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있어서의 무용의 세계를 고찰한 것이다. 무용이라는 모티브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최근에 이르러 연구가 시작되었을 뿐이지만, 가와바타의 생애나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시절에 미야코 무용을 접하고 고등학교 때는 아사쿠사 오페라나 무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가와바타는, 1929년 「아사쿠사 홍단」 을 연재하면서 무용에 깊이 관여하는 계기가 된다. 레뷰극장 카지노 포리의 댄서 우메조노 류코를 발레리나로 키우며, 무용공연을 순회하고 무용에 관한 평론을 쓰지만 그는 당시 무용계에 점점 실망하게 된다.
가와바타의 무용에 대한 관심은 많은 무용물(舞踊物)에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무용이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는 작품, 무용에 대한 기술이나 묘사가 있는 작품, 무용에 관한 수필이나 평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무용물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가와바타 문학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고, 무용의 세계는 그 문학에 도도히 흐르는 지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와바타의 작품이나 가술을 통해 가와바타의 무용관을 살펴보면, 그는 무용을 주로 생명과 미의 상징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은 무용에 그 극치가 있다고 하면서, 정화와 구제의 힘, 성적인 매력과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것은 「무희의 달력」「무용」「호수」「금수」같은 소설과 수필 등의 작품세계에 잘 나타나 있다.
또 가와바타는 예술성의 완성이라는 면에서, 무용을 극히 어려운 예술로 파악하고 있다. 무용은 철저한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것으로, 결혼과 출산 같은 여성으로서의 평범한 행복은, 무용의 예술성을 타락시킨다는 생각, 육체를 가지고 표현하는 예술의 잔혹함도 많은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다. 가와바타가 여류신진무용가 중에 일본 제일이라고 최승희의 무용을 절찬한 것은, 망국과 불모의 험한 예술의 길을 견뎌온 강한 정신과육체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가와바타의 무용관은 가와바타의 미의식과 겹쳐져 있고, 무용은 보다 풍부한 가와바타의 문학세계를 자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