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ART002033167},
author={Jeong Hyeon-gyeong},
title={Han Woonsa},
journal={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issn={1225-7729},
year={2015},
number={49},
pages={259-311},
doi={10.17938/tjkdat.2015..49.259}
TY - JOUR
AU - Jeong Hyeon-gyeong
TI - Han Woonsa
JO -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PY - 2015
VL - null
IS - 49
PB - The Learned Society Of Korean Drama And Theatre
SP - 259
EP - 311
SN - 1225-7729
AB - 한운사(본명은 한간남(韓看南), 1922~2009)의 방송극은 선택된 사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인간의 삶과 역사의 속내를 허구라는 틀 속에 담아 그려내며 시청자로 하여금 가려진 역사 속 진실과 대면하게 한다. 정현경,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24~26면 참조.
일제의 강점으로 시작된 20세기를 산 한국인들 모두가 그러하였듯이 한운사는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그의 인생에서 현재로 살아왔다. 80여 편에 달하는 한운사의 방송극은 그의 인생 여정인 동시에 그가 살아온 질곡의 역사에 대한 미메시스(mimesis)라고 할 수 있다.
극작가로서의 한운사가 추동해내는 상상력의 구심점이 그가 살아온 ‘한국사’에 맞닿아 있는 것은 그의 문학관과 관련이 깊다. 그는 문학이나 영화를 자기가 살아본 세상에 있었던 일,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였느냐는 이야기, 그런 것을 재현해 내일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가를 상의해 보는 장으로 인식하였다. 한운사, 『구름의 역사』, 민음사, 2006, 112면.
더불어 그는 식민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트라우마(trauma)를 ‘소화’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건강도, 개인의 건강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위의 책, 126면.
. 한운사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았던 민족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한 민족의 ‘트라우마’이자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독소’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운사가 끊임없이 ‘한국사’를 소환하고 있는 이유는 문학이 독자/시청자로 하여금 불행했던 역사로서의 민족적 ‘트라우마’를 직면하도록 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한운사의 극작은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한국전쟁 그리고 4.19혁명과 5.16쿠데타로 대표되는 정치적 갈등과 모순의 1960~1970년대로 이어지는 질곡의 한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운사의 작품 중,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향한 노모(老母)의 기다림과 죽음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비극을 극화한 ‘광복절 특집드라마’이다.
1970년대에 8.15광복을 기념하는 특집극으로 방영된 한운사의 TV 방송극은 모두 4편이다.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으로 방영된 「미싯가루」(TBC, 1975)를 비롯하여 「기다려도 기다려도」(MBC, 1977)와 같은 해인 197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3부작으로 제작되어 미니시리즈의 가능성을 보여준 「나루터 3대」(KBS, 1977) 그리고 「파도여 말하라」(TBC, 1978)가 그것이다. 1970년대에는 계몽과 선전선동의 목적극이 주류를 형성하였는데, 이들 특집극을 통해서 목적극의 실상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억압과 통제의 방송 현실에서도 소극적이나마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견지하고자 했던 작가 정신도 발견할 수 있다. 윤석진,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 <미싯가루> 해제」, 『한국극예술연구』 제37집, 한국극예술학회, 2012, 231면 참조.
한운사는 광복 기념 특집극들을 통해 일제강점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을 극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 30여 년이 흐른 서울의 종로를 극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197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해 동시대성과 리얼리티(reality)를 획득하고 있다. 극의 전개는 교회의 교육관을 짓기 위해 몇몇의 교인이 여씨 할머니(정혜선 분)가 살고 있는 땅을 매입하고자 하나 할머니가 매매를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시작된다. 할머니가 땅 팔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데 이로 인해 독자/시청자의 궁금증은 증폭되고, 결국 서서히 할머니의 사연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여씨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징병당한 둘째 아들 재성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다리고 있다. 광복 이후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들의 소식은 없다. 그 누구도 아들의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여씨 할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언제가 반드시 아들이 생환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을 지키며 외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할머니의 간절한 기다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씨 할머니가 살고 있는 땅에만 관심을 보인다. 교회 교육관을 짓기 위해 어떻게든 땅을 사려고 애쓰는 교인들을 비롯하여 큰아들 재건이 어음을 갚지 못하자 여씨 할머니의 땅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으라는 엄격호나 재건의 아내 등은 모두 할머니가 집을 지키는 이유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때마침 재성의 전우였던 두 명의 사내가 재성이 이미 오래전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여씨 할머니에게 전한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여씨 할머니는 더 이상 집을 지킬 이유를 상실하고 쓸쓸하게 운명한다.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민족의 수난과 비애를 여씨 할머니의 비극적인 기다림의 삶과 죽음으로 그려냄으로써 일제의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기다려도’를 반복하고 있는 제목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여씨 할머니의 아들에 대한 기다림의 크기와 간절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할머니의 기다림이 좌절될 것임을 암시한다. 아들이 돌아오지 않은 할머니에게 ‘광복(光復)’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이며, 식민 지배로 인한 민족 수난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일 뿐이다. 여씨 할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큰아들 재건 부부의 모습과 허망하고 무표정한 전 노인(최불암 분)의 표정은 극에 비극성을 더하며 민족의 비애를 환기시킨다. 이때 들려오는 교회 성가대의 코러스는 할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듯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렇듯 「기다려도 기다려도」가 비극적인 파국을 맞으면서 일제의 식민정책에 대한 비판은 더욱 고조된다.
여씨 할머니의 기다림은 아들에 대한 기억을 전제로 한다. 할머니는 “멀쩡한 얼굴로 끌려가던”(244면) 순간의 아들 얼굴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8.15광복으로부터 32년이 지난 1977년까지 할머니는 징병 당하던 당시의 아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할머니의 아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때도 할머니만큼은 아들의 생존을 확신하고 있다. 할머니의 비극이 한 개인의 불운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민족 수난의 역사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들에 대한 할머니의 기억을 민족 수난의 역사에 대한 민족적 기억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민족 수난의 역사에 대한 기억의 서사이자, 지난한 역사의 극복과 진정한 주권 회복에 대한 기다림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여씨 할머니의 죽음은 역사의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문학작품에서 흔히 ‘조국’이 ‘어머니’로 상징되듯이 여씨 할머니도 수난의 역사를 살아온 조국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여씨 할머니의 죽음은 역사의 비극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그러한 역사의 종결을 의미한다. 한운사는 등장인물의 명명(appellation)을 인물의 캐릭터(character)를 창조하고 주제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극작술의 하나로 활용한 작가다. 그의 명명 기법은 「기다려도 기다려도」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할머니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한운사는 여씨 할머니의 큰아들 이름을 ‘오재건’으로 명명함으로써 여씨 할머니로 상징되는 비극의 역사를 종결하고, ‘오재건’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재건’될 것이라는 희망과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한 여인의 인생에서 가족사의 비극을 넘어 민족의 슬픔과 과제를 환기시키는 「기다려도 기다려도」를 통해 1970년대 근대화와 산업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극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재미이다. 여씨 할머니의 집은 “고층 빌딩의 전깃불이 여기저기 환”(241면)하고, “온갖 잡스러운 것들이 와글거리며 밤낮으로 쓸고 닦아도 먼지가 쌓”(249면)이는 “소음”(233면) 가득한 종로의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건설과 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곳이자, 1970년대의 서울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할머니의 집에서 가정부를 하고 있는 순희는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젊은 처녀로, 1970년대 이농현상이 야기한 여성 하위주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공장이 들어서구 야단이라구”라는 순희의 말을 통해 순희의 고향에도 산업화의 물결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응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여씨 할머니의 땅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여씨 할머니의 비극적인 삶은 근원적으로 일제의 군국주의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민족의 수난으로 비롯된 개인의 비극에 대해 무관심했던 정부와 이웃 주민들뿐만 아니라 여씨 부인의 아들과 며느리까지도 할머니의 비극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여씨 할머니와 같이 식민의 역사로 인한 민족의 문제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강제 징용 당한 한국인들이 여전히 조국을 찾지 못한 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광복 70주년이 지난 현재에도 「기다려도 기다려도」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KW -
DO - 10.17938/tjkdat.2015..49.259
ER -
Jeong Hyeon-gyeong. (2015). Han Woonsa.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49, 259-311.
Jeong Hyeon-gyeong. 2015, "Han Woonsa",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no.49, pp.259-311. Available from: doi:10.17938/tjkdat.2015..49.259
Jeong Hyeon-gyeong "Han Woonsa"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49 pp.259-311 (2015) : 259.
Jeong Hyeon-gyeong. Han Woonsa. 2015; 49 : 259-311. Available from: doi:10.17938/tjkdat.2015..49.259
Jeong Hyeon-gyeong. "Han Woonsa"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no.49(2015) : 259-311.doi: 10.17938/tjkdat.2015..49.259
Jeong Hyeon-gyeong. Han Woonsa.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49, 259-311. doi: 10.17938/tjkdat.2015..49.259
Jeong Hyeon-gyeong. Han Woonsa.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2015; 49 259-311. doi: 10.17938/tjkdat.2015..49.259
Jeong Hyeon-gyeong. Han Woonsa. 2015; 49 : 259-311. Available from: doi:10.17938/tjkdat.2015..49.259
Jeong Hyeon-gyeong. "Han Woonsa"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no.49(2015) : 259-311.doi: 10.17938/tjkdat.2015..49.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