내 나체(裸體)의 예레미아서(書)</p>
<p>　　　비로봉상(毗盧峯上)의 강간사건(强姦事件)들.</p>
<p>　</p>
<p>　　　미친 하늘에서는</p>
<p>　　　미친 오필리아의 노래 소리 들리고</p>
<p>　</p>
<p>　　　원수여, 너를 찾아가는 길의</p>
<p>　　　쬐그만 이 휴식(休息).</p>
<p>　</p>
<p>　　　나의 미열(微熱)을 가리우는 구름이 있어</p>
<p>　　　새파라니 새파라니 흘러가다가</p>
<p>　　　해와 함께 저물어서 네 집에 들르리라. (<xref ref-type="bibr" rid="B006">『서정주』 18</xref>)</p>
<p>　</p>
<p>안토니 수사의 영역은 다음과 같다.</p>
<p>　</p>
<p>　　　　　　　　　　　　Peach Blossom, Peach Blossom</p>
<p>　</p>
<p>　　　I stand at a crossroads, cheeks burning</p>
<p>　　　under a green tree’s cool green shade,</p>
<p>　　　gazing ahead, gazing ahead.</p>
<p>　</p>
<p>　　　Jeremiah on my nakedness,</p>
<p>　　　rapes on Piro Peak.</p>
<p>　</p>
<p>　　　Out of the crazed sky</p>
<p>　　　Ophelia’s crazed songs echoing:</p>
<p>　</p>
<p>　　　sweet foe, a moment of rest</p>
<p>　　　n my pursuit of you.</p>
<p>　</p>
<p>　　　A cloud shades my slight fever</p>
<p>　　　so I’ll flow on, still green, still green,</p>
<p>　　　nd setting with the sun, I’ll come to visit you. (<xref ref-type="bibr" rid="B007">『밤이 깊으면』 35</xref>)</p>
<p>　</p>
<p>서정주의 『화사』는 니체와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서양 정신의 한 부류의 강렬한 투영이다. 거기에 덧붙여, 그의 시에는 젊음의 강한 성적 욕망이 화자의 도취된 듯한 목소리를 타고 흐른다. 서정주의 시들에 대한 안토니 수사의 영역에서의 문제는, 필자의 다른 글들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서정주 초기 시의 황홀감과 도취감, 특히 성적인 욕망을 안토니 수사가 잘 파악하고 영어로 옮기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그의 영역을 읽고 있으면, 화자의 황홀한, 도취된 듯한, 온몸을 근질근질하게 하는, 어지럼증을 느끼게 할 정도의 성적 욕망으로 흥분되어 있는, 열기를 잘 느낄 수 없다. 시의 제목인 “도화(桃花)”란 “복숭아꽃”을 말하는 것으로, 이 시집 제목의 시인 「화사」에 나오는, “사향”과 “박하”과 같은 의미 —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서의 의미 -- 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차이는 사향과 박하가 후각적 매체라면, 복숭아꽃은 후각보다는 시각적 매체라 하겠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화려한 색깔로 사람을 도취시키는 꽃뱀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복숭아꽃 같은 여인” 하면, 무언가 남자를 홀릴 것 같은 성적 매력을 가진 여인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볼그레하고 깨물고 싶은 볼과 몸매를 가진 여인 말이다. 아마도 이 시에서의 “원수”란 화자를 이렇게까지 들뜨게 하는 여인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어지럼증을 느끼게 하고 미열이 난 듯 이마에 땀을 흐르게 하는 여인 말이다. 이 “원수”는 화자가 환각까지 일으키게 만든다. 자기 눈앞에 『예레미아서』를 들고 나체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과 산꼭대기에서 벌어지는 강간의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비로봉이라는 이름은 여러 산의 꼭대기 봉우리를 가리킨다. 가장 유명한 것이 금강산 비로봉이지만, 그밖에도 치악산, 오대산, 소백산의 꼭대기 봉우리 이름이 다 비로봉이다. 이 시에서는 그중 어느 것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첫 번째 연과 두 번째 연은 이어진 것인데, 영역에서 종지부를 찍어 갈라놓은 것은 잘못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잘못도 시를 잘못 읽는 데서 출발한다. 성적 욕망의 느낌과 분위기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안토니 수사의 결점이지만, 거기에 덧붙여, 이처럼 시를 잘못 읽는다는 것, 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 역시 안토니 수사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자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된다.</p>
<p>이 시에서 『예레미아서』나 오필리아가 등장한 것만 보아도 서정주가 서양 문화에 꽤 정통하고 서양 정신의 에스프리를 빨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서정주와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 —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 을 구별시켜 주는 점이다. 『예레미아서』는 구약성경의 한 책으로 예레미아가 그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는 예언자(Weeping Prophet)”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들과 그 벌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데 대해 슬퍼했던 예언자였다. 시스틴 성당 천정에 그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그림 속에도 들어가 있는데, 아마도 서정주가 보았음직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나오는 예레미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유명한 도나텔로의 조각상이었을 것이다. 주름진 로브 하나를 걸치고, 한 손에는 양피지 두루마리(종이 역할을 했던)가 걸쳐져 있는, 무척 상심한 표정의 예레미아 말이다. 이 시의 화자는 이 예레미아의 모습에 나체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하는(즉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네갈림길 우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가 너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문득 죄를 뉘우치라는 예레미아의 메시지가 다가왔을 수 있다. 이 시 전체를 읽어 보면, 열기를 식히고 가라앉히려는 화자의 마음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 바로 이어 산 정상에서의 강간 사건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진정하고 싶은 마음과 색욕에 사로잡힌 상태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p>
<p>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이 미친 행동을 하며 자신과의 사랑을 거부하고 수녀원에나 가라면서 여성혐오적인 더 나아가 인간혐오적인 발언을 하며 자신을 매몰차게 내몰자 정말로 미쳐서 물에 빠져 죽은 인물이다. 화자는 이 오필리아의 노래까지 환청으로 듣는다. 색욕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하는 화자에게 하늘에서 오필리아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이다. 오필리아가 미쳐서 말하고 노래 부르는 대목에는 꽃과 연관되는 대사들이 등장한다.</p>
<p>　</p>
<p>　　　오필리아: 여기 로즈메리, 잊지 말란 뜻이죠 — 제발, 내 사랑, 기억해줘요.</p>
<p>　　　　　　　 여기 팬지, 생각해달라는 꽃이에요</p>
<p>　　　레어티즈: 광증 가운데 교훈이구나. 생각하면서 잊지 말라는 거지.</p>
<p>　　　오필리아: 여기 회향꽃은 그대 것, 이 매발톱꽃도. 그대에겐 참회꽃. 나도 좀 갖고.</p>
<p>　　　　　　　 이건 주일은총꽃이라고도 하죠. 참회꽃을 달 땐 색다르게 달아야죠.</p>
<p>　　　　　　　 여긴 데이지 꽃. 그대에겐 제비꽃을 좀 드리고 싶지만, 제 아버지</p>
<p>　　　　　　　 돌아가시자 모두 시들었어요. 잘 가셨다더군요.</p>
<p>　　　　　　　 [노래한다.] 귀여운 로빈새는 내 기쁨 전부.</p>
<p>　　　레어티즈: 수심과 번민과 고통, 지옥마저도</p>
<p>　　　　　　　 우아하고 예쁘장하게 바꾸어놓는구나. (<xref ref-type="bibr" rid="B008">『햄릿』 154-155</xref>)</p>
<p>　</p>
<p>물론 오필리아의 말과 노래에 복숭아꽃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필리아라는 인물은 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녀가 물에 빠져 죽었을 때에도 그녀는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데이지, 자란으로 만든 화관”과 함께 물에 빠져 죽었었다. 이처럼 “수심과 번민과 고통, 지옥마저도” 꽃으로 “우아하고 예쁘장하게 바꾸어놓는,” 죽음마저도 꽃과 함께 했던, 오필리아는 남자와의 육체적 사랑을 이룩하지 못했던, 즉 스스로는 “꽃을 피우지 못했던” 여인이었다. 욕정을 너무 앞세워도 죄가 되지만, 그렇다고 욕정을 풀지 못해도 미칠 수밖에 없는 젊은 인간의 굴레 앞에서 화자는 석양을 바라보며 좀 더 차분한(붉은 색이 아니라 녹색) 마음으로 “원수”인 여인에게 다가가고자 한다.</p>
<p>　</p>
<p>필자는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영역을 내어놓는다.</p>
<p>　</p>
<p>　　　　　　　　　　　　Blossom, Peach Blossom</p>
<p>　</p>
<p>　　　At a crossroad under the shade of a green tree</p>
<p>　　　I see in front of my eyes</p>
<p>　　　In front of my reddish face</p>
<p>　</p>
<p>　　　My naked body with the Book of Jeremiah,</p>
<p>　　　Rapes on top of the Biro Peak.</p>
<p>　</p>
<p>　　　And I hear out of the mad blue sky</p>
<p>　　　Mad Ophelia’s singing:</p>
<p>　</p>
<p>　　　You bitch, this small moment of rest</p>
<p>　　　On my way to you.</p>
<p>　</p>
<p>　　　On a cloud that shades my slight fever</p>
<p>　　　I will flow on and on, green,</p>
<p>　　　And with the setting sun, come to your house.</p>
<p>　</p>
<p>젊음의 도취와 성적 욕망을 다루는 또 다른 시로 「정오(正午)의 언덕에서」라는 시가 있다.</p>
<p>　</p>
<p>　　　보지 마라, 너 눈물어린 눈으로는.......</p>
<p>　　　소란한 홍소(哄笑)의 정오(正午) 천심(天心)에</p>
<p>　　　다붙은 내 입설의 피 묻은 입맞춤과</p>
<p>　　　무한(無限) 욕망(慾望)의 그윽한 이 전율(戰慄)을.......</p>
<p>　</p>
<p>　　　아 — 어찌 참을 것이냐!</p>
<p>　　　슬픈 이는 모두 파촉(巴蜀)으로 갔어도,</p>
<p>　　　윙윙그리는 불벌의 떼를</p>
<p>　　　꿀과 함께 나는 가슴으로 먹었노라.</p>
<p>　</p>
<p>　　　시악시야 나는 아름답구나.</p>
<p>　</p>
<p>　　　내 살결은 수피(樹皮)의 검은빛</p>
<p>　　　황금(黃金) 태양(太陽)을 머리에 달고</p>
<p>　　　몰약(沒藥) 사향(麝香)의 훈훈(薰薰)한 이 꽃자리</p>
<p>　　　내 숫사슴의 춤추며 뛰어가자.</p>
<p>　</p>
<p>　　　웃음 웃는 즘생, 즘생 속으로. (<xref ref-type="bibr" rid="B006">『서정주』 24</xref>)</p>
<p>　</p>
<p>안토니 수사의 영역을 보자.</p>
<p>　</p>
<p>　　　　　　　　　　　　From the noon-day hills</p>
<p>　</p>
<p>　　　Do not behold with your tearful eyes --</p>
<p>　　　his deep sweet trembling of boundless desire</p>
<p>　　　or my lips’ blood-moistened kiss tight</p>
<p>　　　against the noon zenith with its raucous laughter --</p>
<p>　</p>
<p>　　　Ah! How is it to be endured?</p>
<p>　　　The sorrowful all went to Chinese lands,</p>
<p>　　　but I drew honey into my heart</p>
<p>　　　with whining wild bee swarms.</p>
<p>　</p>
<p>　　　Look, lass, look how beautiful I am!</p>
<p>　</p>
<p>　　　My complexion the dark tint of bark,</p>
<p>　　　a golden sunblaze crowning my brow,</p>
<p>　</p>
<p>　　　let’s leap as we dance the dance of my stag</p>
<p>　　　on this flowered mat fragrant with myrrh and musk</p>
<p>　</p>
<p>　　　into the midst of laughing beasts, of beasts. (<xref ref-type="bibr" rid="B007">『밤이 깊으면』 55</xref>)</p>
<p>　</p>
<p>이 시에는 솔로몬의 『아가(Song of Songs)』에서 따온 한 구절이 제사(題詞)로 들어가 있다. “향기로운 산 우에 노루와 작은 사슴같이 있을지어다”가 그것이다. 『아가』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시에 등장한 『예레미아서』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을 이루는 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전통적으로는 솔로몬 왕이라고 되어있지만, 지금은 작자 미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책이 특이한 것은 남녀가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으며, 내용도 남녀가 서로를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대교에서나 기독교에서나 이 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끈끈한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흔히 풀이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풀이한 것이고, 일반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남녀간의 사랑노래, 성적으로 서로를 갈구하는 노래라고 보면서 그런 측면으로 인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서정주도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이런 측면에서 인용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서정주가 인용한 부분은 『아가』의 제일 끝부분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노래한 부분이다. 하지만 서정주 시의 화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녀가 모두 서로를 탐하고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p>
<p>필자는 이 시를 「대낮」의 속편으로 보고자 한다<xref ref-type="fn" rid="fb004"><sup>4)</sup></xref>. 그 시에서 두 남녀는 대낮에 서로를 쫓고 쫓다가 맨 마지막에 “우리 둘이는 왼몸이 달어’로 끝난다. 즉 두 남녀는 환한 대낮에 서로를 탐하는 욕정에 이끌려 서로를 쫓다가 어느 언덕 숲속에서 온몸이 달아올라 결국엔 서로를 부둥켜 앉고 격정적인 섹스를 나눈 것이다. 이 시, 「정오의 언덕에서」는 그렇게 섹스를 나눈 후의 모습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남자와 강렬한 섹스를 나누었다는 기쁨의 눈물인지 아니면 여자로서의 순결성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의 눈물인지 눈물을 머금고 있는 여자의 모습, 피를 머금을 정도로 서로 격하게 맞추었던 입술, 격렬한 섹스를 나눈 후의 강렬한 몸의 떨림, 하늘 가운데 떠 있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향 냄새 나는 풀 위에서의 섹스, 자신의 성기가 다 보이는 적나라한, 수사슴과 같은 자신의 모습, 섹스라는 동물적 본능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 — 이런 것 등이 이 시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 나오는 “파촉(巴蜀)”은 중국의 쓰촨(四川) 지역을 일컫는 말이지만, 서정주의 또 다른 시 「귀촉도(歸蜀途)」에 나오는 대목 --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신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三萬里)” --을 미루어 보자면, “파촉”은 이곳 이승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상인 저승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끝에 “웃음 웃는 즘생”을 안토니 수사의 영역에서는 “laughing beasts”라고만 되어 있으나, 그냥 이렇게만 영역하면 성적인 쾌감에서 나오는 짐승 같은 웃음의 뜻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p>
<p>이런 읽음을 바탕으로 필자는 좀 더 성적인 뉘앙스가 나도록 다음과 같이 번역해 본다.</p>
<p>　</p>
<p>　　　　　　　　　　　　On a Hill in Broad Daylight</p>
<p>　</p>
<p>　　　be like a gazelle or a young stag upon</p>
<p>　　　the mountains of spices — Song of Songs</p>
<p>　</p>
<p>　　　Don’t look with your tearful eyes --</p>
<p>　　　My lip’s blood-stained kiss stuck to the mid-sky</p>
<p>　　　Of high noon that bursts with laughter</p>
<p>　　　Or this secret and sweet trembling of boundless desire --</p>
<p>　</p>
<p>　　　Ah, how unrestrainable!</p>
<p>　　　Every sad one went to the land of no return,</p>
<p>　　　but I have taken in to my heart</p>
<p>　　　A swarm of buzzing fiery bees with honey.</p>
<p>　</p>
<p>　　　My sweet, I am so beautiful.</p>
<p>　</p>
<p>　　　My skin dyed dark with the color of the bark</p>
<p>　　　With the golden sun on my head</p>
<p>　　　On this flowery bed fragrant with myrrh and musk</p>
<p>　　　Let’s hop and dance the dance of my stag.</p>
<p>　</p>
<p>　　　Into the midst of beasts, beasts of bestial laughter.</p>
<p>　</p>
<p>『화사』에 실려 있는 시로 하나 더 살펴보자. 다음은 「웅계(雄鷄) (하)」이다.</p>
<p>　</p>
<p>　　　어찌하야 나는 사랑하는 자의 피가 먹고 싶습니까.</p>
<p>　　　「운모(雲母) 석관(石棺) 속에 막달레나!」</p>
<p>　</p>
<p>　　　닭의 벼슬은 심장(心臟) 우에 피인 꽃이라</p>
<p>　　　구름이 왼통 젖어 흐르나......</p>
<p>　　　막달레나의 장미(薔薇) 꽃다발.</p>
<p>　</p>
<p>　　　오만(傲慢)히 휘둘러본 닭아, 네 눈에</p>
<p>　　　창생(蒼生) 초년(初年)의 임금(林檎)이 소쇄(瀟洒)한가.</p>
<p>　</p>
<p>　　　이미 다다른 이 절정(絶頂)에서</p>
<p>　　　사랑이 어찌 양립(兩立)하느냐.</p>
<p>　</p>
<p>　　　해바라기 줄거리로 십자가(十字架)를 엮어</p>
<p>　　　죽이리로다. 고요히 침묵하는 내 닭을 죽여.......</p>
<p>　</p>
<p>　　　카인의 새빨간 수의(囚衣)를 입고</p>
<p>　　　내 이제 호올로 열 손가락이 오도도 떤다.</p>
<p>　</p>
<p>　　　애계(愛鷄)의 생간(生肝)으로 매워오는 두개골(頭蓋骨)에</p>
<p>　　　맨드라미만한 벼슬이 하나 그윽히 솟아 올라 (<xref ref-type="bibr" rid="B006">『서정주』 26-27</xref>)</p>
<p>　</p>
<p>이 시에 대한 안토니 수사의 영역은 다음과 같다.</p>
<p>　</p>
<p>　　　　　　　　　　　　My rooster II</p>
<p>　　　How is it that I long to drink the blood of one I love?</p>
<p>　　　‘Magdalene in a rock-crystal shrine!’</p>
<p>　</p>
<p>　　　The rooster’s comb is a flower blooming above its heart;</p>
<p>　　　a cloud floats utterly drenched</p>
<p>　　　yet zeems Magdalene’s bouquet of roses.</p>
<p>　</p>
<p>　　　Wretched fowl, haughtily gazing around! Is the apple</p>
<p>　　　of Creation’s first age clean and clear in your eye?</p>
<p>　</p>
<p>　　　Having already reached this peak,</p>
<p>　　　how can love be compatible?</p>
<p>　</p>
<p>　　　I’ll slay you on a cross of sunflower stalks.</p>
<p>　　　The murder of my mute silent fowl --</p>
<p>　</p>
<p>　　　Dressed in Cain’s crimson garb,</p>
<p>　　　I feel how my fingers tremble and shake.</p>
<p>　</p>
<p>　　　My scalp tingles at the taste of my fowl’s fresh liver;</p>
<p>　　　there, large as a cockscomb, a crest quietly emerges -- (<xref ref-type="bibr" rid="B007">『밤이 깊으면』 61</xref>)</p>
<p>　</p>
<p>웅계란 수탉을 말하며, 이 제목의 시는 상·하로 나누어져서 「웅계(상)」, 「웅계(하)」가 있다. 아마도 수탉의 빨간 벼슬을 바라보며 이렇게 강렬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젊은 시절의 서정주밖에 없을 것이다. 붉은 피와 장미, 십자가와 죽음, 카인, 생간, 맨드라미와 벼슬 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은 보들레르와 같은 치열하면서도 데카당한 서양 정신의 에스프리를 빨아들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병합이다.</p>
<p>이 시는 필자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초기 시들, 특히 남녀 간의 성적 욕망이 전면으로 나서고 있는 시들과는 다른 양상을 띠는 시이다. 대신 「자화상」이나 「문둥이」의 계열에 속하는 시로, 소위 “저주받은 시인”이라는 테마를 담고 있는 시라 할 수 있다<xref ref-type="fn" rid="fb005"><sup>5)</sup></xref>. “사랑하는 자의 피가 먹고” 싶은 화자는 「문둥이」에서 “애를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우는 화자와 동일하고, 닭의 벼슬을 “심장 우에 피인 꽃”이라고 하는 화자, 그래서 자신의 “두개골에 맨드라미만한 벼슬이 그윽히 솟아” 올랐다고 말하는 화자와 「자화상」에서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다라고 말하는 화자, 그래서 자신을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어리며” 온다라고 묘사하는 화자가 역시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자신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카인의 새빨간 수의를” 입고 있다라고 말하는 화자와 자신의 눈에서 죄인이 바라보인다는 「자화상」의 화자는 동일한 것이다.</p>
<p>앞서 살펴보았던 시들에서 『예레미아서』나 『아가』와 같은 구약성경의 책들이 인용된바 있지만, 이 시에서도 막달레나나 카인과 같은 성경 속 인물들뿐 아니라 원죄와 십자가와 관련된 대목들이 나타난다. 막달레나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밀접한 연관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은 『루가복음』으로, 그 8장 2절에 보면, 예수를 따랐던 여인들 중 한 명으로 나오는데, 예수가 그녀에게서 일곱 악령을 몰아내어 준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4대 복음서에서 모두 그녀가 죽었던 예수가 부활한 것을 처음 알았거나 직접 목도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피를 철철 흘리며 죽었던 것을 목격했던 여인, 그리고는 찾아갔던 무덤이 텅 비었던 것을 발견했던 여인, 그리고 자기 눈앞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것을 보았던 여인인 것이다. 그녀는 예수를 따르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모든 놀라운 일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의 화자 — 악령이 깃들어 있었던 -- 는 사랑하는 이를 죽여서 그 피를 마셔서라도 놀라운 것을 체험하고 목격할 수 있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로 사랑하는 이를 죽여 그 피를 마신 화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초극한 초인 — 니체의 초인 — 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렇게 오만하게 된 화자의 눈에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태초의 명령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선과 악을 다 뛰어넘은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p>
<p>이러한 읽음을 바탕으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번역을 내어놓는다. 아마도 안토니 수사가 수탉이라는 제목을 “rooster”라고 번역한 까닭은, “cock”보다 뭔가 조금 더 평범하지 않은 단어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cock”라고 하면 흔히 남성의 성기를 연상하는 요즘의 영미 독자들을 생각해서 그런 연상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필자는 “cock”라는 보다 일반적인 단어를 택했는데, 이 단어가 오만하고 거만한 뜻을 보다 함축하고 있다고 보았고(“cocky”나 “cock of the walk” 같은 표현에서 나타나듯), 또한 남성의 성기를 연상하는 것이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 시의 해석에 방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 “매워오는”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로 “tingle”이라는 어휘를 썼는데, 우리나라 말로 “얼얼하다(또는 얼얼해지다)”는 영어로 “tingle (또는 smart)”과 “burn”이 다 맞지만, “tingle”은 상처와 같이 뭔가 아파서 욱신거리고 얼얼한 것이고, “burn”은 어떤 맛(물론 매운 맛일 가능성이 크겠지만)에 의해 얼얼한 것이므로 “burn”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또 그냥 “cockscomb” 하면 수탉의 볏과 맨드라미를 다 뜻할 수 있기 때문에 맨드라미라는 뜻을 확실히 더 살리기 위해 “common cockscomb”라고 옮겨 놓았다.</p>
<p>　</p>
<p>　　　　　　　　　　　　The Cock (2)</p>
<p>　</p>
<p>　　　How is it that I am thirsty of the blood of the one I love?</p>
<p>　　　"Magdalene in a sarcophagus made of mica!"</p>
<p>　</p>
<p>　　　The comb of the cock is a flower blooming out of its heart</p>
<p>　　　A cloud flows, utterly wet.....</p>
<p>　　　Magdalene’s bouquet of roses.</p>
<p>　</p>
<p>　　　You cock, haughtily looking around, does the crab apple tree</p>
<p>　　　In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look clean to your eyes?</p>
<p>　</p>
<p>　　　Having already reached this peak,</p>
<p>　　　How can love be compatible?</p>
<p>　</p>
<p>　　　I’ll weave a cross of sunflower stalks</p>
<p>　　　And kill. Kill my silent cock and.....</p>
<p>　</p>
<p>　　　Wearing Cain’s scarlet stripes,</p>
<p>　　　I now alone feel my ten fingers tremble.</p>
<p>　</p>
<p>　　　On my cranium gradually burning from the fresh liver of my beloved cock</p>
<p>　　　Emerges a comb, secretly, just like a common cockscomb.</p>
<p>　</p>
</sec>
<sec id="sec003">
<title>3. 고은</title>
<p>이제 고은의 시로 넘어가보자. 「저녁 숲길에서」는 그의 세 번째 시집인 『신, 언어 최후의 마을』(1967)에 실린 시이다<xref ref-type="fn" rid="fb006"><sup>6)</sup></xref>. 이 시는 약간 긴데, 다음은 그 전문이다.</p>
<p>　</p>
<table-wrap>
	<table width="100%">
	<tbody>
		<tr><td>
<p>　　　어느 날보다 일찍 미자르별이 뜨고 나는 겨우 일을 마쳤다.</p>
<p>　　　우리 말이 방풍지대(防風地帶) 너머로 달려가서</p>
<p>　　　해산(解散)하는 듯한 메밀밭을 버려놓았기 때문에</p>
<p>　　　나는 말을 끌고 밭주인한테 사과하러 가야 한다.</p>
<p>　　　그러나 한두 번 잘못하는 일은 아름다움 아니랴</p>
<p>　　　내가 가는 것은 뜻밖의 슬픔이라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랴</p>
<p>　</p>
<p>　　　밭주인네 집은 밤나무숲 저쪽의 오지(奧地)에 있다.</p>
<p>　　　하얀 메밀밭은 저문 뒤에 더욱 역력하구나.</p>
<p>　　　나는 뒤에 끄덕끄덕 따라오는 말더러 핀잔을 주지 않고</p>
<p>　　　오직 숲길로 접어들자 중얼거림으로 말했을 뿐이다.</p>
<p>　　　이제 다 왔다. 네가 좀더 겸손해지면</p>
<p>　　　나도 너와 함께 겸손한 식구로 늙어가겠다라고</p>
<p>　</p>
<p>　　　우리가 밤나무숲으로 들어가자 누가 뒤에서 일어서는 듯하다.</p>
<p>　　　자꾸 돌아보아도 말꼬리에 채이는 것은 벌써 참된 어둠이다.</p>
<p>　　　저녁 숲길은 밭주인의 자취로 가득하고</p>
<p>　　　나는 탄주(彈奏)하는 주인에게 할 말을 연거푸 국량해본다.</p>
<p>　　　잘못했습니다, 우리 말은 히잉히잉 운 뒤 몹시 후회하였습니다, 라고</p>
<p>　　　그러나 화내지 않을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p>
<p>　　　아니 화낼 주인도 돌아오지 않았다.</p>
<p>　</p>
<p>　　　다만 밭주인네 막내딸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p>
<p>　　　이상하구나 내 사과하는 손이 그 아이 머리에서 굳어진다.</p>
<p>　　　아무래도 그 애의 혀에 이끼가 끼며 곧 죽으리라.</p>
<p>　　　나는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그 집을 하직(下直)하였다.</p>
<p>　　　그 숲속의 집에서 너무나 멀리까지 야채(野菜) 썩은 냄새가 따라온다.</p>
<p>　　　내 걸음은 훨씬 헛디딤이 잦고 말 얼굴도 더 길쭉하게 슬픔을 뿌리친다.</p>
<p>　　　죽음이 있다니 그 죽음에게 어찌 작은 사과를 하랴.</p>
<p>　</p>
<p>　　　어서 나는 서남방으로 늙은 말과 돌아가야 한다.</p>
<p>　　　서로 오래 일해온 사이의 정(情)으로 말과 나는 한마음이다.</p>
<p>　　　오던 길이 아니었다. 내 눈은 오던 길을 사납게 찾건만</p>
<p>　　　그러나 낯선 길에서 말과 내 마음은 쭈뼛거리며 모지는구나</p>
<p>　　　말도 나와 너나들이 사이 오과부(吳寡婦) 흉내를 내며 따라온다.</p>
<p>　　　어디선가 개울물 소리가 혼자 중얼거리는지</p>
<p>　　　단 한번 죽을 까치의 삶이 별빛처럼 까치소리를 낸다.</p>
<p>　　　슬픔일지라도 아픔일지라도 죄일지라도 개울물 소리 가까이 맡기자</p>
<p>　</p>
<p>　　　이제 다 왔다. 네 잘못 빌 처지가 아니라 그 애는 죽으리라</p>
<p>　　　내가 겨우 들리도록 말하자 말은 엉덩이를 낮춘다.</p>
<p>　　　이 세상 일은 다 죽음과 닿아 있고</p>
<p>　　　우리들이 사과하러 갔다 오는 길에도 나무냄새 흙냄새로 닿아 있다.</p>
<p>　　　저녁 숲속은 어둠이 바다 사리 때로부터 돌아온다.</p>
<p>　　　마지막까지 낙조의 빛을 보내어 정성을 다하여</p>
<p>　　　밭주인네 딸의 죽음이 몇 번인가는 숨바꼭질도 되는구나.</p>
<p>　</p>
<p>　　　어느 날보다 일찍 북돋기 일을 마치고 우리는 하루를 아무린다.</p>
<p>　　　우리가 돌아오는 길은 이제 밭주인네 집에서 한참이나 멀어지고</p>
<p>　　　이상하다. 내일 일들은 큰 강의 많은 지류(支流)가 되어 떠오르지 않는다.</p>
<p>　　　내가 갑자기 어느 영전(靈前)에 선 것같이 말이 느끼는지</p>
<p>　　　오늘밤에는 제 마구간에서 조금이라도 나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p>
<p>　　　마구간은 참 잘 손질이 되었으니 정결한 말 뱃가죽 냄새뿐이다.</p>
<p>　　　어서 가자. 집에서 누가 몸 씻는 소리가 난다.</p>
<p>　　　그 위의 하늘 이웃에서는 들 대로 든 정(情)의 미자르별이 떠 기다리리라.</p></td></tr>
		<tr><td align="right">(<xref ref-type="bibr" rid="B002">『어느 바람』 34-38</xref>)</td></tr>
	</tbody>
	</table>
</table-wrap>
<p>　</p>
<p>안토니 수사와 김영무 공역은 다음과 같다.</p>
<p>　</p>
<table-wrap>
	<table width="100%">
	<tbody>
	<tr><td align="center">On a woodland road at nightfall<p>　</p>
</td></tr>
		<tr><td>
<p>　　　The Evening Star rose earlier than normal; I managed to finish my work.</p>
<p>　　　Our horse had gone smashing through the wind-break</p>
<p>　　　then galloped all over the buckwheat field and messed it up as if he were scattering a crowd</p>
<p>　　　so I had to go, dragging the horse along with me to make apologies to the field’s owner.</p>
<p>　　　But doing a bit of wrong is a beautiful, really.</p>
<p>　　　On my way I may meet unexpected sorrows.</p>
<p>　</p>
<p>　　　The owner’s house lies up in the hinterland beyond the chestnut grove.</p>
<p>　　　The pale field stands out more clearly once the sun has set!</p>
<p>　　　I do not scold the horse as it trots along behind me,</p>
<p>　　　only murmur in a low voice as we follow the woodland road.</p>
<p>　　　Now we’re nearly there. If you become a bit humbler,</p>
<p>　　　I’ll be your companion in humility, I’ll grow old together.</p>
<p>　</p>
<p>　　　At the entrance of the chestnut grove, someone seems to come looming up behind us.</p>
<p>　　　I keep looking back but total darkness is nudging at the horse’s tail.</p>
<p>　　　The nightfall woodland road is full of traces of the field’s owner</p>
<p>　　　so I try to think of all the different things I’ll say in response to the owner’s performance.</p>
<p>　　　We did wrong. Our horse was full of remorse,</p>
<p>　　　he whined for a whole while afterwards.</p>
<p>　　　But the owner who won’t be angry isn’t back yet.</p>
<p>　　　Or rather the owner who who will be angry isn’t back yet.</p>
<p>　</p>
<p>　　　I stroke his youngest daughter’s hair.</p>
<p>　　　How odd! My apologetic gesture hardens against the child’s head.</p>
<p>　　　Moss will grow on this child’s tongue and she’ll die.</p>
<p>　　　Not able to meet the owner I take my leave.</p>
<p>　　　A smell of rotting greens pursues us until we have left the woodland house far behind.</p>
<p>　　　My steps keep slipping, the horse’s long face exudes sorrow.</p>
<p>　　　Death exists, how can we ever think of offering it some kind of polite apologies?</p>
<p>　</p>
<p>　　　Now back quickly towards the south-west I and my aged horse.</p>
<p>　　　My horse and I, united by work long shared together, have a single heart.</p>
<p>　　　This wasn’t the way we came. My eyes seek wildly</p>
<p>　　　for the path we came by, on the unfamiliar road our hearts shudder grimly.</p>
<p>　　　The horse follows tamely behind me,</p>
<p>　　　imitating the closeness of old Widow Oh.</p>
<p>　　　A stream can be heard murmuring somewhere alone.</p>
<p>　　　The life of a magpie that one day must die is uttering magpie calls like starlight.</p>
<p>　　　Sorrow, pain, or sin must stay close to the sound of the stream.</p>
<p>　</p>
<p>　　　We’re nearly there now.</p>
<p>　　　Apologizing for my fault was not a problem but the little girl will die</p>
<p>　　　I murmur almost inaudibly but at once the horse’s rump droops.</p>
<p>　　　This world’s work is all touched close with death.</p>
<p>　　　The road we follow returning from our journey to apologize, is touched by smells of trees and earth.</p>
<p>　　　The darkness inside the evening woodlands is returning from the sea’s high tide.</p>
<p>　　　Look! The owner’s little daughter’s death is out playing hide and seek</p>
<p>　　　taking leave of twilight’s last glimmerings, in all sincerity.</p>
<p>　</p>
<p>　　　With the digging finished earlier than usual, the day is over now.</p>
<p>　　　We have come a long way down a strange road from the house of the field’s owner.</p>
<p>　　　Tomorrow’s jobs now fail to come to mind they are the many tributaries of some great river.</p>
<p>　　　My horse seems to feel that we are standing before a departed soul,</p>
<p>　　　tonight it wants me to stay for while, at least, the two of us together, in its stable.</p>
<p>　　　The stable is well-kept, the only smell comes from the horse’s belly.</p>
<p>　　　Hurry up! From the house comes a splashing sound. Someone is washing.</p></td></tr>
		<tr><td align="right">(<xref ref-type="bibr" rid="B003">『나의 파도 소리』 61-67</xref>)</td></tr>
	</tbody>
	</table>
</table-wrap>
<p>　</p>
<p>이 시집이 나온 1967년이면 고은이 제주에서 떠나 서울로 올라왔을 때였지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원래의 시집 제목이 이야기하듯 제주에서 쓰여진 시들이 분명할 것이다. 두 번째 시집에 실려 있는 「애마 한쓰와 함께」와 마찬가지로 이 시에서도 말이 화자의 죽마고우 또는 분신처럼 등장하는데, 이는 제주도가 말로 유명한 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이 될 수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고은 시인에게 직접 확인해 본 바는 없지만, 이 시와 「애마 한쓰와 함께」는 영미시를 전공한 필자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인 「눈 오는 저녁 숲길에 멈춰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를 떠오르게 한다. 제목도 비슷해서 연상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데, 실제로도 프로스트의 시에서도 화자가 말을 타고 가는 것으로 나오고, 주인이 화자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도 비슷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시들을 비교해 보자. 프로스트의 시에서는 화자가 세상의 모든 시끄러움과 번잡함을 떠나 이 고요한 자연의 세계에 파묻히고 싶은 심정을 드러내다가 일순간 다시 세상살이 속으로,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아니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애마 한쓰와 함께 」는 세속적인 것들에서 확 벗어나 떠나고 싶은 마음의 화자를 그리다가 다시 멈추고 이 땅, 이 현실, 이 세속으로 돌아오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실 결론은 비슷한 셈인데, 프로스트의 시에서는 계속 나아가는 것이 세속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지만, 고은 시에서는 멈춤이 세속으로 돌아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저녁 숲길에서」는 「애마 한쓰와 함께」와 같은 질주하는 에너지는 없다 — 물론 끝에 멈추기는 하지만. 대신 이 시는 보다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하다. 그리고 죽음과 삶, 인간과 동물(말)과 자연(별)이 하나로 뭉뚱그려진다. 다른 글에서 서정주가 초기의 도취와 황홀과 방황을 지나 점점 해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그 대표적인 시로,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동천」을 살펴본바 있는데, 고은은 처음부터 속세를 떠나 승려 생활을 했던 이력이 있다 보니 죽음과 삶, 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다 하나로 묶여지는 것이 자연스런 귀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의 그런 경지를 잘 보여주는 시라 할 만하다.</p>
<p>그런데 사실 필자가 이 시를 고른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즉 이 시의 영역이 다른 시들보다 많이 못하다는 점이다. 시가 길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말 이해가 덜 되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토니 수사의 다른 시들의 영역에 비해 볼 때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점을 우리나라 공역자가 잡아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역할이 제대로 안 되었다고 보는 수밖에 없다. 한번 살펴보자. 우선 제목에서 꼭 프로스트의 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여기서의 저녁은 “nightfall”보다는 “evening”이 나을 것 같고, 첫줄의 미자르별은 북두칠성을 이루는 별들 중의 한 이름인데, 영역에 나오는 “the Evening Star”는 우리가 보통 저녁에 밝게 보이는 금성(Venus)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혀 다른 것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다음 원문에는 “해산하는 듯한 메밀밭”이라 하여 메밀밭의 메밀 줄기들의 모습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 같다 하여 그렇게 표현한 것인데, 영역을 보면 말이 해산을 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밑으로 나오는 “... 아니랴” 하는 우리말 표현도 너무 산문적으로 영역이 되어 있어 감칠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하얀 메밀밭”의 “하얀”을 “white”가 아니라 굳이 “pale”이라 한 이유도 모르겠다. 해가 진 어둠 속에서 하얀 메밀꽃들이 더 하얗게 보이는 것을 묘사한 것인데, “pale”이라는 단어로는 전혀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따라오는 말의 걸음을 “trot”라 하였는데, 이 걸음은 속보에 해당하므로 여기서는 맞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다 왔다”로 시작하는 두 줄은 화자가 말에게 중얼거린 말인데, 영역에서는 그 점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 다음 “탄주(彈奏)하는”이라는 말을 “연주하다, 연기하다(perform)”의 뜻으로 읽었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 읽은 것으로, 여기서 “탄주하다”의 뜻은 “비난하다(accuse)”의 뜻인 것이다. 그 다음 줄도 화자가 궁리 끝에 주인에게 해 보려는 말을 써 놓은 것인데, 이 역시 영역에서는 그 점을 알기가 쉽지 않다. 그 다음 다음 연에 보면 “쭈뼛거리며 모지는구나”를 “떤다(shudder)”의 뜻으로 풀이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어찌할 줄 모르고 행동이 딱딱하게 굳어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과부”는 나와 “너나들이 사이” -- 네가 나고 내가 너인 것일 정도로 가까운 사이 -- 인 오과부라 봐야 할 것이고, “네 잘못”의 “네”는 내 말로 봐야 하는데, 영역에서는 “나의 잘못”으로 잘못 번역되어 있다. “사리”를 “높은 파도(high tide)”의 뜻으로 풀이한 것도 잘못된 것으로 바닷물이 빠지는 때인 “썰물(ebb tide)”을 뜻하는 것이다. “북돋기”도 “파기(digging)”의 뜻으로 영역하였지만, 그 뜻은 그와 정반대로 흙을 파내는 것이 아니라 흙을 돋우는 일(식물 주변에)을 뜻한다. 그리고 “이상하다”라는 말이 “strange road”라고 전혀 엉뚱한 위치에 가있고, 출판사 편집자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자르별을 언급한 마지막 줄도 영역에서 빠져있다. 말을 받는 대명사도 어떤 땐 “he”라고 했다가 어떤 땐 “it”라고 했다가 일관성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너무 산문적으로 영역하였기 때문에 시가 가지는 운율이라든가 감칠맛이라든가 미묘한 뉘앙스 같은 것들은 하나도 제대로 느끼기가 힘들다.</p>
<p>이런 점들을 수정하고 고려해서 필자 나름대로 좀 더 시적인 느낌이 나게끔 다음과 같이 영역해 놓는다.</p>
<p>　</p>
<p>　　　　　　　　　　On a Woodland Road in the Evening</p>
<p>　</p>
<p>　　　The Mizar rose earlier than usual, and I barely managed to finish my work.</p>
<p>　　　As my horse had galloped over the windbreak and messed up</p>
<p>　　　The buckwheat field which looked like being dispersed,</p>
<p>　　　I have to drag it along with me to make an apology to the field’s owner.</p>
<p>　　　But isn’t it a beauty to err once or twice?</p>
<p>　　　Isn’t it that I may encounter unexpected sadness on my way?</p>
<p>　</p>
<p>　　　The owner’s house is in the backwoods on the other side of the chestnut grove.</p>
<p>　　　The white buckwheat field becomes more clearly visible after the sunset.</p>
<p>　　　I don’t give a snub to the horse that walks along behind me with its head drooping low;</p>
<p>　　　When we get on the woodland road, I just murmur in a low voice:</p>
<p>　　　Now we are almost there. If you become a bit humbler,</p>
<p>　　　I’ll grow old to be your humble family.</p>
<p>　</p>
<p>　　　When we enter the chestnut grove, it seems that someone looms up behind us.</p>
<p>　　　I keep looking back, but there is only darkness getting darker that chafes against the horse’s tail.</p>
<p>　　　The woodland road is filled with the field owner’s traces,</p>
<p>　　　And I try to think of all the things I should say to the owner’s reproach:</p>
<p>　　　We’ve done wrong. My horse got whinnying and repented a lot.</p>
<p>　　　But the owner who won’t be angry isn’t back yet.</p>
<p>　　　No, the owner who will be angry isn’t back yet.</p>
<p>　</p>
<p>　　　All I did was stroke his youngest daughter’s head.</p>
<p>　　　It’s odd that my apologetic hand got stiff on her head.</p>
<p>　　　It seems very likely that moss will grow on her tongue and she will die soon.</p>
<p>　　　Not able to meet the owner, I left his house.</p>
<p>　　　The smell of rotten vegetables follows us far beyond the woodland house.</p>
<p>　　　I miss my steps more often, and the horse pulls a longer face and shakes off sadness.</p>
<p>　　　Now that there is a death, how can we make a small apology to the death?</p>
<p>　</p>
<p>　　　Before late, I have to get back south-west with my old horse.</p>
<p>　　　Having worked together for so long, my horse and I have one heart.</p>
<p>　　　We have hit the wrong road. My eyes roam about restlessly, but my horse</p>
<p>　　　And my mind are perplexed and turned stiff on the unfamiliar road.</p>
<p>　　　My horse follows me, mimicking the widow Oh, who’s on intimate terms with me.</p>
<p>　</p>
<p>　　　A brook can be heard murmuring somewhere alone;</p>
<p>　　　The one-time life of a magpie is chirping like a ray of starlight.</p>
<p>　　　Let us leave sorrow, pain or sin, whatever it is, close by the sound of the brook.</p>
<p>　</p>
<p>　　　Now we’re almost there. We’re not in a position to apologize for your fault, for she’ll die soon:</p>
<p>　　　So barely murmur I when my horse lowers its rump.</p>
<p>　　　The way of the world at last touches with death, and our way back from making apologies also touches with the smell of trees and earth.</p>
<p>　　　Darkness in the evening woods comes back with the ebb of the sea.</p>
<p>　　　As the sunset glimmers with the utmost sincerity to its last,</p>
<p>　　　The owner’s daughter’s death play hide-and-seek a couple of times.</p>
<p>　</p>
<p>　　　We call it a night, finishing the work of raising the ground earlier than usual.</p>
<p>　　　We’ve come a long way from the house of the owner of the field;</p>
<p>　　　How strange it is! Tomorrow’s affairs turn into many tributaries of a big river and don’t come up in my mind.</p>
<p>　　　My horse seems to feel that I suddenly stand before some departed spirit,</p>
<p>　　　And it wants me to stay tonight for a while, at least, together in its stable.</p>
<p>　　　The stable being well-kept, the only smell comes from the clean belly of the horse.</p>
<p>　　　Hurry up. Somebody must be washing in the house.</p>
<p>　　　In the celestial neighborhood above, the Mizar, so closely attached, will rise and wait.</p>
<p>　</p>
<p>『만인보』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총 30권으로 나온 연작시집이다.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인물들도 나오지만, 이름 없는 일반 서민들이 주인공이 돼서 나오는 시들이 많고, 이는 고은이 가지게 되었던, 1970년대 이후 현실세계에 발을 푹 담근 이후 서민, 민중 중심의 사상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인보』가 고은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면서 그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게 이름 없는 서민 또는 민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들 중 하나로 「딸그마니네」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를 선택한 이유는 이 시의 영역이 안토니 수사 것만이 아니라 데이비드 맥켄이 편집한 시집에 실린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영역을 비교하면서 잘 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들을 살펴보고, 필자 나름의 영역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시 전문이다.</p>
<p>　</p>
<p>　　　　　　　　　　　　갈뫼 딸그마니네집</p>
	<p>　</p>
<p>　　　딸 셋 낳고</p>
<p>　　　덕순이</p>
<p>　　　복순이</p>
<p>　　　길순이 셋 낳고</p>
<p>　　　이번에도 숯덩이만 딸린 딸이라</p>
<p>　　　이놈 이름은 딸그마니네가 되었구나</p>
<p>　　　딸그마니 아버지 홧술 먹고 와서</p>
<p>　　　딸만 낳는 년 내쫓아야 한다고</p>
<p>　　　산후 조리도 못한 마누라 머리 끄덩이 휘어잡고 나가다가</p>
<p>　　　삭은 울바자 다 쓰러뜨리고 나서야</p>
<p>　　　엉엉엉 우는구나 장관이구나</p>
<p>　　　그러나 딸그마니네 집 고추장맛 하나</p>
<p>　　　어찌 그리 기막히게 단지</p>
<p>　　　남원 순창에서도 고추장 담는 법 배우러 온다지</p>
<p>　　　그 집 알뜰살뜰 장독대</p>
<p>　　　고추장독 뚜껑에</p>
<p>　　　늦가을 하늘 채우던 고추잠자리</p>
<p>　　　그 중의 두서너 마리 따로 와서 앉아 있네</p>
<p>　　　그 집 고추장은 고추잠자리하고</p>
<p>　　　딸그마니 어머니하고 함께 담근다고</p>
<p>　　　동네 아낙들 물 길러 와서 입맛 다시며 주고받네</p>
<p>　　　그러던 어느 날 뒤안 대밭으로 순철이 어머니 몰래 들어가</p>
<p>　　　그 집 고추장 한 대접 떠가다가</p>
<p>　　　목물하는 그 집 딸 덕순이 육덕에 탄복하여</p>
<p>　　　아이고 순철아 너 동네장가로 덕순이 데려다 살아라</p>
<p>　　　세상에는 그런 년 흐벅진 년 처음 보았구나 (<xref ref-type="bibr" rid="B001">『만인보 1』 116-117</xref>)</p>
<p>　</p>
<p>우선 안토니 수사의 영역으로 보자.</p>
<p>　</p>
<p>　　　　　　　　　　　　No-More’s Mother</p>
<p>　</p>
<p>　　　Three daughters had already been born</p>
<p>　　　to No-more parents over in Kalmoi:</p>
<p>　　　Toksuni</p>
<p>　　　Boksuni</p>
<p>　　　Kilsuni.</p>
<p>　　　Then another daughter emerged; once again</p>
<p>　　　the sacred straw stretched across the gate</p>
<p>　　　held bits of charcoal, but no red peppers!</p>
<p>　　　She got the name No-more.</p>
<p>　　　Furious, No-more’s father went drinking;</p>
<p>　　　when he came home, he declared:</p>
<p>　　　A woman that can only have girls</p>
<p>　　　deserves to be kicked out of the house!</p>
<p>　　　He grabbed his wife by the hair,</p>
<p>　　　although she had not yet fully recovered,</p>
<p>　　　and dragged her outside,</p>
<p>　　　smashing down the rotten fence.</p>
<p>　　　Uhuhuh, he cried. A fine sight.</p>
<p>　　　But oh the tasty red-pepper paste</p>
<p>　　　that No-more’s mother makes!</p>
<p>　　　How ever does she do it? Why, people come</p>
<p>　　　from Namwon, and even from Sunchang,</p>
<p>　　　eager to learn her pepper-paste art.</p>
<p>　　　A few of the host of pepper-red dragonflies</p>
<p>　　　that fill the clear late-autumn skies</p>
<p>　　　often come down and perch on the heavy lids</p>
<p>　　　of the bulging pots of red-pepper paste</p>
<p>　　　up on the frugal storage platform</p>
<p>　　　there behind the house;</p>
<p>　　　the local women at the well,</p>
<p>　　　with much smacking of lips, claim</p>
<p>　　　that special pepper paste is made</p>
<p>　　　by No-more’s mother and the red dragonflies,</p>
<p>　　　working in collaboration!</p>
<p>　　　On one such day, Sunchol’s ma came sneaking</p>
<p>　　　into the bamboo-fenced back yard</p>
<p>　　　to scoop out one bowl of the famous paste,</p>
<p>　　　and as she did so, the daughter called Toksuni</p>
<p>　　　happened to be there washing her back.</p>
<p>　　　Struck by the sight of that abundant flesh</p>
<p>　　　she murmured:</p>
<p>　　　My! Sunchol dear, it’s Toksuni here</p>
<p>　　　hat you should marry! A hometown bride!</p>
<p>　　　I never saw such a luscious girl! (<xref ref-type="bibr" rid="B003">『나의 파도 소리』 267-269</xref>)</p>
<p>　</p>
<p>데이비드 맥캔이 편집한 우리나라 시 영역 시집에 실린, 이 시의 영역은 케빈 오루어크(Kevin O’Rourke)의 것이다. 케빈 오루어크는 아일랜드 사람으로 안토니 수사와 마찬가지로 선교의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왔던 인물이다. 안토니 수사보다 더 먼저 1964년에 우리나라에 성 콜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왔었는데, 그 이후 우리나라 옛 시들에 매료되어 1982년 연세대학교에서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문학 박사를 취득하였고, 우리나라의 옛 시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많이 해 놓았다.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시들은 물론 이조 시대의 시조들까지 두루 영역하였고, 영역의 범위를 넓혀 최인훈의 소설 『광장』과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번역한 바가 있다. 그는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며, 2010년에는 한국문학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도 받았다<xref ref-type="fn" rid="fb007"><sup>7)</sup></xref>. 그가 영역한 「딸그마니네」를 보자.</p>
<p>　</p>
<p>　　　　　　　　　　　　No-More-Daughters</p>
<p>　</p>
<p>　　　There were three girls in the Kalmoe house</p>
<p>　　　we called "No-more-daughters’s":</p>
<p>　　　Toksun,</p>
<p>　　　Poksun,</p>
<p>　　　and Kilsun;</p>
<p>　　　and this time around another charcoal daughter</p>
<p>　　　-- which explains the family’s god-awful name.</p>
<p>　　　The father came home full of booze anger,</p>
<p>　　　announced he’d throw out this good-for-nothing</p>
<p>　　　woman who had nothing but daughters,</p>
<p>　　　grabbed her by the hair of the head</p>
<p>　　　-- she was still in postpartum care --</p>
<p>　　　knocked down the rotten fence on the way out</p>
<p>　　　and burst into floods of tears. A capital sight!</p>
<p>　</p>
<p>　　　The other side was that No-more-daughters’s</p>
<p>　　　red-pepper paste was so unbelievably sweet</p>
<p>　　　people came from Namwon and Sunchang</p>
<p>　　　to find out how it was made.</p>
<p>　　　Two or three of the red-pepper dragonflies</p>
<p>　　　that filled the late autumn sky</p>
<p>　　　were wont to sit on the lid of the</p>
<p>　　　red-pepper paste pot on the neat crock stand.</p>
<p>　　　The red-pepper paste was made by the dragonflies</p>
<p>　　　and the girls’ mother together!</p>
<p>　　　Leastwise that’s what the local women</p>
<p>　　　said with a smack of the lips</p>
<p>　　　when they came to draw water.</p>
<p>　</p>
<p>　　　One day Sunchol’s mum stole</p>
<p>　　　through the bamboo grove to the women’s quarters</p>
<p>　　　to help herself to a bowl of the red-pepper paste.</p>
<p>　　　So flabbergasted was she by the sight of</p>
<p>　　　Toksun washing her luscious body, she cried:</p>
<p>　　　"Sunchol-a, take Toksun to wife,</p>
<p>　　　I never saw such a divinely-fleshed tit in my life." (<xref ref-type="bibr" rid="B014">McCann 187-188</xref>)</p>
<p>　</p>
<p>이 두 영역들을 비교해 보면, 어떤 부분은 안토니 수사 것이 낫고, 어떤 부분은 오루어크 것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제목은 확실히 오루어크 것이 더 분명하다. “딸그마니네”란 딸만 네 번째로 낳다 보니 딸을 더 이상 낳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으로 “딸 그만”이란 말에 누구네 집을 뜻하는 접미사로 “(이)네”를 붙여서 발음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No-more-daughters’s”가 확실한 것이다. 따라서 안토니 수사가 이 집 막내딸 이름을 daughter를 빼고 그냥 “No-more”라 한 것은 틀린 것이다. 하지만 시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안토니 수사 것이 더 원전의 느낌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시는 어려운 말이 별로 없고, 아주 토속적인 한국적 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인이 뜻하는 바이기 때문에, 영역할 때 괜히 어려운 단어를 쓸 필요도 없고 설명조의 말을 집어넣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오루어크의 영역을 보면, “--”라는 부호를 써서 설명조식으로 말을 덧붙이듯이 하고 있다. 그리고 번역도 틀린 것이 마지막 딸, 즉 넷째 딸 이름이 “딸그마니”인 것인데, 오루어크 번역에서는 이 집 이름이 “딸그마니”인 것으로 잘못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산후 조리도 못한”도 오루어크는 “--” 부호를 써서 설명조로 덧붙이고 있고, “postpartum”이라는 그리 쉽지 않은 단어를 쓰고 있는데 반해, 안토니 수사는 “아직 회복되지 못한”이라는 식으로 좀 더 쉽게 번역하고 있다. “장관(壯觀)”의 영역에서도 안토니 수사가 “fine”이라는 평범한 단어를 쓴 것에 비해 굳이 “capital”이라는 그리 흔하게 잘 쓰이지 않는 말(“excellent”의 뜻으로)을 쓴 것도 부적절하다. 마지막에 순철이 어머니가 몰래 숨어 들어가서 고추장 한 그릇 뜨려 하다가 우연히 그 집 맏딸인 덕순이가 “목물”(웃통만 벗고 씻는 것)하는 것을 보고 그 몸에 반해서 자기 아들에게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하는 부분도 안토니 수사의 번역이 좀 더 평이하면서도 살갑게 느껴진다. “흐벅지다”(탐스럽고 부드럽다)라는 우리말을 제대로 그 느낌이 전달되게 영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겠지만, 오루어크가 “divinely-fleshed tit”라 한 것은 전혀 제대로 번역했다고 보기 힘들다. 일단 “tit”라 하면 젖꼭지를 가리키는 것이고, 가슴을 뜻하기 위해서는 “tits”라고 복수형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쨌건 여기서 “풍만한 가슴”을 제대로 뜻하고 보기는 힘들다. 어쨌든 오루어크의 번역은 안토니 수사의 번역에 비해 뭐라고 할까 좀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두 영역을 비교해 보면 그래도 안토니 수사의 번역이 좀 더 나아 보이지만, 제목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미흡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다른 글에서 신경림의 「농무」의 영역을 살펴볼 때 안토니 수사의 영역을 논하며 이야기한바 있지만, 서양 독자들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는 주석으로 달 것을 제안한바 있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나름대로 시의 운율과 맛을 최대한 살려서 다음과 같은 영역을 내어놓는다(예전에는 우리나라 고유명사에서 “ᄀ” 발음 나는 것을 “K”로, “ᄃ” 발음을 “T”로, “ᄇ”을 “P”로 했지만, 지금은 각각 “G”와 “D” 그리고 “B”로 표기한다.).</p>
<p>　</p>
<p>　　　　　　　　　　　　No-More-Daughters’s</p>
<p>　</p>
<p>　　　No-more-daughters’s in Galmoe</p>
<p>　　　Already three daughters</p>
<p>　　　Duksun</p>
<p>　　　Boksun</p>
<p>　　　Gilsun</p>
<p>　　　Now one more daughter with hanging charcoals<xref ref-type="fn" rid="fb008"><sup>8)</sup></xref></p>
<p>　　　Hence, this last daughter named No-more-daughter</p>
<p>　　　Drunk with anger, No-more-daughter’s father comes in</p>
<p>　　　And grabs by the hair his wife, yet not well after childbirth,</p>
<p>　　　Yelling that a woman that can only have daughters should be kicked out,</p>
<p>　　　Drags her out of the house and throws down the worn fence</p>
<p>　　　And sinks down on it and cries out loud. What a sight!</p>
<p>　　　However, No-more-daughters’s red-pepper paste is</p>
<p>　　　So unbelievably sweet</p>
<p>　　　That people come from Namwon and even from Sunchang to learn how to make it</p>
<p>　　　The house has a thrifty and tidy platform filled with crocks</p>
<p>　　　A couple of red dragonflies that fill the late autumn sky</p>
<p>　　　Come down and sit</p>
<p>　　　On the lid of the red-pepper paste crock</p>
<p>　　　Village housewives come to draw water from the well and talk each other,</p>
<p>　　　Smacking their lips, that the red-pepper paste of the house is made</p>
<p>　　　By No-more-daughter’s mother with collaboration from red dragonflies</p>
<p>　　　Then one day Sunchol’s mother sneaks in through the bamboo field in the backyard</p>
<p>　　　To scoop out a bowl of red-pepper paste</p>
<p>　　　And happens to see the eldest daughter Duksun bathing with her bust naked</p>
<p>　　　Struck by her voluptuousness, says to Sunchol,</p>
<p>　　　Look! Take Duksun to your wife as the hometown bride</p>
<p>　　　I never saw such a buxom broad in my whole life</p>
<p>　</p>
</sec>
<sec id="sec004" sec-type="conclusions">
<title>4. 결론</title>
<p>이상 서정주의 시와 고은의 시를 각각 세 편과 두 편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분들이면서도 우리나라 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굉장한 열의를 가지고서 우리나라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여 서양 독자들에게 알리려는 분들의 작업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 분들의 번역이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부분 부분 우리나라 말과 표현을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된 번역이 나올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시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문학을 전공한 우리나라 사람에는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의 경우 산문과 달리 그 시의 가락 같은 것, 이것은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분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잘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기는 시의 가락같은 것, 이것은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해 버리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불가능한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 가락이나 운율, 그리고 그 시가 주는 분위기나 느낌,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느 정도라도 해 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과 외국 사람이 같이 공동 번역하는 경우에도 우리나라 사람의 기여도가 별로 크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영어로 옮기는 것이다 보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주가 되고 우리나라 사람은 보조 정도밖에 안 되는 입장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보다 겸허하게, 자신의 뭐라고 할까 일종의 우월적 위치를 내려놓고 정말 겸허히 우리나라 사람의 의견을 청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우리나라 사람은 시에 대한 이해력은 물론 시의 운율과 가락을 감지할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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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id="fb001"><label>1)</label><p> 사실 이 점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된 원전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는,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원전이야 어떠하든 우리가 읽기에 술술 잘 읽히는 번역만이 잘 된 번역으로 취급하는 일반적인 양상은 우리도 똑같다. 필자는 시를 전공하고 시를 써본 적도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원래의 언어가 가지는 함축적 복선과 느낌과 분위기, 리듬감 등도 생각하다 보니 그저 술술 읽히는 번역만이 잘 된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p></fn>
<fn id="fb002"><label>2)</label><p> 가장 최근의 글로, <xref ref-type="bibr" rid="B004">김번(2017),「『채식주의자』와 The Vegetarian: 원작과 번역의 경계」,『영미문학연구』 32: 5-34.</xref></p></fn>
<fn id="fb003"><label>3)</label><p> <xref ref-type="bibr" rid="B005">『안과 밖』 24 (2008년 상반기)</xref>에 실린 글들이 대표적이다.</p></fn>
<fn id="fb004"><label>4)</label><p> 「대낮」의 해석과 영역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09">이일환(2015)</xref> 참조.</p></fn>
<fn id="fb005"><label>5)</label><p> 「자화상」과 「문둥이」에 대한 해석과 영역에 대해서는, 각각 <xref ref-type="bibr" rid="B009">이일환(2015)</xref>과 <xref ref-type="bibr" rid="B011">이일환(2016b)</xref>참조.</p></fn>
<fn id="fb006"><label>6)</label><p> 원래의 시집 제목은 『제주가집(濟州歌集)』이었으나 뒤에 『신, 언어 최후의 마을』로 바뀌었다.</p></fn>
<fn id="fb007"><label>7)</label><p> 안토니 수사와 맥캔에 대해서는 <xref ref-type="bibr" rid="B009">이일환(2015)</xref> 참조.</p></fn>
<fn id="fb008"><label>8)</label><p> According to the old Korean custom, people made it a rule of hanging in front of the gate a rope interspersed with charcoals when a girl was born, with red peppers when a boy was born. It is a real irony that No-more-daughter’s mother makes top-of-the-line red-pepper paste.</p></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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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참고 문헌</title>
<!--고은. (1986). 『만인보 1』 서울: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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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name>창비</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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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2002). 백낙청(외 엮음). 『어느 바람』 서울: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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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번. (2017).「『채식주의자』와 The Vegetarian: 원작과 번역의 경계」『영미문학연구』 32: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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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채식주의자』와 The Vegetarian:  원작과 번역의 경계</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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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문학번역 평가의 의미와 한계</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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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1981).『서정주』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6. 서울: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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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1998). 안토니 수사(영역)『밤이 깊으면: The Early Lyrics 1941-1960』 한국문학 영역총서 3 서울: 도서출판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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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환. (2015).「번역의 문제(1) - 서정주의 시」『어문학논총』 34: 9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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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번역의 문제(1) - 서정주의 시</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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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번역의 문제(2)</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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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환. (2016b).「우리나라 시의 영역 고찰 – 서정주, 고은, 신경림」『영미문학연구』30: 9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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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title>우리나라 시의 영역 고찰 - 서정주, 고은, 신경림</article-title>
<source>영미문학연구</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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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title>The Task of the Translator</chapt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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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title>To Domesticate or Not to Domesticate:  That Is the Translator’s Dilemma</chapt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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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ann, D.R..(Ed.). (2004). The Columbia Anthology of Modern Korean Poetry. New York: Columbia Univ.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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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The Columbia Anthology of Modern Korean Poetry</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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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 Hwan Lee graduated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is currently a professor at Kukmin University. He is enrolled in Who's Who.</p>
<p><italic>E-mail address</italic>: <email>ihlee@kookmin.ac.kr</emai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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