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談唐宋“古文”之稱的緣起問題

AN CHANSOON 1

1영진전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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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당송고문운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많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당송 고문운동의 태동원인, 내용, 계승발전, 영향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당대의 고문운동은 한유, 유종원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古文’이란 두 글자도 한대이후 경학에서 ‘今文’과 구별되는 문자명칭으로만 쓰이다가 한유⋅유종원 이후부터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문체명칭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청대의 증국번(曾國藩)이 ‘고문’이란 두 글자로 육조이래 ‘文筆’가운데 單行散體의 ‘筆’을 지칭한 것이 한유로부터 연유하였다고 한 후부터 중국 근현대의 학자 전기박(錢基博), 나연첨(羅聯添), 웅례회(熊禮匯) 등은 하나같이 증국번의 견해를 언급하며 그의 말에 힘을 실어왔다. 예를 들면 나연첨(羅聯添)같은 경우 증국번의 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한유 이전 및 동시대인의 문집을 다 뒤졌지만, 한유 이전 고문가들 중 ‘古文’이란 명칭의 용례를 발견하지 못했고 다만, ‘고문’이란 두 글자로 쓰기 전에 고문운동의 선구라 불리는 문중자(文中子)나 유면(柳冕)의 문장 가운데에 ‘古之文’ 혹은 ‘古人之文’이라 쓴 경우는 있어서 이를 한유의 ‘古文’이란 명칭의 전신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한유의 생년(768년)보다도 58년 이른 시기(710년)에 초당 사학자 유지기에 의해 쓰여진 ≪사통(史通)≫에 ‘古文’이란 명칭이 몇 차례 보이고, 그 사전적 함의를 살펴보았을 때 가리키는 바가 한유 이후 고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유지기와 고문가들의 ‘고문’에 대한 취사(取捨) 태도에 차이가 있고, 유지기가 당시나 후대 영향력이 있는 사학가이었으므로 한유 등이 ≪사통(史通)≫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설령 읽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유지기가 사용한 명칭이 한유 등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古文’이 한 대 경학에서 문자의 명칭에서 문체의 명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유지기의 ‘古文’이 실제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와 영향력은 비록 한유의 ‘고문’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시기적으로 한유보다 앞서는 것은 분명하므로 이렇게 ‘고문’이란 명칭의 연원설의 한 문제로 제기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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