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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ormation of a Chinese Poetic Icon in Japanese Art:Yosa Buson(1716-1784) and his paintings of “Peach Blossom Spring”

선승혜 1

1국립공주박물관

Accredited

ABSTRACT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시인이자 문인화가인 요사 부손(與謝蕪村 1716 -1784)은 동아시아에서 유토피아의 상징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 원기(桃花源記)」를 일본인의 정서에 맞게 변용하여 시와 회화를 창작하였다. 그 이론적 원동력은 중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융합이었다. 요사 부손은 새롭 게 도전하는 문인화의 주요한 소재로서 도연명의 「음주(飮酒)」, 「귀거래사 (歸 去來辭)」, 「도화원기」를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도연명의 시는 동아시아의 시 와 회화에서 모두 문인들에게 애호되었기 때문에, 부손이 시와 회화를 융합시 키는 데에 가장 매력적인 주제가 되었다. 특히 도화원은 탈속성과 은일뿐만 아니라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서 요사 부손이 추구했던 유토피아를 반영한 테마이다. 그의 시와 그림에 나 타난 도화원에 대한 관점을 두 가지 특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요사 부손의 도화원은 은일성(隱逸性)과 탈속성(脫俗性)이라는 기본 개념에 하이쿠(俳句)의 유희성과 초닌(町人)의 자유로운 정신을 내포한다. 도 화원은 「겨울 은거(冬篭)」(1768)라는 하이쿠에서 겨울에 자신만의 시공간을 갖도록 숨는다는 장소로 묘사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명청대에 문인이 경세제 민을 위한 관료가 되지 않고 시민 생활을 하면서 은일을 즐긴 시은(市隱)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관직을 버리고 산에 숨어사는 ‘소은(小隱)’, 관직을 유 지하면서 정신적인 은일을 즐긴 ‘조은(朝隱)’, 공적으로는 관료로서 경세제민 을 하면서 사적으로 문학과 예술을 즐긴 ‘중은(中隱)’과 구별된다. 일본에서는 과거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관료가 된 사대부의 계층이 부재하였기 때문에, 부손이 도화원을 해석함에 있어서 시은의 관점에서 도원을 수용한 것은 당연 한 결과였다. 부손은 『춘니구집(春泥句集)』(1777)에서 도화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 았지만, 도화원의 봄과 탈속이라는 핵심적인 구조를 ‘이속론(離俗論)’이라는 시의 창작론에 응용하였다. 이것은 중국에서 도화원이 학정(虐政)을 피해 정 치적이고 사회적 은거를 문학적 이론으로 비약적인 전환을 도모한 것이다. 나아가 부손은 도화원도를 제작할 때에 도화원기의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하이쿠에서 계절어(季語)의 사용을 중 시하는 것처럼, 복숭아 꽃이 피는 음력 3월의 세시풍속으로서 탈속과 은일을 더욱 강렬하게 암시하는 한식절(寒食節)의 이미지를 당대(唐代)의 시인 두공 (竇鞏 772?-831?)의 「양양한식기우문적(襄陽寒食寄宇文籍)」을 인용하면서 도 화원도의 이미지와 중첩시켰다. 도화원과 한식절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은 복숭아 꽃이 만발한 강가를 거슬러 올라가는 인물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통 된다. 그러나 도화원도에서는 어부가 배를 타고 간다면, 한식절을 소재로 한 회화에서는 인물이 말을 타고 복숭아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묘사하여 차별성을 두었다. 이와 같이 도화원에 다양한 해석과 변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원대 우제가 당송대의 칠언절구 320여 편을 편집한 『연주시격(聯 珠詩格)』의 일본 출판본(和刻本)을 애독하고 시와 제발에 인용을 하였기 때문 이다. 둘째 부손의 도화원은 양명학에 영향을 받아 순수한 마음에 기초로 한 행복 한 유토피아이다. 그는 일본의 문인화가들 사이에서 최신 유행이었던 중국 명청대의 회화와 더불어, 중국 명대 만력기(萬曆期, 1573-1619)에 원굉도(袁宏 道 1568-1610)가 시란 개성의 자유로운 발로이며 격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고 주장한 공안파(公安派)의 예술론을 수용하였다. 원굉도는 급진적 양명학자 인 이지(李贄 1527-1602)가 동심(童心)을 중시하며 인간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자 하였던 사상에서 출발하였다. 에도시대에 원굉도의 『병사(甁史)』 가 출판될 만큼 유행하였다. 부손은 『한밤의 음악(夜半樂)』(1777)에 수록한 시로서 한시(漢詩)와 하이쿠 를 번갈아 지은 『게마에 부는 봄바람(春風馬堤曲)』에서 봄날 귀향길에 오른 젊은 여성을 만나면서 느낀 애뜻하고 로맨틱한 감정 혹은 노스탤지어를 표현 하였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인용하지 않으면서, 감상자 가 도화원기의 낭만적 이미지를 연상하도록 하는 기법을 이용하였다. 나아가 1781년에 부손은 교토의 유곽지에 환락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였던 스미야(角屋)에 보관된 도화원도는 동굴의 형태에 여성의 음부를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동굴로 들어가는 어부 얼굴이 붉게 상기되도록 채색하여, 에로틱한 순간을 암시하였다. 이 작품은 『연주시격(聯珠詩格)』에 수록된 원굉도의 『입 도화원시(入桃花源詩)』를 제발에 인용한 점을 염두에 두면, 욕망을 인정하고 자 한 부손의 의도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부손의 나이는 이미 65세를 넘었으므로 욕망의 긍정이란 판타지 속의 도화원의 추구였을 것이다. 같은 해에 같은 원굉도의 시를 제발에 인용하면서 노인들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서 도화원이란 즐겁게 사는 유머가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가 평생을 통해 구축한 하이가(俳畵)의 여유와 유머에서 나온 도화원에 대 한 해석이다. 요약하자면 부손의 도화원은 중국의 정치적 유토피아를 개인적인 차원, 즉 코모리(篭り)와 같은 개인적인 은일이며, 욕망을 긍정하고 유머에 넘치는 행 복한 삶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도화원의 개념은 18세기 초닌 계층의 자유주의 를 반영하여, 자유로운 마음(心)의 발현을 존중하는 양명학의 정신과 유머와 발랄함을 추구한 하이쿠(俳句)의 정서를 결합하여 일본인의 정서에 맞도록 변 용된 것이다. 이러한 18세기의 자유로운 정신은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으면 서도 새로운 일본문화를 형성해 가는 추진력이 되었다. 이렇듯 요사 부손이 일본인의 감성으로 중국의 시적(詩的) 도상을 재해석한 양상을 고찰한 연구는 향후 한중일의 문화를 비교하는 초석이 되는 데에 또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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