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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representation of an atomic bomb in the 1960s -Focusing on the Matsuji Ibusei's Black rain and Sigemath's diary-

  • 日本硏究
  • 2010, (28), pp.369-385
  • Publisher : The Center for Japanese Studies
  • Research Area : Humanities >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Published : February 20, 2010

최명숙 1

1고려대학교

Accredited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시게마쓰일기에서 검은 비로 재창작되는 도정을 비교분석한 결과 1945년 8월 6일 피폭당일로부터 천황의 종전조서낭독방송이 있은 8월 15일 정오까지 9일간의 기록물인 시게마쓰일기가 이 자료를 저본으로 쓰인 검은 비에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원폭투하라는 희대의 사건과 접목되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에 속하는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표상이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으나, 1960년대 일본의 고도경제성장,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일본인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시기였던 것이 큰 계기가 되었을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긍정적인 일본인 론(論)이 하나의 정점을 형성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64년 도쿄올림픽특수에 따른 경제적 부흥을 주요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메이지시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자신감을 얻어 나타난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하는, 즉 유럽과 동등한 위치로 자리매김하려던 일본인들의 사상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잃었던 자신감을 다시 회복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유럽이 아니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해 승전국이 된 미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도 큰 전환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 부흥함에 따라 자신감을 나타내는 <탈아입미(脫亞入美)>라는, 아시아를 벗어나 일본근대초기의 유럽과의 동화시도가 이제는 패전 후 자국을 점령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이르면서 일본과 동화한다는 현상으로 표출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된 일본인들의 자긍심 고양현상과 원수폭금지운동, 1960년대 중반에 발발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 일본노동운동사상 최초의 <반전파업>사태인 10․21반전 파업 등, 시대적 콘텍스트와 접목해서 일본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은 일부 군부 지도자가 국민을 속인 것이라며 무모한 지도자에게만 전쟁의 모든 책임을 미루고 총동원체제 아래 수행된 전쟁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은 면죄해 주는 담론의 포석이 형성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전쟁의 기억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일본 국내의 논의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전쟁 체험 측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피해자로서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이러한 담론들은 기분과 감정레벨(level)에서 반미내셔널리즘 및 반공․반소(反蘇)내셔널리즘과 결합되어 사실상 국민 개개인의 수준에서 벌어진 가해행위를 논의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이에 따라 이들 개인차원의 가해행위를 둘러싼 책임소재도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 [검은 비]텍스트도 피폭희생자를 사회적약자인 <여성>과 <어린이>, <민간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원폭표상이 더 한층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상으로 변하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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