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기에 일본과 조선에서 행해진 음악의 통제 및 보급 정책에 대해서 국민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일본 정부 주도의 관제운동인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이 시작되었고, 이에 따라 음악분야에서는 불건전한 가요를 정화하여 시국정신을 고취시키고자 음반검열이라는 ‘통제정책’이 시행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국민을 교화, 동원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가요인 국민가의 ‘보급정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국민가의 제정을 위한 여론 지지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국민가의 현상모집이었다. 현상모집은 내각정보부, 육군성, 마정국, 대정익찬회 등의 정부기관, 신문사, 출판사, 방송국 등의 미디어, 애국부인회, 소국민문화협회 등의 국민운동기관이 담당주체가 되었다. 전시기의 악곡모집은 ‘국책선전’과 ‘국민계몽’으로 그 목적이 획일화되었다는 것이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선정된 국민가는 각종 음악회 연주나 행사 및 회합 등에서 국민의례로 사용되었으며, 음반 발매와 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또한 『주보』 및 각종 신문, 잡지에 선정곡의 악보를 게재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국민가를 확산시켜갔다.
조선에서의 음악정책은 식민지라는 특성상 일본보다 좀더 복합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내지의 정책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도 있었고, 조선의 사정에 맞게 변형되거나 조선에서만 실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음반검열은 일본보다 오히려 1년 이상 먼저 시행되었다. 가요정화를 목적으로 실시된 음반검열에서 일본은 ‘풍속괴란’을 이유로 음반 발매가 금지된 경우가 많았지만 조선은 ‘치안방해’를 이유로 금지된 경우가 월등히 많아, 가요정화의 목적에도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이 투영되어 있음이 나타난다.
조선이 일본과 가장 구별되는 부분은 모든 음악정책에서 그 구심점에는 조선총독부가 있었다는 점이다. 음반검열은 조선총독부 도서과에서 담당했고, 음악 기본방침의 실천 주체였던 조선문예회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직된 친일단체였으며, 모든 문화활동의 주축이 되었던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조선총독부의 총독을 총재로 하여 조선총독부의 보조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한 관제단체였다.
조선에서의 현상모집은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총독부, 매일신문사가 주축이 되었는데, 주제는 신동아 건설, 태평양전쟁, 징병제 기념, 미영격멸 등이며, 특히 징병제 찬양, 제국군인, 반도청년 등을 강조함으로써 황민사상의 고취를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일본의 현상모집에 의한 국민가의 선정에 비해 조선에서는 현상모집이 그리 활발하게 시행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국민가를 그대로 조선에서 불리게 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선정된 국민가는 조선에서도 국민가요, 애국가, 애국가요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각종 음악회 및 행사 등에서 필수 가창곡이나 국민의례의 일환으로 사용되었다. 국민가의 보급 취지는 일본과 조선이 동일한 것이었지만, 조선에서는 이와 더불어 내선일체라는 목적이 가미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전시체재 하에서의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전쟁완수를 위한 군수품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소리를 매개로 한 큰 파급력으로 국민의 정신교화와 거국일치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국민가로, 국민가의 장려정책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전시색이 더욱 짙어짐에 따라서 ‘국민개창운동’이라는 보다 강제적인 방침을 가지고 국민을 동원하는 형태로 발전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