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Korean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Society 2023 KCI Impact Factor : 1.02
-
pISSN : 2466-2542
- https://journal.kci.go.kr/liss
pISSN : 2466-2542
An Investigation on the Quality of Academic Library Collections in Korea
1부산대학교
대학도서관에 책이 없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쓸데없는 책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책은 없단다. 대학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에게서 흔히 듣게 되는 불만이다. 그런데 대학도서관 내부에 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불거져 나온다. 대학도서관에 책이 넘쳐난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은 넘쳐나는데 그 책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단다. 대학도서관을 운영하는 관리자들에게서 흔히 듣게 되는 고충이다. 한편에서는 기본 장서는 물론이고 강좌의 교재조차 부족하다며 장서의 대대적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은데, 다른 한편에서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책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면서 보존서고의 조속한 증설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현재의 서고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대학도서관에 입수되는 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정작 그 책을 이용해야 할 학생들은 대학도서관에 책이 없다면서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대학도서관들이 전자자료의 구독에 과도 하게 몰입하면서 인쇄자료의 개발을 소홀히 했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 초창기부터 ‘부실한 품질’로 지탄을 받아온 대학도서관 장서를 질적으로 개선하려 하기보다 장서량을 늘리기에 급급했던 대학도서관들의 그릇된 업무행태가 서서히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하였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궁금하였고, 그 연장선에서 우리나라 대학도서관들이 구축해온 장서의 실체가 궁금하였다. 더불어 전자자료 중심의 장서개발이 대학도서관계 전체로 확산되어온 지난 10여 년 동안, 인쇄자료(이하 실물장서)의 개발이 어떠한 변화를 겪어 왔는지 궁금하였다. 대학도서관 장서에 관한 각종 통계에 따르면 전자자료의 성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실물장서의 성장 또한 꾸준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도서관이용자들이 “도서관에 책이 없다”며 불만을 터트리는 이유가 못내 궁금하였다. 그 연유를 알아내고자 대학도서관 장서문제를 다룬 연구물을 찾아보았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기존 연구들의 논점과 결과에 대한 실망감과 아쉬움만 키우고 말았다.
필자의 과욕이었을까? 대학도서관 장서문제는 오랜 세월 도서관학자들의 관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는 선행연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의 실물장서를 대상으로 삼아 장서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 연구물 자체가 적었으며, 특히 토착적 시각에서 장서문제의 원인을 파헤친 연구물은 거의 없었다. 선행연구의 대부분은 도서관선진국의 장서개발 정책을 소개하거나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에 적용해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가운데 대학도서관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대학도서관 장서의 ‘조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전담 인력의 ‘잘못된 관행’을 밝혀낸 김정근의 연구만이 필자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렇듯 이 연구는 장서문제에 관한 궁금증을 온전히 해소하고자 하는 필자의 욕심에서 출발하였다.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도서관들이 구축해온 장서의 속내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밝혀내고 싶었고, 대학도서관계의 업무관행과 전담 인력의 업무행태를 통해 장서문제를 유발해온 원인을 토착적 시각에서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기존의 연구물과는 다른,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계의 실정을 고려한 고유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러한 연구목적에 충실하고자 필자는 10개의 거점국립대학도서관(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서울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의 도서관)을 사례로 삼아 논점을 풀어갔으며, 논리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근거 데이터는 각종 통계자료와 10개 대학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들과의 면담, 그리고 부산대학도서관 장서에 대한 품질검증 등을 통해 확보하였다.
“관장님! 신중히 결정하셔야 합니다. 관장님의 이번 결정이 경영 효율 면에서 합리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도서관과 경쟁관계에 있는 K대학도서관은 얼마 전 ‘300만 장서’ 돌파를 기념하는 축하연까지 벌였습니다. 이번에 보존서고에 있는 학위논문을 폐기하시면 우리 도서관과 K대학도서관의 장서량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전임 총장님께서는 K대학도 서관의 장서량을 서둘러 앞서라고 자료구입비를 추가로 지원해 주시기까지 하셨는데...”
부산대학도서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필자는 原文DB 구축작업을 마친 학위논문을 폐기하여 수용 한계에 이른 보존서고에 여유 공간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위 인용문은 필자의 그러한 지시에 중견 사서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했던 우려이다. 당시 사정은 이러하였다. 디지털 작업을 위해 낱장으로 분리해 놓은 6만여 권의 학위논문이 도서관 보존서고에 몇 년째 쌓여있었다. 폐기의 수순을 밟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장서량의 급격한 감소를 우려한 중견 사서들은 폐기의 수순을 밟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만약 신규 자료의 지속적인 도입으로 인해 공간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지만 않았더라도 (그래서 필자가 보존서고의 상태를 점검하지 않았더라면), 필자 또한 수년 전에 작업이 완료되어 낱장 형태로 보관해 오던 학위논문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일이 부산대학도서관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이러한 일은 이 연구에서 사례로 삼은 10개의 거점국립대학도서관들 모두에서 관찰되어 지는 ‘업무관행’에 불과하였다. 도서관학자 김정근이 이십년 전에 개탄했던 것처럼, “철학도 원칙도 없이 닥치는 대로 책을 입수하여 장서의 규모를 부풀리고 일단 입수한 책은 절대로 폐기 하지 않음으로써 양적 성장 목표를 달성해온” 우리나라 대학도서관계 고유의 업무관행이었던 것이다.
글의 도입부에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상세히 밝히는 까닭은 이 글을 통해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장서문제의 본질이 바로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의 전통적인 업무행태와 밀접한 연관을 갖기 때문이다. 즉, 장서의 의미와 가치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서의 외형적 성장에만 주력해온 대학도서관들의 업무관행이 장서의 품질문제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금부터의 논의는 대학도서관들의 ‘그릇된’ 업무관행이 장서의 질적 측면에서 얼마나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데 집중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먼저 최근 10년 동안(2004년~2013년) 우리나라 대학도서관들이 구축해온 실물장서의 외형적 변화를 관찰하면서 양적 성장의 규모를 가늠하고자 하며, 이어서 실물장서의 내용적 품질을 검증하면서 반세기 넘게 경쟁적 성장주의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대학도서관 장서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10개 거점국립대학도서관의 장서 규모는 거의 2배에 이를 정도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긴
주지하다시피 대학도서관 장서는 단행본과 인쇄저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인쇄자료와 웹DB 와 전자저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전자자료로 구성된다. 장서를 구성하는 ‘자료의 유형’에 대해 필자가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대학도서관에 유입되는 인쇄자료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반면에 장서로서의 개념조차 불투명한 전자자료의 유입은 크게 증가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개 대학도서관이 구독하던 인쇄저널은 2004년에 약 3만6천종이었지만 2013년에는 그 2/3 수준인 2만3천여 종으로 감소하였다. 단행본의 신규 입수량 또한 매년 점진적으로 감소하여, 10개 대학도서관에서 2005년에 입수한 단행본의 총량은 약61만권이었으나 2013년에 이르면 그 수량은 49만권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인쇄자료의 입수가 줄어든 만큼 전자자료의 구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는데, 특히 2004 년을 기점으로 대학도서관에 유입되는 자료 중에서 전자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획기적인 증가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4년에 10개 대학도서관에서 구독하던 전자자료는 모두 362종으로 평균 36종에 머물렀으나 2013년에는 모두 800여종으로 증가하여 도서관마다 평균 80종에 이르는 전자자료를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자료의 급속한 증가 추세는 관련 예산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10개 대학도서관 전체를 놓고 볼 때, 전체 자료구입비에서 전자자료의 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4년에는 약 15%에 불과하였으나 2013년에 이르면 무려 64%에 이를 정도로 대폭 상승하였다.
이렇듯 대학도서관에 입수되는 자료에서 전자자료의 비중이 급증하면서 인쇄자료를 중심으로 산출해오던 장서량을 둘러싸고 대학도서관마다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장서의 범주에 전자자료를 포함시켜 장서량을 산출하는 대학도서관들이 증가하면서, 그러한 행태의 타당성과 장서량을 산출할 때 전자자료를 반영하는 방식을 놓고 대학도서관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2014년 9월 현재, 서울대학도서관이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는 통계에 따르면, 同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475만권의 도서 중에는 47만권 가량의 전자책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同 도서관이 구독하고 있는 102,700여종의 연속간행물 중에서 인쇄자료는 4,700여종에 불과하고 나머지 98,000여종이 전자자료인 상태이다.
어디 이러한 행태가 서울대학도서관에서만 나타나겠는가?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대학도서 관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전자자료를 장서량에 반영하는 방식을 두고 대학도서관들 사이에는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교육부 등 국가기관에 제출하는 장서량은 전자자료의 산정 방식에 따라 들쑥날쑥한다. 특히 전자자료를 최소 단위까지 반영하여 장서 량이 급등한 것으로 발표하는 일부 대학도서관들로 인해 장서량을 기준으로 한 대학도서관 평가는 점차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처럼 전자자료를 장서에 포함하는 문제는 아직 논란의 중심에 있다.
대학도서관들이 제시하고 있는 장서 통계에 대한 의문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은 장서량을 산출하는 과정에서의 비합리성이 전자자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인쇄자료의 소장량을 산출하는 과정에서도 합리성을 결여한 부적절한 방법들이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대학도 서관들이 제시하고 있는 인쇄자료의 통계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끼어있는지는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만났던 현장 사서들의 고백에 적나라하게 녹아 있다. 사서들의 고백에 따르면, 대학 도서관들이 장서를 ‘부풀리기’ 위해 사용해온 관행 중에는 ‘인쇄저널을 집계할 때 제본 단위 대신에 개별 권/호로 분리하기, 인쇄와 전자형태로 구독을 병행하는 자료는 별도로 계산하기, 원문파일로 구축한 학위논문을 별도로 계산하기, 분책으로 구성된 단행본은 분책으로 나누어 계산하기 등, 상식을 초월한 부적절한 방법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렇듯 비합리적인 ‘장서 부풀리기’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은 ‘소장 자료의 제적 혹은 폐기’를 가능한 기피하고자 하는 업무행태이다. 입수된 지 오래되어 물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장서의 가치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불필요한 복본이 과도하게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서의 일부로 잡혀있는 경우에는 절대로 폐기하려 들지 않는 행태가 우리 대학도서관계 에는 만연해 있다.
표에 나타나듯이 지난 10년(2004년~2013년) 동안 10개 대학도서관이 폐기한 자료는 모두 합쳐서 49만권 정도로 도서관 당 연평균 제적량은 불과 5천권에도 이르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대학도서관의 경우 소장 자료의 제적 실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장서 량을 외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료의 폐기에 얼마나 민감하고 소극적이었는지 능히 짐작하게 한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그들 10개 대학도서관의 장서량이 연평균 10만권 이상 증가했음을 고려할 때(
이렇듯 비합리적인 행태가 ‘업무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현장에 반세기가 넘게 존속해 왔던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데, 대학도서관들이 통계를 통해 밝히고 있는 장서의 외형적 성장이 아무리 눈부시다 할지라도 그 속내는 김정근이 개탄했던 ‘쓰레기더미’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해진다. 하긴, 지금까지 장서의 외형 만을 훑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밝히고 있는 장서량에 대한 신뢰감이 근본부터 흔들리는데 과연 그 속내가 어느 정도 견실할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필자는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구축해 놓은 장서의 속내를 밝히는 작업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들 실물장서의 품질을 세세히 검증해봄으로써 대학도서관들이 밝히고 있는 장서량의 허상과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대학도서관 장서의 품질을 검증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면서 ‘장서의 품질’과 관련하여 필자가 주목하였던 요소는 두 가지였다. 즉, 대학도서관 장서가 ‘필요한 자료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소장 가치를 상실한 자료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전자는 이 글의 서론에서 기술했던 “도서관에 필요한 책이 없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후자는 “도서관에 책이 넘쳐나서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서들의 불만이 타당한지를 검증하기 위해서 설정한 기준이었다.
한편, 품질검증은 필자가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수월하고 실물자료에 대한 내용 검증이 가능한 부산대학도서관 장서를 대상으로 하여 진행하였다.
이러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품질검증을 시행한 결과, 있는 그대로 밝히기조차 민망한 부산 대학도서관 장서의 ‘조악한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도서관에 필요한 책이 없다”는 학생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하였지만, “도서관에 책이 넘쳐서 보존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서들의 주장은 타당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230만 장서를 갖춘 부산대학도서관에는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는 매우 부족한 반면에 학술 적인 가치는 고사하고 교양자료로서의 의미조차 애매모호한 불필요한 자료가 서가 구석구석에 잔뜩 쌓여 있었다. 대학도서관, 그것도 나름대로 명망을 지닌 연구중심대학의 중앙도서관 에서 소장하기에는 ‘내용이나 수준이 적합하지 않은 자료’, 심지어 ‘물리적인 상태조차 온전치 않은 자료’가 부산대학도서관 서가에는 너무도 많았다.
구체적으로 기술하자면, ‘초중등학교도서관에도 적합하지 않은 수준의 도서’, ‘복본만 20권이 넘는 강의교재’, ‘7번째 개정판까지 나온 개론서,’ ‘삼십년 전에 출판된 수험준비서’ 등과 같이 장서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불필요한 자료들이 부산대학도서관 장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검색 결과를 확인하고자 서가를 방문해 보니, ‘소장 자료임이 분명한데 실물은 찾을 수 없는 자료’, 사서들 스스로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노끈에 묶어 바닥에 방치해 놓은 자료’, ‘표지도 없이 누렇게 썩어가는 자료’, ‘이미 썩어서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는 자료’ 등이 모두 합쳐져서 부산대학도서관의 230만 장서를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존서가 깊숙이 숨어있어서 실체를 볼 수 없었던 부산대학도서관 장서의 모습은 이렇듯 ‘충격적’이었다.
필자가 짐작했던 것보다 충격적인 결과를 접하고 나니 기존의 장서 관련 연구물에서 반복 적으로 지적해왔던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장서의 공통적인 문제점들, 즉 ‘기본 장서의 부족’, ‘자료의 주제별 편중’, 혹은 ‘흥미 위주의 교양서’ 등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질병 정도로 여겨졌다. 부산대학도서관 장서 또한 동일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암덩어리를 여기저기서 확인하고 나니 그러한 ‘작은’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이 ‘부잣집 아이의 밥투정’처럼 느껴졌다. 2014년 현재, 우리 대학도서관계를 위해 보다 절실한 논의는 장서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서를 근본적으로 살려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로 하여금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 부산대학도서관 장서의 ‘충격적인’ 민낯을 지금부터 몇몇 사례를 통해 만나보고자 한다.
먼저 단행본에 대한 검증 결과를 살펴보자. 영어영문학과 등 4개 학과에서 2013년도에 개설한 29개 전공필수강좌를 조사한 결과 모두 52종의 전공서적(원서 32종, 번역서 20종)을 교재로 사용하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부산대학도서관 OPAC을 이용해 52종의 전공서적을 검색해본 결과, 부산대학도서관에서는 모두 539권의 복본을 소장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비록 일부 학문분야에서 그것도 강좌의 교재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 불과하지만, 대학 도서관 장서의 속내가 이렇듯 부실하다면 교재를 빌려보고자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필요한 책이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학생들에게 개정판이 이미 몇 차례 출판되어 내용이 크게 달라진 책들을 교재로 쓰라고 권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학생들에게 출판된 지 수십 년이 지나서 종이조차 낡고 활자조차 희미해진 책들을 교재로 쓰라고 권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서들은 그런 폐지뭉치들을 장서랍시고 서고에서 보관하고 있으면서 “책이 많아서 서고가 부족하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그들의 억지스런 불만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런 상황이 어찌 단행본에만 국한되겠는가? 이번에는 인쇄저널에 대한 검증 결과를 살펴 보자. 단행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논의의 초점은 부산대학도서관이 구독하는 인쇄 저널이 부산대학교 이용자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나아가 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인쇄저널 중에 ‘장서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저널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두었다. 특히 전자저널을 구독하기 시작한 이후 전자저널과 내용이 중복되는 인쇄저널에 대한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인쇄저널의 품질검증을 위해서는 4개 학문분야에서 선정한 ‘120종의 핵심 저널리스트’를 사용하였다. 부산대학도서관 OPAC을 이용하여 120종의 저널의 소장 여부를 검색해본 결과, 부산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저널은 모두 64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도서관에 책이 많아서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서들의 불만은 인쇄저널의 경우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지하다시피 인쇄저널의 과월호를 보관하기 위한 공간의 부족 문제는 모든 대학도서관들의 고민거리가 되어왔다. 대학도서관들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는데, 인쇄저널을 감축하거나 전자저널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보존공간의 부족 문제는 전자저널 사업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한 주요 이유들 중 하나였다. 부산대학도서관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어서 2004년에 5,500여종에 달하던 인쇄저널을 2014년 현재 약 2,700종으로 절반 이상 감축하였으며, 전자저널의 구독은 지속적으로 확충하여 2014년 현재 약 55,500종의 전자저널을 구독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구독 종수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는 인쇄저널의 과월호를 소장하기 위한 공간 문제는 여전히 부산대학도서관의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 그들의 고민은 주로 전자저널과 병행하여 발간되는 인쇄저널의 과월호와 디지털 변환 작업이 이미 완료된 인쇄저널의 과월호를 지속적으로 소장하는 문제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용되지 않는 과월호의 과감한 폐기를 통해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논리와 “과월호의 지속적인 보존을 통해 이용자 집단의 잠재 요구를 충족하고 외부 자료에 대한 의존도를 축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존하자는 주장을 펴는 도서관 관리자들의 속내에는 과월호의 폐기로 인해 장서량이 급감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짙게 깔려있다.
도대체 인쇄저널의 과월호를 폐기하게 될 때 장서량이 어느 정도 감소하기에 도서관 관리 자들의 우려가 그토록 큰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을 풀어보고자 앞서 활용했던 4개 학문분야의 핵심 저널 중에서 부산대학도서관이 구독해온 64종의 인쇄저널을 표본으로 삼아서, 전자 형태의 대체 수단이 확보되어 있는(그래서 소장의 필요성이 거의 없는) 인쇄저널의 과월호가 부산대학도서관에 얼마나 소장되어 있는지 산출해 보았다. 먼저, 64종의 인쇄저널을 대상으로 하여 제본과 등록을 거쳐 ‘소장 도서’로 등록되어 있는 과월호를 조사하였으며, 그러한 과월호 중에서 부산대학도서관이 구독 중인 전자저널을 통해 원문제공서비스가 가능한 과월호를 ‘중복 자료’로 간주하고 그 소장량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중복 자료로 간주할 수 있는 과월호(제본)는 모두 6,999권으로 파악되었다. 4개 학문분야에서 64종의 인쇄저널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의 결과가 이 정도라면, 전자저널로 대체되어 구독이 중단된 약 2,800종에 이르는 인쇄저널의 과월호 중에는 얼마나 많은 ‘중복 자료’가 포함되어 있겠는가? 거칠게 계산해 보아도 부산대학도서관은 약 25만권이 넘는 인쇄저널의 과월호를 ‘찾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서고에 쌓아놓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단행본과 인쇄저널에 이어 품질을 검증한 실물장서는 학위논문이었다. 단일 유형의 자료로서 학위논문이 대학도서관 장서에서 차지하는 양적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대학도서관마다 자신의 대학에서 생산된 학위논문은 물론이고 수증 등을 통해 타 대학에서 생산된 학위논문을 입수하여 소장 자료로 등록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학도서관의 규모와 정책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대학도서관들이 작게는 수천권에서 많게는 수십만권에 이르는 학위논문을 그들 장서의 일부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디시피 대학도서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학위논문을 DB로 구축하는 사업은 2000대 중반이후 국가정책으로 추진되어 오고 있다. 그 결과, 2014년 현재 우리나라 대학들이 생산한 120여 만편의 학위논문은 국가 DB로 구축되어, KERIS의 RISS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이렇듯 방대한 규모의 원문DB가 구축되어 있는 환경에서 학위논문의 이용자들이 대학도서관시스템이나 KERIS의 RISS를 통해 필요한 논문을 검색하고 다운받는 것은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찾지 않는 오래된 학위논문을 폐기하려는 대학도서 관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은 부산대학도서관에서도 예외 없이 관찰할 수 있다. 2012년 말까지도 부산대학도서관은 부산대학교에서 생산된 42,000여 편의 학위논문(대부분의 논문이 복본까지 등록되어 있어 전체 등록 권수는 거의 7만권에 이른다)에 수증 등을 통해 입수한 타대학 학위논문까지 합쳐서 약 20만권 이상의 학위논문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3년에 들어서 ‘원문파일의 구축 과정에서 낱장으로 훼손되어 버린’ 약 7만권을 제적 처리하면서 그 규모는 현재 15만권 정도로 줄어든 상태이다. 그러나 그렇듯 대규모의 폐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15만권의 학위논문이 과연 소장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2014년 현재, 부산대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5만권의 학위논문 중에서 절반 정도는 이미 활용 가치를 상실한 타대학에서 생산한 학위논문들로 추정된다. 게다가 나머지 절반을 구성하는 자체 생산 학위논문 중에서 2009년 이전에 생산된 학위논문은 거의 대부분이 복본의 형태로 소장되어 있는 상태이다.
1) “부산대학교 도서관은 1989년 말 현재 장서 52만 권을 확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장서 52만 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 의미를 똑똑히 댈 사람이 누구인가? 한 마디로 이런 식의 장서라면 52만 권이면 무엇이며 또 152만 권이면 무엇하겠는가?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곳이 과연 대학도서관 서가인가? 이곳은 폐품 수집장인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는 무명의 저자, 편자, 역자, 무명의 작가, 시인, 수필가가 이처럼 판을 치고 있는가? 어떤 이유로 그들은 많은 경우 다섯 권, 열 권 또는 수십 권씩 복본의 형태로 서가를 점유하고 있는가?”
2) 반면, 인쇄저널 구독예산의 비율은 2004년에 56%에서 2013년에는 19%로 격감하였으며, 단행본 구입예산의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에 27%에서 19%로 감소하였다.
3) 서울대학도서관 홈페이지. <
4) 이 문제와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논점은 소유의 개념이 뚜렷한 인쇄자료와 달리 접근의 개념(계약기간 동안)으로 해석되는 전자자료를 대학도서관 장서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것도 최소 구성단위까지 분리하여 장서량에 첨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물론 ScienceDirect와 같이 수천종의 전자저널을 제공하는 패키지 형태의 웹DB를 단1종의 장서로 간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거대한 웹DB에 수록된 모든 저널들을, 그것도 지난 권/호까지 헤아려 전체 장서량에 포함시키려는 ‘장서부풀리기’ 방식 또한 우리 대학도서관계에 혼란과 갈등만 심화시킬 것이다.
5) 참고로 2014년 4월 현재, 경북대학도서관이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는 장서 통계에 따르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단행본은 약 308만권에 이르며, 도서관이 구독하는 약 44,800종의 학술지(그들의 표기에서) 중에서 인쇄저널은 약 2,300종으로 거의 대부분의 저널(즉, 약 42,500종)은 전자저널이다.
6) 품질 평가는 보통 ‘품질’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시작하여 품질의 측정을 위한 기준과 지표, 그리고 측정방법 등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면서 체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 글에서는 서론에서 밝힌 글의 의도, 즉, 현단계 우리니라 대학도서관 장서에 대한 사서와 이용자의 상반된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이 보다 타당한지를 검증하는 작업에 충실하고자 위의 두 요소에 집중하였다.
7) 참고로 2014년 7월 현재, 부산대학도서관이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는 장서 통계에 따르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는 약 210만권에 이르며, 여기에 약 143,000점에 이르는 비도서, 28,500책에 가까운 고문서 등이 합쳐져 228만권의 실물장서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실물장서에 전자자료 등을 합하여 모두 25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국립대학도서관보의 통계에서는 밝히고 있다.
8) 1차 검색 결과 모두 74종의 인쇄저널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 수치에는 최초 구독이후 얼마되지 않아 구독을 중단한 10종의 저널이 포함되어 있어 실질적인 구독 종수는 64종으로 간주하였다.
9) 808명의 부산대도서관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 조사(2013년 12월에 시행)에서도 단행본(전공서적, 교양서적, 취업준비서적 등)에 대한 불만에 비해 연속간행물(학술저널, 시사저널, 교양잡지 등)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났다 (18.9% vs. 15.7%).
10) 참고로 부산대학도서관은 인쇄저널의 과월호를 제본할 때 연단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만 이용과 관리가 편리한 크기 또한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제본한 과월호에 등록번호를 부여하고, 등록번호가 부여된 제본 자료는 장서 통계를 산출할 때 ‘도서’ 항목에 포함시킨다.
11) 필자가 ‘찾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한 까닭은 앞서 파악한 6,999권의 과월호 중에서 5,100여권이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과 같은 이공계 저널이었으며 보존서고를 방문해 보니 이공계 저널의 과월호를 진열해 놓은 서가에는 먼지만 겹겹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12) 어디 학술저널 뿐이랴! 이번 조사에서 통계적으로 검증하지 않았지만 수증을 통해 입수한 일반 인쇄잡지의 상황 또한 심각하다. 이용자가 거의 없는 인쇄잡지의 과월호 또한 제본과 등록과정을 거쳐 장서에 포함되어 있다.
13) 2014년 현재, 대학도서관들에 소장되어 있는 학위논문의 정확한 통계 산출이 쉽지 않다. 그 까닭은 2007년을 전후하여 대부분의 대학도서관들이 학위논문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산출하지 않고 ‘소장 도서’에 합산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4) 가령, KERIS가 발간한 「2012년 대학도서관 통계자료 분석집」에 따르면, 2012년에 전국의 4년제 대학도서관들이 페기한 도서 수는 약 134만권으로 2011년에 비해 2.6배가량 증가하였는데, 그렇게 급증한 페기 도서에는 일부 대학도서관들이 소장해오던 학위논문이 대량 포함되어 있다.
15) 앞서 인용했던 부산대학교 4개 학과에서 생산한 약 1,800편의 학위논문을 대상으로 복본의 실태를 검증해보니, 2009년 이전에 생산된 학위논문은 거의 대부분이 복본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16) 보존서가에서 보관 중인 학위논문, 특히 페이퍼백 형태의 학위논문은 대부분이 물리적 상태조차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필자가 바라보는 대학도서관 장서문제의 본질은 외형적인 성장에 가려져 있는 장서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열악하다는데 있다. 장서의 품질이 열악하다보니 도서관 사서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도서관에 책이 많아진 것’은 분명한데 그 많은 책들 중에 이용자 들이 ‘필요로 하는 책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렇듯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는 까닭은 도서관에서 장서를 개발하고 관리해온 사서들이 장서의 품질보다는 외형적 성장에 많은 관심을 두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서들은 왜 장서의 품질관리는 제쳐두고 양적 성장에 그토록 집착해 왔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이미 구조화되어 중증 질환이 되어버린 장서의 품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은 요원해진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지금부터 그 원인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먼저 정책적 측면에서 국가 차원에서 생산해온 대학도서관 발전계획, 특히 장서 관련 발전계획이나 지침 등을 검토하고자 하며, 둘째로 조직적 측면에서 대학도서관들이 추진해온 장서개발 전략과 방법 등을 분석하고자 하며, 마지막으로 실무적 측면에서 장서업무를 담당해온 인력의 업무 역량과 행태에 주목하고자 한다.
“제1차 종합계획을 통해 장서 및 자료구입비 등 대학도서관 주요 지표가 양적으로 성장하였고, 학술 정보자원 유통체계를 구축하고 공동 활용을 촉진하였으며...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비교하여 국내 대학도서관의 학술정보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고...”
교육부가 2104년 3월에 발표한 「제2차 대학도서관 5개년(2014~2018) 종합계획」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동 자료에는 이러한 내용에 이어 미국 대학도서관과 국내 대학도서관의 현황 비교표가 제시되는데, ‘소장책수’는 양자의 비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3개의 지표 (자료구입예산, 소장책수, 직원) 중의 하나이다. 이 지표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의 평균 소장책수는 약 65만권으로 평균 214만권에 이르는 미국 대학도서관의 1/3 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계량적 비교에는 미국 대학도서관의 수준을 따라가려면 장서의 양적 확충이 시급하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러나 종합계획서의 어디에도 ‘장서의 품질’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가령, “미국 대학도서관의 장서의 품질은 우수하니 국내 대학도서관도 장서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나 논리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어디 이번 종합계획뿐이겠는가? 장서의 품질관리에 대한 무관심은 거의 모든 도서관발전계획서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반면에 장서의 양적 확충은 도서관 선진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국가에서 작성한 발전계획서에는 ‘장서량의 확충’에 대한 강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대학도서관의 선진화’를 위한 장서개발의 목표를 ‘장서의 양적 성장’에 두는 정책을 펼쳐왔으니 대학도서관 현장에서 어찌 ‘장서량을 늘리는데’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각종 발전계획에 더해서 대학도서관들로 하여금 장서의 양적 확충에 주력하게 만든 배경에는 대학도서관 관련 ‘기준’도 있다. 대학도서관의 설립 또는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각종 ‘기준’ 이 양적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다 보니, 그러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던 대학도서관들로서는 장서의 양적 확충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령, 유일하게 대학도서관 관련 법적 기준을 담고 있던 「대학설치기준령」에는 대학의 설치에 필요한 대학도서관 장서의 요건으로 다음 2개 항목이 제시되어 있었다:
또한 비록 법적 기준이 아닌 권장 기준에 불과하지만, 전문직 단체인 한국도서관협회가 생산한 「한국도서관기준」에도 대학도서관 장서의 평가지표는 양적 요소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이 기준에서는 대학도서관이 갖추어야 할 자료 중에서 단행본의 구성기준으로
이렇듯 국가 차원의 장서개발정책의 기조가 ‘가시적인 양적 성장’에 쏠려있었다. 그런 상황 에서 대학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도서관의 장서개발 목표가 장서의 외형적 확충에 집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특히, 대학도서관에 대한 평가과정에서 품질보다는 양적 요소를 중시하고 그러한 평가결과에 따라 순위를 매겨 사업비를 차별적으로 지원하는 정부 주도형 도서관정책의 테두리에서 어느 대학도서관이 감히 장서량 부풀리기의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겠는가? 이렇듯 해방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장서의 품질이 조악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 차원의 도서관정책, 특히, 장서정책이 ‘양적 성장’을 강조하는 잘못된 기조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장서개발정책이 거시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면, 대학도서관들의 미약한 업무 역량은 장서의 품질보다는 외형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조직적인 원인이었다. 장서 업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직적인 역량 자체가 부족하다보니 체계적인 장서개발을 위한 전략이나 방법을 강구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도서관들은 지금도 중장 기적 관점의 ‘장서개발계획’은 차치하고 장서업무를 일관성 있게 수행하는데 필요한 ‘성문화된 지침서’조차 없이 관행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가령, 이번 연구에서 조사대상으로 삼은 10개의 국립대학도서관들의 경우에도 ‘장서개발지침’을 독립적인 업무편람으로 구비하고 있는 도서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학도서관들이 장서업무에 필요한 조직적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음은 그들이 장서업무를 위해 편성해 놓은 조직구조에서도 명료하게 드러난다. 대학도서관들의 조직구조를 살펴보면 그들이 장서업무의 초점을 자료의 주문과 입수를 위한 행정처리에 두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수서과 혹은 수서팀이라는 명칭의 조직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학도서관의 핵심 부서로 존재해 왔으며, 그 부서의 주요 업무가 장서의 구축을 위한 자료의 선정 (selection)이 아니라 자료의 입수(acquisition)에 편중되어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보다 명료해 진다.
2014년 현재, 대학도서관의 조직구조는 자료의 입수 못지않게 자료의 선정을 중시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전담 부서의 업무역량이 부족하다보니 장서의 개발업무 뿐만 아니라 관리업무 또한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장서관리의 핵심은 자료의 활용 및 보존 가치를 판단하여 ‘소장 가치를 상실한’ 자료는 폐기하고 ‘소장 가치가 감소한’ 자료는 보존서고 등으로 이전함으로써 전체 장서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유지하는데 있다. 장서의 품질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장서관리는 관리비용의 절감은 물론이고 도서관 공간의 효율적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내용적 가치에 따라 자료를 선별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의 부족은 여기 서도 걸림돌이 된다. ‘소장 가치를 상실한 자료’를 골라내고 ‘보존 가치가 큰 자료’를 가려내고 싶어도 자료의 내용에 따라 가치를 판단할 업무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외형적인 서가관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한 서가관리를 장서관리로 혼돈하는 사서들이 주변에 많은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도서관들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장서업무를 위한 조직적인 업무역량을 결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여러 차례 문제 제기를 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도서관들의 미약한 업무역량은 태생적이고 구조적이어서 현재의 인력 구조를 혁신할 수있는 새로운 인사정책이 강구되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 수십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주제전문사서의 양성을 강조하여 왔지만 이에 대한 대학도서관 현장의 반응은 아직까지 미온적이다. 도서관장서의 체계적인 개발과 합리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자료의 외형보다는 내용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그들 스스로 외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 식견이 부족한 비전문직 관장들과 관행의 변화를 꺼려하는 중견 관리자들이 그러한 인사혁신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의 관리자들이 조직적 업무역량을 강화하는데 얼마나 무심하였는지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열악한 업무환경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온 실무 사서들에게 어찌 장서의 외형적 성장에만 관심을 두고 품질관리엔 무심했느냐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겐 장서의 품질관리보다는 연초에 설정된 장서의 목표량을 채우는 것이 보다 시급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품에 물들고 폐지로 얼룩진 장서’를 만들어온 궁극 적인 책임은 결국 실무 사서에게로 돌아간다. 국가 차원의 부실한 도서관정책이나 대학도서 관들의 일천한 조직 역량은 도서관이용자들의 시선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부실한 장서를 바라보는 이용자들의 불만어린 시선에는 장서를 개발하고 관리해온 실무 사서의 존재만이 또렷할 뿐이다.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장서에서 누락한 장본인이 실무 사서들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장서가 초창기부터 ‘폐지더미’라는 오명을 받아야 했던 직접적인 책임 또한 장서업무를 담당했던 실무 사서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주어진 과업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비전문적인 경영진이나 비양심적인 관리자들에게 휘둘렸기 때문이다. 상식선에 생각해 보자! 실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서량을 채우기 위한 ‘차떼기’가 과연 가능했겠는가? 필자는 또한 장서업무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비합리적이고 비주체적인 업무행태는 오늘날까지도 실무 사서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바람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새로운 형태의 차떼기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복하여 강조할 필요조차 없지만 장서업무가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실무 사서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장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장서업무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는 실무 사서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동안 대학도서관에서 장서업무를 담당해온 사서들 중에 장서의 참된 의미와 장서업무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고 업무를 수행해온 사서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하였다. 그래서 부산대학도서관에서 장서업무를 담당하고 있거나 담당한 적이 있는 사서들에게 물어보았다. 장서란 무엇인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
“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
“도서관에서 개발하여 보관하고 있는 자료...”
그들의 답변은 이처럼 상식선에 머물러 있었다. 아쉽게도 장서의 의미와 목적을 ‘장서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답게’ 풀어준 사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개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서가 있어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어찌 부산대 학도서관에서만 벌어지겠는가? 장서의 의미와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치 단순한 행정업무를 처리하듯 기계적으로 장서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서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앞서 검증하였듯이 ‘거품’과 ‘폐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들이 개발해 놓은 장서가 그들의 업무행태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주체적이었는지를 그대로 대변하기 때문이다.
‘장서’라는 용어에는 ‘목적’과 ‘대상’ 그리고 ‘합리성’이 함축되어 있다. 특정 장서를 구축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설정한 목적에 따라 적합한 대상을 선정하는 합리적인 절차와 과정이 요구 된다. 이때 구축하고자 하는 장서가 개인을 위한 것이라면 합리성의 요건은 간결하다. 그러나 장서가 대학도서관처럼 특정 집단을 위해 공익적인 목적에서 구축되는 것이라면 합리성의 요건은 복합적이 된다. 후자의 경우 합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구축 주체보다는 이용 주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우리 나라 대학도서관에서는 장서의 개발과 관리 과정에서 이용자의 ‘이익’보다는 실무자의 ‘실적’을 우선시했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서량을 부풀리고자 폐지를 진열해온 그들의 업무행태에서 어찌 이용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합리성을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장서업무를 담당해온 실무 사서들의 업무행태가 얼마나 비합리적이었는지는 그들이 스스로 개발해 놓은 장서의 내용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구멍가게의 주인도 그들이 구입한 물품의 내역을 꿰고 있는 것이 상식일진데, 책의 전문가라는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그들 스스로 구입한 책들의 내역을 모르고 있었다. 앞서 면담하였던 부산대학도서관 사서들에게 다시 물었다. 학문 혹은 학과별 장서의 현황은? 학문별 세부 주제에 따른 장서의 현황은? 구체적으로 다시 물었다. ‘문헌정보학’ 관련 도서의 보유 현황은? ‘장서개발’에 관한 단행본의 보유 현황은? 너무도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누구에게서도 자신있는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가져온 통계는 서로 달랐으며, 도서관목록을 찾아보아도 관련 서가를 뒤져 보아도 결국 정확한 답변을 구할 수 없었다.
이처럼 장서업무를 담당해온 사서들조차 자신들이 구축해온 ‘장서의 내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서 필자는 장서에 대한 그들의 인식 자체가 매우 잘못 되어 있으며 장서업무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가 매우 소극적이고 주변적이며 기계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비록 업무수행에 필요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적극적이고 주도적이며 창의적인 자세로 장서업무에 임했다면, 자신들이 구축한 장서에 대한 최소한의 장악력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그러한 업무행태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구축한 장서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가며 얼마나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열의조차 그들에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개발해 놓고도 그 속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비합리적인 업무행태는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앞서 인용했던
17) 1955년에 제정되었다가 1991년 열번째 개정을 거쳐서 1996년 마침내 폐지된 「대학설치기준령」의 제12조 1항 3절과 4절의 내용이다.
18) 단지 참조사항으로 “대학원을 갖춘 연구중심대학에 속해 있는 대학도서관은 기왕의 단행본에 더해 전문학술서를 일정부분(40~60%) 추가로 확보하여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비록 미약하지만 장서의 질적 측면을 나름대로 고려하고자 했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19) 조사결과, 2014년 1월 현재 부산대학도서관에서는 자체 제작한 「업무매뉴얼」에 장서업무에 관한 세부 지침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외에 경북대학도서관은 “내부 지침서를 제작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수서 담당 사서의 설명이 있었으나 실제 지침서를 확보하지는 못하였다.
20) 불과 십여년 전까지도 국립대학도서관의 조직구조는 수서과, 정리과, 열람과의 3과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수서과는 선임 부서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장서업무와 함께 행정업무도 담당하고 있었다.
21) 가령, 수서과나 수서팀 대신에 정보개발과나 자료개발팀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대학도서관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명칭의 변경과 함께 부서의 업무에서 자료 선정업무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세기 넘게 누적되어온 대학도서관의 장서문제, 정확히 말하자면 실물장서의 품질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없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첫걸음만큼은 제대로 밟아야 한다. 앞서 논의하였듯이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장서의 품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하며, 그러한 장서를 구축해놓은 당사자들은 ‘장서의 내용’에 대해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장서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다. 대학도서관들이 구축해온 장서의 실체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품질 개선을 위한 방안을 나름대로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국의 모든 대학도서관 장서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 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비로소 대학도서관 장서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고 부족한 것은 채워갈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러한 믿음을 견지하면서 지금부터 장서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일과 개별 대학도서관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국가 차원에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일은 대학도서관들을 ‘장서량의 무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어온 ‘양적 성장 위주의 장서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대학도서관의 설립 초기에는 장서의 양적 성장을 위한 정책이 절실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폐해가 대학도서관의 존재 가치를 폄훼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양적 논리에 집착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서관정책의 입안에 있어 가장 중요한 논리적 기반은 이용자들의 정보요구와 이용행태로부터 나온다. 디지털이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이용자들은 수백만권의 쓸데없는 책보다는 소량일지라도 유용한 책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을 선호한다. 도서관정책의 기조를 질적 성장으로 바꿔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이다. 지금부터라도 국가 차원의 도서관발전계획이나 도서관기준 등에 질적 논리를 반영하기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발전계획이나 기준 등의 평가항목에 질적 요소만 강화하여도 장서의 품질 제고를 위한 대학 도서관들의 자발적인 노력은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가 제정하고자 하는 가칭 ‘대학도서관진흥법’에 장서의 질적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안처럼 양적 성장 논리를 반영하는데 그친다면 대학도서관의 실질적인 ‘진흥’을 위한 법적 기준으로서의 기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한국도서관협회가 2013년에 개정한 「한국도서관 기준」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를 담고 있다. 이전에 비해 장서를 비롯한 도서관의 핵심 구성요소를 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내용이 첨가되기는 하였지만 우리 도서관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 여러 항목에 걸쳐 포함되어 있다.
이에 더해서 교육부가 주관하고 KERIS가 시행하고 있는 ‘대학도서관 평가’ 또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양적 지표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평가항목을 질적으로 보강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현재 평가지표 중에서 장서 관련 항목은 ‘자료구입비’에 관련된 3개의 정량 지표와 이용자만족도를 측정하기 위한 15개의 질문 중에 포함된 1개가 전부이다.
도서관 평가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앞서 언급하였던 ‘대학도서관 장서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평가사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자. 도서관학자 김정근의 표현을 다시 빌리자면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장서는 초창기부터 ‘쓰레기더미’였다.
국가 차원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가 나서서 ‘불필요한 자료의 폐기를 유도하는 과감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하며, 그 정책의 출발점은 ‘대학도서관 장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평가사업’이어야 한다. 그 평가사업을 통해 대학도서관들이 구축해 놓은 장서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날 때, 그래서 장서에 잔뜩 끼어있는 거품을 씻어내고 쓰레기들을 쓸어내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장서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창고에서 보물창고로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과감한 폐기정책이 실현된다면 현재의 장서 규모는 아마도 1/2, 1/3, 심지어 1/4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장서의 품질문제 뿐만 아니라 대학도서관 관리자들의 두통거리인 공간의 부족 문제, 장비의 노화 문제, 인력의 보완 문제 등이 더불어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공간과 장비 그리고 인력의 여유는 도서관이용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서비스의 창출과 공간의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학도서관 장서의 질적 성장을 위해 필자가 제안하는 마지막 국가 정책은 정보자원의 공유에 관한 것이다. 국가 차원의 장서공유정책은 대학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자료 이용 만족도 증진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자료 보존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도서관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도서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장서의 공동 개발과 관리를 추진하여 왔으며 지금은 장서업무의 보편적 행태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도서관들은 장서의 공유를 통한 도서관경영의 효율화를 추진하기보다는 장서의 독자적 확충을 통해 다른 대학도서관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데 주력해 왔다. 간혹 정체 성이 유사하거나 지역적으로 인접한 대학도서관들이 모여 장서의 공동 활용을 모색하기도 하였지만 실질적인 공유 효과를 거둔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런 가운데 국가기관이 주도하여 펼친 지식자원 공유사업 중에서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교육부가 지원하고 KERIS가 주관해온 dCollection 사업이다.
그러한 장서공유방안은 어떠한 것이 있을지 생각해 보자. 가령, 교육부는 매년 대학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적지 않은 예산을 대학도서관들의 자료구입비로 지원하고 있다. 이 예산을 모든 대학도서관을 대상으로 하여 일률적으로 집행하기보다(물론 일련의 평가과정을 거쳐 평가 결과에 따른 차등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일부라도 대학도서관 장서의 특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외국학술지지원센터처럼 다수의 전문학술서 적(특히 외국서적)지원센터를 대학도서관들에 설치하여 운영함으로써 전문학술서적의 개발과 관리를 공유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만으로 대학도서관들의 장서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도서관들의 개혁 의지와 실천 없이는 장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장서의 품질을 지금처럼 조악한 상태로 만들어온 직접적인 책임은 장서업무를 담당해온 대학도서관 사람들에게 있다. 특히 ‘장서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조차 없이 ‘비합리적’이고 ‘비주체적’으로 장서업무를 수행해온 실무 사서가 장서문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서업무에 임하는 실무 사서의 의식과 행태가 근본적으로 혁신되지 않는 한 조악한 품질의 장서를 고품질의 장서로 개조하는 작업은 원천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먼저 의식적 측면에서 실무 사서에게 절실한 것은 ‘장서’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이다. 장서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여야 하며, 그러한 이해의 바탕에서 “전문가로서의 사서의 힘은 장서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되새겨야 한다. 앞서도 강조하였지만, 장서에 대한 지식, 특히 장서의 내용에 대한 장악력은 사서직을 전문직으로 만들어온 뿌리이다. 실무 사서의 두뇌에 쌓여있는 ‘장서에 대한 지식’은 관련 지식의 부족이나 왜곡으로 인해 다양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 도서관이용자를 도와주는 처방전의 뿌리가 된다. 너무도 중요한 이 사실을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에서 장서업무에 종사해온 사서들이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기억하고 있었다면, 자신들의 직업을 전문직으로 만들어온 힘의 원천을 지금처럼 쓰레기더미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장서문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주체적인’ 업무행태의 근본적인 혁신이다. 장서의 개발과 관리 과정에서 이용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합리성의 추구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합리성의 제고는 이용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요구조사를 체계화하고 그 결과를 업무에 수시로 반영하고자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료의 선정 과정에서 교수 추천도서나 학생 희망도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학도서관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일견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용자의 요구에 무심한 것도 문제지만 이용자의 요구를 과도하게 수용하려는 행태 또한 장서의 균형 발전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자료의 선정 과정에서 부각되는 실무 사서들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업무태도 또한 개선의 대상이다. 그러한 비주체적인 업무행태는 지적 역량, 특히 주제 전문 지식과 외국어 해독력이 부족한데서 비롯된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자료의 선정 과정에서 요구되는 지적 역량은 자료의 외형에 대한 해박함만으로는 부족하며 자료의 내용에 대한 장악력이 따를 때 비로소 온전해 진다. 그러한 지적 역량이 부족하기에 자료의 선정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게 되고 교수의 추천도서리스트나 출판사의 신규자료목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업무행태가 고착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적 역량의 강화는 대학도서관에서 자료 선정업무를 담당하는 사서에게 있어서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 사항이다. 특히 모기관인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학문분야에 대한 주제 지식과 외국어자료의 해독에 필요한 언어능력은 장서업무에서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대학도서관 사서로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지적 역량인 것이다.
한편, 실무 사서 차원에서 개인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장서문제를 모두 풀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도서관의 조직 차원에서 업무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될 때 비로소 장서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자면, 장서업무와 관련된 전담 조직을 개편하고, 담당 사서에 대한 인사제도를 개선하고, 나아가 관행에 의존하던 업무수행 방식을 전면적으로 혁신하고자 하는 조직 차원의 노력이 없다면 장서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진다.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하였지만, 장서문제를 풀어가려면 장서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업무의 성격에 따라 재편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장서개발 업무를 구성하는 상이한 성격의 두 개의 업무, 즉, 자료의 선정업무와 자료의 입수업무를 온전히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가 주제전문사서의 지적 역량을 필요로 하는 도서관 고유의 업무인데 비해 후자는 능숙한 행정처리를 필요로 하는 보편적 행정 업무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제안대로 조직이 개편되어도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개편된 조직의 성패는 ‘역량을 갖춘 전담 인력’의 확보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서관선진국에서처럼 전문 역량을 갖춘 사서를 처음부터 임용할 수 있거나 보직의 잦은 이동 없이 전문성을 키워갈 수 있는 인사제도의 혁신이 시급히 따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근자에 들어서 신임 사서를 임용할 때 주제전문 지식이나 외국어 능력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대학도서관계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지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고도 보직의 잦은 이동으로 그들이 업무의 전문성을 키워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보직순환제와 같은 사서의 전문성 제고에 역행하는 인사 관행을 혁신하려면 도서관 관리자 들의 의식 전환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도서관 관리자들은 ‘업무의 세분화와 전문화’는 시대적 추세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전문직종인 의료계와 법조계에서조차 업무의 세분화와 전문화가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도서관 관리자들은 “사서들이 도서관의 모든 업무를 속속들이 알아야 조직 전체의 역량이 강화된다.”는 관행적 논리에 집착하기 보다는 “하나의 업무라도 제대로 알아야 개인의 역량은 물론이고 조직 전체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는 시대적 논리를 수용하여야 한다. 관리자들이 앞장서 시대적 논리를 수용하고 기존의 인사 관행을 혁신하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장서업무를 담당하는 실무 사서의 역량은 물론이고 조직의 업무역량이 동시에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조직적 역량의 강화를 위해 요구되는 마지막 과제는 기존의 업무수행 방식을 혁신하는 것이다. 장서는 구매하여 저장해 놓는 물품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개발하여 합리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성장하는 유기체’이다. 따라서 장서의 현황과 실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초하여 작성된 ‘성장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성장계획(즉, 발전계획)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장서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전계획이 거시적 관점의 길잡이라면 성문화된 업무지침서는 실무적 차원에서 매우 긴요한 길잡이다. 장서업무를 표준화된 절차와 과정에 따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전담 인력의 교체에 따른 업무의 일관성 훼손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업무편람 형태의 지침서는 중요하다. 대학도서관 같은 고급 지식을 다루는 조직에서 지식자원의 개발과 관리 업무를 업무지침서조차 없이 ‘암묵적 관행’에 따라 수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자가당착이다. 그렇듯 어설픈 업무행태로부터 이제 그만 벗어나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학도서관은 최고의 지식기관이요, 대학도 서관 장서는 최고의 지식자원을 선별해서 만들어지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22) 가령, 자료의 폐기와 관련하여 “대학도서관은 연간 7% 이내에서 자료를 폐기할 수 있으며... ”라는 내용보다는 차라리 미국의 「대학도서관기준」에서처럼 “도서관은 적절한 폐기처분을 통하여 장서의 최신성과 유용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적절하지 않은가?
23) 구체적으로, “도서관은 교수․학습에 필요한 인쇄자료를 충분히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24) 가령, 국공립대학도서관협의회, 사립대학도서관협의회, 부산경남대학도서관협의회 등이 주축이 되어 회원도서관들 사이의 학술저널 등을 공동 활용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기도 하였다.
25) 여기서의 논의는 실물장서로 국한한다. 따라서 전자자료의 공동 활용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 특히, KERIS가 주도하는 핵심 해외 DB의 국가라이센스 프로그램 등에 대한 논의는 자제한다.
26) KERIS가 주도하고 있는 외국학술지지원센터(FRIC) 사업은 운영 방식 및 사업의 성과 등에 있어 여러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특히, 투자액에 비해 이용률이 매우 저조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대학도서관들 사이에 실물(인쇄) 자료의 분담수서를 통한 ‘학술자원 공유’를 실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더불어 대학도서관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27) 가령, 이용자 참여제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장서의 편중 개발은 물론이고 사서의 역량 개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도서관선진국에서는 다각도로 제기되어 왔다.
28) 그러한 차이 때문에 도서관선진국에서는 선정업무는 사서(librarian)가 전담하고 입수업무는 행정직(administrative staff) 혹은 사서보(library assistant)가 주로 담당한다. 입수업무를 위해서 사서의 전문적인 지적 역량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장서의 품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글이나 강연을 통해 반복하여 왔지만, 필자는 막상 우리 도서관장서의 실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도서 관에 필요한 책이 없다”는 이용자들의 볼멘소리를 대변하는데 나름대로 적극적이긴 하였지 만, 필자는 우리 도서관장서의 부실함이 어떠한 지경에 이르러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진 못하고 있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도서관에 대한 연구는 하였지만 도서관을 찾아 서가를 직접 둘러보는 횟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이 글의 계기가 된 우리 도서관장서의 추악한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2012년 초, 그러니까 필자가 부산대학교 도서관장의 업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버릇처럼 관내를 돌아다니다가 새롭게 조성된 서가 앞에 멈추어 섰다. ‘취업지원자료’ 라는 팻말을 달아놓은 열 개 남짓한 서가에는 새로 구입한 책들이 가득하였다. 서가의 책들을 찬찬히 훑어보던 필자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정원관리사입문, 소방기능사수험서 등 대학도서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능사 자격증 관련 자료들이 서가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자격증 수험서는 종류만 십여 종에 이르렀으며 구입해 놓은 복본 또한 많아서 서가 하나를 거의 채우고 있었다. 그 장면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그러한 충격으로부터 시작된 부산대학도서관 장서에 대한 탐구여행은 필자에게 엄청난 실망을 넘어서 분노까지 안겨 주었다. 장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부산대학도 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품질은 열악하였다. 부산대학도서관이 자랑해온 이백만권이 넘는 장서는 천연색 거품으로 포장된 쓰레기더미와 다르지 않았다. 내용적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물리적인 상태조차 온전하지 않은 자료가 도서관 구석구석에 쌓여있었다. 수십 년 전에 출판된 보급형 교양서들, 방대한 복본의 각종 교재와 수험서들, 형체조차 희미해진 인쇄잡지와 저널들, 그리고 낱장으로 해체된 학위논문의 뭉치까지 그야말로 재활용품 업자가 보면 군침을 흘릴만한 폐지 묶음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명색이 도서관장이면서도 그러한 부실덩어리를 바로잡기에는 역량도 시간도 부족 하였다. 장서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통해 보유할 것과 버릴 것을 명확히 가려내어 과감히 실행에 옮겼어야 했는데 책상물림에 불과한 필자의 앞에는 넘어서기 힘든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도 장서의 규모를 대학의 주요한 홍보자료로 삼아온 대학의 경영진을 설득하는 작업부터 만만하지 않았으며, 장서의 양적 성장을 자신들의 주요 업적으로 여겨온 도서관의 중견 관리자들을 동참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특히 장서량이 대학도서관 평가의 주요 지표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부산대학도서관만이 홀로 장서의 거품 제거에 나서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다. 게다가 도서관장의 임기는 장서문제를 풀어가기에 너무도 짧았다.
이 연구는 미결 과제로 남겨두어야 했던 부산대학도서관의 장서문제에 대한 필자의 회한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장서의 품질문제는 부산대학도서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도 서관들이 안고 있는 보편적이며 구조적인 문제라는 판단에서 장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논리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술적 관점에서 장서문제에 접근 함으로써 장서의 품질 혁신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 보자는 결심을 하였다. 이 글은 그러한 결심이 낳은 첫 번째 결과물이다. 여러모로 미흡하지만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장서의 속내를 드러내보이고자 하였으며, 장서의 품질이 조악해진 원인을 찾고자 하였으며, 장서의 품질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대학도서관 정책을 주관하는 부서의 책임자들, 대학도서관을 운영하는 관리자들, 그리고 대학도서관에서 장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에게 거듭 당부한다. 대학도서관 장서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의미를 충족할만한 수준으로 장서의 품질을 혁신하는 작업에 함께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지금 당장 도서관 서가로 달려가 자신들이 구축해온 장서의 품질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을 강력히 권고 한다.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허물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샘솟을 것이기 때문이다.
1.
[journal]
곽, 동철, 윤, 정옥.
2011
2.
[journal]
김, 미혜, 리, 상용.
2011
3.
[book]
김, 정근.
1995
4.
[journal]
윤, 희윤.
2011
5.
[journal]
윤, 희윤, 장, 덕현.
2010
6.
[journal]
이, 제환.
2010
7.
[journal]
이, 제환.
2013
8.
[journal]
장, 덕현.
2013
9.
[book]
Fonfa, R..
1998
“From Faculty to Librarian Material Selection: an Element in the Professionalization of Librarianship.” In T. Mech and G. McCarbe eds.,
10.
[journal]
Sandler, M..
1984
“Organizing Effective Faculty Participation in Collection Development.”
11.
[journal]
Chang, Durk-Hyun.
2013
“Assessing a University Library Collection: with a Special Reference to Political Science Collection in A University Library.”
12.
[journal]
Kwack, Dong-Chul, Yoon, Cheong-Ok.
2011
“A Research on the Development of Evaluation Indicators for Academic Libraries.”
13.
[book]
Kim, Jung-Kun.
1995
14.
[journal]
Kim, Mi-Hye, Lee, Sang-Yong.
2011
“A Study on the Improvement of Weeding in Academic Library Collection.”
15.
[journal]
Lee, Jae-Whoan.
2012
“Progress and Problems in Korean Academic Library Policies.”
16.
[journal]
Lee, Jae-Whoan.
2013
“Problems in and Solutions for Developing Digital Information Resource: the Case of Korean National University Libraries.”
17.
[journal]
Yoon, Hee-Yoon.
2011
“Trend Analysis and Revision of the University Library Standard in Korea.”
18.
[journal]
Yoon, Hee-Yoon, Chang, Durk-Hyun.
2010
“A Study on the Formulation of the Collection Development Policy for a National 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