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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title>한국기록관리학회지</journa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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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 xml:lang="en">Journal of Korean Society of Archives and Records Management</tran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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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r-name>한국기록관리학회</publish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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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id pub-id-type="publisher-id">jksarm-2021-21-4-19</article-id>
      <article-id pub-id-type="doi">10.14404/JKSARM.2021.21.4.019</artic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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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title>광주학생독립운동가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연구</artic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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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title>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Digital Archives by Jang Jae-seong, a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Activist</tran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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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bel>1</label>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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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bel>2</label>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문헌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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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2021</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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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4</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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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27</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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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statement>Copyright &#x000a9; 2021, Korean Society of Archives and Records Management</copyright-statement>
        <copyright-year>2021</copyright-year>
        <license license-type="open-access" xlink: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4.0/">
          <license-p>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NoDerivatives 4.0 (<uri>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4.0/</uri>) which permits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at the article is properly cited, the use is non-commercial and no modifications or adaptations are made.</license-p>
        </license>
      </permissions>
      <abstract>
        <p>이 연구의 목적은 광주학생독립운동가 장재성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사용된 연구의 방법은 첫째, 장재성 관련 문헌연구를 하였다. 둘째, 국가기록원, 국가보훈처 등 장재성과 관련된 기록 현황을 조사하였다. 셋째, 장재성의 가족과 전문가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장재성 아카이브는 기록콘텐츠와 해설콘텐츠로 설계하였다. 또한 기록물 보유기관과의 콘텐츠별 매핑을 통해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기록콘텐츠는 이용자가 검색을 통해 소장처별로 연결 된 상세 내용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광주학생독립운동가들의 아카이브가 구축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해당 사건에 대한 인물들을 함께 아카이브로 구축, 데이터를 제공하는 안을 제시하였다.</p>
      </abstract>
      <trans-abstract xml:lang="en">
        <p>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a proposal to build an archive of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activist Jang Jae-seong. The research method used for this purpose was, first, a literature study related to Jang Jae-seong. Second, the current status of records related to Jang Jae-seong, such as the National Archives of Korea and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was investigated, and the types of records were presented for each collection. Third, an expert interview with Jang Jae-seong’s family was conducted. As a result of the study, the Jang Jae-seong archive was designed with documentary and commentary content. In addition, a method of linking with the record-holding institution through mapping by content was suggested. Recorded content are structured so that users can receive detailed information linked to each collection through a search. Also, considering that an archive of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activists has not been established so far, a plan was prepared and presented to build an archive of people involved in the incident together and provide data.</p>
      </trans-abstract>
      <kwd-group>
        <kwd>디지털 인물아카이브</kwd>
        <kwd>광주학생독립운동</kwd>
        <kwd>독립운동가</kwd>
        <kwd>장재성</kwd>
        <kwd>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kwd>
      </kwd-group>
      <kwd-group xml:lang="en">
        <kwd>digital person archive</kwd>
        <kwd>Gwangju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kwd>
        <kwd>independence activist</kwd>
        <kwd>Jang Jae-seong</kwd>
        <kwd>digital archive Jang Jae-seong</kwd>
      </kwd-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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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dy>
    <sec id="s1" sec-type="intro">
      <title>1. 서 론</title>
      <sec id="s1a">
        <title>1.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title>
        <p>한 개인이 삶의 흔적을 남겨 놓은 기록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권력이 있는 기관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 기술되기 때문에 또 다른 중요성을 가진다(<xref ref-type="bibr" rid="r032">이은화, 2009, 1</xref>). 기록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난 후 자료 자체의 소멸과 기억의 퇴행으로 인해 자료의 재구성이 어려워질 수 있고, 중요한 개인기록이나 민간기록들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xref ref-type="bibr" rid="r023">박선희, 2013, 1</xref>).</p>
        <p>우리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보냈다. 그러나 특정 인물들이 역사적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음에도 사회&#x22C5;정치적 사유 등으로 기록되고 평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한 인물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장재성 선생이다. 장재성 선생이 이끌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x22C5;1운동, 6&#x22C5;10만세운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의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백범 김구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해 &#x201C;침체한 독립운동을 진작시키고 상해임시정부의 재정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x201D;고 높게 평가하였다(남도일보, 2018).</p>
        <p>장재성은 백범 김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에 대한 표창을 시작한 1962년 당시 최초 표창대상자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념이 달랐다는 이유로 서훈을 취소당했다. 광복 이후 &#x2018;북한 정권 수립&#x2019;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사회주의 전력 때문에 독립운동 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2018년부터 학생독립운동에 대한 그 중요성과 의미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승격했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상도 높아졌다. 따라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한 장재성에 대한 연구와 아카이브 구축이 필요하다.</p>
        <p>과거의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것을 통해 그 시대와 현재를 이어갈 수 있고, 역사적인 인물의 업적과 사건들을 재조명할 수 있기에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한 인물을 기록하고 그에 관한 기록을 보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은 상호 유관한 내용을 갖고 있는 자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다른 자료로 연결시켜 줄 수 있으며, 사용자의 지식정보 획득에 도움을 준다(<xref ref-type="bibr" rid="r030">이남희, 2013, 198-199</xref>).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장재성의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그의 삶이 담긴 귀중한 자료를 보존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안을 제시하고자 한다.</p>
      </sec>
      <sec id="s1b">
        <title>1.2 연구의 방법과 범위</title>
        <p>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안을 위한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헌연구이다. 문헌연구는 장재성에 대한 기록을 통해 시대별 주요 활동을 중점적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가 활동했던 단체의 특징과 사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세부적으로 구분하였다. 둘째, 기록유형이다.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장재성 관련 기록(물)을 조사하여 소장처별로 기록유형을 제시하였다. 셋째, 장재성에 대한 전반적인 생애사 검증을 위하여 장재성 아들과 손자를 대상으로 가족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전문가 인터뷰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연구자들과 장재성기념사업회창립 위원(6인)을 선정하여 이루어졌다. 넷째,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안을 설계하였다. 장재성 아카이브는 기록콘텐츠와 해설콘텐츠로 설계하였다. 또한 기록물 보유기관과의 콘텐츠별 맵핑을 통해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연구방법과 결과를 토대로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안을 제시하였다.</p>
      </sec>
      <sec id="s1c">
        <title>1.3 선행연구</title>
        <p>장재성 아카이브 구축안 제시를 위해 그동안 연구되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가의 생애사에 관한 연구, 인물 아카이브 수집&#x22C5;분류에 관한 연구,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의 필요성 및 구축방안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p>
        <p>첫째, 광주학생독립운동가의 생애사에 관한 연구이다. 현재까지도 다른 역사적인 사건에 비해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편으로, 왕재일(<xref ref-type="bibr" rid="r033">이현희, 1996, 185-248</xref>)과 최규창(<xref ref-type="bibr" rid="r019">김홍길, 2018, 149-179</xref>)에 대한 연구만이 진행되었다. 해당 인물 연구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에도, 그동안 활동과 위상에 비하여 학계에서 생애와 독립운동의 전반을 규명하는 연구가 미흡하였다. 두 인물의 생애사 연구의 공통점은 독립운동가로서의 그들의 삶을 재조명했다는 것이다. 또한 인물 연대순에 의한 전반적인 생애사를 서술 형식으로 구성하였으며, 주로 문서자료(신문류, 잡지, 문집, 편지, 회고록 등)에 기반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다루었다.</p>
        <p>둘째, 인물 아카이브 수집&#x22C5;분류에 관한 연구이다. 이 연구는 개인기록의 중요성을 기반으로 인물 아카이브를 보존하기 위하여 기록물 수집 진행 절차와 아카이빙의 핵심인 분류체계 수립, 수집전략 등을 제시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r034">이형수(2012, 1-9)</xref>는 대중음악이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의 감수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양상을 연구하는 유용한 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대표적인 대중음악가 중 김광석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그는 김광석 음악가의 생애를 파악하여 기록물 수집을 진행하는 절차와 아카이빙의 핵심인 분류체계 수립, 물리적 정리, 서비스 방안을 제시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r027">오의경(2017, 143-161)</xref>은 상명대학교 설립자 배상명 선생의 개인기록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여 개인의 생애 연구를 방법론적으로 적용, 개인기록을 집합기록으로 활용한다고 전제하여 분류체계로 기능 및 주제분류, 형태분류의 다중분류체계를 제안하였고 각각의 분류체계에서 도출한 키워드들을 향후 수집을 위한 전략으로 제안하였다. 그러나 해당 연구는 메타데이터와 시소러스 구축과 같은 구체적인 전제적 요건들에 대한 연구까지는 미치지 못했다.</p>
        <p>셋째,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의 필요성과 구축방안에 대한 연구이다. <xref ref-type="bibr" rid="r023">박선희(2013, 1-3)</xref>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한 개인의 삶과 철학을 종합적으로 재현이 가능하기에 인물의 생애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창구로서의 기능을 강조하였으며, 물리적인 공간으로의 아카이브의 한계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을 들었다. <xref ref-type="bibr" rid="r020">김희숙과 장우권(2019, 145-174)</xref>은 한 기관에 보존되어 있는 기록 중 그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거나 반추할 수 있는 자료들 또는 사장되거나 분실의 우려가 있는 귀한 자료들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통해 보존하고 공유하여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에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대상 인물과 관련된 문헌과 자료를 조사, 인터뷰를 통하여 생애를 분석하였고, 아카이브 구축에 필요한 자료와 목록을 작성하였다. 작성한 기록의 분류 및 배치를 다시 정하여 전체 콘텐츠 구성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전체 콘텐츠는 기록 콘텐츠와 해설 콘텐츠로 구분하되, 해당 영역끼리 연계가 가능하도록 설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xref ref-type="bibr" rid="r018">김혜림(2010, 1-12)</xref>은 인물 기록이 개인의 특징 및 활동 영역에 따라 수집 대상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여 작품&#x22C5;주제형, 특정기간형, 생애&#x22C5;활동형으로 기록의 수집 범주를 3가지로 분류하고 유형에 따라 관련 사례의 현황과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개인 기록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한 통합 검색도구 개발을 제안하였으며 분산된 개인 기록의 관리 방법을 제안하였다. <xref ref-type="bibr" rid="r014">김길태(2017, 1-7)</xref>는 각 기관에서 소장되어 있는 아카이브 대상자 기록을 분석, 유형과 특성을 파악한 후 생전과 사후 기록을 반영한 분석을 진행하여 주제분류를 설계하였다. 설계된 주제분류를 바탕으로 소장처 기록과 연계, 분석을 통해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방안을 제시하였다.</p>
        <p>위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는 주로 독립운동가의 생애사 연구를 통하여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부분에 머물러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지역과 단체들을 중점으로 당시의 행적을 밝히고, 그들의 삶에 대해 기록하려는 관점에서 생애사가 서술되어있다. 그동안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는 잊혀져있던 역사속의 인물들을 발굴하는 관점에서 보면 비교적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어왔다고 볼 수 있으나, 광주학생독립운동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사건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상과 평가에 비해 매우 저조한 편이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 영역도 생애사 위주로 연구되어 왔기에, 기존의 연구 영역을 넓혀 다른 영역으로의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지 못한 부분은 아쉬운 점으로 볼 수 있다.</p>
        <p>최근 들어 인물 아카이브 수집 연구는 기존의 물리적 공간에서의 아카이브 수집 방법에서 벗어나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연구로 전환되어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대상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 및 방안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는 없는 편이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의 구축안을 제시하고자 한다.</p>
      </sec>
    </sec>
    <sec id="s2" sec-type="other">
      <title>2. 인물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장재성 생애사 분석</title>
      <sec id="s2a">
        <title>2.1 인물 아카이브 개념 및 특징</title>
        <sec id="s2aa">
          <title>2.1.1 개념</title>
          <p>개인기록물은 포괄적인 의미로 사회적 구성원인 개인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개인의 특수성과 함께 사회와 관계를 통해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 경험을 담아 주체적으로 생산하거나 수집한 기록물이다(<xref ref-type="bibr" rid="r041">최인혁, 이영학, 2015, 51</xref>). 개인기록에는 개인적 업무와 관련된 처리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토대로 삶과 주변인과의 인간관계 등이 담겨있다. 개인기록의 범위는 넓게 보면 기록화 된 형태로서 삶의 사건이나 인간성 등이 담겨져 있는 모든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잠재의식이 반영된 개인적인 생각이며 다양한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xref ref-type="bibr" rid="r038">최영주, 2005, 13</xref>).</p>
          <p>따라서 개인기록은 공공법률에 의해서 생산되지 않은 한 개인이 개인 업무나 개인의 생애사와 관련하여 생산, 수집한 모든 유형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xref ref-type="bibr" rid="r018">김혜림, 2010, 15</xref>). 개인 아카이브는 &#x201C;특정인물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고 해당 인물 및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분류체계를 수립하고 관리하며 대중들에게 활용될 수 있게 하는 기록관리이다(임진희, 2013).&#x201D; 인물 아카이브는 &#x2018;특정 인물에 대한 기록 수집을 통해 개인에 대한 일종의 영구 보존기록의 집합체&#x2019;이다(<xref ref-type="bibr" rid="r023">박선희, 2013, 10</xref>). 또한 해당 인물 및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분류체계를 수립하고 관리하며 대중들에게 활용할 수 있게하는 기록관리이다(<xref ref-type="bibr" rid="r031">이연창, 2007, 8</xref>).</p>
          <p>인물 아카이브는 특정인에 대한 모든 기록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공간 또는 일종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 아카이브는 인물이 여러 단체와 기관 등에서 수행한 공적인 부분과 사적으로 활동하면서 생산해 낸 기록들의 집합이다. 이에 인물이 남긴 기록물의 수집은 다방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기록과는 달리 인물 아카이브는 정형화된 형식을 갖춰 생산되는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의 유형이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에 각 기록물의 내용과 구조 및 맥락에 따라 분류해야 하며, 일반적인 인물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한 적용 가능한 수집 전략과 방안이 필요하다(<xref ref-type="bibr" rid="r020">김희숙, 장우권, 2019, 472</xref>).</p>
        </sec>
        <sec id="s2ab">
          <title>2.1.2 유형 및 특징</title>
          <p>개인 기록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은 첫째,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가 담긴 동시에 인간의 개성을 담고 있다. 둘째, 개인의 활동을 통해서 생산되고 축적되기에, 조직의 기록물과 같이 기록물 자체가 생산자의 증거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인물 아카이브 구축을 통해 개인기록이 갖고 있는 가치는 다양하다.</p>
          <p>인물아카이브 유형별 특징은 개인의 특징에 따라 수집 대상의 차이를 기반으로 작품&#x22C5;주제형, 특정기간형, 생애&#x22C5;활동형으로 분류한다. 작품&#x22C5;주제형은 작품으로 유명해진 인물, 주된 수집 범위가 해당 작품 컬렉션과 더불어 사적인 기록과 연구 기록을 수집, 보존, 해당 작품이 속해 있는 학문에 대한 연구를 지원한다. 특정기간형은 특정 기간에 대한 주어진 지위와 관련된 인물, 특정 사건에 대한 관련된 인물, 특정 기간과 관련된 활동에 대한 개인 기록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경우 이를 보존, 관리한다. 생애&#x22C5;활동형은 전(全) 생애가 중요한 인물, 해당 인물의 전체적인 삶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경우,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컬렉션인 경우이다(<xref ref-type="bibr" rid="r018">김혜림, 2010, 37-38</xref>). 또한 인물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주요 주체에 따라 그 유형은 일상연구형 아카이브, 유명인 기념형 아카이브, 일반인 개인 아카이브로 구분한다. 일상연구형 아카이브는 주요 주체가 기록관과 연구기관이다. 구축대상은 사회를 기록화하기 위해 다큐멘테이션 전략에 의거하여 다수의 평범한 개인들의 기록이다. 이를 수집하고, 중앙 집중적인 저장소에 저장하며 이를 사회발전 단계나 동시대 역사적 가치에 따라 분류하고 해석한다. 유명인 기념형 아카이브는 주요 주체가 기관, 단체 그리고 개인이다. 구축대상은 개인의 노력과 업적, 전환점을 보여줄 기록이다. 이를 수집하고, 후속세대에 교훈적, 감동적 가치를 가진 교육콘텐츠로 활용한다. 일반인 개인 아카이브는 주요 주체가 자기 자신과 가족이다. 구축대상은 개인적 필요에 따라 아카이빙 한다. 이것은 PC, 집, 일터에 분산적으로 소재한다(임진희, 2013). 더불어 인물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은 아카이브 대상 인물에 대한 전 생애의 고찰이다. 인물의 생애사 연구가 잘 수행되어야만 체계적&#x22C5;효율적인 인물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가 있다.</p>
        </sec>
      </sec>
      <sec id="s2b">
        <title>2.2 장재성 이력과 독립운동</title>
        <sec id="s2ba">
          <title>2.2.1 장재성 생애 문헌분석</title>
          <p>장재성 이력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밀접하게 전개되었다. 장재성 이력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첫째, 생애(生涯)이다. 생애는 &#x2460; 출생 및 유년시절, &#x2461; 학창시절, &#x2462; 광주학생 비밀결사 성진회 결성, &#x2463; 일본 유학시절 및 맹휴중앙본부 결성, &#x2464; 독서회중앙부 결성, &#x2465; 학생소비조합의 결성, &#x2466; 광주학생독립운동, &#x2467; 법정, 옥중 투쟁, &#x2468; 1940년대 활동, &#x2469; 광복 이후 활동, &#x246A; 장재성 사망 이후 순으로 기술하였다. 둘째, 인터뷰이다. 장재성 관련 기록들은 1947년 남노당이 불법화되면서 여러 차례 가택 수색을 당하게 되었고, 심문을 당한 바람에 그의 유품과 기록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이에 망실된 기록들을 되살리기 위해 직계가족과 전문가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인터뷰는 아들과 가족 그리고 전문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셋째, 장재성 연대표이다. 연대표 내용은 장재성과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문헌, 인터뷰 결과들을 조사하여 구성하였다.</p>
          <p>장재성 생애 이력은 다수의 관련 문헌을 조사하고 그 내용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음 &#x3C;<xref ref-type="table" rid="t001">표 1</xref>&#x3E;은 내용기술에서 직접 인용된 문헌들이다.</p><table-wrap id="t001" position="float"> <label>&#x3C;표 1&#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생애 이력 관련 문헌</title> </caption> <table rules="groups"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문헌</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left"><xref ref-type="bibr" rid="r006">광주광역시동구청 (2020)</xref>. 동구의 인물 1 - 광주광역시 동구 인문자원 발굴 및 기록화 작업.<break/> <xref ref-type="bibr" rid="r012">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編 (1996)</xref>. 光州學生獨立運動史. 光州: 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break/> <xref ref-type="bibr" rid="r007">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19)</xref>. 광주학생독립운동90년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break/> <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xref>. 광주학생독립운동 80주년 기념 타오르는 횃불.<break/> <xref ref-type="bibr" rid="r015">김명기 (2019)</xref>. 이기홍 평전: 민족&#x22C5;민주&#x22C5;통일운동가. 서울: 선인.<break/> <xref ref-type="bibr" rid="r016">김성, 김재기 (2009)</xref>. 일제강점기 &#x2018;광주고보&#x2019;의 학생독립운동: 발생 배경과 전개. 일제강점기 학교공간에서 학생독립운동 발표집(2009.11.12.),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 3-28.<break/> <xref ref-type="bibr" rid="r017">김성민 (2013)</xref>. 1929년 광주학생운동. 서울: 역사공간.<break/> <xref ref-type="bibr" rid="r021">남성숙 (2017)</xref>. 전라도 천년의 얼굴 - 전라도 정도 천년 호남인물 150. 광주: 광주매스컴.<break/> <xref ref-type="bibr" rid="r022">노성태, 신봉수 (2014)</xref>. 사진과 인물로 보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 광주광역시문화원연합회.<break/> <xref ref-type="bibr" rid="r025">신서출판사 (1973</xref>). 회상의 학창시절-女流21人集執. 서울: 新書出版社.<break/> <xref ref-type="bibr" rid="r026">안종철 외 (2010)</xref>. 근현대 형성과정과 재인식(1). 서울: 중원문화, 2010.<break/> <xref ref-type="bibr" rid="r028">이기홍 (1997)</xref>.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국학생독립운동이었다. 향지사.<break/> <xref ref-type="bibr" rid="r029">이기홍 (2016)</xref>. 내가 사랑한 민족 나를 외면한 나라. 서울: 선인.<break/> <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xref>. 격랑: 역사의 현장에서-언론인 최인식의 삶과 글. 전남대학교 학생독립운동연구단.</td> </tr> </tbody> </table> </table-wrap>
          <sec id="s2baa">
            <title>1) 출생 및 유년시절</title>
            <p>장재성이 태어난 1908년은 한말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항일의병이 일어났으며, 그 중 호남 전역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장재성은 전남 광주군 금계리 56번지(현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서 아버지 장원용, 어머니 최예언 여사 사이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광주면의 회계공무원으로 유복하지는 않았으나 어렵지도 않게 살았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57</xref>). 장재성의 동생 장매성<xref ref-type="fn" rid="fn001">1)</xref>은 부모님에 대해 &#x201C;나의 아버지(장원용씨)는 호인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어머니(최예언씨)는 까다롭고 엄한 분이었다. 나에게는 오빠가 한 분 있었는데 어머니는 우리 남매를 대하실 때도 사랑스러움은 안으로만 간직하고 계셨으며 겉으로는 우리 교육은 여간 엄한 것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잘못에도 철저하게 꾸중을 내리시곤 하셨는데,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는 늘 자애롭고 변호하는 말씀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곤 하였다.&#x201D;고 회상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25">신서출판사, 1973, 48-50</xref>).</p>
            <p>장재성은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919년 3월 소학교 4학년 때 3&#x22C5;1운동을 목격하였다. 재학시절에는 야구선수로 활약하였다. 장재성이 야구선수로 활약하던 당시 광주기독청년회는 1920년 제1회 이후 매년 &#x2018;광주소년야구대회&#x2019;(17세 이하 출전)를 개최했다. 1922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06">광주광역시 동구청, 2020, 196</xref>).</p>
          </sec>
          <sec id="s2bab">
            <title>2) 학창시절</title>
            <p>장재성은 1922년 4월 광주고등보통학교<xref ref-type="fn" rid="fn002">2)</xref> (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27년 3월 졸업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36">장재성 기념 사업회 창립식, 2020</xref>). 장재성이 졸업한 광주고보는 당시 일제 치하에서 한국 학생이 다니던 학교로 도내의 수재들이 모인 곳이었다(<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 18</xref>). 당시 광주고보에는 송홍<xref ref-type="fn" rid="fn003">3)</xref> 선생이 1924년부터 교편을 잡고 있었다(<xref ref-type="bibr" rid="r006">광주광역시 동구청, 2020, 242</xref>). 송홍 선생은 당시 광주고보 전체 교사 30명중 조선인 교사가 단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한문 과목 선생이었지만, 한문 시간에 한국역사에 대해 강의했고, 교장 등 학교 당국의 눈을 피해 한국 역사와 세계정세 및 민족의 진로를 가르치면서 미래의 지표는 조국광복임을 강조했다. 장재성 역시 송홍 선생의 수업을 들으며 민족의식을 배우고 국가관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xref ref-type="bibr" rid="r021">남성숙, 2017, 274-275</xref>).</p>
            <p>장재성은 광주고보 시절에 야구선수에 이어 정구 대표 선수로 활약하였다. 장재성의 동생 장매성은 오빠에 대해 &#x201C;매사에 정열적이고 어떤 일이든지 한번 뛰어들면 물불을 안가리는 성격&#x201D;(<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57-558</xref>)이라고 회상했으며, 성진회의 회원으로 같이 활동했던 정우채는 장재성에 대해 &#x201C;조직력이 훌륭했다&#x201D;고 표현했다(<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 22</xref>). 이러한 그의 성격이 뒷날 학생운동을 이끌어 가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p>
            <p>장재성이 거주하였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였던 광주는 다른 어떤 지역 못지않게 학생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곳이었다(<xref ref-type="bibr" rid="r022">노성태, 신봉수, 2014, 145-147</xref>).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광주의 학생층 내부에서는 조직적인 준비가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1926년 11월 3일에 결성된 성진회이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57-558</xref>).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확신시키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 &#x2018;깨달아 나아가자&#x2019;라는 뜻의 &#x2018;성진회&#x2019;는 광주지역 학생운동의 지도적 학생결사로서 항일민족독립이라는 한민족 공통의 대국적 상황을 학생의 처지에서 집약하고 광주학생계의 현실에서 조직화한 항일적 교양과 저항을 목적으로 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07">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19, 59</xref>). 그 중심에는 장재성이 있었다.</p>
          </sec>
          <sec id="s2bac">
            <title>3) 광주학생 비밀결사 성진회의 결성</title>
            <p>성진회의 결성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26년 신흥사상에 관심이 많던 광주고보 5학년 장재성은 왕재일과 광주농업학교(광주농교) 5학년 박인생, 김낙균 등 3인을 중심으로 의기투합하여 중등학생 중심의 사회과학연구회를 만들었다. 왕재일은 구례 출신 고(苦)학생으로 신문배달로 생계를 마련했으므로 농업학교에도 갈 수 있었다. 1926년 여름 막바지에 왕재일은 광주농업학교 기숙사에서 시국정담을 나누던 박인생, 정동수, 김남균, 문승수 등과 교류하다가 1926년 9월부터 본격적인 동지규합에 나섰다. 이들은 광주고보에서 안종익, 국순엽, 김광용, 임주홍, 최규창, 김창주, 정우채를 규합했고, 광주농업학교는 박인생, 정동수, 문승수, 정남균, 김한필, 정종석을 동지로 획득했다(<xref ref-type="bibr" rid="r007">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19, 71-74</xref>). 이후 장재성은 1926년 11월 광주고보 최규창, 김광용, 정우채와 광주농교 재학생인 정동수, 정남균, 정종석, 김한필 등과 함께한국의 독립쟁취,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 반대 등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조직 &#x2018;성진회&#x2019;를 조직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22">노성태, 신봉수, 2014, 145-146</xref>). 성진회의 막내였던 정우채는 회고담에서 &#x201C;무등회, 혁신회 등 몇 개의 이름이 나왔으나 왕재일이 제안한 &#x2018;깨달아 나가아자&#x2019;는 뜻의 성진회로 결정되었다&#x201D;고 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 22</xref>). 최규창 하숙집에서 성진회를 발족하였으며, 강령을 채택하였다.<xref ref-type="fn" rid="fn004">4)</xref></p>
            <p>강령 채택 이후 총무에 왕재일, 서기에 박인생, 회계에 장재성을 집행부로 선정하였다. 회의 경비는 매월 10전씩을 각출하여 충당하고, 매월 첫째와 셋째 주 토요일을 정기집회일로 정하여 사회과학에 관한 책을 읽거나 토론하기로 하였다. 또한 각자가 회원 확충에 노력하고 비밀을 엄수할 것도 다짐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22">노성태, 신봉수, 2014, 145-146</xref>). 또한 회합 때 회비를 각출하면 장재성과 왕재일 등이 책을 구입해 와서 회원들은 많은 책을 읽고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 24</xref>). 하지만, 성진회는 활동 5개월만인 1927년 3월 하순 정남균의 집에서 표면상 해체되었다. 중심회원이었던 장재성, 왕재일과 정남균, 박인생, 안종익 등 5명이 졸업을 하게 되었고,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광주경찰서 형사와 인척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어 그 회원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xref ref-type="bibr" rid="r022">노성태, 신봉수, 2014, 147</xref>).</p>
            <p>성진회는 표면상 해체되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후 성진회 회원들은 1928년 격렬했던 광주고보 맹휴사건에 앞장섰으며 많은 회원들이 퇴학을 당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불씨는 날로 커져가고 있었다(<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 21</xref>).</p>
          </sec>
          <sec id="s2bad">
            <title>4) 일본 유학시절 및 맹휴중앙본부 결성</title>
            <p>장재성은 1927년 3월 광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에 있는 중앙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유학시절에도 조선에서와 같이 사회과학에 관심을 갖고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동경에서 그는 조선인 유학생 연구모임 중 하나인 &#x2018;신흥과학연구회<xref ref-type="fn" rid="fn005">5)</xref> &#x2019;와 재일조선유학생학우회를 가입하여 활동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07">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19, 71-73</xref>). 장재성은 유학 중에도 성진회원들과 연계를 갖고 있어서 방학 때면 반드시 광주에 돌아와 일본에서 입수한 사회과학 서적들을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며 읽혔다. 그러던 중 1928년 소위 &#x2018;이경채 사건<xref ref-type="fn" rid="fn006">6)</xref> &#x2019;이 발생하였고, 동맹휴학 등의 방법으로 광주지역에서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59</xref>). 이 사건으로 여러 청년들과 학생들이 체포되었다. 이경채의 퇴학을 뒤늦게 접한 광주고보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여 맹휴를 전개하였다. 그런데 맹휴에 참석학생 300명 전원에게 퇴학 내지 무기정학을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맹휴가 다시 확산되었다. 이 사태는 수습되지 않아 1928년 7~8월까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광주고보와 광주농교의 연합맹휴가 진행되었다. 사태가 확대되는 가운데 당시 장재성과 최동문 등은 &#x2018;도쿄유학생 모교 분규사건 대책 강구회&#x2019; 특파원 자격으로 급거 귀국하여, 기존의 성진회원 최규창, 정우채, 김시성, 유치오 등을 비롯해 정동회, 서재옥, 김기권 등이 &#x2018;맹휴중앙본부&#x2019;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각종 격문과 항의서한을 제작해 발송하는 등 동맹휴학을 총괄하는 지도부 역할을 하였다. 이 사건으로 1928년 8월 20일부터 30일까지 10여일간 장재성은 당국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는 장재성이 그만큼 학생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것임을 입증한 것이다. 1928년 9월 다시 동경으로 떠난 장재성은 계속해서 광주지역 학생운동 조직화에 대해 관여했다(<xref ref-type="bibr" rid="r007">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19, 77-78</xref>).</p>
          </sec>
          <sec id="s2bae">
            <title>5) 독서회중앙부 결성</title>
            <p>장재성은 1929년 5월 말 광주지역 학생운동의 통일적 지도가 요구되고 있을 때 일본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학생운동을 조직화여 참여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07">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19, 81</xref>). 광주에 돌아온 그는 광주고보의 김상환&#x22C5;김보섭&#x22C5;윤창하, 광주사범의 송동식&#x22C5;강달모, 광주농교의 조길룡&#x22C5;김순복 등과 광주 양림리(현 양림동)에 있는 김기권의 집에 모여 독서회 중앙부<xref ref-type="fn" rid="fn007">7)</xref>를 결성하였다. 장재성이 책임비서로서 회를 통솔하고 조사선전부 위원은 회원 모집과 선전&#x22C5;보급을, 조직 교양부 위원은 그룹의 편성 및 사회과학 연구방법의 지도를, 출판부 위원은 각종 인쇄물의 인쇄&#x22C5;반포를, 재정부 위원은 회비 징수 및 기타 회계사무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부원은 1주에 1회씩 회합하여 협의할 것, 중앙부원에 의해 각 학교별로 중앙부와 동일한 조직&#x22C5;목적을 가지는 비밀결사(독서회)를 조직하고 중앙부가 이를 연락&#x22C5;통일할 것, 학교별 회원들에게는 중앙부의 존재를 절대로 비밀로 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p>
            <p>이어 1929년 6월 이후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농업고등학교, 광주사범학교 등 각 학교에서도 조직적으로 독서회가 결성되었다. 앞서 1928년 11월 초순에는 장재성의 누이동생인 장매성과 박옥련, 고순례 등이 뒷산에 모여 소녀회를 조직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12">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96, 61-65</xref>). 당시 독서회에 가담하였던 자들의 증언 중 이기홍<xref ref-type="fn" rid="fn008">8)</xref>에 따르면 장재성과의 일화가 담겨있다. 이기홍은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x201C;6월 어느 날이었어요. 이형우와 강문영이 오라고 해 무등산에 갔어요. 장재성씨가 이미 와 있더군요. 상급생 김상환, 동급생들 이형우와 강문영을 포함하여 조계현, 최규문, 김흥남, 황남옥, 김만섭, 정석규, 그리고 나까지 모두 11명이었어요. 고보 2학년 독서회 회원은 9명인 셈이지요. 이곳에서 장재성으로부터 모임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 듣고 강연 연습과 선동 연습을 마친 다음 내려왔어요.&#x201D;(<xref ref-type="bibr" rid="r028">이기홍, 1997, 180</xref>) 이는 당시 독서회 모임이 공식 출범하는 자리에 참석한 내용의 회고로서 이 자리에서 장재성은 정세 전반에 대한 간단한 분석과 모임의 취지에 대해 설명한 뒤, 참석자들을 하나씩 앞으로 나오게 해 강연과 선동 연습을 시켰다. 그는 짧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후배들을 일일이 격려했다(<xref ref-type="bibr" rid="r015">김명기, 2019, 94</xref>).</p>
          </sec>
          <sec id="s2baf">
            <title>6) 학생소비조합의 결성</title>
            <p>장재성은 몇몇 친구들과 김기권을 찾아가서 &#x201C;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소비조합을 구성하는 것이 어떻겠느냐&#x201D;고 물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경제자립운동이 한창이었다. 3.1운동 이후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자립이 앞서야 한다는 자주정신이 꽃피우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국산품장려와 소비절약운동이 붐을 일으켰던 상황이었다.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 시기였으며, 장재성은 김기권에게 &#x201C;학생을 상대로 한 문방구점도 좋지 않겠느냐&#x201D;는 권유를 했다. 그리고 독서회를 조직한 이야기와 독서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소비조합을 구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을 설명했다. 김기권은 아버지에게 장사를 하겠다고 해서 받은 돈으로 금남로4가 &#x2018;금남로&#x2019; 공원자리에 있던 2층 점포 1동을 얻었다. 그곳은 한국인 점포였다. 1층에 점포 1칸과 2층엔 홀이 딸려있었다(<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 56-57</xref>). 김기권의 문방구점 옆에는 장재성이 1929년 8월 호떡빵집(현 금남로 4가, 금남공원)을 오픈하였다.</p>
            <p>2층은 독서회원들의 모임장소로 이용했다. 장재성은 독서회모임을 감추기 위하여 빵집을 차렸으며, 빵을 사먹기 위해 들어온 척하여 2층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 곳은 학생들의 아지트로 활동되었으나, 상점을 차린 지 한달이 겨우 지난 11월 3일 소비조합은 거센 독립운동의 회오리 속에 휘말렸다. 대시위 운동이 폭발한 뒤 일제의 대규모 검거선풍이 불어 닥쳤다(<xref ref-type="bibr" rid="r008">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 2009, 57</xref>). 그 후 일제의 현장 검증조서에 따르면, &#x2018;2층에는 3개의 방이 있었고, 가장 큰 10칸짜리 방에는 탁자 1개만 놓여있어 회의장소로 활용되었다. 이곳에서 등사판용 기계와 공산당 선언 등을 비롯한 몇 가지의 사회과학서적이 발견되었다&#x2019;고 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01">檢證調書, 1932, 252-259</xref>; <xref ref-type="bibr" rid="r017">김성민, 2013, 173</xref>).</p>
          </sec>
          <sec id="s2bag">
            <title>7) 광주학생독립운동</title>
            <p>1929년 10월 30일 광주와 나주 간 통학열차 안에서 일어난 한일 학생 간의 시비가 나주역에서 난투극으로 발전하여 광주지역 한&#x22C5;일 학생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p>
            <p>제1차 시위는 11월 3일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광주역전에서 충돌하는 사건으로 발생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60</xref>).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는 장소에 장재성이 나타나 광주고보생들을 모아 정렬시켰다. 장재성은 당시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학생들에게 이렇게 연설하였다. &#x201C;우리는 조선학생으로서 모든 것이 불리하기만 하다. 교장도 선생도 일본인이요, 군대도 경찰도 모두 일본인편이다. 광주중학생들은 정식 총을 들고 교련을 받았기 때문에 전법(戰法)도 알고 있다. 무기도 힘도 배경도 없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계속 싸우는 것은 무모하다. 오늘 광주역에서 적과 싸운 것은 용감한 조선인의 기상이었고 또한 대승리였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한 방향일 것이다.&#x201D; 장재성의 연설 취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공연한 충돌을 멈추고 학교로 돌아가서 다른 대책을 강구하자는 뜻이었으며, 장재성의 주장에 따라 학생들은 줄을 서서 질서정연하게 학교로 돌아옴으로써 광주역전의 난투극은 일단 끝이 났다(<xref ref-type="bibr" rid="r016">김성, 김재기, 2009, 17-18</xref>).</p>
            <p>그 이후 광주고보에서의 상황은 이기홍 선생 선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기홍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x201C;장재성씨가 학생들에게 광주고보로 모이라고 했다. 독서회 멤버들을 무등산에 모이게 했던 바로 그 대선배였다. 장재성씨는 그냥 여기서 해산하면 이번의 충돌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생략) 장재성은 많은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광주고보생학생총회를 연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일제히 광주중학교를 습격하자고 주장했고 흥분한 학생들은 농기구 등으로 무장까지 하고 있었다. 광주중학교를 습격하자는 학생들을 향해 장재성은 우리의 적은 일본인 중학생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노예교육이라고 설득하며 학생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결국 학생들은 이러한 사실에 공감하며 차분하게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x201D;(<xref ref-type="bibr" rid="r029">이기홍, 2016, 64-65</xref>).</p>
            <p>하지만, 시위로 인하여 조선인 학생 수십 명이 체포되었고, 장재성은 이에 대한 조직적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60</xref>), 제1차 시위운동 직후인 11월 4&#x22C5;5일경 신간회 광주지회와 광주청년동맹 등 광주 사회&#x22C5;청년단체 간부인 장석천 등과 만나 보다 강력하고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할 것과 전국적인 학생시위로 확산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나아가 투쟁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학생 투쟁 지도본부를 결성하고 업무를 분담하였다.<xref ref-type="fn" rid="fn009">9)</xref> 11월 7일 서울에서 내려온 부건&#x22C5;권유근 등과 앞으로의 투쟁방향을 논의, 제2차 시위를 위해 각 학교 독서회 조직을 점검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16">김성, 김재기, 2009, 21</xref>).</p>
            <p>장재성은 11월 11일 &#xFF62;조선민중이여 궐기하라&#xFF63;, &#xFF62;학생대중이여 궐기하라. 우리의 슬로건 아래로&#xFF63;, &#xFF62;용감히 싸워라 학생대중이여. 우리의 슬로건 아래 궐기하라. 우리의 승리는 오직 우리들의 단결과 희생적 투쟁에 있다&#xFF63;, &#xFF62;용감한 학생대중이여. 최후까지 우리의 슬로건을 지지하라. 그리고 궐기하라. 전사들이여 힘차게 싸워라. 힘있는 데까지 싸워라&#xFF63;는 제목의 4종의 격문을 작성하고 인쇄를 오쾌일에게 맡겼다. 오쾌일은 소녀회 중심인물인 장매성이 흥학관<xref ref-type="fn" rid="fn010">10)</xref>에서 가져다준 등사판을 이용하여 박기석의 집에서 약 1,000장을 인쇄하는 등 제2차 시위를 위한 준비가 각 학교별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xref ref-type="bibr" rid="r012">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96, 93-94</xref>).</p>
            <p>학생들은 11월 12일 수업 시작종을 신호로 일제히 교문을 뛰쳐나와 &#x201C;식민지적 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라,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피압박민족 만세&#x201D;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각 학교에 결성되어 있던 독서회원들은 수백 장의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주도해 나갔다. 이 과정을 총지휘한 것은 물론 독서회 중앙부의 장재성이었다. 그는 교육개선의 요구와 맹휴 등으로 전개되던 1929년의 학생운동을 조직적인 대규모 항일시위로 발전시켰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60</xref>).</p>
          </sec>
          <sec id="s2bah">
            <title>8) 법정, 옥중 투쟁</title>
            <p>광주학생독립운동 발발 이후 구속된 학생들은 260여 명이었다. 이 가운데 보안법으로 49명, 성진회로 38명, 독서회로 90명, 소녀회로 11명 등 모두 173명(15명은 보안법과 독서회에 같이 걸림)이 예심 재판에 회부되었다(<xref ref-type="bibr" rid="r012">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96, 104-107</xref>). 이 중에는 장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p>
            <p>처음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였을 때는 일본은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사이의 단순한 충돌로 파악하고 조기에 수습하려 했으나, 구속된 학생들을 취조해보니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음을 감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사건을 축소해 왔던 기존의 태도에서 벗어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공산&#x22C5;사회주의자와 그들이 만든 비밀결사 사주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몰아갔다. 이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공산&#x22C5;사회주의운동으로 몰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강경탄압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p>
            <p>성진회는 전국적으로 선구적인 학생비밀결사였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비중에 걸맞게 제일 늦게 재판이 이루어졌다(<xref ref-type="bibr" rid="r012">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96, 110-111</xref>). 재판은 1930년 10월 20일 오전 8시부터 시작되었다. 재판이 열리자 피고들의 이름이 불려지는 과정에서 장재성은 법정에서 일어나 &#x201C;피고인들 중에서 체포되기 직전까지 학교 교사나 훈도로 있던 사람들을 직업상 무직이라고 표시하는 것은 무례한 처사&#x201D;라고 하였다. 또 개정 후 5분 만에 재판장이 공판 공개금지를 선언하려고 하자, 장석천은 &#x201C;공개금지를 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신경과민이 아닌가&#x201D;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결국 재판은 시작 30여분 만에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이날 재판 이후 성진회 재판은 10 27일까지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피고인 심리와 검사의 구형과 판사의 판결이 일주일 만에 종결되었다. 성진회 사건관계자는 모두 치안유지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 보안법 7조 위반 등이 적용되었다(<xref ref-type="bibr" rid="r007">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2019, 150-152</xref>). 판결 결과, 장재성에게는 징역 7년 구형, 제일 낮은 형량이 징역 1년 등으로 피고 모두에게 전례 없는 중형을 구형하였다. 징역 7년은 광주학생독립운동 판결 가운데 최고로 높은 것이었다. 판결이 끝나고 장재성이 &#x201C;우리가 모두 이 판결에 불복 공소할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우리 조선사람 학생에 대하여 치안유지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절대 반대다&#x201D;라고 항의하자 법정 내외는 혼잡을 이루었으며 출동한 경찰과 간수들에 의해서 가까스로 수습되기도 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12">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96, 110-111</xref>).</p>
            <p>당시 항일사범에게 징역 7년형은 최고의 징역형으로 도산 안창호나 몽양 여운형과 같은 거물급 항일인사들도 7년형이 최고였다. 즉 광주학생사건 피고인의 비중은 거물급 항일인사들과 같은 비중이었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452</xref>). 성진회, 독서회 관련 인물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였다. 그 후 1931년 4월 23일 첫 공판이 열린 뒤 6월 13일 판결이 날 때까지 7차에 걸쳐 비공개로 열렸다. 그 결과 장재성의 형량이 징역 7년에서 4년으로 줄어들었다. 판결 직후 70명이 1년 7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나 장재성을 포함한 16명은 잔여기간을 계속 복역해야 했다. 최고형을 받은 장재성은 재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뒤 &#x201C;오랫 동안 복역하면서 고생하다 오늘 이렇게 최후의 법정에 서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그러나 일동이 원기황성하게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뻐한다. 사회에 나간 후에는 더욱 참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원한다&#x201D;라며 약 10분에 걸친 송별사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최후를 고하여 법정 안은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에 쌓였다(<xref ref-type="bibr" rid="r012">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96, 157</xref>). 그 후 4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친 장재성은 1934년 출소하였다. 그는 1929년 10월 26일 동생 장매성의 소개로 박옥희와 결혼하였다. 그의 부인은 장재성이 곧 수감됨에 따라 신혼생활도 해보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장재성은 출소한 이후 부모의 권유로 학업을 위해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올라 중앙대학 상경과를 졸업하였다. 이때 부인 박옥희도 일본에서 2년제 전문학교를 마쳤다. 일본 생활에서도 역시 계속 경찰의 감시가 뒤따랐으나, &#x2018;신흥과학연구회&#x2019;를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일로 그는 다시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1937년 구속되어 경남 왜관으로 이송된 후 미결인 채로 3년 기간이나 감옥 생활을 했으며, 1940년 출소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61-562</xref>).</p>
          </sec>
          <sec id="s2bai">
            <title>9) 1940년대 활동</title>
            <p>장재성은 1940년대 초 조선일보 광주지국을 운영하였으나 곧 그만두었다(<xref ref-type="bibr" rid="r026">안종철 외, 2010, 114</xref>; <xref ref-type="bibr" rid="r006">광주광역시동구청, 2020, 215</xref>). 이 기간 중 장재성은 1943년에 일어난 제2의 광주학생독립운동(1943년 소위 무등회사건<xref ref-type="fn" rid="fn011">11)</xref> )에 관여했다. 광주서중학교(1938년 광주고보가 개칭됨)의 후배들이 독서회를 만들겠다며 선배인 장재성을 찾아와 독서회의 명칭에 대해 자문을 구하자 &#x2018;무등회&#x2019;로 명명해 주었다.</p>
            <p>그 후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1943년부터 해방 때까지 장성군 진원면에서 양조장을 경영했으며, 마을청년회를 만들어 20명~3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함경도 장진까지 봉사활동을 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40">최인식, 최진, 2010, 561-562</xref>). 이 시기는 전시체제로서의 극도의 탄압이 있었고 애국반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때의 활동은 이것과 관련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추론으로 학생운동사건이후 이 모든 행적이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xref ref-type="bibr" rid="r026">안종철 외, 2010, 114</xref>; <xref ref-type="bibr" rid="r006">광주광역시동구청, 2020, 215</xref>).</p>
          </sec>
          <sec id="s2baj">
            <title>10) 광복 이후 활동</title>
            <p>장재성은 광복 후 1945년 12월에 광주청년동맹을 조직하고 의장이 되었다. 그는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전남대표로 참석했으며, 1946년 3월 민주주의민족전선 전남지부 결성준비회의 총무부에서 활동했다(<xref ref-type="bibr" rid="r042">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0</xref>). 또한 그는 1947년 7월 15일 우익청년들 60여명의 테러로 광주민전사무실 앞에서 심한 구타로 피습을 당한다. 이와 관련 내용은 당시 조선중앙일보와 중앙신문 등에 &#x2018;광주민전피습&#x2019;기사로 보도되었다.</p>
            <p>장재성의 가족들은 서부청년단 사건 이후 광주에서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서울 필동에서 한동안 거주하였다. 그 후 장재성은 1948년 &#x2018;해주인민대표자대회&#x2019;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해주대회 대의원 명단에는 그의 이름은 없기 때문에 실제 참석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해주대회에 참여했고, 이를 위해 월북했다고 한다. 1949년 7월 일본을 경유하여 돌아온 장재성은 체포되어 7년형을 언도 받고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그 후 1950년 6&#x22C5;25전쟁이 발발하자 경찰은 후퇴하면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상범들을 지산동 뒷산에서 집단 처형하였다. 그 때 장재성도 사살되었다(<xref ref-type="bibr" rid="r006">광주광역시 동구청, 2020, 215-216</xref>). 그날은 1950년 7월 10일이었다. 당시 광주교도소 간수로 재직 중인 그의 사촌형이 처형된 다음날 장재성의 집에 찾아와서 전날 처형당했음을 알려주었다고 한다.<xref ref-type="fn" rid="fn012">12)</xref> 그의 나이 43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p>
          </sec>
          <sec id="s2bak">
            <title>11) 장재성 사망 이후</title>
            <p>장재성이 사망한 이후 가족들은 여러 번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그 때 장재성이 남긴 기록들과 사진, 다수의 서적들이 분실되었다. 장재성의 부인 박옥희 여사와 아들 장상백 씨를 포함하여 가족들은 연좌제로 인하여 한동안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 놓는 일) 대상자에 포함되어 있어,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xref ref-type="fn" rid="fn013">13)</xref> 1962년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백범 김구와 최초 표창대상자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사회주의 전력을 문제 삼아 표창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 그 후 아직까지도 미서훈 상태로 남아있으며, 2020년 &#x2018;장재성선생기념사업회&#x2019;가 창립되어 장재성 선생의 신원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p>
          </sec>
        </sec>
        <sec id="s2bb">
          <title>2.2.2 장재성 생애 인터뷰</title>
          <sec id="s2bba">
            <title>1) 인터뷰 대상자 선정, 내용 및 방법</title>
            <p>장재성 관련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대면인터뷰와 서면인터뷰로 진행하였다. 1차는 그의 가족들(장재성의 아들, 손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추가적으로 보완해야할 사항을 위해 2차로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특히 전문가 인터뷰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제로 연구를 수행했던 인물을 포함하여, 장재성기념사업회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 등을 선정하여 진행하였다.</p>
            <p>인터뷰 진행 전 사전에 인터뷰의 취지와 목적, 장재성 선생 선정 이유, 이 연구에 관한 연구 내용 등이 담긴 설명을 유선과 이메일을 통해 안내함으로써, 질문에 대한 이해를 도왔으며, 질문지는 가급적 간략하게 제시하였다(<xref ref-type="bibr" rid="r023">박선희, 2013, 16</xref>). 주요 인터뷰 질문은 장재성의 전반적인 생애와 관련하여 인물이 지니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장 강조되어야 할 사건과 역할,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안을 위해 중점적으로 수집해야 할 기록에 대한 의견 등을 질문으로 구성하였다(&#x3C;<xref ref-type="table" rid="t002">표 2</xref>&#x3E;, &#x3C;<xref ref-type="table" rid="t003">표 3</xref>&#x3E; 참조).</p><table-wrap id="t002" position="float"> <label>&#x3C;표 2&#x3E;</label> <caption> <title>가족 인터뷰 질문지</title> </caption> <table rules="all"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구분</th> <th align="center">질문내용</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도입시</td> <td align="left">Q1: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리며, 장재성 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 rowspan="6">본론</td> <td align="left">Q2: 장재성 선생의 생애 중 첨가하거나 수정할 부분이 있습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3: 가족들이 기억하고 있는 장재성 선생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성격, 특징적인 부분, 가족과의 일화 등)</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4: 장재성 선생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가족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5: 장재성 선생의 생애사를 살펴볼 때 가장 강조되어야할 부분, 사건,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6: 현재 장재성 선생과 관련하여 가족들이 소장하고 있는 기록의 유형은 무엇이며, 내용은 어떠한 것입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7: 장재성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어떠한 기록이 중점적으로 수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마무리</td> <td align="left">Q8: 지금까지 인터뷰 외에 추가적으로 말씀해주실 의견이 있으십니까?</td> </tr> </tbody> </table> </table-wrap><table-wrap id="t003" position="float"> <label>&#x3C;표 3&#x3E;</label> <caption> <title>전문가 인터뷰 질문지</title> </caption> <table rules="all"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구분</th> <th align="center">질문내용</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도입시</td> <td align="left">Q1: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특히 장재성 선생과 관련하여 진행하거나 참여하고 계시는 사업이 있으시면 함께 소개 부탁드립니다.</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 rowspan="7">본론</td> <td align="left">Q2: 장재성 선생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3:장재성 선생의 생애 중 첨가하거나 수정할 부분이 있습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4: 장재성 선생의 생애사를 살펴볼 때 가장 강조되어야할 부분, 사건,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5: 현재 장재성 선생과 관련하여 소장하고 있는 기록이 있다면, 기록의 유형은 무엇이며, 내용은 어떠한 것입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6: 장재성 선생 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어떠한 기록이 중점적으로 수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7: (장재성기념사업회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광주학생독립운동가들 중 특히 장재성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념사업회 등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Q9: (장재성기념사업회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현재 해당사업회 활동 목적과 중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업무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추진 계획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마무리</td> <td align="left">Q10: 지금까지 인터뷰 외에 추가적으로 말씀해주실 의견이 있으십니까?</td> </tr> </tbody> </table> </table-wrap>
            <p>다음은 가족 인터뷰 및 전문가 인터뷰에 대한 방법 및 세부내용이다.</p>
            <p>&#x2460; 가족 인터뷰: 장재성 가계도를 살펴보면, 정원용(부)과 최예언(모), 박옥희(아내), 장상백(아들)과 이순희(며느리) 사이에 장윤영(손자), 장헌영(손자), 장봉진(딸)과 김기선(사위)사이에 손자 김태완(손자), 김건운(손자), 장매성(여동생)과 정석규(매체)로 이루어졌다. 이 중 가족 인터뷰는 장재성 선생의 아들 장상백과 손자 장윤영을 선정하였다.<xref ref-type="fn" rid="fn014">14)</xref> 가족 인터뷰는 사전에 전자우편으로 보낸 질문지를 바탕으로 서면 인터뷰로 진행하였다. 추가적으로 장재성 선생, 아들 장상백 그리고 가족과의 일화가 담긴 내용의 녹음 파일은 손자 장윤영으로 부터 전달받았다. 또한 별도의 확인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손자 장윤영과 전화 인터뷰를 통하여 내용을 보완하였다.<xref ref-type="fn" rid="fn015">15)</xref></p>
            <p>&#x2461; 전문가 인터뷰: 전문가 인터뷰는 A, B, C, D, E, F 등 6인을 대상자로 선정하였다.<xref ref-type="fn" rid="fn016">16)</xref> 대면 인터뷰는 각 1시간 ~ 2시간에 걸쳐 진행하였으며, 서면 인터뷰는 전자우편을 활용하여 진행하였다.</p>
          </sec>
          <sec id="s2bbb">
            <title>2) 인터뷰 결과</title>
            <p>다음은 가족과 전문가 인터뷰에 대한 주요 질문과 대표적인 답변을 정리한 내용이다</p>
            <p>&#x2460; 가족 인터뷰: 인터뷰는 아들 장상백과 손자 장윤영이다. 인터뷰 주요 내용은 장재성 선생 가족과의 일화 부분이다. 장재성은 현존하고 있는 그에 대한 기록이 매우 적은 편으로 선친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아들의 구술기록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당 인터뷰에서 주목할 점은 아들 장상백이 부친의 사망일에 대해 1950년 7월 10일로 구술한 것이다. 이것은 정확한 법적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족들의 구술기록에 의해 사망일자를 파악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장상백은 부친이 1947년 서부청년단 테러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했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광복 이후 서울 필동으로 거주지를 옮겨 2년 정도 거주하였던 가족사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기는 대략 서부청년단 사건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 장재성 선생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구술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다(&#x3C;<xref ref-type="table" rid="t004">표 4</xref>&#x3E; 참조).</p><table-wrap id="t004" position="float"> <label>&#x3C;표 4&#x3E;</label> <caption> <title>가족 인터뷰</title> </caption> <table rules="all"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질문</th> <th align="center">답변</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2</td> <td align="left">&#x201C;전쟁이 일어나고 돌아가신 거를 알려주신 게 아버지 사촌분이 광주 형무소에 간수로 계셨는데 돌아가신 다음날 오셔서 말씀해 주시면서 마루에 앉아계셨던 기억이 나. 그니까 돌아가신 날짜가 확실하지. 그 날이 7월 10일이었지. 음력으로 내 모셨는데 5월 스무날이었어. ... 그 후 시체를 찾으려고 갔는데 테러당했던 상처로 찾으려고 했는데, 시체가 전부 부패했어. 찾을 수가 없어서. 전부 다 같이 제자리에 묻었지. ....(생략)&#x201D;(장상백) &#x201C;할아버지가 야구선수 시절 주 포지션을 포수로 들었습니다. 포수 마스크를 쓴 사진도 있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상태입니다.&#x201D;(장윤영)</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3</td> <td align="left">&#x201C;아버지가 서부청년단 테러를 당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거든. 근데 또 테러를 한다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왔어. ... 그때 아버지는 많이 다치셨지. 머리에 계란 두 개만큼 상처가 났고, 한쪽 다리 발 한 뼘 정도 꿰맨 상처가 나서 생생하게 기억하지. ....(생략)&#x201D; &#x201C;서울에서 2년 정도 다녔거든. 초등학교를. 48년이었을거야. 내가 김구선생 돌아가셨던 거를 을지로에 가서 봤던 때니까... 야구를 집 앞에서 했던 기억이 나....그게 생생해. ......(생략)......&#x201D;&#x201C;그리고 6&#x22C5;25직전 감옥에 들어가셔서 면회를 갔던 기억은 있지. 경찰서에 갔던 기억..., 형무소에 갔던 기억..., 그런데, 면회 때 이야기 했던 내용은 특별히 기억나지 않아.&#x201D;(장상백) &#x201C;아버지를 등에 업고 다닐 만큼 자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x201D;(장윤영)</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4</td> <td align="left">&#x201C;고난의 민족사의 한가운데에서 결혼과 일본유학, 빵집과 주조장운영, 짧은 시간이지만 육아의 과정 등 역할을 하셨고, 너무나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삶을 전해주셨습니다.&#x201D;(장윤영)</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5</td> <td align="left">&#x201C;아무래도 3&#x22C5;1운동이후 가장 큰 전국적 독립운동인 광주학생운동의 주역으로서의 역할이 우선이라고 보입니다. 또한 이후의 활동 또한 금기시되어왔지만 제대로 밝히고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x201D;(장윤영)</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6</td> <td align="left">&#x201C;집에 사진과 기록이 많지 않았는데 이마저도 취재 등의 이유로 언론사에서 가져가 돌려주지 않아 사진 10여장 외에는 기록이 없습니다.&#x201D;(장윤영)</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7</td> <td align="left">&#x201C;최대한 생존자 또는 생존자의 증언 또는 후손의 증언을 디지털화 해서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x201D;(장윤영)</td> </tr> </tbody> </table> </table-wrap>
            <p>&#x2461; 전문가 인터뷰: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장재성이 성진회, 독서회 활동을 통해 조직적으로 활동하여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주역으로서의 활동 내용이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장재성의 생애 중, 일본에서의 활동과 광복 이후의 활동 내용이 대부분 당시 함께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의 구술기록&#x22C5;회고록 및 가족의 구술기록에 의존하여 생애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장재성의 행적을 정확히 확인하는데 아쉬운 점이라고 하였다(&#x3C;<xref ref-type="table" rid="t005">표 5</xref>&#x3E; 참조).</p><table-wrap id="t005" position="float"> <label>&#x3C;표 5&#x3E;</label> <caption> <title>전문가 인터뷰</title> </caption> <table rules="all"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질문</th> <th align="center">답변</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2</td> <td align="left">&#x201C;1920년대 후반 ...광주학생운동은 전국적인 학생운동으로 발전하였음. 장재성 선생은 장석천 선생과 함께 이러한 광주학생운동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서, 독서회를 통해 광주의 학생운동 역량을 결집하고, 2차 시위운동을 주도하였음.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됨.&#x201D;(A) &#x201C;(생략).... 장재성 선생의 활동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역시 성진회-독서회 중앙본부-광주학생운동 부분입니다. 선생이 없었다면 광주학생운동이 그토록 단시간에 조직적으로 전개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x201D;(B) &#x201C;장재성 선생은 성진회와 독서회를 결성하여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준비한 운동의 주역이자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끈 지도자였습니다.&#x201D;(C)&#x201C;장재성은 태어났을 때는 일제식민지 전인 독립국가에서 태어났고, 그 후에는 일제식민지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두 가지 정체성을 내재하고 살았을 것이다. 10살 무렵 3&#x22C5;1운동을 만났기에 의식 자체가 저항의식, 민족의식이 생겼을 것이다. ... 학생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기성 운동가였다. 학생운동가 계층 사이에서 일본학생들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을 것이고, 지역내 학교에서 라이벌 의식이 커졌을 것이다.... 항일운동을 겪으면서 항일운동에 대한 가치를 만들어 냈고, 더 그 가치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항일로 싸우고, 미국과 소련이 만든 분단 시스템을 저항하다가 결국 역사의 역경에 휘말려서 희생된 것이 장재성...&#x201D;(D) &#x201C;... 지식인들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삶을 선택했지만 분단의 희생자라고도 생각된다.&#x201D; (E) &#x201C;제일 먼저 놀라운 것은...1926년에 성진회를 만든 것이다. 당시 나이가 18세임에도 조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식민지 교육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진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 조직을 구성했다는 점에 엄청난 의미가 있다. (생략)... 깨어 있다는 것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고, 1926년이면 당시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이 1925년인데, ... 18세의 어린 청년이, 성진회의 강령을 보아도, 이런 부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생략)...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성진회를 구성 후, 독서회의 중앙부를 구성하였다는 점. 이념과 조직으로 세상을 바꾸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x201D;(F)</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3</td> <td align="left">&#x201C;성진회의 강령이 정확한지 확인 필요함. 1차 일본 유학 당시 신흥과학연구회 등 활동 근거 확인 필요함.&#x201D;(A) &#x201C;광주형무소 구감 중 처형당한 날짜를 법적 기록으로 확인해야 함.&#x201D;(C)</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4</td> <td align="left">&#x201C;첫째, 광주의 중등학교 독서회 조직을 통해 학생역량을 결집한 점. 둘째, 광주학생운동 당시 학생들과 전남청년연맹 등 기성 사회단체와의 연결고리로서, &#x2018;29. 11. 12.의 2차 시위를 제안, 주도한 점.&#x201D;(A) &#x201C;...성진회-독서회 중앙본부-광주학생운동입니다.&#x201D;(B) &#x201C;1929년 6월 유학 도중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독서회를 결성, 그해 학생독립운동의 조직적 거점을 구축한 점입니다.&#x201D;(C) &#x201C;만남들, 관계망들에 대한 연구를 해야한다. ..., 재동경유학생 학우회, 광주고보를 나온 재외유학생학우회 등이 있는데, 장재성의 활동 기록이 정확하게 규명이 안 되고 있는 상태이다. 장재성의 경우 광주고보 졸업생 3회로 현재 일부가 있기는 하지만, 광주고보 맹휴 때 유학생강구회가 있었다. ...맹휴에 대해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장재성을 파견하는 멤버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현재 미서훈 상태인 사람들이 많다. 성진회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성진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동한 모임들이 있다. 이 부분을 앞으로도 연구를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x201D;(D) &#x201C;광주학생독립운동이 물론 주요 사건이지만,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고 옥고를 또 치른다. ... 해방이후 건준위활동했던 부분도 생애에서 더욱 밝혀졌으면 한다. 건준 차원에서의 행적도 많이 밝혀져 있지 않아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 공산주의적 입장보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분단을 반대했던 의도가 더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x201D;(E) &#x201C;...(생략) 우리가 너무 역사를 즉흥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갑자기 터지는 역사적 사건은 없다. 광주학생독립사건 역시 알려졌던 것처럼 기차역에서의 희롱사건으로 갑자기 터지게 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런 조직적인 활동이 가능 했기에 임계점에 다다랐으므로 터지게 된 것이다. 기차역 사건이 하나의 스파크가 됐을지는 몰라도, 이분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x201D;(F)</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5</td> <td align="left">&#x201C;손자 장헌영과 장윤영의 인터뷰 기록, 아들 장상백과 며느리 박순희의 구술이 있습니다.&#x201D;(C)</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6</td> <td align="left">&#x201C;1926년 성진회 결성, 1929년 광주학생운동 주도 외의 다른 행적에 대해 활동 당시에 생산된 자료(종래의 증언자료 외에 객관적인 문헌자료 수집 필요) &#x2460; 일본 유학 당시의 활동기록, &#x2461; 1934년 출옥 이후 해방때까지의 행적자료 &#x2462; 해방 이후의 수형기록. 특히 해방 이후의 행적은 선생의 비극적 개인사 뿐 아니라 민족적 비극의 상황을 보여주므로 자료 확보의 노력이 필요함.(수형기록 등)&#x201D;(A) &#x201C;1937년에서 1940년 2차 수감에 관한 재판 기록, 수형 기록. 1948년에서 1950년 3차 수감에 관한 재판 기록, 수형 기록&#x201D;(C) &#x201C;장재성 인물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함께 조직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에 대한 아카이브가 함께 구축되어야 할 것 이다. 예로 성진회 회원들의 인물 아카이브.... 체포된 날짜, 체포경위과정, 출옥한 날짜, 출옥된 시기, 각각의 사건에 대한 세세한 기록... - 연행, 구속, 투옥, 재판, 판결결과, 출옥 이런 부분 각각의 데이터가 필요하다.&#x201D;(D) &#x201C;...광주학생독립운동도 앞으로도 더욱 밝혀져야 하지만, 독립운동 이후 옥고를 치르게 된 원인과, 그리고 건준에서의 활동의 기록이 다양하게 연구되었으면 한다.&#x201D;(E) &#x201C;인물에 대한 기록이 많이 없는 상황이기에, 장재성 인물 하나만으로 아카이브를 하기엔 조금 힘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역사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당시 인물들을 함께 구축하는 것도 방안일 것 같다.&#x201D;(F)</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Q7</td> <td align="left">&#x201C;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후손들이 크게 반성.... 독립훈장 신설 법안을 발의하였고, 이 법안이 통과되어 장재성 선생이 서훈을 받을 수 있게 되길 추진..., 동시에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여 구속, 퇴학된 모든 희생자들이 전원 서훈을 받도록 추진하는 것입니다.&#x201D;(C) &#x201C;장재성 선생 미서훈 관련하여 서훈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 부분에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x201D;(E)</td> </tr> </tbody> </table> </table-wrap>
          </sec>
          <sec id="s2bbc">
            <title>3) 인터뷰 결과분석</title>
            <p>위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가족 인터뷰와 전문가 인터뷰 결과를 분석하였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공통적인 의견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생 원인과 과정 등을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기차역에서의 희롱과 박준채 사건을 대표적으로 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부분은 교육현장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물론 이 사건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일으키게 된 원인이 된 사건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사건 자체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으로 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하였다. 실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학생독립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사전에 조직된 힘과 단체들이 있었다는 점과 이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있었다는 내용을 강조하였으면 한다는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p>
            <p>또한 가족과 전문가들은 다른 역사적인 사건에 비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실제 이끌었던 주인공들에 대한 인물연구가 매우 부족한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는 의견이다. 장재성에 대한 기록물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함께 참여했던 인물들을 아카이브 하는 방안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인터뷰를 통해 아쉬웠던 점은 장재성의 사망일자 확인여부이다. 기존의 문헌분석이나 전문가 인터뷰에서도 알 수 없었다. 당시 교도관으로 근무하였던 장재성의 사촌형이 사망한 다음 날 전달해준 내용으로서 신뢰가 가능한 내용이지만, 정확한 법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임에도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았기에 검증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인터뷰를 통해 장재성이 사망한 일자가 1950년 7월 10일이라는 것이 확인 되었다.</p>
          </sec>
        </sec>
        <sec id="s2bc">
          <title>2.2.3 장재성 연대표</title>
          <p>장재성 연대표는 위의 장재성의 이력과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x3C;<xref ref-type="table" rid="t006">표 6</xref>&#x3E; 참조).</p><table-wrap id="t006" position="float"> <label>&#x3C;표 6&#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연대표</title> </caption> <table rules="all"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년도(나이)</th> <th align="center">장재성 연대 주요 내용 &#x261E; 국내&#x22C5;외 상황</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08</td> <td align="left">&#x2219;광주군 금계리 132에서 태어남 &#x261E; 1910:무단통치</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16(8세)~ 1921(13세)</td> <td align="left">&#x2219;광주공립보통학교(서석초등학교)입학 /&#x2219;1919년 3월 소학교 4학년 때 3&#x22C5;1운동 목격 /&#x2219;재학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하였으며, 광주소년야구대회에 출전하였음 / &#x261E; 1919:3&#x22C5;1운동, 상해임시정부수립 / 1920:문화통치시작</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22(14세)</td> <td align="left">&#x2219;1922년 4월 광주고보(광주일고)입학 &#x261E; 1922:물산장려운동 / 1925:치안유지법</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26(18세)</td> <td align="left">&#x2219;1926년 광주고보 5학년 시기에 신흥사상에 관심이 많았던 왕재일과 광주농업학교(광주농교) 박인생, 김낙균 등과 함께 중등학생 중심의 사회과학연구회를 만듦 /&#x2219;1926년 9월 본격적이 동지규합에 나선 후 11월 3일 성진회 결성<break/> &#x261E; 1926: 6&#x22C5;10만세운동</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27(19세)</td> <td align="left">&#x2219;1927년 3월 광주고보 졸업 /&#x2219;성진회 해체 /&#x2219;1927년 4월 일본 동경 중앙대학 주오 예과 입학<break/> &#x2219;조선인 유학생 연구모임중 &#x2018;신흥과학연구회&#x2019;와 &#x2018;재일조선유학생학우회&#x2019;에 입학하여 활동함<break/> &#x261E; 1927:신간회 결성(좌우합작)</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28(20세)</td> <td align="left">&#x2219;1928년 이경채 사건으로 동맹휴학 등의 방법으로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 되자 장재성은 최동문과 &#x2018;도쿄유학생 모교분규사건 대책 강구회&#x2019; 특파원 자격으로 급거 귀국하여 기존의 성진회원 최규창, 정우채, 유치오를 비롯해 서재옥, 김기권 등과 &#x2018;맹휴중앙본부&#x2019;를 조직함 /&#x2219;이 사건으로 1928년 8월 20일~30일까지 10여일간 당국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됨 /&#x2219;1928년 9월 다시 일본 동경으로 떠나지만, 광주지역 학생운동 조직화에 지속적으로 관여함</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29(21세)</td> <td align="left">&#x2219;1929년 5월 광주지역 학생운동의 통일적 지도가 요구되어 일본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함 /&#x2219;광주고보 독서회 중앙본부 결성 /&#x2219;1929년 6월 이후 광주고보 독서회 결성 /&#x2219;1929년 8월 독서회원들의 모임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장재성 빵집 (현 금남로 4가, 금남공원) 오픈 /&#x2219;1929년 10월 26일 동생 장매성의 친구 박옥희와 결혼 /&#x2219;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1차 시위가 일어난 후 조직적 대응을 모색하고자, 11월 4,5일경 신간회 광주지회와 광주청년동맹 등 광주 사회, 청년단체 간부 장석천 등과 만난 후, 보다 강력한 투쟁을 위한 학생 투쟁 지도본부를 결성하고 11월 12일 제2차 학생독립운동을 계획함 &#x261E; 1929.11.3:광주학생독립운동</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30(22세)~ 1934(26세)</td> <td align="left">&#x2219;광주학생독립운동사건으로 장재성은 구속되었음 /&#x2219;해당 사건으로 1930년 10월 20일 재판을 시작으로 10월 27일에는 성진회 재판을 하였으며, 성진회 사건관계자는 모두 치안유지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 보안법 7조 위반 등이 적용되었고, 장재성은 판결 결과 징역 7년이 구형되었음 /&#x2219;이후 대구로 이송되었으며 대구 복심법원에 공소되어 1934년 4월 23일 첫 공판이 열린 뒤 6월 13일 판결이 날 때까지 7차에 걸쳐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형량이 징역 7년에서 4년으로 줄어듦 /&#x2219;1934년 4년 간의 수감생활을 마친 후 출소함 &#x261E; 1931:만주사변 /1932:상해사변</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35(27세)</td> <td align="left">&#x2219;출소 이후 1935년 부인 박옥희와 일본으로 학업을 위해 유학길에 오르고, 이후 중앙대학 상경과를 졸업함</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37(29세)~ 1940(32세)</td> <td align="left">&#x2219;신흥과학연구회 중심으로 계속 활동하다가 1937년 형무소에 수감됨<break/> &#x2219;수감된 이후 경남 왜관으로 이송된 후 미결인 채로 3년 기간이나 감옥 생활을 하였으며, 1940년 출소함<break/> &#x261E; 1937:중일전쟁 민족말살정치본격화 / 1938:국가총동원법</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40(32세)~ 1945(37세)</td> <td align="left">&#x2219;1940년대 초 조선일보 광주지국을 운영하였으나 곧 그만둔 이후 1943년 제2의 광주학생독립운동(1943년 무등회 사건)에 관여함 /&#x2219;1943년 장성군 진원면에서 양조장 경영하며 마을 청년회를 만들어 함경도 장진으로 봉사활동 등을 하였음 /&#x2219;1945년 9월 전남건국준비위원회 조직부장 활동 /&#x2219;1945년 12월 광주청년동맹 조직 후 의장으로 활동<break/> &#x261E; 1940:광복군 결성 / 1945:광복</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46(38세)~ 1948(40세)</td> <td align="left">&#x2219;1946년 2월 전국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대회 전남대표 14인으로 참여 /&#x2219;1946년 3월 민주주의민족전선 전남지부 결성준비회의 총무부에서 활동 /&#x2219;1947년 7월 15일 &#x2018;광주민전피습&#x2019; 사건으로 광주민전사무실 앞에서 우익청년들 60 여명에게 테러 당함 /&#x2219;1948년 &#x2018;해주인민대표자대회&#x2019;에 참석하기 위하여 월북함<break/> &#x261E; 1946.3.: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 1946.5.: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 1946.6.:이승만의 정읍발언 &#x201C;남한 단독정부 수립&#x201D;/ 1946.7.:좌우합작위원회 / 1947.5.: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 1947.8.: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 1947.9.:미소공동위원회 UN에 한반도 문제 상정</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49(41세)</td> <td align="left">&#x2219;1949년 7월 일본을 경유하여 돌아온 장재성은 체포되어 육군형법 위반 징역 7년 형을 언도받고 광주형무소에 수감됨</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1950(42세)</td> <td align="left">&#x2219;광주형무소 수감 중 지산동에서 7월 10일 처형당함 &#x261E; 1950:6&#x22C5;25전쟁 발발</td> </tr> </tbody> </table> </table-wrap>
        </sec>
      </sec>
    </sec>
    <sec id="s3" sec-type="other">
      <title>3.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title>
      <sec id="s3a">
        <title>3.1 장재성 관련 기록 수집과 소장처</title>
        <p>장재성 관련 기록이 많지 않음을 독립운동 관련 업적 등을 조사하면서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해방이후에 나타난 사회주의 전력과 탄압(가족의 연좌) 등으로 많은 자료들이 망실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기록도 본인이 직접 남긴 글보다 그의 이력 즉 생애와 독립운동 과정 중에 일어난 행위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즉 언론에서 다루어진 보도 글, 법정과정과 판결문, 스토리자원, 기타 비매체 자료들이다.</p>
        <p>따라서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록물을 조사하여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재성과 관련된 소장처별 기록물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재성 인물에 관한 원본 기록을 소장하고 있는 소장처와 장재성과 관련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관련 시대적 연구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으로 소장처이다(<xref ref-type="bibr" rid="r018">김혜림, 2010, 73</xref>. 재구성). 둘째, 주요 소장처로는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장재성 사업기념회 등이 있다. 다음 &#x3C;<xref ref-type="table" rid="t007">표 7</xref>&#x3E;은 장재성 관련 주요 소장처 기관들의 현황을 조사하여 비교&#x22C5;분석한 결과이다.</p>
        <table-wrap id="t007" position="float">
          <label>&#x3C;표 7&#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張載性) 관련 기록 주요 소장처</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779441&amp;imageName=jksarm-2021-21-4-19-t007.jpg" position="float"/>
        </table-wrap>
        <p>국가보훈처는 공훈전자사료관을 통해 독립운동가와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장재성의 경우 현재 미서훈 상태이기에 독립운동가 인물정보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주역으로서의 그의 역할이 분명하기에 독립운동관련 자료, 언론사(<xref ref-type="bibr" rid="r003">광주 MBC, 2014</xref>; 2019), 장재성기념사업회(2020)에서는 유튜브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p>
      </sec>
      <sec id="s3b">
        <title>3.2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카테고리</title>
        <p>사회&#x22C5;정치적인 사유 등으로 남아있는 기록은 매우 적은 편이다. 이마저도 장재성 선생 후손 장윤영의 인터뷰에 의하면 언론사에서 취재 등의 사유로 기록물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고, 이제 남은 기록은 사진 10여장에 불과하다. 이에 더 이상의 기록들이 유실되지 않도록 기존의 기록들을 사진, 문헌 등으로 분류한 후 디지털화한다. 둘째, 체계적인 생애사 정리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황과 함께 장재성의 생애를 일대기로 세분화한다. 또한 인물이 활동하였던 조직&#x22C5;단체의 영역과 사건&#x22C5;운동의 영역을 사건별로 분류하여 기록을 배치한다. 다음 &#x3C;<xref ref-type="fig" rid="f001">그림 1</xref>&#x3E;은 해당 영역별로 나누어 구분한 내용이다.</p>
        <fig id="f001" position="float">
          <label>&#x3C;그림 1&#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생애사 영역 구분</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779441&amp;imageName=jksarm-2021-21-4-19-f001.jpg" position="float"/>
        </fig>
        <p>다음 &#x3C;<xref ref-type="table" rid="t008">표 8</xref>&#x3E;은 해당 영역별로 분류된 것을 바탕으로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카테고리 세부내역(안)을 나타낸 것이다. 다음 &#x3C;<xref ref-type="table" rid="t009">표 9</xref>&#x3E;는 장재성 관련 단체 인물들의 예이다.</p>
		<table-wrap id="t008" position="float">   <label>&#x3C;표 8&#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관련 단체 인물들(예시)</title> </caption> <table rules="all"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 colspan="4">소속단체 - 성진회(1926.11 ~ 1927.3)</th>   </tr>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 colspan="2">인적사항</th>   <th align="center" colspan="2">포상정보</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 left" colspan="2">독립유공자 공적조서</td> <td align="center">운동계열</td> <td align="left">학생운동</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관리번호</td> <td align="left">7898</td> <td align="center">포상연도</td> <td align="left">1991</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한자명</td> <td align="left">王在一(광주고보/성진회 총무)</td> <td align="center">훈격</td> <td align="left">애국장</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성별</td> <td align="left">남</td> <td align="center" rowspan="5">공적조서</td> <td align="left" rowspan="5">1926.11.3. 전남 광주에서 비밀결사 성진회를 조직하고 총무로 선임되어 활동함. 일부 회원들의 이탈로 해체하였다가 1927.11월 재조직함.<break/> 1929.5.1. 광주공립보통학교 전남공립사범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에 독서회를 비밀조직하고, 3교가 서로 연계하도록 조직함. 한편, 학생소비조합을 운영하여 오다가 1929.11.3. 광주학생시위운동이 일어나자 검거자의 탈환과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확립 등 격문을 철포하다 피체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고 출옥함. 그 후, 전남운동협의회를 비밀결사하여 농민운동과 야학회 등의 통일적 지휘체계를 세워 활동하다가 피체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생년월일</td> <td align="left">1904.1.19.</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사망년월일</td> <td align="left">1961.2.14.</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본적</td> <td align="left">전라남도 구례 光義 芝川 364</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주소</td> <td align="left">全南 光州 長興</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관리번호</td> <td align="left">50457</td> <td align="center">포상연도</td> <td align="left">2005</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한자명</td> <td align="left">朴仁生(광주농교/서기)</td> <td align="center">훈격</td> <td align="left">대통령표창</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성별</td> <td align="left">남</td> <td align="center" rowspan="5">공적조서</td> <td align="left" rowspan="5">광주공립농업학교 출신으로 1926년 9월 전남 광주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출신인 장재성&#x22C5;왕재일 등과 학생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합의하고, 동년 11월 독립 및 공산주의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성진회를 조직하여 서기를 맡는 등의 활동을 전개한 사실이 확인됨</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생년월일</td> <td align="left">1903.8.19.</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사망년월일</td> <td align="left">1929.5.12.</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본적</td> <td align="left">제주도 기타 南濟州 表善 城邑 935</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주소</td> <td align="left">濟州 南濟州 表善 城邑 935</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 colspan="4">독서회중앙부(1929.6 ~ 1929.11)</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left" colspan="4">김상환(광주고보): 조사선정부 위원 / 김보섭(광주고보): 조사선정부 위원 / 송동식(광주사범): 조직교양부 위원 / 김순복(광주 농교): 조직교양부 위원 / 조길룡(광주농교): 출판부 위원 / 강달모(광주사범): 재정부 위원 / 윤창하(광주고보): 재정부 위원</td>
</tr>
</tbody> </table>
</table-wrap>
		<table-wrap id="t009" position="float"> <label>&#x3C;표 9&#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선생 디지털 아카이브 카테고리 세부 내역</title> </caption> <table rules="all" frame="hsides"> <thead> <tr valign="middle"> <th align="center">대분류</th> <th align="center">중분류</th> <th align="center">소분류</th> </tr> </thead> <tbody>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인물소개</td> <td align="center">인물소개, 생애사, 가족관계</td> <td align="left">부모님, 여동생 장매성, 아내, 자녀(후손)</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 rowspan="2">년도별 일대기</td> <td align="center">년도별 일대기</td> <td align="left">1908:출생 / 1916:광주공립보통학교 입학 / 1922:광주고등보통학교 입학 / 1926:성진회 결성<break/> 1929:독서회 결성, 광주학생독립운동 주도 / 1930:4년 형 선고 / 1934:일본 중앙대학 상경과 유학<break/> 1937:신흥과학연구회 중심 활동으로 구속, 40년 석방 / 1945:광주청년동맹 의장<break/> 1949:육군형법 위반 징역 7년 형 / 1950:광주형무소 수감 중 총살</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시대적 상황</td> <td align="left">3&#x22C5;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광복 등</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 rowspan="4">독립운동의 영역</td> <td align="center">맹휴투쟁사건 특파원</td> <td align="left">동맹휴학지도부 역할에 따른 체포</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광주학생독립운동</td> <td align="left">검거 / 1심판결: 징역 7년형 / 복심판결: 징역 4년형</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신흥과학연구회활동</td> <td align="left">징역 3년형</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육군형법위반</td> <td align="left">징역 7년형</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관련 인물들</td> <td align="center">활동한 조직 및 단체</td> <td align="left">성진회, 독서회중앙부, 신흥과학연구회, 재일조선유학생학우회, 학생소비조합결성, 광주청년동맹, 민주주의민족전선 전남지부 결성준비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관련 장소</td> <td align="left" colspan="2">광주공립보통학교(서석초등학교) /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 장재성 빵집, 김기권 문방구점, 광주역, 광주형무소</td> </tr> <tr valign="middle"> <td align="center">기타</td> <td align="center">VR기념관</td> <td align="left">광주일고: 광주학생운동 기념역사관/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장재성기념사업회</td> </tr> </tbody> </table> </table-wrap>
      </sec>
      <sec id="s3c">
        <title>3.3 장재성 아카이브 구축안</title>
        <p>장재성 아카이브는 해설콘텐츠와 기록콘텐츠로 구분하여 설계하였다.<xref ref-type="fn" rid="fn021">21)</xref> 해설 콘텐츠는 인물소개, 년도별 일대기, 독립운동의 영역, 관련 인물들, 관련 장소 등으로 분류하였다. 특히, 해설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장재성에 대한 인물소개와 관련인물들에 대한 카테고리이다.</p>
        <p>인물소개에서는 인물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장재성 동생인 독립운동가 장매성을 포함하여 가족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장재성 선생과 관련된 인물들이 활동한 조직 및 단체에 따라 세분화하여 독립운동에 함께 참여했던 인물들의 정보를 함께 제시하도록 구성하였다. 해설콘텐츠는 기록콘텐츠로 링크되어 연결되는 구조를 택하였다(&#x3C;<xref ref-type="fig" rid="f002">그림 2</xref>&#x3E; 참조). 또한 기록물 소장처 기관에서 DB로 구축하고 있는 내용들과의 맵핑하여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DB로 구축되어 있는 자료 중에는 장재성과 관련된 원본 자료와 문헌, 번역본들을 수록한다. 둘째, 이와 관련한 장재성 정보자원을 갖고 있는 사이트들은 메타데이터로 분류된 해설에 따라 링크하여 제공한다. 셋째, &#x2018;장재성 아카이브 해설 콘텐츠&#x2019;와 &#x2018;기록콘텐츠&#x2019; 측면에서 &#x2018;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x2019;를 구축한다(<xref ref-type="bibr" rid="r023">박선희, 2013, 105</xref>; <xref ref-type="bibr" rid="r020">김희숙, 장우권, 2019, 486-487</xref>) (&#x3C;<xref ref-type="fig" rid="f002">그림 2</xref>&#x3E; 참조).</p>
        <fig id="f002" position="float">
          <label>&#x3C;그림 2&#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안)</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779441&amp;imageName=jksarm-2021-21-4-19-f002.jpg" position="float"/>
        </fig>
        <p>위의 &#x3C;<xref ref-type="fig" rid="f002">그림 2</xref>&#x3E;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안)에서 제시한 것을 바탕으로 가상 &#x2018;독립운동가 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x2019;를 구축하면 다음 &#x3C;<xref ref-type="fig" rid="f003">그림 3</xref>&#x3E;(사진, 장재성기념사업회), &#x3C;<xref ref-type="fig" rid="f004">그림 4</xref>&#x3E;(사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와 같다. &#x3C;<xref ref-type="fig" rid="f003">그림 3</xref>&#x3E;에서는 장재성기념사업회, 장재성선생, 연도별 일대기, 독립운동 전개과정, 관련인물, VR기념관으로 총 6개로 주제를 또한, 장재성선생기념사업회 활동과 언론보도 사항을 홈페이지 하단에 배치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광주제일고 광주학생운동 기념 역사관, 공훈전자사료관, 독림운동판결문을 홈페이지 우측에 배너로 게시하여 링크서비스를 통해 각 기관으로 연결이 가능하도록 제시하였다.</p>
        <fig id="f003" position="float">
          <label>&#x3C;그림 3&#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가상화면 1</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779441&amp;imageName=jksarm-2021-21-4-19-f003.jpg" position="float"/>
        </fig>
        <fig id="f004" position="float">
          <label>&#x3C;그림 4&#x3E;</label>
          <caption>
            <title>장재성 디지털 아카이브 가상화면 2</title>
          </caption>
          <graphic xlink:href="../ingestImageView?artiId=ART002779441&amp;imageName=jksarm-2021-21-4-19-f004.jpg" position="float"/>
        </fig>
        <p>위의 &#x3C;<xref ref-type="fig" rid="f004">그림 4</xref>&#x3E;는 &#x3C;<xref ref-type="table" rid="t008">표 8</xref>&#x3E; 장재성 관련 단체 및 인물들과 관련한 예시를 바탕으로 구축한 화면이다. 해당 화면은 활동 조직 및 단체로 크게 성진회와 독서회로 구분하였다. 그 중 왼쪽 하단에 위치한 단체명을 클릭하면 관련 단체에 함께 활동한 인물들에 대한 이름이 나열되며, 해당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제시되게 구성하였다. 본 화면은 성진회 회원인 왕재일과 정남균에 대한 인물을 소개한 화면이다. 해당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이용자들은 장재성 선생과 관련된 최근 업데이트 되는 정보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관련 기관과의 링크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사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재성과 관련한 영상의 경우 해당 영상들의 저작권은 방송사에서 갖고 있기에 저작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방송사와의 협의를 거쳐 영상을 구매한 후 아카이브 구축시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해당 방송사에서 유튜브 계정에 영상이 탑재되어있기에, 링크를 통해 해당면을 연결하여 제공한다.</p>
      </sec>
    </sec>
    <sec id="s4" sec-type="conclusions">
      <title>4. 결 론</title>
      <p>이 연구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장재성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교육자들과 학습자들에게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장재성이 갖는 역사적인 가치를 재정립하고자 함에 있다.</p>
      <p>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재성에 대한 기록은 시대별 주요 활동으로 나누어 그가 활동했던 단체의 특징과 사건, 그와 관련 인물들을 세부적으로 구분하였다. 특히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으로 그가 활동했던 성진회, 독서회 등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인물들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안을 제시하였다. 둘째, 기록유형은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등 각 기관에서 장재성과 관련하여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조사하여 소장 처별로 제시하였다. 각 기관의 장재성(張載性) 관련 기록 소장 현황은 국가기록원 &#x2018;독립운동관련판결문&#x2019;(15건), 국사편찬위원회의 &#x2018;한국사 데이터베이스&#x2019;(72건),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36건), 국가보훈처 &#x2018;공훈전자사료관&#x2019;(57건)으로 총 180건이다. 자료원문 이미지와 번역문, 텍스트 형식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세부사항부터 중요범죄 보고표, 장재성의 판결문 등의 다양한 기록들이다. 셋째, 가족 인터뷰는 장재성에 대한 전반적인 생애사 수정 및 보완과 검증을 위하여 장재성 아들과 손자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전문가 인터뷰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연구자들과 장재성기념사업회창립 위원 6인을 선정하여 이루어졌다. 특히 장재성의 기록이 현저히 적은 편에 속하기에 아들의 구술기록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가족 인터뷰를 통해 생애사의 중요한 사건인 장재성의 사망일자가 1950년 7월 10일이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전문가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갖고 있는 위상과 역할을 고려할 때 장재성과 더불어 참여했던 인물들을 함께 아카이브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넷째, 콘텐츠는 해설콘텐츠와 기록콘텐츠를 설계하여 각 소장처 기록과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영역은 장재성 일대기, 조직&#x22C5;단체의 영역, 사건&#x22C5;운동의 3개 영역으로 분류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설콘텐츠를 마련하였다. 또한 세분화한 해설콘텐츠를 기록콘텐츠와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기록콘텐츠는 각 소장기관별 연결지점을 표시하고, 해당 기록면으로 연결하는 방안과 검색기능을 마련하여 이용자가 검색을 통해 소장처별로 연결 된 상세 내용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추가적으로, 현재까지 광주학생독립운동가들의 아카이브가 구축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해당 사건에 대한 인물들을 함께 아카이브로 구축, 데이터를 제공하는 안을 제시하였다.</p>
      <p>이 연구의 결과 활용할 수 있는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재성 선생의 기록물을 통해 전반적인 생애사를 재조명함으로써 그의 삶의 궤적에서 독립운동에 기여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둘째, 해당 아카이브를 통해 주요한 사건에 대한 인물들의 스토리를 함께 아카이브로 구축하여 제공하고, 교육자들은 그와 관련된 독립운동사건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교육적인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후손들과 학습자들에게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올바르게 재인식케 하고 국가의 발전은 선조들의 희생의 결과에 기인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과 연구 자료로 제공된다. 셋째, 잊혀져가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개인이 갖는 기록물의 중요성과 역사적 가치를 독립운동측면에서 재조명할 수 있다.</p>
    </sec>
  </body>
  <back>
    <fn-group>
      <fn fn-type="other">
        <p>&#x25AA;본 논문은 김문희의 석사학위논문 &#xFF62;디지털 인물 아카이브 구축 방안-광주학생독립운동가 장재성을 중심으로&#xFF63;(2021)를 수정&#x22C5;요약한 것임.</p>
      </fn>
      <fn id="fn001">
        <label>1)</label>
        <p>장매성(1911.06.22~1993.12.14)은 장재성의 동생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광주여고보의 독서회를 이끌었다. 광주여고보에 재학중이던 1928년 11월에 동교생 장경례, 박옥련, 고순례 등과 함께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모여 조국의 독립과 여성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장매성은 소녀회를 주도해 가두시위를 벌이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하고 식수를 공급했으며, 경찰의 진압에 맞서기 위한 돌멩이를 운반하는 등 남학생들의 시위를 도왔다. 이후 독서회 활동으로 검거되어 2년간 복역을 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1993년 별세 이후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p>
      </fn>
      <fn id="fn002">
        <label>2)</label>
        <p>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일본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 이후 문화정책을 앞세워서, 각 도에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고보)는 1920년에 사립으로 설립되었다가, 1922년 조선총독부직속기관으로 관립으로 설립되었다. 1926년부터는 전라남도에 소속된 공립학교로 전환되었다. 광주고보는 당시 한국인 학생이 다닐 수 있는 광주지방의 유일한 인문계 고등보통학교로서 학생들 대부분은 시골출신이었다. 광주고보의 학생들은 한국인 준재만이 모인 학교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였으며 정의로운 기개가 자못 높았다. 이들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을 보고 자라는 세대들이었기에 배일감정이 드높았고 민족해방에 대한 열망도 뜨거웠다. 광주고보는 해방이 되던 해까지 25년 동안 입학생이 2,500명이었는데 학생독립운동으로 말미암아 절반이상이 퇴학을 당하여 졸업생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1,200명 수준이었다.</p>
      </fn>
      <fn id="fn003">
        <label>3)</label>
        <p>송홍(1871~1949)은 1871년 나주 남평읍 우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헌병에게 잡혀가는 등 고초를 겪었다. 후에 교육을 뜻을 두어, 1909년 광주공립보통학교(현재 서석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에는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후에 이 학생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청년운동을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했다. 1930년 일제의 압박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광복 후에는 광주고보 후신인 광주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후에 1949년 6월 18일 별세하였다.</p>
      </fn>
      <fn id="fn004">
        <label>4)</label>
        <p>1. 일제의 굴레에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한다. 2.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을 절대 반대한다. 3. 언론&#x22C5;출판&#x22C5;결사의 자유를 요구한다.</p>
      </fn>
      <fn id="fn005">
        <label>5)</label>
        <p>신흥과학연구회는 1926년 11월 결성되어 기관지 &#xFF62;신흥과학&#xFF63;을 발행하고 있었으며, 1928년~1929년 당시 학생운동에 관한 이론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p>
      </fn>
      <fn id="fn006">
        <label>6)</label>
        <p>이경채사건은 1928년 6월 일어난 사건이다. 광주고보 5학년이던 이경채가 친구인 박병하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 타도, 무산계급의 단결과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내용의 선언서, 건전한 사상의 소지자가 되려고 하는 학생제군에게 고함, 자본주의 계급적 고등충복제군에게 고함 이라는 격문을 광주, 송정리 각처와 도내 각 중학교 및 경찰서에 배포하다가 발각된 것이다. 일인 교장이 이경채를 퇴학시키자 1928년 6월 26일 1학년을 제외한 전 학년이 동맹휴학을 단행했다. 이 일로 정동화 등 27명이 퇴학당하고, 김기건 등 281명이 무기정학에 처해졌다.</p>
      </fn>
      <fn id="fn007">
        <label>7)</label>
        <p>각 부서와 책임자는 다음과 같다. - 책임비서: 장재성. - 조사선전부 위원: 김상환, 김보섭. 조직교양부 위원: 송동식, 김순복. 출판부 위원: 조길룡. 재정부 위원: 강달모, 윤창하.</p>
      </fn>
      <fn id="fn008">
        <label>8)</label>
        <p>이기홍(1912.~1996.12.07)은 전남 완도 출생으로 1929년 광주고보 2학년 재학중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이듬해에는 백지동맹을 주도하여 퇴학당했다. 낙향 후에는 농민운동에 투신, 1934년에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2년 6개월 복역했고, 일제 말기인 1939년부터는 거주제한 조치를 당했다.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시위원을 지냈다. 종전 후 1954년에는 구국동맹 사건으로 3년여의 옥고를 치렀고, 1960년에는 광주 4&#x22C5;19시위로 체포 구금되었다. 이후 독재정권하에 지속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매 정권마다 15회 이상 검거, 12년 6개월 투옥생활을 거쳤고, 생애 말년 실명 상태에서 구술로 자신의 삶과 사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 후 그는 1996년 12월 7일 사망했으며, 광주광역시 망월동 묘역에 안장되었다.</p>
      </fn>
      <fn id="fn009">
        <label>9)</label>
        <p>- 광주 및 전조선 학생의 지도: 장석천. - 광주 조선인 학생의 지도: 장재성. - 전남 도내 지방학생의 지도: 국채. - 직공 및 노동단체의 지도: 박오봉. - 전남 도내 공립보통학교 교사와의 연락: 임종근. - 외래동지와의 연락: 강석원. - 운동자금의 조달: 나승규.</p>
      </fn>
      <fn id="fn010">
        <label>10)</label>
        <p>흥학관은 광주 항일운동의 총본산이다. 이곳은 3&#x22C5;1운동 당시 청년운동가들의 모임터였으며, 장재성, 왕재일 등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이 저항의 싹을 틔웠던 곳이기도 하다. 흥학관의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1914년 발간된 &#x2018;광주읍지&#x2019;에 따르면 서광산정(광산동)에 있으며, &#x201C;최명구가 청년들을 위해 수양회장으로 세운 것이다&#x201D;고 전해지고 있다. 다만, 1921년 4월 15일 매일신보에서 &#x201C;興學館을 建築, 성대한 낙성식 거행&#x201D;이라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바, 1921년 200여평 규모의 목조 건물로 확장된 것이라 추측된다. 설립 이래로 흥학관은 1920~30년대 광주 지역의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광주 전라 일대에서 활동했던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계몽운동가들은 흥학관에 모여 민족의 앞날을 토론하고 야학과 강연을 통해 후학을 기르는데 힘썼다. 김구 선생과 안창호 선생도 흥학관에 초청되어 청년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다. 현재 건물은 철거됐고, 그 터에는 사적지 표적이 설치되어 있다.</p>
      </fn>
      <fn id="fn011">
        <label>11)</label>
        <p>1938년 광주고보의 주만옥, 강한수, 유몽룡 등이 독서회(후에 무등회로 개칭)를 조직하여 학생층을 대상으로 독립 사상과 항일 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여 나갔고, 1943년 5월 21일 학도 지원병 반대, 창씨개명의 반대, 일본어 사용 반대, 징병제의 반대 등을 주장하면서 일제히 동맹휴학에 들어간다. 이를 무등회사건 또는 제2차 광주학생독립운동이라고도 한다.</p>
      </fn>
      <fn id="fn012">
        <label>12)</label>
        <p>장재성 아들 장상백의 인터뷰(2020. 8. 27. 자택)</p>
      </fn>
      <fn id="fn013">
        <label>13)</label>
        <p>장재성 아들 장상백의 인터뷰(2020. 8. 27. 자택)</p>
      </fn>
      <fn id="fn014">
        <label>14)</label>
        <p>선정이유: 아들 장상백은 부친(장재성)에 대한 기억의 회상(추억과 기억)을, 손자(장윤형)는 부친과 주변사람들로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상함.</p>
      </fn>
      <fn id="fn015">
        <label>15)</label>
        <p>장상백(아들), 장윤영(손자). 2020.8.27.(목). 전자우편(자택).</p>
      </fn>
      <fn id="fn016">
        <label>16)</label>
        <p>A는 광주학생독립운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전(前) 국가보훈처에서 공훈심사과 전문관 및 연구관으로 근무하였다.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다(인터뷰: 2020.9.8(화). 전자우편. 자택). B는 근대 독립운동사 전공자로 광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남대학교 광주학생독립운동연구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근대 독립운동사와 관련 다수의 연구를 진행하였다(인터뷰: 2020.9.7(월). 전자우편. 자택). C는 장재성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장재성 선생의 신원회복을 위하여 업적과 생애와 관련한 내용으로 &#x201C;광주의 의인들, 오월에 생각하는 장재성 선생&#x201D;, &#x201C;광주의 의인들 - 독립훈장 신설&#x201D; 등의 활발한 기고활동을 하였다(인터뷰: 2020.8.21(금). 전자우편. 자택). D는 전(前) 전남대학교 학생독립운동연구소 연구실장으로 근무하였고, 항일기록에 대한 분야를 연구해왔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청에서 근무 중이며, 장재성 기념사업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를 다수 진행하였다(인터뷰: 2020.8.22(토). 대면. 광주동구). E는 5&#x22C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연구실장으로 근무하였으며, 장재성 기념사업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인터뷰: 2020.8.19(수). 대면. 광주동구). F는 현대사를 전공, 고등학교에서 23년간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이며,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인터뷰: 2020.8.20.(목). 대면. 광주동구).</p>
      </fn>
      <fn id="fn017">
        <label>17)</label>
        <p>독립운동관련 판결문. 출처: <uri>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Main.do</uri>; 판결문: 광주지방법원형사부(1930.10.27.) - 징역 7년 미결구류일수 80일 본형에 산입(원문제공) 외 2건, 수형인명부: 대구복심법원(1931.6.13.) - 징역 4년 미결구류 369일 통산 법정 4일 통산(원문 미제공), 집행원부:대구복심법원(1931.6.13.) - 징역 4년 재판미결구류통산 365일 법정미결구류통산 4일 공소 이유 있음(원문 미제공) 외 8건, 형사사건부: 대구복심법원(1심 1930.10.27. 2심 1930.6.13.) - 1심 징역 7년 미결구류 통산 80일 2심 징역 4년 미결구류 통산 365일(당심 합산)(원문 미제공)외 1건 [검색일. 2020.09.15]</p>
      </fn>
      <fn id="fn018">
        <label>18)</label>
        <p>&#x2018;장재성&#x2019;은 도서(7건), 문서(17건), 편년자료(8건), 연속간행물(16건), 한국사연표(7건), 목록&#x22C5;연구논저(17건) 등 총 72건</p>
      </fn>
      <fn id="fn019">
        <label>19)</label>
        <p>도서(11건), 문서(10건), 연구자료(8건), 연표(7건) 등 총 36건</p>
      </fn>
      <fn id="fn020">
        <label>20)</label>
        <p>독립운동사-학생독립운동사(4건), 독립운동사자료집-학생독립운동사자료집, 재일본한국인민족운동자료집(31건), 독립유공자증언자료집-김상권(1건), 사상월보(광주학생사건범죄자신원조 등)(3건), 재일조선인 관계자료집성(특고월보 등)(3건), 한국 민족해방운동사 자료집(강문영의 판결서 등)(2건), 매일신보(원문제공)(12건), 신한민보(광주학생사건 총본영)(1건); 사상월보: 일본 사법성 형사국 기관지로서 당시 일본 사법성은 일본 법무성과 최고재판소의 전신으로 한국독립운동을 비롯한 사상운동을 통제하는 중추기관이었다. 사상월보에는 한국독립운동 관련 기록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특고월보:일본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 발행의 특고경찰 기록</p>
      </fn>
      <fn id="fn021">
        <label>21)</label>
        <p>해설콘텐츠는 주제별로 의미와 내용파악을 위한 것(장재성 일대기, 조직&#x22C5;단체의 영역, 사건&#x22C5;운동. 장재성 일대기, 조직&#x22C5;단체의 영역, 사건&#x22C5;운동 등). 기록된 것보다 구술 또는 비공식 기록이 주이다. 기록콘텐츠는 판결문, 언론, 독립유공자 등에 공식적으로 콘텐츠가 기술되어 있다.</p>
      </fn>
    </fn-group>
    <ref-list>
      <ref id="r001">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other">
          <collab>高等法院檢查局</collab>
          <source>證調書. 思想月報, 第3卷, 第十一號(昭和九年二月十五日)</source>
          <year>1932</year>
          <fpage>252</fpage>
          <lpage>259</lpage>
        </element-citation>
      </ref>
      <ref id="r002">
        <element-citation publication-type="web">
          <collab>공훈전자사료관</collab>
          <year>2020</year>
          <month>12</month>
          <day>2</day>
          <comment>출처: <uri>https://e-gonghun.mpva.go.kr/user/index.do;jsessionid=BVE09tKmaHNkU4aUUFTjVn_B_K2yHWIXPTJFGfi3.rems20</uri></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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