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賢人君子功臣烈士들의 墓誌銘이 후세에까지 드러나게 된 까닭은 그 말이 간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쇠퇴하게 된 것은 글을 번잡하게 쓰고, 또 그 행한 일들을 상세히 갖추어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질구레하고 잡다한 일들을 상세히 쓰기 보다는, 대표적이고 중요한 일만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서술해야 후세에까지 전해질 수 있는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제재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그래서 歐陽修는 <尹師魯墓誌銘>을 쓸 때, 尹洙의 사적 가운데 모두 다 열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중요한 것 한두 가지, 즉 忠義之節 중에서도 다만 ‘글을 올려 范仲淹이 자신의 師友임을 말하여 그와 함께 폄적되기를 원한 일(上書, 言仲淹臣之師友, 愿得俱貶)’과 ‘병이 깊어 (임종이 가까워도) …… 손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끝내 개인의 일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일(病革, …… 與賓客言, 終不及其私)’ 이 두 가지 일만 특별히 선정하여 서술했던 것이다. 그러면 歐陽修가 특별히 제재를 선택하여 서술했다는 두 가지 일을 <尹師魯墓誌銘>에서, 여기에 대한 해명 부분을 <論尹師魯墓誌銘>에서 각각 옮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