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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Community in the New York-New Jersey Area in the 1980s

  • 중앙사론
  • 2012, (36), pp.573-640
  • Publisher : Institute for Historical Studies at Chung-Ang University
  • Research Area : Humanities > History

민병갑 1

1Queens College

Accredited

ABSTRACT

이 논문은 뉴욕․뉴저지 지역의 1980년대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1980년대 뉴욕․뉴저지 지역 한인사회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서 본 논문은 다음의 네 가지를 주로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인의 미국 이민 증가에 의한 이 지역의 교포 인구 증가, 둘째는 교포 이민자의 이 지역에서 정착 양상과 한인타운 건설, 셋째는 이 지역 교포의 1980년대의 상업활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포의 상업활동상과 관련된 타민족과의 갈등 및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민족단결이다. 1980년대는 한국인의 미국 이민 절정시기였는데, 그 결과 뉴욕, 뉴저지 지역의 한인 인구도 1980년에 4천명 미만에서 1990년에 12만 명 가까이로 성장해 10년 동안 32배로 증가했다. 이 기간에 퀸즈가 한인 거주지의 중심이 되었으며, 플러싱 지역 한인타운이 한인 상가와 함께 개발되었다. 또한 맨하탄 브로드웨이의 한인 도매상가도 이 10년 기간에 절정을 이루었다. 동시에 이미 1980년대 말부터 교포의 교외로의 거주지 이동이 시작되어 뉴저지 버겐 카운티의 여러 지역에 교포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롱아일랜드 나소 카운티와 북부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도 교포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뉴욕, 뉴저지 지역의 교포의 주요 사업체인 잡화 도매상 및 소매상, 봉제업, 청과업, 식품업, 세탁업 및 네일업 등이 1980년대에 완전히 개발되었다. 센서스 자료는1980년과 1990년의 뉴욕 교포의 자영업율이 2000년 보다 높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1980년대 말까지 뉴욕, 뉴저지 지역에서 중요한 사업협회가 설립되어 한인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기혼여성이 거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시기였는데, 70% 이상의 교포 기혼 여성이 주로 가족단위의 사업체나 다른 한인 가게에 고용되어 가정 경제에 큰 공헌을 했다. 1980년대 이 지역의 교포 상인은 주로 소매업에 종사하고 특히 대자본이나 백인이 투자를 꺼리는 흑인이나 라틴계 소수민족 거주지역에서 소매업에 종사했다. 그 결과 여러 흑인지역의 한인 청과상 및 식품점은 흑인에 의한 장기 불매운동을 당하기도 했다. 교포가 경영하는 청과, 식품 및 생선 소매상들은 미국 백인 도매상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많은 인종차별을 받았다. 특히, 헌츠포인트 도매상에 가서 청과물을 사오는 교포 청과업자들은 차별 뿐만 아니라 도매상 고용인들로부터 폭력의 피해를 자주 입었다. 교포 청과 소매인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청과협회를 통해 백인 도매상 불매운동을 여러 번 조직했다. 교포상인이 도매상의 고객의 50-60%를 차지했기 때문에 불매운동 대상 도매상은 대략 불매운동 1주일 안에 손을 들고 사과와 함께 청과협회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대부분 수락했다. 흑인불매운동 및 백인 도매상과 대항하고 교섭하는 과정에서 교포 상인 및 한인사회가 전체적으로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교포 지도자들은 정치적 협상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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