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Social Policy Review 2023 KCI Impact Factor :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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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226-0525
- https://journal.kci.go.kr/kasp
pISSN : 1226-0525
Social Enterprises as Hybrid Organizations: Focusing on State‑Market‑Civil Society Collisions
1계명대학교
지금까지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에 있어 국가(제 1섹터), 시장(제 2섹터), 시민사회(제 3섹터)의 협업을 지향하는 복지혼합(welfare mix)이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아왔다(Evers & Wintersberger, 1990;
그러나 대안적 경제모델로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은 위와 같은 혼종성 때문에 조직 내부에 엄청난 갈등요소를 내재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서로에 대한 균형과 견제대상으로 상대로부터 일정한 독립성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혼종성(hybridity)을 본성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과 같은 혼종조직은 각 섹터가 전통적으로 견지해온 울타리를 밑에서부터 뒤흔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 상충하는 세 영역의 특성이 혼합되면서 사회적 기업이 겪게 되는 내적 긴장을 구체적으로 규명한 연구는 아직 없다. 대부분의 이론적 논의들은 사회적 기업이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뿐, 그로 인한 갈등에는 크게 주목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사회적 기업이 겪는 난제들을 국가-시장-시민사회의 혼종현상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재조명하고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최근 사회복지학, 경영학, 사회학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혼종조직 관련 논의들을 혼종조직의 역사적 배경, 개념과 유형, 공통쟁점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3장에서는 앞의 논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의 혼종조직으로서의 특성, 유형, 갈등양상, 갈등 대응전략들을 살펴본다. 결론인 4장에서는 본 연구의 함의와 사회적 기업의 혼종성으로 인한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영역으로 역사적으로 상호견제와 균형 속에서 성장했다. 먼저 근대 초 자본주의 시장은 공적 규제와 권위의 상징인 국가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며 태동했다. 자유주의 시장원리의 근간을 제시한
근대 초기 시민사회 또한 부르주아들이 국가에서 독립된 자치모임과 공론장을 만들면서 탄생했다. 따라서
실제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30여 년간 황금기를 누린 복지국가도 고전적 3분 모델을 거스르지 않았다. 세계전쟁 이후, 서구에서는 국가가 복지공급을 주도해야 한다는 소위 ‘전후합의(post-war consensus)’가 존재했다
시민사회도 여전히 복지국가의 견제세력 역할을 유지했다. 복지국가 이전에 시민사회 비영리단체들은 사회복지의 주요제공자였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비영리단체들은 “복지국가 이전(以前)의 잔재”로 치부될 만큼 복지국가 전달체계에서 보조적·주변적 위치로 밀려났다
국가‑시장‑시민사회 3분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0~80년대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복지국가라는 전후 합의가 점차 힘을 잃고 복지혼합(welfare mix)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면서부터다. 미국과 영국 등 자유주의 국가를 시작으로 시민의 다양한 욕구를 획일적 국가복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복지의 공급주체를 기업과 비영리단체로까지 다원화시킨 복지혼합이 복지개혁모델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실제로 3분 모델에 질적 전복이 일어난 것은 복지혼합이 더욱 심화되고 섹터 간 융합이 ‘바람직한 목표’로 지향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처럼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관계는 역사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해왔다. 근대 초, 각 섹터는 서로 미분화된 상태에서 출발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상호견제와 균형을 이루다가, 상호협력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상호융합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혼종조직의 논의는 혼종이 아닌 일반조직의 논의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 섹터에 속한 조직들 ‑ 대표적으로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 ‑ 은 폭넓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선 대표적인 국가조직인 정부는 규범적 소유권이 국민에게 있고, 의사결정은 공적 방법으로 뽑힌 정치인과 행정관료를 통해 이루어진다. 조직운영의 목표는 공공재와 사회 서비스의 생산 및 제공에 있고, 인적 자원은 주로 공무원으로 구성되며, 물적 자원은 조세로 충당한다. 반면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영리기업은 수익성, 기업가정신, 효율성 같은 시장의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실질적 소유권이 주주에게 있고, 의사결정은 기업대표(CEO)와 지분소유 규모에 따라 주주에게 배분된 권한으로 결정된다. 조직운영의 목표는 수익추구에 있고, 인적 자원은 주로 유급직원으로 구성되며, 물적 자원은 판매수익과 수수료를 통해 얻는다.
이에 더해 존스홉킨스대학 시민사회연구센터 연구진이 정리한 시민사회단체의 특성들을 위 5항목에 맞추어 정리하면
혼종조직은 위 각 센터의 운영모델들을 혼합한 조직을 말한다. 혼종조직은 1980년대 복지국가 재편기에
혼종조직은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중첩영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존재양식이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Billis는 각 유형의 구체적 예를 들진 않았지만, 혼종조직의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Billis의 9유형을 각 기원별로 단순화시켜, 국가기원, 시장기원, 시민사회기원 혼종조직으로 나누어 보았다.
먼저 국가기원 혼종조직으로는 17부 5처 16청 2원 5실 6위원회로 구성된 전형적 정부조직인 행정부처 외에 국가의 투자로 설립·운영되는 공공기관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장형·준시장형 공기업, 기금관리형·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나뉘는데, 2014년 공공기관은 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87개, 기타공공기관 187개로 총 304개에 이른다.
이 중 한국전력공사, 한국마사회 같은 공기업과 국민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국가/시장 혼종조직에 속한다. 이들은 공공성이 강한 재화나 경마 및 도박처럼 통제가 필요한 상품을 생산하거나, 정부의 금융자산을 운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일반 유급직원이 고용되고, 공공성 외에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국가/시장 혼종으로 볼 수 있다. 반면 공기업처럼 국책사업을 수행하지만 수익활동보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한국고용정보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과 같은 위탁 집행형 준정부기관, 그 외 기타공공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한적십자사,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등 정부설립 공익재단은 대표적 국가/시민사회 혼종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국가/시민사회/시장 혼종사례로는 KBS, EBS 등 공영방송사를 들 수 있다. 공영방송사는 공중파 방송으로 공공성을 추구하면서 준조세인 방송수신료로 재정을 충당한다는 점에서 정부조직과 비슷하다. 그러나 최근 공영방송사의 수입에서 광고수익이 40%를 차지할 정도로 수익사업의 비중이 늘어나 시장기업과 중첩되는 부분이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언론사로서 시민의 공론장을 활성화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기능을 수행하는 등 시민사회적 특성도 갖는다. 실제로 공영방송사가 갖는 시민사회적 특수성을 보호하기 위해, 공영방송사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이 아닌 별도의 「방송법」 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시장기원 혼종조직은 국책사업 위탁기업과 기업설립 공익재단 등이 있다. 그중 국책사업위탁기업은 시장/국가 혼종의 사례이다. 본래 영리기업은 공공재 생산에는 별관심이 없었으나, 복지국가의 재편과정에서 수도, 전기, 가스, 교육, 의료처럼 과거 공공재로 인식됐던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한편 기업의 공익재단은 시장/시민사회 혼종의 전형적 사례로 그 역사가 꽤 길다. 일례로 세계적인 공익재단인 Carnegie Trust과 Rockefeller Foundation은 각각 1911년, 1913년에 기업의 창업주가 설립한 복지·장학재단이다. 한국 최초 기업설립 공익재단은 1939년 삼양사 창업주가 사재 34만 원으로 빈곤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 설립한 양영회(현 양영재단)다. 이후 1970년대까지 기업설립 공익재단은 100개에도 못 미치다가, 1990년대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00년대에는 기업의 공익재단 출연금에 대한 면세혜택이 확대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공익재단 설립이 트렌드가 되었다. 2012년 조사를 보면, 등록된 재단법인 4,582개 민간 설립 공익재단 수가 1,190개로 추정될 정도다
시민사회기원 혼종조직은 정부사업 위탁운영이나 수익활동을 위해 비영리단체 구성원들이 설립한 조직을 말한다. 이 중 시민사회/국가 혼종조직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정부정책으로 제도화된 사례로, 한국에서는 지역자활센터가 이에 속한다. 지역자활센터는 1990년대 전후 빈민밀집지역에서 생산자공동체를 꾸려온 주민운동단체에 기원을 둔다. 생산자공동체운동은 1999년 정부의 자활사업으로 제도화됐는데, 이때 주민운동단체 상당수가 자활사업을 위탁·운영하는 지역자활센터로 탈바꿈했다. 지역자활센터는 일정 부분 정부보조금을 받지만 자체적 사회복지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다른 비영리단체와 달리, 오직 자활사업을 위탁·운영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조직의 존폐에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정부는 센터의 운영비와 인건비의 대부분을 지원하며, 정기적으로 사업실적을 평가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센터를 지정취소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순수한 비영리조직이라기보다 시민사회/국가 혼종조직에 가깝다.
한편 자선매장은 비영리단체가 미션실현에 필요한 자금마련을 위해 설립한 가게로 전형적 시민사회/시장 혼종조직이다. 한국의 대표적 자선매장은 아름다운가게를 꼽을 수 있다. 아름다운가게는 2002년 참여연대 대안사업팀이 영국 옥스팜을 모델로 설립한 자선매장으로 참여연대 회원들이 중고물품을 기증하고 이를 판매한 수익으로 제3세계 빈민구제와 국내 취약계층을 지원한다. 현재 141개 매장이 있는 아름다운가게는 최근 미국과 인도네시아에 해외매장을 열기도 했다. 중고품 소매업이 주축인 자선매장이 비영리 단체의 고전적 수익사업이라면, 최근에는 비영리단체와 회원들이 보다 다양한 사업아이템으로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새로운 수익모델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처럼 혼종조직은 사회 전반에 편재한다. 특히 국민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사회보험공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같은 사회정책연구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나 아산복지재단 같은 복지재단처럼 사회복지분야의 주요조직들이 혼종영역에 대거 포진해 있다. 무엇보다 정부 위탁사업이 증가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혼종조직의 규모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혼종조직의 증가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혼종조직들은 그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세 섹터 어디에도 합치될 수 없는 모호성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슷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이 사회체계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고전적 논제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 이론가들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존의 유형론은 주로 사회적 기업을 기능에 따라 일자리창출형, 사회서비스제공형, 지역사회공헌형, 혼합형으로 분류해왔다. 하지만
이에 본 논문은
사회적 기업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기업의 뿌리를 시민사회에서 찾는다. 실제 서구와 한국의 역사를 보면, 비영리단체가 사회적 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유럽의 비영리단체들은 1970~80년대 경기침체로 실업과 빈곤이 심화되자,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국가나 기업이 제공하지 못하는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취약계층에게 제공하기 위해 협동조합이나 커뮤니티기업을 설립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유럽의 사회적 기업의 토대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복지국가 재편과 맞물려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지원이 대폭 삭감되자, 재원확보를 위해 자체적 수익사업을 시작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확대되었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기업의 뿌리는 1990년대 초 지역주민운동단체의 생산자공동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생산자공동체는 빈민밀집지역의 주민에게 대안적 일자리를 제공할 목적으로 실험되기 시작해, 1996년 자활지원센터 시범사업,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자활사업, 2003년 노동부 주관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거쳐,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으로 제도화되었다. 그 외에도 비록 처음부터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진 않았지만, 비영리단체가 주축이 되어 수익사업을 해온 자선매장, 노동자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등이 존재했다. 이런 조직의 일부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과 함께 사회적 기업이라는 호칭을 덧입게 되었다. 2007년 제2호 인증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가게도 2002년 참여연대 회원들이 설립·운영해온 자선매장이 2007년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은 사례다.
시장기원 사회적 기업은 시장의 행위자가 주도적으로 설립한 조직들이다. 사회적 기업의 역사연구들은 시장기원 기업의 사례를 별로 다루지 않지만, 사실 이 유형도 그 역사가 짧지 않다. 먼저 시장에도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취약계층 일자리 제공을 목표로 하는 영리기업이 존재해왔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이 그런 예이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정부는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장에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2003년부터는 장애인 고용인원, 편의시설, 임금수준에서 일정 요건을 갖춘 사업장을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인증하고, 시설비 지원, 고용장려금 지급, 공공기관 우선구매의 혜택을 제공해왔다. 이런 정부정책 속에서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인증된 기업은 사회공헌과 국고지원이라는 부수효과를 누려왔다.
대기업이 설립·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은 시장기원 사회적 기업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고용노동부가 2007년 최초로 승인한 제1호 사회적 기업인 (재)다솜이재단도 2003년 교보생명이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창단한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을 그 모태로 한다. 2007년 제3호 인증 사회적 기업인 (사)안심생활도 현대자동차의 지원 아래 설립된 노인 및 장애인 돌봄 기업이다. 특히 SK그룹은 사회적 기업 육성을 위해 2006년 행복나눔재단을 세우고 행복한학교, 행복도시락사회적협동조합 등 총 65개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또한 KAIST와 협력해 사회적기업가 MBA과정을 개설하는 등 시장영역에서 사회적 기업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시장기원 사회적 기업이 대기업의 사익을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일례로 포스코가 자본금 100%를 출자한 포스위드, 포스코에코하우징, 포스플레이트 등은 철강업 관련 사회적 기업들로 포스코의 외주작업을 도맡아 진행한다. 이에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하청기업처럼 운영하면서, 정부지원과 기업이미지 제고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덧붙여 최근에는 영세사업장들도 사회적 기업으로 유입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대부분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로 정부보조금을 받아 기업운영에 도움을 받고자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들도 장애인표준사업장, 대기업 지원 사회적 기업과 함께 시장기원 사회적 기업의 한 흐름을 형성한다.
이처럼 사회적 기업은 단일 섹터에 기원을 두고 여러 섹터의 원리와 가치를 접목시키며 발전해왔다. 이와 같은 혼종성 덕분에 사회적 기업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단일 조직에 대한 대안모델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혼종성 때문에 사회적 기업은 단일 섹터의 일반조직과 다른 차원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 기업대표, 일반노동자 모두가 일정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대부분의 연구들이 사회적 기업의 소유권을 단지 법적 소유구조 ‑ 민법상 법인, 재단, 조합, 상법상 회사 등 ‑ 측면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소유권은 법적 소유구조를 넘어 해당 재화나 조직을 지배, 관리, 사용, 수익배분, 처분할 수 있는 모든 권리로, 경제적으로는 재산권의 표현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치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적 기업이 직면한 문제는 이러한 재산권과 자치권 행사에 있어 정부, 대표와 주주, 일반구성원이 모두 권리의 행사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먼저 정부보조금을 받는 사회적 기업은 사업수행과정에서 정부의 관리·지배를 받는다. 사회적 기업은 자금사용내역을 정부에 보고하며, 사업계획이 변경될 때마다 신고하고, 항상 신용카드(클린카드)를 이용하고 영수증을 첨부해야 한다
반면 시민사회기원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정부의 관리·감독에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이들도 소유권에 대한 시장과 시민사회의 논리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대체로 시민사회기원 사회적 기업은 구성원들의 공동출자, 공동경영, 공동소유를 지향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기업을 운영하다보면 대표나 핵심구성원들에게 권한이 쏠릴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이 성공을 거둬 상당한 수익이 발생하면 사업아이템과 수익을 두고 대표 및 핵심구성원과 일반구성원들 사이에 소유권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시장의 원칙으로는 자본형성에 기여가 가장 큰 기업대표와 대주주가 소유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지만, 연대성과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대표와 핵심구성원들의 행동은 이기적인 변심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구성원들 사이에 분란이 생겨 사회적 기업이 와해되는 경우도 있다.
의사결정방식에 있어서 사회적 기업은 시민사회의 민주성, 시장의 신속성, 정부의 규제 사이에서 충돌을 경험한다. Bacchiega와 Borzaga(2001)는 사회적 기업의 의사소통방식은 시민사회의 연대성에 기반을 둔다고 보았다. 이외에 많은 학자들도 민주적 거버넌스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사회적 기업의 주요특징으로 꼽아왔다
더불어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의사결정에서 높은 정부의존도를 보인다. 아무리 기업 내부에서 운영위원회나 대표가 민주성이나 신속성에 따라 주요사안을 결정한다고 해도, 정부의 정책방향이 변경되면 개별기업의 계획도 변경·제약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회적 기업은 의사결정에서 조직의 일반구성원, 기업의 대표, 정부의 행정관료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그러한 특성은 자칫하면 누구의 의견도 온전히 관철되지 못한 채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조직운영의 목표 면에서도 사회적 기업은 시장의 수익추구, 제3섹터의 사회적 미션, 공공재와 사회서비스 생산이라는 국가의 정책목표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한다. 사회적 기업이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미션 중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지는 오랜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여러 연구자들은 수익의 극대화가 사회적 기업의 최종목표는 아니며 조직의 미션과 가치창출이 우선이라고 주장해왔다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미션 사이의 갈등에 더해 정부정책도 사회적 기업의 목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정부처럼 공공재와 사회서비스를 생산·전달하는 역할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증 사회적 기업이 충족시켜야 하는 ‘사회적 목표’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제공과 사회서비스 전달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는 지역주민의 자발적 필요에 의해 설정된 ‘시민사회적 목표’라기보다, 국가가 사회적 기업에 요구하는 ‘사회복지정책적 목표’에 가깝다. 사회적 기업이 정부에 의해 육성되다보니 지역사회의 필요보다 정부의 정책의도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적 기업들은 수익추구, 시민사회의 미션, 그리고 정부정책의 목표 사이에서 종착지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기업의 인적 자원은 제3섹터에 뿌리를 둔 사회운동가와 자원봉사자, 사회적 기업을 일반직장으로 여기는 유급노동자, 자신을 정부 복지정책의 대상자로 여기는 취약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사회적 기업은 경제적 보상보다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둔 자원봉사자나 사회운동가들에 의해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기업은 시장의 상품판매 수익금, 정부의 세금, 시민사회의 기부와 회비로 물적 자원을 충당한다. 따라서 시장의 소비자의 구미만이 아니라 정부의 기준에도 부합해야하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윤리적 기업으로 지역사회의 평판에도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공정무역기업 사례가 보여주듯이, 제3세계 말단노동자의 복지증진 같은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면서, 기업의 수익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지원금 확보도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기업이 성과를 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정부는 회계연도에 맞춰 일정 기간 안에 가시적 성과를 바란다. 일례로 한국은 사회적 기업 인건비 지원기간을 3년(예비 사회적 기업 포함 5년)으로 한정하고 있어, 이에 맞춰 성과를 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 사회적 기업은 모험적 기업(enterprise)이라기보다, 관료제의 스케줄에 맞춰 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사업(programme)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사적투자로 설립된 일반 영리기업은 모험을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사회적 기업에게는 ‘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사업자의 실패는 측은함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사회적 기업의 실패는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국가‑시장‑시민사회의 트릴레마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그중 가장 흔하게 논의되어온 방식은 사회적 기업이 지배적 섹터의 제도적 논리로 흡수되는 ‘제도적 동형화(institutional isomorphism)’다. Laville과 Nyssens(2006: 327)는 다양한 기반의 사회적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비슷한 행태로 수렴하게 되는 제도적 동형화를 우려했다. 제3섹터 협동조합형 사회적 기업들이 수익창출을 위해 영리기업과 비슷한 제도적 논리를 따르게 되고,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의 일선행정기관과 비슷한 행태를 띄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학자들도 사회적 기업들이 자원 확보를 위해 정부의 인증요건에 맞추어 조직을 변형시키면서 획일화된 모습을 갖는 제도적 동형화 경향을 비판해왔다
먼저 혼종조직들이 정체성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채택하는 가장 기초적 전략은 ‘비동조(decoupling)’, 즉 이질적 섹터의 원리를 무시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일부 비영리단체들은 재원마련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인증을 받지만, 실제 조직운영에서 수익추구라는 시장의 목표는 상대적으로 무시된다. 시장의 행위자들도 노동자의 인건비·사회보험료 혜택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지만,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시민사회적 인증요건에 대해서는 단지 형식적 운영 위원회를 만들어놓는 방식으로 넘어간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기원 사회적 기업은 제3섹터 비영리단체로서, 시장기원 사회적 기업은 영리기업으로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동조 전략은 혼종조직이 자기분열을 최소화하고, 기존의 정체성을 고수하면서도, 필요한 형식을 겉으로만 갖추어 외부(정부)의 감시를 회피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비동조는 지속적인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먼저 시간이 지날수록 서류상 요건충족만으로 외부의 관리·감독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사회적 기업의 초기에는 구성원들이 같은 섹터의 가치를 추구하며 결속력을 갖지만, 새로운 구성원이 유입되면 비동조만으로 기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일례로 사회운동가가 설립한 사회적 기업에 유급직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들은 비영리단체처럼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을 비효율적 조직으로 간주하며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혼종조직이 갈등해결을 위해 택하는 또 다른 방식은 ‘타협하기(compromising)’, 즉 상반된 섹터의 가치와 원리들을 절충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도(中道)라는 애매한 설정은 결국 어떤 섹터의 기준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해 어떤 섹터로부터도 열렬한 지지는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타협하기로는 시장이나 시민사회 모두에서 독보적으로 성공적인 조직모델로 남기 어려운 것이다. 자선활동과 소매업 모두를 어설프게 추구하다가 어느 쪽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영국의 Aspire 설립 노숙인 사회적 기업이나
최근 조직이론가들이 혼종조직에서 발견한 새로운 갈등극복 전략은 ‘선택적 동조(selective coupling)’, 즉 주어진 환경에 맞게 각 섹터의 원리들을 전략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이다
물론 선택적 동조는 비동조처럼 겉모습만 바꾼다는 뜻은 아니다. ① 소유권, ② 의사결정방식, ③ 조직운영의 목표, ④ 인적 자원 구성, ⑤ 물적 자원의 모든 항목에서 한 섹터의 운영모델을 따른다거나(비동조), 모든 항목에서 모든 섹터의 운영모델을 섞기보다(타협하기), 해당 사회적 기업이 놓인 환경과 조건을 고려해 각 항목마다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원리를 취사선택해 조합하는 방식이다. 일례로 소유권은 제3섹터의 원리를 따라 회원들의 공동소유를 유지하지만, 조직목표는 시장의 수익창출에 집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5개 항목을 조합할 수 있다.
선택적 동조는 제도적 동형화와도 구별된다. 제도적 동형화는 수동적으로 다른 섹터에 흡수되는 경향을 말하지만, 선택적 동조는 자기의 정체성을 가진 채 주체적으로 다른 섹터의 모델을 취사선택하는 태도이다. 실제로
다시 말해, 모호한 혼종영역에서 정체성 갈등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먼저 조직의 뿌리가 되는 섹터에서 생존력과 정당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 기업 설립에 관심 있는 행위자들이 염두에 둘 지점이다. 자금난을 겪는 일부 소상공인들은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사회적 기업을 신청했다가, 정부의 관리나 사회적 가치추구에 대한 압박으로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 비영리단체도 시민사회에서 안정적 기반 없이 영리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거나 시장 섹터로 동형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자기 조직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지 않은 채, 복지혼종의 풍파 속에 뛰어든 결과이다. 전략적 동조의 사례는 여러 유형의 사회적 기업들이 복지혼종의 급물살을 헤쳐 나갈 방법은 물살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도, 닻이 되어줄 본래 섹터의 기반을 단단히 붙드는 것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본 논문은 국가-시장-시민사회의 혼종현상을 설명하는 혼종조직 관련 논의를 소개하고, 혼종조직의 관점에서 사회적 기업의 속성과 유형, 갈등과 대응방식을 재조명해보았다. 본 논문의 함의는 크게 두 차원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사회적 기업의 혼종조직으로서의 특성을 분석한 본 논문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혼종조직의 이론화에 일조하는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사회복지학계에서는 복지국가론에 이어 복지혼합론이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주요이론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최근 사회복지분야에 복지국가나 복지혼합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기업만이 아니라 사회서비스에 시장원리를 도입한 바우처 사업, 사회복지와 노동시장을 연계한 근로연계복지정책,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변화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언뜻 보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 과거에 분리된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국가, 시장, 시민사회가 중첩되고 있는 거대한 구조변동 속에서 발생한 혼종현상들이다.
그러나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구도를 본질적으로 재편하는 혼종조직에 대한 이론적 고찰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본 연구는 최근 답보상태에 있는 사회적 기업 이론연구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 생소했던 200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는 해외연구를 인용해 사회적 기업의 개념과 함의를 소개하는 기초연구가 이루어졌다
물론 본 논문은 사회적 기업의 혼종성에 대한 탐색단계의 연구로서, 현 단계에서 사회적 기업의 갈등 극복전략 중 무엇이 더 바람직한지 결론내릴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대안조직으로 주목 받는 사회적 기업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국가-시장-시민사회의 틀을 완전히 뛰어넘는 제4 섹터로 분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를 뛰어넘는 뭔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사회적 기업에게 쏠리다보니 사회적 기업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적 기업이 당면한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현실적인 방법은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는 비영리단체와 소상공인들이 사회적 유행에 이끌려 정부 인증이라는 눈에 보이는 명분을 좇기보다, 자기 조직의 뿌리가 되는 시민사회와 시장에서 먼저 내실을 기하며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야 복지혼종의 계곡에 뛰어든 이후에도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사회적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항하는 근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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