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Korean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Society 2023 KCI Impact Factor :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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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2466-2542
- https://journal.kci.go.kr/liss
pISSN : 2466-2542
The Management Knowledge Information Resources of Student Independent Movement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1전남대학교
우리의 독립운동은 역사적 동인(動因)과 시공간에서 발생하였다 이것은 19세기 말 동학 운동, 1919년 3•1운동, 1926년 6•10 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1945년 광복 등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확립과 발전으로 확대(민족과 국가의 자존과 자주)되었다.
학생독립운동은 그 형성과 발전에서 다수의 지식정보자원이 발생하였다. 학생독립운동 관련 자료는 독립운동사의 가치 있는 지식정보자원으로서 민족과 국가의 자산이다. 지식정보자 원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그리고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식정보자원의 관리는 지식정보의 창출, 축적, 유통, 공유•활용 등으로 구성되는 지적정보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체계화하고 관리하는 모든 활동이다
학생독립운동의 역사는 1920년대부터 형성되어왔다. 1920년대는 3·1운동이후 근대적 교육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학생 수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학생은 지적 욕구의 증대, 사회적 상승에 대한 기대감에 비해,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의 제약으로 현실모순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다. 이와 같은 일제의 민족 차별과 식미지 교육현실은 자연히 이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학생독립운동에서 나타난 자료를 지식정보자원과 아카이브 가치측면에서 살펴보고 학생독립운동의 지식정보자원 형성과 발전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를 조사•분석하여 효율적인 자료수집, 해제, DB구축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의 내용과 방법은 국내외 한인의 학생독립운동 측면에서 문헌과 현지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조사기간은 2009.8.1-2014.12.31일까지 이루어졌으며, 조사국가와 지역은 한국, 일본, 중국 등이다. 조사대상기관은 도서관, 독립기념관, 기록원, 언론사, 각급 학교 등으로 실시되었다.
일반적으로 독립운동은 식민지배 기간 이후에 식민지화된 국가에 의해 정치적 독립이 성취 되는 행위이다. 20세기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은 거의 모든 식민지에서 성장하였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부분 제3세계에서 식민지적 지배를 종식시키는 데 일차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학생은 역사적 전환기마다 능동적 주체자이였으며 상아탑의 숭고한 교육과 학문의 이념을 행동으로 나타냈다. 특히 1920년대는 학생중심의 독립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10만세운동(1926)과 광주학생독립운동(1929)이 대표적이다.
3•1운동 이후 학생들은 교육현장에서 식민지 현실을 자각하고 스스로 민족운동의 주체로서 이의 타개책을 모색해 갔다. 즉 민족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숙한 시민민족주의의 구성체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1920년대에 조직하여 활동한 학생단체의 수는 전체 392개로 나타났다
특히 운동단체는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고 활동목표가 항일투쟁에 있었다. 이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비밀지하조직으로 결성하여 학생의 의식수준을 급성장시켰다. 대표적으로 경성학생연맹(京城學生聯盟)과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가 있다 이들의 창립강령과 주요 활동내용은 다음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서울지역 각 학교에 독서회 결성 추진과 지원을 하기로 하고 중앙고 보, 배재고보, 휘문고보, 보성전문학교 등에 독서회를 성립하였다
다음은 각 지방의 독서회 조직과 활동내역이다.
ㆍ1927. 부산제2상업학교 독서회 : 식민지 현실의 타개책을 논의
ㆍ1928. 북청농업학교독서회: 독서력의 양성, 학식 교환, 참고서 이용 등(학교 당국 허가 받음), 전교 학생대회 개최, 전교생 약 70명을 선출하여 독서토론 진행, 학교교실을 이용 하여 공개적으로 사회과학을 학습
ㆍ1928. 이리농림학교 마르크스 사회과학연구회 조직
ㆍ1929. 강릉공립농업학교 28명의 학생들이 독서회조직, 사회주의 서적 회람강독 광주농업독서회, 광주고보독서회, 광주사범독서회 등
독서회는 개별학교 단위로 조직되기도 하였으나 지역 중등학교 학생들의 연합조직으로 결성되기도 했다. 대구의 신우동맹, 광주의 성진회, 진주의 동무사 등이다. 대도시로서 고보, 농교, 사범학교 등 각종 중등학교가 설립된 지역은 학생들의 유대관계로 인해 연합조직이 발달 했다. 이들은 맹휴나 시위운동도 연합하여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맹휴학(同盟休學)은 학교에 대한 불만과 식민통치에 대한 거부와 독립을 희구하는 민족적 염원의 발로였다. 동맹휴학의 지속적인 항쟁은 항일독립정신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귀결되었다. 동맹휴학횟수는 400여건으로 나타났다.
다음
언론은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가는 다음
학생들은 민족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자각하여 깊이 고민하고 이를 위한 행동으로 그 타개 책을 모색했으며 다양한 관심사를 가졌다
광주지역학생들은 1926년 ‘醒進會’라는 비밀결사와 1929년 ‘讀書會中央本部’, ‘學校讀書 會’를 조직하여 학생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였다. 다음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났던 한일학생간의 집단충돌사건이 발단이 되어 광주학생뿐 아니라 전국 194개교 5만4천명의 남녀학도들이 시위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외치고 총궐기했던 민족해방운동으로서 일제의 민족차별과 식민지 노예 교육에 쌓이고 쌓인 민족적 울분을 전국적 규모로 폭발시킨 3•1운동 이후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제1-2차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의 원인과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1930년 1월 학생시위 이후 서울, 수원, 인천, 개성, 부산, 김해, 대구, 전주, 함흥, 원산, 경흥, 평양, 충주, 공주, 원주, 목포, 여수 등지의 국내외 학교에서 동조시위가 잇따랐으며, 국내외 항일독립운동단체의 결집을 촉진했다
지식정보자원은 어떤 매개체를 사용하여 기록한 지식정보와 자원이다. 광의적으로는 문자와 기호 등에 의해서 전달되는 모든 기록정보를 말하며 협의적으로는 기록정보 가운데에서도 각 학문분야에서의 학술적 가치가 있는 기록정보를 말한다. 지식정보자원은 생산과 축적(수집과 조직)을 통해서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확충하여 왔다. 이러한 연속적인 지식정보자원의 전달과 이용, 새로운 지식정보자원의 창조 과정을 통해서 발전적 지식정보순환이 이루어진다. 또한 지식정보자원관리는 지식정보와 그와 관련된 자원을 계획, 조직, 분배, 이용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이다
또한 지식정보자원의 구성은 다양한 이론적 접근, 학자와 현장의 전문가까지 접근방법과 개념설정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즉 지식정보자원은 지식정보의 구조, 지식정보의 행동, 지식정보의 연결, 지식정보의 내력, 지식정보의 취급 등이 하나의 요소로 구성될 때 지식정보자 원이 창조된다
아카이브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존재 또는 행위와 관련하여 공적•사적으로 생산•입수된 기록으로 지속적 가치가 있으며 생산자의 기능이나 책임을 입증해 주는 데 있어 의미를 지닌 자료이다. 이것은 통상 출처와 원질서를 존중하고, 집합적 통제에 입각하여 유지된다
학생독립운동 지식정보자원은 운동이전의 학습과 운동 중 그리고 운동 후 생성되고 축적• 이용되고 있는 기록된 지식정보자원으로 도서, 신문, 잡지, 유인물 등의 도서매체와 영화, 필름, 레코드나 테이프 등의 비도서 매체, 웹DB 등의 디지털자료로 이루어진다. 또한 학생독립 운동은 유•무형의 지식정보자원으로 구성된다. 유형의 지식정보자원은 그림, 책, 신문, 지도, 연구보고서와 논문, 학술지, 마이크로필름, CD-ROM, DVD, 컴퓨터파일, 웹자원 등이며, 무형의 지식정보자원은 음악(노래, 소리와 춤), 연극, 영화 등이다. 학생독립운동 아카이브는 이들의 지식정보자원을 역사적•정보적•문화적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다
신문은 각양각색의 기사거리에 대한 정보자원을 제공하는 보도의 기능
1) “평소 한일합방에 불만을 품고 조선민족으로서 일본제국주의의 기반을 이탈하려는 희망과 한편 조선의 현 사회 제도의 모순과 결함이 있다라고 단정하고 이를 타파하여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공산제의 신사회건설을 열망하고 있었으며 이 공산제도의 실현이 성취될 때에는 자연히 조선의 독립도 달성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 “용감히 싸워라! 학생대중이여! 우리들의 슬로건 아래 궐기하라! 우리들의 승리는 오직 우리들의 단결과 희생적 투쟁에 있다!” 가) 우리 투쟁 희생자를 우리들의 힘으로 탈환하자! 나) 검거자를 즉각 석방하라! 다) 교내 경찰권 침입을 절대 방지하라! 라) 수업료와 교유회비를 철폐하라! 마) 교유회 자치권을 획득하자! 바)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획득하자! 사) 직원회의에 학생대표를 참석시켜라! 아)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를 확립하라! 자) 식민지 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라! 차) 사회과학연구의 자유를 획득하자! 카) 전국 학생대표자 대회를 개최하라!
3) 뉴스보도기능(어떤 사실을 알리기 위한 전달), 해설보도기능(해설을 위한 보도), 광고보도기능(독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보도), 오락보도기능(대중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보도)
학생독립운동은 민족의 독립운동이라는 대명제아래 공통적으로 운동의 준비와 운동의 과정 중에 국내외 각 지역에서 서로간의 동병상련의 공동체를 수립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소식을 전하고, 결집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지식정보자원을 생산하고 발전시켜왔다.
국내에서는 초중등학교, 민족학교와 민족사범학교, 조선YMCA, 경성학생연맹, 조선학생과 학연구회, 신간회, 성진회, 독서회중앙본부, 독서회 등의 민족교육기관과 단체(사회, 학생 등), 언론기관 등,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민족교육기관과 언론기관 등,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초창기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시키다가 폐교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조선족을 중심으로 서당, 소학교, 중학교 등이 민족교육기관, 언론기관 등이 설립• 조직되어 운영•활동하였다. 이들 지역에서는 공히 교과서 예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예,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초중등 학교 및 꼴호즈 청년학교용 교과서), 신문, 잡지, 소식지 등이 발행되어 민족과 조선인사회, 고려인사회를 결속시킨 정치•사회•문화적 원동력이었다.
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지식정보자원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분포되고 있다.
- 텍스트와 기사위주 생산: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 방송국 등 - 음향과 영상기록매체: 라디오, TV 등
- 문화예술공연: 극장, 필름(시네마, 영화관), 가무단(歌笳團) 등
- 역사기록문헌: 도서관, 국가기록원, 당안관(檔案館), 문서관(文書館), 기록보존소
이 글에서는 신문기사, 재판기록자료, 외무성 아세아국 제2과에서 발행한 ‘소화5년(1930) 재외 조선인의 「3•1」운동 개황에 관한 건(‘昭和五年在外朝鮮人 「3•1」運動槪況ニ關する件 (1930.3.22))’, 일제강점기 학생독립운동 연구현황, 全羅南道光州に於ける內鮮人生徒鬪爭 事件の眞相並之が鮮內諸學校に及ぼしたる影響(朝鮮總督府學務局,昭和五年二月), 기타 자료 위주로 조사하여 분석하였다.
모든 신문은 각양각색의 기사를 통해 정보자원을 제공하는 보도의 기능을 갖는다. 일제강 점기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한국지역과 일본지역에서 보도되고 생산된 기사를 찾아보기 위해 사용된 기사색인 검색 데이터베이스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미디어가온(한국언론재단) 조선일보아카이브, 동아일보아카이브, 戦前日本在住朝鮮人関係新聞記事検 索 등을 활용하여 구성되었다.
학생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관심언어로서 당시의 학생운동의 구호와 행동, 투옥과 고문, 재판과정에서 나타난 정보자원을 국내신문과 일본신문을 중심으로 조사하여 이를 주제별로, 신문사별로 색인하였다. 각 시대별로 반복적으로 자주 거론되는 신문기사의 색인 어로서 격문, 고학생,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사건), 남경군관학교, 독서회, 동맹휴학(맹휴), 학생과학연구, 학생회 등의 용어는 당시 신문들의 기사별로 수록된 주요 용어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문으로 작성된 신문은 동아일보, 매일신보, 시대일보, 신한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외일보 등 8종을 선정했다. 일문신문은 중앙과 지방지를 포함해 총 27종의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관련기사가 수록된 京都日出, 京城日報, 九州日報, 大 阪每日, 大阪朝日, 名古屋新聞, 萬朝報, 門司新報, 福岡日日, 北國, 新愛知, 神戶新聞, 神戶又 新日報, 吳日日, 芸備日日, 中國, 参陽新報와 사상계열 신문인 無産者新聞, 社會運動通信 自由 連合新聞 등의 기사를 발췌했다. 그 밖의 기사 및 색인어 선정, 표목의 배열, 기사내용의 기술 규칙 등은 일러두기로 표시했다. 이 자료는 격문, 고학생, 광주학생운동, 남경군관학교, 독서회, 동맹휴학, 중일학생운동, 학생과학연구, 학생회, 일본지역의 학생운동의 주제에 따라 구성 되었다.
다음
학생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격문, 고학생, 광주학생운동, 남경군관학교, 독서회, 동맹휴학, 중•일학생운동, 학생과학연구에 대한 기사색인 결과는 다음
학생독립운동 관련 기사는 전체 12,539건으로 나타났다. 그 중 동맹휴학이 4,62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학생회 2,849건, 광주학생독립운동 1,567건, 고학생 894건, 격문 986건, 독서회 949건, 중일학생운동 343건, 학생과학연구 169건, 남경군관학교 161건 순으로 기사화되었다.
신문사별로는 학생독립운동보도에 대해 동아일보가 4,718건으로 가장 많이 기사화 했으며, 다음으로는 조선일보 4,601건, 중외일보 1,196건, 매일신보 821건, 신한민보 488건, 시대일보 299건, 조선중앙 292건, 중앙일보 124건 순으로 나타났다.
각 주제별, 신문별 기사내용을 보면 다음
일본 내 학생운동을 조사한 결과 그 당시(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의 중앙과 지방에서 생산되어진 전체 27종의 신문기사를 검색하여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기사가 수록된 20종의 신문의 기사를 발췌하여 기술하였다. 여기에서는 주제어로 구분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학생독립운동 관련 기사(163건)를 나타내었다. 京都日出(13건), 京城日報(15건), 九州日報(4건), 大阪每日(20건), 大阪朝日(29건), 名古屋新聞(1건), 萬朝報(13건), 門司新報(8건), 福岡日日(14건), 北國(6건), 新愛知(1건), 神戶新聞(8건), 神戶又新日報(16건), 吳日日(2건), 芸備日日(2건), 中國(4건), 参陽新報(1건)와 사상계열 신문인 無産者新聞(1건), 社會運 動通信(4건), 自由連合新聞(1건)
학생독립운동과 관련하여 많은 재판기록자료가 아카이브로 존재한다. 국가기록원, 일제강점기시대의 각 언론사, 정부보훈처, 대법원과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각급 학교도서관, 광복회 및 기념사업회 등. 재판자료에는 국내, 일본에서 체포되어 국내의 재판소로 송치된 사례와 국내나 상해, 만주에서 체포되어 일본으로 송치되어 형무소에 유치되는 사례들이 존재 한다. 재판기록자료를 보면 독립운동가들의 사찰→검거→송국→구치소 수감→송국→예심결 정에 의한 예심본심→기소여부결정→구형→선고→항고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과정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지회가 편찬한 ‘光州學生獨立運動史’에는
이러한 재판기록을 정보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는 광주학생사건을 초기에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全羅南道光州に於ける內韓人生徒鬪爭事件の真相竝えが鮮內諸子校に及ぼーたる影響’ 이다. 이 극비문서에 대한 정보적 가치는 다음
이 자료는 공립광주중학교 생도와 광주공립보통학교 생도간 충돌, 광주공립보통학교생도의 시위운동, 사건 발생 직후 도 및 학교당국의 조치, 사건발생 직후 경찰당국의 조치, 광주공립보통학교 생도 제2차 시위운동, 재 광주 타지의 공립중등학교생도의 동요, 본 사건에 대한 본부의 조사와 조치, 전남지역 학생충돌사건의 수습과 해결, 본 사건의 이면책동(裏面策動), 광주사건이 조선 내 여러 학교에 미친 영향, 생도아동 불온행동 도별일람표, 사건발생월일 및 사건개요가 수록되었다. 또한 광주사건이 전 조선 내 학교에 미친 영향은 다음
이 책의 작성경위는 일본 외무성 아세아국이 상해총영사관, 간도총영사관, 호놀룰루 총영사관의 등에 파견되어 있는 영사관 관료 및 영사관 경찰, 밀정을 동원하여 광주학생사건 직후부터 광주학생사건이 소강국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에까지 재외조선인 단체와 지나인들의 정치조직들의 주요 반응과 동향을 세세하게 기록해서 정리했다는 점이다. 이는 외무성 아세아국 관헌들의 광주학생사건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단면이다. 이 자료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자료관리 여건이 불충분하여 누락되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단체의 동향과 여론보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1차 사료적 의미를 가진다. 외무성보고서는 상해, 무한, 청도, 봉천, 해림, 길림, 하얼빈, 봉천 등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인운동자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대응전략을 추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같은 배경이 해당 자료를 작성하게 된 중요한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관헌들은 광주학생운동을 광주학생사건, 전선학생소요사태(全鮮學生騷擾事態), 조선학생운동(朝鮮學生運動) 등으로 사용했다. 사태가 확대되자 보도통제를 가했지만 이는 의혹을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재외조선의 사회에 광주학생사건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졌고, 상해와 북평 지역 중국신문은 광주학생운동을 제2의 5•4운동, 혹은 제2의 3•1운동으로 불렀다.
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해방직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운동사로서의 체계적 연구와 자료해제 없이 방치되었다. 남북한 모두 광주학생운동을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사로 간주해 왔지만 역사적 평가는 종종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양동주의 항일학생사(1957)를 시작으로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기록이 시작되었다면 북한의 경우에는 평양사회과학원 연구소를 통해 김상룡(1957), 리종현(1959) 등에 의해 광주학생운동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북한지역에서의 광주학생운동 참여 학교 현황에 대해 실증적 연구조사를 진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1969년 3•1운동 50주년을 맞이하면서 김성식(1969, 1974) 등에 의해 학생독립운동이 조명되고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주도로
위에서 제시된 자료 외에 출판된 것으로 수많은 단행본, 독립운동단체와 개인간의 주고받은 서간(書簡), 학교자료(교지, 동창회보 등), 개인의 기록(사진, 증언, 회고록, 묘비, 유족회 등), 단체자료(친목단체, 독서클럽, 비밀결사 등), 비도서자료(비디오테이프, 영화 CD,동영상 등이 귀중한 아카이브이다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지식정보자원을 보존하고 있는 기관은 대표적으로 기록보존소(국가기록원, 중국의 당안관, 일본의 공문서관, 러시아의 국가문서보관소와 기록관리센터 등)와 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각급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 일본의 국회도서관, 중국의 연변대학교도서관, 러시아국립도서관(전 레닌그라드도서관)) 등이다. 이러한 학생독립운 동과 관련된 지식정보자원을 아카이빙 하는 과정은 다음
필자가 수행한 자료 수집을 위한 조사활동은 문헌조사, 조사대상 협력망 형성, 자료수집, 자료발굴로 이루어졌다
수집대상을 크게 기록자료, 학교자료, 개인자료, 단체자료, 언론자료로 나눈다. 각 대상자료의 조사와 세부조사 단위는 다음과 같다
원자료의 수집은 역사기록자 및 전문가 집단 자료수집 병행(同友會誌, 學校誌, 地域誌 등), 독립운동관계 전문가 연계(延邊大學 등), 사진 및 기록자료, 작가의 유품작품(졸업사진, 졸업장, 동창회부, 日記, 성적표, 手記, 書畵) 등을 토대로, 자료의 가공 및 발굴 자료에 대한 해제와 정리를 한 후, 원문과 콘텐츠를 가공하여 검색 및 정보서비스가 가능한 DB를 설계ㆍ구축 한다
자료수집에서 해제, DB구축과 제공은 다음
자료해제와 DB구축과정에서 사용되는 메타데이터의 서지정보입력 포맷과 항목은 다음과 같다.
- 단행본 : 자료유형(분류), 표제사항, 발행사항, 형태사항, 기본내용, 주기사항(목차)
- 학술지•정기간행물 : 자료유형, 논문명, 저자, 발행처, 권/호, 연도, 페이지, 목차/초록
- 학위논문 : 자료유형, 논문명, 저자, 석/박사, 대학원명/전공명, 수여연도, 목차/초록
- 개인자료 : 자료유형, 성명, 성별, 생몰년, 본적, 출생/주소지, 활동지역, 학교, 활동단체, 참여형태, 사건일시. 학생조직 활동, 관련인물, 키워드
- 재판자료 : 자료유형, 재판/사건명, 판결번호 및 일시, 장소(재판소), 언어, 키워드, 사건 개요, 관련인물
- 신문자료 : 자료유형, 신문명, 기사명, 발행사항, 면/단, 자료해제, 주기사항
다음
4) 朝鮮総督府学務局極秘文書, 全羅南道光州に於ける內韓人生徒鬪爭事件の真相竝えが鮮內諸子校に及ぼーたる影響(朝鮮総督府学務局, 昭和5年 2月)를 장우권, 김홍길, 박성우, 정근하는 이를 평역하여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상: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광주학생사건에 대한 초기인식(광주: 동인출판문화원, 2014)’으로 출간하였다.
이 연구는 지식정보자원과 아카이브 측면에서 학생독립운동 지식정보자원 형성ㆍ발전과 관리현황을 조사•분석하여 효율적인 자료수집, 해제, DB구축방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920년대는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등으로 이루어진 학생중심의 독립운동이었으며, 이 시기에 조직되어 활동한 학생단체는 전체 392개로 나타났다.
2) 동맹휴학의 지속적인 항쟁은 항일독립정신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1929년 광주학생독립 운동으로 귀결되었다. 동맹휴학횟수는 400여건으로 나타났다.
3) 광주지역학생들은 1926년 ‘醒進會’라는 비밀결사와 1929년 ‘讀書會中央本部’, ‘學校讀 書會’를 조직하여 학생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였다.
4) 학생독립운동 관련 신문기사는 전체 12,539건이였다(동맹휴학 4,621건, 학생회 2,849건, 광주학생독립운동 1,567건, 고학생 894건, 격문 986건, 독서회 949건, 중일학생 운동 343건, 학생과학연구 169건, 남경군관학교 161건 순). 또한 학생독립운동 관련보도는 동아일보 4,718건, 조선일보 4,601건, 중외일보 1,196건, 매일신보 821건, 신한민보 488건, 시대일보 299건, 조선중앙 292건, 중앙일보 124건 순으로 나타났다.
5) 일본 내 학생운동을 조사한 결과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기사가 수록된 신문은 京都日 出, 京城日報, 九州日報, 大阪每日, 大阪朝日, 名古屋 新聞, 萬朝報, 門司新報, 福岡日日, 北國, 新愛知, 神戶新聞, 神戶又新日報, 吳日日, 芸備日日, 中國, 参陽新報와 사상계열 신문인 無産者新聞, 社會運動通信, 自由連合新聞 등이며 관련 기사는 163건으로 나타났다.
6) 학생독립운동과 관련하여 많은 재판기록자료가 존재한다. 재판기록자료를 보면 독립운동가들의 사찰→검거→송국→구치소 수감→송국→예심결정에 의한 예심본심→기소여부결정→구형→선고→항고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과정들이 나타나 있다.
7) ‘全羅南道光州に於ける內韓人生徒鬪爭事件の真相竝えが鮮內諸子校に及ぼーたる影響’(1930. 3.22)에서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광주학생사건을 초기에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소화5년(1930) 재외 조선인의 「3•1」운동 개황에 관한 건(‘昭和五年在外朝鮮人 「3•1」運動槪況ニ關する件’(1930.3.22.))은 일본외무성 아세아국에 소장된 외무성 비밀문건으로 1929년 11월부터 1930년 4월까지 진행된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의 국외확산과정에서 간도, 북평, 상해 연해주 등지의 재외조선인과 지나인들의 문제인식과 연대 활동을 담고 있다.
8) ‘일제강점기 학생독립운동 학술연구의 흐름과 동향’에서 최근까지 발표된 국내의 학술 논문과 학위논문에 수록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관한 여러 연구동향을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9) 학생독립운동 관련 지식정보자원 아카이빙을 제시하였다.
10) 기록자료, 학교자료, 개인자료, 단체자료, 언론자료에 대한 메타데이터 서지정보입력 포맷과 항목 그리고 DB설계와 입ㆍ출력화면을 제시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는 학생독립운동의 기초자료의 토대를 구축하고, 지식정보자원의 구성과 분포에 대한 학술로드맵을 통해서 학생독립운동 연구와 발전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독립운동의 실제적 지식정보자원으로서 활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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