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대 후반까지의 바로의 동양관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며 우호적인 것이었다. 도덕적 이상주의(오셀로적 인간형과 돈 주앙적 인간형의 조합)의 구현, 외교적 필요성(중동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한 세계평화의 구현), 균형 있는 세계문명의 발전(동방의 물질주의 업적과 서양의 형이상학적 가치관의 조화) 등을 위해 동·서양이 서로에게 개방적인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설파했다. 이는 넓게는 서양, 좁게는 프랑스의 재생(再生)을 위한 본보기로 삼을 만큼 동방은 "위대함, 고귀함, 그리고 우아함"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은 그들의 상상력(l'imagination), 터키인들은 그들의 훌륭한 판단력(le bon sens), 페르시아인들은 그들의 기지(機智, l'esprit)"라는 특징을 가진 민족으로 각각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바로의 동방인에 대한 애정은 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