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Korean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Society 2023 KCI Impact Factor :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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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2466-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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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2466-2542
A Study of Publishing in Gwangju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1전남대학교
일제의 억압과 통제 속에서 우리민족은 서적 간행을 통해서 조상의 얼을 전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음을 현전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검열과 焚書로 인해 많은 수의 서적이 출간되지 못한 채 사장되거나 散失되었다. 그러한 수난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민족은 굽히지 않고 출판기술을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서적을 간행하여 지적 기반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조선시대에 光州는 전라도에서도 全州, 羅州보다 작은 고을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전라남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고, 광주학생운동과 전라도 항일의병의 중심지가 되었다. 전라 남도지역의 서적 간행에 관하여 조선시대부터 연구를 해 오던 중 일제강점기 광주의 출판문화에 관심을 갖고 여러 해 전부터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 동안 일제강점기 출판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민간의 출판활동의 전반적인 구조와 서적유통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조사된 61종의 현전본을 대상으로 주제별, 간행시기별, 간행처별, 판종별 분석을 하여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광주지역의 출판문화를 고찰하고자 한다. 연구의 범위는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주체가 되어 발행한 서적과 한국인이 운영하는 출판 사로 국한하였다.
1) 고려대, 전남대, 계명대, 연세대, 원광대, 조선대, 동국대 도서관.
1896년에 光州는 전라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근대 도시로 변화되었다. 이전까지 전라도 서남부의 행정 중심지는 羅州였는데 광주가 도청소재지로 정해진 배경에는 몇 가지가 있다. 광주의 지리적 위치가 전남의 중앙이라 해도 무방할 만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역사적으로 과거 武珍州 및 武州의 중심도시였으며, 무엇보다 1896년 초 행정구역 개편 직전의 나주 단발령 항거에 대한 중앙정부의 징벌적 행정조치의 측면이 강했다.
광주읍성 주변과 경양역 인근의 수백호의 집이 마을을 이루었던 것을 제외하면, 십 수호 정도의 작은 단위로 전통촌락을 형성했던 곳에 사람이 몰리면서 ‘도시’가 만들어졌다. 20세기 초 광주 시가지에 전라남도청, 광주군청, 광주우체사, 광주지방법원 등의 중요행정기관이 세워졌고 더불어 각종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광주읍성 주변의 시가지가 확산되면서 光州面은 1917년 指定面이 되었고, 1931년에는 광주읍, 1935년에는 광주부로 승격하였다
광주에 전등불이 켜진 것은 1917년 9월이었으며 상수도가 공급된 것은 1920년, 전화선이 일반인에게 개통된 것은 1911년 4월이었다. 1910년 이후 일제는 시가지를 정비하여 근대화에 앞장선다는 명분아래 광주읍성, 光山館(客舍), 동헌, 선화당, 영청 등을 비롯한 대표적 문화유적을 철거하였다. 철거지역에는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본풍 건물이 세워졌으며, 그 신축 건물들에 따라 행정구역도 새롭게 개편되었다. 행정구역상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指定面은 그 거리이름도 동문통, 북문통 혹은 西光山町, 弓町 또는 향사리, 원촌리 등 일본식으로 개칭되었다
190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조선 인쇄업계 침투는 점점 노골화 되었는데, 1917년에 전국 70개소 가운데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은 16%인 11개소였으며, 자본의 규모도 존체 14% 정도에 지나지 않은 10만3,110원 뿐이었다
당시 광주의 산업은 열악하였지만 1910년대에 각종 조합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출판인쇄업계에서도 1919년에 이종대, 조선만, 김득선, 김성옥의 발기로 조합원 60여명이 위원제로 서무, 교양, 조사, 구호 등의 부서를 설치하고 활동하였다. 또한 광주인쇄공청년회도 있었다
광주는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작은 고을에서 도시로 변모한 지역의 특색을 보이며, 특히 이시기에 일본인들이 산업의 중심을 장악하고 한국인들은 철저하게 주변인이었다. 당시의 서적 간행에 관한 기록이나 출판에 관한 참고자료는 찾아 볼 수 없었고 오직 단서가 되는 것은 현전본의 간기와 판권지를 통해서 그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정도였다.
1930년대에 들어 광주에서는 한국인 출판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현존본 조사에서는 나타난 출판사는 光明堂, 南振印刷所, 三奇堂, 崇文堂, 永林堂, 日新堂, 全南印刷株式會社, 英 文堂, 愚山印刷所, 光一堂 등이다.
국내외 대학도서관의 온라인고서목록 및 고서목록, 국립중앙도서관, 선행연구, 목록집 등을 조사하여 刊記가 있는 서적을 대상으로 현전본서목을 작성하였다. 전남대학교 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오래 전부터 호남지방에서 간행되거나 호남과 관련 있는 인물의 문집들을 수집하고 연구해 왔고, 연구의 결과물을 『호남문집 기초목록』으로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일제강점 기에 간행된 서적들을 살펴보니 석판본, 신연활자본, 목판본, 목활자본으로 간행된 문집들이 많았다. 석판본, 신연활자본, 목활자본, 목판본이 검색어가 되었고 시기(1910-1945)를 조합하여 국립중앙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의 온라인고서목록에서 상세검색을 하였다. 또한 『하바드 蓮京圖書館 韓國貴重本 解題』
조사결과 일제강점기 광주에서 간행된 서적의 현전본은 61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이후 1913년부터 1943년까지 광주에서는 傳記類, 譜系類, 地理類, 存案類, 編年類, 儒家類, 類書類, 別集類, 總集類 등을 간행하였다. 간행된 서적의 판종은 목활자본, 신연활자본, 석판본 등이고, 간행처는 광주향교, 서원, 재실, 누정, 사가, 출판사 등이다.
일제강점기에 광주에서 간행된 서적은 조사한 결과보다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나 간행 기록이 남아있는 61종을 대상으로 한정하여 주제별, 간행시기별, 간행처별, 판종별 분석을 하여 그 서지적 특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광주에서 간행된 서적을 四部分類法에 의거하여 주제별 분포를
일제강점기 광주에서는 譜系類, 傳記類, 別集類, 地理類의 서적이 가장 많이 간행되었음을알 수 있다. 즉 문중의 족보와 조상의 전기 및 문집 등이 집중적으로 간행되었다. 조선후기에도 전남지역에서는 보계류를 가장 많이 간행한 특징
보계류는 1919년부터 1937년 동안에 간행이 이루어졌고, 전기류는 1913년부터 1942년 동안에 간행되었다. 비교적 일제강점기 초반부터 말기까지 고루 간행된 것이다. 이에 반해 별집류는 1930년부터 1943년 동안 간행되었는데 일제강점기 말기에 집중적으로 간행된 것이 특기할만하다. 전국적으로는 1920년대 족보, 遺稿, 文集을 합한 허가건수는 2,613건에 달하여 전체 출판 허가 건수의 24%를 차지한다. 1930년대 이후에는 출판건수가 줄어들어 족보, 유고, 문집을 합한 건수는 2,825건으로 전체의 13.5%를 차지하여 1920년대에 비하여 줄어 들었다
당시 호남지방 중 가장 큰 도시인 전주의 방각본 간행처에서는 집부 소설류를 가장 많이 간행했으며, 대중의 수요가 많은 책들 - 『천자문』, 『아희원람』, 『통감절요』, 『춘향전』, 『구운몽』, 『유충열전』, 『됴웅전』 - 은 중복해서 출판하기도 했다
조선후기(임진왜란 이후~일제강점기)의 광주의 간행상황과 비교하면, 서적 간행의 다양성이 매우 축소됨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위에 언급된 주제 외에도 詩類, 小學類, 政法類, 藝術類, 道家類 등의 서적이 간행되었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시기적으로 어떻게 구분할 지에 관해서 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보이는데 방효순은 5단계로 나누었고 이중환 등은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방효순은 출판의 흐름에 따라
제1기 : 1910년 - 1919년 : 신식문화수용기(출판법(1909년 2월 23일 법률 제 6호)으로 인해 통제)
제2기 : 1920년 - 1928년 : 문화정치시대, 출판문화의 발전기
제3기 : 1929년 - 1936년 : 출판문화의 침체기
제4기 : 1937년 - 1940년 : 출판문화의 부흥기
제5기 : 1941년 - 1945년 : 일제의 전쟁 야욕으로 인한 암흑기로 5단계로 나누었고,
이중환 등은 역사적 분기점을 기준으로
제1기 : 1910년 - 1919년 : 강점기 시작부터 3ㆍ1 운동까지
제2기 : 1920년 - 1939년 : 3ㆍ1 운동 후부터 친일강요기까지
제3기 : 1940년 - 1945년 : 해방까지 3단계로 나누었다.
본고에서는 후자의 시기구분을 기준으로 광주의 서적 간행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1기(1910년 - 1919년)에는 8종이 간행되었고, 제2기(1920년 - 1939년)에는 43종이 간행되었으며, 제3기(1940년 - 1945)에는 10종이 간행되었다.
일제강점기 광주지역에서 서적 간행을 했던 곳은 光州鄕校, 書院, 樓亭, 齋室, 出版社, 私家 등이었다. 조선시대 이후 일제강점기로 전환된 시기에 가장 큰 변화는 근대적 출판사와 인쇄 소가 출현한 점이다. 광주에서 간행된 서적을 각 간행처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광주향교에서 간행한 서적은 『南道靑襟案(1921)』, 『長興鄕座目靑襟先生案(1921)』, 『湖 南吟草(1922)』, 『光州邑誌(1925)』, 『隨行案(1935)』 등 5종이 현전한다. 광주향교에서 서적을 발행한 시기는 1921년부터 1925년까지 활발하였고, 10년 후에 『隨行案』을 간행하였다. 1921년부터 1925년까지는 목활자본이 주를 이루었지만, 1935년에는 永林堂에 인쇄를 의뢰하여 석판본으로 발행하였다. 『南道靑襟案』, 『長興鄕座目靑襟先生案』 『隨行案』은 인명록이고, 『湖南吟草(1922)』는 道儒道彰明會의 회원들의 詩를 모은 시집이며, 국한문혼용으로 되어 있다. 『光州邑誌』는 일제의 필요에 의해 편찬된 읍지이다.
1910년대에 국내에 존재하던 약 70여 개의 인쇄소 중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 11개 소인 데 비해, 1920년대에는 서적, 신문, 잡지, 각종 관공서의 인쇄물량이 많아지면서 인쇄업이 기업화되었고,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활기를 띠어 인쇄업이 중추적 산업 분야의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다
지방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광주에서도 1930년대에 출판사들이 생겨났는데, 당시 광주지 역에 서 활동한 출판사로는 光明堂, 南振印刷所, 三奇堂, 崇文堂, 永林堂, 日新堂, 全南印刷株 式會社, 英文堂, 愚山印刷所, 光一堂 등이 있다. 이들 출판사는 거의 대부분 石版本을 간행하 였다. 따라서 판권지에 명시된 인쇄소는 光明石版印刷所, 南振石版印刷所, 三奇堂石版印刷所 등으로 나타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과 개인소장본의 판권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진인쇄소에서 간행한 서적으로는 『善山柳氏派譜』 2종, 『樵隱遺稿』, 『武城書院院誌』 등이 현전하고 있다. 이들은 1930년부터 1931년에 석판본으로 출간되었다. 아래의 판권지를 살펴보면, 남진인쇄소는 1930년에 광주면 대정정에 소재하다가 1931년 광주면 궁정으로 이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총독부허가사항이 날자와 함께 기재되어 있다.
『樵隱遺稿』의 판권지
昭和五年(1930) 8月 20日 印刷
昭和五年(1930) 9月 10日 發行
朝鮮總督府許可(昭和五年(1930) 7月 15日)
著作 兼 發行者 全羅南道光州郡 瑞坊面 梧峙里7 294番地 鄭待鉉
印刷者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面 大正町 10番地 李東植
印刷所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面 大正町 10番地 南振印刷所
發行所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面 大正町 10番地 南振印刷所
『善山柳氏派譜』의 판권지
昭和六年(1931) 1月 20日 印刷
昭和六年(1931) 2月 20日 發行
朝鮮總督府許可(昭和六年(1931)) 1月 12日
著作 兼 發行者 全南 谷城郡 梧谷面 德山里7 170番地 柳善卓
印刷者 全南 光州郡 光州面 弓町 6番地 丁在述
印刷所 全南 光州郡 光州面 弓町 6番地 南振印刷所
發行所 全南 光州郡 光州面 弓町 6番地 南振印刷所
영림당에서 간행한 서적은 『太宗朝三勳臣會盟錄』, 『太宗朝三勳臣錄』, 『玉果邑誌』 등이다. 또한 『撫松私稿』와 『隨行案』은 영림당에서 인쇄하였고 발행소는 각각 撫松亭과 光州鄕校로 기재되어 있다. 판권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太宗朝三勳臣錄』(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太宗朝三勳臣錄壹冊
昭和九年(1934) 10月 12日 印刷
昭和九年(1934) 11月 13日 發行
(朝鮮總督府許可)
定價 : 金七十錢
著作 兼 發行者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金鎬永
印刷者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尹放林
印刷所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永林堂石版印刷所
發行所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永林堂石版印刷所
『撫松私稿』(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年(1935) 8月 24日 印刷
昭和十年(1935) 9月 5日 發行
著作 兼 發行者 光州郡 大村面 漆石里 179番地 徐台煥
印刷者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尹泳龍
印刷所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永林堂石版印刷所
發行所 光州郡 大村面 漆石里 撫松亭
『隨行案』(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年(1935) 8月 13日 印刷
昭和十年(1935) 9月 20日 發行
昭和十年(1935) 9月 7日 總督府指令 第1416號
複製不許
著作 兼 發行者 本籍 光州郡 松汀面 素村里 522番地 住所 京城府 積善洞 111番地 高光雨
印刷所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永林堂石版印刷所
印刷者 全羅南道光州郡 光州邑 明治町 5丁目 209番地 尹泳龍
發行所 光州鄕校
광주의 출판사 중 간행된 서적이 가장 많은 남아 있는 곳이다. 숭문당에서 간행된 서적 중 『李朝縉紳譜』, 『湖南歷代人物圖』, 『湖南孝烈圖』, 『湖南忠義圖』, 『仁同張氏世譜』 5종이 현전한다. 이 중 『湖南歷代人物圖』, 『湖南忠義圖』는 尹榮善이 편집하였다. 숭문당에서 발행한 서적들은 인쇄자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湖南歷代人物圖』는 숭문당석판인쇄소의 韓銀柱, 『湖南孝 烈圖』는 삼기당석판인쇄소의 丁日燮, 『李朝縉紳譜』는 숭문당의 林南大가 인쇄하였다. 『湖南 歷代人物圖』, 『湖南孝烈圖』, 『李朝縉紳譜』의 판권지에 조선총독부 허가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湖南歷代人物圖』와 『湖南孝烈圖』의 정가가 표시되어 있다. 판권지를 살펴보면,
『湖南歷代人物圖』(개인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年(1935) 月 日 印刷
昭和十年(1935) 月 日 發行
板權表示 : 板權所有, 不許複製
定價 : 원래 있었으나 검은 줄로 지워져 있음(개인소장본) 湖南歷代人物圖 全一帖(붉은 글씨)
著作 兼 發行者 京城府 光洞 77-63番地 尹榮善
印刷者 光州府 錦町 157番地 韓銀柱
印刷所 光州府 錦町 157番地 崇文堂石版印刷所
發行所 光州府 錦町 157番地 崇文堂
『湖南孝烈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二年(1937) 3月 20日 印刷
昭和十二年(1937) 3月 28日 發行
複製不許
湖南孝烈圖
定價 金 五圓也
著作 兼 發行者 光州府 錦町 157番地 韓銀柱
印刷者 光州府 明治町 4丁目 丁日燮
印刷所 光州府 明治町 4丁目 三奇堂石版印刷所
發行所 光州府 錦町 157番地 崇文堂
總販賣所 光州府 錦町 157番地 崇文堂
『李朝縉紳譜』(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年(1935) 6月 30日 印刷
昭和十年(1935) 7月 15日 發行
著作 兼 發行者 京城府 內資洞 159番地 金永湖
印刷者 光州府 錦町 157番地 林南大
印刷所 光州府 錦町 157番地 崇文堂
發行所 光州府 錦町 157番地 崇文堂
광명당에서 발행한 『儀式圖說』과 『三山家藏』 중 『儀式圖說』의 인쇄자는 姜大宗이었는데, 1942년에 간행된 『三山家藏』 판권지의 인쇄자는 淸川大宗으로 바뀌었다. 『삼산가장』의 저자의 성명 또한 池原桂宣로 되어 있는데 이는 池永奎의 창씨개명한 이름이다. 南次郞 총독은 부임 후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한국인의 황민화를 꾀해 그 일환으로 39년 11월 10 일 제령(制令) 제19호로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개정했는데, 그 내용은 창씨개명과 서양 자제도의 신설이었다.(한국사사전편찬회 2005). 1939년 이후 발행한 서적에는 개정된 조선 민사령이 적용된 것이다. 광명당에서 발행한 『儀式圖說』과 『三山家藏』에는 조선총독부 허가 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정가표시도 없다.
『儀式圖說』(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年(1935) 8月 2日 印刷
昭和十年(1935) 10月 15日 發行
複製不許
著作 兼 發行者 京城府 昌信町 459-4番地 金南坤
印刷者 全南光州府 樓門町 232番地 姜大宗
印刷所 全南光州府 樓門町 232番地 光明堂
發行所 光州府 樓門町 光明堂
『三山家藏』(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七年(1942) 9月 5日 印刷
昭和十七年(1942) 10月 15日 發行 (非賣品)
著作 兼 發行者 全南光州府 明治町 5丁目 158番地 池原桂宣(池永奎)
印刷者 全南光州府 樓門町 232番地 淸川大宗
印刷所 全南光州府 樓門町 232番地 光明堂
삼기당에서 발간한 서적 중 『簡禮纂要』, 『三宜堂稿』, 『瑞石遊覽』, 『朝鮮朝女流詩文全集』이 현전한다. 출판사에서 발행한 유고나 문집은 대체로 정가가 표시되어 있지 않거나 非賣品이 라고 적혀져 있는데, 『三宜堂稿』는 정가가 있다. 『瑞石遊覽』의 경우 조선총독부 허가가 기재 되어 있지만, 『三宜堂稿』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三宜堂稿』(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七年(1932) 11月 20日 印刷
昭和八年(1933) 2月 10日 發行
複製不許
三宜堂稿 定價 金壹圓貳拾錢
著作 兼 發行者 全南光州郡 光州面 明治町 4丁目 60番地 丁日燮
印刷者 全南光州郡 光州面 明治町 4丁目 60番地 趙順吉
印刷所 全南光州郡 光州面 明治町 4丁目 60番地 三奇堂石版印刷所
發行所 三奇堂石版印刷所
『瑞石遊覽』(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十七年(1942) 6月 18日 印刷
昭和十七年(1942) 6月 23日 發行
瑞石遊覽全一冊
朝鮮總督府許可 指令 第201號
複製不許
著作 兼 發行者 京城府 芳山町 1番地 鄭寅燦
印刷者 光州府 大和町 41番地 丁日燮
印刷所 光州府 大和町 41番地 三奇堂
영문당에서는 『武揚院誌』를 인쇄하였다. 무양서원의 원지이다. 발행처는 무양서원이고 인쇄를 영문당에 의뢰한 것이다. 판권지를 살펴보면,
『武揚院誌』(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판권지
昭和九年(1934) 9月 25日 印刷
昭和九年(1934) 9月 30日 發行 (非賣品)
著作 兼 發行者 全南 光州郡 極樂面 東林里 崔鍾涉
印刷者 全南 光州邑 明治町 5丁目 9番地 崔潤馨
印刷所 全南 光州邑 明治町 5丁目 9番地 英文堂
發行所 武揚書院
이상으로 살펴 본 판권지의 주요내용을
남진인쇄소는 대정정에서 궁정으로 이전하였으며, 삼기당은 명치정에서 대화정으로 이전 하였다. 영림당과 영문당은 명치정에 소재하고, 숭문당은 금정에 소재하였다. 명치정은 현재의 금남로, 금정은 현재의 금동, 대정정은 현재의 대인동, 누문정은 현재의 누문동, 궁정은 현재의 궁동에 해당한다. 위의 누문동은 제외하고, 금남로, 금동, 대인동, 궁동은 지금 광주광 역시의 동구에 해당한다.
13개의 판권지 중 5개의 판권지에 조선총독부 허가사항이 기재되었고, 판권사항에는 ‘복제 불허’가 기재되어 있었다. 정가 표시가 있는 서적들은 대중을 대상으로 출판한 서적에 한하여 기재되어 있고, 족보, 서원, 향교 등에서 발행한 서적은 비매품이었다.
광주향교와 출판사에서 발간한 서적 외에 대부분은 齋室, 樓亭, 私家에서 발행한 것으로 간기에 나타나 있다. 먼저 재실에서 간행된 서적을 살펴보면, 『漢陽趙氏世譜』, 『金氏三綱錄』, 『南平文氏族譜』, 『錦城范氏族譜』, 『全州崔氏判尹公派譜』가 있다. 한양조씨세보는 한양조씨 재실인 斗洞齋에서, 김씨삼강록은 광산김씨 재실인 敬慕齋에서, 남평문씨족보는 남평문씨 재실인 竹坡齋와 南涯齋에서, 금성범씨족보는 금성범씨 재실인 龍湖齋에서, 전주최씨판윤공파 보는 전주최씨 재실인 雲林齋에서 간행하였다. 재실에서 간행된 서적은 門中 단위로 족보와 조상의 전기류를 간행하였다. 족보를 간행한 곳은 재실 외에 譜所, 派譜所, 宗會 등으로 간기에 표기되어 있다.
누정이 간행처로 표기되어 있는 서적에는 『撫松私稿가 있다. 무송사고는 무송정에서 간행한 서태환의 문집이다. 무송정은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 위치한 정자인데, 소나무를 아끼고 사랑한 서태환이 자신의 처지를 옛날 도연명에 견주어 ‘撫孤松而盤桓.’이라는 귀거래사의 글귀를 줄여 무송(‘撫松’)이라 하였다.
私家가 간행처로 표기되어 있는 서적에는 『水村集』, 『謙齋集』, 『雲藍先生文集』, 『陽波亭詩 稿』, 『靑襟世譜』, 『河南程氏華東統系譜』, 『金忠壯公遺事續編』, 『西岳誌』, 『朝鮮歷代要覽』 등이 있다. 주로 조상의 문집, 족보 등을 간행하였다.
재실, 누정, 사가에서 간행된 서적은 주로 계보류, 전기류, 별집류 등이다.
일제강점기 광주에서 간행된 서적들을 판종별로 구분하면 목활자본은 18종, 석판본은 38 종, 신연활자본은 5종이다.
목활자는 1913년부터 1925년까지 활발히 사용되다가 그 후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다. 광주지역에서 목활자를 사용한 것은 1831년부터 간행기록에 나타난다
석판본은 1930년부터 1943년까지 출판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석판인쇄방법은 석회석의 일종인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한 石版石을 이용한 것인데, 수 용성인 석판석에 지방분을 칠하여 不水溶性部分을 생기게 하고 그 부분에 油性 잉크를 칠하 여 인쇄하는 방법이다
서울의 민간 출판사에서 간행한 서적들은 신연활자본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반면, 광주의 출판사에서는 대부분을 석판본으로 간행한 점이 광주 출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광주지역에서 간행된 서적 중 61종의 현전본을 바탕으로 서지적 특징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광주에서는 譜系類, 傳記類, 別集類, 地理類의 서적이 가장 많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경우 문학관련 서적이 월등히 높았고, 전주의 경우 소설류와 경서류의 비중이 높았던 것과 대조적인 현상이다.
광주에서 서적 간행활동은 1910년부터 1928년까지는 아주 미미하게 간행되다가 1929년부터 1942년 사이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적 간행을 했던 곳은 光州鄕校, 書院, 樓亭, 齋室, 出版社, 私家 등이었다. 조선후기 광주 지역의 주요 간행처는 재실, 사우, 관아 등
간행된 서적의 판종은 석판본(38종)> 목활자본(18종)> 신연활자본(5) 순으로 많다. 석판 본은 1930년부터 1943년까지 출판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서울의 경우 신연활자본이 주종을 이루었던 것과 비교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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