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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 <미싯가루> 해제

Yun, Suk-jin 1

1충남대학교

Accredited

ABSTRACT

1970년대 방송계는 경제 성장을 알리기 위해 정책 홍보성 드라마들이 대거 방영될 정도로 계몽과 선전선동의 목적극이 주류를 형성하던 시기였다. 1972년 유신헌법 선포 이후 방송계는 유신 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방송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신과 긴급조치의 억압과 통제의 틀에 순응 또는 적응하면서 반공드라마를 강화하고, 새마을운동을 홍보하는가 하면,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웃 간의 화합과 이상적인 사회 모습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형성했던 시기가 바로 1970년대였다. ‘동양방송(TBC-TV)’의 <토요무대> 제 15화이자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으로 1975년 8월 9일 방영된 <미싯가루>는 1970년대 목적극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억압과 통제의 방송 현실에서도 소극적이나마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견지하고자 했던 작가 정신이 내재되어 있는 단막극이다. 한운사가 극본을 쓰고, 연극무대에서 방송극으로 자리를 옮긴 심현우가 연출을 맡은 <미싯가루>는 광복 이후 30년의 세월이 흐른 서울을 배경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생사를 함께 했던 한국인과 일본인의 우정을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당시 아사(餓死) 직전에 조선인 학도병 ‘박완수’가 건네준 ‘미싯가루’를 먹고 생명을 건진 일본군 ‘사이토오[齊藤]’가 은혜를 갚기 위해 광복 30년이 되던 해에 한국을 찾아와 민족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면서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까지 모색한 특집극이 바로 <미싯가루>이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청취자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운사(1923~2009)는 방송극을 통해 전쟁과 남북 분단의 상처는 물론,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아픔, 전후 사회의 혼란과 세대 갈등 등을 치유하고 극복함으로써 한국의 새로운 미래상을 모색하고자 했던 1세대 방송극작가이다. 1960~1970년대 한국 방송극의 형성기를 이끌었던 한운사의 민족을 초월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미 1960년 라디오드라마로 방송된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극적으로 표현된 바 있다. <미싯가루>는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고자 했던 한운사의 문제의식이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미싯가루>는 일본인 ‘사이토오’가 아들 ‘젠사쿠’와 함께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서울 시내로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이토오’의 한국 방문 목적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당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 ‘박완수’를 찾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젠사쿠’는 아버지와 달리 일본의 도쿄와 다를 바 없이 번화한 서울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관광에 나선다. 번화한 서울의 모습에서 과거 일제강점기의 풍경을 기억해내는 아버지와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못해 서울의 현재 모습에 감탄하는 아들의 시선에서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상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미싯가루>는 광복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목적극’이라는 특성상 계몽극으로서의 교조성에 갇혀 있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다. ‘사이토오’의 아들 ‘젠사쿠’와 역사학자가 된 ‘박완수’의 딸 ‘박인옥’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설정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작가의 목적의식이 교조적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인의 시선에 비친 한국의 발전상을 강조한 장면들에서는 TV드라마를 통해 ‘체제 우월과 발전된 한국상의 제시’라는 박정희 정권의 방송정책에 순응했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저거 다 됐어. 개인주의루 피두 눈물두 없다 이젠…. 살아나가는데 계산 밖에 없어. 맛대구리라군 하낫두 없다.”라고 경제 논리에 휘말려 인간성을 상실한 일본 사회를 개탄하는 ‘사이토오’의 대사나, 한국 역시 근대화 바람 때문에 일본처럼 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박완수’의 대사는 억압과 통제의 틀에 갇혀 있던 1970년대 방송 현실에서도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려던 작가의 의중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30여 년 만에 해후한 ‘사이토오’와 ‘박완수’의 대화에서 인간의 본성과 삶의 질이 민족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문제라는 작가의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3․1절’이나 ‘8․15광복절’을 기념하는 특집극은 2000년대 이전까지 민족의식 각성을 목적으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등사본 형태의 방송극본 <미싯가루>는 1970년대 특집극의 형태로 방영되던 계몽극의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계몽과 선전선동의 목적극이 시청자의 외면을 받으면서 특집극은 이제 더 이상 제작되지 않고 있지만, <미싯가루> 등사본 극본은 한국 텔레비전 방송극의 초창기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번 자료 공개가 1차 자료 유실로 구체적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창기 한국 텔레비전 방송극의 면모를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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