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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 nova: アヴァンギャルドと工芸

  •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Science of Art
  • Abbr : JASA
  • 2009, 30(), pp.505-511
  • Publisher : 한국미학예술학회
  • Research Area : Arts and Kinesiology > Other Arts and Kinesiology
  • Published : December 30, 2009

키타자와 노리아키 1

1조시비대학

Accredited

ABSTRACT

미술의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의 쌍방에 걸쳐지는 양의적인 존재방식을 나타낸다. 20세기 아방가르드의 다수는 공업과 미술의 중간영역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근대의 공업이 비미술을 대표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공업사회가 아방가르드를 규정하는 동시에 미술의 존재방식도 규정해왔다. 공업사회는 사물을 만들어내는 일 자체에 큰 가치를 표출해 왔던 것은 근대에 있어서 미술이 여러 예술을 대표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미술가들 중 다수는 공업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세로, 그것이 가져온 인간소외에 대해 이견을 제창해 왔다. 즉 미술은 공업사회에서 지지를 받으면서 공업사회에게 대항한다고 하는 복잡한 태세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아방가르드는 그 양의적인 존재방식으로 인해 미술의 중심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으나, 이는 많은 아방가르디스트들(Avant-gardists)이 공업과 미술의 쌍방에 대해 친화와 거부의 아이러니컬한 태세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이 양의성은 공예의 중요한 속성이기도 하다. 관상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예는 아방가르드와 외견상으로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비미술=공업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아방가르드와 상통하고 이러한 이유로 미술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부정되곤 했다. 여기서 미술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는 미술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모더니스트들이다. 20세기 후반, 미술 자체에 있어서 독자가 되지 않는 것을 배제해 간 모더니즘의 선단은 미술로서의 실질성을 잃어버리고, 미술작품(object d'art)과 일반적인 사물(object/thing)의 경계영역에 봉착하고 말았다. 즉 모더니즘의 극한적 작품은 공업작품 자체가 아닌, 그렇다고 해서 미술작품도 아닌 허약성을 띠게 된다. 미술가들은 이러한 과정의 반성적 자각으로, 미술은 본래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사회 혹은 생활과 미술의 연계성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개시하게 된다. 이리하여 모더니즘은 생활세계(life-world)에 정착하여 비미술적인 것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게 되고, 이러한 움직임은 아방가르드와 공예가 서로로부터 배워야 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정보사회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이 시대는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이 사회에 있어서 가치관의 기축이 된다. 다시 말해서 ‘사물’에서 ‘사실’로 사회적 가치관의 기축이 이행한 것이다. 기능적 조형을 목표로 하는 현재의 아방가르드와 공예의 행방은, 사회 혹은 생활에서 ‘사실’을 일으키는 조형을 실시한다는 커다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아방가르드의 현재와 공예의 합류로부터 태어날 지도 모르는 새로운 존재방식의 art를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art와 선을 그어 Ars nova(새로운 기술)이라고 칭하고 싶다. 그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은 art의 원형(archetype)을 미래로 향하도록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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