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헌법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전제로 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통치기구를 구성하였으며, 입법․사법․행정으로 분립된 통치기구는 각각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실현을 효율적으로 담당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통치기구는 항상 가변적으로 거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통치기구를 통한 통치활동 역시 통치기구의 설치 목적에 적절히 봉사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대 헌법 역시 근대헌법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으며, 현대헌법 또한 기본적 인권선언과 통치기구에 관한 규범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통치활동의 한 부분인 행정은 ‘공익의 실현’을 위해 공공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므로, 행정활동은 항상 그러한 공공성의 관철, 즉 공익의 실현을 지향하여야 하고, 이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전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행정의 공공성’을 다시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신시장주의의 시대적 조류에 따라 국내외적으로 강력하게 추진되어온 행정개혁 때문이다.
최근까지 진행되어온 각국의 다양한 규제완화정책이나, 민간위탁을 포함한 행정의 민영화․시장화 정책은 당해 행정의 공공성이 상실되었거나 감소하였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일반적으로 재정적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고에 따라 본래 행정이 수행해왔던 수많은 업무들이 민영화되면서, 그러한 민영화 대상 사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공공성’을 강력하게 부정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더불어 근대국가 이래 기본적이고도 불변적인 것이라 여겼던 국민국가, 지방분권, 관료제, 공무원제도, 의회제민주주의, 법치주의 등 국가․사회의 제반 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행정이 담당하여야 할 영역과 권한을 자의적으로 한정해, 공무원제도 자체의 존재이유조차 부정하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근대 이래로 헌법이나 법률상의 각종 규율은, 행정이 공무를 담당하고 그러한 공무를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효율적으로 실시하는데 불가피한 요소였기에 창안된 것이고, 또한 공무원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성으로부터 정당한 규율들이 추가되고, 그것을 담보하기 위해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국가사회에 덮친 신자유주의․신시장주의 광풍은 지금까지 인류사회의 유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쌓아온 법제도의 근본까지 무너뜨릴 위기상황으로 내몰린 형국이다. 지금까지 전 방위적이고 광범위하게 추진되어온 이들 개혁정책들은 단순히 행정조직 자체 및 그 일환으로서 공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감축․정리하기 위한 ‘행정개혁’에 그치지 않았다. 예컨대 규제완화를 강조하는 자유로운 경쟁은 ‘약육강식’의 룰에 불과하지만, 이것들은 기회의 형식적 평등을 강조하여 그것이 국민 사이에 필연적으로 초래할 소득이나 자산의 격차를 공공연히 긍정했다. 다시 말하면 ‘특정인 또는 특권적 소수자’가 최소경비에 따른 최대이윤을 무정부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방식을 허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제약이나 금지조차 전면적으로 ‘무장해제’시켜버린 형국이다.
아울러 이러한 ‘행정개혁’은 헌법원리(국민주권, 국제평화, 기본적 인권존중, 지방자치 등)를 실질화하기 위한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효율적인 행정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원리를 공동화함으로써, ‘특정인 또는 특권적 소수자’를 제외한 압도적 다수의 국민에게 적대적인 국가구조개혁의 양상을 노정해왔다.
아무리 시대상황이 변하였다 할지라도 인류가 유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축적해온 각종 제도들의 창설목적, 존재이유 및 그 본질적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근대건 현대건 행정이란 그 목적이나 담당 사무의 범위에서 시대상황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변화되지는 않았다. 즉 현대행정이란 헌법적 존재근거를 기반으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실현’을 위해 적극적이고 새롭게 창출된 통치기구의 한 부문으로서, 19세기 자유주의 시대의 행정과는 달리, 통치기구의 또 다른 영역인 사법이나 입법과 더불어, 준사법적․준입법적인 권한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을 다하여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새롭게 출현한 21세기 행정의 법적 존재이유는 사법․입법과 더불어 ‘협동’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실현하는데 있는 것이다. 즉 오늘날의 행정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자율적으로 규율된다던 시장이 실패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침해상태에 대해, 통치활동으로서 법적 존재이유가 동일한 사법이나 입법이 그 역할을 완수할 수 없었던 영역에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출현된 것이 바로 제3의 권력부분으로서의 행정이다. 다시 말해 행정이란 준사법적․준입법적인 권한을 본질로 하는 ‘공권력’뿐만 아니라,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과 같은 ‘비권력적’인 수단까지 활용하여 종합적이고 예방에 역점을 두는 독자적 권력부문으로서 확립된 것이기에, 행정이 담당하여야 할 공무란 현대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실현이 요구하는 본질적으로 예방적 기능을 갖는 다양하고 적극적인 활동이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효율성을 앞세워 진행된 각종 행정영역의 민영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