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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를 통해서 본 15~17세기의 변경지대 -압록강, 두만강 변을 중심으로-

Nam, Eui-Hyeon 1

1강원대학교

Candidate

ABSTRACT

고지도들은 역사연구에 매우 유용한 보조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배경지식이 없다면 고지도를 전문적으로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성과를 이용하여 고지도를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한국의 고지도에는 15~17세기 변경지역에 해당하는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 그리고 여진지역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고, 이 지역의 물길, 산세, 군사시설 그리고 여진지역까지도 상세하게 그린 지도들도 상당수 있다. 이러한 지도들은 현재 한국사의 과제인 한국사와 변경, 한국사와 북방사를 연결시키려는 연구방향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우선 책문과 연산관의 관계에 주목해 보았다. 1480년대 이전 명나라로 들어가는 책문이 설치된 지역은 연산관이었으며, 1480 이후에는 봉황성이었다. 이 두 곳은 책문이 설치된 지역이자 사행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조선에서 보자면 매우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 때문에 고지도에는 연산관이라는 지명이 매우 빈번하게 기록되는 모습을 보인다. 나아가 국경문제와 관련하여 고지도에 조선과 명의 국경선을 표시한 지도는 나타나고 있지 않은데 이것은 전통시대 국경지대의 개념으로 국경이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480년대 이전에는 연산관~압록강, 1480년대 이후 봉황산~압록강 지역은 각각 양국의 국경중립지대로 표시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고지도에 압록강 변의 섬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음을 통해 당시 조선이 압록강 변의 도서들을 관할하고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여진지역을 상세하게 그린 고지도를 살펴보면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편 여진지역을 상세하게 그린 지도들이 있는데 청 건국 후에도 청나라의 강역이 아니라 단순한 야인지역으로 표시하였다. 이것은 조선의 군대가 수시로 강을 건너 여진을 수차례 정벌하기도 하고 그들의 침입을 저지시키기 위해 군사용 목책을 수시로 설치했던 배경과 청대 봉금지역이 명확하게 청의 강역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식이 지도에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4군과 6진 지역이 고지도에 상세하게 표시되고 있는데, 4군과 6진 대안 지역에 여진인들이 촌락을 이루며 인구를 증가시키고 변경을 위협하고 있었다는 사료를 통해 이 지역의 특징을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여진사회는 14세기부터 농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비옥한 토지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동은 자연스럽게 조선의 변경 중 살기 좋은 곳으로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4군과 6진 지역의 형성은 그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이해하였다. 마지막으로 청대 유조변을 그린 지도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것은 당시 요동변장을 기초로 성립된 유조변의 노변과 신변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지도에 표시되었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접근할 수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유조변이 압록강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두고 명청대 조선과의 국경선이 압록강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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