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ART001356602},
author={장규식},
title={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journal={중앙사론},
issn={1229-3652},
year={2009},
number={29},
pages={243-249}
TY - JOUR
AU - 장규식
TI -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JO - 중앙사론
PY - 2009
VL - null
IS - 29
PB - Institute for Historical Studies at Chung-Ang University
SP - 243
EP - 249
SN - 1229-3652
AB - 이 영문자료는 서울, 함흥, 광주 일대의 마을들을 대상으로 한국 YMCA에서 전개한 농촌재건사업 보고서이다.
YMCA 농촌사업은 천도교 조선농민사의 운동과 더불어 일제하 부르주아 민족주의 계열의 농촌ㆍ농민운동을 대표하는 운동이었다. 한국 YMCA가 종래의 도시 중심적, 중산층 중심적 성격에서 탈피하
여 전체 인구의 8할 이상이 거주하는 농촌사회의 기층 대중 속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농촌사업에 착수한 것은 1925년이었다. 이 해 YMCA는 연합회 내에 농촌부를 신설하고, 간이교육의 실시와 삼각
농우회의 조직 등을 비롯한 농민교육ㆍ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28년 예루살렘 국제선교대회 이후에는 전국을 중앙ㆍ호남ㆍ관북ㆍ관서ㆍ영남지방의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사업조직을 정비하고, 산업신용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협동조합의 조직에 주력하는 한편, 기독교계 연합으로 농촌사업협동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국 주요 거점지역에서 이론과 실습을 겸한 10일 단위의 농사강습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YMCA는 정신의 소생, 생활의 조직, 농사개량을 내용으로 하는 농촌사업 3대강령을 발표하면서 1932년 서울 신촌에 3개월 코스의 농민수양소를 개설하여 농촌지도자 양성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영문자료는 5쪽 분량의 짤막한 보고서이지만, 10년간에 걸쳐 전개된 YMCA 농촌사업의 전모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는 한국농촌의 경제적 여건과 YMCA에서 펼친 농촌사업을 개관한 뒤, 농촌사업의 책임자와 프로그램에 대해 정리를 하고, 북미YMCA 국제위원회 농촌선교 담당자들의 코멘트와 1933-35년도의 예산을 덧붙이고 있다. 보고서가 쓰여진 시점이 농촌진흥운동을 앞세운 일제 당국의 간섭과 적극신앙단사건을 둘러싼 YMCA의 내분, 그리고 세계적 불경기로 인한 북미YMCA의 지원 감소로 YMCA 농촌사업이 사실상 막을 내리려 하던 때라는 점에서, 이 자료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YMCA 농촌사업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11개 항목에 걸친 농촌사업 프로그램의 개괄은 YMCA 농촌사업의 전모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 자료의 백미라 할 수 있다.
KW -
DO -
UR -
ER -
장규식. (2009).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중앙사론, 29, 243-249.
장규식. 2009,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중앙사론, no.29, pp.243-249.
장규식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중앙사론 29 pp.243-249 (2009) : 243.
장규식.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2009; 29 : 243-249.
장규식.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중앙사론 no.29(2009) : 243-249.
장규식.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중앙사론, 29, 243-249.
장규식.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중앙사론. 2009; 29 243-249.
장규식.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2009; 29 : 243-249.
장규식. "Rural Reconstruction Work in Korea" 중앙사론 no.29(2009) : 243-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