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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유민 禰氏 一族 묘지명에 대한 斷想

  • The Review of Korean History
  • 2012, (105), pp.1-36
  • Publisher : The Historical Society Of Korea
  • Research Area : Humanities > History

Deukyoung Kwon 1

1부산외국어대학교

Accredited

ABSTRACT

최근 예군과 예식진, 예소사, 예인수 3대의 예씨 일족 묘지명이 중국섬서성 서안시 郭杜鎭의 唐代고분에서 출토되었다. 이들 묘지명에 의하면, 예씨 일족은 원래 중국에서 건너와 熊津에 정착하여 백제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 기록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해보면, 그것은 부정확한 口傳과 當代에 형성된 역사의식에 의하여 만들어진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예씨 일족은 웅진을 기반으로 한 지방세력인 것은 분명하므로, 그 들은 동성왕대 웅진귀족 苩氏가 붕괴한 후 그를 대신해 발흥한 세력이었다고 하겠다. 예씨 일족 묘지명은 7세기 중엽 백제 멸망을 전후한 시기의 한반도정세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우선 예군묘지명 은 예군이 군사반란을 일으켜 웅진성에 피신해 있던 의자왕을 붙잡아 당에 넘긴 주동자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자왕과 함께 당군에 투항한 정황을 서술한 삼국사기의 “熊津方領軍”이란 기사도 ‘熊津方領禰軍’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군이 웅진방령으로서 반란의 주역이었다는 것은 기존에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다. 또한 예씨 일족 묘지명은 예군과 예식진 형제가 웅진도독부 설치와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당이 백제지역을 총괄하는 관청을 사비에서 웅진으로 옮겨간 데는 웅진이 예씨 일족의 근거지였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터인데, 그 일에 예씨 형제가 관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예군과 예식진은 각각 熊津都督府司馬와 東明州刺史로서 당의 백제고지 지배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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