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Social Policy Review 2023 KCI Impact Factor :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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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1226-0525
- https://journal.kci.go.kr/kasp
pISSN : 1226-0525
The successful management of flood risk and publicness in Netherlands: double-loop learning after the flood in 1953
정병은 1
1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과거에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에 위험을 제공하는 주된 원인이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이차적, 비자연적, 인위적 불확실성과 구조화된 생태적 위험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위험사회론을 주창한 울리히 벡(Beck, 1992)은 현대 사회의 구조와 원리는 위험이 도처에 잠복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며 이로 인한 불안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과거 사회와 전혀 다르다고 보았다. 과거에는 대형 교통사고, 태풍, 홍수, 대형 폭발사고 등의 재난이 많이 발생한 반면, 사회가 발전하면서 신종 질병, 불안정 고용과 취업, 급격한 경기 변동, 빈부 격차 등의 사회적 위험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IT, BT 등의 테크놀로지 발달에 따른 범죄, 생명윤리 침해 등에 대한 우려와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형 재난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중위험사회로 규정된다
과거형 재난은 장기간에 걸쳐서 산적해 있었던 문제점이 표면으로 드러나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난을 통해서 시스템이 혁신될 경우 오히려 사회의 복원력을 향 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재난 발생의 원인을 규명하고,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을 변화시키고, 제도적, 정책적 해결책의 도출 등을 통해서 유사한 재난을 예고하거나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재난으로 드러난 문제점을 고치는 사후학습의 여부는 재난 관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재난 발생에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재발을 방지하는 관리 시스템은 재난의 유형과 특성뿐만 아니라 해당사회의 구조적 특성, 제도, 규범적 맥락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경로로 갈라진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과거형 재난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단편적인 대증 처방, 희생양 찾기, 책임전가 등으로 시스템을 혁신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와 달리, 몇 차례의 홍수로 인한 재난을 겪은 이후 홍수 관리 시스템을 혁신한 네덜란드의 대응은 매우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네덜란드는 어떻게 해서 홍수 관리 시스템을 혁신하였고, 사회의 복원력을 향상시킴으로써 홍수 위험을 관리하는 역량을 높일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네덜란드는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거나 해발 1미터의 저지대라서 홍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총인구 약 1,650만 명 중에서 약 900만 명의 인구가 저지대에 밀집해 있어서 홍수 취약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홍수 취약성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과정은 해당 사회의 공공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위험 또는 안전은 사회구성원의 공통의 이익과 직결되므로 공공성이 잘 작동하는 사회는 위험의 발생가능성을 낮추고 피해를 줄이는 등의 위험 관리 능력이 높다. 공공성과 위험 수준, 위험 관리역량의 관련성을 다룬 실증 연구
이런 맥락에서 본 논문은 공공성의 관점에서 델타 프로젝트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홍수 관리 시스템의 혁신을 분석하고자 한다. OECD 30개국의 공공성 지표에 대한 분석결과를 보면
네덜란드의 홍수 위험 관리의 혁신을 살펴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첫째, 홍수 관리 시스템의 혁신을 가져온 델타 프로젝트는 특정한 재난에 국한되는, 단기간의 일시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것은 1953년의 기록적인 대홍수를 계기로 시작하여 1997년에 이르기까지 약 40년의 시간이 소요된 장기적인 사업이다. 처음에는 북해의 범람에 의한 홍수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내륙 하천의 범람으로 야기되는 홍수를 관리하는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어떻게 임기응변식 또는 단편적 대증 요법이 아니라 관련 사업을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장기간에 걸쳐서 홍수 위험을 막는 시스템을 발전시켰는지 탐색할 필요가 있다.
둘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홍수는 사전 예고와 긴급구조 시스템을 통해서 상당한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가 발전하면서 감소하는 과거형 재난이다. 그런데 최근 네덜란드는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따른 홍수 위험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비하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델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고 이해 수준이 초보적이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 정치문제로 전환되기 쉬운 ‘알 수 없는 위험’으로 분류된다
셋째, 네덜란드의 사례는 위험 방어와 안전의 문제가 현재에 ‘절약해야 할 비용’으로서 경제성장과 제로섬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역시 과거에는 홍수방어용 댐건설을 비용의 관점에서 보고, 간척을 통한 경제적 부의 형성에 관심과 예산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기존의 방조제를 보수하는 전략으로는 반복적인 홍수 발생을 막을수 없고, 특히 1953년 대홍수를 통해서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 홍수 위험 방어와 안전에 대한 관점을 수정하고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도 불구하고 ‘투자’의 관점에서 대규모 댐건설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홍수로 인한 치명적인 피해를 더 이상 입지않게 되었고, 나아가 해상 운송 능력의 향상, 다수의 고용 창출, 관광자원의 개발 등의 직접적인 경제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배경 하에서 네덜란드가 어떻게 해서 홍수 위험을 성공적으로 관리하여 홍수 피해를 줄이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공공성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로 논의하는 학자와 기관마다 위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과 그러한 사건으로 인한 ‘결과의 심각성’이 결합된 것으로 본다
위험의 범위와 유형은 기준에 따라서 다른데, 홍수는 자연환경에 의한 위험으로 계절, 기후 및 지형적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위험의 발생과 그 피해를 얼마나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홍수는 원인이나 발생 확률, 피해 규모 등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알고 관리할 수 있는 ‘알려진 위험’이며, 다른 ‘알려지지 않은 위험’ 및 ‘알 수 없는 위험’과는 대비된다
한편 위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위험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과학기술, 문화적 태도, 세계관, 의사소통 등에 따라서 상이한 결과를 낳는다. 객관적인 위험과 인지된 위험 간에 괴리가 크다면 위험에 관련된 소통이 필요하고, 위험을 어떻게 인식, 해석, 정의하는지에 따라서 대응 행위가 도출된다. 그런데 모든 위험을 완벽한 수준에서 관리할 수 없으므로, 확률과 피해의 심각성 등을 고려하여 위험의 수용가능성(acceptability)을 따져볼 수 있다. 수용가능성이 높은 위험이라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수용가능성이 낮은 위험이라면 사회적 논란을 낳고 제도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위험의 발생 확률을 계산하여 수용가능성에 따라서
물론 이러한 위험의 유형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한꺼번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사고의 심각성이 증가하면서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이를테면 태풍과 홍수는 ‘무시할 수준의 위험’이지만 피해규모가 너무 클 경우에는 ‘견딜 수 없는 위험’으로 전환된다. 대규모 재난이나 사고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적극적인 대응과 조치를 강구하여 관련 기관들과의 협의를 통해서 안전 관리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과학, 기술, 시민성 등에 따라서 안전 의식이나 위험 인식이 높을 경우에는 수용할 수 있는 위험이더라도 위험감소 노력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경미한 사고와 이상 징후를 통해서 안전 관리의 오류를 발견한다면 새로운 위험 관리 전략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위험에 대한 대응은 개인의 수준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능과 역할에도 적용되는데, 특히 근대 복지국가는 사회구성원의 안전과 위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최소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위험’이 발생가능성에 대한 확률에 따른 개념이라면 ‘재난’은 발생해서 드러난 위험이라는 점에서, 재난은 위험의 한 유형이다. 재난은 “인명, 환경,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거나 위협하는 사건이나 사고로서,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거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율된 조직과 지원이 전개”되어야 한다
재난 관리는 재난 발생을 예방하고 위협하는 요소를 최소화시키는 한편 재난이 발생하는 과정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재난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줄이고 정상상태로의 복귀를 돕는 일련의 과정을 포괄한다.
학습을 통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를 맞춰가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만일 행위와 기대된 결과가 맞춰지지 않고 오류가 발생하며 새로운 행위를 취하고 그로 인한 결과를 맞추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를 ‘1차 학습’(황희영, 2000) 또는 ‘단일회로학습’
따라서 재난을 통한 학습, 특히 지배적 가치를 변화시키고 그에 따른 행위 전략을 수정하는 이중학습이 재난 관리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된다. 그런데 재난에 대한 이중학습의 실행은 해당 사회의 공공성과 관련되어 있는데, 공공성이 높지 않다면 재난대처와 안전을 중시하는 지배적 가치와 그에 따라서 수정된 행위 전략의 시도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공공성의 수준과 특성에 따라서 유사한 재난이더라도 발생, 대응및 복구 메커니즘은 상이한 양태를 보인다.
공공성이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관계된, 공통적인 것으로서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s)을 추구하며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관심과 규범을 의미한다(사이토, 2009). 서구 사회는 복지 국가의 등장이 공공성을 강화하는 과정이었으며, 국가가 주택, 교육, 보건, 노동 등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공공정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공공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하위 요소는 공익성, 공개성(또는 투명성), 공민성(또는 시민성)으로 알려져 있다(사이토, 2009;
그런데 공공성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강조되는 특정한 구성 영역들이 변한다는 점이다. 이는 공공성이란 누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규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결정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어떤 방향을 지향하던지 공공성의 핵심은 시민들이 공적인 사안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공공성은 당면한 문제를 표면에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투명한 과정을 중시하게 되고
1)
북유럽에 있는 4대강(Rhine, Meuse, Scheldt, Eems)의 삼각주에 위치해 있는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바닷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과 둑을 구축하여 국토를 간척해 왔다. 따라서 홍수 위험을 막고 간척지를 지키며 담수를 확보하는 치수(water management)는 필수적으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치수는 홍수에 취약한 지역 및 그 지역에 거주하는 개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철저히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라인강과 뫼즈강 유역은 북해와 연결된 홍수 취약 지대로서, 각 지역마다 제방과 둑의 관리 책임자를 중심으로 제방과 둑을 관리하였고, 홍수에 의해 제방과 둑이 붕괴되면 보수와 복구를 반복해 왔다. 이런 연유로 공동체적인 사회 연대를 바탕으로 각 지역과 개인들에게 자율과 자치를 보장하였고, “수로 문화의 사회”(Hydrographic Cultural Society), 즉 홍수 방어를 위한 댐과 제방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치수를 지역의 수준에서 책임지는 시스템으로부터 국가가 유래하게 되었다
따라서 홍수 방어는 단순히 홍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근본적인 정치·사회적 쟁점을 불러일으키는 국가적인 아젠더로 간주되어 왔다
네덜란드는 과거에는 홍수로 인한 피해를 입는 상황이 되풀이되었고 그 때마다 붕괴한제방을 보수하거나 복구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중반에는 엔지니어 등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제방을 근본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기존의 제방 높이가 충분히 높지 않아서 홍수에 대비할 만한 조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제방을 더 높이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제방 강화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 부담 때문에 주저하다가 결국 기존의 제방 위에 콘크리트 벽을 약간 쌓는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특히 1934년의 조사보고서는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규모 댐건설 계획(Delta plan)을 제안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1939년에 설립된 폭풍위원회(Storm tide commission)에서도 방조제 강화를 역설하였으나 정부는 경제적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간척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간척에 의한 농지 확장과 식량 확보에 많은 예산을 투여하였고,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였다.
델타 플랜의 기본 골격은 바닷물의 범람을 막기 위한 대규모 댐건설을 핵심으로 하는 델타 프로젝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타 플랜이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위험을 인식하는 지배적인 가치가 홍수를 ‘수용할 만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정부 및 이해당사자들은 대규모 댐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현재에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보았다. 또한 세계대전 중에 겪은 극심한 식량 부족은 정부로 하여금 간척 사업에 의한 농지 확장과 경제적 부의 창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예산을 투여하게 하였다. 그 결과 홍수 위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방을 보수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정책을 선택했고 전문가들이 제기했던 방조제의 근본적인 강화 방안은 잠복하게 된다.
네덜란드는 1953년에 발생한 대홍수를 계기로 전반적인 홍수 방어 전략과 시스템에 대한정부와 사회의 인식과 대응의 기조가 대홍수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할 정도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단순히 자연 환경에 의해 발생한 재난으로 기억된다면 홍수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는 네덜란드에서 1953년 대홍수로 인한 참사는 오래 기억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서 전쟁의 기억과 상처가 소멸되기도 전에 홍수가 발생하였고, 홍수로 인한 대참사의 이미지가 비극적인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이는 시민들에게 트라우마의 집단 기억(Traumatic collective memory)
대홍수의 집단 기억으로 홍수 위험에 대한 수용가능성의 수준은 보다 엄격한 방향으로 변하게 되었다. 홍수 발생이 빈번한 네덜란드에서 홍수 위험은 ‘알려진 위험’, ‘피할 수 있는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홍수 방어 및 치수 시스템의 문제점이 노출됨으로써 홍수 발생을 미리 알지도 못했고 피하지도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홍수는 수용가능성이 높아서 발생하더라도 사회적 논란을 불러오지도 않고 제도적 대비책을 요구하지도 않는 ‘용인할 수 있는 위험’인데, 1953년 대홍수를 계기로 홍수 위험에 대한 수용가능성이 낮아져서 ‘견딜 수 없는 위험’으로 전환하였다. 인적, 물적 피해의 심각성이 증가하면서 사회적으로 두려움이 커지고 불안을 야기하여 적극적인 대응과 조치를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후학습은 재난의 경험에 대한 지속적인 검증을 통해서 지식으로 전환시키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기존의 단일학습 방식이었던 방조제 보수는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1953년 홍수에 의한 대참사를 겪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오류를 초래한 학습 방식의 근간을 이루었던 기존의 지배적 가치를 변화시키고 그에 따른 새로운 행위를 수정함으로써 기대된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대홍수를 계기로 그 동안 당연시 해 왔던 지배적 가치에 개입하여 변화시키고 그에 따른 행위 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동안 네덜란드 사회에 뿌리박혀 있었던 지배적 가치는 안전을 현재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대규모 댐건설 예산을 투자하지 않았고, 식량 확보와 경제적 부의 창출을 위해서 간척사업을 우선시하였다. 1920년대, 1930년대에 이미 근본적인 홍수 방어를 위해서는 대규모 방어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계획이 제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이는 주민 안전보다 비용 및 경제적 부를 우선시하며, 홍수 발생 이전의 예방과 방어보다 홍수 발생 이후의 수습과 복구를 우선시하는 가치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변화된 새로운 가치는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홍수 위험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대홍수 이후의 주요한 변화는 (1) 홍수 피해 보호 지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2) 홍수 피해의 복구와 수습보다 예방과 투자를, 비용보다는 안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3) 과학적 방법, 통계 등의 실용적 지식을 최초로 도입하였다는 점이다. 즉 안전을 위해 위험을 예방하려는 사회적 가치를 토대로 행위 전략을 전환시키고 그 결과 방파제의 근본적인 강화를 위한 댐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정부는 관계부처를 통해서 홍수가 발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대홍수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델타위원회(Delta committee)를 설립하였다. 위원회는 기존에 있던 제방을 더 높게, 더 튼튼하게 건설하는 방안과, 바다를 가로막는 홍수 방어용 댐을 새로 건설하는 방안 중에서‘홍수 방어를 위한 투자’의 관점으로 후자를 선택하였다
델타위원회는 기술적, 조직적, 법률적, 재정적 체계를 갖추어서 홍수 방어를 위한 근본적인 전략을 선택하였다. 1월 31일과 2월 1일에 걸쳐서 대홍수가 발생한 이후, 2월 18일 에 델타위원회를 설립하였으며, 3월 16일에 델타법의 기초가 되는 광범위한 계획이 확정되었고, 5월 8일에 델타법이 공표되었다. 대홍수 직후 델타위원회 설립부터 홍수 방어를 위한 사업들이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이처럼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미 1920년대, 1930대에 홍수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댐건설 방안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엔지니어 등의 전문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기존의 위원회에서 제시된 댐건설 방안과 델타위원회의 댐건설 방안은 방향성과 내용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으며, 다만 댐건설을 위한 재정, 인적 및 조직적 체계, 법률적 지원이 미비했다. 따라서 안전을 중시하는 가치로 전환된 상황에서 델타위원회는 홍수 방어 전략을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있어서 과거에 제시되었던 방안을 참고할 수 있었다.
주목할 점은 델타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약 60년에 걸쳐서 네덜란드의 홍수관리 정책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수정해 왔다는 점이다. 1997년까지는 델타 프로젝트로 일컬어지는 대규모 건설 사업을 추진하여 댐, 수문(보), 갑문, 방파제, 해일 방벽 등을 건설하였다. 이 시기에는 북해의 범람에 의한 홍수에 대비하고 인구밀집 지역인 델타를 방어하기 위해서 ‘물과의 전쟁’을 추진하였다. 2단계는 1997년부터 델타 대하천 프로젝트(Delta Plan Large Rivers Project)를 추진한 시기이다. 겨우내 얼어붙은 얼음이 봄에 녹아내리면서 발생하는 하천의 홍수에 대비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라인강변과 인근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2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1993년과 1995년의 홍수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2단계에서는 ‘물과의 공생’으로 홍수 방어 전략을 수정했는데, 하천의 여유 공간(Room for River), 즉 하천 주변을 확장, 강화하여 홍수가 발생했을 때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여유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2008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델타 프로그램(Delta programme)은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는 것이 목적인데, 앞선 사업들이 홍수로 인한 재난을 겪은 후에 추진된 것과 달리, 델타 프로그램은 네덜란드 역사상 최초로 홍수를 겪지 않고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네덜란드는 홍수에 의한 재난을 계기로 철저한 사후학습, 그 중에서도 지배적 가치에 개입하여 행위 전략을 수정하는 이중학습을 통해서 홍수 관리 시스템을 혁신해 왔으며 그 결과 홍수 관리 역량이 향상되었다. 특히 1953년 대홍수를 계기로 안전에 대한 인식의 전환, 대응과 수습에서 예방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이중학습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무너진 방조제를 보수하는 소극적인 대처에서 경보 시스템을 개혁하고, 댐건설 추진을 위한 기술적, 조직적, 물질적 자원을 확대하며, 홍수 관리 책임자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등의 혁신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최근에 와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위험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반면에 홍수에 대비하는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관리 수준이 높은 국가로 평가받을 정도이다
이러한 이중학습과 시스템 혁신의 과정에는 네덜란드 사회에 깔려 있는 공공성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의 이익을 견제하고 공공의 영역, 공동체와 구성원의 공통의 이익을 실현하는 공공성이 높으면 위험 또는 안전 문제는 공통의 이익으로 간주되어 위험의 발생가능성을 낮추고 피해를 줄이고 관리할 수 있다. 반면 공공성이 낮다면 위험 방어와 안전을 중시하는 지배적 가치와 그에 따라서 수정된 행위 전략의 시도는 어렵게 된다. 최근 OECD 30개 국가의 공공성 지표에 대한 분석결과를 보면
그렇다면 네덜란드의 공공성 수준과 특성이 대홍수로 인한 재난 이후 이중학습을 통한 시스템 혁신에 어떻게 관련되어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는 홍수 관리시스템의 혁신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익성, 공민성, 공개성이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살 펴보겠다. 첫째, 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공통적 이익에 기여하는 자원의 투입 및 배분이 이루어지는 공익성의 측면에서 보면, 이중학습에 의한 시스템 혁신이 가능하려면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공공의 이익을 인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상호협력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네덜란드는 과거부터 바닷물을 막고 제방을 쌓는 오랜 간척의 역사에서 공익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발달해 왔다. 제방과 둑의 관리와 보수를 책임지는 각 지역의 주민들이 공공의 이익에 등을 돌리고 사적 이익을 추구할 경우 홍수 방어에 실패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모든 주민이 입게 된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의 공동 협력과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저지대 간척지의 주민은 모두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공유되어 있다
또한 높은 공익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한 네덜란드의 관대한 복지국가 시스템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발달된 공적 복지에 따른 효과적인 소득 재분배로 공익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왔다. 특히 의료, 교육, 사회보장 등 모든 복지영역에 국가의 영향력과 분배적 기능이 확대되면서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공공 정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해 왔다. 1952년 사회사업부(Ministry of Social Works)가 설립되면서 주로 민간·종교단체가 담당했던 복지서비스 제공을 정부 부문도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1957년에는 최초의 보편적 사회보험제도인 공적퇴직연금법(Public Retire Pension Act)이 시행되었다. 또한 1960년대 초부터 사회보장과 관련된 많은 법과 정책이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도입되었고, 복지사업 개념이 유행하면서 지식, 권력, 소득의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동체로 개혁하기 위한 사회개혁을 실행하였다
둘째, 복지국가의 확대가 공공의 영역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데 있어서 막대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해서 국가가 공공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주체는 아니다. 공민성, 즉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의 공민성은 델타위원회에서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참여하여 공통의 문제를 놓고 협의하고 협력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대규모 댐건설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정부기관, 이익단체, 주민조직 등의 집단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델타위원회는 프로젝트 책임자의 지시 하에 기초단체장 및 광역단체장, 물관리 이사회(water board)를 포괄하는 체제를 구축하였고,
물론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 집단들 사이에 분쟁과 갈등이 있었으며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협력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항구를 통한 해상 운송의 중요성, 델타 근해의 농업 및 어업 종사자, 자연환경 및 생태주의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많은 반대 여론과 저항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타위원회의 델타결정(Delta decision) 원칙에 따라서 작은 규모의 단체에서부터 중앙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의 집단들이 참여하여 적절한 협력을 통해서 작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제방을 보수하고 새로운 댐을 건설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둘러싸고 관계기관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작은 작업에서 큰 작업으로, 단순한 작업에서 복잡한 작업이라는 논리를 채택함으로써 이전 단계의 댐건설 과정에서 학습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댐건설에서 부딪히는 난제를 해결하였다.
셋째, 공공성의 핵심은 시민들이 공적인 사안에 관심을 갖고 공공의 이익을 가져올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인데, 이런 연유로 공공성은 공개성, 즉 당면한 문제를 표면에 드러내고 논의하는 투명한 과정을 중시한다
2)
3) 네덜란드의 4대 최악의 홍수는 1675년, 1682년, 1916년, 1953년의 홍수가 꼽힌다
4) 1953년 대홍수로 인한 피해 규모는 다음과 같다. 1,836명 사망, 이재민 72,000명 발생, 20만 헥타르(농지의 9%) 침수, 가축 20만 마리 익사, 가옥 47,300채 파손 등 총 피해 규모는 약 10억 길더로 추정되었다.
5) 1960년 델타 위원회는 해안선 부근의 안전 기준을 제시하였고 주요 하천의 안전 수준은 1970년에 도입하였는데, 예측 가능성(난이도)과 임팩트의 크기에 따라서 안전기준은 해안선이 더 철저하였다. 바다의 홍수는 최고 1회/10,000년~최저 1회/2,000년, 강의 홍수는 최고 1회/1,250년~최저 1회/250년의 수준으로 정부가 위기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6)
7)
네덜란드가 1953년 대홍수의 재난을 겪은 이후 이중학습에 의한 시스템 혁신으로 홍수관리 역량을 높일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의사결정 과정에 이해당사자와 시민들이 참여하고 협의하여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델타위원회는 각 수준의 정부기관과 다양한 형태의 시민사회 조직 사이에 이루어진 정부-민간 협력 체제이다. 이러한 정부-민간 협력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도록 견제하고 공공의 이익을 인식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시민사회가 존재해야 한다.
네덜란드는 다양한 시민단체, 종교단체, 각종 협회 등을 주축으로 시민사회가 잘 조직되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역량을 발휘해왔다. 시민들은 다양한 통로와 경로를 통해서 소통하고 협의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공공의 문제에 관여한다. 네덜란드 시민의 참여에 의한 소통과 협의를 일컫는 오버레흐(overleg)라는 용어는 이러한 특성을 보여준다. 오버레흐는 이해 당사자들이 모든 의견을 꺼내 놓고 합의할 때까지 회의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반드시 존중해야 하고 뒤집지 못함으로써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결정사항을 실행할 수 있다.
1960년에 착공하여 1986년에 준공된 오스터스켈더댐(Oosterscheldekering)은 어패류산업 유지와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서 댐건설에 난항을 겪었다
이처럼 사회적 협의와 합의를 통해서 정부‑민간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작용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의 근원은 네덜란드의 역사적, 문화적으로 고유한 ‘기둥화’현상으로 알려져있다. 기둥화(pillarization)는 가톨릭, 칼빈파, 노동계급(사회주의), 개혁파 교회 등을 중심으로 기둥(pillar)이라고 불리는 각기 분리된 집단들이 조직되고 각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 사이에 사회 통제와 보호가 이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특히 종교 조직들은 종교적 자선 활동으로서 구빈 활동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서 민간구빈기관이 큰 폭으로 증대하였다. 이들 종교 조직은 교육이나 빈민 부조 등에 대한 정부의 역할 강화를 반대하고 자신들의 배타적인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려고 하였다. 구빈활동에 있어서 정부는 최후의 책임만 질 뿐이고, 종교 조직들이 독자적으로 실질적인 자선 활동, 사회 사업을 수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들은 종교 또는 이념에 부합하는 기둥 속에서 삶을 영위하였고 기둥을 통해서 광범위하고 다양한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 참여하였다.
각 기둥은 1차 사회관계, 직장, 교육, 정치, 보건, 레저, 미디어 등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종교, 이념별로 결성된 정당,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주택조합, 학교, 보험, 신문, 병원, 스포츠클럽, 사교모임 등의 다양한 조직들로 결성된다. 따라서 각 기둥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핵심 근원지(prime loci of identification & socialization)이며, 넓은 의미의 정치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수시켜 주는 중요한 에이전시로 기능한다
이러한 기둥화의 존재는 네덜란드의 선거 제도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결합하여 네덜란드의 정당 체계를 규정하였다. 거의 모든 종교와 계급은 각각 정치집단 또는 정당으로 발전함으로써 다원주의를 초래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둥화로 인해서 종교와 이념에 기반한 각 기둥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정치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 긴밀한 유대(close tie)가 존재할 수 있었다
8) 1879년 정통 칼빈파 교회는 반혁명당을 설립하였고, 1894년 사회민주주의노동당의 전신인 사회민주주의연맹은 노동조합운동을 기반으로 1881년에 설립되었다. 1908년 네덜란드개혁파교회는 기독역사연합당을 설립하였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연합을, 가톨릭은 가톨릭당을 설립하였다.
네덜란드가 1953년 대홍수라는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고 오히려 홍수 관리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다른 국가들보다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난 이후의 사후학습, 특히 지배적 가치의 전환에 따른 이중학습을 통해서 시스템을 혁신하는 방향으로 공공성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홍수 발생 직후 관계 부처가 신속하게 개입하여 델타위원회를 설립하였고, 델타위원회는 홍수 발생과 피해 상황의 실상을 규명하였고, 단편적인 임기응변식의 대처가 아니라 홍수 위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또한 시민들은 대규모의 자원봉사자로 등록하여 홍수로 유실된 방파제의 복구를 위한 공익활동에 참여하였다. 델타위원회에는 다양한 수준의 정부 기관, 연구기관, 협회, 이해당사자들, 시민단체(조직)들이 참여하였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소통과 협의를 통해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합의를 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홍수와 관련된 과학적인 지식과 정보가 공개되어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투명성이 보장되었다. 델타 프로젝트를 계기로 네덜란드는 홍수로 인해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상황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고 홍수 위험 관리 역량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까지 받게 되었다.
반면 한국사회로 눈을 돌린다면 여전히 과거형 재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사전 경고와 긴급구조 체계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사회에서는 재난의 발생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재난으로부터 아무런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배적 가치의 전환에 따른 수정된 행위 전략에 기반하는 이중학습의 부재는 구조적인 시스템 혁신을 저해함으로써 재난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특히 경제주의, 양적 성장주의, 비용 절감에 밀려서 위험을 방치하고 안전을 도외시하는 지배적 가치에 개입하여 전환시키지 않는다면 이중학습에 의한 시스템 개혁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네덜란드의 홍수 위험 극복 사례를 통해서 과거형 재난을 되풀이하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몇 가지 합의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홍수는 ‘알려진 위험’, ‘피할 수 있는 위험’이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과 절차를 갖춘 기존의 체계를 작동시킴으로써 방어하고 대비할 수 있는, 따라서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점차 비중이 감소하는 ‘과거형 재난’이다. 간척을 우선시하고 비용 부담을 회피하려는 관점에서 제방을 보수하는데 그쳤던 네덜란드의 홍수 정책은 1953년 대홍수의 참사를 계기로 근본적인 시스템 혁신을 시도함으로써 효과적인 홍수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는 알려진 위험, 피할 수 있는 위험, 과거형 재난인 홍수에 대하여 사후학습, 특히 지배적 가치의 전환을 통한 이중학습이 이루어질 경우 오히려 사회의 복원력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과거형 재난에 대한 사후학습을 합당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알 수 없는 위험’에 대한 예방 또는 대비, 즉 사전학습도 가능해진다. 네덜란드는 바다를 가로막는 댐건설, 하천의 범람에 대비하는 공간 구축 등 1953년 대홍수로 심각한 재난을 겪은 후에 그것을 계기로 시스템을 혁신, 발전시켰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델타위원회는 2008년부터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을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면서 델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위험과 재난을 방어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조직화되고 활성화된 시민사회의 역량도 중요하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새로운 댐을 건설한다는 델타 프로젝트가 40년 이상 지속되고 최근에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델타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하면서 이어질 수 있는 배경에는 그러한 과정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다양한 시민사회의 세력들이 존재한다. 델타위원회의 의사결정은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기초지자체, 그리고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소통과 협의 과정을 거쳐서 합의점을 도출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설령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공공사업이라고 해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집단들이 존재하고 분쟁과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히 대화하고 협의하여 충돌하는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이러한 분쟁과 갈등은 감소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가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통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의 협력과 참여를 포함하는 거버넌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버넌스는 신뢰와 협력적 참여, 네트워크를 통해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데, 네덜란드에서 위험 거버넌스의 핵심은 이해당사자, 시민단체 및 시민사회가 각종 위원회, 협의회, 이사회와 같은 공식 기구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협의를 통하여 합의를 도출한다는 점이다. 위원회, 협의회, 이사회 등은 정부에 의한 일방적 문제해결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파트너로서 인정되고 공유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협력하는 제도, 절차, 규범으로서 잘 발달되어 있다. 홍수 위험과 재난은 다수의 시민들을 위협하는 공공의 문제이므로 다양한 시민단체 및 시민사회의 참여와 협의를 강조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거버넌스는 공공성의 영역에서 중요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 주도의 공공사업이더라도 그 자체가 공공성을 담보하거나 유일하게 정부가 공공성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민간의 협력과 합의를 강조하는 거버넌스는 합의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쟁점을 다루게 되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충분한 소통과 협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일단 합의에 도달한 결론은 신속하게 실행된다. 거버넌스의 민주 적 측면뿐만 아니라 민간, 시민사회의 협력이 가능함으로써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성과를 내기도 한다. 물론 정부는 특정 집단이나 계급의 이해관계를 고착화시키고 옹호하기보다 공공의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관용과 타협이 용이해질 수 있다. 반면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제도/정책일지라도 거버넌스에 기반하여 이해당사자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제도/정책과 실행의 괴리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측면을 인식하여 네덜란드는 최근 들어서 공공성에 대한 정부의 감독과 투명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법률체계의 정비 및 강화, 공공의 문제에 대한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위험을 방어하고 안전을 지키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재원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므로, 경제성장과 안전이 제로섬의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델타위원회는 위험 방어와 안전을 지키는 사업을 비용의 관점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규모 댐건설 방안을 지지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홍수로 인한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나아가 해상 운송 능력의 향상, 관광자원의 개발, 고용창출 등의 경제적 효과도 가져왔다. 최근에 와서 네덜란드의 홍수 위험 관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 녹색성장 모델과도 연결된다.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경제자본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적자본, 사회자본, 자연자본을 포괄하여 미래의 다음 세대에까지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에 주목하면서, 환경의 효율적인 사용과 이를 통한 새로운 경제적 기회의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압축적인 경제성장에서 이미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경제주의로의 편향성과 타부문과의 비대칭성,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성과주의, 과속성장에 의한 편법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재난이 발생하면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도출하기보다 단편적이고 일회성의 임기응변에 머무르고 있다. 위험 방어와 재난 관리와 연관되어 있는 사업들을 연결시켜서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특정 재난에 국한되는 단편적인 사업을 단기간에 걸쳐서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잘못도 지적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누적되어 왔던 문제점이 재난 발생을 통해서 겉으로 표출된 사회의 취약성을 직면하기보다 책임회피와 희생양 찾기에 몰두함으로써 이중학습을 가로막고 있다.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주의, 성장주의는 위험을 방치하거나 위험을 추구하는 가치와 그에 따른 행위 전략을 채택하도록 유인한다. 반면 네덜란드는 1953년 대홍수를 계기로 홍수 발생의 원인, 그로 인한 재난의 규모와 심각성을 규명하고, 대홍수의 참사를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이중학습에 따른 시스템 혁신을 추진하였다.
한국사회가 과거형 재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중학습과 시스템 혁신에 성공하려면 사회적 가치의 전환과 그에 기반하는 수정된 행위 전략이 뒤따라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공공성을 강화하고 제고시켜야 할 것이다. 공공성이 높으면 위험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여 위험 발생을 낮출 것이고, 위험이 발생할 경우에는 적절히 대응하고 수습하는 복원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공공성은 OECD 30개국 중에서 최하위일 뿐만 아니라 공익성과 공정성은 각각 30위, 공민성은 29위, 공개성은 28위 등 공공성의 모든 하위영역에서도 최하위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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