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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dy Sherman’s Untitled Film Stills: An Alternative Perspective

  •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Science of Art
  • Abbr : JASA
  • 2009, 29(), pp.203-232
  • Publisher : 한국미학예술학회
  • Research Area : Arts and Kinesiology > Other Arts and Kinesiology
  • Published : June 30, 2009

Lee, Phil 1

1Univ. of Chicago

Accredited

ABSTRACT

본 논문은 1970년대 말 이래로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신디 셔만의 <무제 필름 스틸>(1977-1981) 흑백사진 연작을 사진이라는 미디움에 중심을 둔 대안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다. 신디 셔만의 흑백사진 무제 연작은 80년대 초에 당시 포스트모던 논의를 이끌던 몇몇 이론가들에 의해 일련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논의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셔만은 현대미술이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중 한 사람으로 인식되어왔고, 그녀의 작품 또한 대부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어 왔다. 본 논문은 이처럼 70년대 말 이래로 지배적인 현상이 되어온 포스트포던적 관점에 기초한 해석 경향과는 달리, 사진사와 사진이론의 관점에서 셔만의 사진을 연구한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은 한편으로는 셔만 작품에 대한 기존의 지배적인 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적인 읽기를 제시함으로 작품의 해석의 가능성을 열뿐만 아니라, 포스트 모던이론에 의해 기술된 사진이론과 사진사를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셔만의 사진을 사진이라는 미디움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셔만을 사진가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셔만을 사진가라기보다는 현대미술가로 보는 관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최근의 일련의 필름 제작을 제외하고는 셔만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진이라는 미디움만을 사용해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저자는 사진사와 사진 이론의 관점에서 셔만의 사진을 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이 점이 간과되어 온 점을 지적하고 대안적인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셔만의 사진 연구에 기여하고자 한다. 서론에서는 1970년대와 80년대 사진과 관련된 미국 미술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스케치하면서 사진에 관한 모더니즘적 입장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입장이 어떻게 상충하고 있었는지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모더니스트들의 입장을 공격하기 위하여 수단으로서 사진이라는 미디움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불가피하게 사진이라는 미디움의 본질적인 특성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논리전개에 유용한 미디움의 외형적인 특성들만을 강조하게 된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주장을 당시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사진이론의 틀거리인 “전유”와 “인덱스”를 신디 셔만의 사진에 적용했을 경우, 그 논리들이 어떻게 타당하지 않는지 분석함으로써 증명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저자가 본론에서 분석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사진에 관한 주 텍스트는 더글라스 크림프의「픽쳐스」(“Pictures”, 1979)와「전유를 전유하기」(“Appropriating Appropriation”, 1981), 로잘린드 크라우스의「인덱스에 관한 노트」(“Notes on the Index: Part I & II”, 1976)이다. 셔만의 사진이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작품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크림프의 에세이「픽쳐스」가 발표된 이후이다. 이글은 당시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새로운 형식의 미술의 도래를 반기고, 그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을 연구하는 외형을 띄고 있다. 이 글은 마이클 프리드의「미술과 사물성」(1967)에 대한 크림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의 항변으로서 크림프의 정치적인 의도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프리드의 모더니즘 미술비평의 핵심인 미디움의 순수성에 대한 주장을 공격하는데 있다. 크림프는 이들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미디움의 혼재현상을 지적하고, 작품 스스로가 의미를 발화한다는 그린버그와 프리드의 주장과 반대로, 작품을 경험하는 관객의 존재가 이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작품의 의미를 형성해 낸다는 점을 역설한다.「전유를 전유하기」에서 크림프는 셔만의 사진을 포스트모던적 “전유”라는 틀거리에서 읽어내며 셰리 레빈, 리차드 프린스, 로버트 메이플쏘프의 사진작품과 함께 논의한다. 한편 크라우스는 크림프보다 앞서 동시대 미술에 사진이라는 미디움의 사용이 만연함을 지적하는 글 “인덱스에 관한 노트”를 두 편에 나누어 발표하면서, 앞서 저자가 문제 삼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사진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미디움의 본질을 간과한—을 피력하였다. 이후로 80년대 초기에 발표된「사진의 일률적이지 않은 공간들」(“Photography’s Discursive Spaces”)등 사진에 대한 글들을 통해서 크림프의 시각을 옹호하고 있다. 저자는 본 논문에서 이 두 학자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그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신디 셔만의 사진을 읽음으로서 셔만의 사진을 제한된 해석의 틀거리에서 풀어놓고자 한다. 이는 크림프와 크라우스의 논리를 완전히 파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셔만의 사진이 다른 각도에서 보다 복합적으로 읽혀질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함이다. 보다 광범위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비평이 어떻게 사진을 이론화하고 (비)역사화 했는지, 그들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그들과는 다른 지난 40년간의 사진의 역사를 쓰고자하는 저자의 연구 과제의 일부를 실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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