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에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UnitedPresbyterianChurch)해외선교부로부터 파송되어 만주주재 개신교 선교사로 활동해온 존 로스 (JohnRoss,1842~1915)는 의화단운동을 경험한 후 수 차례의 발표와 저술을 통하여 이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1899년에 산동과 직예에서 시작된 의화단운동은 다음 해에 만주지역에까지 전파되었으며 청나라에대한 지지와 외세의 배격을 의미하는 ‘보국멸양(保國滅洋)’등의 구호를 내걸었다.의화단은 동삼성(東三省)이라 불리는 봉천성(奉天省),길림성(吉林省),흑룡강성(黑龍江省)에서 무술훈련의 예비단계를 거쳐 6월과 7월에는 집중적으로 기독교 관련 건물들을 방화하고 외국인 선교사와 중국인 교인을살해하였으며,외세와 제국주의를 상징할 수 있는 철로 등을 공격하였다.
로스는,절제운동을 표방하던 재리교(在理敎)가 의화단운동에 적극적으로참여하여 대규모의 단원들에 의한 열광적이고 파괴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음을 강조하였다.또한,만주지역의 성경부도통(盛京副都統)진창(晋昌)을 비롯한 만주족 고위관료들과 군대는 북경의 중앙정부와의 연계 아래 의화단의활동들에 직접적으로 협력하였음을 말하였다.중국에서 약 28년간 선교활동을 해온 로스는 19세기 말엽에 활발하게 분출되는 중국인들의 민족주의적정서에 공감하면서,의화단운동의 본질을 반외세 및 반제국주의적운동이라고 파악하였다.1897년에 일어난 조주교안(曹州敎案)을 구실로 교주만(膠州灣)을 장악한 후 산동에 진출하여 영토의 조차를 강행한 독일의 제국주의야말로 의화단운동의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보았다.또한,의화단운동이 보여준 외국물품과 외국인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징벌은 이 운동의 반외세적,반제국주의적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보았다.마지막으로,로스는 의화단운동이 반기독교(反基督敎)운동이었는지의 여부를 논하였다.그는 가톨릭교회의,교회와 정치를 연계하는 정책에서 비롯된 사제들의 관리행세와재판에의 불법적 관여가 기독교 측의 의화단운동에 대한 중요한 책임소재라고 보았고,일부 개신교 선교사들의 거만한 태도 역시 문제가 있었음을지적하였다.결론적으로,로스는 의화단운동이 ‘기독교선교와의 전쟁’(a missionarywar)이 아니라,제국주의자들과의 일종의 ‘문화적 전쟁’(acultural war)이었으며,따라서 그 본질은 반기독교운동이 아니라 반외세 및 반제국주의운동이라고 보았다.종합적으로 평가해볼 때,존 로스의 만주 의화단운동에 대한 연구는 재리교와 만주족 관료층의 의화단운동에서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다.또한 중국에서의 열강의 제국주의적침탈에 대한 선교사들의 입장을 엿보게 한다.무엇보다도,의화단운동과 관련한 전통적,사회주의적 역사서술인 기독교의 제국주의 첨병론에 대하여진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