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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ceptance aspect for Su Dong-po’s <赤壁賦> appearing on the Joseon’s Chinese poetry

  • The Journal of Chinese Cultural Studies
  • 2010, (16), pp.131-148
  • DOI : 10.18212/cccs.2010..16.006
  • Publisher : The Society For Chinese Cultural Studies
  • Research Area : Humanities >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Chinese Literature > Chinese Culture

김주순 1

1대구가톨릭대학교

Candidate

ABSTRACT

소동파의 <前・後赤壁賦>는 중국문학사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며, 道家의 無爲自然思想을 바탕으로 중국인들의 세속을 초탈한 인생관과 자연관을 담았다. 즉 소동파가 黃州의 赤壁을 船遊하면서 느낀 웅대한 자연 앞에 보잘 것 없는 인간, 人生無常에 대하여 읊은 것으로부터 외부의 객관적인 대상을 통해 얻은 경험을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와 결합시켰다. <赤壁賦>는 문학적으로는 賦體의 형식을 취하였지만, 散文風의 氣勢가 있다. 이 작품은 소동파가 정치상의 큰 좌절을 겪고 黃州에 謫居하면서 지은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赤壁에서 뱃놀이를 하며 현실의 좌절에서 벗어나고자 天空을 소요하였고, ≪詩經・陣風≫과 <月出>편을 인용하여 바람과 달의 상징성을 읊으며, 《楚辭・九歌》의 <湘君>편에 桂櫂와 蘭槳의 상징성 및 美人의 의미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莊子・逍遙遊》편과 《抱朴子・對俗》편을 인용하여 長生不死하고자 하는 道家的인 색채를 짙게 드러내었다. 또한 赤壁大戰의 故事를 인용하여 曹操를 一世의 영웅으로 묘사하였다. 소동파의 <前・後赤壁賦>는 모두 작가가 정치적 곤경에 처했던 유배 시절에 赤壁으로의 船遊를 통해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고 정신적 해방과 자유를 만끽했던 순간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공통적인 주제가 되었다. 소동파의 <赤壁賦>가 언제, 누구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지는 문헌의 기재 부족으로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高麗와 소동파가 살던 北宋은 깊은 국교 관계로 사신을 비롯하여 무역하는 상인의 왕래가 빈번하였던 것으로 보아 송대의 大文章家인 소동파 문집이 이들을 통해 고려에 수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소동파는 송대의 높은 벼슬을 하였는데다가 시와 문장뿐만 아니라 서예 문인화 등 다방면에서 다재다능한 송대의 대표적 인물이었기에 고려 문인들은 소동파 문학에 쉬이 접근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조선 문인들이 소동파의 호방한 문체와 그의 품모에 깊은 영향을 받아 소동파의 적벽 뱃놀이을 흉내한 읊은 漢詩가 있다. 그 중 조선 대표적인 문인들로는 서거정, 박인로, 윤선도, 홍세태, 이행, 김석주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문인들은 벼슬길에 나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鄕里로 돌아오거나 貶謫되어 田園에서 은거하며 지낼 때 소동파의 <赤壁賦> 영향을 받아 뱃놀이 하고, 赤壁歌를 부르며 소동파를 ‘蘇仙’ 또는 ‘坡仙’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소동파의 <赤壁賦>에 대한 흠모가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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